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과 귀족의 백제어
이원희 지음 / 주류성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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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서평] 일본 천황과 귀족의 백제어 - 백제인이 지배한 고대 왜국의 흔적 그들의 언어


 


일본은 자국의 각색된 역사저술인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기록을 통해 백제를 지배했다고 하는 임나일본부설을 통해 한국을 지배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백제어의 흔적이 오히려 일본인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사실을 나타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일본의 고대역사가 나타나고 있는 저술은 일본서기와 고사기이다. 고사기가 돔 더 오래된 것으로 고사기의 원편에는 백제어가 많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 당시 한반도에서 쓰던 이두가 많이 보여 자신들이 직접 당으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사실을 거꾸로 부정하고 있는 저술이다.

이러한 백제어의 흔적은 지금의 일본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그들은 외면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고대 일본어의 시시하다는 말인 ku-da-ra-nai는 앞의 구다라가 백제를 뜻하는 말이며 나이는 아니다라는 말이다. 결국 백제산이 아닌 물건은 시시한 물건이라는 것이 이 말의 원형인 것이라걸 알 수 있다. 구다라가 백제인 것은 백제가 왜로 가는 항구였던 부여의 항구 이름이다. 왜로 가있던 백제인들이 자신들이 떠나온 항구를 향한 애절함이 옅보이고 있는 표현인 것이다. 구다라는 말은 일본의 어느 원형과도 연결이 안 되는 말이다.

특히 구다라라는 부여의 항구를 표현한 용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한성에서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이주한 것에로 볼 수 있다. 웅진에서 가까운 부여는 일본으로 가기 쉬운 최적의 항구였던 것이다. 일본에 점령된 백제라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 것이다. 그것은 일본으로 빨리 가기 위한 정책이었으며 당수군에 멸망했듯이 방어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웅진천도의 배경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 있는 부여의 구드레 항구가 백제를 상징하는 말이 된 것이다.

특히 그들의 고사기와 서기에 일본이 최고의 신의 이름은 i-za-na-ki(남신)과 i-za-na-mi(여신)이다. 일단 마지막의 어간의 나기와 나미는 지금의 내기와 내미로 우리가 사용하는 시골내기(출신을 뜻하는 말)과 딸내미(여성의 출신)의 어간의 원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앞의 이자라는 말은 끌어들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엇을 끌어들인 사람들일까? 이것은 먼저 백제에 넘어가 정착한 구백제세력과 당의 멸망 이후 새롭게 넘어간 신백제세력의 갈등에서 그 원형을 유추해볼 수 있다. 원래 일본에 문화를 끌어들인 사람들이 백제인이라는 것을 그들의 태고의 신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나기와 나미의 원형은 고대 일본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백제어임을 알 수 있는 근거인 것이다. 

특히 이러한 용어가 행정용어, 정치용어 등 통치언어에 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백제의 정치문화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사기에 기록된 이두의 흔적은 이것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이(관리), 두(원래 도로써 말을 뜻한다)는 관리가 쓰는 말 또는 관리의 서류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사용한 나라는 신라와 백제였던 것이다. 그들이 자신이 백제를 지배한 나라였다면 어떻게 백제의 언어를 가지고 자신의 역사를 기술할 것인가하는 것만 봐도 이것은 잘못된 사실이라걸 알 수 있다. 

일본 서기를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가 있어 하늘의 신을 기다린다고 표현하는 대목이 있다. 하늘과 땅에 어떻게 다리가 있을 까? 사실 이것은 백제라는 하늘과 왜라는 땅이 연결된 다리가 있다면 언제라도 고국에 내왕할 수 있다는 고대 백제인들의 향수가 숨어있는 대목이라 해석해야 한다. 

왜라는 말은 키가 작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야요이 시대의 일본인은 매우 왜소한 체격이었다. 그래서 왜라고 불렀던 것이다. 일부 고서에서는 그냥 섬이라 부른 사례도 많이 보인다. 왜왕을 뜻하는 도군이라는 말은 섬의 우두머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본이라는 국호에 대해 구당서는 별종이 왜국이라는 국호가 좋지 않아 일본으로 국호를 바꾸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별종은 백제 멸망 후 넘어간 백제이주민을 뜻한다. 결국 자신의 조국을 떠나 새롭게 일본으로 넘어간 백제인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문화가 바로 일본문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역사적 근거는 매우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역사학계의 보수성(사실 친일성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만)으로 인해 식민사관의 옷을 못 벗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러한 좋은 근거를 역사학자가 아닌 법조계의 사람이 썻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정확히 아는 근거가 된다. 정통사학이 아직 삼국을 넘지 못하는 한계(고조선은 신화라 단정하는 모습)나 일본의 왜곡된 내용에 대한 분석에 지나치리만큼 외면하는 모습은 하루속히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특히 자국의 역사를 선택과목으로 취급하는 정서는 정말 빨리 고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본인은 한중일의 우호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아시아를 꿈꾸는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래서 일부 재야사학자의 영토사학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고 있다. 본인은 문화사적 입장이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이러한 역사적 근거를 통해 화합의 근거를 만들기를 바라고 있다. 한일이 잘못된 서로의 시각으로 인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의 상징을 만드는 근거로 함께 잘못된 역사를 조정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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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한 생각 밥상 - 박규호의 울림이 있는 생각 에세이
박규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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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서평] 소담한 생각 밥상 - 공기업 30여 년의 생활을 통해 바라 본 전문가가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


 


공기업인 한전에 입사해서 주로 해외 파트의 업무를 진행했던 저자의 폭넓은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30여년이 넘는 업무영역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말 아담하게 작은 밥상으로 차려내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인생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담아 낼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반부에는 인생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반찬처럼 얘기를 하고 있으며, 후반부에는 자신의 해외 경험을 통해 얻어진 생각들을 한국과 중국, 일본요리로 표현해 넓은 국제적 식견까지 차려내고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디저트라는 표현처럼 몇가지 에피소드를 잘 정리해주면서 그래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한끼 밥상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책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면서 자신의 지적 탐구에 책이 이정표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책값이 엄청나게 비싸 오히려 조선의 지적 발전이 일부 계층에만 한정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나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말이 말과 글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고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스위스를 예를 들면서 처음부터 중립국의 힘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 아니라 신구교 갈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방안을 찾으면서 연방제와 대통령순번제라는 기가 막힌 제도를 만들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정비를 통해 새로운 국가적 힘을 갖게 된 것처럼 우리도 갈등의 문제를 잘 해결하면 좋은 미래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정리하는 것은 결국 만시간의 법칙처럼 습(習)을 강조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의 한중일 요리로 표현한 이야기는 우리의 시각을 넓게 하게 만든다. 물론 한국적 시각에서 중국과 일본을 생각하고 있다는 한계점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중국과 일본을 어떻게 관계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염치라는 부분에 대해 진정한 성숙사회의 방향을 잡은 것이 중요하다는 비판이나, 일본에 대해 극일과 지일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의 국제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면이다. 특히 일본인이 업무처리방식을 소나무 옯기기로 표현하면서 절차의 문제가 매우 중요한 일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일본인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을 움직이는 4개의 7천만이라는 숫자(공산당원수, 화교수, 중국 부자의 수, 유흥업소 여종업원수)가 말해주는 면이 있다면서 그들의 대국에 대한 인식을 생각하게 한다. 2015년 전인대회를 통해 내걸은 중국의 목표가 개혁과 창업, 구조조정, 실크로드의 재현, 환경정책이라는 부분은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은 하나의 밥상처럼 담긴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채우게 하는 에세이다. 물론 공기업의 임원을 맡으신 분이다보니 일부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글의 맛을 더 살리는 작은 양념같은 이야기로 느껴진다. 짧은 에세이를 엮어만든 책이지만 밥상을 모토로 깔끔하게 짜여진 스토리가 돋보이기도 한다. 특히 국제적 시각을 요리로 표현하여 잘 정리한 것은 정말 백미라 생각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국제화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고 있다보니 더 다가오는 것 같다. 하루 일상을 넉넉하게 한 재미있는 밥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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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선의 볶은 곡식 밥상
홍영선 지음 / 화남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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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서평] 홍영선의 볶은 곡식 밥상 - 백명의 의사를 만나기 전에 밥상을 바꾸라.



강원도 원주에서 볶은 곡식 건강법과 저온 수면 건강법의 실천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건강법을 전도하고 있는 홍영선 원장의 건강실천법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저녁은 삼가는 대신 아침, 점심 두끼를 중심으로 식사를 챙기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저온수면법을 통해 건강을 챙기라고 말한다.


많은 건강법이 있지만 대부분 어느 한가지만 좋다고 말을 하는데 다른 사람은 그것이 오히려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올바른 건강법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건강이 문제가 된 이유는 현대사회의 변화로 인해 생활습관이 변함으로 인해 오는 문제가 가장 크다고 말한다. 원래 인간이 세 끼를 다 먹게 된 경우는 최근 100년 안 쪽의 일이다. 이전에는 세끼는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해가 지면 잠을 자던 습관이 밤에도 일상생활을 즐기면서 생활습관의 변화로 인해 신체리듬의 변화로 이어지고 그것이 현대병의 원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습관의 변화가 지금 현대병의 모든 원인의 시작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천년 동안 이어진 일반적인 신체 리듬은 아침을 일찍 먹고 점심을 든든히 먹는 것이다. 그리고 해가 지면 잠에 들어 휴식을 통해 새로운 몸의 충전을 만들어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것이 정상적인 패턴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여의치 않아 영양 부족이 많았던 것이 지난 날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세끼를 챙기면서 영양의 과다를 만들어내고 밤낮이 바뀌면서 리듬의 변화를 만들면서 현대병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대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이전의 패턴을 복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인간이 이천년동안 주식으로 삼아 온 곡식을 주식으로 삼아 현대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본다. 곡식에는 인간에 필요한 거의 모든 영양소가 있다. 

영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섭취를 했을 때 소화가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곡식은 이러한 측면에서 가장 잘 소화되는 음식재료인 것이다. 그에 비해 단백질은 소화는 잘 되지만 바로 당의 전환이 가능하게 되어 다른 병의 원인 제공이 될 수 있다. 또한 요즘 각광받는 채식은 질산의 과다 섭취라는 문제를 만들게 되어 몸을 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허약체질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몸의 체질은 아침과 점심에 영양을 섭취하고 저녁은 쉬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6-7시에 이른 아침을 먹고 1시 정도 점심을 먹은 후 저녁은 먹지 말라고 말한다. 1일 2식 실천과 1일 3식 실천을 통해 스스로 비교해보고 선택하라고 말한다. 사실 본인도 요즘 1일 2식을 실천하고 있는데 몸이 매우 편안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사람과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을 하기에 저녁을 먹어야 할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지켜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천을 통해 가장 큰 변화는 이전에는 자고 일어나면 항상 몸이 무겁고 많이 활동하는 탓에 다리가 무겁다는 느낌이었는데 요즘 그 느낌이 없어져서 너무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처음에는 항상 세끼를 챙기는 습관으로 인해 어려워서 저녁을 챙겨먹어보니 정말 잠자리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요즘에는 될 수 있으면 1일2식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덕분에 몸이 너무 가벼워진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노력하고 차가운 곳에서 잠을 자되 몸의 보온은 스스로 할 수 있게 하고 외부의 열의존을 줄이는 것이 현대병을 치유하는 핵심이라고 말한다. 


건강에 좋은 것이 많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원리를 통해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사실 홍원장의 강의를 들을 때에는 완전 확신을 없었다. 그러나 그 분의 자신의 체험과 많은 부분에 대해 공부한 분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이 분의 이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자연치유이론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는 것을 보면서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분의 저서를 통해 다시 그분의 생각을 보면서 더 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인간의 신체에 대해 우리가 완전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생로병사에서 병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간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 분의 이야기가 가슴에 다가오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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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양희송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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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서평]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 한국교회가 직면한 최대 현실, 가나안 성도는 누구인가?



"가나안 성도"라는 것은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라는 말이 되듯이 교회를 안나가는 크리스찬을 말한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기독교인 중 10%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말해주듯이 이미 한국교회의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가나안 성도의 근거와 현재 상황을 사회학적, 신학적 분석을 시도함으로서 한국교회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문제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문제는 교회를 배제한 신앙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말로 교회 밖 그리스도인이라고도 불리는 가나안 성도의 문제는 현대 한국교회에 던지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 되고 있다. 

이 인원은 100만명에서 340만 정도로 추정하기도 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조사해본 결과에 의하면 가나안 성도의 평균 출석연수가 14.2년, 보통 한 교회를 지속적으로 출석한 사람, 교회의 문제로 6개월 정도의 고민을 가지고 상담을 하다가 답을 찾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는 일반성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러한 가나안 성도의 출현은 사회의 빠른 변화를 교회가 따라잡지 못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의 보수화에 견디지 못하면서 만들어진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가나안 성도가 제도화된 교회를 반대하고, 교회의 성장주의, 승리주의로 치장한 설교에 대한 비판, 기독교 신앙 그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가나안 성도는 교회 쇼핑족이나 교회난민 또는 영적 엘리트주의로 불러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속담 처럼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은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을 제대로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교회는 많지만 갈데가 없는 현실 바로 이것이 현재 핸국 교회가 가지는 모습인 것이다. 교회 안의숨막힘, 위선, 분열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떠난 이들, 바로 그들이 가나안 성도의 모습인 것이다.

이러한 가나안 성도가 새로운 모습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홍대의 벙커원교회나 작은 교회운동이 새로운 대안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벙커원교회는 등록, 헌금, 직분 없음을 추구함으로서 진정한 평신도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새롭다.

물론 이러한 시도의 원조는 종교개혁시대의 에라스무스, 청교도혁명 대의 존 밀턴, 한국 무교회 운동의 시조 김교신 선생의 모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예수의 하나님나라운동이 바울의 교회론으로 바뀌면서 전환된 문제는 교회론의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한국은 교회론은 없고 교회성장론만 있다고 비판한 모습처럼 진정한 교회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가나안 신앙이 성 안의 신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길 위의 신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또한 새로운 신앙의 모습을 실험한다는 것과 스스로 이웃이 되는 신앙이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기존 교회가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교회 안의 신앙을 강조했던 것은 중세 카톨릭이었다. 이것을 개혁하고 새롭게 출발한 개신교가 자신의 본연의 내용을 잊어버린 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가나안 성도의 문제는 한국교회가 만들어낸 문제이며, 새로운 방향성이 될 것이다. 교회는 정체되어 있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시대에 적응해왔던 것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목회자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본인도 신학을 전공하고 나름대로 목회의 일선에 나가려던 상황에서 문제가 생겨 본의 아니게 가나안 성도의 모습으로 지낸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작은 교회를 나가면서 나름대로 작은 교회운동을 시작하려 준비하고 있지만 이러한 가나안 성도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 책이 나왔다는 점은 매우 반갑게 생각된다. 

본인은 한국교회가 1970년대의 성령운동으로 대폭발을 이루어낸 이후 급격한 성장을 보장할 정신적 성장을 만들어야 했지만 기존 교회의 물신적 추구가 그러한 지적을 하던 사람들은 이단시하면서 교회가 스스로 정화하고 성숙할 수 있었던 기회를 차버린데 있다고 보고 있다.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을 통해 새로운 조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조직성장론이라면 질적 성장이 빠져버린 한국 교회의 모습은 계속적인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작지만 매우 도전적인 과제를 던진 저자의 용기에 심심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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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문명 - 별과 우주를 사랑한 지동설의 시대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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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서평] 샤먼 문명 - 샤먼 그들은 별과 우주를 사랑한 지동설의 신앙자였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은 무려 5-3만년의 역사를 가진 종교로 하등종교가 아닌 해탈을 염원하는 고등종교였으며, 현재의 모든 종교가 그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자는 그러한 엘리아데가 놓친 비너스가 금성의 도상이었다는 사실때문에 그들이 지동설을 믿는 차원 높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까지는 놓쳤다고 말한다. 이책은 샤먼이 가진 신화와 유물들에 담겨진 의미를 해석해냄으로서 그들이 가진 고차원적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사실 종교역사는 끊임없는 샤먼문명과 기독교문명과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엘리아데는 기독교 조차도 샤먼의 부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샤먼의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기독교가 천동설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샤먼은 지동설에 기초한 종교이며, 인간 생명을 중시하는 종교라는 의미를 밝혀냄으로서 샤머니즘이 고등종교임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샤먼이 가장 활약을 하던 청동기의 시기는 모든 제단의 기구들을 놋쇠로 만들었다. 성경에 나오는 제단의 구리가 쓰여진 것은 그 원형이 샤먼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놋쇠는 구리에 아연과 주석을 넣어만든 합금이다. 이러한 원소가 생명체-특히 포유류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현대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사실이다. 놋쇠가 강한 살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단의 구리 사용이 당연시 되었다는 것이다. 

청동기에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인 청동 거울은 얼굴을 보려한 것이 아니라 천체 관측도구이며 하늘의 소리를 듣는 기구였던 것이다. 특히 샤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금성은 수소를 상징하며 모든 시작을 의미한다. 샤먼들은 금성과 지구가 두차례 공전하면서 지구의 모든 자연현상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성을 뜻하는 신화의 인물이 비너스이며 그녀는 생명을 샂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수소를 의미하는데 지금 영어의 A는 수소의 뿔을 의미하며 제일 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이것이 용으로 나타내어지는데 용(龍)이 나중에 역(易)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역은 日(태양)과 月(달)의 합성어이며, 별의 순환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의 알파벳이 22자로 시작된 것은 10干과 12支를 더한 결과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황제가 소를 굴복시켰다라는 의미는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전의 뿔의 장식이나 뿔 제단의 모습은 이러한 금성을 섬기는 모습인 동시에 금성의 관측을 통해 우주의 때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비너스 신화에서 뿔을 들고 서 있는 의미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소의 두뿔과 가운데 보이지 않는 뿔을 취할 수 있는 것이 하늘의 이치를 알고 있는 샤먼의 역할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소 제물을 바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열개의 해를 잡았다는 신화는 수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됨으로서 만물의 질서를 깨달은 사람이며, 특히 10이라는 숫자를 완전수라 하여 신성하게 생각하였던 것이 사면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샤먼이 가지고 있는 유물과 신화들의 언어 속에 나오는 의미는 지금의 과학에서도 감탄할만한 이야기인 것이다. 샤먼이 하등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면저인 지식만 가지고 자신의 뿌리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천박함에서 나오는 결과일 뿐이다.


매우 재미있는 책을 본 것 같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 580여 쪽의 책을 읽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인해 일단 반 정도 읽고 서평을 징리해본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은근히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남이 가진 것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은 비교가 일상적인 인간에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것을 정확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이 가진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마도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뿌리가 가진 문명의 힘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도 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한때는 샤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종교의 모든 뿌리는 하나라고 본다면 모든 종교의 원형은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다양한 종교의 원형에 대해 알아보는 재미를 가지고 있다. 이책은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재미있는 견해를 주고 있는 책이다. 편협한 종교론자가 아닌 소통과 대화가 가능하며 삶 속에서 진정한 향기를 실천하는 종교인으로서 좋은 참고의 도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좋은 책을 갖게 되어 기쁜 하루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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