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이에게 하염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일곱 여린 감수성에 새겨진 무늬는 세월 속에 더욱 또렷해져 나는 간혹 하염없다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아직도 나는 박선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이리저리 너무 많은 손을 거치는 아이가 잘 길러질 수 있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매번 바뀔 때마다 그는 은밀하게 비교해보게 되는데, 그것은 그를 교육하는 선생들에 대한 존경심을 떨어뜨리게 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에 대한 그들의 권위를 떨어뜨리게 만든다. 어른들 중에도 애보다분별이 없는 인간이 있다는 생각을 일단 그가 하게 되면, 나이에서 오는모든 권위는 추락하게 되며 교육은 망치게 된다. 아이는 그의 부모 외에는 윗사람을 알지 말아야 한다. 그의 부모가 없을 경우에는 그의 유모와선생 외의 윗사람을 알지 말아야 한다. 둘도 이미 과하다. 하지만 일의 분담은 불가피하다. 그 점을 고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를 교육하는 그 두 사람이 아이에 관하여 항상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그에게그 둘이 하나로 보이게 하는 수밖에 없다. - P99
장애가 치유나 정상성 획득 같은 의미와 연결되지 않고 장애 그 자체, 접히지 않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다 읽었지만 여전히 장애유전자를 지운 아이를 낳고자하는 ‘엄지공주‘의 노력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궁금하다. 방법이 있다면 장애가 없는 아이를 낳고 싶다는건 잘못이 아닌거 같은데. 그 반대의 경우를 비난하는건 아니다. 다만 내가 장애유전자가 있고 과학기술로 내 아이에게서 그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다면 고통이 수반된다고 해도 난 그렇게 그렇게 할 것 같고 그게 논쟁의 여지를 준다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었다.장애치유가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이 된다는 것,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거리를 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