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을 지키는 돌봄 - 근거 갖춘 돌봄으로 치매 완화
사토무라 요시코 지음, 최효옥 외 옮김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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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회복지법인 요양기관의 시설장이 쓴 돌봄과 관련된 글이다.
시설은 개별성을 지키기 어려운 곳인데 나름 개별 노인의 특성과 욕구에 따른 서비스를 협업을 통해 실천해 나가는게 대단해 보인다. 참고할 부분도 많고 해서 직원들과 같이 읽어가며 따라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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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 홀로 죽어도 외롭지 않다
우에노 치즈코 지음, 송경원 옮김 / 어른의시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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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싱글도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아닌 집에서 돌봄을 받고 죽을 수 있나?
글을 쓰기 위한 전제인데 결론은 가능하다.
조건이 있다. 돈과 네트워크.
집에서 간병을 받으려면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일본은 노인이 많아서 그런지 공공이나 민간 기관이 꽤 다양하다. (2016년 발행된 책이니 그동안 변화가 있겠지만)그런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하고 그 사이를 메꿔줄 사람-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이 필요하다. 가족은 마지막까지 지켜줄 보루이기도 하지만 관계가 뒤틀려 있으면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돈이 아까워 간병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니까)가족이 있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아이 한명을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노인 한 명을 돌보기 위해서도 마을은 필요하다. 하지만 노인은 아이들처럼 환영받지 못한다. 거의 대부분의 노인이 집이 아닌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한다. 내 집이 있어도 집에서 죽을 수가 없다. 책에서는 다양한 사람과 기관과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을 취재해서 무리한 연명치료없이 집에서 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러 변수가 있기때문에 반드시 그렇다는 건 아니다.결론은 집에서 죽고 싶은 노인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본인도 준비(돈,네트워크,본인의 의사표현)를 하고 사회도 공공시스템을 마련할 것.
늙는 것도 죽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아무도 피할 수 없으니 살아 있는동안 차근차근 준비하자는 것.
돈도 돈이지만 네트워크가 턱없이 부족한 나는 어쩌지? 죽는 것도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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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 신체장애뿐 아니라 정신장애, 지적장애를모두 가지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장애인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수 있다면 노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망이든 치매든 감정을느끼는 데에 장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이 팀의 누가 진심으로 나의
‘최선‘을 생각해주는지 나 자신은 알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열심히 궁리한 결과를 "우에노 씨, 우리가 다 같이 머리를 모아봤는데 이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아요. 어때요"라고 내게 물어봐줬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설령 그 의미를 모른대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하고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 P239

태어나고 죽는 일은 자신의 의지를 뛰어넘는다. 그것을 컨트롤하려는 마음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손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의 일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그리고 나를 비롯해 가족이 있는 사람도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많은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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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의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에는 사실 의료적개입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가족은 그저 지켜봐 주면 된다.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어서 가족들끼리 임종을 지키며 의사나 간호사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례도 있다. 의사가 필요한 때는 사망확인서를 적어야 할 때뿐이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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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시민사회에 관한 이해를 토대로 ‘시민의 자리에서돌본다‘는 명제를 이해해보자. 이것은 돌봄 관계를 독박과 고립에 처하지 않도록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당신은 돌봄을 통해서존중받아야 하는 시민이고, 나는 돌봄 필요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한 명의 시민이기에 나는 당신을 돌본다. 돌봄으로써 나는시민적 덕성을 구현한다. - P247

가족이 가족을 돌보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은 인류 역사에서 계속 전수되어왔다. 사람들은 가족과 돌봄을 연결하는 데 아무런 저항감을 갖지 않기 십상이다. 그리고 전수된 역사 속에서돌보는 가족은 언제나 여성이었다. 나이가 어려도 아주 많아도,
장애가 있어도, 여자 가족에게는 돌보는 일이 맡겨지고 그들은 또 이 일을 해낸다. 어디서 행해지든, 어떤 노동 조건이나 제도에서든 돌봄은 주로 여성이 ‘가족이 하듯‘ 하게 된다.
인류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이처럼 뿌리 깊고 두꺼운 층으로 이루어진 ‘가족 돌봄‘을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기 위해 시민 돌봄을 제안하는 것이다. 가족과 돌봄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핵심 관건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존재나 가치 자체를 부정하거나 가족 돌봄의 의미,
가능성, 가치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앞서 한 말을 반복해서 강조하면 가족이 돌봐도 ‘가족이니까‘ 돌보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기 위함이고, 한 명의 시민이 다른 시민을 존중하기에 ‘시민의 윤리의식으로‘ 돌보는 것이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시민됨, 시민으로 마주함, 동료로서 벗으로서 서로 어울리고 연대하는 태도와 입장에서 돌봄을 주고받는다는 생각자체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다. - P249

돌봄자들은 돌보면서 공감, 친절, 인내 그리고 타자를 이해하는 역량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할지언정 받고 싶지는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취약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반영일 테다. 돌봄의 자질을 끌어올리고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일에서 더욱 강조해야 하는 것은 돌봄을 제공할 용기보다 ‘돌봄 받을 용기‘다. 자신의 취약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이들 앞에 드러내는 건 취약계층을 향한 시혜적 시선에 저항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 P252

더 잘하고 싶고, 돌봄의 가치를 자기 일에 녹이고 싶어도그럴 수 없게끔 쥐어짜는 환경이 문제다. 자기 노동에서 돌봄의가치를 녹이는 것은 물론 모든 일하는 노동자는 돌봄을 수행할시간자원을 가져야 하는데, 노동 환경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들사이의 관계나 자기 일의 직업인이자 전문가로서의 윤리적 가치를 높이는 것은 경제적 차원에서 공공자원의 공유 수준에 달렸다. 국가가 인건비를 비롯한 예산을 쥐어짜면서, 최소한의 필요 인원도 충원해주지 않으면서, 돌봄에 필수적인 공적 공간도 마련하지 않으면서, 국가가 자원제공을 늘리는 대신에 해당 분야 종사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다. - P274

돌봄에 대입해 생각해보자. 돌봄 과정에서 학대가 발생했거나 심지어는 살인이 발생했다 할 때 그 가해자를 찾아내 처벌하면 인권 문제가 일단락될까? 왜 돌봄 상황이 그 지경이 됐는지 진단하고 해석하고 고칠 방안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인권에 기반한 접근이란 가해, 피해의 구도에 머물지 않는다. 구조적 원인을  찾아낸다.  돌봄  위기는  개인적 곤란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누구 에게 우연히 벌어진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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