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사람들은 오일러수를 푸는 구글의 독특한 (비밀 채용) 광고판을 보고 도전해 기회를 잡는 반면, "대부분 우리는 잠시 무언가에 호기심을 느껴 궁금해하지만 그때뿐, 바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하던 일에 집중하거나, 체내 에너지의 23퍼센트 이상을 먹어치우는 1.4킬로그램의 폭식꾼 ''에 과부화가 걸리지 않도록 뇌를 최소한으로만 쓰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다. 정재승은 10년간 진행해온 여러 뇌과학 강연 중 12편을 뽑아 구글의 그 광고판 효과가 되길 바라며 이 책을 냈다. 이 책은 '의사결정, 창의성, 놀이, 결핍, 습관, 미신, 혁신, 혁명 등 인간의 다양한 행동과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통해 인간을 다각도로 이해"하고자 하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시대,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 혁명' 같은 기술 문명의 변화에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렇기에 전방위로 공부하고 책을 펴냈던 움베르토 에코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 제목을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으로 지은 것은 퍽 어울린다.


 

의사 결정과 선택

호모 사피엔스는 경제적 이득, 사회적 관계, 과거의 경험, 주의 집중, 편견과 선입견, 도덕과 윤리 등 많은 요소를 두루 고려하고 판단하면서 최종 의사결정을 한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 데이터 스모그’, ‘선택의 패러독스에도 걸리며 생각은 물론 의사 결정도 어렵다. 패자부활전이 줄고 있는 사회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때문에도 그렇다.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화엄경핵심사상)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고 하듯이 캐럴 드웩 교수는 마인드셋’(mindset, 마음가짐)을 말한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의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반면, “고정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은 결과를 중시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해서 잘하는 일만 하려고한다. ‘햄릿 증후군’(빨리 결정을 내지리 못하고 오랫동안 고민하는 사람들의 증세, 1989년 에드리언 밀러와 앤드루 골드블랫 책에서 처음 등장)이 사회현상처럼 퍼져 있고, 상품 구매 결정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큐레이션’(curation)이 마케팅 패턴으로 등장했다. 햄릿 증후군은 선택의 폭이 늘어나서 생긴 결정장애보다는 고정 마인드셋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개념인데,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지나쳐 과순응적인 병적 상태로도 볼 수 있다. 단 무능해서 결정을 못하는 우유부단과 결정장애는 구분해야 한다.

오지 않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획하느라 시간을 소비하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기 보다 실행을 통해 배우기를 정재승은 강조한다. 마시멜로를 가장 높이 쌓는 대회인 마시멜로 챌린지가 있다. 마시멜로 탑 높이가 가장 높았던 건 분야 전문성을 갖춘 건축가와 엔지니어였고, 단일그룹으로는 창의적인 유치원생이었다. 이 실험에 상금이 걸릴 때 시야가 좁아져서(터널 비전 현상) 결과가 나빠지는 게 흥미롭다. 이 결과에서 우리는 인센티브에 너무 민감하지 말 것, 계획에 너무 매몰되지 말 것”,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좋은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은 합리적 의사결정자 가설(‘호모 이코노미쿠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는 가설(‘게임이론’)을 이제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충동구매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사람들은 게임이론가들의 예측과 달리 수학적으로는 기댓값이 작더라도 안정적인 현금을 더 선택한다. “인간의 뇌는 원시적인 상황에서 생존과 짝짓기에 필요한 선택을 하기 적절한 정도로 진화되어 왔고 이 성향은 여전히 남아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도 종종 비합리적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아주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는 의사결정’(말콤 글래드웰 블링크가설)이 유용할 때도 있고 직관을 믿지 않는 심사숙고가 필요할 때도 있어서 참 어렵다, 정재승은 시간 제한 “70퍼센트 확신이 들면 실행하라”(미국 해병대 ’70퍼센트 룰‘) 그렇게 해도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기는) 새로운 환경이 좋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한다.

 

 

결핍과 놀이 그리고 우리는 정말 새로운 걸 원할까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결핍을 희소성이라는 개념과 연계시켜 연구했지만, 정재승은 심리학적 관점에 더 주목한다.

결핍은 성취동기 부여’, ‘의욕’, ‘(집중력이 높아져 갑자기 효율이 늘어나고 결과가 좋아지는) 마감효과’, ‘삶의 성장 에너지같이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지나친 결핍은 생각을 좁게 만들고 자기 조절능력을 떨어뜨리며 타인과의 관계를 왜곡시키는부정적인 면도 있다. 결핍은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고 매진할 때 가장 빛난다. 그렇다고 살인, 사기 같은 걸 생각하면 곤란하다-_-);

 

놀이는 인간의 내재적 본능이며 심지어 뇌의 여러 영역을 발달시켜주는 창조적 행위인데 사회에서 이걸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 히피 정신을 강조한 실리콘밸리의 놀이 문화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놀이가 창의와 혁신에 도움이 된다만을 표면적으로 따라 하는 한국 기업과 사회 시스템을 정재승은 비판적으로 본다.

 

그 어렵다는 선택!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짜장면, 짬뽕, 둘 다 먹을 수 있는 짬짜면이 있어도 짬짜면을 선택하는 사람의 비율은 15퍼센트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행동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길 때 뇌의 두 영역이 특히 활발히 작동한다. ‘목표 지향 영역내가 지금 이걸 해서 월 얻을 수 있는지 그 목표를 생각한 다음에 가장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서 선택한다. ‘습관 뇌 영역일상적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할 때 목표의 결과 값을 높이기보다 인지적인 노력을 줄이려애쓴다. 우리 뇌는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 되도록 습관적인 선택을 통해 인지활동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게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우리는 에너지를 쓰면서 특별한 기쁨을 누리려고도 한다. 삶의 진폭을 넓히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뻔한 일상과 나쁜 에너지로 인생 타령하기 쉽다. “우리 뇌는 습관이라는 틀을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디자인돼 있지만, 새로운 목표를 즐겁게 추구하도록 디자인돼있다는 것도 잊지 말자.

 

믿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미신이란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이성적인 믿음을 말한다. 잔인한 마녀사냥, 빨간색 펜으로 이름을 쓰지 않기, 돼지꿈은 복권, 7은 행운의 숫자 등등 우리는 많은 미신에 빠져 살아간다. 여러 이유가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실수(‘사실은 아닌데, 맞다고 판단하는1종 오류-긍정 오류, ‘ 맞는 걸 아니라거나 있는데 없다고 판정하는2종오류-부정 오류)


1종 오류를 범하는 사람은 그냥 바보나 웃음거리, 혹은 겁쟁이가 되면 됩니다.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 신이나 외계인이나 전생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나중에 설령 그런 것들이 없다고 판명되더라도 치명적인 피해는 없습니다. 살면서 조롱거리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고 비과학적인 삶을 살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는 있어도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하지만 뭐든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위험에 빠질 수 있어요. 귀신이 없다고 믿었는데 나중에 있는 걸로 판명 나면 치명적일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제2종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1종 오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p172)

 

월급날 월급이 들어올 때보다 지금 강연장을 나가다 복도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 더 기쁜 것처럼,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질 겁니다. (중략)미신과 징크스는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되지만,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흥미진진한 그리고 견딜 만한 탐험인 것입니다.”(p179~180)

 

 

좋은 습관으로 창의성만들기

타인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읽는 방식에 있어 동양인과 서양인은 서로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주로 타인의 입을 보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반면, 동양 사람들은 주로 눈을 본다. 그래서 서양인과 동양인이 이모티콘을 쓰는 것도 차이가 난다. (스마일: 서양([:)], 동양[^^])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다를까?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고, 창의성은 지식과 절차를 모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 ‘1만 시간의 법칙’(말콤 글레드웰)이 말해 주듯이 창의적인 사람은 많은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고 중요한 기술은 훈련을 통해 학습하고 체화하면서 중요한 순간에 인지적 에너지를 발휘한다. 뇌과학으로 보면 창의성은 전전두엽 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창의적이라 함은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을 사용해서 일반적으로 얻게 되는 결과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을 말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꾸준한 운동, 충분한 수면, 독서, 여행,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극받는 것에 능동적인데, 일단 난 운동이 싫어ㅜㅜ;(동양인이라 눈으로 표현?)

 

 

미래를 위한 균형

요즘 실리콘밸리의 최대 관심사는 스마트폰 다음에 과연 어떤 테크놀로지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라고 한다. 테크놀로지는 일상몰입 기술’(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지향하고 있어, 정재승은 “‘아직까지 우리가 스마트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언제인지를 살펴본 다음에 그 시간에도 비트 세계로 접속하게 해줄 편리한 스마트기기를 만든다면, 그 기기는 모두가 하나씩 소유하는 새로운 혁명의 기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4차 산업혁명사물인터넷을 통해 아톰 세계(실제 시공간을 점유하는 현실 세계)를 고스란히 비트화해서 비트 세계와 일치시키면 이 빅데이터를 클라우드 시스템 안에 저장해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아톰 세계에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산업으로의 전환을 말한다.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의 일치(‘가상 물리 시스템’)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로서는 우버나 카카오택시가 가능하게 된 구글 어스(google earth) 프로젝트’, ‘포켓몬 고’, 자율 주행 자동차같이 교통 시스템에 기반해 있지만 제조업과 유통업으로 더 확산되면 본격적인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리되면 직업보다 작업이 더 중요해진다.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만이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디아밸)이 필요한 시대로 한층 더 다가가고 있다. “아날로그든 디지털로그든 대면접촉과 사회적 관계 맺기를 증진시키는 경험”, ‘몸과 뇌의 균형(바브밸)’도 중요시해야 한다. 창의성의 기원은 주로 몰입에서 설명돼 왔지만, “우리에겐 목적적인 사고를 하는 몰입의 순간과 목적에서 벗어난 비목적적 사고의 시간이 모두 필요하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하는 의지, 노력, 능력 이 모든 것이 만나야 혁명은 이루어진다.’

 

 

요즘은 기승전창업이 대세? & 성공에 대한 틀린 통념들

책 말미에 창업으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각각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 재정적인 궁핍이 직장을 계속 다니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높은 소득자가 창업에 더 전념할 가능성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창업에 전념한 사람들은 자신감을 가진 위험 감수자들이고, 직장을 계속 다니면서 준비한 사람들은 위험회피자들이었는데, 이 결정의 차이는 위험에 대한 개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의사결정 문제이지 성공과 실패 기준은 아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했느냐 아니냐보다, 창업자가 위험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가의 성향과 좀 더 관계가 깊다. 이 결과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위험 감수자들일 거라는 통념과 달랐다. 창업의 성패, 혁신은 창의적 발상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하느냐, 위험에 어떻게 대응(모호한 상황과 위험한 상황 구분)하느냐도 중요하다

확률을 계산할 수 없는 상황은 어떻게 행동하든 무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흥미로운 건,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상황을 굉장히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상황을 잘 알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게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심지어 성공 확률을 따져 보려고 하지도 않아요. 게다가 어떤 사람은 70퍼센트를 굉장히 높은 확률이라고 여기고 안전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런 결정을 담당하는 뇌 역역에서는 이성적인 판단과 감성적인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판단은 그 사람의 지능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순전히 그 사람의 성향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p322)

성공과 관련해 또 하나의 널리 알려진 틀린 통념이 있다. “보통 창의적인 사람은 20~30대에 걸출한 사회적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올리버 우베르티가 ‘1300년 이후 출생한 과학자, 시인, 작곡가, IT기업 창업자 등 뛰어난 인물 대상으로 그들이 언제 자신의 대표작을 발표했는지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20~30대에 일어난 성취가 40퍼센트, 40대 이후에 일어난 성취는 60퍼센트로 나타났다. 과학사회학자들이 지난 100년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노벨상 수상 업적을 처음 생각해낸 시기를 조사해보았더니 평균적으로 약 41세였고, 화학과 생물학은 좀 더 늦었다. 정재승은 자기 합리화가 삶을 견뎌내는 유용한 기제이기도 하지만 도전을 미루는 것을 나이탓으로는 돌리지 마시라고 웃음^^;

 

순응하지 않는 독창적 혁신가들’(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확산적 사고(창의적 아이디어를 낼 때 막 쏟아내는 성향)와 수렴적 사고(아이디어 중 의미 있는 것만 추려내 현실에 맞게 바꾸는 과정) 다 할 줄 알며, 집단지성을 잘 활용하고, 비판도 합리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솔직한 소통을 하는 사람들이다. 기업이 구성원에게 아이디어만 쥐어짜려는 노력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잘 검증해서 내보내는 프로세스를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정재승은 조언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우리 뇌는 생존에 유리한 의사결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리더가 되기보다 재빠른 추종자전략을 더 선호한다. 이건 참 많은 걸 시사하는데,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추종부터 끼리끼리 어울리는 관계 맺기 등등.

우리 뇌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회피적 성향과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이익을 추구하려는 보상적 욕구 사고를 원시 시대부터 가지고 이어져 왔다. 합리적이고 혁신적인 의사결정이 나 자신과 미래를 바꿀 건강한 실행력이 되어 줄 텐데, 그렇기에 우리는 삶에서 모두 탐험가다. 자유의지도 없는 인간이 진정 탐험가냐 하고 물을 수도 있어서 마지막 열두 번째 발자국에 실린 정재승의 답변을 인용하며 이 리뷰를 마친다.

 

 

정재승 : 여러분은 자유의지를 믿습니까? 자유의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의사결정을 했는데 결정 1초 전에 어떤 결정을 할지 뇌 활동만으로 알 수 있다면 자유의지가 있는 건가요? 만약 1초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면 어떨까요. 현재는 10초 전에 예측을 했거든요. 그러면 자유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도 가능해요. 여러분이 지나가는 길에 5만 원짜리 지폐를 놔둬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저는 여러분이 5만 원을 가져갈 거라고 예측하죠. 대개의 경우 5만 원을 가져가겠죠? 그래서 제가 굉장히 예측을 잘한 상황이 됐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자유의지가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은 난데없이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하는 즉흥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건 아니다, 상당히 많은 생물학적 뇌의 조각이 먼저 일어났고 그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뇌 활동을 조작하면 자유의지대로 했다고 생각하는 행동조차도 조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 모두가 자유의지대로 행동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상황으로 옮겨오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윤리적 질문과 맞물려 있습니다. 살인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생물학적 결함 때문에 한 것이라면 그 사람을 윤리적,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요. 따라서 이것은 과학자들이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소수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입니다.”(p369)

 

 

 

"인간의 지적 능력은 얼마나 많은 방법을 알고 있느냐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알 수 있다." ㅡ 존 홀트(John Holt)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22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라딘 블렌드 가을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알라딘 블렌드 중 가을블렌드는 늘 만족스러워요. 작년 가을 블렌드보다 바디감이 좀 더 묵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 책 안산 지 보름이 되어가니 금단 증세가 (;꒪ȏ꒪)

사고 싶은 새 책!
책과 함께 나랑 다닐 예쁜 백팩!
책 읽을 때 내 옆에서 차를 준비해줄 예쁜 주전자!

살려줘
살 거야
그래서 샀다-_-

일단 책만...

 

 

 

 

책 받으려고 출근도 안 하고 이제나저제나
(스케줄 바쁜 회사는 속만 탄다)


● 제프리 웨스트 『스케일 : 생물. 도시. 기업의 성장과 죽음에 관한 보편 법칙』

과학, 물리학, 경제경영, 사회과학, 환경학 이걸 모두 다루는 책이라니 안 볼 수 없징!
나 요즘 김영사 책 엄청 열심히 사주고 있는댕?
김영사 저 칭찬해줘야 됩니다-_-)!




● 마르쿠스 가브리엘 『나는 뇌가 아니다 :
칸트, 다윈, 프로이트, 신경과학을 횡단하는 21세기를 위한 정신 철학』

전작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리뷰도 썼고(http://blog.aladin.co.kr/durepos/9203111) 좋게 봤기에 이번 책은 어떨지 궁금했다.
뇌과학 책 많이 본 터라 좀 질려서 다른 관점들을 찾아보고 있다.



●『Axt 2018.9.10 no.020』

정영문 작가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처럼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도통 알 수 없어 친구가 되고 싶진 않지만(누가 해준대?) 그 독특함과 개성은 타의 추종 불허!

 

 


알라딘 원두
블렌드 가을이 나왔다~ 지난 시즌 거도 맘에 들어서 이번에도 잽싸게~

☆ 알라딘 굿즈 / 알라딘 9월 굿즈

본투리드 만년필 HEXA - 버건디 EF
나만 없어(ಥ﹏ಥ) 울고 있다가 이젠 나도ヽ(´∀`)ノ!

그림 그릴 땐 얇은 촉이 좋아서 EF~ 기대되는댕
플라스틱 느낌이 많이 나서 다른 분께는 블랙 사는 걸 더 추천/
필기감은 괜찮은 편인데 EF도 아주 얇은 느낌은 아님.


 

☆ 본투리드 문학티콘

혼자 놀기 달인의 단 30일 기한 장난감

 

 

 

 

 

● 나는 어떻게 유발 하라리 덕후가 되어 가는가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다 읽고 나니 아쉬워서 안 읽고 있었던 『극한의 경험』을 펼쳤다.

내가 읽은 어떤 전쟁 문화사 책과도 다르다. '극한의 경험'이 직설적으로 전쟁 경험을 말하는 게 아녔다.
그는 전쟁 경험으로 발생하는 정신의 역학에 집중한다. 그것은 의학적인 트라우마 같은 것이 아니다. 그의 여러 책에 깔려 있던 '인간 마음의 정동(情緖) - 고(苦) 살피기'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전쟁론』에서 인물을 세세하게 다뤘던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 뉘앙스를 느꼈는데 역시나 그에게서 가장 영향을 받았다고ㅎ

『극한의 경험』 다 읽고 아자 가트 『문명과 전쟁』도 마무리 완독해야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불교적 색깔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유발 하라리 책에 끌렸던 건가 싶기도 하구만.
이렇게 나는 유발 하라리 덕후가 되어가는가
(´-`) 멋진 사람이야

※ 諸行無常 : 일체의 덧없음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9-15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EF보다 F가 더 좋은듯! ㅋ

AgalmA 2018-09-15 17:38   좋아요 1 | URL
부드러움은 F가 더 좋을 듯. 블랙으로 F 하나 더 장만하고 싶은데 살 책 고르는 것도 일이에요ㅜㅜ

북프리쿠키 2018-09-15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름신 와서 책들이 도착했네요 ㅎ 하라리 good!

AgalmA 2018-09-15 17:38   좋아요 1 | URL
ㅎㅎ 하이파이브(^0^)/

북다이제스터 2018-09-15 17: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책 50권 정도 알라딘 중고에 팔고 왔습니다. 일종 가을맞이 방청소요. ㅎㅎ
그돈으로 멸치국수 사먹고 들어오는 길입니다. ㅋㅋ

AgalmA 2018-09-15 18:08   좋아요 1 | URL
저는 온라인 중고로 최근 10개 방출ㅎ
치우면 뭐 합니까. 들어오는 걸 막지 못하는데ㅎㅎ;
그래도 50권이면 방 공기가 산뜻할 거 같은데요^-^

꼬마요정 2018-09-15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지름신이 곳곳에 강림하시나 봅니다. ㅎㅎ 전쟁론.. 갖고 싶은데 이미 책은 주문했고.. 으으..

저도 버건디 ef 인데 검은색 할 걸.. 했어요. 금액만 되면 주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아쉬워요.

카알벨루치 2018-09-15 18:34   좋아요 1 | URL
전 EF 버건디, F는 블랙입니다 ㅎㅎ

AgalmA 2018-09-22 00:28   좋아요 0 | URL
전쟁론 너무 두꺼워서 완독하려면 ebook이 더 나으려나 고민 중입니다.
버건디 받고 나니 검정이 더 낫다 싶은 건 가지지 못해 그런 걸까 생각하게 되네요^^; 암만 생각해도 블랙이 덜 싼 티 났을 듯ㅎ;

카알벨루치님도 버건디 했다가 블랙 또 사신 수순 아닌지ㅎ

포스트잇 2018-09-15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요즘 굿즈 관심갖고 보는데요(그렇대도 대개는 선택하지 않습니다만..)
전 버건디 ER 선택했는데, 여러 리뷰에서 본것보다 더 굵어서..;;;;;;; 잉크도 종이 뒤로 보이는 편이라서 ;;;;;;;;;;;;


AgalmA 2018-09-22 00:25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만년필 선택하셨군요^^ 그렇죠. 생각보다 굵고 잉크가 보여서 얇은 종이에는 비추죠ㅎ;
생각보다 필기감이 좋으니 뭐 쌤쌤으로 생각하려고요ㅎㅎa

레삭매냐 2018-09-15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적 불매로 인한 금단현상... ㅋㅋㅋ

그리하야 저도 어제 왕창 질렀습니다. 요즘에는
왠지 신간이 눈에 띄는 책이 없어서 중고로만
6권을 질렀네요.

빔 벤더스의 사진집은 어제 바로 휘리릭 읽었고
지금은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마오쩌둥 평전을
읽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후배 녀석에게 책 12권 보내고 대신
반절을 데리고 왔네요. 획기적으로 처분해야
하는데...

AgalmA 2018-09-22 00:30   좋아요 0 | URL
저도 신간 끌리는 게 많이 없어서 굿즈 받고 싶어도 채우기가 어려운ㅎㅎ;;
빔 벤더스 사진집 좋죠^^
평전 저는 그리 재밌지가 않던데 마오쩌둥 평전이라니-0-b

어쩔 땐 우리집이 책 물류창고 같기도ㅎㅎ;;; 보내고 들이고 보내고 들이고ㅋ

책읽는나무 2018-09-16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외출 하려는데 현관앞에 툭 놓여져 있는 책 택배 받고 얼른 열어보았더니 이번에 선택한 본투리드 만년필부터 확인했어요.
저두 버건디 EF로 했는데 바빠서 미처 써보질 못했네요.
아마도 겉모양새가 만년필 같아 보이지 않아 제쳐 뒀었나 싶기도 하네요ㅋㅋ
빨리 써봐야겠군요.
아~~그리고 문학티콘이 저런거였어요????
나는 진짜 손에 쥐는 스티커인줄 알고~~왜 빠졌지? 그러고 있었어요.
지금 확인해봐야겠군요ㅋㅋ

AgalmA 2018-09-22 00:31   좋아요 0 | URL
겉모양은 그냥 흔한 볼펜 같은ㅎ; 유광이 아닌 무광이어서 그나마 덜 그렇게 보이기도.
문학티콘 줄 거면 그냥 줄 것이지 30일 한정은 뭐야 하고 있어요ㅎ;;

박균호 2018-09-16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이를 먹으니 (?) 꼭 필요하거나 좋아하는 물건이 아닌 잡다한 물건이 꽤 귀찮고 번잡스러워서 굿즈는 한번도 선택한 적이 없는데 이 귀여운 포스팅을 보고 나니까 살짝 호기심이 생기네요...굿즈..ㅎ

AgalmA 2018-09-22 00:34   좋아요 0 | URL
제가 굿즈팔이 각설이도 아닌데 흥을 드렸다니 이거 누가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네요^^;;
안 그래도 책 때문에 난리통인데 굿즈 때문에 더 번잡해지긴 했어요; 그래서 되도록 작은 것들만 고르려고 노력하지만....크흑. 알라딘이 생활연구손가 뭔가까지 차려 더 갈등하게 하네요ㅜㅜ
저도 굿즈 취향이란 게 있어서 무턱대고 다 좋다 주의는 아닙니다☞☜;;

sslmo 2018-09-20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주일 전에 올리신 글을 이제서야 보네요.^^

저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 후로는 굿즈 욕심을 줄이려고 하는데,
얼마전 책을 구입하면서 굿즈를 훑어보다가 기절하는줄 알았어요.
디자인이나 품질에는 적정한 가격이겠지만,
저런 굿즈로 책값보다 더한 마일리지를 차감하다니,
저라면 마일리지를 모아 책을 한권 더 사겠어요.
철푸덕~OTL

그나저나 추석 때 시골 가시나요?
가셔서 송편도 많이 드시고,
보름달 보고 소원도 빌고 오세요~^^



AgalmA 2018-09-22 00:36   좋아요 0 | URL
요즘은 정말 한 번 구매에 굿즈가 책 한 권 값 넘어가는 건 예사예요.

추석 때 먹을 생각에 싱글싱글~ㅎ
양철나무꾼님도 추석 맛나고 즐겁게 쇠세요*^^*/

2018-09-22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슬비 2018-09-29 2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문학 콘티 보내주세요~~~ ㅋㅋㅋㅋ
귀여운 콘티 구경하는건 민폐아니예요.ㅎㅎ

AgalmA 2018-10-03 22:45   좋아요 1 | URL
ㅋㅋ 곧 30일 만료인데 어서 보내야 겠네요ㅎ
 
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Philos Feminism 1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손희정 해제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모르고 관심 없어 하는 사람에게는 행동할 동기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한층 더 끌어올려 살피게 만드는 책. 80년대 미국과 2018년 한국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게 놀라운. 역사가 이리 반복되어서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Philos Feminism 1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손희정 해제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서 펼쳐지는 7~80년대 미국 여성과 남성의 노동계 대립을 보며 ‘러다이트 운동(노동자에 의한 기계 파괴 운동, 1811~1816)’이 생각났다. 지금은 인공지능과 4차 산업 혁명으로 인간 대 기계의 싸움 2차전을 맞이하고 있는데 우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점점 더 남녀노소 세대를 가리지 않는 각축전이 되어가고 있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러다이트 운동 때는 ‘착취’의 문제였다. 공장 식 기계 도입으로 노동자들은 편해지기보다 더 착취당했다. 그때의 기계 파괴 운동은 자본가들에 대한 항의이자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때 여성들은 어디 있었고 얼마나 되었나. 권리를 말할 수라도 있었나. 여성이 노동계에 본격 진출하게 되자 여성 대 남성의 권리 투쟁이 되었다. 남성들이 점유하는 일일 때 더욱 그랬다.


▒ “사회학자 바버리 레스킨의 직업 통합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의 직종에 가장 많이 진출한 10여 개의 직종(조판, 보험 청구 사정, 제약업 등)에서 여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일의 보수와 지위가 크게 하락해서 남성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가령 컴퓨터화가 진행되면서 남성 식자공들은 타이피스트로 좌천되었고, 드럭스토어 소매 체인점이 등장하면서 독립적인 약사들이 저소득 점원으로 전락했다. 은행 경영에서 여성의 진보에 대한 다른 연구들은 남성 일색이던 지점 경영자직이 여성들에게 넘어가게 된 건 대체로 그 일의 임금과 권력, 지위가 크게 하락해서 남성들이 그 일을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임을 밝히기도 했다.”
 
백인 남성이 노동력에서 50퍼센트 미만이 된 것도, 더 이상 새로운 제조업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도, 대학 등록자 중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것도, 여성의 50퍼센트 이상이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도, 기혼 여성의 50퍼센트 이상이 일자리를 가지게 된 것도, 일자리를 가진 여성 중 자녀가 없는 여성보다 있는 여성이 더 많은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공식적으로 가장을 남편으로 정의하지 않게 된 해가 1980년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

여성이 드물었던 도로 관리인 일을 한 다이앤 조이스는 주위 남성들의 조롱과 위협, 배척에 시달려야 했고, 위험한 안료를 다루던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에서 일했던 여성들은 그들을 내몰려는 공작인 걸 알면서도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불임 수술을 자발적으로 했다. 부양해야 할 가족들과 삶을 위해 스스로 여성성을 포기해야 했다! 정부나 사회는 당신들이 선택한 거 아니냐고 차갑게 응수했다.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나. 여권 신장을 말하며 포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은 판매업, 청소 서비스, 음식 준비, 비서, 행정 업무, 접수 업무, 간호사, 교사, 사회복지사등에 많이 분포해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의 호전적인 낙태 반대 운동, 역차별 소송, 강간과 성폭력, 직장 내 성차별, 남녀 급여 차별 등도 2018년 한국에서도 여전하다. “사회 진보와 변화 등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뜻하는『백래시』를 수전 팔루디가 1991년에 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계 뿐만이 아니다.


▒ ​혁명적인 태도에 가장 적대적인 건 상업적인 태도라는 수백 년 전 토크빌의 주장대로 소비 시장이 페미니즘으로 구사한 유인 상술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1929년 광고계의 한 저명한 남성은 5번가에서 여성 참정권을 예찬하는 의미에서 여성들에게 마음껏 담배를 피우라고 촉구하는 자유 행진Freedom March’을 조직했다. 아메리칸타바코사American Tabacco Company의 홍보 담당자였던 그는 선도적인 페미니스트에게 자유의 횃불을 뻑뻑 피워 대는 여성 대오의 선두에 서 달라고 설득했다. 좀 더 최근인 페미니즘 두 번째 물결 이후, 광고업체들은 샴푸에서부터 나일론 스타킹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건을 팔기 위해 여성의 혁명정신을 갖다 붙였다. 하네스*에서는 전미여성연맹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의 한 임원에게 해방적인팬티스타킹을 홍보해 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이런 전략은 이 책이 처음 출간될 즈음엔 일반적인 관습이 되어 버렸다. 얼마 가지 않아 나 역시 청바지나 하이힐, 심지어는 가슴 확대 수술 브랜드에 내 페미니스트 인장을 박아 달라는 상인들의 숱한 권유를 처리(하고 거절)하게 되었다.
이런 노골적인 광고는 오늘날 세련된 판매 전략으로 훨씬 더 발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들이 상업적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마치 세 개의 황금 사과처럼 우리 발밑을 굴러다닌다. 경제적 독립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구매력이라는 황금 사과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매력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카드 빚과, 터져 나갈 것 같은 옷장, 그리고 절대 끝나지 않는 허기를 안겨 줄 뿐이다. 허기가 절대 채워지지 않는 건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결정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황금 사과로 변신했다. 이 자기 계발은 주로 외모와 자부심, 그리고 젊음을 되찾으려는 헛수고에 바쳐진다. 그리고 공적 주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언론의 관심이라는 황금 사과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이 세상을 얼마나 많이 바꾸는지 보다 이 세상의 틀에 얼마나 멋지게 맞춰 사는지에 좌우되는 인기를 좇고 있다.” ▒

싱글 여성들에게는 노처녀”, 직장 여성들에게는 불임 여성”, “나쁜 엄마딱지를 붙이는 풍조와 여성들에게 도망치라고 조언하는 트렌드와 다시 돌아오라고 떠다미는 트렌드가 짝을이루며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
     
여성의 자리는 없고 폭력물만 난무하는 지금 한국 영화 산업이 80년대 할리우드 영화 산업과 똑같은 건 정말 신기할 정도다


 

​▒ “1980년대 말 이런 류의 많은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은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 더 이상 끝까지 노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똑같은 영화에서 함께 어울리지도 않는다. 반격 성향의 1950년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여성들은 결국 스크린에서 밀려남으로써 침묵당한다. 1980년대 말에 만개한 터프가이 영화에서 남성 주인공은 남자밖에 없는 전쟁 지역과 황량한 서부로 향한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전쟁 영화와 액션 영화의 폭력 수위가 올라가면서(프레데터, 다이하드, 다이하드 2, 로보캅, 로보캅 2, 리썰 웨폰, 폭풍의 질주, 토탈리콜) 여성들은 말 없고 부차적인 캐릭터로 축소되거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1980년대 말 갑자기 나타난 성인 남성과 남자아이의 몸이 뒤바뀌는 영화(18 어게인(1988), 하몬드가의 비밀Like Father, Like Son(1987), 그리고 가장 기억할 만한 영화로는 Big(1988))에서 남성들은 여성에게서 해방된 소년기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그리고 또 다른 집합의 영화에서 남성 캐릭터들은 그보다 훨씬 멀리 나아가 아버지의 부활이라는 전적으로 남성적인 환상에 빠져든다. 꿈의 구장Field Of Dreams(1989), 인디애나 존스 : 최후의 성전, 아버지의 황혼Dad(1989), 스타트렉 : 최후의 결전같은 영화에서는 어머니가 죽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고 (때로는 죽었다가 부활하기도 하는) 아버지와 아들만 남아서 영적인 유대를 복원한다.
미국 배우협회Screen Actors Guild1990년 할리우드의 여성 배역을 계산해 보고서 지난 2년간 여성의 수가 급락한 사실을 알게 된 건 별로 놀랍지도 않다. 배우협회의 보고에 따르면 이제 남성 배역이 여성 배역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아졌다.
남성들이 꿈을 꾸듯 남성성이 과장되게 흘러넘치는 환상의 나라로 떠나는 동안 아직 죽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은 훨씬 폭력적인 시련에 혹사당했다. 198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여성 중 한 명을 제외한 전부가 피해자 역을 맡았다.” ▒

의학계도 여성을 강간을 즐기는 사람, 정신 질환자, 아이 낳는 기계쯤으로 대접하는 건 예사였다.


 

▒ “1980년대 스타일 후기 빅토리아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마조히즘의 정신의학적 진단에 따르면, 마조히스트는 고통에서 성적인 쾌락을 얻는 사람들을 말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 말은 여성의 정신을 입맛에 맞게 규정하는 표현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 많은 여성들이 학대를 당하는 건 여성들이 학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중략)....정신분석 전문의인 캐런 호니Karen Horney1920년대에 처음으로 지적했듯, 소위 자연스러운여성 마조히즘은 많은 여성들이 순종적인 태도를 채택하게 유도하는 성차별주의적인 사회의 상벌 시스템이 낳은 부자연스러운 산물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정신 질환 진단 통계 편람은 표준적인 참고서라서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환자를 진단할 때 이 책에 의지했고, 연구자들은 정신 질환을 공부할 때 이 책을 사용했으며, 민간 및 공공 보험사들은 치료 보상비를 산정할 때 이 책이 반드시 있어야 했고, 법원에서 정신이상 참작 탄원과 자녀 양육권 판결을 할 때 이 책을 참고해야 했다.
그해에는 테레사 베르나르데스Teresa Bernardez가 미국정신의학회 여성위원회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위원장의 역할은 여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진단 제안 일체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진단의 기초를 마련한 패널들은 굳이 베르나르데스나 다른 여성위원회 위원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미국정신의학회가 이 진단을 표결에 부치기 직전쯤 베르나르데스는 우연히 이 소식을 멀리 사는 친구에게서 듣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캐 들어간 그녀는 학회 패널들이 여성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단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추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이 세 가지 모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 가지 중에서 두 번째는 월경 전 불쾌 장애라는 진단이었다. 월경 전 증후군이 단순한 내분비 계통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 질환이라는 주장이 그렇게 오랫동안 망신을 당했는데도 다시 고개를 쳐든 것이다. 세 번째 진단은 성도착적 강간 장애였다. 학회 패널들은 이 진단명을 강간이나 성희롱에 대한 환상을 꾸준히 표출하고 이런 충동을 반복적으로 실천하거나 이런 충동 때문에 눈에 띄게 힘들어하는모든 남성(혹은 이론적으로는 여성)에게 적용할 생각이었다. 이것이 승인될 경우, 워낙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돈 많은 변호사만 고용하면 강간범이나 아동 추행범도 손쉽게 정신이상 참작 탄원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점이 워낙 자명해서 미국 법무부 장관실은 이미 반대 의사를 밝힌 적도 있었다.”
 
낙태 합법화 판결에 대한 한결같은 대중적 지지는 미국사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봐야 이해가 가능하다. 이 역사적인 판결은 그저 원상태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19세기 말 마지막 50년 전까지만 해도 (식민지 시대부터 어떤 형식으로든 시술이 이루어지던) 낙태권은 한 번도 제한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만 해도 태동’(착상 후 7개월) 전에 하는 임신중절에는 도덕적 오명이 씌워지지도 않았다. 산아제한 역사가 크리스틴 루커Kristin Luker 말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비방의 대상이 된 1973년 대법원 낙태 판결 Roe 웨이드Wade’ 법적인 낙태 규정을 3개월 단위로 구분하지만, 이는 미국인 대부분의 생각보다는 낙태에 대한 전통적인 처우와 훨씬 더 맞닿아 있었다.
1800년 낙태는 모든 주에서 합법이었고, 낙태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중립적이었다. 낙태가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건 여성운동이 등장한 19세기 중반 이후부터였다. 여성들이 (아내가 건강상의 이유로 성관계를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자발적인 모성같은 간단한 가족계획 방법을 요구하고 나서자 의사, 입법가, 언론인, 성직자 들은 모든 형태의 산아제한에 반대하는 훨씬 극단적인 방법으로 반격에 나섰다.” 
    
태아 보호 정책들은 건강을 의식하는 기업들의 진보적인 노력으로 포장되었지만, 20세기 초에 확산된 후진적인 노동 보호 정책들과 공통점이 더 많았다. 당시의 노동 보호 정책들은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의 형태와 노동시간, 수당을 제한했고, 이로써 여성들을 최소한 6만 개의 일자리에서 배제했다. 이 정책을 지지했던 사람들 역시 여성들이 앞으로 가지게 될 아이들에 대해 자애로운 관심이 있는 척했지만, 이들 중 많은 수는 남성 일색의 영역을 보호하려는 남성 노조 지도자들과 입법가들이었다. 담배 제조 국제 노동조합 Cigarmakers International Union 1879년 연례 보고서에서 우린 여성을 일터에서 끌어낼 수는 없지만, 공장법을 통해 여성의 일일 노동 할당량을 제한할 수는 있다 노골적으로 밝혔다.” ▒

태아 보호 정책을 우선한 병원 당국과 법원이 카더 앤절라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제왕절개한 일화가 나온다. 태아와 앤절라는 다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NBC의 드라마 에피소드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산모는 죽고 태아는 살아서 판사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결말이어서 유족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섬뜩하다.
 
책 읽는 내내 이 현실의 참상에 침울했는데 수전 팔루디는 우리에게 반격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걸 잊지 않았다.


 

▒ “여성들에게 논쟁의 힘으로 남성들을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행실이나 외모로 남성들을 기쁘게 해 주라는 조언이 지배적이던 반격의 시대에도 남성들이 정서적 주도권을 모두 쥐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대체로 망각했다. 여성들에게 남성이 필요한 만큼, 남성들 역시 여성이 필요하다. 남성과 여성 간의 유대는 끊어질 수 있고, 여성을 억압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서로에게 이로운 성장과 변화를 촉발할 수도 있다.
반격이 지배하던 1980년대에 여성들이 대단히 적극적이고 당당한 전략을 구사했던 얼마 안 되는 사례에서 이들은 결국 공적인 분위기를 바꿔 놓았고 자신들의 언어로 의제를 설정했으며 많은 개별 남성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1989년 다시 활기를 찾은 낙태 선택권 옹호 운동이 낙태를 둘러싼 정치를 180도로 바꿔 놓은 사건이 여기에 부합하는 교과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198949일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옹호하는 여성 50만 명이 국회의사당에서 행진을 하며 워싱턴 D. C. 최대의 시위를 벌였고 낙태 클리닉 문에서 낙태 반대 시위대와 맞붙었다. 1960년대 반전 행진에 참여했던 여성 대학생보다 낙태 선택권 옹호 시위에 참여한 여성 대학생이 더 많았다. 이 엄청나게 많은 시위대는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여성의 출산권을 완전히 묵사발로 만들어 놓을 것 같았던 낙태 반대 운동을 수적으로 압도해 버렸다." ▒

최근에도 이러한 반격의 힘을 보여준 사례가 있었다. 20183월 스페인에서는 여성의 날에 여성 노동자 530만 명이 총파업으로 뭉쳤다. 실리 없던 이목 끌기가 아닌 원하지 않는 세상을 멈출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아파트 발코니마다 국기처럼 앞치마가 내걸려 있던 게 장관이었다. 언론에서는 이걸 크게 부각하지 않았지만 더 나은, 모두를 위한 세상을 위해 이런 반격,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9-13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9-13 13:1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풍습이 좋아야 그 의미가 살 텐데 악습 같아지는 게 많아져서 참.
명절 때 가족들이 만나 싸우고 범죄가 일어나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세상의 온갖 편견과 각박이 그림자처럼 사람들에게 제게 드리워져 있는 걸 느낄 때마다 몸서리쳐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