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로벨리가 친절한 대중 과학서에 힘을 쏟고 있듯 제임스 M. 러셀는 쉽고 친절한 대중 인문서에 힘을 쏟고 있다. 깊은 내용은 아니지만 알쓸신잡 같은 쏠쏠한 재미와 정보가 있다. 2~3페이지로 짧고 쉽게 전달하는 인문학 기초상식 책이라고나 할까. 내가 좋아하는 사물들 얘기 가득~ 공부 열심히 하려고 알람 시계를 발명한 플라톤 얘기도 재밌다. 기원전 4세기 일이니 알람 시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영국 사람인 것도 그렇고 케임브리지 철학 전공인 것도 그렇고 버트런드 러셀 가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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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종이책으로 다시 재독.
읽을수록 씹는 맛이 나는 책.

"시간은 공간 기하학과 함께 구성된 복합적인 기하학의 일부가 된다. 아인슈타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 개념과 뉴턴의 시간 개념을 합성한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갑자기 머리에 섬광이 번쩍이듯 아인슈타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 두 사람이 다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단순한 사물 외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뉴턴의 예상은 옳았다. 뉴턴의 참된 수학적 시간은 실제로 존재한다. 탄력 있는 종이, 휜 시공간, 중력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시간이 사물과 관련이 없으며 규칙적으로 꾸준히, 그 어떤 것과 아무 상관없이 흐른다는 추측은 틀렸다."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의 기본 방정식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세부적인 것들은 간과하고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우발적인 양상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의 과거는 신기하게도 ‘특별한’ 상태에 있었다. ‘현재’라는 개념은 효력이 없다"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사물’의 전형은 돌이다. 내일 돌이 어디 있을 것인지 궁금해할 수 있다. 반면 입맞춤은 ‘사건’이다. 내일 입맞춤이라는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날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은 돌이 아닌 이런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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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16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공간에 관한 설명이 기존 설명과는 다르게 새롭게 보여집니다.^^:)

AgalmA 2019-10-16 01:08   좋아요 1 | URL
cyrus님의 리처드 뮬러 <나우 시간의 물리학> (사놓고 저는 아직 다 읽지를 못해서ㅎㅎ;;) 리뷰 보니 로벨리의 이 책과 비슷한 내용이 많더군요.
겨울호랑이님도 재밌어하실 내용일 거예요^^
 
[eBook] 진화의 배신 - 착한 유전자는 어째서 살인 기계로 변했는가
리 골드먼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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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의학 전문의라 그런지 기존의 진화론 서술과 조금 다르다. 저자는 인류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을 주목했는데, 구체적 신진대사 과정과 함께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설명한다. 이론보다 몸의 기능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 흥미로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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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 생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형질에 초점을 맞춘다. 이 네 가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식욕과 열량 축적의 본능
초기 인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배불리 먹는 것으로 굶주림에 대비했다. 오늘날 미국인의 35퍼센트가 비만이며 그와 동시에 당뇨병, 심장 질환, 심지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몸에 필요한 것보다 더 먹는 이 타고난 성향 때문이다.

물과 소금에 대한 욕구
우리 조상들은 치명적인 탈수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특히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 탈수 위험이 커지므로 몸은 물과 소금을 보존하고, 이 두 가지를 항상 더 원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이제 대다수 미국인이 필요한 양보다 많은 소금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처럼 과도하게 섭취한 소금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물과 소금 보존 호르몬과 상승 작용을 일으켜서 심장 질환, 뇌졸중, 신장 질환의 위험을 눈에 띄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싸울 때, 도망칠 때, 복종할 때를 판단하는 본능
선사 시대 사회에서는 많게는 사망자의 25퍼센트가 폭력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따라서 늘 살해당할 가능성을 염려하며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안전해지면서 폭력 사태는 줄어들었다. 현대 미국에서는 살인이나 동물의 공격보다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왜일까? 지나치게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우리의 오래된 성향이 불안증,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자살까지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출혈로 죽지 않도록 피를 응고시키는 능력
외상과 출산으로 인한 출혈의 위험도가 높았던 초기 인류는 피를 재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응고시킬 필요가 있었다. 현대에는 반창고부터 수혈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을 확률보다 오히려 혈액 응고로 사망할 확률이 더 커졌다. 대부분의 심장 마비와 뇌졸중—현대 사회의 주요 사망 원인—은 심장과 뇌의 동맥을 따라 흐르는 피를 혈전(응고된 혈액 덩어리)이 막아서 생기는 증상이다. 거기에 더해 옛 조상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긴 자동차 여행과 비행기 여행 또한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혈전을 만들어 낸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이 네 가지 유전 형질의 도움으로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사망 요인인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의 위험을 피하고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놀랍게도 바로 이 네 형질이 미국 내 사망자 40퍼센트의 목숨을 앗아가는 요인으로 자리 잡았으며, 주요 사망 원인 여덟 가지 중 네 가지에 이름을 올렸다. 그 결과 이 유전 형질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보다 죽는 사람의 숫자가 무려 여섯 배나 많아졌다. 인류의 생존을 도왔을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장악하는 근원이 된 바로 그 특징들이 왜 이제는 이토록 비생산적이 되었을까?
이러한 역설이야말로 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왜 피부색이 옅어졌을까
그런데 두 가지 조건이 변화했다. 첫째, 아프리카에서 나와 더 추운 지역으로 이주한 우리 조상들은 옷을 더 입어야 했고, 따라서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 면적이 극적으로 줄어 간에서 만들어진 비타민 D 전구체를 활성화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 둘째, 1만 년 전쯤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상들의 식사에서 탄수화물 비율이 높아지고 비타민 D 섭취가 줄어들어, 이미 노출 수준이 훨씬 줄어든 햇빛에 비타민 D 제조를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13 그들은 이 사태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무작위로 일어난 돌연변이 중, 피부에서 만들어지는 멜라닌의 양을 줄여 피부색이 더 옅어지게 하는 유전자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 덕분에 같은 양의 햇빛에 노출되어도 더 많은 자외선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로써 간에서 만들어진 비타민 D 전구체를 더 잘 활성화할 수 있게 되었다.
비타민 D와 뼈의 발달이 그토록 넓은 지역에서 피부색을 바꿀 정도로 생존에 중요했을까?

산업 혁명이 시작되어 세상을 극적으로 바꾸기 시작한 19세기 초 이후의 급격한 변화와 그 이전 수천 년에 걸친 느린 변화를 한번 비교해 보자. 새로운 기계, 전기, 가솔린 엔진 운송 수단, 현대식 가전 제품 그리고 컴퓨터는 10세대도 안 되는 기간에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비록 가뭄과 기아가 지구 곳곳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벨리 같은 사막을 정원처럼 아름다운 지역으로 변화시켰다. 식량 공급이 점점 늘어나 1800년에 10억 명이던 전 세계 인구가 1950년 25억 명, 2000년 60억 명, 2011년에는 70억 명이 되었다. 영양과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역사상 내내 50퍼센트(말리의 일부 외딴 곳에서는 2000년까지 이 비율이 지속되었다) 근처를 맴돌던 높은 아동 사망률이 1990년에는 세계 평균 9퍼센트로 떨어졌고, 2013년에는 5퍼센트 미만이 되었다.

우리 유전자는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 속도와 발맞춰 돌연변이를 할 수 없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되어 버린 병들이 우리가 자손을 퍼뜨린 다음에 우리 몸을 공격하고 그 아이들도 다시 똑같은 일을 겪게 되는 한, 자연 선택 과정은 그런 환경 변화에 유리한 유전자를 선택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 결과 인류라는 생물 종을 그토록 효과적으로 잘 보호했던 생존 형질들은 이제 많은 경우 과잉 보호적이고 때로는 명백히 해롭기까지 한 요인이 되고 말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음식과 소금과 물이 너무 흔하고, 폭력 사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줄고, 피를 너무 흘려 죽는 일 또한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경구를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는 인류 생존이라는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적응이라는 전투에서는 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일련의 만성 질환을 앓게 된다. 어떤 병은 단순히 너무 오래 살아서 생기고, 어떤 병은 한때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중요했던 형질들의 부작용으로 생긴다.

우리는 아포크린과 에크린이라는 두 가지 땀샘을 가지고 있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있는 아포크린 땀샘은 진하고 반투명인 톡 쏘는 냄새가 나는 땀을 모낭에서 분비한다. 땀을 좋아하는 박테리아가 이 부위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아포크린 땀샘에서는 체온을 상당히 낮출 정도로 충분한 양의 땀을 분비하지 못한다.
반면에 우리는 몸 전체에 약 200만 개의 에크린 땀샘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 발바닥, 머리에 특히 많이 모여 있는 이 땀샘은 육체 노동자의 경우 평소 1시간에 0.5쿼트(약 0.47리터)의 묽은 땀을 분비한다. 그러나 섭씨 35도에서 마라톤이나 축구 경기 같은 격렬한 운동을 계속할 경우 1.5~2쿼트(약 1.4~1.9리터) 정도의 땀을 1시간 만에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열대 지방에서 완전히 그 환경에 적응해 사는 사람은 1시간에 자그마치 3.5쿼트(약 3.3리터) 정도의 땀을 분비한다.
다른 포유류는 어떨까? 대부분의 비영장류 포유류는 주둥이와 발바닥 부위에 소수의 에크린 땀샘을 가지고 있다. 이 동물들이 열을 식히는 데 가장 많이 의존하는 방법은 헐떡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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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전작품이 그럴테지만 이 소설도 프로이트가 분석하기 좋아했을 작품. 꿈속 전이 같은 장면 전개, 성적 몽상 등. 이것과 더불어 만나는 여성마다 연애 분위기가 되는 것은 홍상수 영화와도 매우 흡사하다. 지금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카프카의 이런 플롯은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파혼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여성관에 따른 여성 캐릭터는 전근대적인 게 흠이다.

기묘함이 진지한 상황과 함께 인물의 우스꽝스러움을 유발하는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참 유사한데 결과적으로는 부조리한 우화가 되는 게 카프카의 변별점이자 주 특징.




K는 홀의 끝 쪽에서 들려오는 째지는 듯한 외침 소리에 방해를 받았다. 그는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손을 눈 위쪽에 갖다 댔다. 햇빛에 반사된 공기가 희뿌옇게 되어 눈이 부셨기 때문이다. 문제의 인물은 바로 그 세탁부였다. K는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는 순간 그녀가 소란의 장본인이리라 짐작했다. 이번 일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지 아닌지 여부는 분명치 않았다. K는 다만 한 남자가 그녀를 문 쪽 구석으로 끌고 가 끌어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비명을 지른 것은 그 여자가 아니라 그 남자였다. 남자는 입을 헤벌린 채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 주위로 작은 원을 그리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근처의 회랑에 있던 사람들은 K가 조성했던 심각한 회합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깨진 것을 몹시 기뻐하는 것 같았다. K는 당장 그리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 일었다.

두 사람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K는 여전히 문간에 서 있었다. 여자가 그를 속였다고, 그것도 예심 판사에게 가봐야 한다는 말로 속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심 판사가 다락방 같은 곳에 앉아서 기다릴 리는 없었다. 아무리 오래 노려본들 계단이 그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때 K는 다락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조그만 표찰이 붙어 있는 것을 알아채고 얼른 그리로 가서 어린애처럼 졸렬한 글씨체로 쓰여 있는 글을 읽어 보았다. 〈법원 사무처 계단〉. 이 셋집 다락 층에 법원 사무처가 있단 말인가?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시설은 아니었다. 그리고 피고의 입장에서 볼 때 법원이 가난하여 극빈자들이 쓰레기 같은 넝마를 버리는 이런 곳에 사무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이튿날이 되어도 K의 머릿속에서는 감시원들 생각이 떠날 줄 몰랐다. 일을 하려고 자리에 앉아 있어도 도무지 집중이 안 되어서 일을 끝내기 위해 어제보다 조금 더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귀가 중 다시 그 창고 같은 방 앞에 이르자 그는 습관처럼 문을 열어 보았다. 그가 예상했던 캄캄한 어둠 대신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자 당혹스러웠다. 모든 것이 어제저녁 그가 문을 열었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문가 바로 앞쪽에 있던 서식 용지들과 잉크병들, 회초리를 손에 든 태형 형리, 옷을 완벽하게 차려 입고 있는 감시원들, 선반 위의 촛불. 그리고 감시원들은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K는 얼른 문을 홱 닫고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그렇게 하면 문이 더 굳게 닫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거의 울상이 되어 사환들에게로 달려갔다.

「당신은 이 법정과 이 법정에서 자행되는 사기 수법을 꿰고 있군요.」 K가 말했다. 그러면서 자꾸만 밀착해 오는 그녀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니 참 좋아요.」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서 편하게 몸을 고쳐 앉으며 치마를 펴고 블라우스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러더니 양손을 그의 목에 두르고서 매달리며 몸을 뒤로 젖혀 오래도록 그를 쳐다보았다. 「만일 내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를 못 도와주나요?」 K가 떠보는 투로 물었다. 여자 조력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꼴이군. 스스로 놀라며 그는 생각했다. 처음엔 뷔르스트너 양을, 그다음엔 정리의 마누라를 그리고 이제는 이 조그만 여자 가정부를 말이야. 이 여자는 말할 수 없이 나를 원하는 것 같군. 원래부터 자기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꼴 좀 봐! 「네.」 레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당신은 내 도움을 원치 않는 것 같군요. 관심조차 없어요. 당신은 정말 고집불통에다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아요.」 잠시 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애인은 있나요?」 「없소.」 K가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 사실은 있어요.」 K가 말했다. 「없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사진까지 갖고 다녀요.」 그녀가 자꾸만 졸라 대자 그는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서 몸을 구부린 채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스냅 사진이었다. 뱅뱅 도는 춤을 추던 끝자락에 찍은 엘자의 사진이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보면 법원에서 인정한 변호사는 없는 셈이고, 법정에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볼 때 모두 엉터리 변호사일 뿐이다. 이런 사실은 변호사라는 직업 전체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K가 앞으로 법원 사무국에 가게 되면 사실 확인을 해볼 겸 변호사실에 한번 들러 보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아마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들에게 배정된 좁고 천장이 낮은 방 자체가 이미 법원이 변호사들에 대해 갖고 있는 경멸의 빛을 보여 준다. 그 방엔 천장에 나 있는 작은 들창 하나를 통해서만 빛이 들어온다. 그 들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려면 바로 들창 앞쪽에 있는 굴뚝 때문에 연기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고 얼굴까지 그을리는데 그마저도 천장에 너무 높이 달려 있어 먼저 동료 하나를 구해서 그의 등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그 방의 마룻바닥에는 ─ 이런 형편없는 상황을 알려 주는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면 ─ 벌써 1년이 넘게 구멍이 하나 나 있다. 사람 몸 하나가 빠질 정도는 아니지만 다리 정도는 빠지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이다. 변호사실은 다락의 2층에 있어서 누군가의 다리가 빠지면 그 사람의 다리가 다락방 1층의 천장에 달랑달랑 매달린다. 그곳은 바로 의뢰인들이 기다리는 복도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변호사들 사이에서 치욕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행정 관청 쪽에 불평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그렇다고 변호사들이 자기 돈으로 변호사실의 뭔가를 변경하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변호사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되도록 변호사의 개입을 배제하고, 피고가 모든 것을 직접 떠맡도록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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