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8

......사랑이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 사랑이 들어와 사는 것이다.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체가 숙주를 선택하는 이치이다.-10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을 숙주로 삼아 살아야만 사랑을 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어쩌면 사실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람을 이전과는 다른 세계로 이끌고 다른 사람을 만든다.

사랑하면 용감해지거나 너그러워지거나 치사해진다-11

 이 소설은 사랑의 숙주가 된 네 남자의 이야기이다. 형배의 아버지는 형배가 중학생일 때 새로운 여자를 만나 가족을 떠난다. 아들에게 언젠가는 자기를 이해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하지만 아들은 사랑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 버린 어머니를 보면서 사랑의 고통을 알게 되고, 사랑을 멀리하게 된다.

그런데 형배는 왜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두려움은 위험에 대한 감각적 반응이다. 위험이 닥칠 것을 예감할 때 사람은 염려하고 기피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렇다면 사랑에 붙들리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일이 위험한 일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81

 아버지가 왜 어머니를 떠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만나는 여자들 넋을 빼놓던 잘생긴(281)’ 사람이었던가 보다. 그래서 한 여자에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알콜중독과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그랬던 어머니가 우연히 남편이 병들어 요양원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곁으로 간다. 어머니는 그 이유를 내가 처음 사랑하고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281)’이라고 한다. 사랑은 위대한 것인가?

 

 작가는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을 다르게 정의하는 것 같다. 여자는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인내하고, 포용한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람은 선희인데 작가는 그녀를 성모마리아처럼 묘사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눈칫밥 먹으면서 서럽게 자란 영석을 마치 어머니처럼 돌본다. 둘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 연민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불어 밝혀야 하는 것은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담긴 감정이다. 어둠이 그녀의 눈빛을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숨김없이 드러낸, 그러나 어둠이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숨김없이 드러나지 않은 그 감정은 연민이었다.-190

 영석은 일방적으로 기대고, 보채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선희는 그를 어머니처럼 품는다. 어린애처럼 가슴에만 매달리는 남자를 마치 젖먹이는 어머니처럼 쓰다듬어 주는가 하면, 질투에 눈이 멀어 함부로 대해도 견딘다. 영석은 어린애가 아니다. 선희보다 10년을 더 살았고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나가는 어른이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에 시달리는 덩치 큰 어린애며 그 결핍을 애인에게서 채우려고 한다. 나 같으면 이해하기 힘든 남자의 행동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품으려는 선희의 태도는 소설 어디에서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마치 여자는 애인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강요하는 것 같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예컨대 그녀와 함께 있을 때 그는 너그럽고 능숙한 남자 연인이 아니라 서툴고 심술궂고 어머니의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갈구하는 이기적인 아이가 되었다. 애무를 할 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녀는 가끔 자기 품을 거칠게 파고드는 어린아이를, 어머니가 그렇듯, 너그럽고 능숙하게 다독이며 헛웃음을 웃곤 했다.-155

그녀는 잘 버텼다. 그녀는 그를 이해하려고 했고, 실제로 누구보다 잘 이해했으므로 그의 괴롭힘을 견뎠다. 특히 그날 밤 흥분해서 소리 지르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를 경험한 후 더 조심하고 배려했다. 안쓰러워하며 아이 달래듯 달랬다.-251

 형배도 영석도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지 못한다. 그런데 왜 선희는 형배가 아닌 영석을 선택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형배가 자신의 사랑 고백을 거절해서? 선희가 원할 때 받아주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렵게 마음을 정리한 사람에게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을 받았다고 넙죽 그 마음을 받는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형배가 선희를 다시 만난 후 새삼 그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하루 종일 그녀 생각으로 힘들어질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 부분에서 형배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처음 형배가 선희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고 거절한 이유를 부모의 파경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좋은 쪽으로 극복해내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자신의 상처로 다른 사람을 괴롭힐 권리는 없다. 그 때 너를 거절했던 이유가 네가 싫거나 어떤 부분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비롯된 사랑에 대한 고통, 불신 때문이었다, 라고 설명하는게 좀 우습지 않은가. 어쨌거나 선희는 영석을 선택했고 그 이유는 영석의 상처 받을까 두려움에 벌벌 떠는 약함에 끌렸다는 것인데 사랑이 시혜인 듯, 일방적인 베품을 찬양하는 듯 한 내용 또한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 누군가의 약함이다. 약한 것들은 무엇인가를, 어떻게든 할 것을, 가만히 있지 말 것을 요청한다. 약함으로부터 가만히 있지 말고 무엇인가를, 어떻게든 하라는 강요를 받을 때, 그 강요를 받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약함은 유인한다.-191

 이 소설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캐릭터는 준호다. 준호는 연애 상대를 자주 바꾸고 동시에 여러 여자와 사귀기도 하는데 그의 주장은 궤변 같으면서도 일면 솔깃해지는 부분이 있다. 특히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유일하고 영원한 사랑만이 이상적인 것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라 주장하는 부분에는 그럴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했다.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으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고유하고 특별하므로 모든 사람을 고유하고 특별하게 대해야 한다. 유일한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사람의 매력은 한 줄로 순서를 매겨 세울 수 없고, 비교 불가능하다. 사람(의 매력)이 다르므로 연애도 다르다.-72~73

 그의 주장은 한 여자를 만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독실한 개신교도 여자와 연애를 하면서 강력한 라이벌(그녀가 믿는 신)을 만나게 된 그는 그녀와 신체적인 접촉을 하기 위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사랑의 결과가 결혼이 아니라,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상대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용납하는 것이라면 불안정하고 변하기 쉬운 감정에 어떤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 결혼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다 영원하지는 않고, 결혼 또한 의지로만 지탱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애정관은 너무 순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당장 그녀와 결혼할 것 같았던 준호가 다른 매력( 맑고 청량한 목소리)을 가진 여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일부만, 예컨대 마음에 드는 부분만 사랑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106

감정이나 감각이 아니라 그보다 강제적인 어떤 것, 이를테면 의지에 기반해야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의지에 입각하지 않는 사랑은 일관성 유지가 힘들다. 결혼 제도는 장치로서의 의지라고 할 수 있다.-107

 작가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알아야 하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어떤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닌 충만함을 더하는 것이다. 결핍을 가진 사람은 온전히 사랑하기 힘들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폭력이다. 그것을 내가 이해하고 용납한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선희가 영석에게 모성을 발휘한다고 했는데 그 표현 또한 불편했다. 어머니란 그렇게 모든 것을 내놓고 희생만 해야 하는 존재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또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인다.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 사랑하느라 바쁜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의 근거나 방식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285

 책을 덮으면서 처음에는 어이없고 뻔뻔하다고 생각했던 준호의 사랑이 어쩌면 사랑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귀여운(?) 궤변을 마지막으로 읽으며 글을 마친다.

한 사람과의 길고 지루한 사랑이 고상하고 훌륭하고 인간적인 것으로 장려되고, 그렇지 않은 사랑은 저열하고 추잡하고 비인간적인 것처럼 선전되는 것은, 아무리 사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은 그마저도 효용성이 의심스럽거니와, 무엇보다 사랑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불순하고, 인간의 감정과 본성에도 맞지 않는 모순당착이다.-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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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 중이다.
가족 감염을 막으려면 소독 등등 신경써야 할 일이 많을텐데 본인이 환자니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정에서 주부,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프면 누가 간병을 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동료는 누구의 돌봄을 받고 있을까.

 

매 주 금요일 EBS '명의'를 즐겨 본다.
다양한 질병과 치료법, 예방법에 대한 사례를 보다 보면 식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100%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남편이 투병을 하면 아내는 식이요법에 신경을 쓴다.
아내가 먹으면 정말 건강해질 것 같은 음식들을 차려놓으면 남편은 먹고 같이 운동을 간다든지 한다.
거의 변함이 없는 장면이다.
그런데 아내(여자)가 투병을 할 때 위와 같은 식사를 아내의 도움 없이 차려주는 남편을 거의 못 봤다.
대부분 여자는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조리하며 식탁에서 혼자 먹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부는 아파도 가족에게 미안하게 되는 것이다.
할 일을 못하고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니까.
아픈건 미안한 게 아닌데.

 

'명의'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모습이지만 투병중인 아내의 식사를 챙기며 그걸 모아 책을 낸 사람이 있다.
남편이 차려준 밥만 먹겠다고 선언한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아내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늘 최선을 다해 요리를 했던 남편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남편에게 음식 만들기는 단순히 아내의 일을 돕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수고로)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를 대비한 생존기술인 셈이다.

 

동료가 가족들의 도움으로 별 다른 후유증없이 복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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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상태 가설이라는 테제에 맞서는 나의 반테제는 자력으로 지탱될 수 있는 몸은 없다는 것이다-69쪽

 

어른이 되기 전에는 스스로가 의존적이라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만 어른이 되면,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면 도움은 필요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그런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신체나 정신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누구나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내가 필요로 하는 많은 것들은 내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들이다.

 

사실 혼자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행하기 위해, 음식을 먹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지지기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다. 인간의 이 모든 기본적 기능은 저마다 모종의 지지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60쪽

 

오로지 도움만 받아야하는 사람도, 도움만 주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상호의존 관계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용납해야 한다. 지킬 가치가 있는 생명과 그렇지 않은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보호 대상이 되느냐 방치 대상이 되느냐를 인구군에 따라 차별하는 식의 일반화된 불평등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생명들의 불평등한 애도가치를 정함으로써 생명들의 불평등한 가치를 정하는 식의 권력을 발견하게 된다. -31쪽

 

자기 보존의 '자기'를 정의하는 속성중 하나가 바로 그 연결관계, 그 불가피하고 난감한 사회적 유대관계다. 자기보호가 폭력을 행사할 이유가 되어야 한다면, 다시 말해 자기보호가 비폭력 원칙의 예외로 인정되어야 한다면, 그렇게 자기를 보호하는 '자기'는 어떤 존재일까? 그렇게 자기 자신의 권력에 속한 존재들만을 보호하는 '자기'는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강화해주는 것들에게만 속해 있는 만큼, 이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193쪽

 

21세기 세상에서 전쟁을 목도하고 있는 이 때 '비폭력의 힘'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타적인 것이 이기적인 것이다. 3년째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우리는 파괴할 수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왜 우리가 파괴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 우리의 파괴수행 능력을 억제시키는 대항력을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비폭력이라는 윤리적 의무에 묶여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192쪽

 

이 대목에서 프로이트는 유기체가 필연적으로 평화주의자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럴 수 있는 유기체는 ‘문화적 성장‘을 통해 전쟁에 대한 증오와 전쟁이 감당 불가능하다는 감각을 키운 유기체뿐이다. 요컨대 전쟁의 감각이 더 이상 짜릿한 쾌감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유기체는 교육받은 유기체 뿐이다...... 한편으로, (죽음충동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 우리의 유기체적 생명중 적어도 일부는 우리가 파괴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 우리를 평화주의자로 만드는 것은 유기체적 생명이다. - P228

여성살해 희생자의 죽음 하나하나가 개인의 죽음이고 끔찍한 죽음인 것은 물론이지만, 그 모든 죽음이 여성의 애도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구조의 일부인 것 또한 사실이다. 모든 폭력 행위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가 있으며, 각 폭력행위는 그 사회구조의 재연(표면화,재생산)이다. 죽임당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죽임당하고 있다. 단 한 명도 더 잃을 수 없다. Ni Uma Menos.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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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시작과 함께 한 책이다.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버겁고, 의미를 못 찾겠고, 일단 이렇게 사는 삶이 너무 행복하지 않아서 우울했다. 그래서 새해 첫날에 집어들었다.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에 관한 모든 것'

책의 두께와 제목을 본 남편이 항상 머리 복잡한 사람이 왜 그렇게 머리 아픈 책을 읽냐 하기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나 할까 했더니 비웃으면서 가벼운 소설 같은 걸 읽어라, 조언을 했다. 원래 말을 잘 안 듣지만 내용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언을 받아들여 나름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변신이야기」를 집어들었다. 신화니까 가볍게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신들의 횡포, 너무도 쉬운 살인, 스토킹, 강간 등등이 이어지는 글을 읽고 있자니 스트레스가 쌓여 집어 던지고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우울할 때가 많다.

일이 생각같이 풀리지 않을 때나,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몰려올 때, 삶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절망감이 밀려들 때 우울하다. 그런 기분이 오래가거나 삶을 이어가기 어렵게 되지 않는 한 우울함을 병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우울증이란 나약함의 표시라고, 노력하면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감기'같은 거라고 가볍게 취급받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흔히 한밤중이나 자명종이 울리기 전의 이른 아침에) 불가해한 절망의 순간들을 체험한다. 그런 감정이 10분 정도 지속된다면 그건 일시적인 묘한 기분이다. 그러나 열시간 지속되면 성가신 발열이며, 10년 지속되면 커다란 타격을 주는 병이다. -37쪽

 

우울증은 병이다. 필요하면 약을 먹고, 심리치료도 받으면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하는.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사실대로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다. 저자가 우울증 환자이기 때문에 증상이 너무 실감나고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만사가 견딜 수 없이 힘겨워져서 전화 수화기를 드는게 200킬로그램 무게의 역기를 드는 것 같았다. 양말을 한 짝이 아니라 두 짝 신어야 하고 게다가 신발도 두 짝 신어야 한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도로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다. -131쪽

 

얼마나 적나라한지. 침대에서 발을 빼서 바닥에 내리는 것조차 엄청난 힘과 용기를 들여야 한다는 이 병은 원인을 안다해서 쉽게 치료할 수 없다. 자신의 우울증 패턴을 파악해서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우울해진다.

남편의 타박이 있었지만 이 책은 우울증에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다. 업무상 노인 우울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성별이나 연령에 따른 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설명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질병이다 보니 치료법이나 약물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좀 어렵기도 하다. 그런 부분은 대충 넘겨가며 읽었다.

 

저자는 우울이 꼭 고통인 것만은 아니라고 하며 강조하여 조언한다.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말고 꼭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라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누구에게라도 꼭 말 하라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어서 그가 혼자가 아님을, 같이 이겨낼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우울증을 겪은 뒤 안정을 되찾은 사람들은 일상의 즐거움에 대한 감수성이 강한 경향이 있다. 그들은 삶의 긍정적인 면들이 지닌 진가를 절실히 느끼고 그것들에 대해 쉽게 희열에 젖는다. 원래 너그러운 인물이었다면 우울증을 겪은 후에는 더욱 관대해진다. -639쪽

 

스스로 알든 모르든, 우울증의 요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대개는 평생동안 누적된 것들이다. 이 세상에 절망할 일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어떤 이들은 벼랑 끝까지 가고 어떤 이들은 벼랑 끝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장소에서 이따금 슬픔만을 느낀다. - P75

우울증은 친구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우울증 환자는 친구들에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상식을 벗어난 요구들을 하게 되며 그런 요구들을 들어줄 의향이나 융통성, 우울증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 P106

우울증으로 부터 비교적 자유로은 인생을 누리려면 신중하고 지각 있는 태도로 약물치료에 임하면서 안정감과 통찰력을 주는 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 P138

우리 사회에는 노인의 자살을 젊은이의 자살보다 덜 동정하는 유감스러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를 정도의 절망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처절한 것이다. - P384

더욱이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죽음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청년들은 다른 체험을 위해 삶에서 도피하는 자살을 하지만 노인들은 죽음을 최후의 상태로 본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청년들보다 자살에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적다. 노인들은 치명적인 자살방법을 택하며 사전에 자신의 의도를 알리는 일도 드물다. - P384

점점 자신의 감정들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대인에게 혈액검사나 뇌촬영을 통해 우울증 여부와 어떤 종류의 우울증인지를 밝혀낼 수 있다는 생각은 위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증은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정서로 통제력 안으로 들어왔다 벗어났다 하는 것이며,우울증이라는 병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어떤 것이 도를 지나친 것이지 외부의 것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다. - P587

이런식으로 선택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편리하다기보다는 현기증이 나는 일이다.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사고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사회는 집단적 불안감을 낳게 되며 내가 보기에는 바로 그런 이유로 산업화사회에 우울증이 많아진 것이다. - P602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듯 그것에서 언제,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우울증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 P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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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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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먹을 데가 있어야 책을 읽는 지인이 내가 읽는 책을 보며 왜 그 책을 읽느냐, 내용이 뭐냐 묻는다. 대체적으로 그가 원하는 답을 못할 때가 많은데 나는 책을 꼭 필요에 의해, 당장 써먹기 위해 읽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유를 굳이 말한다면 생각을 넓히고 싶어서라 해야하나. 삶이 피폐해질수록 나란 존재의 의미,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는 이유로 읽는 것 같다. 활자중독인것도 같고.
내가 확실히 답하지 못한 독서의 의미를 정희진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듯 하다.

모든 책은 각각의 위치에서 쓰인 것이지, 조감도는 없다. 따라서 책의 내용은 진리도 진실도 사실도 아니다. 아니, 사실이나 진실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독자(reader)는 사용자(user)가 되었다. 원래 지식은 쓰고 없어지는 소비재지, 간직해야 할 보물이 아니다. - P23

사용자는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할 뿐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지식을 몸에 구조화하는 데 사용하면 된다.
- P24

내가 생각하는 독후감의 의미는 단어 그 자체에 있다. 독후감, 말 그대로 읽은 후의 느낌과 생각과 감상이다. 책을 읽기 전후 변화한 나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없다면 독후감도 없다. 독서는 몸이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통과할수도 있고 몸이 덜 사용될 수도 있다. 터널이나 숲속, 지옥과 천국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딘가를 거친 후에 나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독후감은 그 변화 전후에 대한 자기 서사이다. 변화의 요인, 변화의 의미, 변화의 결과……. 그러니 독후의 감이다. 당연히, 내용요약으로 지면을 메울 필요가 없다. 독후에 자기 변화가 없다면?
왜 없었을까를 생각하고 그에 대해 쓰는 것도 좋은 독후감이 된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아무 느낌이 없을까도 좋은 질문이다. 자기 탐구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더 좋은 독후감이 될 확률이 높다. 자신의경험, 인식, 지식, 가치관, 감수성에 따라 여정의 깊이는 달라진다.
독후감의 수준은 여기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독후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책 자체라기보다도 독자의 처지와 조건이다. 어떤 이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책이 어떤 이에겐 지축을 흔드는 충격을 준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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