종이 울렸다. 점심시간-.

교실 다섯 칸 크기의 학교도서관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지난 25일 점심시간의 서울 망우1동 송곡여고 도서관은 금세 1학년 학생들로 왁자지껄했다. 이게 무슨 영문인가. 책장에 몰려 책을 뒤지는 학생들이, 10분 정도 더 지나니, 열람실 한쪽에서 북새통을 이뤄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곳저곳에서 책장에 꽂힌 책을 뽑고 펼치고 넣고 인터넷에서 주제어 검색을 하고, “여기 있을 거야” “찾았다” 소리로 정신이 없다.


학교도서관에 ‘보물’이 있다


영락없이 무슨 숨겨둔 보물이라도 찾는 모습이다. “맞아요. 보물 찾기입니다. 신간·기증 도서들의 한쪽 면을 복사해 게시해두고 아이들이 그 면이 실린 책을 찾아오면 보물을 줍니다. 오늘은 1학년만 참여하는 날이죠.”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13년째 일하는 이덕주(38) 사서교수는 “더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아 책과 친해지도록 기획한 행사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럼 보물은? “떡볶기 시식권, 동네서점 책 교환권, 그리고 2만원짜리 콘서트 티켓입니다. 콘서트 티켓 때문에 오늘 유난히 많이 몰리네요.” 1학년의 보물 찾기로 도서관이 떠들썩해도, 열람실 한쪽에 마련된 우아한 ‘온돌방’엔 다른 학생들이 눕거나 엎드려 쉬며 책을 읽고 있다.




이날 보물 찾기는 학생동아리인 도서관사랑봉사단(‘서랑’) 회원들이 준비했다. 30여명의 서랑 봉사단은 책장 정리, 대출·반납, 서가 청소 등 궂은 일을 도맡기도 하지만 독서토론, 영상뉴스 제작 같이 책과 도서관을 주제로 한 여러 문화활동을 펼친다. ‘서랑’ 이미현(16·1학년)양은 “우리 봉사단은 사서선생님의 ‘독선’을 견제하고 감시하기도 하지만(웃음), 선생님과 함께 우리 도서관을 누구나 찾을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게 보람스럽다”고 말했다.

콘서트 티켓은 아니라도, 학교도서관에는 확실히 ‘보물’이 있다.

서울 용동초등학교 도서관의 배지혜(31) 사서교사도 학생·학부모와 함께 도서관에 숨은 보물을 찾는 사람이다. 대학도서관에서 5년 일했고 이곳 학교도서관 ‘책꿈터’에서 계약직 사서교사로 일한 지 1년이지만 “책을 읽으며 달라지는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 해볼만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사서교사가 서가 정리나 대출·반납 업무만 하는 게 아닙니다. 도서관을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드는 건 사서교사 하기 나름이죠.“

그가 평소 하는 일을 보자. 그는 어린이책 출판사나 지은이와 협력해 교내 강연회를 기획한다. 또 학부모를 초청해 독서지도를 한다. 자주 도서관을 찾는 학부모들을 위해 독서통신문 보내기도 잊지 않는다. 담임교사들한테는 수업 때 활용할만한 어린이책 정보를 제공한다. 고학년, 저학년생한테 눈높이에 맞춘 독서지도를 매주 벌인다. 지난달엔 학부모, 학생, 출판사와 함께 인형극, 구연동화, 글짓기, 책 만들기 등 같은 ‘책잔치’를 열었다. 그러니까 “사서교사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그리고 출판사와 지은이, 게다가 지역 시민단체까지 서로 연결하고 소통하게 하는 중심이자, 적절하게 지식·정보를 재구성해 서비스하는 전문가“(이성희 인천 방축고 도서관 담당교사·35)다.


빗속 궐기로 쟁취한 ‘154의 사건’


최근에 학교도서관에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신문에도 방송에도 잘 보도되지 않았데도 사서교사들과 학교도서관 살리기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의미 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용인즉슨, 내년에 전국 공립 초중고등학교의 학교도서관에 154명 사서교사가 새로 임용된다는 소식이다. 이달 초에 교육인적자원부가 214명의 사서교사 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전국 시도교육청이 인원을 조정해 154명 임용을 최종 고시했다. 전국 교사가 38만6천명(2004년)이나 되는 나라에서 고작 154명 교사 증원이 이처럼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왜일까.

거기엔 학교도서관 살리기운동을 벌여온 사람들의 작지만 큰 싸움이 숨어 있다. “154, 정말 뜻깊은 세 자릿수입니다. 현재 전국 초중고교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에 학교도서관이 있다고 합니다. 또 2003년부터 교육부가 나서 학교도서관의 시설을 개선하는 지원사업이 펼쳐치고 있지요. 도서관이 친근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정규 사서교사가 운영하는 학교도서관은 3%도 되질 않아요.“ 이덕주 교사는 “보건소에 시설과 약은 있는데 의사·간호사는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학교도서관이 그런 상황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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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도서관법에 따라 1968년 첫 사서교사 33명이 학교에 임용된 이래 올해까지 임용된 사서교사의 정원은 313명이다. 이런 숫자는 전국 학교 1만826곳이고 그 가운데 89.6%가 도서관을 갖추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는 인원이다. 그 수도 최근에야 갑자기 늘어났다. 사서교사 임용은 2000년엔 아예 없었고 2001년에 1명만 늘어났다. 2003년 33명, 2003년 45명, 2004년 34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올해엔 17명으로 다시 줄었다.

그러다 올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학교도서관 문화운동 네트워크’(학도넷)의 공동대표인 김종성 계명대 교수(문헌정보학)는 “이건 학교도서관 역사에서 기억될 만한 사건”이라고 했다. “지난 9월에 내년도 사서교사의 대폭증원 계획이 정부예산 문제 탓에 백지화됐죠. 그러자 9월30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학교도서관 관계자 700여명이 빗속에서 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만한 문헌정보학인들이 빗속에서 집단행동을 벌인 겁니다.“ 이렇게 확보된 154명 정원은 지난해에 비해 거의 10배 는 규모이고, 국내 공립학교 사서교사 전체의 절반에 이르는 숫자다. “그러니 역사적 사건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도서관 문화 부흥이 열쇠


그렇지만 학교도서관 사서교사들이 앞으로도 세 자릿수로 늘지는 불투명하다. 교육부 학교도서관담당 유경종(45) 사무관은 “교사 증원은 먼저 총예산이 결정되면 그에 따라 총 신규임용 교사 규모가 산출되고 그 틀 안에서 교과교사와 비교과교사의 비율이 조정돼 결정된다”며 “이런 시스템에서 2007년에 사서교사가 다시 얼마나 더 증원될지는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교과별 교사들의 증원 요구도 거센 상황에서 힘 없는 사서교사의 증원 규모는 미리 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교육당국은 정규 사서교사가 아니라도 사서직원이나 계약직 사서교사를 사서전담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2005년 4월 현재 학교도서관의 사서 전담인력은 정규 교사 313명 외에 계약직 사서교사 1881명, 사서직원 57명이 있으며 그밖엔 교과교사들이 겸직하고 있다.

‘전국학교도서관 담당교사 모임’ 대표이자 학도넷 공동대표인 이성희(35) 교사는 “사서교사를 책 정리나 대출·반납을 하는 인력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라며 “지식·정보를 새로 조직해 학생·교사한테 서비스하는 전문적 협력자가 되려면 학교교육에서도 자기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교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서교사 한 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학교교육의 질이 확실히 달라진다는 게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3%’의 사서교사 배치율을 몇 년 안에 당장 바꾸기 힘든 현실에서, 사서교사를 꾸준히 늘리는 동시에, 학교 밖의 협력자들과 함께 학교도서관 문화를 활성화하자는 대안도 모색되고 있다. 이성희 교사는 특히 “지역 시민사회단체나 학부모들과 함께하는 여러 문화행사들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벌어져야 책의 창고가 아닌 도서관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1만여곳 학교도서관이 살아난다면 우리 책문화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내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학교도서관의 부흥이 좋은 책 출판의 여건을 만들어줄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책시장엔 수요의 한계가 뚜렷합니다. 개인 독자의 주머니에 기대어 팔리는 책만 내는 출판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전국 1만곳 학교도서관이 안정화하고 책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가 1만명이 되는 시대가 온다면, 학생·교사를 위한 좋은 책을 꾸준히 만들 통로가 국내 출판계에도 열릴 겁니다.” 그는 “학교도서관이라는 공적 영역이 넓어지면 출판도 살고, 기초학문·예술도 살고, 덩달아 좋은 책을 볼 수 있는 학생·교사의 교육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며 ‘학교도서관과 출판의 선순환’을 기대했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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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샘 2005-12-04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서교사는 아니지만 도서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에 스크랩해둔다.
 

차병직 변호사님의 "사람답게 아름답게"에 인용되어 있는 글인데

마음에 들어서 옮겨 본다.

 

"망가진 인형 때문에 흘리는 눈물과 좀더 자라서 친구를 잃고 흘리는 눈물은 둘 다 차이가 없다. 무엇 때문에 슬퍼하든, 우리 인생에서는 결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슬퍼하는가이다. 하느님께 맹세컨대, 아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결코 어른들이 흘리는 눈물보다 작지도 않거니와, 때로는 어른들이 흘리는 눈물보다 훨씬 무겁다. "

 

  다시금 아이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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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

  발써 3학년이 끝나가고, 이제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어요.

 저는 성격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입니다. 하지만 2학년 때는 선생님에게 정이 가고 편하게 친구처럼 대해주시는 모습 속에서 제가 더 편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들어 엄마와 많이 다투고 싸웠지만, 꿈이 정해지고 자신감이 생겨 선생님이 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러 아껴주시고, 걱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학교 생활 잘 하며, 크게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가 할 일도 많고, 피곤해서 이만 쓸게요.

  감사합니다.

 

  --- 사실 답장을 쓸까 안 쓸까 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몇 자 정성들여 쓴 편지를 보니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oo이가 끝까지 중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이 녀석은 잘 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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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어제 문득 너하고 상담을 해야하는데 7교시까지 하다보니 일에 쫓겨 제대로 말도 못하고 보내버린 게 퇴근 무렵에야 생각이 났어. 미안하다.

  사실 선생님은 네가 학교에 말도 없이 결석을 해서 벌을 주어야 할까, 아님 요즘 너의 생각을 글로 쓰라고 할까, 부모님께 다시 전화 상담을 드려야 할까, OO이를 데려와서 차분하게 다시 이야기를 해 볼까 등 별 생각이 다 들었어. 그런데 내 예상대로 넌 오늘도 별 얘기도 없고,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꽤나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아무래도 네 얘기를 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겠지.

  선생님이 여유가 된다면 갈매동에 있는 너의 집을 꼭 한 번 가보고 싶지만, 이번 2학기 중간고사 기간이 될 때 까지는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이 한계가 있고, OO이가 아무 연락도 없이 이렇게 덜컥 결석을 하면 선생님은 마음이 너무 불안해진단다.


  1학기 초에 너에게 자세히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선생님 나름대로 OO이를 도와주고 싶어서 이리저리 노력을 많이 했어. 장학생 추천도 하고, 급식 지원 신청도 하고. 그랬는데 일들이 잘 안 되더라고. 그래서 미안해서 이야기도 못 꺼낸 거란다. 그러다가 문득 네가 학기 초에 사진이 없다고 못 내던 게 생각나서 그저께 부랴부랴 사진관에 전화해서 사진 추가 신청해서 어제 사진이 나온 거란다. 뭐, 선생님이 이렇게 노력하는 걸 알아달라는 건 아니고, 적어도 선생님이 OO이를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좀 알았으면 해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는 거란다.

  OO이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알 수도 없고, 선생님이 안다 해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학교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 늦어도 학교에 꼭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네가 안 나온 날, 내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를 거다. 후!!! 그리고 가능하면 네가 생각하는 것들을 편하게, 몇 자 안 되더라도 써서 나에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OO이가 좋은 점이 많은 학생이라고 믿고 있단다. 마음만 먹으면 열심히 할 텐데, OO이가 왜 이렇게 의욕이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단다. 중간고사 기간에 가정 방문을 하면 너무 늦을 것 같아, 이렇게 편지라도 쓰는 거니까 선생님 말을 잘 새겨 듣고 수행평가, 시험 준비 최선을 다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처럼 밝은 모습으로 학교 생활하는 OO이의 모습 참 보기 좋단다. 참, 그리고 장래희망에 대해 쓴 글(말하기 수행평가 원고)이 정말로 없어졌다 해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이번 주말에 차분히 다시 써 보렴. 할 수 있지? 너무 화 내거나 짜증내지 말고. 잘 할 수 있을 거야.


   더 나은 OO이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게. 

                                                            20050909   담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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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9월만 되면 마음이 심란스럽기 짝이 없다.

작년에는 학교도 옮기고, 아이들과도 잘 맞지 않아 힘들어 더 그랬던 것 같다. 확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나 교원대 파견교사로 도망이라도 쳤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했다. 점심시간에 지나가던 아이의 급식판의 국물이 옷에 튀어서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집에 갔다 왔을 때는 너무 절망적이었다.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현실이 날 가만두지도 않을 테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긴 나 자신이 그렇게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안전이 보장된 길만 왔다고 볼 수 있으니까...

올해도 그렇게 바뀐 것은 없지만, 교감샘이 없는 별실로 왔다는 것이 마음을 훨씬 가볍게 한다.

잠깐 사설이 길었군.

그저께 그러니까 9월 7일 우리반 1번이 결석을 했다.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 늘 성실하고 부끄러움이 많아 양볼이 빨간 아이. 요즘 사춘기의 열병을 앓는 듯 하다. 집안 사정도 그리 넉넉치 않은 녀석이 마음 속에서 부닥끼는 것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여유가 있으면,
딸린 우리 애들만 없어도 갈매동까지 한 번 가정방문을 꼭 해봤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어제 자는 순간까지 했다. 후... 도대체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는 걸까? 내가 이렇게 걱정을 하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이렇게 편지라도 써서 줄까, 어쩔까 생각 중이다. 장학생 추천도 못 해주고 여러가지로 미안한 아이라서 그런지 늘 생각이 난다. 나의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아이들은 속마음을 잘 내보이지 않는다. 1년 내내 내가 알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겉모습 뿐이다. 그저 나는 알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그리고 아이들도 내가 자신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지 모르고 그냥 1년을 흘려 버린다. 그저 스쳐가는 사람으로... 그러지 않았으면 해서, 기억을 붙들어매려고, 모둠일기도 쓰고, 문집도 만들고, 각종 행사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너무 천진난만하고 생각보다 명랑하고 잘 웃어서 좋다.

시끄럽다고 장난이 심하다고 혼내키다가도 저 아이들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기 수행평가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말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을 즐기라고요."라고 말하는 우리반 남학생들. 점수에 팍팍해진 여학생들의 모습보다는 이렇게 여유있는 남학생들의 모습이 더 보기 좋다. 나 역시 점수에 연연하고, 재미없는 하라는대로밖에 할 줄 모르는 모범생이었게 때문에. 내가 하지 못하는 모습이기에. 이 녀석들이 자신의 위치에 맞는 곳을 잘 찾아서 갈 수 있었음 좋겠다.

요즘 자꾸 감상적으로 되는 나를 나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다. 하늘이 눈이 시리게 밝은 날도, 이렇게 비가 잠깐 와서 흐릿한 날도, 온 몸이 뻑쩍지근한 날도 그냥 누군가가 그립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평소에 못 하던 이야기들...

요즘 하늘을 봤냐고, 이런 가을에는 무슨 영화를 봐야 하는지, 보고 싶은 사람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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