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장르의 B급 문화 - 길들여지길 거부하는 자들을 위한 불온성 마니에르 드 부아 Maniere de voir 시리즈 2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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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인지 세상 때문인지 대체로 다 문제로 거론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화, 장르는 대부분 주류 문화가 아닌 B급 문화였다.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이건 꼭 읽어야 해! 했다. 내 원한을 풀어다오~ 왜 공포나 호러는 B급 장르로 분류하는가. 밥은 먹지만 화장실은 안 가는 것 마냥. 평생 낯선 사람은 안 만나는 사람인 양. 

이참에 제목 때문에 읽게 되는 책 리스트를 만들어볼까 하기도 했다. 헤르타 뮐러 <우리는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같은 제목, 정말 멋지잖은가( <숨그네> 만큼 숨 조이듯하지 않아 약간 아쉬웠다).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은 제목과 내용, 명성이 발전기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양상?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는 최근 한국에서 가장 히트한 제목 아닐까 싶다. 곧 10쇄 돌파한다고 들었다.

좋은 제목이라기 보다 직관적으로 주제를 강조한 제목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정식 리뷰와 페이퍼 중 어떤 식으로 쓸지 가닥이 잡히지 않아 고심 중이다. 이 글을 수정하든 차후 2차로 또 올리든 할 생각이다.
주말에 읽거나 소개하기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어 심심풀이 삼아 이 글을 썼다.... 언제나 매사 심각할 수는 없잖은가-_-)

책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기고된 칼럼 편집 판이라 해야 할 텐데, 각각의 질과 양 편차가 들쭉날쭉해서 별 하나를 뺐다. 하지만 대중문화에 대해 심도 있으면서 쉽고 다양한 관점을 바라던 독자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흔히 문화에 대해 말할 때 이데올로기와 패러다임 등이 성격 나쁜 문지기처럼 서 있는 어렵고 힘든 책이 아니다(그 특성상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잡지를 읽는 듯한 편집이라 고성이 오가고 자아비판을 요구하는 비평글 같지 않아 좋다. 책 제목이 내포한 키치적 재미와 지식이 가득하다. 평소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고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한 나도 몰랐던 혹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점검할 수 있었다. 
글렌 굴드는 모차르트를 싫어했는데, 모차르트는 청소년기보다 더 무능한 작곡을 하다 죽은 거라고 말하는 인터뷰는 거의 개그 같다ㅎㅎ (3부-길들여지지 않은 음악에서 만날 수 있다.)

대중문화 지식을 얕지 않으면서 넓고 빠르게 갖추고 싶다면 이 책을 참고해 보라. 5~6시간이면 수료 가능.

<르몽드 디플로마크>는 한국판 웹페이지도 있다. 신문처럼 매일 훑어봐도 좋을 것이다.
 ▒ www.ilemonde.com/








GTA(자동차 대탈취 게임)는 타자와의 동일시가 죄의식으로 인한 고통이 아닌 쾌락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대개 진보주의 정치는 추상적인 타자의 이름으로, 추상적인 타자의 이익을 위해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는 진보 정치가 다른 누군가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감수하는 희생 정도로 여긴다(반대로 진보정치의 수혜자는 진보정치를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는 무엇으로 생각한다). 본래 타자는 이질적이며 불가해한 존재로, 동정이나 무시의 태도로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하는 대상이다. 역할수행게임은 타자와 나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으려는 대중의 욕망, 타자를 `다른 누군가`가 아닌 문자 그대로 나와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p84

1부-스크린 위의 환상
스티브 던컨(뉴욕대 갤러틴 스쿨의 미디어 문화 역사정치학 부교수) <당신은 진보인가? 그럼 비디오게임을 즐겨라>

에르제가 창조해 낸 용감한 어린이 탐방기자 탱탱은 전 세계에서 1억 5천만 부가 팔리며 정상에 올랐다. 드골장군은 앙드레 말로에게 "세계에서 나의 유일한 진짜 경쟁자는 탱탱"(앙드레 말로, <우리가 쓰러트리는 떡갈나무>)이라고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p121

2부-심심풀이용 대중문화
필립 비들리에(역사가) <뉴욕,거품의 도시>

<레 미제라블>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곧 이 작품을 하나의 대표적 유형으로 만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대한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파리의 미스터리>(1842. 6. 19~1843. 10. 15까지 <르 주르날 드 데바>지에 연재된 우젠느 수(Eugene Sue)의 장편소설)가 있다. 연재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하나의 주제를 설정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p131

2부-심심풀이용 대중문화
에블린 피에예(<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대중소설이 영속성을 띠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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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2 16: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사이트 추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붙이면 색지값도 솔찬히 나갈듯 싶습니다^^

AgalmA 2015-08-22 16:22   좋아요 2 | URL
다이제스터 글제목답게 북 다이제스터님 출동ㅎ~
네, 인덱스 스티커도 늘 책과 함께 있어야 해서 필수 구비상품^^; 필기구, 독서일지, 메모장 기타 등등 책은 부수적인 것도 너무 많이 필요한 애물단지 같아요;

북다이제스터 2015-08-22 16:54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대충 띄엄띄엄 읽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 고치려고 `밥 먹듯이 잘 소화` 하잔 의미로 닉네임 졌습니다. ㅎㅎ그리고 보니 평소 궁금한건데 agalma 의미 여쭤봐도 될런지요?^^

AgalmA 2015-08-22 19:12   좋아요 4 | URL
닉넴을 너무 거창한 걸 쓴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Agalma는 고대 그리스어로 문자 그대로는 성전 제물(장식품, 선물, 동상 등)을 의미하는데, `그 자체로 마음을 기쁘게 하는 존재`라는 뜻으로 해석해 작품에 자주 쓰이더군요.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의 생각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Agalma가 아닌가 였습니다. 저는 그 중 하나인 Agalma이고요.

2015-08-22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2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2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2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2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2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08-22 2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많은 책이 겉으로만 보면 뭔가 괜찮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읽어보면 실망하는 독자도 있겠어요. 책에 나오는 B급 문화의 사례를 모르면 글을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겠고요. 그런데 이 책의 역자는 에르제 만화의 주인공을 ‘탱탱’이라고 썼군요. 원작표기를 따른다면 ‘땅땅’으로 쓰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틴틴’이 더 정감이 가요. 영어권 나라에서는 ‘틴틴’으로 불러요. ‘탱탱’으로도 불리긴 한데, 롯데 자이언츠의 ‘탱탱’볼이 자꾸 생각나서 별로예요. ‘땅땅’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땅땅’치킨이 먹고 싶어져요.

AgalmA 2015-08-22 22:43   좋아요 2 | URL
저도 이렇게 많은 저자일 줄 몰랐어요ㅎ;; 30여 명이 넘는 필진이 나오니;...
B급 문화 사례를 글 자체가 말해 주고 있어서 따로 개념을 공부하고 들어가진 않아도 돼서 오히려 편할 듯. 게임, 만화, 할리퀸 소설(연애소설), 판타지, 공상과학, 인디음악, 랩과 테크노 등등 아, 이런 걸 b급 문화라고 하는 구나 읽으면서 저절로 알게 될테니 말이죠 :)
필진도 많고 다양한 대중문화를 다루다 보니 누구든 한 두 가지 관심사는 만나게 되죠^^ 이 책에서 라틴 근대 문화 다루던 칼럼은 오, 정말 <불한당들의 세계사> 인가! 박진감 넘치면서 새로웠어요.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 해석하는 부분도 멋져서 다음 리뷰에 소개해 볼까 싶기도 하고...
대중문화 공부 초심자고 너무 큰 기대 아니라면 재미난 내용 건질 게 많은 책입니다. 음악 얘기가 많아 제겐 더 좋았고^-^

근데 탱탱-땅땅-틴틴~ cyrus님 댓글로 한바탕 랩을 하고 가신 기분ㅎ;;

[그장소] 2015-09-18 14:54   좋아요 1 | URL
우화핫~^^이 와중에 그..팅팅..탕탕~틴틴!하는데,
전왜..비비총 연상이나 하고 앉았을까요?!^^;

[그장소] 2015-09-17 0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책에 저렇게 인덱스를 하는군요??어마무지...ㅎㅎ
저는 그냥 써요..ㅎㅎㅎ(원시인)..노트에 옮겨 적죠...기억하기쉽기도하고...

AgalmA 2015-09-17 11:24   좋아요 1 | URL
ㅎㅎ 인덱스로 저렇게 표시해놓고 저도 노트에 옮겨요^^; 책 중간중간에 필기를 하다보면 읽기 흐름이 느려져서 저렇게 표시해놓고 나중에 한꺼번에 필기하면서 다시 복습하는 거죠. 가끔 양이 너무 많으면 독서가 정말 싫어져요ㅠㅠ 읽는 걸로 끝나지 않는 독서... 요즘은 알라딘에 리뷰도 쓰고 하니 더 개미지옥ㅋ;;

[그장소] 2015-09-17 14:57   좋아요 0 | URL
그렇게 열심인 Agalma님...저는 저런 텍스트자료를 삼을 만한 책은 거의 보지않는지라..존경스럽다고나..할까요.또 읽는다 해도 님처럼 쓰는 .읽는 ..방식이나 생각부터가 좀 틀자체가 다른...면이 있어서..그점이 우리가 유일하게 닿게 하는 점일거라고 봐요..같은걸두고 보면 질투심나서 못볼듯^^♥

AgalmA 2015-09-18 12:53   좋아요 1 | URL
같은 걸 다르게 보는 것도 질투심 나지 않나요ㅎㅎ;
읽으며 생각하며 고군분투하는 모두를 존경합니다.

[그장소] 2015-09-18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투를 할 선상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면 ..제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세계 쪽..말예요.그럼 동경이나 존경으로 가죠..질투는 레벨이 비슷해야 하는 거라고 보고요..Agalma님은 저와 다른 급에 계시다고 생각해요. 오를 나무가 아닌 것..이라면 체념이 너무 빠른가요?!^^ 그치만 욕심난다고 다 가질수 없듯 그 대로 지켜놓고 싶은 선이 있잖아요.무너 뜨리고 싶지않은...그런 것..이라면 이해가 좀 가실지..모르겠어요.분야가 다르다..하고 아예 저 자신의 세계와는 분리해 봅니다.그냥 동경속에 계시는게 좋아요.그렇게 봐야 할 사람들이..그래야 지켜지는 관계도 엄연히 있다고 저는 여겨요.무리는 살면서 해보잖아요..그간 살며. 수없이 해본 일들이 무리라면..그 덕에 얻은 일종의 팁 ㅡ으로..거기 그냥 둬야 할 것은 무리 말고 그대로 두고 보라..입니다..내 가 보고 싶은 세상과 공존할 방법인 셈이죠..질투라니..당치않음^^

AgalmA 2015-09-18 14:07   좋아요 1 | URL
급이 다르다는 말은 당치 않으시고요; 그장소님 생각의 고리들 해독하는 것도 어려울 때 많다고요!
어려서부터 늘 제가 ˝어렵다˝는 얘길 들어왔어요. 대하기 어렵다는 관계적인 데서부터(가족에게서도;), 말하는 게 어렵다는 것 등등... 사람들과 참 섞이기가 힘들었어요. 여긴 그래도 좀 나을까 싶어서 비비적 끼어앉아 보려 했죠ㅎ;
여전히 저는 소통에 문제점이 있는 인간인가 그러네요...생각을 전달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죽을 때까지 아마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그장소님 비롯해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시려는 마음 감사히 생각합니다.

[그장소] 2015-09-18 14:50   좋아요 1 | URL
아하하^^그건 저와 비슷하시네요.저도 늘 감당할만한 사람이 아니란 얘길 듣곤해서..저으기 공감!!그치만 소통에 아주 소질없는것이 아니라 Agalma님이 세상에 제대로 주고픈 것과 받아들이는 자들의 이해에는 다소 주관적 인 오해가 항상 끼어들기 마련이라..자신이 듣고 싶어하고..보고싶은 것만 취하길 원한다는 면에서..그 오해의 오류 자체를 그냥 즐겁게 이해하면 좀 쉽지않을까..ㅎㅎㅎ그렇다고 상처안받게 되거나 하진 않지만요..이기는 데 내성은 좀 더 강해지는 듯..상관없음으로 내 길에 나만..무쏘뿔처럼..그럼 된다고..지금처럼..^^ 잘하고 계시다고 저는 봅니다.저는 좀 더 강해야겠구나 하는걸 Agalma님 보면서 배우니까요...겨우 비비적 끼어 ㅡ라고 하시면..님을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소통 잘 하고 있다 여기는 분들이 상처받을겁니다.ㅎㅎ인기인모드도 가끔은 장착하셔요!!그 정도 하셔도 된다고 봅니다!!♥

AgalmA 2015-09-18 15:57   좋아요 1 | URL
인기요? 따 안 당하면 다행이라고 생각중인데요! 물론 아! 하면 어! 하고 손뼉 마주쳐주시는 이웃분들도 계시죠. 그장소님처럼^^ 제가 얼마나 감사해하는지 모르실 겁니다.
독서의 외로움 만큼 그 내용의 소통에 대한 외로움도 담보된다 생각해요....저자들도 그런 남모를 사명감과 외로움 속에 썼듯이...

[그장소] 2015-09-1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님처럼 분석학적 글의 깊이로 가면 스스로도 외롭고 고단한 길이 됨을 ..그럼에도 많이들 호응에 까지 갈 수있게하는 것 역시 자신의 능력이라..봅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하실테니..걱정마시길!! ^^ 그럼요!^^

AgalmA 2015-09-18 17:32   좋아요 1 | URL
˝사람은 적극적 의지(`...를 하자`)에 의해 진리에 도달하지 않는다. 진리는 항상 어쩔 수 없이 사유하게 됨의 결과로서 획득된다˝ - 질 들뢰즈가 프루스트를 분석한 것을 고쿠분 고이치로가 다시 풀어서 인용한 문장. 질 들뢰즈는 이 사유의 힌트를 또 어디서 얻었을까요? 칸트? 라이프니츠? 갈수록 골짜기~_~...

[그장소] 2015-09-18 18:20   좋아요 1 | URL
아 하하~ 그 늪을 재려고 늪에 들어가겠냐..시면 오!
정중히 사양 하렵니다. 오늘도 내일도 진리는 찾는다고 다 찾아지는 보물찾기 랄 수도 없으니..자신이 원하는 답을 강구코자 하는 이에게 뵐 ..그런 것이라고만 정의 해 놓고..저는 무식(밥을 먹어?!=죽음)의 골짜기를 사정없이 헤매렵니다.
지팡이하나없이...ㅎㅎㅎ
 

§

장아찌 속에 초파리가 죽어 있었다. 
그는 만족했을까.
빠져나갈 수는 없지만 가득한 먹이 속에서 혼자만의 풍요를 충분히 누렸을 것이다.
생물은 정녕 빠져나갈 길을 찾지 않는다. 목숨이 다하기 전까지 충분히 개똥밭에서 뒹군다. 다음 먹거리, 다음 재미, 다음 관계 그리고 또 그다음의 관심사를 찾아 이동한다. 생은 무료하게 끓고 도피와 포기는 소화작용이다.
나, 나, 나, 나 그렇게 계속 노래를 불러. 다, 다, 다, 다 그런 거지 밉상 맞게 울거나.
가장 뛰어난 현명함도 이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가설이자 가능성이다.
내가 언제나 충분하지 않은 나이듯 초파리도 그렇게 죽었다.
부분 부분에서 초파리를 부러워하며 장아찌를 씻어냈다.



다윈이 물을 주고 사랑한 난초
나는 9년째 키우고 있는 난타냐에게 특별한 애착이 없다. 좁은 화분에서 시시때때로 꽃을 피우며 살아내는 그 힘을 존경스럽게 바라볼 뿐. 
화분에, 생에 갇혀있는 동질감을 서로에게서 느끼지 않는다. 이는 인간이 잘하는 짓이다. 생의 도취로 가득한 채 어설프게 읊는 자연교감 詩를 그래서 나는 싫어한다. 인간을 앞세운 자신을 위한 치장이나 착각이었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 세계는 고사하고 너 자신도 제대로 부술 용기는 없지? 욕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시가 아니라. 
내가 물을 주고 난타냐는 꽃을 피우며 그저 서로 곁에 있다. 이것은 사실로써 제시되었다. 난타냐를 자연 속에 돌려보내지 못하고 있는 건 미안한 일이다.


장아찌를 씹으며 나는 또 다른 절멸을 생각한다. 
살아있는 초파리라면 내게서 가장 부러워하지 않을 짓이다. 난초도, 난타냐도 그럴 것이다. 다윈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버릴 게, 부술 게 없는지 주변을 살핀다. 
많다. 충분히.


그러나 내 칼은 내게 있지 않다. 







가장 문제적인 건 우리 생각의 선별성이다. 카이사르의 루비콘강 도하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현실세계와 가능세계를 놓치고 혹은 엮고 있는지 보라. 찾자고 들면 무엇이든 어디에서건 무한하리라....




ㅡAgalma



*

카이사르가 루비콘이라는 저 작은 강을 건넌 것이 역사의 사실이 된 것은 역사가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결정한 일이지만,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넌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여러분이 걸어서 또는 자전거나 차를 타고 30분 전에 이 건물이 도착했다는 사실은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사실과 똑같이 과거에 관한 사실이다.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p20

*
라이프니츠는 가능세계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라이프니츠가 선호한 예를 사용해서 이것을 설명해보자.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그것은 이 현실세계에 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사실의 반대를 생각할 수 있다.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은 카이사르는 그 자체로서는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 게다가 어쩌면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았던 세계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을 `가능세계에서는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았다`라고 환언하자고 하는 것이 가능세계라는 생각이다.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았던 카이사르가 그 자체로서는 모순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그러면 그것은 무엇과 모순되는가? 당연하지만 우리가 아는 이 현실세계와 모순된다. 삼두정치의 붕괴,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한마디, 피르살루스전투의 승리, 루비콘강의 도하라는 사건은 다른 무한히 많은 사건이 이루는 계열 속에 짜 넣어져 있다.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았던 카이사르는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넌 이 현실세계와는 양립하지 않는다. 루비콘강을 건너지 않았던 카이사르로부터는 우리가 아는 이 세계에서는 현실화하지 않았던 다른 사건의 계열이 뻗어져 있다. 즉, 루비콘강의 도하라는 사건에서 계열은 `분기diverger`하고 있다. 분기한 계열들 간의 양립 불가능성을 라이프니츠는 ˝불공가능성 不共可能性, imcompossiblite˝이라 부른다. 두 카이사르에 의해 표현되는 두 세계, 이 현실세계와 다른 가능세계는 불공가능적이다. 바꿔 말하면 이 현실세계에는 공가능적인 계열들의 다발이다. 이것은 온갖 개체가 세계와의 공가능적인 관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는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넌 이 세계를 `표현exprimer`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쿠분 고이치로 <고쿠분 고이치로의 질 들뢰즈 제대로 읽기>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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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식(識)의 집(執), 아집에서 해탈까지...anuloma의 의미를 음미하며
    from 흔적의 서재 2015-08-20 22:37 
    아(我)는 식(識)의 집(執)이란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유식 불교에는 집(執)이 많다. 아집, 법집, 변계소집...집착을 푸는 것, 해탈은? 라이프니츠식으로 말하자면 나를 구성하고 있는 빈위(賓位)들을 특이성의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 빈위들은 모나드들을 구성하는 실체들이고...라이프니츠는 모나드를 단순 실체로 정의. 한자경 교수는 ‘일심의 철학’에서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를 모두 비판.(164 페이지) 개체적 자기의식의 확실성으
 
 
2015-08-19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0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0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9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0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8-20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사색의 거릴 방황하고 계시는?^^ 유영하고 있다..라고 하여야 하나?
나에게 철학이란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가끔은 책따윈 읽지 말았어야 하는 거였노라고,
미친듯이 후회가 밀려와도..또! 다으음~~하고 손이 새우깡찾듯 , 그럴 뿐이고!
별일 없는 것이, 무소식..희소식으로 알고있으나..그래도 서운치 마시라고 안부남겨요!
밤과 낮 기온차가 제법..이예요..감기 조심하는것! 아시죠?^^


지치지 말라...그대, 아직 그대의 손에 온기는 채 식지 않았다.
그러니 아직,아직 멀었노라.
더 힘내라 다그치는 내가 노여워도..나에게 화를 냄을 기뻐하리,
다만, 나의 벗 ,지쳐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기를...

AgalmA 2015-08-20 02:27   좋아요 1 | URL
생각만 많고 철학은 약에 쓸래도 없는 건 아닌지 참 딱한 중생 아니겠습니까...
살펴 주셔서 감사드려요. 사람을 살피려면 자신 또한 두루 살펴봐야 되니 그리 쉬운 일이 아니죠.
매일매일 제게 ˝정신차려라˝ 만트라를 읊듯 합니다~_~....

cyrus 2015-08-20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초 사랑하니까 법정 스님이 생각나요. 스님의 소유욕에 의해 죽고 말았잖아요. 그 덕분에 스님은 명문을 남길 수 있었고요. 9년째 키우고 있다면 정말 오랜 시간동안 난초 관리를 잘하셨군요.

AgalmA 2015-08-20 21:28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 일화 알죠.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무소유>에 수록되었던가요?
반려동물들이 집에 사람이 없으면 괴로워하는 걸 보며, 나 좋자고 함부로 맞으면 안되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집 고양이 구경이 어찌나 좋은지ㅎ;;
독거노인 특성상 화분 정도는 괜찮겠지 했는데, 한여름 화분들 물 줄 일이 걱정되어 긴 여행을 못 가요;;
난타냐는 열대식물인데다 그 지방에서는 잡초과라;; 난초보다 관리가 수월해요^^ 사계절 내내 다양한 꽃을 피워서 관상용으로 참 좋죠 :)

cyrus 2015-08-21 17:5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난초 일화가 나오는 수필이 `무소유`입니다. ^^

antibaal 2015-08-21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우리는 지금
저 너머를 넘어가고 있네요...
방향 없이!
가능 세계 안과 밖...

AgalmA 2015-08-22 16:26   좋아요 1 | URL
꾸준히 노력하면 어떤 벽은 허물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니옷 2015-11-1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공가능성 잘 보았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1-23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넘 좋은 책 아닌가요? 어떠셨어요?^^
역사란 무엇인가?...
제게 인생 단 한권의 책 고르라고 하면, 서슴없이 이 책 선택합니다.
나이때마다 읽을때마다 내용과 느낌이 매번 다릅니다. ^^

AgalmA 2016-01-24 07:38   좋아요 0 | URL
하이고, 그냥 스리슬쩍 넘어가려 했더니 딱 걸렸군요ㅎㅎ;;
북플은 체크 알림을 한번 지우면 됐지 왜 자꾸 흔적을 남기게 해서 이웃들 웹청소 일을 시키는지;;;
<세계사 공부의 기초> 읽다가 영 답답해서 <역사란 무엇인가> 처음부터 다시 읽었죠.
이 책이 왜 좋은지 북다이제스터님도 <세계사 공부의 기초> 읽으시면 더 와닿으실 걸요^^
<세계사 공부의 기초>를 다 읽고 비교 페이퍼를 쓸까, 각각 단독 리뷰를 쓸까 고민 중이요.
 

§
안부를 묻는 사람에게 어떻게 답할지 몰라 이 글을 쓴다. 묻지 않은 말에는 잘도 답했건만 막상 누군가 말을 걸면 나는, 침묵과 대답 사이에서 한참 주저한다.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내 말, 언어에 대해 50%의 확신도 못하는 지금, 나는 나를 번역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타인의 말에는 무슨 뜻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깊이 바라봐야 했다. 이 또한 일종의 나락이다. 말이 생각을 표현한다는 건 본질적으로 혐오스럽다. 병적인 생각이다. 그렇다.


˝신비함 속에도 논리가 있다˝(프란츠 카프카 <꿈>, 워크룸프레스, p16, 오스카어 발첼-오스트리아 문학자)


오늘꿈에서 깨어나 하루 종일 그 뒷맛을 느끼며, 나는 또 꿈을 혐오했다. 내일꿈은 좀 다를까. 과연?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유전자 풀(gene pool)˝ 같기도 하다. 물감처럼 중간색으로 섞이는 것이 아닌, 끝없는 뒤섞임 끝에 나오는 카드 같은 유전자의 욕망 말이다. 에이스가 되고 싶은가, 조커가 되고 싶은가. 리처드 도킨스는 시간이 많다면 유전자 조작으로 모두 가능하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불로불사를 그렇게도....


에밀 뒤르켐 <자살론>은 일체의 감상을 거부하는 문체라 맘에 들었다. 자살과 인종 관계를 따지는 논의에서 인류학 ˝다원발생론˝ 설명 중 ˝성서의 이야기대로 한 쌍의 부부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라, 지구의 여러 곳에서 동시에 혹은 연이어 나타났다... 주요한 인종들이 갖고 있는 특징은 점진적으로 고착되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꺼번에 형성되었다˝(p76)는 주장을 보고 문득 우주발생론을 떠올렸다. ˝발생론˝이라는 단순한 라임 맞추기식 연상이었을까. M이론과 선대폭발이론을 이리저리 맞춰보다가 포기했다. 무덥고 괴로운 여름 때문이라기 보다 내 앎이 아직 가닿지 못해서라는 탄식. 아니면, 나는 궤변과 억지의 달인이라서?

˝우리는 라틴 인종과 앵글로색슨 인종의 정확한 차이를 거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과학적 정확성 없이 자기 나름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에밀 뒤르켐 <자살론>)

˝다원발생론˝과 ˝우주발생론˝의 연결을 다음날 철회했다. 협소하나마 내가 그간 읽어온 스티븐 핑커와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에 의하면 ˝다원발생론˝은 ˝그저 하나의 이론˝일 뿐 ˝정리˝가 될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연선택으로 인한 가지치기식 진화 과정은 매우 설득력 있다. 종교보다 더.
어쨌거나 우리는 이미 범죄가 일어난 이 시간을 끝까지 유추해봐야 할 것이다. 재귀성.

˝곤충은 색각이 뛰어나지만, 그들이 보는 빛스펙트럼은 자외선 쪽에 치우쳐 있고 붉은색은 빠진다. 사람처럼 곤충도 노란색, 초록색, 푸른색, 보라색을 보지만, 사람과 달리 곤충은 자외선 영역을 잘 보는 반면에 우리의 스펙트럼 끝에 있는 붉은색은 못 본다. 당신의 정원에 길쭉한 모양의 붉은 꽃이 있다면, 야생에서 그 꽃은 곤충이 아니라 새에 의해 수정된다고 해도 아마 틀리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예측은 아니지만 말이다. 새들은 스펙트럼의 붉은색도 잘 본다. 신대륙의 식물이라면 아마도 벌새가, 구대륙 식물이라면 아마도 태양새가 수분해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 눈에 평범해 보이는 식물이 사실은 곤충들만 볼 수 있는 반점이나 줄무늬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외선에 색맹이기 때문에 그 장식을 보지 못한다. 많은 꽃이 자외선 색소로 꽃잎에 작은 활주로 같은 것을 그려서 벌들이 쉽게 착륙하도록 인도하는데, 사람의 눈에는 그것 역시 보이지 않는다.˝
(리처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김영사, p78~79)

유성생식을 돕는 새나 벌처럼 이리저리 오가지만 내 독서는 과연 긍정적 진화일까. 40%도 확신할 수 없다.
뒤르켐에 의하면 자살률은 여름에 가장 왕성했다가 차차 줄어드는데, 그 흐름은 매년 순환된다. 인종, 병, 계절, 성차 등으로 쉽게 결론짓고 마는 우리의 편견을 격파해가는 뒤르켐을 보라! 종교 중 유대교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통계적으로 자살 발생은 활발한 활동 시간대에 가장 많다. 점점 좁혀지는 초점, (사회) 관계성.
내가 목격한 시간대도 뒤르켐이 말한 그 시간대였다.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 통계 사례 +1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일 새벽엔 유성 쇼가 펼쳐진다고 한다. 
삶 자체가 이미 쇼라고 생각하기에 놀랍지도 않고 큰 설렘도 없다.
별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쇼, 내가 지구에 있기 때문에 보게 되는 별의 자살일까.

자야겠다. 
누구도 초대하고 싶지 않지만 기어코, 나타나겠지.
카프카 꿈은 한 번도 꾼 적이 없다. 유감이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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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0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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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0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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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8-13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 휴가 중에 출동하게 만드시네~^^
반갑습니다, 와락 ~ ((__))

2015-08-14 0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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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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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0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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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0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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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0 0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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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14: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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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0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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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8-1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었어요.. T^T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시 Agalma님의 글을 보니 기뻐요. ^^

2015-08-14 0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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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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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15: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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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0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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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16: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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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4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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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1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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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8-14 02:34   좋아요 1 | URL
못난 모습 보여서 미안합니다. 짧다면 짧은 10개월 가량 이 서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힘 닿는 데까지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태는 일종의 탈진이라고 할까요.
어찌 하면 남도, 나도 다치지 않는 선에서 이 서재를 꾸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때론 도대체 이게 다 뭐라고 이 고민과 정성을 들이고 있는가 싶죠.. 그래도 님 같은 분들의 사랑스러움을 잊을 수는 없지요. 이건 혹, 곡해이거나 무례입니까.

사랑은 아무리 해도 해도 모자란 것이었지... 아. 그래서 제가 이렇게 지친 건가 봅니다.
사실 이 모든 국면은 저와의 싸움이겠죠. 지나친 확신이더라도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내 말은 해도 해도 왜이리 한심해지는지....

우리는 언제나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았습니까. 물리적으론 불가능하니 상황적 모색을 해야 겠지요. 제겐 지금이 또 그러합니다.

고마워요.


아참, 어떻게든 잘 지내셔야 합니다. 음....좀 염려가 되어서요....


AgalmA 2015-08-14 0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가 왔고 하늘은 흐리다. 무엇을 본다는 건 사실 엄청난 희귀성이라는 걸 계속 잊는다.
유성우는 언제나 있어 왔지만 그걸 목격하기가 그래서 쉽지 않은 것.

antibaal 2015-08-16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희귀성. 네. 그런데요. 남반구로 가면 그 희귀성은 목격이 되요...
잘 지내셔야 되요.
책을 사랑하고 글을 좋아하시는 님.
늘 행복하소서.
꿈을 못꾸고 안꾸는 것도 좋던데요.
그만큼 잠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겠죠?

AgalmA 2015-08-17 00:37   좋아요 1 | URL
! antibaal님 말씀 듣고 또 각성! 맞습니다. 어딘가는 밤없는 백야로 가득하고 말이죠... 이렇게 늘 놓치죠. 인간은. 나는.
덕담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힘을 내고 있습니다. 덕분입니다.
너무 지친 나날, 누워 눈을 감고 쉴 수 있는 것만도 감사히 생각하기도 합니다(솔직히 매일 그렇지는 않아요;) antibaal님 가내 평안도 멀리서나마 바랍니다. 마음 깊이 담아...

종이달 2021-10-11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낌새는 있었다. 문은 자동잠금 방식이었다.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쉽게 열리고 싶어하지 않는 어떤 고집이 느껴졌다. 살아 있나? 시간은 흘러 흘러 급기야 문은 완강해지고자 한 모양이었다.

˝문이 안 열려!˝
누군가 중요한 듯 외쳤지만, 금방 해결되겠지? 하는 안도와 장난도 섞여 있었다. 우리는 위급과 보통을 구분해 듣는 시스템 1(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참조바람. 내 페이퍼에 잘 요약되어 있음-지나친 당부)이 있다. 사무실 직원 중 얌전하고 귀여운 사람1이 다가갔다.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이 해결할 수도 있다는 착각으로 다가가기 마련이다. 그게 요행이더라도.
나는 최근 적극 수용하기로 한 방관자 자세로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화장실도 다녀왔고 급할 게 없었다.

두 사람이 씨름했지만 문은 쉽게 타협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계속 ˝우린 갇혔어. 어떡해~~~~~˝를 희랍 비극의 코러스처럼 반복했고, 당연하게도 사장님은 엄중하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해결자가 아니었고, 얌전하고 귀여운 직원1은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 급하시면 창문으로 나가시고 나머지 사람은 이후 문이 열리면 나가죠.˝
(부가적 사항: 여긴 2층, 사다리 없음, 뛰어내리란 소리, 누군가는 뚱뚱하다, 운동 부족으로 관절도 좋지 않을 걸로 예상된다)

얌전하고 귀여운 직원1은 언제나 이렇게 얌전하고 귀엽게 말한다. 더 중요한 건 예쁘다! 그런데 이 얌전하고 귀여운 직원1은 빈 패트병을 깜짝 놀랄 정도로 무자비하게 구겨서 버리는 습관이 있다.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듯이.

나는 풋, 숨죽여 웃고 말았다. 밥이나 먹을까. 갇혀도 밥은 먹는다.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더라도. 물론 둘 다 배달을 원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고대 나일강은 이집트가 대비를 했음에도 매해 범람했다. 우리의 예상은 그 이상을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밖에서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문이 열렸고, 자물쇠 걸림 부분을 테이프로 막았다. 자동잠금 장치와 손잡이는 수리되거나 교체되더라도 문은 그 자리 그대로 있을 것이다. 다음엔 다르게 고장나겠지. 그 순간은 닥칠 때까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문은 나보다 더 오래 살 거란 기이한 확신이 든다.


최근엔 뉴스도 안 보고 아이돌 음악에 빠져 있다. 신나는 비트와 애절한 가창 아래 있는 ˝사랑에 대한 숭배와 애도성˝ 때문에 유치해도 사랑받는 것이리라. 아이돌은 매해 나타나고 사라지겠지만 이 ˝숭배와 애도˝는 K-POP과 가요, 음악의 본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성질이다.

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선집 <꿈 속의 꿈>(아티초크 빈티지 1)에서 황인찬 시인의 서문도 그런 대목을 짚는다.

˝사랑 앞에 엎드리고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모습에 마음이 기울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포우의 시를 계속 읽다 보면 우리는 사랑과 죽음의 또다른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랑의 모습이 `숭배`와 닮은 것이라면,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형태는 `애도`의 양식과도 닮아 있다.˝



며칠 후면 나는 이 사무실을 떠난다. 이곳 문에 대해 잊게 되겠지. 그러기 전에 또다른 이곳인 ˝북플˝에 이 기록을 남긴다. 어떤 애도도 없이. 끝없는 기록이 근사치의 애도일 지도 모른다.

계속 아득하다.
현실을 꿈속처럼 살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현실같이 사는 것과 마찬가지 문제다.
문학 또한 두 곳을 동시에 오간다.
정확히 갈 곳이 없는 것 같다.




ㅡAgalma





*이 글은 타인을 위한 글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는 이런 이야기가 재밌는 일부와의 교류를 위한 글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추측과 증언을 말할 뿐 정확히 대화하는 것일까.(갑자기 반말)

이 글은 (대부분의) 당신이 원하는 정보가 희박할 겁니다. 그러니 좋아요는 신중히!(갑자기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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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4 1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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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5 0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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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8-04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현실을 현실로만 살이야 하나요¿?

AgalmA 2015-08-05 02:20   좋아요 1 | URL
왜냐하면 저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게 해석하는데 현실이라는 물리 자체를 뒤바꾸면 현실이 블랙홀이 되잖아요...제겐 이미 이렇죠. 정확히.

2015-08-05 0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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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8-05 00:45   좋아요 2 | URL
양보나 타협을 위해 감수한다는 건 아니에요. 다들 제각각의 현실을 가지고 사는데, 모두 한 치의 물러섬도 없다면 대립과 파괴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내가 원하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은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 거겠죠. `원한다`는 참 가변적이죠.

제 존재를 감당하고 반영하고 대변해야 한다는 게 무거울 뿐 다른 이로 인해 무거운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에서 늘 제가 `무엇`이고 `여기`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자 변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 때문에 조금 행복합니다. 지금 이순간은. 아시다시피 미래를 몰라서 이순간이라고만 말할 수밖에 없는 것 이해 바랄께요 :) 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믿지 못해서라는 전제를 노파심에서 남깁니다.

고마워요. 언제나 그랬어요.

2015-08-05 0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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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5 0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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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5 0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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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5 0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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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5 0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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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5 0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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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5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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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6 0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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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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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5-08-20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림출판사 1984 刊 2800원 짜리로는

그대 영혼 외롭다 느끼리
잿빛 묘비의 어두운 상념들에 둘러싸여
그 많은 사람의 무리 가운데서 단 한 사람도
그대의 은밀한 시간을 살필 이 없네

라고 驛되어있어요 많이 다른 느낌이지만 아직 싱싱한 단어들입니다.
제가 처음 포우를 알게 된 시집이라 애정이 가는 책이죠 . 번역도 뭐랄까 우울과 음산이 좀 잘 드러나있지요 강대건 씨의 편역 책이고 당시 중고삐리에게 인기있던 시집였죠

기뻐서 펴보는 독서생활
이 맛, 묵은 빼갈 같은데요 물론 알콜기는 날아가지 않은 짜르르...

AgalmA 2015-08-20 21:31   좋아요 0 | URL
오, 멋진데요. 번역이 그로테스크한 멋을 살리려고 노력한 게 느껴집니다.
묵은 빼갈=오래 함께 해 온 책 비유 좋네요...저도 옛날 시집들 가을녁에 많이 펼쳐봐야 겠어요^^

나와같다면 2015-09-1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사랑하면.. 자신이 죽기도 하지요..

AgalmA 2015-09-11 21:46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이런 인용도 있죠.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스스로 목을 매려는 사람까지도.˝ㅡ파스칼
과학과 인식의 다양화로 인간의 불가해한 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지만 종국엔 여전히 해답이라고 보기 늘 어려운 지점이 있죠...
흔적님 서재에서 닉넴 자주 뵈었는데, 대화는 처음이네요. 안녕하세요. 지금은 비가 옵니다. 그곳은 평안하신지.
 
[수입] Depeche Mode - Live In Berlin (Soundtrack) [2CD Digipak]
디페쉬 모드 (Depeche Mode) 노래 / Mute Records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But not tonight˝ 곡이 끝나고 데이브 가안의 Thank U 인사 뒤에도 ˝오~오˝ 관객들의 싱얼롱은 계속된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들이 마주 보며 웃고 있을 거라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Heaven˝이 이어진다. 라이브는 역시 이런 극적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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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8-03 0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이브의 극적인 맛!!
들어보고 싶네요?^^

AgalmA 2015-08-03 08:12   좋아요 0 | URL
어떤 밴드든 라이브는 다 멋지죠 :)
디페쉬 모드 삑사리 많이 나서; 사실 듣기는 좀 그런데ㅎ; dvd로 보면 감동적인 데가 많죠. 워낙 장수 밴드라 팬들의 환호와 싱얼롱이 또 장관^^
잘 지내셨습니까. 심려 끼쳐드려 죄송했는데, 환하게 웃어주셔서 위안이 됩니다.

2015-08-03 0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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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3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3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03 0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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