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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존재한다 - 루르드에서 일어난 기적에 관한 최초의 증언
베르나데트 모리오 지음, 조연희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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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르드>를 보면 단 한 번의 루르드 방문으로 치유의 은사를 체험한 크리스틴을 향한 분노와 질투를 주체하지 못해 한 신자가 신부님께 힐난하듯 따져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숱한 세월 고통으로 신음하며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온 우리에겐 왜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나요? 주님께선 대체 뭘 하고 계신 거죠?” 신부님은 별다른 동요 없이 대답한다. “그분께선 자유 그 자체로 존재하십니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존재하는 동시에 사소한 순간마다 은총의 숨결로 살아계시는 분이지요.” 다소 선문답처럼 느껴지던 신부님의 대사를 시간 날 때마다 곱씹으며 신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내게 한 권의 책이 찾아왔다. 42년 째 좌골 신경통으로 투병하며 힘겹게 수도자의 길을 살아왔던 베르나테트 모리오 수녀가 루르드에서 체험한 치유의 은총이 고스란히 담긴 <기적은 존재한다>를 통해 나는 십 년이 넘도록 매달려왔던 신앙적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가난하지만 신앙심 깊은 부모님 곁에서 성장했던 저자는 루르드 발현의 목격자 베르나테트를 수호성인으로 정하고 11세의 나이로 수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성모님에 대한 각별한 공경과 사랑을 마음에 품고 떠난 길이었지만 그 여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28세 무렵 찾아온 좌골 신경통으로 그녀는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연명해야 했고 가족들의 급작스런 사망까지 마주하며 삶의 의욕이 꺾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큰 물고기 배 속에서 3일을 버텼던 요나처럼(p.21)그녀의 삶은 어둠에 갇혀 있었으나 오직 믿음만으로 살아왔던 그녀를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셨다. 한 줄기 빛으로 찾아온 기적, 루르드 순례를 통해 그녀는 치유의 은총을 경험했고 오랜 세월 그녀의 삶을 좀먹었던 병마를 떨쳐내게 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극복하고 세상과 마주한 요나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교구와 의료국의 철저한 검증 끝에 2018년 2월 11일 베르나테트 수녀는 70번째 기적의 치유자로 공식 인정받게 된다. 교구와 장상 수녀에게 강요받았던 침묵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오랫동안 곱씹었던 의문이 내 안에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매해 수많은 인파가 루르드 성지를 방문하고 있고, 치유를 향한 간절한 열망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바치고 있는데 어째서 기적은 그토록 가뭄에 콩 나듯 간헐적으로 발생하며, 하루하루 고통스런 삶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기도는 쉽게 묻히고 마는지, 결국 치유의 은총은 특별한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닌가? 라는 내 의문에 이 책은 명징한 답으로 응수한다. 기적에는 자격이 없으며 특권 의식의 상징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오랜 지병, 좌골 신경통은 하느님 계획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아픈 사람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공유하며 하느님의 은총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하느님은 결코 강자, 권력자, 슈퍼맨 같은 이를 선택하시지 않는다는 것.(p.199) 나자렛의 평범한 소녀였던 성모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를 잉태하셨듯, 은총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이며(p.199) 하느님 현존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떨쳐내라고, 한 줄기라도 빛은 존재하며(p.177) 우리의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고 그 안에서 일상의 신비를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걸, 우리 자체가 본질이라는 사실(p.178)매 순간 복기하며 살아갈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루르드 기적을 떠나 삶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더라도 소소한 일상에서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베르나데트 수녀는 말한다. 베르나데트 수녀처럼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지는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에 급급해 본질을 보지 못했던 나는 항상 하느님을 원망했고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내 삶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고립과 방황을 반복했다. 그분께서 내 안에 심어두신 씨앗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눈 먼 시간들을 돌아보며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삶을 성모님과 함께 묵상하고 걸어갈 것을...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요한 3,8) 바람의 방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분의 계획은 가끔 혼란과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섭리 앞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셨던 성모님처럼(p.200), 나도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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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고독한 사랑의 길
김진태 지음 / 생활성서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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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십자가의 길을 열심히 바치는 신자는 아닙니다. 어쩌다 사순 기간에 의무적으로 한, 두 번 바치는 걸 제외하면 자발적인 제 의지로 십자가의 길을 걸었던 적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습니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부모님 그늘에 안주하며 고생이란 걸 모르고 자란 탓에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 생기면 회피해버리고 홀로 일어서려는 의지가 없었던 제게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은 솔직히 고통과 절망을 자초하는 어리석음, 그 자체였습니다. 신앙의 본질에 닿기엔 너무 어리고 무지했기에 냉담의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었죠. 복음을 통독/필사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조금씩 하느님께 다가가는 은총을 누리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습니다. 그럴수록 자주 묵주를 들고 고통의 신비를 묵상하곤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아온 내가 과연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 그분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좀체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세속의 그릇된 욕망에 취해 휘청거렸던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과 죄책감만 하루하루 키워가던 제게 김진태 신부님의 <십자가의 길 고독한 사랑의 길>은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과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부활의 승리를 확신하듯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다소 투박한 느낌의 나무 십자가와 차분한 초록의 조화로 눈길을 끄는 표지와 어우러진 신부님의 묵상은 1처부터 14처까지 묵직한 영적 내공으로 가득했고, 여러 번 재독할 수 밖에 없는 힘으로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싶으나 십자가의 고통은 피하고 싶었던, 안일한 신앙 생활에 자족했던 제 마음을 신부님은 그대로 읽어내셨습니다.

제 잘난 종교심을 넘어 요구되는 고통과 죽음은 무섭습니다. 무서워서 싫습니다. 십자가는 제게 너무 벅찹니다. 저는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주님 십자가를 나눠 질 수도 없고, 또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주님을 따르고 싶지도 않습니다...(중략)...많은 신자들이 사는 것처럼 그냥 거기까지만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적당히 신자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적당히!’ 얼마나 멋진 삶의 덕목입니까? p.39

매사 서툴고 부족하며 그릇된 선택만을 반복했던 나날들, 지극히 불완전하며 실수만 연발했던 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어떻게든 눈앞의 고통을 피하려 발버둥 치며 제 몫의 십자가를 부정해왔기에, 십자가에 담긴 그분의 뜻과 사랑을 깨닫지 못했기에 제 삶과 신앙은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는 걸. 세상과 인간의 눈엔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그분의 십자가는 한결같은 인내와 사랑으로 저를 향하고 있다는 걸 신부님은 말씀하십니다.

무의미해 보이고 실패로만 보이는 십자가! 인간에게 실패로 보여도 하느님께는 실패나 실수가 없다. 실패로 보이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담겨 있고 하느님이 담겨 있으면, 그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은 하나도 의미 없는 일이 없다. p.66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의미를 찾기 위해(p.66) 숱한 방황과 상처로 얼룩졌던 세월을 더듬어 보며 저는 그분께서 저를 위해 열어놓으신 길을 걷기로 다짐합니다. 제 몫의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해 때론 넘어지고 예상치 못한 삶의 복병으로 고통으로 신음하는 날들이 오더라도 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그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노라고 맹세합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결국 부활의 영광과 맞닿아있으며 숱한 시행착오 속에 흘렸던 제 눈물은 그분 안에서 영롱한 별빛으로 반짝이며 저를 인도하는 이정표가 되줄테니까요.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길. 가슴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위해 마련해 놓은 길. p.25

그분이 준비하고 마련해 놓으신 사랑의 길을 저는 오늘도 걸어갑니다. 그분이 제 안에 심어놓으신 겨자씨가 은총과 사랑으로 충만한 한 그루 나무로 자라날 수 있도록 제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작지만 영성과 지혜 충만한 이 책을 만나게 해주신 생활성서 관계자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주님의 은총 가득한 부활 맞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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