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한 노동에는 장애인을 위해 기도하거나 장애인이 나아지는것을 자신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포함된다. 대리인은 장애인의 욕구를 대변하기보다 강제적 정상성 compulsory normality의 시스템을 강화하고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임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이와 동시에장애인을 이러한 노력의 보상을 받게 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든다. 대리 치유의 논리는 장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장애인이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 P141

가족이 치유를 통해 변화해야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사회의 역할은 사라진다. 이런 주장은 그동안 공동체성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아시아‘ 문화가 자유주의적 개념인자율적인 자아와 개인성을 강조하는 ‘서구‘보다 종종높게 평가받는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시사하는바가 있다. 상호간의 동등한돌봄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상호 의존은 장애인의 ‘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반면 가족내의 신체 결합은 "장애화된 가족을 만들고, 이때 가족은 물질적으로생존을 도모하고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정상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때문에 장애인 구성원은 반드시 치유되어야만 하거나 가족에서 사라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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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다면 장애가 없는 아이를 낳는게 본인이나 아이에게 좋은것 아닐까. 어떤 문제제기를 하려고 하는건가 궁금하다.

<엄지공주>는 장애여성에게 가능한 재생산방식을 그리지만 동시에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맞춤 재생산기술을 통해 장애를 물려주는 재생산‘ 위험성‘을 ‘치유하도록‘ 요구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가능해진 모성은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또 장애를 갖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윤선아의 삶에 또 다른 과제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 P125

페미니스트 장애학자수전웬델은 태아 선별과 장애여부에 근거한 선별적인 임신중지가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일 수있지만 이런 사례가 상당히 빠르게 사회적 의무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누군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상황이 어머니에게 장애를 예방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는 증거로 여겨지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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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물」과 「캥거루의 조상이」에는 ‘팔자 고치기‘와 ‘인류의 개조‘라는 두가지 핵심적인 생각이 담겨 있다. 이 두 가지는 재생산을 하거나 하지않음을 통해 사회적 배척과 퇴행을 ‘치유‘하려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어머니는 예쁜 자녀를 낳아서 자신의 운명을 고치려고, 즉 자신의 외모와 관련된 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를 완화하려고 한다. 태어난 아기의 성별, 인종, 장애 여부와 같은 특성에 따라 어머니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 재생산유전 드라마의 핵심 주제다. 비장애 아이를 재생산함으로써 달성된 치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계 치유courtesy cure이다. 이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맺는 연관성을 통해 장애인 본인이 어떻게 인식되는지가 달라지는 경우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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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 뒤 키우고 싶지 않으면 국가에서 대신 키워주고, 아이를 키우고 싶으면 국가에서 키우는 아이들을 면접을 통해 입양할 수 있다. 입양될 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냥 사회에 나가야 하고 그건 낙인이 된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남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이상하다. 국가기관NC(nation's children)센터에서 부모가 될 사람들과 아동을 연결해주고 부모는 아동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게 특이한 점인데 언뜻 애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정말 애들쪽에 유리한 방식인걸까.

부모는 선택할 수 없다. 과학이 발달하면 자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이클 샌델교수의 책에서는 유전질환의 위험을 없애고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자식이나 예술적 능력이 뛰어난 자식을 맞춤형으로 낳을 수도 있다고 한다. 생명윤리때문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이런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나보다. 베르베르의 책에서도 태어나고 싶은 가정을 선택할 수 있다.

책에서는 인터뷰를 통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본인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줄거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택을 한다.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선택.

주인공은 다른 선택을 한다.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보고자 한다. 살다보면 선택지에는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의 부모님을 선택했을까.

우리 애들은 나를 엄마로 선택해줄까.

생각이 참 많아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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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에 사는 불편함이라 해야하나, 원치 않는 소란함에 기분이 언짢아질 때가 있다.

아랫집 아주머니의 랩하는 듯한 고성을 듣고 있으면 사람이 같이 산다는 것은 뭘까, 왜 매일 가족과 전쟁하듯 살아가는 걸까 등등 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조용하던 아랫집이 소란스러워지는 건 누군가 들어왔는지 현관 문 닫는 소리가 난 직후이다.

하루종일 세상살이에 시달리다가 집 문을 여는 순간 평화가 아닌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면, 매일 저 문을 여는 기분은 어떨까.

대화가 오고 가는 순간 소리를 지르는 아주머니의 사정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매일 같은 주제로 악을 쓴다 해도, 또 매일 다른 주제로 악을 쓴다 해도 난감한 일이다.

듣고자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소리로 짐작하건대 일단 아주머니는 대화가 오고, 가는 순간 소리를 높인다.

가끔씩은 물건을 집어던지는지 뭔가 바닥에 떨어지거나 깨지는 소리도 난다.

아주머니가 악을 쓸 때마다 오래 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의 장모가 막 잔소리를 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오페라 '마술피리'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로 연결되는 바로 그 부분.

연상작용이 그렇다는 거지 사실은 정말 괴롭다.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좀 뉘여볼까 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공포의 랩타임은 보통 10분 넘게 계속되는데 이게 경비실에 알릴만한 상황인가 하면 꼭 그런것도 아니어서 망설이다 보면 누군가가 집을 뛰쳐나가는지 거칠게 문 닫는 소리와 함께 진정되는 것이다.

나도 가족과 불화를 겪을 때가 있고, 가끔은 목소리 높여 싸움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 가족의 귀가 직후는 아니다.

 '세월호' 이후 아침에 나갔던 가족이 저녁에 문을 열고 들어온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거다.

"다녀올께" 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 가족이 다시는 그 문을 열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을때 남은 가족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학교에서, 일터에서 돌아온 가족이 기쁜 마음으로 자기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랫집 아주머니도 깨닫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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