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잘하는, 신간 열풍이 좀 지나가면 읽는 버릇으로 성동혁 <6>을 읽다가, 문득 기록을 남기다.

어떤 독자성. 독특한 발성과 구조성. 시의 특성이 원래 그렇지만, 그는 언어의 형태론적으로 더욱 그렇다. 살아있는 형태 없이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란 참....슬픔이 시각이 아니라 통각인 것과 비슷할까. 김행숙 시인이 성동혁에 대한 시평에서 ˝통각의 가능성˝이라고 말할 만하다.

할 말이 많아지면 나는 주체할 수 없이 딴 짓을 한다. 하던 일을 미뤄두고 갑자기 시집을 펼쳐든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모든 게 밀고 당기게 된다. 인력(引力)과 척력이 괜히 쌍이 아니다.

푸른 색 커버의 책이 맘에 드는 게 많지 않다. 푸른 색 자체로 있는 건 없고 거의 흰 색이 같이 배치된다. 그래서 책장이 흰 색 반, 푸른 색 반이 되어 버렸다. 커버에 블랙이 많이 섞인 책은 확실히 그 내용도 블랙적이다. 잭 블랙적인 영화라는 말이 있듯이. 그게 무슨 말이야! 좋다는 말을 여러 가지 변칙적으로 쓰는 습관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힘들게 사는 노력도 가지가지....

 


 

페터 빅셀 <책상은 책상이다>에서 책상은 양탄자로 불렸다. 급기야 모든 어휘 체계를 바꾼 주인공의 삶은 뒤죽박죽 되어가는데 정말 눈물겨웠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안 되는 건 안 되는가봐....중고서점에서 요즘 <주역>을 살까 망설이고 있다.

이젠 하다하다 온라인 책장을 색상 별로 꾸미는 취미까지...웹 생활을 강력히 점검해야 할 때인 건 확실하다. 이걸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지난 달 빨간 컨셉 책장일 때 찍어두지 못한 게 아쉽다. 20살 10월 22일의 나를 기록해두지 못한 것과 같다. 이래서야 기록탐닉증이라고 말할 수 없겠다. 기록뒷북증? 기록느슨증? 뭐라 붙이든 누구든 거북하게 만들 것이다. 우린 진화상 결이 맞지 않으면 피하거나 공격하게 되어 있다. 그 놈의 진화! 그 놈의 DNA! 그러니까 유유상종은 협동성이고, 아웅다웅은 경쟁성인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인식관련, 뇌과학, 진화론 책이 집중적으로 아웅다웅 내 주머니를 털어가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수수께끼처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는 진지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행동함으로써 손해가능성을 최소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동기를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상대방은 우리가 비협조적이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 적대적인 인종 집단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 집단의 구성원들은 자기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바람과 생각이 명확히 전달되도록 행동하지만, 다른 집단의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감추려 한다. 그래서 그 각각의 집단은 상대 집단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집단들은 전부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제각기 상대가 자신들을 이해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애덤 모턴 <잔혹함에 대하여> p56

 

얻을 게 있는 만큼 우리 거리는 정해진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가장 가깝지.
이 생에서 나는 아무 것도 가지지, 지키지, 돌이키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ㅡAgalma






그 방에선 물이 자란다



세수를 할 때마다 흘러가는 기도를 아끼자 더 흘려보내기엔 세면대의 구멍이 작아
물속에 얼굴을 넣었다 빼도 나는 물의 미간을 그려 내지 못한다

거울을 보면, 숨이 차고
젖은 아스피린과 가 보지 않은 옥상이 보인다
오래 마주치기엔 서로 흐르고

대신 나는 이가 투명해. 표정을 잃을 때마다 사라지는 다리
골반까지만 반복되는 거울

잠시 엄마와 월요일이 사라진 것을 메모했다
그때는 아가미가 생겼다

침대는 누우면. 눈썹이 쏟아지고
돌고래의 문장을 배워 본다
지느러미가 생기면
파도의 단추를 모두 채워 주고 싶다

스위치를 켜면. 물이 우르르 밝다
오늘이 짙고 밤이 숨차고
창문을 상상한다
방의 동공이 크다



ㅡ 성동혁 <6>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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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자리 2015-10-23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실물 책장이 흰색에 가까운 옅은 아이보리 빛인데 책장의 한 칸은 청명한 푸른빛이 도는 책들만 모아서 꽂아두었어요^^ 다른 책들은 대개 내용상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모아두지만 그 칸만큼은 아무런 연관 없이 오직 색깔입니다. 얼마나 조화롭고 예쁜지 그 칸에 있는 책들은 빼고 싶질 않아요ㅎ / 어쩐지 숨이 막혀오는 느낌의 시를 읽고 이런 눈치 없는 댓글을 달자니 염치가 없네요ㅎ

AgalmA 2015-10-23 18:39   좋아요 1 | URL
눈치없는 댓글이라뇨~ 전혀요. 각자 느낀 소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사실 대화잖아요 :) 성동혁 시집 물고기님자리도 좋아하실 듯~
저도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 저는 월넛 빛깔이 싫어요. 고급스러움보다 괴기스러움을 자주 느껴서;; 이케아 선반도 자꾸 늘어나고 이러다 제가 집밖으로 튕겨져나가는 거 아닌가 싶게 꾸역꾸역 책이 느니;;
전 시만 겨우 따로 모으고, 다른 책들은 구매순, 읽는 순으로 여기저기 포진해 있어요. 이따금 산사태처럼 책 무너지는 소리를 안타깝게 듣곤 하죠...
푸른빛 도는 책만 두는 공간이 있다니! 많이도 안 바라고 가장 아름다운 책 한 권 제게만이라도 살짝 알려주시면 안됩니까^^?

물고기자리 2015-10-23 18:35   좋아요 1 | URL
저도 월넛 싫어요^^ / 알려드리곤 싶은데 하필이면 제일 예쁜 푸르름은 내용이 꽝인지라..ㅋ 색들의 조화를 포기하지 못해 꽂아두고 있는 거죠 ㅎ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 뭐 이런 색(!)들이 꽂혀있고요^^ 푸르름 사이에 드문드문 완벽한 흰색을 추가했어요. 그래야 푸르름이 더 돋보이더라고요ㅎ

띠지의 색에 푸르름이 섞였다고 우기며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도 꽂아놓았고, 이번에 산 책 중엔 에밀 시오랑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의 녹색위 붉은 꽃이 포인트가 되어 같이 꽂아두니 좋더라고요ㅎ 쓰고 보니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은데, 사실은 흰색책만 꽂아 놓은 칸도 있습니다ㅋ 예쁜 커버를 만들지 못 하는 책들 때문에 가끔 속상해요~ㅎ

AgalmA 2015-10-23 19:22   좋아요 1 | URL
김화영 <행복의 충격>은 뭔가 기대를 불러 일으키네요! 이언 매큐언은 전작 탐구하고 싶은 작가라 언젠가 그 작품은 꼭 만날 거 같고^^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어찌 보면 촌스러운데 책내용 생각하면 잘 어울리죠^^ 커버 질감도 너무 딱딱하지 않고 손에 촥 감기는 맛도 있고~ 에밀 시오랑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도 어찌 보면 꽃무늬가 촌스럽기도 한데, 가끔 보면 산뜻해서 좋아요. 책장 사이에 화병 끼워둔 기분이랄까^^
가끔 표지가 이쁜 걸 책장 앞에 액자처럼 꺼내놓기도 하니 표지는 정말 중요한 인테리어!
흰색책이라면 타부키도 모으시겠군요^^ 저도 타부키 모으기 시작했는데, 시집 같기도 하고 이상한 나라의 카드 같기도 하고ㅎ 이쁘다기보다 특이해서 이 책들은 가로로 쭉 놓고 싶어요. 도서관 잡지진열대처럼 한 권씩만 두는 책장을 한 벽면에 짜고 싶기도 해요...네, 먼 꿈이죠;;
문학동네 이 선집 시리즈 좋아합니다. 페렉 책도 맘에 들고^^

긴 댓글 수고하시게 만들어서 어쩌죠. 감사할 따름 :)

물고기자리 2015-10-23 19:05   좋아요 1 | URL
<캘리포니아>의 손에 잡히는 느낌은 정말 최고였어요^^ / 타부키 보고 왔는데 저런 깔끔함 너무 좋아요 ㅎ 물론 내용이 더 좋겠지만요ㅋ

AgalmA 2015-10-23 19:09   좋아요 1 | URL
저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국내 책커버 질감 대회 있으면 1등으로 생각하고 있음요^^ 타부키는, 타부키는...전작 필독 작가로 제 독서목록에 등극^^ 보르헤스와 페렉 이후 이런 흥분 처음이야!입니다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 - 생물학과 천문학을 오가는 137억 년의 경이로운 여정
닐 슈빈 지음, 이한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온라인 중고샵에 40% 할인가로 2권 나와 있네요. 충동구매말고 꼭 사실 분만! 신간 끼워서 사면 배송료 절감효과~저렴한 시집 송재학<검은 색>과 같이? 초등 3학년 이상이면 아이와 읽어도..모험적인 얘기도 많으니~책이 사라지면 이 글은 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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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0-22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폭파라뇨? ㅋㅋ 알박기...... 덕분에 또 질렀습니다

AgalmA 2015-10-22 21:17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만병통치약님ㅜㅜ;;...뭔가 몹쓸 짓을 하고 있는 듯한 죄책감이;;;;;

2015-10-22 2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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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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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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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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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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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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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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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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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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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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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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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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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2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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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에서 우주를 만나다 - 생물학과 천문학을 오가는 137억 년의 경이로운 여정
닐 슈빈 지음, 이한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코스모스>를 읽고 관련해 다음 책을 고민 중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분야 책을 100권 이상(내 주변에 그런......) 읽은 사람이라도 재밌을 거라 장담!하지 않고 짐작한다 라고 작전상 말하겠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우주를 살피고,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미시세계를 살피던 걸 닐 슈빈은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본문에선 자신을 희화화하기 일쑤지만 당신은 능력자~ 과학자가 글도 엄청 잘 쓰네. 샘나게시리;

지질학+생물학+천문학+역사+인문학+탐사, 연구 에피소드(실감나면서 재밌음ㅋ)+사실적인 유머....책 한 권에 부담없이 읽을 거리가 가득~🎁 페이지 정말 잘 넘어 갑니다/

유머 ex 1) 타임머신을 타고 45억 년 전의 지구로....이 황량한 곳을 여행하다 보면, 밤에 아름다운 달빛을 보면서 기분을 달래고픈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꿈 깨시라! 달은 없었다 p89

유머 ex 2) 고대 지구보다는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가 차라리 호흡하기 더 쉬울 것이다 p 143


이 책을 안 보면 당신 손해~ 딱히 내가 이익이지도 않고a; 꼭 안 사도 됩니다. 도서관도 있고, 누구 보고 사 달라고 조르는 메신저도 있고, 읽고 싶은 목록에 담아 깜짝 기프트북으로 받을 수도 있고ㅎ, 당신 선택과 운에 맡깁니다^^

에드윈 허블을 비롯해 그 당시 우주 연구자들을 위한 천체 사진 자료정리 고역을 맡았던`하버드 컴퓨터스`로 불렸던 여성들(여기서 위대한 여성 천문학자 탄생!), 대륙이동설을 증명할 해저 열곡을 발견한 마리 타프가 `여편네 수다`로 취급되고 모욕과 배척으로 과학계에서 밀려난 사연 등을 생각하면 긴 리뷰로 자세히 쓰고도 싶은데.... 어쩌면 긴 글 리뷰로 이 글을 고칠 수도...아아...그 고생을, 제가, 정녕 해...해야 하, 본인인 난 말리고 싶네.

이 책을 서재 카테고리 중 우주? 진화 생물? 지구과학? 어디에 넣어야 하나....(참, 내 서재엔 지구과학 카테고리는 없지....여차하면 과학으로 퉁치는 걸로;;) 어리숭했다. 이제 학문도 크로스오버가 잘 되니 내 분류를 비웃는군😉싫을 줄 알았다면! 환영🎉🎃🎆))


이 리뷰 제목에 ˝우주의 시계˝란 표현은 단지 비유로 쓴 게 아니다. DNA `리치 터반(Richter`s patch) 이야기는 책에서 확인/


생물학 연구에 최대로 희생된 ˝초파리˝에게 특별히 더 조의를 표하며....영화 <The Fly>가 괜히 나온 게 아니란 생각을 했다. 뿌린 대로 거둘 지니...세상의 종교들도 이건 서로 합의본....






ㅡAgalma



우리 머리 위의 세계에 출현하는 별들의 색깔, 깊이, 모양을 관찰하는 방식은 우리 발밑의 먼지 가득한 사막에서 화석들을 찾는 방식과 흡사하다 (p36)


우리가 마시는 물 한 잔은 적어도 태양계 자체만큼 오래됐다 (p74)


대화를 하고 도구를 사용하고 기계를 설계하고 불을 통제하는 등 인간이 가진 능력의 상당수는 인간이 지금과 같은 몸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p139)


생물학이 정한 한계 너머를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의 크기, 그리고 우리 자신을 새로운 관점에서 본다는 의미다 (p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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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0-22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글 참 재밌게 잘 쓰지요. 이것도 능력 같아요. 따분하고 낯선 이론들임에도 불구하고 슈빈 입에만 들어가면 글이 각색되어 나온 느낌~ 유머스럽고 따스하고, 저 직업이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크 와트니만큼이나 낙천적인 작가인것 같아요.

AgalmA 2015-10-22 17:59   좋아요 0 | URL
온통 헤매고 파내는 답사 일이 주로 이뤄지니 정말 적성에 맞는 게 아니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해요ㅎ;; 오랜 노동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니.
이 책에 생물학자 프레스턴 클라우드 이야기도 잠깐 나왔는데, 답사가다가 미끄러져 방울뱀과 맞닥뜨리게 됐을 때 눈싸움으로 이겼단 이야기에 웃음이 나면서도 이 일의 고됨과 위험함을 또 느꼈죠^^
닐 슈빈 책은 이번에 처음 읽었습니다. 말씀처럼 유머와 따스함이 있어서 자연스레 저자에게 애정이 가요. 올리버 색스처럼^^ 마크 와트니는 처음 들어보는데, 찾아보니 따로 번역본으로 출판된 건 없더군요. 좀 아쉽지만 기억해 두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10-22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 유머는 정말 ㅋㅋ

AgalmA 2015-10-22 20:00   좋아요 1 | URL
더 많지만 저혼자 냠냠ㅎㅎ

보슬비 2015-10-22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검색해서 책배달 신청했어요. ㅎㅎ

AgalmA 2015-10-22 20:31   좋아요 0 | URL
도서관의 달인~ㅎ 금방 읽으실 거예요^^

기억의집 2015-10-23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요~ 와트니가 이젠 낙천주의자의 대명사 같아서.....

AgalmA 2015-10-23 12:13   좋아요 0 | URL
아하, <마션>^^ 책도, 영화도 주변에서 뽐뿌가 많으니 맘이 점점 급해지네요^^
 
위험한 자본주의 - 자본주의를 모르면 자본주의에 당한다!
마토바 아키히로 지음, 홍성민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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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먼저 총평

장점: 40여 년간 <자본론>을 연구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의 통찰을 빠르게 학습할 수 있다.
마르크스 자본론, 자본주의 태동과 200년 역사 흐름을 살피며, 현재 일본과 미국-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역학을 정리해 볼 수 있다.

단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저자가 강조하는 [1대로 제한하는 재산 소유권], [직접민주제](유시민 씨도 이거 정말 바라던데....누군들 안 그럴까)를 이론 이상(以上)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피케티의 섬세한 데이타 분석과 해법 방안보다 현실성이 떨어졌다.
논거가 매우 단정적이어서 책 읽는 내내 보이지 않는 저자와 입씨름하는 기분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해 바칼로레아 입시 시험을 치르는 듯한;

부작용 : 자본주의가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에 아래처럼 딴지 걸고 싶은 게 많다.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그 효과를 현재 나로선 알 수 없다;

편린 : 현실과 이상理想의 조화는 언제나 불가능으로 보인다. 현실의 속성과 이상의 속성을 알면서도(거의 모른다면 더 문제) 원하는 우리 자신의 문제인가, 세계의 문제인가.




ㅡ 개인과 자본주의

*시민사회가 남긴 소유권의 불평등에 대해 처음으로 이론을 정립한 사람은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입니다. 그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그것이 실패로 끝난 이유가 개인의 완전한 소유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정교분리`와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확고한 이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농민과 노동자가 부자가 될 `자유`를 보장했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지만, 부자가 부자로 있을 `자유`도 보장했다는 점이 후세에까지 근본적인 문제로 남았습니다. 경제에서 불평등이 고정되거나 정당화되고 상속권에 의해 그 불평등이 영원히 지속되는 사회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사고방식을 토대로 성장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였습니다. (p117~118)

**아시아나 다른 지역에서도 `민주주의`는 물론 `공동체`에 의한 직접민주제의 사례까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는 봉건적이고 비민주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공동체의 해체야말로 민주주의인 것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개인의 해방과 연결될 뿐 아니라 분열한 개인으로서 정치를 재조직화하는 것을 민주주의라 정의하게 됩니다. 결국 그것은 대의민주주의, 혹은 간접민주제입니다. (p134~135)


Agalma ------- ˝개인화˝ 채찍질에 영합할수록 ˝자본주의˝는 더 뿌리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 논점은 동감이다. 
헌데 저자는 기독교가 공동체를`개인과 신 사이의 적(敵)`으로 간주했다고 말하며, ˝공동체˝라는 개념과 ˝공산주의communism-공동체주의˝를 너무 일원화해 기독교와의 대척점을 강조하기만 한 건 아닌지.... 저자는 초기 기독교가 공동체 방식이었다는 걸 언급하면서도 기독교 자체가 ˝공동체˝적 질서로 구축되었고 지금도 그러한 세계라는 걸 간과 또는 배제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 ˝사적 소유는 기독교 사회가 만들어낸 독자적인 개념˝(p138)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소유욕을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듯 말하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모든 농부가 자기 땅을 바라는 것이, 17세기 영국의 청교도혁명으로 농민이 토지 분할 소유를 인정받게 된 것(p140)에 기인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면죄부를 사고 파는 종교를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한 마르틴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이 부를 축적하는 면죄부(자본주의)가 된 과정을 보며, 사적 소유권(상속권)의 제한은 오래도록 성취하기 어려운 과제구나 했다.



ㅡ유럽적 민주주의 VS 종교로 뭉친 거대한 개인 

*민주주의 개념은 개인이 신에게서 분리되지 않으면 성립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주된 민의는 그런 것입니다. 신의 의사가 아니라 개인의 생각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런 기독교 관념을 전제로 형성됩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일상이 곧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교들은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처럼 경전종교는 될 수 없습니다. 경전종교는 성서처럼 절대적인 정전이 있어서 철저히 그것만을 읽고 거기에 쓰여 있는 세계를 자신의 종교 이론 안에 주입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신이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와 같은 진의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서양문화는 성서에 한정되지 않고 철저히 관련서적을 읽고 문자를 읽는 행위로 집적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거기에 쓰여 있는 문자는 과연 믿을 만한가 하는 근거를 철저히 찾아 읽어내는 것입니다. 즉, 사료비판의 학문 문화입니다. 이런 행위의 연장선에서 이론이 생겨납니다. 기독교는 실천보다 이론을 중시하는 문화를 가진 종교입니다.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 바로 서양의 합리주의입니다. (p128~129)


Agalma ------- 기독교 신학이 철학으로 이어지고 서양 근대 문명으로 나아가는 궤적, 논리상으로는 그럴 듯 한데 나는 이 논점에 자꾸 의문이 들었다. 기독교가 철저히 개인을 만들고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데, 현시점과 연결해 더 넓게 볼 여지는 없는가. 지금 이스라엘과 이슬람 각각이 벌이는 무장 충돌은 종교성과 욕망의 혼재를 보여주고 있다. 더 정리해 보면, 그들은 `종교로 뭉친 거대한 개인`이자`종교 틀 안에서 세속을 단죄하는 개인들`이라는 것. 왜 나는 그들을 `공동체`라 말하지 않고 `개인들`이라고 말하는가. 원시 부족집단 외엔 거의 자본주의화된 이 세계에서 그들이 과연 `공동체`인지 `공동체` 척하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들은 과거 기독교가 파생시킨 개인과는 속성이 다르기에 자본주의에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미셸 우엘벡 소설 <복종>의 의미가 여기서 또 한 번 이해되는군.





ㅡ 헤겔의 철학은 유럽적이냐 아시아적이냐를 나누고 싶어했다

*본래의 그리스 철학은 유럽인이 읽은 것과는 다릅니다. 그 본질은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있었을 텐데, 헤겔은 이마저도 제외합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철학은 아시아적 요소를 품고 있습니다. 헤겔을 포함한 유럽인이 자신들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해석한 그리스철학은 문서로 저술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철학은 기독교 시대에 일단 전부 버려지고 신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신학이 벽에 부딪히자 13세기에 들어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수용했습니다. 아퀴나스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그리스철학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며 당연히 진지하게 연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배우려 했던 것은 오히려 이슬람교도와 유대교였습니다.
15세기 이후 유럽인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그리스는 1829년까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즉, 그리스철학의 본고장인 그리스가 이슬람권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기독교가 그리스철학을 자기 문명사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물밑작업을 벌일 때 유럽인들은 교묘한 작업을 했습니다. 유럽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신의 영웅으로 포장했고, 그들의 철학을 고전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순수하게 `유럽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사상이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결국, 헤겔 철학사는 무엇이 철학인가 하는 진지한 물음과 논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유럽적이냐 아시아적이냐를 판가름하는 일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듯 출발점부터 이상하니 그다음의 논리가 제대로 되었을 리 없습니다. (p131~132)


Agalma ------- 헤겔 역사 테제들 보기 전에 헤겔 두드려 맞는 거 보니 헤겔 점점 더 읽고 싶지 않아진다-_- 하지만 사놓은 미학 책은 읽어야겠지...





ㅡ 자본주의 불멸설

Agalma -------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는 '역사 종언'설을 주장하며 '민주주의, 인권, 자본주의'는 한몸으로서 그것이 확대될 때 세계 역사가 종말하게(안정화) 될 것이라고 보았다.(p190~191) 자본주의가 지닌 문명성을 높이 평가한 해석이다. 
그러나 그 해석을 뒤집어보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강조는 개인에 대해 강조하며 그의 성공심리를 부추김으로써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위한 먹이로 이용되고 있다. '누구에게든 성공은 열려 있다. 당신의 노력(스펙쌓기)에 따라!' 자본주의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일을 잘 시키기 위해 정규 교육이 도입되었던 것과 유사하다.  오래 전 한국 산업화 시기에 공장과 학교가 같이 붙어 있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었던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거 였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징하던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와 충돌 관계였지만 현재 양상은 복잡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층화, 해외 노동자 착취 등으로 노동조합은 매우 의심스럽게 되었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영합하는 노동조합으로 비판하고 있다.(p242~) 노동조합의 긍정적 방향을 전혀 거론하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저자에게 불만.
러시아와 중국의 지리적 특성(막강한 자원과 세계 견제)과 성격(자본주의에 맞서는 정치시스템과 경제력)을 볼 때, 후쿠야마가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세계 지배는 현실적이진 않다.
자본주의 자체의 종말을 요구하는 지금 시점에서, 저자도 지적하듯이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의 특수한 성격과 불완전함을 놓친 단점도 있다.(p230~231)






ㅡ 뉴턴의 사과는 어디서 떨어졌나

Agalma ------- 저자 마토바 아키히로는 내가 과학책에서 읽었던 사실을 뒤집는 발언을 했는데,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ㅁ-)? 기독교 사회는 이슬람 사회의 ˝자연과학을 신의 모독˝(p133)으로 보았고, 뉴턴은 관찰이 아니라 이론으로 그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적 근거로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던 걸로 봐선 불가능하진 않다. 헌데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그 법칙을 발견했다는 게 통설로 굳어져 있으니...쩝.





ㅡAgalma

사람들이 혼동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명확한 구분(p200)

사회주의 - 국가가 사적 소유를 제한한다. 편의적인 토지의 국유화, 자본에 대한 과세, 자본가의 경제활동 제한. 이렇게 해서 얻어진 이익을 국민에게 재분배하는 사회

공산주의 - 평등이라는 대원칙에 따라 사적 소유 자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음. 토지의 공동소유화. 자본의 개념이 없고, 자본가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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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3: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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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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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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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4: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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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4: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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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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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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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baal 2015-10-2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리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 2015-10-21 18:12   좋아요 0 | URL
antibaal님은 자본주의 책을 많이 읽으시니 저처럼 딴지적이기 보다;; 이해도가 높으시겠죠^^

antibaal 2015-10-2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제가 많이 배우는데요~

AgalmA 2015-10-21 18:14   좋아요 0 | URL
서로 그럴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오쌩 2015-10-21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제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인간의 이성의 힘으로 자연과 세계를 밝혀낼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뉴턴에게 이어졌고
기계론적세계관은 운동하는 물질,모든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이니, 이를 이론적으로 구성하면서 지구와 우주,자연을 동일한 원리로 설명할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론적 밑바탕이 현상을 만나 발견을 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AgalmA 2015-10-21 22:35   좋아요 0 | URL
선험적이냐 경험적이냐 문제 같은데, 결국 이론은 현상을 만났을 때 완성되는 끝없이 후발적일 수밖에 없는 속성이란 게 되네요. 이걸 변용하면 이상은 현실 추구적이며 완성을 요구하는 후발적 속성이란 것도 되구요. 제가 너무 도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나 곰곰이 더 따져 봐야 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쌩 2015-10-21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보지 않고,조각된 부분만을 읽으니,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네요.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지식이 부족하네요.
다만, 후쿠야마를 비롯해 민주주의니 인권 외쳐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공동체주의 지식인 양아치들이 이라크전쟁을 찬성하고 개발도상국가들에게 겉으로는 민주주의,인권사상 이식한다고 하고 뒤로는 온갖 경제적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보이는데...민주주의와 인권이 자본주의폐해를 막을거라는 종언설에 잠시 흥분하게되네요.

AgalmA 2015-10-21 21:55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를 잘 쓰지 못해서 죄송합니다ㅜㅜ
후쿠야마는 자본주의의 우수성이 역사를 종식할 거라는 낙관론이었죠. 말씀처럼 인권, 민주주의가 사실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먹이로 이용되고 있는데, 인권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면 자본주의 문제점이 바로 잡힐 것처럼 말하는 주장에 대한 제 인상을 섞어서 혼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이또한 죄송합니다; 혼란이 없도록 그 부분은 수정해 보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10-22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루동 말에 깊게 공감합니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이...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공산주의인가요 아님 사회주의인가요? 말씀하신 정의를 보니 뜸금없이 궁금합니다. ^^

AgalmA 2015-10-22 19:59   좋아요 1 | URL
자본주의 자체보다 자본주의가 어떤 것과 섞여 있느냐에 따라 구분되는 지점이 많습니다.
1. 자본주의 태동에 기독교 이념이 짙다는 점에서 - 서양 VS 이슬람교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유대교, 그리스정교가 있는 나라

2. 자본주의에 내재된 서방 중심의 문명주의 - 서양 VS 러시아, 중국, 중동.
일본은 엄청 서구자본주의 지향이지만 지리성 때문에 어정쩡하게 된 경우;;

3. 마르크스주의 흡수여부에 따른 자본주의 자체적 갈림 현상 - 앵글로색슨계 미국과 영국의 자본주의(일명 미국형 자본주의) VS 마르크스주의 영향력이 있는 프랑스, 독일 중심의 유럽형 자본주의
사회보장제도 같은 건 사회주의에서 가져온 제도죠.
앞으로 사회주의 성향-복지가 유럽권을 넘어 어느 정도 더 퍼지느냐에 따라 이 자본주의들의 움직임이 더 흥미로워지겠죠. 우리나라도 이미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제게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관전 포인트^^

따라서 단순히 자본주의 VS 공산주의, 사회주의로만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리^^

북다이제스터 2015-10-22 19:45   좋아요 1 | URL
네 맞는 거 같아요. 예로 자본주의라도 어떤 자본주의인지가 중요할 듯 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미국식 자본주의로 느껴지는데...

AgalmA 2015-10-22 19:46   좋아요 1 | URL
네, 일본과 한국은 전형적인 미국형 자본주의죠 ㅜㅜ

2015-10-22 1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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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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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빌리러 도서관을 갔다가, 도서관이 가까우면 뭐 하나, 휴관일만 골라 가는 나인 걸 확인하고 터덜터덜 돌아왔던 밤,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 소식을 접하니 역시 오늘은 시 밤이었어! 그 시밤 말고....
반가운 마음에 [지만지]에서 폴란드 원문 번역으로 50편을 수록했던 <헤르베르트 시선>을 다시 펼쳐봤다. 철학과 아름다움이 압축되어 있던 시가 와락 다가왔다. 그래,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나는 그 앞을 매일 무심히 지나쳤지.

전쟁 시기나 암울한 시대엔 신화 모티프가 예술에 자주 애용되는데, 인간 심리(융의 집단무의식, 원형의식 등등)와 엮어서 생각해 볼 문제다. 헤르베르트(1924~1998) 詩도 신화와 역사, 당시 시대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형식의 압축미가 강하다. 폴란드어를 외국어로 번역했을 때 시를 잘 살리지 못한다는 평(늘 나오는 골칫거리;)이었는데, 김정환 시인은 분명 영역본으로 번역했을 테니 그게 좀 걱정된다. 같은 폴란드 시인이자 동시대(2차 세계대전과 소비에트 전체주의)를 겪은 노벨문학 수상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시선집 <끝과 시작> 경우 폴란드어 전문 번역가이자 폴란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성은 교수였던 걸 생각하면 좀 아쉽지만....각각 일장일단이 있겠지.


쉼보르스카는 헤르베르트의 새로운 시를 사람들이 늘 기다렸고 이름을 가려도 그인 걸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나는 ˝판 코기토˝나 신화와 전쟁 참상을 엮은 시 경우 독특한 형식 때문에 단번에 알 수 있는 정도다; 애정도 문제인가, 판별력 문제인가....무엇이든 반성하게 되는군...
소설도 아닌 시에서, ˝판 코기토˝ㅡ폴란드어 pan(남자 귀족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과 데카르트의 Cogito(생각하는 존재)ㅡ라는 캐릭터를 구축한 것만 봐도 예사 시인은 아니다. ˝판 코기토˝는 어찌 보면 이성적인 돈키호테 같기도....


방대한 시집 분량과 시인 소개글에 독자들이 선뜻 접근하기 저어할까 싶어 <헤르베르트 시선>(2008, 지만지)에서 비교적 난해하지 않은 시들을 발췌해 소개해 본다.





개의 물방울 (全文)


˝숲이 불길에 휩싸이면 장미를 위한 시간은 없다˝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숲들이 불타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목을 팔로 휘감고 있다
장미 꽃다발처럼


사람들은 은신처로 달려갔다
그가 말하길 아내는 긴 머리카락을 가졌기에
그 안에 몸을 숨길 수 있다고 했다


한 이불을 덮은 채
그들은 속삭였다 음란한 밀어들과
연인들을 위한 연도(煉禱)를


상태가 악화되자
그들은 서로의 눈동자 속으로 뛰어 들어가
눈꺼풀을 굳게 닫았다


끝까지 용감했다
끝까지 서로에게 충실했다
끝까지 서로와 닮은꼴이었다
얼굴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멈춰 선
두 개의 물방울처럼





내면의 목소리 (全文)


나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목소리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으며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도 말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 파장이 너무나 미약해서
거의 알아들을 수조차 없다


아주 깊이 몸을 숙여 귀를 기울여도
간신히 들려오는 건
의미를 벗어난 분절음뿐


행여 다른 소리에 휩쓸려 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나는 그를 정중하게 다루려 애쓴다


마치 그의 말이 중요한 의미라도 있다는 듯
동등하게 대하는 척한다


심지어 때로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도도 한다
ㅡ알잖아 내가 어제 거절했던 일 말야
지금껏 그런 일은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안 할 거야


ㅡ글루(glu)ㅡ글루(glu)ㅡ


ㅡ그러니까 네 생각엔
내가 잘했다는 거지


ㅡ가(ga)ㅡ고(go)ㅡ기(gi)ㅡ


우리의 의견이 서로 일치되어 기쁘다


ㅡ마(ma)ㅡ아(a)ㅡ


ㅡ자 그럼 편히 쉬어
내일 또 이야기하자


내게 전혀 필요치 않았기에
그에 관해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내게 희망은 없다
그저 약간의 회한만 남았을 뿐
그가 연민의 이불을 덮고
거기 그렇게 누워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벌릴 때
그리고 무기력한 머리를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서





포위된 도시에서 온 보고서 (발췌)


만일 도시가 함락되고 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그는 망명길에 도시를 지니고 갈 것이다
그가 도시가 될 것이다





이력서 (발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알고 싶었다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
집은 새로 얻게 되는지 사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과 악한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무엇이 희고 무엇이 완전히 검은 것인지도 확실히 알고 싶었다





시인의 집 (발췌)


그의 찬장과 침대, 의자 사이에 부재를 뜻하는 흰 외곽선이 아로새겨져 있다. 뭔가를 던지던 그의 손동작만큼이나 날카롭게.





묘사를 위한 시도 (발췌)


내 새끼손가락은
나와 똑같은 날 태어나
죽는 날을 함께하고
똑같은 외로움을 공유한다




수치 (발췌)


내가 몹시 아팠을 때 나에게서 수치심이 떠났다
아무런 저항의 의지 없이 내 몸의 가련한 비밀을
낯선 손에 내보이고 남의 눈에 보여주었다





판 코기토와 상상 (발췌)


그는 동어반복을
같은 말을 같은 말로 번역하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새는 새다
노예는 노예라는 뜻이고
칼은 칼이고
죽음은 죽음이다





계곡의 문에서 (발췌)


우리에게 알려진 바와 같이 그것은
어린아이를 빼앗긴 어머니들의 울부짖음
왜냐하면 밝혀진 대로
우리는 한 명씩 구원되기에




기도문 (발췌)



제 인생은
끝없는 심연에서 깨어난
물 위의 원과 같이 되지 못했을까요
나이테에 겹겹이 주름을 만드는
생장의 시작점이 되지 못했을까요
당신의 헤아릴 수 없는 무릎에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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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0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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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5-10-20 0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란드에 이런 시인이 있었군요. 장소가 장소인지라 더욱 관심이 가네요. ˝두 개의 물방울˝이란 시의 이미지가 너무 선명해서 좋네요 . 이북이 있나 찾아볼래요.

AgalmA 2015-10-20 20:39   좋아요 0 | URL
전집을 보면 확연하겠지만, 작품 시기별로 경향 차도 꽤 있는 것 같아요. 헤르베르트를 ˝신고전주의˝라고도 하던데, 어떤 시들은 사물에 대한 천착이 두드러지고(특히 ˝돌˝), 또 어떤 시들은 대단히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가 하면, ˝두 개의 물방울˝ 경우는 시대의 비극성과 시적 아름다움이 절묘하고...쉼보르스카와 헤르베르트 수준을 보면 그곳 시 세계도 대단할 거 같은데, 달걀부인님 눈 크게 뜨고 찾아보셔야 할 듯~_~ 세계엔 우리가 모르는 작가가, 시인이 얼마나 많은지....

북다이제스터 2015-10-20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시는 같은 내용이라도 사람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힘이 있는거 같아요.

AgalmA 2015-10-20 20:21   좋아요 1 | URL
언어가 그래서 참 대단한 듯. 시에서 저는 그런 충격을 제일 많이 받았어요. 위안 또한. 그래서 참 끈질기게 연연해 하고....그래서 참, 그래서 참....

북다이제스터 2015-10-20 20:29   좋아요 1 | URL
북플 어느 이웃님께서 제게 근래 알려 주신게... 현대 철학은 결국 언어로 귀결 된다고 하던데... 님 글 보니 막연하게 동일하게 느껴집니다. 어제 들은 팟케스트 지대넓얕에서도 현대인 인식은 언어라고 한 것도 같은 선상 공감 많이 되네요 ^^

AgalmA 2015-10-20 20:52   좋아요 1 | URL
저도 최근에 들어서야 철학, 문학, 과학, 인식 이 모든 문제에 ˝언어˝가 관건이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전에 마냥 어려웠던 부르디외 ˝언어권력˝도 요즘 이해하게 됐고...제가 프랑스철학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게 ˝언어˝ 문제에 대한 제 의문을 많이 다뤄주기 때문이죠.
아, 갈 길이 참 멉니다

2015-10-20 2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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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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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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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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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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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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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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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10-20 21:36   좋아요 1 | URL
이 문젠 많이 생각해 봤는데도 아직 답을 못찾고 있어요.
어, 틀렸네. 고치고 끝~~이 아니라 아니@@ 틀렸잖아! 왜 틀린 걸까, 나는 이 개념과 뜻을 잘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이러한 불협은 어째서 생기는가, 상대가 오해할 소지를 더 줄여야 한다!, 더 철저히 훑어봐야 한다!!, 더 정확하고 완벽한 표현은 없을까...생각의 자물쇠들을 모두 점검해보는 지옥이 되는데-_-....서재를 둘러보며 글쓰는 사람들 대부분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해 하더군요.
제 경우는 ˝개념˝ 지탄을 받은 트라우마가 있어서 좀 더 심해졌고요;;
완벽성이란 자기보호와 자기치장의 극대화라고도 할 수 있겠죠.

언어 얘기도 나왔던 만큼 언어도 우리 자신을 위한 최대 장치니 더욱 그런 상황이죠

2015-10-20 2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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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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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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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5-10-20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넵넵. agalma님 글을 읽는것으로 먼 곳에서의 독서갈증을 다소 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당.

물고기자리 2015-10-20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면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서글프게 읽히는지 모르겠어요.. 서글픔을 서글픔으로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오물이 될 수도 있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승화시킬 수 있는 것, 걸어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글의 힘인 것 같아요..

AgalmA 2015-10-20 21:33   좋아요 1 | URL
그쵸! ˝내면의 목소리˝ 베케트랑도 비슷하지 않나요? 정말 소진될 대로 소진된, 그러나 그 손에 무언가 놓지 못하고 있는 심정...헤르베르트 시들 중에 이런 내면의 극지를 드러내는 시들, 표현들이 저는 특히 좋더군요.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폐허가 된 저택 창가에 걸린 커튼의 휘날림을 보는 기분....

물고기자리 2015-10-20 21:22   좋아요 1 | URL
시인들은 조각가인 것 같아요. 소설가들이 화가라면 말이죠.. 소진되었다는 느낌도, 아갈마님의 마지막 구절도 황량함 속에서 흔들리는 애처로운 손짓처럼 와 닿아요..

2015-10-20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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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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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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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15: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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