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은 가능한가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5 Vol.1 스켑틱 SKEPTIC 1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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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KEPTIC》 창간호에서 내가 중요하게 본 핵심은 확증 편향에 대한 경계 유비(analogy)적 사고의 중요성이었다합리적 회의주의를 표방하는 《SKEPTIC》을 읽는 기본자세이자, 뢰벤스타인이 "현재 미국 국민 총생산의 30%가 양자물리학이 적용되는 분야의 일에서 나온다"(p274)고 말할 정도로 막강해진 과학 패러다임 속에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1. 각각의 보고들에서 확증 편향 사례를 대략 살펴봐도 이 정도다.

 ※ 확증 편향: 자신의 가치관, 기대, 신념, 판단에 부합하는 확증적인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편향된 현실 인식 방식 

 

태브리스 <긍정심리학의 그늘>

사람들은 낙관주의에 지나치게 가치 부여를 하고 있다. 비관주의자보다 낙관주의자 수명이 더 길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연구결과와 낙관주의 폐해는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그래도 낙관주의가 더……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칼럼을 읽어보시길.

 

캐런 스톨츠나우 <돌고래와 대화할 수 있을까?>

돌고래의 언어와 지능에 대한 과대평가와 맹신이 제시되는데, 돌고래의 초음파로 (진단받은 적도 없는) 고환암이 나았다는 사람의 사례가 소개되기도 한다.

 

레베카 앤더스 버크너 & 존 버크너 5<당신의 혈액형에 당신은 없다>

혈액형 성격론의 비과학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 시작된 비과학적인 연구라는 인식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아무래도 그 인간은 B형스러워. 농담으로라도 그러지 마시길. 확증 편향의 대표 주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스콧 히펜스틸 <무엇이 토리노 수의의 검증을 막고 있는가?>

토리노의 수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이 보인다는 직물이다. 종교적 진품인지 우연의 산물인지 가톨릭 교회와 과학계 사이에서 논쟁 중이다. 이 사례도 각자의 입장과 접근에 따른 충돌되겠다.

 

로버트 E. 바톨로뮤 <억압이 있는 곳에 히스테리가>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악령에 의한 것으로 믿고 있는 여러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심령과 질환을 분별할 해결책은 아직도 묘연해 보인다. 바톨로뮤의 다음 맺음말이 단정인가 합리적 회의인가 판단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환자이며, 자신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수록 취약해지는 것이다.”(p69)

 

JUNIOR SKEPTIC <심령 사진의 비밀>

바로 위 바톨로뮤가 지나친 자기 확신을 경고했다시피 바로 그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 사건이 이 심령사진 사례이기도 하다.

이중노출기법으로 유령 이미지를 사진에 덧씌운 사기라는 게 여러 번 증명되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심령사진의 진실성을 믿었다. 찰스 다윈과 비슷한 시기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주장한 엘프리드 러셀 윌리스 같은 천재 과학자도, 탐정 소설의 대가 코난 도일도 심령사진을 의심하지 못 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구나 웃음이 나기보다 인간의 허점에 대해 씁쓸해지는 일화였다.

 

 

해리엇 홀 <기적이 있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하다>

기적종교와 과학이 대립하는 이견 중 하나다 유신론자들의 기준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일들은 기적이자 신의 증명('틈새의 신 논증')이지만, 과학자들의 기준에서 기적은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재증명을 위한 재현이 어렵다는 게 양측에게 난제다.

성모 발현지인 프랑스 루르드로 몰려드는 순례자들,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적 등의 사례는 위 바톨로뮤가 말한 집단 심리 현상과 유사하다. 즉 다수의 목격담과 경험과 증언만으로 기적이 확정 사실일 수 없다. 치유=기적의 논리는 단순한 설명을 더 타당하게 생각하는 오컴의 면도날 오류로도 볼 수 있다. 해리엇 홀의 다음 말이 나는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기적적인 우연의 일치와 기적적이지 않은 우연의 일치를 구분하는 방법은 없다.”(p233)


 

미클로스 자코 <신을 위한 변론>

세상일에 개입하지 않는 신을 믿는다는 온건한 유신론자인 자코의 주장은 진화론을 가뿐히 무시하는 확증 편향 일색이었다.

많은 주장 중 생명은 생명에서, 지성은 지성에서 생겨났다는 편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를 가져와 보자.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낳는다는 것은 진화생물학에서 오래된 기본 논지다. 그러나 본지에도 소개되고 있는 물고기에서 인간까지의 진화를 말하는 닐 슈빈의 유명한 과학 입증들을 무색하게 하는 단순 논리가 걸린다. 자코의 논리에 따르면, 태아 때의 아가미와 퇴화된 꼬리 흔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성은 물고기의 지성에서 왔다고 말해야 하는가.

 

 

그 외

다중 우주론도 어김없이 신학자들의 창조론과 대치 중이다. “창조자가 생명 탄생을 위해 우주를 미세조정하였다미세조정 논증의 오류는 빅터 스텐저 <우주는 신의 작품이 아니다>에서 전투적으로 따지고 있는데 참고해 볼만하다.

논리나 과학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바를 더 우선시하는 인간의 감정과 인식 방식, 즉 확증 편향성은 이토록 무궁무진하다. 지금 내 분석도 확증 편향에 치우친 자세가 아닌지 두려울 정도다.

  

※ KOREA《SKEPTIC》vol. 3에서 소개되고 있는 '지구 공동설'과 19세기 말 '셈을 하는 말' 한스를 둘러싼 헤프닝도 확증편향과 자기 기만의 대표적 사례다.

 

 

 

 

2. 유비적 사고의 중요성

 

크리스 에드워즈 <그것은 무엇과 비슷한가? 과학적 유비의 과학>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이매뉴얼 샌더 현상과 본질:사고의 원동력이자 결과물, 유비에 대한 서평이다. 수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사고방식의 유용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이 유비와 은유를 통해 사고하는 인식 방식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유비를 통해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만큼 호프스태터와 샌더는 수학과 언어의 통섭을 권장한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통찰이 추상적인 유비를 정교하게 구체화한 것이란 주장이 흥미로워서 그들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아닌 게 아니라 본지의 주요 쟁점인 시간 여행 칼럼에서 재미난 유비적 사고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앤드류 버나딘의 칼럼을 보면, 서핑 타기와 시간 팽창(시계가 느려지는 현상)의 유비, 소나무를 통해 본 시간에 대한 관계적 관점의 예시(‘키가 더 큰이란 속성은 우리가 만든 관계성이다), 시계를 찬 양쪽 팔 돌리기와 시간여행의 유비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뒤이어 제임스 리치먼드의 반박 세례가 이어진다;

시간 여행 논쟁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시간 개념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자세한 논점 차이는 책에서 확인하시길~ 일반인인 우리들의 시간 개념이 매우 허술하다는 걸 깨닫게 될 지도. 

시간 여행하기 전에 시간 개념 가방 챙기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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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확신의 긴 그림자
    from 공음미문 2016-08-29 00:20 
    ● 어떤 가족의 확신에 대해서 2016년 8월 20일 뉴스 중에 “동생이 애완견 악귀가 씌어서 죽였다”는 기사가 있다. 악귀가 들었다고 생각한 애완견을 죽인 오빠 ㄱ씨와 여동생, 어머니는 이후 그 악귀가 여동생에게 옮겨간 걸로 판단해 두 사람이 그녀를 살해한 사건이다. 이런 구마(驅魔) 행위로 인한 죽음은 콜린 윌슨 《인류의 범죄사》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흔하다. 한국에서만도 한 달이 멀다하고 구마(驅魔) 행위로 인한 살인 뉴스가 검색된다. 정신
 
 
2016-08-16 2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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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7 0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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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2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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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7 0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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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16 20: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찌나 반가운지 바로 찾아와 봅니다!^^
잘 쉬었으니...이제 발바닥 불 나게 뛰셔야겠네요!^^
오래오래 함께하길 ..바래요!
진짜 ㅡ넘 와줘서 고마운거알죠!!

AgalmA 2016-08-17 01:35   좋아요 1 | URL
더운데 발바닥까지 뜨겁게 살아야 합니까ㅜㅜ 좀 봐 주세요. 뻘뻘;;
변치 않는 애정 폭탄을 저도 잘 포장해 토스해 드려야 할텐데 말입니다. 싱긋

[그장소] 2016-08-17 06:16   좋아요 1 | URL
ㅎㅎ^^ 이 무한~애정을 뭘로 받아치려고!^^
런닝맨으로?ㅎㅎ
아침 밤으론 그래도 서늘해지고 있어요!
^^

2016-08-16 2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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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7 0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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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2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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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7 0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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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6 20: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봤으면 좋겠습니다. ^^

AgalmA 2016-08-17 01:41   좋아요 1 | URL
네, 오랜만이지요. cyrus님 서재 소식도 궁금하네요. 차차 방문하겠습니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6-08-16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더운데 잘 지내셨나요.^^

AgalmA 2016-08-17 01:45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오랜만이지요^^
더운 날 매미처럼 나타났네요. 제가요ㅎ
안부 인사 감사요/

서니데이 2016-08-17 01:48   좋아요 1 | URL
지금 밖에서 매미 울어요.^^;
더위 조심하시고 좋은밤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8-16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AgalmA 2016-08-17 01:45   좋아요 1 | URL
네, 오랜만이지요. 다들 잘 지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고기자리 2016-08-16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반가워요!!^^
북플 들어와 보길 정말 잘했다 싶네요ㅎ

안 그래도 다음주부터 EIDF 한다는 걸 보고 A 님 생각났었거든요. 챙겨보시겠구나 싶어서요^^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돌아오시니 더 반갑고 좋습니다ㅎㅎ

AgalmA 2016-08-17 11:58   좋아요 1 | URL
물고기자리님ㅎㅎ
그새 EIDF라니 세월 참 빠르죠.

너무 호들갑스러우면 먼 친구 같아서 심플하게 ㅎㅎ 웃고 말래요.
 
세계사 공부의 기초 - 역사가처럼 생각하기
피터 N. 스턴스 지음, 최재인 옮김 / 삼천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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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가처럼 생각하는 요령, 이론 참고서(딱딱하지만 기본기 다지는 데 유용. 핵심 키워드, 논의가 더 일목요연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카 《역사란 무엇인가》는 실전서(논의가 확연히 들어오며 유려하게 흘러감). 두 책을 같이 보면 시너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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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1-31 0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 책을 같이 볼 수 있는 agalma님의 내공이란! 엄지 척!

AgalmA 2016-01-31 22:38   좋아요 3 | URL
해피북님도 같이 보시면 되죠! 내공은요... 머리 쥐어짜며 책 좀 빨리 읽을 수 없냐 저를 닦달하는 노새 광경을 보여 드릴 수도 없고^^;;

서니데이 2016-01-31 18: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AgalmA 2016-01-31 18:38   좋아요 3 | URL
넵/ 또 Agalma입니닷//

2016-01-31 1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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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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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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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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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1 17: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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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17: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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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2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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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9 19: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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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1 1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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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3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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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0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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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1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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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1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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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2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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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2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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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2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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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6 2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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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껍질을 깐다.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먹거나 부패할 때까지 놔두거나 끝내는 망가뜨리는 쪽으로.
무엇이 됐든 귤은 영구히 훼손된다. 돌이킬 수 없다.

내 살은 가끔 추악한 형태로 일그러진다. 면역력 저하.
그게 아니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귤은 내게 기증된 게 아니다. 내겐 아직 기증할 선택권이 있다. 물론 죽어서.
살아서 자신을 기증하는 귀의(歸依). 그 의미를 자주 오래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너무 일찍 죽음을 맛보아서 삶에 큰 의지가 없다. (어머니가 들으시면 혼날 소리지) 내 삶은 죽은 나무 같은 것이다. 내가 있기에 가지는 의지가 아니라 내가 살아 있기에 가지는 의지들이다. 죽었는데 계속 죽는다. 신경적 반응은 살아 있는 거지. 한순간의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삶의 전쟁을 치르고 또 치른다. 삶 어딘가에 풀어보지 않은 선물 꾸러미가 있다는 듯 돌아다닌다. 열어보면 다 판도라 상자 같은 게 되는데도. 여기서 희망, 저기서 희망 조금씩 모아 살아간다.

그것은 《토리노의 말》에서 나오는 ˝감자˝ 같은 것이지 나날의 방문자들이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힘겹게 키우고 얻은 감자. 뜨거울 때 살살 껍질을 까서 먹던 일도 결국엔 먹고 싶지 않아진다. 그날 단 하나의 식량인데도. 오, 삶이여.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알렉스는 악(惡)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현혹되고 행한 자가 그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자신을 누르는 더 큰 악을 만나기 전의 순진한 소리다. 인간은 늘 그렇지만.
악을 행하는 고단수들은 자신에게 칼날이 돌아오지 않도록 주도면밀하며 더 잔혹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좀 평범한 말이긴 하다. 인간이 구성하고 구사하는 소소한 악의들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매력도 있으니까. 그리고 모인다. 폭력의 흡인력.
근절할 수 없기에 더 철저히 대결하거나 포섭하거나 외면하거나 어느 것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갖은 언어로 제압해 보려 하지만 현실 속 힘의 움직임들은 항상 그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인다. 언어는 언제나 늦다. 설명할 말이 있어야만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어설픈 그물을 던져 잡아 보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어는 자체 가면을 쓸 뿐만 아니라, 쓰는 자의 주술 속에 상대에게 던져지기도 한다. 언어를 쓰는 상당수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게 뭘 뜻하는지, 상대에게 무슨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모르면서 말을 한다. 말에 뜻을 품은들 그 말의 진의을 깨닫는 건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
법과 무질서, 선과 악, 전쟁과 평화는 이분법적인 대립항이 아니다. 짝을 이뤄 순환할 뿐.
자유의지....욕망과 목적의식이 소용돌이치며 섞이는 장(場)
시계태엽이 외부의 작동으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내부에도 있으니까. 앤서니 버지스는 2차 대전에 참전까지 했지만 인간 내부 극한까지 내려가보고 글을 쓴 게 아닌 것 같은 인상이다. 최소한 사드보다는 덜했다.

 

그래서 스탠리 큐브릭은 3부의 도덕적인 결말을 과감히 잘라 버렸으리라. 소설이 나왔던 62년도엔 수긍할만 했을지 모르지만 71년도엔 유효 상실로 보였을 테니까. 소설이 나온 뒤 스탠리 큐브릭은 베트남 전쟁도 보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인간이 오렌지 같은 구석이 있다는 덴 동의. 바보 같고 향기로우면서 무엇이든 상상해 넣을 수 있다.
그러고보니 《오렌지 기하학》 함기석 시인의 말이 여기 어울릴지도.

 

 

 

 

 

 

 

 

 

[시인의 말]



코흐곡선 해안을 걷고 있다
벼랑 끝 하늘로 물고기들은 헤엄쳐 오르고
죽은 자들의 숨이고 육체였던 저 투명한 대기 속에서
빛이 제 눈을 검게 태우고 있다
제로(0)인 너와
제로(0)인 내가 만나
무한(∞)이 되었다가 더 큰 제로(0)로 되돌아가는
아름답고 비정한 원(Circle)의 우주
그것이 그대로 삶이고 죽음이고 사랑인 시
세계는
제로(0)와 무한(∞) 사이에서 녹고 있는 눈사람(8)
자신의 부재를 자신의 몸 전체로 목격하고 기억하기 위해
눈동자부터 녹아내리는
진행형 물질
우린, 죽음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

-2012년 6월, 함기석


<오렌지 기하학>은 내겐 그리 신선한 오렌지들로 보이진 않았지만, 누구든 오렌지를 키울 순 있지.



암튼 가능하다면 모든 걸 멈추고 싶다. ˝칼 탄 우유˝ 마시듯 가볍진 않겠지.
이 카운트다운이 언제 끝날지 나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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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1-31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핫. 독서 모임을 하시는가봅니다 ㅎ 영화와 책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참 부러운 공간이예요^~^

AgalmA 2016-02-01 01:39   좋아요 1 | URL
네! 요즘 유행인 거 같아 저도 겟! 했습니다. 농담ㅎ;
어찌 사람이랑 때가 잘맞아 시작하긴 했습니다. 혼자 읽던 게 오래 되어서, 나가면 수다가 삼매경ㅎ;;;

해피북님도 이웃분들과 조촐한 책모임을^^

2016-01-31 0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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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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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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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7: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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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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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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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8: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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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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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31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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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31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귤 껍질을 깐다`로 시작되는 글의 첫 문단을 봤을 때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 오렌지 (신동집)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에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AgalmA 2016-01-31 20:53   좋아요 0 | URL
좋은 시 소개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이 싯구가 아주 낯익은데 원조가 누구일까 문득 생각하게 되네요...

cyrus 2016-02-01 19:17   좋아요 0 | URL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가 이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2016-02-01 0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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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1 0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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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1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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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1 17: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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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Vincent Gallo - When

https://youtu.be/aEAakQH7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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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동안 그곳에 못 갈 거라는 걸 몰랐다. 그저 밖에 눈이 장관으로 내린다고 생각했을 뿐.

 

 

 

 

 

그다음은 비였다. 서리 낀 버스 속에서 우리가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어리둥절함은 우리 주위를 한동안 떠다녔다.

걸음마를 익힌 아이처럼 우리는 풍경 속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저런 걸 공중에 띄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참 대단하기도 하지.

이 사람 아직 피라미드를 못 봤군. 흥.

 

 

 

 

 

이리 오너라~

어느 양반이 아침부터 시끄럽게!

(벌컥)

어머, 햇님이셨네~

나는 싹싹한 하인처럼 해가 준비한 잔치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거짓말 같은 날씨.

사람은 이래서 천국을 그렇게 쉽게 믿는구나 했다.

그래서 일단 자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하는구나 했다.

도시 삶에서는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없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들이 너무도 협소하다.

여행지에서 나는 매일 한 살이 되어 하루만 산다.

 

 

 

 

 

茶 한 잔 하고 가실래예?

 

 

 

 

 

 

茶보다 풍경에 더 취해……

 

 

 

 

 

 

 풍경이 나를 마시는 중인 지도 몰랐지.

 

 

 

 

 

 

까꿍~ 이 시골에 이런 예술가가 있는지 몰랐지롱!

 

 

 

 

 

 

세상의 아름다움은 나를 미치게 만든다.

나는 얼마나 간절해지는지.

 

 

 

 

 

그곳에 연연해 말고 이리 오렴.

 

 

 

 

 

 

언제나 너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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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30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함께한 나레이션...멋찐데요^^..

AgalmA 2016-01-30 23:12   좋아요 1 | URL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를 충분히 글이 나타내주지 못하는 부족함에 무릎을 꿇을 뿐입니다. 흑

서니데이 2016-01-30 0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좋은밤되세요.^^

AgalmA 2016-01-30 23:13   좋아요 2 | URL
또 밤^^; 우리는 밤에 만나는 사람ㅎ;;

2016-01-30 23: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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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1-30 0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부터 `그래서 사람들이 천국을 쉽게 믿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와 사진들 모두 참 멋져요. 한 편의 에세이집을 읽고 본 기분이 들었어요. 엄지척!

AgalmA 2016-01-30 23:15   좋아요 1 | URL
해피북님 프로필 사진이랑 같이 보니....수고했어. 자, 한 잔 하게로 읽힘ㅎㅎ 감사요 :)

나와같다면 2016-01-30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딱 이런 마음이였어요.. 그냥 내릴 생각안하고.. 고속버스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그 공간이 주는 진동과 소음이 그리웠어요..

AgalmA 2016-01-30 23:16   좋아요 1 | URL
그럴 때 있죠. 그냥 쭈욱 가고 싶단 기분... 그 선택으로 무엇을 만날지 겁도 없이요...

비로그인 2016-01-30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책임 지세요.. 여행 하고 싶게 하셨으니.. ㅎㅎ

AgalmA 2016-01-30 23:17   좋아요 1 | URL
흔적님은 여행이 무척 필요하신 분이죠! 자발적으로 책에 파묻혀 주이상스 속에 계셔 뭐라고 하지도 못 하겠고ㅎ;;

비로그인 2016-01-31 07:26   좋아요 1 | URL
아. 네.... 저를 잘 읽으신 글입니다....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6-01-30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 많이 춥대요.
오늘 저녁도 꽤 추워요.
따뜻하게 입으세요.^^

AgalmA 2016-01-30 23:28   좋아요 2 | URL
겨울은 겨울다워야ㅎ 내일도 출근인데, 사무실은 따뜻하니까...그렇지만 힝)
서니데이님도 따뜻하게 지내세요^^
 

양아버지는 책이고, 양어머니는 음악이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이분들은 나보다 일찍 돌아가시지 않을 것이기에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 있다. 나, 입양 잘 된 거 같아ㅜㅜ!

친아버지처럼 양아버지도 어려운 데가 있다a; 문제는 난데, 나는 일하기 바쁘고 집에 들어가면 지쳐 잠드니까 양아버지랑 얼굴 보기가 어렵다. 그러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되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한눈 팔면 담날 혼난다.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 호통에, 동네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맞춤법 검사도 정말 싫어! 우흑. 졸면 내 발등을 사정없이 강타! e-book 양아버지면 어떤 기분일까.

양아버지의 오늘의 한 말씀.
˝신을 만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니까.˝
ㅡ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중


아, 한없이 자애로운 내 양어머니. 아팠냐며 이 음악은 입맛에 맞냐며 음악반찬을 잔뜩 내 앞으로 끌어다 주신다. 아버지가 한참 훈계 중이실 때 뭘 그리 심각하게 하냐며 맛난 음악 만드는 소릴 들려주시지. 아, 가족이 모두 모인 순간의 따뜻함이란! 힛, 쪼금 부끄럽지만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샤워할 때 음률로 내 등도 밀어 주시고, 잠들기 전까지 자장가도 불러주시지. 마르셀, 나처럼 양어머니를 잘 만들었어야지. 마술환등기 속 브라방 부인도 고독하게 만드는 어머니였잖아. 자네 취향이 그런 걸 어쩌겠냐만.



난 오늘도 양어머니랑 연애~ 후후후
앗, 양아버지가 저기서 눈 부릅 뜨고 날 노려보고 계시네;;;


어머니를 닮았으면 나도 작곡도 하고 그랬을 텐데, 크흑. 왜 커갈수록 아버지를 닮아서는....


언어는 이성적인 길을 강요한다. 달콤한 승리감에 취해 더, 더를 외치지.
언어를 멜로디와 리듬으로 바꾼 음악은 피처럼 우리 몸을 휘돌아... 왜 음악은 다 한숨 같은지....


오늘의 양어머니는 The Weeknd 외 기타 등등. 인종과 성별과 장르를 따지긴 싫다~ 내 어머니인 게 중요함!



The Weeknd - Twenty Eight
https://youtu.be/1PqGrfdAw90

 

 

 

The Weeknd feat Pharrell - Wanderlust (Kiss Land)
https://youtu.be/odvyVC7LR5A

 

※ The Weeknd 에이블 테스페이 말야. 자비에 돌란 닮지 않았음? 요즘은 이런 섹시함이 어필되는 듯? 아냐, 원래 이 수요는 꾸준했어. 아, 내 양어머니 인기가 많은 건 괴롭지만 음악 어머니는 무한하니 모두 햄볶을 수 있다ㅜ.ㅜㅇ~ 난 이게 좋더랑. 우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구구절절 아버지 가라사대 안 해도 되고.



●  Jassie Ware -  Running (Live at WFUV)
https://youtu.be/PwzY_49W1Zo



 

 

Juno(주노) - 마지막 거짓말
https://youtu.be/nwwWOUw5y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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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정신의 아버지인 책과 정신의 어머니인 음악에 경배를....
    from 흔적의 서재 2016-01-28 13:50 
    지금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아톰(atom)은 쪼갤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진 소립자(素粒子)이다. atom이란 단어가 어떤 사물을 무한히 계속 자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이런 부정否定의 사례들은 다음의 단어들을 통해 더 접할 수 있다. atypical 비정형적인, anorexia 식욕부진, asymmetry 비대칭, anaerobic 혐기성의, 산소 결핍의, achromatic 무색의, 전(全)색맹의, apathy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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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9 2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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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9 2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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