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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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읽었다. 으레 그렇듯이 첫 독서에서와는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놓친 것들, 내 관심을 덜 끌었던 것들이 이것 이었구나 겪게 되는 독서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이다

 

첫 독서에서는 “(19) 불안과 설렘, 그 둘은 늘 함께한다. 불안을 즐기지 못하면 여행도 즐길 수 없다.” 문장이 좋았지만 두 번째 독서에서는 그 위에 있는 먼 곳으로의 여행은 내게 익숙한 모든 것을 무로 만든다.”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20~22) 선택은 최악의 여건 중에 내가 견딜 수 있는 경우를 고르는 것이라고, “여행도 삶도 결국 선택이 포개진 결과이자, 그것이 옳았다는 것을 정당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을 세웠는지와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라고 비장하게 말했지만, 독서 여행은 좀 다르다. 앎에 대한 희구와 증명에 매달리는 이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발견하는 걸 그저 즐..는 행위일 때도 많다. 그래서 책을 읽는 걸 우리는 여행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다른 사람과 같은 책을 읽어도 우리는 자신만의 특..한 여행이고 싶어 한다. 책은 충분히 그렇게 해주었다.

 

책 초반엔 문장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이. 꽉 찬 계획과 각오로 여행을 떠나듯이 말이다. 그러나 여행의 우여곡절 속에 지쳐가다 어느 순간 낯선 이국이 문득 친숙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풀어지듯이 그의 글도 점점 그러해진다. 바르셀로나에서 토마토소스를 빵에 바른 판 콘 토마테를 먹으며 글루탐산이 공통으로 들어 있는 토마토와 간장의 유사함을 생각하고 친숙한 기억과 고향을 음미하며 웃는다. “(84) 여행하싶다는 바람도 한 꺼풀 벗겨보면 웃고 싶은 마음에 다름없다고 말했듯 독서 여행도 그렇다. 깊은 밤에도 비바람 치는 날에도.

 

“(31) 여행이란,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그러한 장소와 이야기들을 옮기려 애쓴다.

베를린 전봇대에서 켜켜이 쌓여 역사를 이루는 포스터, 한 민족의 영웅이면서도 소박한 거처 연못가에서 담배를 피우며 잉어 밥 주는 게 취미였던 호치민, 호퍼의 그림과는 대조적인 에드워드 호퍼와 조 호퍼의 돈독한 사랑, 러시아의 예르미타시 미술관을 명작으로 가득 채운 예카테리나 여제의 몰두, 고작 1년 머물렀지만 프랑스 어느 도시보다 루르마랭을 사랑한 카뮈가 아내 프랜신 카뮈와 묻힌 공동묘지, 루마니아를 한 번도 방문한 적 없으면서 드라큘라를 써 많은 이들이 브라쇼브 브란 성을 찾게 만든 소설가 브람 스토커, 애거사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배경이었지만 지금은 낙후된 이스탄불의 시르케지역, 바르샤바 쇼팽 벤치를 찾아 산보를 하며 에튀드가 흐르는 벤치에서 만든 추억, 어느 나라든 실체적 진실을 품고 있을 거 같아 찾아가는 시장과 골목, “(155) 어떤 가이드북도 알려주지 않는 진짜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여행지에서 사는 지도, 바로셀로나에서 그가 사지 않아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됐을 만년필에 대한 상상 등등.

 

일상을 특별한 여행처럼 여기려 하지만 그는 부인할 수 없다.

“(181) 가서 보지 못하면 영원히 깰 수 없었을지도 모를 내 안의 틀, 여행은 낯선 것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189) 여행이란 떠나기 전의 설렘부터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일상으로 돌아온 후 추억을 떠올리는 일 역시 여행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한 말처럼 이 책을 펼치며 독자들도 설렜을 것이다. 책을 덮고 여운을 즐긴다. 이제 이 책은 퇴근길에 들르는 단골집이나 여행 기념품처럼 남는다. 우리는 각자의 추억을 지닌 채 다른 여행을 꿈꾼다. 그 여행은 모두 다를 것이다. 어디 있든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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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01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고 나니 정말 독서와 여행은 공통점이 많네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레임을 주는 것처럼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것 또한 기대감을 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항상 여행만 갈 수 없기에 대부분의 삶을 일상에서 보내는 것처럼, 우리 삶에 주도적인 책들은 ‘인생의 책‘이라할 몇몇 권인것 같기도 하구요^^:)

AgalmA 2018-04-01 00:43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이렇게 책욕심이 많고, 1일 1그림, 1일 1사진 등등 온갖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게지요ㅎㅎ;

2018-04-01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1 0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04-01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의 봄날을 응원합니다^^

AgalmA 2018-04-01 19:1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북프리쿠키님도 화사한 봄날 만끽하는 시간되시길/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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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초기 진화부터 아주 세세한 것까지 각주, 미주, 옮긴이 설명까지 달아 재차 삼차 전달하고 있다. 진화론, 생물학, 사회학을 아우르며 이 정도로 설명하는 책 보기 드물다. 이 분야 최신의 진지한 과학 책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읽고자 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당신의 열망에 부합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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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01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 얼굴은 인간 진화에 대한 반론인것 같아요 ㅋㅋ

AgalmA 2018-04-01 00:51   좋아요 1 | URL
왜요ㅋㅋ 연의 얼굴 보면 진화적 장점 있으실 거 같은데. 안 되면 사회성 좋은 성격으로 밀고 가는! ㅎㅎ

겨울호랑이 2018-04-01 00:54   좋아요 1 | URL
연꽃은 진흙에서 핀다지요 ㅋㅋ

AgalmA 2018-04-01 00:56   좋아요 1 | URL
어, 요즘 유머스킬이 느신 듯ㅎ! 유머까지 있으시니 무슨 걱정^~^! 그래도 얼굴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겨울호랑이님이었다....(어흥) 한 밤의 포효효효~~~

겨울호랑이 2018-04-01 01:04   좋아요 1 | URL
^^:) 뭐 제 얼굴을 가지고 셀프디스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외모에 관심많던 제 사춘기때보다 진화된 것 같기도 합니다.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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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나이 46억 년에서 세포의 역사는 37억 년이다. 인류의 문명은 5~6천 년밖에 되지 않았고, 산업 문명은 고작 250년의 역사이다. 저자는 기술 진보의 속도가 생물학적 속도를 뛰어넘는 놀라움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인간의 발명품이 세균이나 단세포 생물도 가지고 있는 자가 복제와 자가 수정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동식물의 유전자 조절 시스템에 비할 게 못된다고 말한다. 내 예상으로는 그 단계를 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싶다. 이 방면의 진척은 인간 윤리와 심리적 방어 기제로 더뎌져 왔다고 생각한다. 줄기세포 연구 등등 활발한 발전 상황으로 볼 때 각종 대체 장기, 노화와 질병 정복 등이 실현되면 인간은 그야말로 불로불사의 능력을 갖게 될 텐데.

 

서른여 개의 주요 동물 집단 중 갑각류와 곤충류를 포함하는 절지동물과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만 얼굴을 가지고 있다. 5억 년에서 45천 만년 전 척추동물의 시조인 무악어류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얼굴의 특성을 유지하는 건 무엇을 뜻할까. 얼굴을 가지는 포유동물의 중요한 네 가지 특징은 턱과 치아와 털, 모유 수유, 얼굴 근육이다. “얼굴 근육 덕분에 포유동물은 얼굴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p207) 다윈은 인간의 문화와 민족 집단 전반에 걸쳐서 공통되는 여섯 가지 기본적인 표현분노, 행복, 슬픔, 호기심, 공포, 혐오”(p62)ㅡ이 존재한다고 했고, 이후 다른 학자들이 확인했다. 생존을 비롯 감정 표현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두뇌와 얼굴은 공진화(생명체가 가진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개의 특성이 함께 진화하는 현상)했다. "전뇌가 없으면 얼굴 발달은 물론이고 심지어 형태를 갖추지도 못한다."(p93) 얼굴은 팔다리와도 연결된다. "지느러미나 사지는 얼굴과 사지가 공유하는 핵심적인 모듈이 되는 기존의 유전자 네트워크의 주요 부분이 얼굴의 발달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배치되었기 때문에 진화할 수 있었다."(p147)

 

인간의 얼굴은 전형적인 포유류보다 더 납작하고 수직적인 형태다. 형태상의 이런 변화는 '주둥이의 흔적을 없애는 돌출된 턱의 축소와 인간이 가진 큰 뇌에 의해 형성된 이마' 때문이다. 인간의 큰 두뇌는 6층으로 구성된 대뇌피질의 발달로 더 많은 신경 전구 세포를 가지게 된 영향이다. 인간에게 주둥이가 사라지고 이마가 생겨나고 두뇌가 확장되어가며 언어와 말하기 능력이란 새로운 속성까지 얻게 되는 변모는 점진적 변화가 질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창발 현상이다.

 

이쯤까지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저자는 철저한 진화론자다. '지적설계론'에 대한 다음의 지적은 명쾌하다.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는 복잡성"을 고도로 복잡하게 제작되는 제품에 빗대어 지적설계론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성하는 몇 백 개의 부품들 중에서 어떤 한 가지만 제거되어도 그 자동차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거나 심하게 약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생명체는 미리 제작된 부분들에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요소들과 이런 요소들로 구성된 하부 구조들이 관련된, 길고 연속적인 자가 조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가변성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사실상 발달 과정에서 일련의 자체 검사와 타고난 유연성이 발휘되고, 이것이 변화를 허용한다. 그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가축들의 집중 육종 과정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생존력과 완전히 양립 가능한 변화다.(160~161)

 

유전자와 대립유전자의 구분도 생소했지만 유익한 정보였다.

우리는 별종으로 여겨지는 사람에게 유전자가 다르다고 쉽게 얘기하지만 정상 인간이라면 모두 유전자의 내용은 같다. "사람들이 가진 차이점들은 개인마다 전체 유전자 세트의 구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개별 유전자에 있는 뉴클리오티드 서열의 차이, 다시 말해 대립유전자의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p174) 

흔히 '이기적 유전자'라고 하는 것도 정확하게는 이기적 대립유전자라고 해야 맞다. 더 자세한 내용은 p174~175에서 확인하시길.

 

성 선택의 일환으로 인간의 털은 퇴화되었으리라 추측되는데 그러므로 얼굴을 매개로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더욱 향상되었을 거라고 진단한다. 유인원 줄기 집단을 특징짓는 세 개의 기본적인 유인원 특성“(1) 정밀한 시각이 발달한, 얼굴의 전면에 자리를 잡은 눈, (2) 얼굴 표정을 더 잘 드러나게 하는 털이 사라진 얼굴, (3) 음식을 먹고, 소리를 내고, 얼굴 표정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치아와 입술에 변화를 가져온 축소된 주둥이”(p286)은 인간의 특성과 매우 부합한다. “진화가 전적으로 미세한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이들이 개체군 내에서 축적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p294)고 한 다윈의 주장은 60년이 지나서 집단유전학을 통해 입증받았다.

 

저자의 논지는 점점 모인다. 결국 더 나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생존에 유리한 사회 선택으로서 얼굴은 진화되어 왔다는 논지다. 특히 눈의 예를 봐도 그렇다. “인간은 흰자위라고 하는 공막이 겉으로 드러나고, 이 공막에 둘러싸인 다양한 색깔의 홍채(눈동자)를 가진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이것은 자신이 응시하는 방향을 타인이 알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회적 특성이고, 이번에도 역시 사회적 상호작용을 지원하는 특면에서만 설명이 가능한 선택적 이점이다.”(p325) 우리는 안색이 어두운 사람을 보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거나 웃으라고 강요 같은 권유를 하기도 한다. 반려동물만 해도 집사들이 표정이 안 좋으면 동요하며 같이 슬퍼해주지 않는가. 그런데 저자와 같이 이렇게 긴긴 진화의 면면을 살피며 추적하고 진단하려는 사람은 왠지 극소수인 거 같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도 무심하고, 불행을 봐도 극악스러운 인간 사회를 생각하니 내 얼굴은 그리 밝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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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1 0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1 0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4-02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는 여러번 구경했는데, 리뷰로는 Agalma님 리뷰가 처음인데 참 흥미롭네요. 지적설계론에 대한 설명도 그렇고요.
제일 관심이 가는 건 처음 문단인데요, 만약 인간 장기에 대한 개발이 활달해지고, 계속해서 인간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진다면, 인간의 얼굴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궁금해요. 다른 장기들처럼 새로운 기계 혹은 장치로의 대체가 가능하다면, 주름진 얼굴을 계속 가지고 있겠다는 인간이 얼마나 될지 그것도 궁금하고요...^^

AgalmA 2018-04-03 05:18   좋아요 0 | URL
첫 문단은 <세계미래보고서 2018>을 보니 그런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는 내용을 봤기 때문인데요.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에서도 그런 내용이 많았잖아요. 카쿠도 인간이 그래도 육체까진 못 버릴 거다 조심스레 말하긴 했지만ㅎ 체험과 경험을 극도로 추구하는 추세로 보면 육체 탈피까지도 상당수 실행할 거 같은데요. 기억이나 정보는 어차피 뇌에 다 있는 거니까.
적절한 비유가 될 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자연을 좋아하지만 도시적인 편리함을 버리고 자연인으로 살지 않잖아요.
각자 취향대로 선택하는 일이겠으나 경향이나 추세란 것도 무시 못하죠.
 

 

 

1일 1사진 - 지상의 정원

 

17시간 노동 끝에 본 풍경. 거긴 어떤 싹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의 봄은 아직 관념적이다. 구체성은 관찰자에 의해서 구성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의, 내부를 강조하고 주목하지만 외부가 없다면 이 삶을 지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시공간이 한 몸이듯이 그러하고, 우리 의식과 현실 속에서 같이 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의식

 

애덤 윌킨스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밤에 조금씩 읽고 있다. 어제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적응과 돌연변이를 너무 인과적으로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물의 발달은 목적적이라기보다 돌연변이로 인한 진화적 급변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일전에 대화하다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전후 과정을 모두 아는 일종의 다층적 사유와 사고를 한다 해도 3차원의 이 세계에서 행동 혹은 물질로 구현할 때 어떤 틈이, 우연이 생기지 않을까. 물론 그 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결과‘라는 것은 오직 죽음/소멸뿐일 것이다. 과정은 과정일 뿐이니까. 이러한 죽음의 경계도 우리의 인식 기준이다. '개체'의 소멸만을 죽음이라고 보는 건 매우 협소할 수 있다. 종으로서나 환경을 주체로 본다면 일부의 결과, 순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로버트 란자 / 밥 버먼 『바이오센트리즘』
생물중심주의(Biocentrism: "생명과 의식이 우주의 실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관점)을 주창한 로버트 란자 박사는 현재 물리학에서 배제하고 있는 '의식'을 우주를 이루는 한 가지 중요한 구성 요소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자 역학에서 잘 알려져 있다시피 "관찰이 이뤄지기 전까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휠러John Wheeler)
란자 박사는 그에 빗대 "관찰자가 없다면 무지개도 없다."고 말했다.

트리스탄굴리 『산책자를 위한 자연 수업』에서도 같은 논지가 나온다.

"무지개를 보려면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우선 비가 조금 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둘 사이에서 해를 등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무지개를 보는 사람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조건이 맞으면 무지개를 보는 사람의 수만큼 많이 생길 수 있지만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 그 이유는 무지개가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정확한 자리에 명확한 모양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관찰자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같은 위치에 있는 무지개를 볼 수 있고 없고가 결정 난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거시적으로 이 지구를 한 점이라고 볼 때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극히 일부만을 본다.
란자 박사는 과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모두 떠넘기고 있는 '우연'을 우리 '의식'으로 보려는 관점이다. 철학의 오랜 주제가 과학으로 갔다가 다시 철학으로 돌아오는 느낌인데ㅎ 그가 주장하는 '시공간의 허상성'은 나도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다.
란자 박사의 견해는 논란이 많지만 담 달 스티븐 호킹 독서 예정 중이라 이 책이 뜻밖의 반론서가 되지 않을까 싶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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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1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1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도서관일지 ▒

 

도서관은 왜 커버를 살려주지 않는 거야. 도서관 책에서 제일 큰 불만.


● 역사
아자 가트 《문명과 전쟁》
전자도서관 책으로 3분의 1쯤 읽었는데 리뷰 정리하려면 종이책이 있어야 할 거 같아 대출.
벽돌 책일 때 읽기와 밑줄 긋기 모음엔 e book이 편하지만 종합 서칭, 전체 그림을 잡는덴 종이책이. 결론은 둘 다 있으면 좋다-,.-;

"그렇다면 진화하는 자연환경 속에서 수렵채집의 자연적인 생활방식을 진화시키면서 살아가던 인간들도 싸움을 했을까? 싸움은 수백만 년에 걸친 선택 압력이 빚어낸 그들 특유의 적응 양상에 내재한 한 측면이었을까? 달리 말해서 그들이 걸어간 진화의 길이 전쟁을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싸움은 나중에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야 등장한 것이고 따라서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운’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17세기와 18세기에 상반되는 두 가지 고전적 대답이 제시되었다. 유럽인들이 지리적 대항해를 통해 매우 다양한 원주민들과 접촉한 후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와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가 내놓은 답이었다. 홉스에게 인간의 ‘자연 상태’는 고질적인 ‘투쟁warre’의 하나로서 이익과 안전, 명성을 위한 살인적 다툼이자 만인 대 만인의 전쟁이며 삶을 ‘가난하고 힘들고 잔인하고 단명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리바이어던Leviathan』[1651] 13장). 사람들이 이런 상태에서 구제되고 고양되는 길은 강제적 권력을 동원해 적어도 내부 평화를 강요하는 국가를 창조하는 것뿐이었다. 반면에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egalite parmi les hommes』(1755)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자연 속에 드문드문 흩어져 자연의? 풍부한 자원을 평화롭게 이용하면서 대체로 조화롭게 살았다. 그러다가 농업, 인구 성장, 사유 재산, 계급 분화, 국가의 강압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전쟁이 등장했고 문명의 나머지 모든 병폐들도 함께 나타났다고 루소는 주장했다."

"사실 결핍과 굶주림이 전쟁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풍부함과 결핍은 먹여 살릴 입의 수에 상대적일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계속 커질 뿐 만족을 모르는 인간적 욕구와 욕망에도 상대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경쟁은 결핍은 물론 풍요와 함께 증가하고, 풍요로워질수록 경쟁의 형태와 표현이 복잡해지고 사회적 격차가 벌어지고 계층화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부유한 남자는 더 많은 아내를 부양할 능력이 있으며 따라서 더 많은 아내를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의 집단들을 지배했던 장로들과 북미 북서해안의 ‘빅맨big man’들이 그런 경우였다. 여성을 둘러싼 경쟁은 치명적인 폭력을 부르는 주된 원인, 때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ㅡ 아자 가트 《문명과 전쟁》중


● 사회 / 페미니즘
수전 팔루디 《백래시》
두껍다 말도 많지만 <문명과 전쟁>에 비하면 귀여운 사이즈.


● 과학
스테파노 만쿠소 《매혹하는 식물의 뇌》
식물을 좋아한다면 기본 독서 아이템.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에서 다윈이 식물학 연구에 선구자인 걸 알게 돼 식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어서 읽게 됐다.
최근 읽고 있는 과학 책 중에 가장 재밌다. 지식과 위트를 이렇게 섞는 거 좋아한다.
e book으로 읽고 있다가 종이책으로 읽고 싶어서 대출.


그러나 빌려 놓고 딴 책 읽기~
뭐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읽고 싶은 책이 언제든 읽을 수 있게 손닿는 데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 1일 1사진 - 틀(Frame)

 

 

 

보르헤스가 거울에 대해 그랬듯(무한 증식에 대한 혐오) 틀을 느끼면 어쩐지 가증스럽다.

 그러나 내 시선만큼 자연스럽다. 우리가 우리 시선을 문득 인식할 때 딱 이렇다. 끝없는 분할과 협소한 종착.

 

 

 

 

 

 

 

 

시선이 사물을 휘감듯 너도.

 

 

 

 

 

 틀이 있든 없든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
하지만 등이 있어도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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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27 1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책을 대출한 후에는 마치 내 책이 된 것처럼 여유를 부리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 졸린 눈 비비며 눈물로 책을 읽는 1인입니다 ㅋㅋ

AgalmA 2018-03-30 23:42   좋아요 1 | URL
ㅋㅋ 겨울호랑이님도 그러신다니 저 어찌나 든든한지(?) ㅋㅋ 그렇죠. 그렇다니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