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말하기, 글쓰기, 비평하기, 논박하기 한번에 다~뚫어!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 잃어버릴 수 없는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 어제의 세계』- 남겨질 권리

 

절박한 전쟁 상황에서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무 자료 없이 기억에 의존해 500페이지가 넘는 어제의 세계를 썼다. 그가 全 생애에 걸쳐 경험한 '근·현대 유럽 세계사'라고 할 내용이다. 유대인이라는 약점 때문에 여러 나라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츠바이크는 1·2차 세계 대전 전후해 그 시대상과 지식인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회상하는데, 이러한 저작의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은 그냥 우연히 보유하고 다른 것은 단지 우연히 상실하는 그런 것이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식하면서 정리하고 쓸데없는 것을 현명하게 줄이는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자기의 인생에서 잊어버리는 것은 모두 원래 내면의 본능에 의해 훨씬 전에 잊혀지고 말게끔 정해져 있는 것이다. 오직 스스로 남으려고 하는 회상만이 다른 여러 가지 회상에 대신하여 남겨질 권리를 갖는다.

그런즉 이야기하라, 선택하라, 그대 회상들이여! 나의 회상 대신 말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의 인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전에 내 인생의 영상을 보여 다오!”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슈베르트 호텔 - 기억의 계승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아 웨스 앤더슨 감독은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도입이 왜 죽은 작가의 무덤 앞 애도와 그의 인터뷰에서 시작하는지, 영화가 왜 호텔을 차지하는 군상들의 삶처럼 액자식 구성인지, 왜 그렇게 유명한 출연진들을 많이 썼는지 어제의 세계를 읽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어제의 세계는 수많은 인물과 나라,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저 스쳐가는 뉴스가 아니다. 영화 진행만큼 사건들은 서로 긴밀하며 긴박하다. 뛰어난 작가가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것을 폭넓고 깊이 있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초호화판 캐스팅도 그저 이목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그들 삶의 목적 속에서 빛나듯 영화 속 인물들도 그들 개개의 스토리 속에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세계를 읽으며,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묵었던 스위스 슈베르트호텔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가져왔으리라 감지됐다.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가 왜 그런 인물 설정인지도 알았다. ‘슈베르트호텔은 카사노바와 괴테가 머물렀던 곳이다. 향수를 뿌려대고 낭만시를 어디서든 읊어대는 구스타브는 카사노바와 괴테’를 조합해 창조한 게 분명하다. 젊은 작가 역으로 나왔던 주드 로는, 츠바이크가 이마가 조각처럼 반듯했던 작가로 회상하며 '슈베르트' 호텔에서 처음 만났던, 청년 제임스 조이스를 빗댄 걸로 보인다. <율리시즈>를 쓰기 전이었던 그는 츠바이크에게 한 부 뿐이었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원고를 보여줬다. 오,『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츠바이크가 그토록 염원한 예술의 자유이기도 하잖은가! 

난민이었던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가 왜 호텔의 주인이 되었는지, 나이든 제로가 적자에도 불구하고 왜 호텔을 팔 지 못하는지도 짐작됐다. 엄청난 유산상속자였지만 평생 이방인이어야 했고, 장서와 예술품들을 수집하며 인간을 살피고 세상의 화해를 도모했지만 참담히 무너졌던, 슈테판 츠바이크를 대신해 그 심경을 대변하려 한 것이리라.

 

이런 식으로 구석구석 맞춰 볼 것이 많은데 지금은 이 이야기를 더 끌고 나가고 싶지 않다. 이 비교를 하고 싶었던 때가 지나버렸다.

 

 

기억이여, 너는 또 무슨 조합을 불러들이려는가. 

 

 

 

 

§§§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기억의 태도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에서 대니얼 대빗은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물리적 태도, 설계적 태도, 지향적 태도로 구분한다.

 

◆ ‘물리적 태도는 자연과학적 기본 방법이다. 손에서 돌멩이를 놓으면 땅바닥으로 돌이 떨어질 것을 의심하지 않고 예측하지만, 금붕어와 바람개비도 반드시 그럴 거라 장담할 수 없다.

 

 

◆ ‘설계적 태도는 자명종이 알람을 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추론 태도다. 우리가 그 설계를 예측하고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예측의 오류를 가정해 볼 수 있다.

1) 대상은 정말로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설계되었나?

2) 대상은 설계된 대로 작동할 것인가(, 오작동하지 않을 것인가).

 

 

설계적 태도가 허물어지는 것을 만화에서 자주 보게 된다. 톰과 제리의 톰이 가장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제리를 붙잡기 위한 톰의 설계적 태도는 거듭 실패한다. 단순한 예측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대니얼 데빗은 지향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향적 태도란 어떤 대상의사람이든, 동물이든, 인공물이든, 아니 무엇이든행동을 해석할 때 그 대상이 스스로의 믿음욕구고려하여 선택행위를 제어하는 합리적 행위자인 것처럼대하는 전략이다.”(p109)  쉽게 말해 지향적 태도는 정보 수집과 계산을 모조리 가져와 최선의 예측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합리성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다른 구동방식이 있다. 과거의 모든 기억뿐만이 아닌 모든 경우의 수가 '무의식적으로' 시스템()에서 도출되며 우리는 그 프로그래밍의 몇 개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 우리의 방식은 컴퓨터의 1:1 도출 방식이 아니며, 인간의 사고는 全 과정에 무의식이 개입하며 이 무의식은 우리도 모르게 패턴화되어 있다. 그런데 컴퓨터의 버그, 오류들까지 종합해 이와 비교해 본다면 인간 뇌가 컴퓨터와 유사하다는 가정은 신빙성있는 주장일지도 모른다.

 

 

 

 

 

 

 

 

§§§§  나를 진찰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뭘 말하려는가.

우리는 추억과 기억 혹은 청춘의 판단 착오 등 낭만적인 방식으로 뇌와 행동의 역학을 축소해 보는 경향이 있다. 충동을 심리적인 문제로만 봐야 할까. 뇌과학보다 심리학을 사람들이 더 선호하고 호응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치매, 기억력 감퇴, 나이 듦 등의 물리적 현상에 중점해 보는 것도 우려되는 바다.

작가, 예술가, 철학가의 문장, 사상, 행동, 작품을 엄청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도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다. 무의식적 천재성도 있겠지만 버그도 분명히 있을 테니 말이다.

전반에 적극적인 '지향적 태도'가 요구된다.

어쨌거나 나는 뇌를 '지킬과 하이드'로 보고 있다. 누군가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ㅡAgalma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6-15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6 0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6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6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irdky 2015-06-1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작가의 소설 `체스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흡입력 있는 문체와 내용에 감탄했었죠ㅎㅎ

AgalmA 2015-06-16 01:37   좋아요 0 | URL
<어제의 세계>에 이런 내용이 있었죠.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츠바이크가 페르시아 왕의 말을 인용한 게 재밌죠. ˝나는 어떤 말은 다른 말보다 빨리 뛰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쪽 말이 더 빠른지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다.˝ ㅎㅎ 저도 스포츠에 대해선 여기 전적으로 동감ㅎ!
체스는 정신적 긴장운동을 하게 해줘서 좋다고~

문장력 정말 좋죠. 이런 사람이 전기(傳記)와 번역에 그토록 투자한 게 아깝다고 해야 할 지, 그래서 좋은 문장력이 나왔다고 봐야 할 지 갸웃)))

AgalmA 2015-06-18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관펌프...>에 대해 내게 만족스러운 리뷰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리뷰를 쓰고 있진 않을 것이다. 뭐가 답답해서! 아주 시간이 많고 아주 명석한 사람이 아주 투쟁의식이 강해 애써 리뷰를 쓴다 해도 데빗식 표현을 쓰기 십상이니 이해도 공감도 참 얻기 어려울 것이다. 노력 가상상은 줄 지 모르지.
<괴델, 에셔, 바흐>를 만났을 때처럼 환상적인 思考 오로라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인문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모든 문장이 재난 경보처럼 들릴 지도.....재밌으면서도 무서운 과학소설을 읽는 기분...굉장히 논리적이고 예언적이기도 해서...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면서 스윽 넘어가게 되지 않는다는 것.

네오 2015-06-1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들이 진화를 하니 제가 못따라잡아서 이해하는 데 한참걸리네요,,,,,,,어느 한편도 쉬운 글이 없네요^^ 그랜드부다페스호텔 괜찮았다는 말인가요??

AgalmA 2015-06-17 23:02   좋아요 0 | URL
제가 어렵게 말하는 걸까요-ㅁ-); 제가 이해한 만큼 전달한다고 생각하는데;_;)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괜찮은 영화죠. 아, 그 색감부터! 영화를 케익처럼 만들어놓다니ㅎㅎ 장 주네 이후 이렇게 강렬한 케익 영화는 기억나지 않습니다ㅎ

북다이제스터 2015-06-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읽을 책으로 <직관 펌프> 잡았습니다. 많이 간장됩니다. ㅎㅎ 이렇게 읽으면 쉽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조언 부탁 드려도 될까요? 그런게 가능하다면....

AgalmA 2015-06-18 20:57   좋아요 0 | URL
그 맥락에 최대한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저도 이렇게 사고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밌고 당황스럽고 복잡하고 그래요ㅎㅎ; 1번 읽어서는 안될 거 같고 여러 번 읽어야 될 책^^

북다이제스터 2015-06-18 21:08   좋아요 1 | URL
조언 감사합니다. 근데 결국 제 읽기 나름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ㅠㅠ 한 번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ㅎㅎ
 

§

사랑하는 고양이가 있었다 왜 이제야 찾은 거야 이 고양이는 말이 없다 앞으로도 영영 종이에 담았으니 평생 간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려 두지 말 걸 거기 둘 걸 잊은 것도 잃어버린 것도 나였다

고양이를 찾으며 넘긴 페이지들에는 죽은 신해철, 헤어진 연인,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 꿈속의 폐허, 내가 만들다 만 괴물과 인형, 끊어진 이야기들이 무섭도록 살아 있었다

상을 받아 액자까지 했던 그림도 어머니가 버렸지 삶의 중요도는 누구에게나 일정하지 않다 늘 지키지 못하면서 늘 아파한다 그런 거지 어리석어서 아파서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무는 게 죄는 아니잖아
내 종이 고양이 기억 속 고양이

슈뢰딩거 고양이보다 내겐 이 고양이가 더 중요해 이게 인간이지 부정할 수 없이
그러나 이 고양이 때문에 나는 다른 고양이를 또 사랑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ㅡAgalma





여름이 남기고 간 선물


그 해 여름 우린 어딘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오누이 같았다

섬은 목책 없이 이어진 산책길, 새벽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생령들은 소근대며 피어올랐다 이파리가 물속에 잠겨 있는 버드나무 밑동을 파헤치고 늙은 개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다가가면 백합조개 깨진 껍질들만 가득했다

무너진 집 돌담 밑에서 이름이 지워진 수첩을 발견했다 엑스표는 많았지만 동그라미는 없었다 십 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가묘를 파헤치고 육탈이 끝난 아이들의 뼈를 옮겼던 날에는 섬사람들을 따라 해안가를 걸었다 제를 올리고 우리는 기름이 적은 육고기를 나누어 먹었다 씹을수록 너의 옷섶으로 뿌옇게 배어 나왔던 젖물

바람이 불고 배를 띄우고 물속에 뛰어든 네가 다시 돌아와 웃고 있었다 우린 손을 잡고 간수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세워둔 소금자루처럼 앉아 있었다

촛불은 흔들리고 꽃등은 밤마다 위를 둥실둥실 떠가고

깨진 거울을 주워 모았고 수은을 벗겨내 서로의 얼굴에 고운 가루를 발라주었던 날, 마호병에서 온수를 따라 세 번 나누어 마셨다 폭풍 치는 마지막 밤에도 서로의 귓속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었다 사랑하는 일만 남아 있다고 믿기엔 우린 어딘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詩 박상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06-14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4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6-15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간 신경숙작가의 글 속에서 요란하지도 않고 조용하니 괜찮겠다 싶어 들인 고양이가 구석만을 찾아 다니는 문제점이 있다는 걸 간과했었다는 그래서 이사를 하려는데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던 그 녀석,상자며 서랍이며를 다 뒤져도 찾을 길 없어 포기..나~아중에야..서류 봉투 속에 들어가 납작해진 채 말라버린 고양이를 발견하곤 그 부피 없음에 놀랐던 얘기가..문득 떠올라서..목 뒤에 털이 오소소 돋는 시간...종이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과 같을 순 없겠지만..그리움이나 안타까움이나 시간을 헤 칠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라..하염없는 생각을 떨구고 갑니다.. 저 푸른 계단을 보면 영화 블루˝ 속 수영장이 그 물이 자꾸 넘치는 환상이 보이는 듯 ..그럽니다...

AgalmA 2015-06-15 01:16   좋아요 0 | URL
신경숙 작가 이야기는 포 <검은 고양이> 처럼 서늘하네요. 저는 살아있는 동물은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요. 트라우마가 깊어서. 무슨 트라우마가 이토록 많은지...하아...
영화 <그랑블루>, <디 아워스>도 그랬죠... 그 차오름...
저 사진 찍을 때, 내가 떠오르는 건지 가라앉는 건지 분간이 안 됐는데, 지금 봐도 역시 헷갈려요.

[그장소] 2015-06-18 05:20   좋아요 1 | URL
아, 그 역시도 이제 누군가의 글을 뺏은게 아닐까..싶어져..와~ 만 하루 사이에 저 위에 어제의세계 라고
쓰신 제목은 정말 선견지명...에..그래드 부다페스트호텔 -은 좋아하는 영화라 몇번씩 반복해 봤는데, 그럼에도
Agalma님은 따라 갈 수없는 이야기 꾼, 아니 엮자.
랄프 파인즈 좋아해요. ㅎㅎㅎ, 저도 살아 있는건 못 키워요. 안쓰러워서.. 잘 되지도 않고말이죠. 저 사진 필터
쓴거죠? 어디서 찍은 거예요? 아니야..당신 정체가 뭐예요? 척척박사..? (이건 어디서 나오더라? 영화,애니,책?)
아,,이제 여러권을 한꺼번에 읽는건 그만둬야겠어요. 손으로 쓰며 정리를 하는 건 기억이 오래 가는데.놓치는 부분은 기억을 더듬어야한다는..

AgalmA 2015-06-18 05:36   좋아요 0 | URL
우리가 신경숙 얘기한 지 하루만에 신경숙 난파 얘기가 전달되니 정말 이상하죠...참 사람 일이라는 게....
예, 저 이제부터 엮자주의자 할랍니다ㅎㅎ 한 권씩 차례로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돼요^^;; 그래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랑 어제의 세계 비교분석 시기를 놓쳐 버렸죠ㅎㅎ; <공평한가> 정리하느라고ㅋ
사진은 아이패드로 찍은 건데 콘트라스트를 조금 강하게 준 거 외에 크게 변화를 준 거 없어요~ 원본에서 너무 다른 것도 사기니까ㅎ
 

http://antlersmusic.com/


The Antlers - [Hospice] (Full Album) : https://youtu.be/xSi_FE52TAY


[Hospice] 2009년 음반이네요. 아마존에는 만원 정도면 살 수 있는 것을 이 나라에서는 참 애타는 물건인 게 많죠^^;


2014년 [Familiars] 앨범도 완전 멋지고!! https://youtu.be/SvkxrXism9U?list=PL39yL1r0qWUNexkX7ND1weo96ZKjc6pFH


보컬 느낌이 제프 버클리랑 베스 기븐스 섞어 놓은 듯 묘한 매력!
>ㅇ<)!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의 사유는 자신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나는 내가 분석한다』(카렌 호나이, 2015) 책 제목이 내 독서의 목적을 말해준다. 삶의 많은 구렁텅이 중 어릴 때 한 번, 성인이 되어 또 한 번, 내가 직접 죽음에 아주 가까이 가보았던 게 가장 큰 엔진이 되었던 것 같다. 어제 영화 《엘리펀트 송》을 보며 또다시 짐작된 바다. 가족의 자살, 자살에 가까운 사고사, 타살에 가까운 사고사 등도 접하며 나는 삶의 경쟁에서 일찍 내려와 부유하는 삶에 밀착한 거 같다. 그래서 내 독서는 지식의 폭식, 경쟁의 경주, 원리에 통달하려는 지적 왕좌 게임, 세계 변혁을 꿈꾸는 이상과는 다르다. 내가 가끔 그런 추구로 비친다면 지옥에서의 한철 같은 재미 혹은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라서 다른 이도 한 번 생각해보라는 정도겠다. 무엇보다 나는 제멋대로고 꿈꾸길 좋아하며 우울의 소용돌이 속에 사는 몽상가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비관일까 낙천일까. 둘 다겠지. 슬픔의 무도 속에서 즉시 사랑에 빠진다.


'자기 치유'가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독서의 목적이 확실하기에 쉽게 좌절할 수 없다. 우울증 책, 약, 종이 분쇄기에 넣는 듯한 심리상담(아무리 많이 밀어 넣어도 여전히 많은 종이...)은 늘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것은 치료인가 사실은 불가능인가. 미래에는 간단한 시술만으로 고칠 수 있는 두뇌 병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렇게 책에 파묻혀 수많은 날을 씨름하느라 정작 소중한 경험의 시간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연구실 과학자들은 나보다 더 속이 탈 테지.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세계 인구의 20%를 넘는 20억 명이라고 하니 문제가 작지 않다. 로봇이나 외계인과의 미래 전쟁 전에 정신질환으로 인류 생존이 심각해질 위험이 더 커 보인다. 각종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종교 분쟁 등의 현실 속 전쟁 상황들을 나는 정신적 문제라고 본다. 시스템은 그것에서 비롯된 2차적 문제다. 결국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되었지만.


뇌과학 책 중 내가 접한 가장 최신판인 『마음의 미래』는 어떤 가능과 불가능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서 읽어 나갔다. 내 세대에서는 많은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후대에는 사람들이 덜 아프고 더 행복할 수 있겠구나 희망을 주는 책이다. 지식 못지않게 마음의 품성까지 넓은 미치오 카쿠의 글은 그래서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유머를 좋아한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는 과학자다ㅎ. 그렇기에 이 분야에 겁을 먹고 있는 독자라면 적극 추천한다. 마음에 대한 촘촘한 과학적 기본 지식과 그 미래를 조망하려 하지만, 이 책의 미래는 거창함에 힘을 싣고 있지 않다.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사람을 도울 수 있어 기뻐하고, 아이의 고민을 들어주는 로봇이 있어 행복해하는 풍경이 더 많은 미래다. 나로서는 불로불사의 뇌를 만들어 활용할 시대에 사는 게 아니라 감사할 따름이다.
아래는 이 책에서 내게 흥미를 준 몇몇 사례에 내 단상을 겹쳤다.


1. 두뇌와 기억
우리는 미래에 금속 모자를 쓰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두뇌 스캔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지금은 공항 검색대 정도만 감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뭐! 이 정도가 그 수준밖에 안 된다고?

기억의 목적은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것(p182)이라는 견해는, 역사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재가 이 지경이라는 견해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셈이라고 하겠다.

'프로프라놀롤'(p196) 같은 기억을 지우는 약이 대량 상용화된다면 그 여파가 흥미롭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환자들을 도울 수 있지만 고통을 이겨내는 긍정성을 차단하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전쟁 시 이런 약들을 상용화한다고 생각해 보라(이미 많은 유사 사례가 ...) 사이코패스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기억을 관리하고 미래를 통제하려는 이 모든 노력은 결과가 미지수라는 게 큰 걱정거리 같다. 의료 행위나 호혜를 위한 용도가 아닌 이기적인 사유화나 국가적 체제로 이용된다면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핵기술 발견이 살상 무기로 변모하게 될지 개발 당시는 몰랐던 것처럼.

기억 주입이 본격화될 때 《매트릭스》처럼 지식의 단기 습득은 우릴 더욱 자유롭게 할 테지만, 강력한 쾌락에 빠지거나 누군가에게 조종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인체에 직접 주입하기 때문에 tv 전원코드를 빼는 물리력으로 막을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결국 처음도 끝도 윤리 문제 같다. 인터넷 문화도 제어가 쉽지 않은데, 브레인넷 문화가 된다면 인간의 오랜 역사의 아날로그 삶은 상상초월의 질적 변이를 맞게 될 것이다. 그때는 그랬지 아름답게 말할 추억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그 기억을 찾아 주입하면 되니까. 점점 '나'라는 고유성은 희미해지게 된다. 어쨌거나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10년 투자하면 최고가 된다)은 지금도 깨지고 있고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어갈수록 확실히 깨지게 될 것이다. 기억 주입에 필요한 돈만 있으면 되겠지. 저자도 이를 우려하지만 낙수효과 같은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경제문제가 부의 불균형적인 분배와 부조리한 인간 욕망이라는 걸 생각해 볼 때 나는 부정적이다. 그간의 무수한 진화에도 지금 세계는 충분히 불균형적이잖은가.

2. 천재성
런던의 택시 운전기사에 대한 뇌 분석(p214)은 흥미로운 점을 시사한다. 그들은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 부위가 눈에 띄게 큰데, 시각 정보 처리능력은 평균보다 떨어진다. 책 많이 보면 tv 오래 보면 눈 나빠진다 같은 민간 심리학이 아니라, 방대한 정보를 암기하면 시각기능이 떨어진다는 과학적 사례보고인 셈이다. 문득 눈먼 보르헤스, 귀먼 베토벤이 떠올랐다. 그냥 그랬다고.

기억능력이 좋은 건 망각 능력의 저하 능력과도 겸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도파민(p237)이 DCA1, DAMB 수용체로 다르게 활성화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좀 더 자연스러운 두뇌 세팅
뇌 부위에 따라 자기장을 걸어 서번트 능력(자폐적 석학의 특성) 같은 잠재력을 깨우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어쩐지 섬뜩하다. 시력을 높이기 위한 라식 수술과 차원이 다르다@_@(내 눈 예뻐?) 여기서 그칠소냐! 더 최신식이 진행 중인데, 줄기세포(아, 황우석 트라우마;) 와 게놈 프로젝트(인간 진화의 결정적 DNA 연구) 가 그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책 참조~

4. 지능의 기원
1) 아프리카 기후 - 적대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립보행, 연장사용 등으로 이어짐(다윈 이론)
2) 사회적이자 집단적인 특성 - 사냥, 농사, 전쟁 등으로 인한 교류
3) 언어 - 미래 계획, 추상적 사고 촉진
4) 성 선택설 - 똑똑하고 현실감 있는 남자를 골라 후손을 전한 여자(Agalma - 어쩐지 원죄 관련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좀 멀리 나간 발상이지만 어디까지나 제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선악과(선과 악을 구분하는 과실)를 권한 자가 이브라고 하지요. 아담은 이브의 권유가 없었다면 그저 에덴동산에 머물렀겠죠. 이브는 완력으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끌어낸 게 아닙니다. 선악과는 이브가 처음 권했지만 아담도 선택한 '자유의지'입니다. 신을 배반한 '자유의지' 이것은 인간적 지능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이 자유의지는 '선택적 자유의지'이자 '확률적 자유의지'입니다. 결과가 좋게 될지 나쁘게 될지 그들은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금지)과 저것(허용)은 마련되어 있고 우리는 그 중 골랐을 뿐이죠. 죄가 있다면 이것을 건넨 이브에게 죄를 물을 것이 아니라 가능성까지 만든 신에게 죄를 따져 물어야죠. 하지만 그러지 않죠. 선악과를 버렸다면 에덴동산에는 아담과 이브만 있고 인류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선택했고 추방당해 인류를 번성시켰죠. 여전히 신의 계획설을 따지게 됩니다? 신이 있다면. 어쨌거나 종교적·신화적 은유라도 이런 논리들 속에 여자들은 마녀, 팜므파탈 등의 죄들을 감내해야 했기에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진화(몸의 상태와 지능의 변화)는 거의 끝난 상태로 보고 있다. 물리적으로도.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면 열이 나면서 터질 것 같은 기분, 단순히 기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그렇다ㅎㅎ;

5. 우리 뇌는 '감정'이라는 형태로 빠른 결정을 내림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한다.(p257)

6. 신과 인간과 로봇
인간이 로봇을 만드는 과정은, 자연신이 아닌 유일신이 인간을 만들었을 때를 유추하게 된다. 인간이 불쾌감을 동반한 두려움(프로이트의 Uncanny)을 느끼지 않도록 로봇을 귀엽게 또는 최대한 인간에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한다거나(p352), 주인에 대한 충성심(p363)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것. 어디까지나 인간 입장에서 생각해본 것이지만, 그래서 신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각자 생각해 볼 일.

§§ 마무리
이 책을 보면 허경영이 되는 건 아니고.... SF물이 각각 어떤 시대적 고민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고, 과학과 공학이 어떤 인간 심리의 벽에서 난항 중인지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의식과 관련한 감정 분석서라고도 볼 수 있어 일반인의 교양은 물론이고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평론가를 비롯한 각종 작가 군에게 필독서라 할 만하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내가 제일 원하는 게 이건데.....
 

 

ㅡAgalma

 

 

 

[MIT 연구소에서 개발해 요양원에 투입되어 노인환자에게 인기가 많았던 로봇, 넥시]

 

 

 

 

아이처럼 생긴 로봇이나(큰 눈과 동그란 얼굴) 완전히 사람과 똑같은 로봇이 아니라면 안 웃는 편이 낫다(억지로 웃을 때는 전전두엽이 안면근육을 조절한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웃을 때는 대뇌변연계가 신경을 제어하여 안면근육의 움직임이 조금 달라진다. 상대방이 억지로 웃는지, 아니면 정말로 웃고 있는지를 간파하는 것은 생존에 유리한 능력이므로, 우리 뇌는 둘 사이의 미묘한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다).(p352)

"…자연은 다양한 시도를 해보다가 모범적인 사례를 발견하면 그와 동일한 패턴을 끝없이 반복한다. 뇌의 신경망은 바로 이와 같은 원리로 탄생했다."……[고층건물을 단기간에 지을 수 있는 비결도 바로 이 모듈(module:단위)덕분이다. 한 모듈의 설계가 끝나면 조립라인에서 똑같은 모듈을 계속 찍어내고, 이들을 계속 쌓으면 고층건물이 만들어진다. 주거용 아파트도 서류작업만 완료되면 모듈을 이용하여 몇 달 안에 지을 수 있다.] (p402~403)


댓글(27)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REBBP 2015-06-12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군에게 필독서라는 말에 공감해요. 무수한 상상력의 어느 만큼에 우리가 도달할 수 있으며 어디쯤인지를 가늠해주고 또 그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하죠. ㅎ 두고두고 뒤젹거려도 재미있을 완소책이에요.

AgalmA 2015-06-12 19:4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아이디어가 엄청 샘솟더라고요ㅎ

북다이제스터 2015-06-12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찜해 놓은 책이라 말씀하신 요약 부분은 스킵했습니다. ^^ agalma님 읽으셔 더욱 기대됩니다^^

AgalmA 2015-06-12 20:59   좋아요 0 | URL
요약할 게 너무 많아서 정리하다가 에라~ 그냥 흥미로웠던 거 몇 개만 올리자 한 거... 읽을수록 도움되는 책이란 생각 많이 하실 겁니다^^

에이바 2015-06-12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잠깐 소개해주셨던 책 맞죠? 각 사례들이 섬뜩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군요. 전부 다 흥미로워요. 최고 최고!

AgalmA 2015-06-12 21:00   좋아요 1 | URL
네, 그때 그 책^^ 책을 읽을수록 인간의 심리메커니즘이 세계를 어떤 식으로 구축하고 파괴하는가가 보여요. 강추!

에이바 2015-06-12 21:37   좋아요 0 | URL
왠지 AI 탑재한 로봇상용화보다 1번 사례에 등장한 약 있잖아요. 그걸로 감정제거한 인간이 먼저 나오는 거 아녜요? 어디선가 유통되고 있는게 아닌가요 ㅠㅠ 영화 이퀼리브리엄이 괜한 상상이 아니란 말이죠.. 서번트 신드롬 만드는 것도 보르헤스 얘기도 음~ 이 책도 꼭 봐야겠어요. 성 선택설에서 원죄 관련은 무슨 말씀이세요? 궁금해요

AgalmA 2015-06-13 23:03   좋아요 0 | URL
약물 접근이 쉽긴 하지만 로봇은 관점이 달라지는 부분 같아요. 엄청나게 똑똑하면서 어떤 위험도 감수하며 절대 복종하는 슈퍼맨을 인류의 하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유혹을 쉽게 버릴 수 없을 듯. 어쨌거나 인간은 쉽게 소모되니까.
이 책에 SF물(소설, 영화)도 예로 많이 나와서 재밌었어요.
마약류, 알콜 중독 등 이미 폐인 인간을 만들고 있다고 보는데요. 책에 보니 의학용으로 이용되는 약들이 꽤 있더군요.
성 선택설-원죄에 대해선 본문에 추가했습니다/

cyrus 2015-06-1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속 로봇... 저만 그런가요? 표정이 섬뜩하게 느껴져요. 노인환자들이 저 로봇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

AgalmA 2015-06-13 23:03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볼 땐 좀 그랬는데, 책에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가볍게 키스하고 말을 걸기도˝ 하는 부분을 보니, 우리가 반려동물에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듯합니다. 사람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심리적 부담이 적으면서 감정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어서...저도 저런 로봇을 실제로 만나고 싶어요~

[그장소] 2015-06-13 23:44   좋아요 0 | URL
저는 단순하게 노인분의 성장시대엔 그런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공상에만 존재하던 이상향이 눈앞에 있어서
그 놀라운 세계를 보고 간다는 기쁨에..그런것이..아닐까...짐작 되요.

qualia 2015-06-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 님은 로봇이 의식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그러니까 과학기술/인공지능/인지과학이 극도로 발전해서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한 로봇을 만들었을 때, 그 로봇은 인간과 같은 의식적인 로봇(conscious robot)이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① 단지 좀비(zombie)와 같은 의식 없는 로봇에 그칠 것이다. 즉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의식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과, ② 인간 뇌에 근접하는 복잡성을 지닌 인공뇌 로봇을 만든다면, 그 로봇은 당연히 인간과 같은 의식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주장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미치오 카쿠는 아마도 의식적인 로봇이 가능하다는 편에 선 것 같은데요.

미치오 카쿠의 『마음의 미래』를 읽으신 Agalma 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혹은 이 책을 읽기 전(앞)과 읽고 난 뒤, 의식/마음에 대한 Agalma 님의 견해가 바뀌었는지요? 첫 인사/댓글에서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모처럼 여러 가지 다양한 궁금증/상상/사유를 불러일으키는 글을 읽은 것 같아서요~

AgalmA 2015-06-13 06:56   좋아요 0 | URL
qualia님 반갑습니다. 질문은 죄송해 하실 일은 아닙니다. 저도 덕분에 생각 정리를 하게 되니까요 :)

우선,
우리의 의식은 호모사피엔스부터 잡아도 10만년 전부터 진화되어온 산물이라는 걸 전제하겠습니다.

아래 guiness님이 물리법칙을 거론하셨는데, 물리적인 문제는 인간이 양자역학의 열쇠들을 정확히 깨치기 시작한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화의 시간을 뒤바꿀 힘을 얻게 될 테니까요. 그런데 그게 언제인가가 문제겠죠^^;

네, 미치오 카쿠는 의식적 로봇을 긍정하는 걸로 보였고, 한 발 더 나아가 의식의 위험성을 알기에 윤리/도덕적으로 제어가능한 장치를 우리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모 아니면 도 같은데요. 인간의 뇌는 각 부위가 서로 긴밀하게 뉴런 정보를 교환하잖습니까? 인간 이상의 수행력을 원한다면 좀비 로봇에서 그칠 수 없을 겁니다. 이미 자기를 알아보는 로봇까지 나왔더군요. 그러나 달걀이 깨지는 거라는 감각조차도 아직 없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능력을 정확히 구현하게 만들려면 결국 의식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감정과 윤리성 등을 어떻게 로봇이 가지게 할까가 문제인 거 같던데요. 그런 의식은 인간 진화의 역사 속 생존 투쟁, 감정 소통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죠. 그런 걸 프로그램화해서 인간이 과연 짜 넣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말 神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차저차해서 의식을 넣었다고 합시다. 문제는 의식은 한번 생기면 진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의식=자기 보존력이기 때문이죠. 인간의 제어가능 장치를 풀게 될 겁니다. 한 마디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게 되는 거죠. 인류의 시작이 그랬듯. 기어다니던 내가 이렇게 성장했듯. 인류가 수많은 멸종을 야기했듯 의식을 가진 로봇이 나온다면 인간의 최대 적이 될 걸요. 그 의식은 다름 아닌 인간인 우리의 의식에서 나온 것이니 더더욱.
책에 보니 외계인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차원의 존재도 아닌 거 같고ㅎ;; 이 외계인 장이 가장 공감되면서 재밌었어요ㅎ!

의식/마음에 대해 심리적 그림은 잡혀 있었기 때문에 바뀌었다고 할만 한 건 없고요. 뇌구조의 구체적 작용과 현실적 과학작업들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고, 뇌 지도에 따라 인간이 조작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드니 맘이 참 착찹했습니다.


qualia 2015-06-13 23:06   좋아요 0 | URL
Agalma 님, 저한테도 생각거리를 많이 주시네요~

대체로 Agalma 님 의견에 동의하는 점이 많습니다. 의식 있는 로봇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군요. 의식 로봇이 “인간이 인간이 양자역학의 열쇠들을 정확히 깨치기 시작한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고 하셨는데요. 양자역학 얘기가 들어가는 것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군요. 하지만 세부 사항은 아직 거론이 안 된 단계이니까, 다음에 있을지도 모를 의견 교환을 기대해야 하겠네요~

Agalma 님은 “인류가 수많은 멸종을 야기했듯 의식을 가진 로봇이 나온다면 인간의 최대 적이 될 걸요.”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인류의 최대 적은 인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그게 그거 아니냐’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의 최대 적은 의식적인 로봇이 아니라 인류 그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저는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예측합니다만) 다름 아닌 인류 자신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봅니다. 결코 로봇 군단한테 멸종당하지는 않을 것이라 봅니다. 외계인 요인은 편의를 위해 넣지 않기로 하죠.

이런 추측에는 약간의 동어반복적 오류가 끼어들 수 있습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인류는 진화를 거쳐 발전/발달해온 존재죠. 헌데 과학적으로도 우주론적으로도 이 진화는 결코 끝나지 않았고 계속 진행중이죠. 그런데 세계의 석학들이 말하듯이 인류는 지금 생물학적 진화의 정점에 다다랐기 때문에, 생물학적 진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진화의 단계/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하죠. 모두들 알다시피 생물학적 기반과 비생물학적 기반이 융합되는 단계로 진화할 것이라는 얘기죠.

그렇다면 이런 논리가 성립합니다. 새로운 생물/비생물 융합체로 진화할/진화한 인류도 인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미래의 초과학에 힘입어 출현하게 될 의식 로봇도 근본적으론 인류라는 종이라는 것이죠. 의식 로봇은 로봇이 아니라 인류라는 겁니다. 이건 단순 논리적 귀결을 넘어서서 인류의 운명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보면 의식 로봇과 인류을 다른 종(?)으로 보는 것은 오류라고 판단합니다. 물론 인류는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서 단일종이 아닌 여러 하위 종(?)으로 분화하면서 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그 모든 하위종들은 근본적으로는 인류라는 범주/개념/종에 속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건 철학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논의라고 봅니다. 미래의 의식 로봇 종족을 인류 자신의 후손으로 볼 것이냐, 인류와는 다른 기계 종족 따위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요즘 로봇윤리학을 거론하는 경우도 많아졌는데요. 의식 로봇 종족, 기계 종족에 대한 논의가 먼저 선행돼야 로봇윤리학 정초 작업이 더 견실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아래 guiness 님한테 드리는 답글에도 거론했습니다만, 저는 아직 미치오 카쿠의 견해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Agalma 님 의견과 guiness 님 의견 사이에 약간의 상이점이 보이는데요. 미치오 카쿠가 원래 과학자이므로 철학적 사유에는 좀 약점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좀 더 심도 깊은 논의는 다음으로 미뤄야 되겠네요.

AgalmA 2015-06-14 15:27   좋아요 0 | URL
미치오 카쿠는 이론 물리학자 답게 최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걸로 보였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미래의 인류가 어떤 걸 선택할 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qualia님께서 말씀하셨듯 최소한의 윤리 정초 작업이 필요하다 강조할 뿐.

인류 최대의 적은 인류 자신이란 전제는 철학에 가깝죠. 실제로 다윈 이전, 이후 인간은 철저히 다른 생물체와 자신을 끊임없이 분류하고 차별했습니다. 저는 인간이 고차원적인 윤리성을 갖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역사를 돌아봐도 일상 속에서도 매우 이기적이며 종족적인 윤리성에 갇혀 있으니까요. 강자건, 약자건. 현재까지도. 포유류 생물은 생물학적으로 이 특징에서 더 자유롭지 않습니다. 재미나게도 우리 신경세포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도 로봇에게 인간에 가까운 외모를 주는 것에 꺼림칙해 하고 있죠. 아직도 인종차별, 성차별이 건재하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저는 보고요. 이 마당에 로봇을 인간대우? 어느 정도까지 인간에 가까우면 그렇게 될까요....저는 낙관적이지 않네요. 순수 인간이 아닌 걸 알고 ˝우리 헤어져˝ 상황이 되지 않을까...이런 종합에서 보면 인류가 자신의 적인 건 맞는 말씀이죠~

의식 로봇 문제를 넘어 로봇-인류 대척점이 와해될 지점이 있죠. 책을 읽어보시면 qualia님도 느끼시겠지만 인류는 비생물적 융합체 상태를 최종적으로 가지게 될 거 같습니다. 아바타 성향이냐, 기계인간 성향이냐 여러 갈림길이 있겠는데, 그때 지구 상태에 따라 그 선택점이 달라지리라 봅니다. 미치오 카쿠는 인간 성향상 인간적 특징은 최대한 가져갈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뇌-의식이겠죠. 물질이 아닌 전자기 상태로 옮겨서라도...

<직관펌프> 다 보셨나요? 이 책 보고 저는 <직관펌프> 읽던 거 마저 읽고 있는데, 상호연관되는 게 많아 흥미롭습니다^^

CREBBP 2015-06-12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새치기를 좀 하자면.. 물리적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에요. 이론적으로는 언젠가 신경망의 복잡한 구조와 메카니즘이 완전히 이해된다면 그걸 흉내내는 일은 가능할 테지만 어느 시점에서 무어의 법칙이 크기 면에서 칩의 크기가 원자, 분자 만큼 뭐 그만큼의 한계에 다다른다는 거죠. 그렇게 몹시 작아지더라도 인간 뇌의 능력만큼 되려면 그 컴퓨터는 도시만큼 커져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책에)에 동의하는 편이에요.

AgalmA 2015-06-13 05:33   좋아요 0 | URL
새치기 환영요~ㅎㅎ

qualia 2015-06-13 21:57   좋아요 0 | URL
guiness 님, 흥미로운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논자들이 의식적 로봇이 불가능하다는 논거로 드는 것은 대체로 ① 의식의 물리적 환원불가능성, ② 인류 과학기술의 인공뇌 개발 한계 ③ 의식의 본질 파악에 대한 인류의 지적/원천적 한계, 등등 따위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요. guiness 님은 ②번에 해당하는 인류 과학기술의 한계를 그 근거로 드셨다고 할 수 있군요. 즉 반도체/컴퓨터 기술의 한계 때문에, 다시 말해 물리적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미치오 카쿠의 책에 동의한다고 하셨으니까 『마음의 미래』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가 보죠?

그런데 스티븐 호킹,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Elon Musk; 일란 머스크), 닉 보스트럼(Nick Bostrom; 닉 보스트롬), 등등은 의식을 지닌 로봇이 가능하다는 견해죠. 즉 이분들은,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미래 인류한테 최대의 위협이 될 것이라거나, 우리 인류는 생물학적 기반과 비생물학적 기반이 융합된 로봇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했죠. 이런 주장들은 미래의 로봇이 인간의 명령이나 프로그램을 거스르는 자유의지, 다시 말해 의식을 지닐 것이라는 주장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점과 관련해서 미치오 카쿠의 견해가 (guiness 님의 말씀이 옳다면)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제가 아직 미치오 카쿠의 책을 읽지 않았으니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성인 뇌에는 1천억 개 안팎의 뉴런(neuron; 뉴란; 뉴론)과 이것들이 서로 다중연결된 100조~500조 개의 시냅스가 있다고 하죠. 정말 상상을 하기 어려운 복잡성입니다. 이런 인간 뇌의 뉴런과 시냅스를 1대1 식으로 반도체 칩 기술로 구현한다면, 그런 인공뇌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질지도 모릅니다. 즉 현실성이 좀 떨어지는다는 것이죠. 이와 비슷한 내용이 아마도 『마음의 미래』에 나오는 모양인데요. 그러나 이것이 의식을 지닌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결정적 반론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면, 이론적/원리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면서, 인간뇌에 필적하는 인공뇌를 다른 첨단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분명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을 초월하는, 다시 말해 무어의 법칙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어떤 돌파구가 반드시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CREBBP 2015-06-13 23:30   좋아요 0 | URL
qualia님 책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 이 책이 그렇게 깊이 있게 다루지는 않아요. 마음을 다루는 과학 기술의 이모조모를 가급적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매우 광범위하게 다루지요. 그래서 논쟁적이고 학술적이기보다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것이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 수준이지요. 무어의 법칙과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데..거기에는 당연히 기술적 한계라던가 어려운 점도 같이 소개되죠. 저는 저자가 알려준 여러 한계들 중에서 그 한계에 꽂혔다는 편이 맞겠죠. 집적 기술의 끝이 원자 크기에서 끝나면 그 이후에는 다른 방법은 없을 거다. 원자 크기보다 어떻게 칩이 작아질 수가 있을까 뭐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는 편이 맞아요. 논쟁을 하기엔 디테일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요. 저자는 미래를 보다 마음을 지배하게 될 거라고 결론 짓지만.. 읽다보면 그 한계를 독자가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나름 양면성을 고루 보여준다고 할수 있죠. 무엇보다도 총망라된 지식이 쉽게 쓰여져서 좋은 책이에요.

스윗듀 2015-06-13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아갈마님 짱짱-! 오늘 저랑 과학으로 크로스! 헤헤

AgalmA 2015-06-13 05:47   좋아요 0 | URL
lovelydew님 정리 잘 하셨더군요. 저도 덕분에 공부 잘 했습니다^^

비로그인 2015-06-1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기엔.. 그동안 보여주신 재주들이..... ^^;;

이야기할 여지가 많아요~ 이 분야에 겁이 많은 독자이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 흥미로운 부분이 무척 많습니다~ >_<

저 역시 불가능한 치료를 늘상 시도하는 인간인지라....^^;; 하하;;


AgalmA 2015-06-13 22:57   좋아요 1 | URL
재주라기 보다 그동안의 재고ㅎ를 보여드린 감이 있지요. 세상이든 정신 속에든 갇혀 있는 걸 원하지 않기에 애쓰지만 늘 한계에 부딪히고 다 때려치우고 싶죠; 모든 걸 버리고 속세를 떠날 거 아니라면 결국 노력이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뇌과학 책 이것저것 살펴보니 너무 전문적이어서 따라가기가 벅찼는데 이 책은 두루두루 만족스러웠습니다^^b
치료가 가능하다면 지금의 `나`라는 건 사라질테죠.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진 뒤처럼...

[그장소] 2015-06-1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학술장에 온 기분이예요! 멋진 이야기들! 다들 정말 끝내주게 멋지시다!^^
잘 읽고 가요! 들린 김에 인사남겨요! Agalma 님~ 비가 왔다 갔다 하는게 장마..
게릴라 성 일 모양이예요..도시지형에 국한 된 거라고 아직 이쪽은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공기의 흐름을 간과한..모양..국지성 호우,이런 비는 답답한데..
기분 조절 늘 상쾌하게 유지 잘 하시길..바랄게요!
다음에 또 들릴게요..
대문사진..바꿘..^^ v~인상깊게 보고 갑니다..^^

AgalmA 2015-06-14 00:18   좋아요 0 | URL
[마음의 미래] 덕분에 흥미진진한 얘길 나눌 수 있어 저도 즐거웠습니다 :)
여름 전에 6월이 장마 시즌이잖아요...비가 메르스도 좀 가져 가줬으면...
그장소님은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으신 거예요....

[그장소] 2015-06-15 00:53   좋아요 0 | URL
비가 오면 비를 즐겨야죠...저는 저를 [그장소]에 격리 중...입니다.^^
메르스가 확실히 사회전반을 마비시키고 있긴 하네요..
몸 건강 마음 건강 잘 , 유지하시길..기도할게요.

AgalmA 2015-06-15 01:21   좋아요 0 | URL
스노우볼에서 격리되면 안될 텐데요...제가 그래서 걱정인 지도요....
그장소님 평안 저도 멀리서 기원합니다.
 
친구, 파이? 아니면 과자?
아트나인 영화관 & 자비에 돌란

 

 

 

 

 

 

 

 

 

 

 

 

 

 

§

감독에게만 페르소나 배우가 있는 게 아니다. 관객에게도 페르소나 배우가 있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가 내게 그렇다는 걸 직감했다. 이쯤 되니 다른 관객들은 어떤 공감을 가지고 그를 보는 걸까 궁금하지만 알 수 없다. 그 내밀한 감정과 삶을 숨기고 영화 속에 몰래 투사하고 있을 테니... 나는 수다스러우니까 이 기록을 남긴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마이클(자비에 돌란)을 담당한 정신과 의사 로렌스가 갑자기 행방불명된다. 그린 박사(브루스 그린우드)는 당시 함께 있었던 마이클에게 단서를 얻고자 서둘러 병원으로 온다. 덧붙여 집착과 히스테리 가득한 동거녀와 다운증후군 조카를 키우고 있는 을씨년스러운 가족의 굴레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라는 이유도 있다.

 

그린 박사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상대를 만난다. 마이클은 협조에 대해 조건을 건다.

 

 

1 내 진료기록을 절대 보지 말 것
2 간호사 피터슨을 배제시킬 것
3 그리고 내게 초콜릿 박스를 선물할 것
이 조건이 왜 중요했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초콜릿이 영화 <제8요일>에 중요한 역할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 소재를 쓴 건 시작부터 영화 평점 50%를 깎아먹는다. <제8요일>이 오래전 영화라 지금의 관객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어떤 변명이든 감독의 한계를 드러낸다.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서 대화만 가득한 영화인데도 크게 지루하지 않았다. 자비에 돌란의 아우라가 집중이 분산되지 못하게 강력했기 때문이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울기 시작했다. 마이클이란 캐릭터에 공감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처음이자 유일하게 만났을 때 아버지가 쏴 죽인 코끼리를 본 것이 마이클의 평생 트라우마가 됐다. 누구도 그 상처를 들어주지 않았고 감싸주지도 못 했다. 홀로 죽은 코끼리처럼. 아버지는 아프리카 사냥꾼, 어머니는 듣는 자가 아니라 자기 노래에 빠져 있는 성악가. 부계사회에 적응할 수도 없고 모계사회의 보살핌도 받을 수 없는, 현재 지구는 그 상태다. 모두 외톨이며, 타인이 만든 규칙에 휩쓸려 사는 감옥이자 자신의 병을 감내해야 하는 정신병원의 삶이다.
누가 누굴 치료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무엇이 위안거리는 될 수 있겠지. 어머니의 노래를 자기 식으로 마이클이 간직했듯.

로렌스의 행방불명으로 자신의 규칙을 강요할 수 있게 된 단 하루. 마이클이 선택한 건 탈출이었다. 짐작하다시피 이 세계에서 탈출은 죽음뿐이다. 어딜 가든 타인의 규칙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유롭지 못하다. 로렌스의 행방을 묻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서만 귀 기울이는 이 세계에서 미래는 종(種)으로서의 끝없는 적응을 요구할 뿐이다. 마이클의 상처로 가득한 삶은 이미 조현병으로 낙인찍힌 채 감금이라는 처벌만 주어졌잖은가. 마이클을 사랑한다면서 바라보기만 했던 로렌스보다 더 나은 사랑을 하는 사람은 이 지상에 얼마나 되는 걸까. 이리저리 회피하면서 자기 위치를 고심하는 그린 박사 처지 아닐까.

그린 박사와 피터슨 간호사의 관계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복선이다. 이들은 오래전에 끔찍한 사건으로 자식을 잃고 그 상처 때문에 이혼했으나 이 사건으로 재회한다.
피터슨 간호사가 마이클을 끊임없이 제어하려 한 것은 지키지 못한 자신의 아이 때문이며, 그린 박사가 마이클을 그토록 살리려 애쓴 것도 그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이클이 사망하자 그린 박사가 하염없이 울며 ˝용서해 달라˝ 말하는 최종적 도착지는 죽은 마이클도 죽은 자식도 아닌 살아있는 피터슨 간호사였다. 화해는 산 자끼리만 가능하다. 너무 늦지 않는다면.

다시 돌아온 로렌스가 하는 말처럼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한다. 무언가 깨달았을 때는 언제나 늦었고 많은 희생이 치뤄진 뒤다. 그린 박사와 피터슨 간호사의 해피엔딩은 마이클의 희생을 통해서 가능했다. 희망을 꿈꾸는 자는 어떻게든 찾을 수 있겠지. 그런데 평생 상처뿐이었던 삶을 구하기란 왜 이리 힘들까. 상대에게 약을 먹고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는 속내 중에 스스로 빨리 이겨내라는 질책과 모종의 우월감은 없을까. 우리가 어떤 책임까지 감수하긴 힘드니까. 나 자신도 무리를 벗어날 수 없는 멸종 위기의 엘리펀트니까.

<제8요일>에서는 초콜릿만 먹고 끝나지 않았다. 옥상에서 떨어져 확실히 끝을 냈고, <엘리펀트 송>에서는 치밀하게 머리를 써야 했다.
미련하고 멍청한 나는 지금 흐린 하늘을 보고 있을 뿐이다. 때마침 비도 온다. 듣는다.




ㅡAgalma
 

 


덧)

영화를 현실에 너무 대입해 해석했다고 웃어도 되고 내 의견에 공감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 내실있는 자유를 꿈꿀 수 있기를.


 

 

 


[불편한 음악으로 불리기도 하는 ECM 레이블 창립자 만프레드 아이허와 이은수 인터뷰 - '듣기'에 대해서]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장소] 2015-06-1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잘 봤어요.아직 못봤는데..기대가 엄청되는,,지극한 동감을 전해요..
이 세계가 정신병동과 다름없고 멸종위기의 얼마 안남은 희귀인류일지..
모르겠어요..우리 모두는 각자 독특하니..말이죠.^^

AgalmA 2015-06-14 00:20   좋아요 0 | URL
귀하죠. 다 귀한데....

스윗듀 2015-06-2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보고왔는데 agalma님 해석은 이러하군요! 전 그저 자비에돌란 헤....침 질질 정도 연출하지말고 그냥 연기했으면 좋겠어요 ㅋㅋㅋ

AgalmA 2015-06-28 02:08   좋아요 0 | URL
ㅎㅎ 자비에 돌란 연기면 연기, 연출이면 연출...감독하면서 주연 계속 하는 거 찬성합니다~ 자신이 각본, 감독한다면 캐릭터를 제일 잘 아니까 중요 배역을 자신이 소화해내고 싶기도 할 거예요.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이 참 소화해내기 쉽지 않은 캐릭터이기도 하고.

스윗듀 2015-06-28 02:08   좋아요 0 | URL
ㅎㅎ말나온김에 자비에돌란 영화 중에 뭐 제일 좋아하세요? 마구 공유하고싶다능 _

AgalmA 2015-06-28 02:13   좋아요 0 | URL
안타깝게도 제가 그의 영화를 많이 못 봤어요^,ㅜ
<탐 엣더 팜>, <아이 킬드 마이 마더>, <하트비트> 볼 게 많더라고요...
lovelydew님은 뭐 인가요?

스윗듀 2015-06-28 02:16   좋아요 1 | URL
저도 아직 다보진 못했는데 지금까지 중에서는 <하트비트>에요! o.s.t로 쓰인 bang bang이란 노래가 있는데 영화 보고나서 일주일 정도는 계속 생각나더라구요 ㅋㅋㅋ

AgalmA 2015-06-28 02:19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하트비트> 돌란 패션 스타일링이 제일 제 취향이긴 하더군요. 오호호~~
오, ost가? 찾아서 들어봐야겠군욧!

스윗듀 2015-06-28 02:24   좋아요 1 | URL
악!!!!! 저도 그 스타일링 완전 좋아요😍 이런 멋진 게이같으니!

AgalmA 2015-06-28 02:26   좋아요 1 | URL
역시👓...😉

스윗듀 2015-06-28 02:28   좋아요 0 | URL
ㅎㅎ참고로 bang bang은 버전이 아주 많은데 영화삽입곡은 dalida가 부른 bang bang이에요

AgalmA 2015-06-28 02:34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 게이 영화는 왜 그렇게 신파로 내달리는지...현실 반영이라 해도 표현이나 연출에 있어 자비에 돌란에게 배울 게 많다고 생각됩니다ㅎ;)
네, dalida-bang bang~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