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모으는 재미와 함께 살아있는 동안 실컷 읽을 생각만 했다. 벗의 죽음 뒤 남은 가족이 책 처리에 애먹는 거 보니 나는 참 이기적으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했다. 죽고 난 뒷일은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사무치게 느꼈다. 나에 대한 최대한의 책임.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선 최선을 원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최소한도 준비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생각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중고도서 DB에 올려 처리하기 쉽게 만들어 놔야지 했다. 벗이 내게 주고 간 교훈이 많다.
가지고 있는 동안 다 읽으면 원이 없겠네...
● 극복의 노력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이 책 다음으로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 책 중 제일 손이 안 가기도 했지만 정말 필요할 때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하고도 있었다. 이성적으로 이런 책들을 읽을 때는 정보적인 것만 파악하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물론 나는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보려 하기 때문에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을 찾아 읽으면서도 마음의 공허를 달래기 위해서도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찾는다. 매 순간 양가적이다. 하루 종일 자고 또 자면서 나를 달래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려 일을 하러 나가고 책을 읽는다. 벗이 내게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은 것들을 내내 곱씹으며 '왜 그랬을까',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랬으니까' 같은 수많은 자문자답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내게 더 이상 기댈 수 없었을지도 몰라.' 내가 타인에게 그렇듯이. '내가 그때 이랬다면 저랬다면' 자책의 순간이 오면 입술을 깨물고 지나가길 기다린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이랬다면 저랬다면' 원망의 순간이 오면 얼른 다른 것에 주의를 돌린다. 아무리 해도 다가갈 수 없는 심연에서 발이 묶이고 그러다 보면 이렇듯 멍한 채 일어나 아침을 맞는다. 하루라도 나라는 존재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하는 이해하고 이해받아야 하는 우리는 결코 홀로 자신이 되지 않는다. 섬은 바다가 있기에 다른 육지들이 있기에 섬이다. 섬 속에서 섬을 알게 되듯이 고통은 고통을 통해서야 만 발견할 수 있다. 많이 겪었다 생각했는데 苦 앞에 나는 늘 이리 어린아이다.
※ 저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다는 신호로 이 글을 올렸습니다. 감사드리고 여러분 각자의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힘을 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