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븐 핑커의 아이디어로 나온 올해(2012년)의 질문,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은 무엇인가˝에 대해 148명의 지성들이 답하는 책.

현재 제가 읽은 바에 따르면 다윈 ˝자연선택설˝이 가장 표를 많이 얻었습니다~

믿고 보는 엣지 재단 책이라 발견하자마자 샀는데, 알라딘에서 오늘(10/10~)부터 기대 별점 체크 시 이벤트 선물로 모나미 올리카(OLIKA) 만년필 주네요ㅜㅜ 아아... 만년필 마니아들은 뭐 그런 거 가지고 하겠지만 공짜 사은품을 놓치면 아쉽잖아요;

책 내용은 믿고 보실 만하니 강력 추천! 풍부한 내용에 책값도 저렴해 안 참고 질렀습니다^^;;;

올해 내가 읽은 책 top 5가 되리라 생각하며 읽어나가는 중입니다.
내용의 울림은 크지만! 2~4 페이지 내외로 각 분야의 전문가가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고(바칼로레아 시험 답안 보는 기분ㅎ),

알라딘 노트와 사이즈 비교로 보다시피 포켓북 형태(내 손안에 전 세계의 지성이!)라 들고 다니며 보기 부담 없어요.

조그맣지만 최신판 과학 상식 사전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이 들어 있죠. 읽으면서 질문거리들이 무럭무럭~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가 "훌륭한 설명일수록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한다고 말한 대로.

 

 


 


 



˝불굴의 비합리성에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최선의 수단과 희망은 집요한 합리성이라는 주장, 즉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사용하면 언젠가는 신성한 것을 끝장내고 갈등을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은 열정에 지배당하는 우리의 천성에 대해 과학이 알려주는 가르침과 어긋난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인류 역사상 가장 해결하기 힘든 갈등과 가장 큰 집단적 환희의 표현을 감안한다면, 공리주의적 논리가 신성한 것을 대체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콧 애트런, 비합리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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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10-10 23: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감사요^^

AgalmA 2016-10-10 23:16   좋아요 3 | URL
고양이라디오님도 좋아할 책이죠^^

기억의집 2016-10-10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핑거의 아이디어, 가장 좋아하고 심오하고 ... 이 대목 읽으면서 핑커랑 도킨스 둘 다 세번 결혼했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AgalmA 2016-10-10 23:21   좋아요 1 | URL
그 대목과 결혼의 연결 점프가 흥미롭네요^^....
의외로 융도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문제적이었던...

북다이제스터 2016-10-10 2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리주의의 진정한 희생 양, 존 스튜어트 밀을 기억하며....

AgalmA 2016-10-10 23:22   좋아요 2 | URL
그렇게 진지하게 말씀하시면... 웃어야 하는 건지 아닌지 주춤;)

북다이제스터 2016-10-10 23:29   좋아요 3 | URL
한갓 공리주의가 어찌 신성함을 대체할 수 있을까 잠시 의문이 들어서요. ㅎㅎ
웃어주시면 제가 감사하죠. ^^

yureka01 2016-10-10 2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펜촉과 종이 지면 사이에서 잉크가 소리를 내죠..쓱삭쓱삭...연필의 만년토록 우는 소리^^....

AgalmA 2016-10-10 23:51   좋아요 3 | URL
아이고, yureka01님 댓글센스 제페토님도 인정하시겠어요ㅎㅎb

[그장소] 2016-10-11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년필 괜찮아요? 쓰기?^^

AgalmA 2016-10-11 00:21   좋아요 1 | URL
필기구 덕후님 오셨군요^^ 그걸 제가 알고 싶습니다. 그걸 알자고 같은 책을 또 살 수도 없고ㅎ;;

[그장소] 2016-10-11 00:53   좋아요 1 | URL
ㅎㅎㅎ아이쿵~!!!^^

다락방 2016-10-11 1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저는 연말까지 책 구입은 안하기로 매일 새롭게 결심하고 또 사고 또 결심하고...그렇게 지내고 있어서 이 책은 일단 보관함에만 두겠지만(응?), 읽어보고 싶네요.

만년필 자랑좀 하자면, 저는, 무려, 몽블랑 만년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으쓱으쓱 자랑자랑)

AgalmA 2016-10-11 12: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좋은 책이긴 한데 으스대듯 웃긴 제목인 이 책에 대해 왜 사람들이 웃어주지 않는가 싶었죠ㅎ 마침 이벤트가 있길래 책 살 의향이 있는 사람에겐 꿩먹고 알먹고 될 거 같아 알려 봤습니다. 장바구니 5만원 채우기 어렵잖아요ㅎ?
책 구입에 대해선....책읽는 사람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럴 리가요. 제가 `비합리성의 힘`을 굳이 인용한 이유가 있지요. 우리는 매일 비합리적인 장바구니로 그득할 겁니다ㅎ;;

몽블랑에 대해선 詩도 써본 적 없는 저로선 무척 부러운 댓글을 남기시고 말았군요! 이런 비이성...적으로 함께 웃겠습니다ㅋㅋ

cyrus 2016-10-11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년필을 자주 쓰면 일찍 고장이 날까 봐 소중하게 다루듯이 아껴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잉크가 안 나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

yureka01 2016-10-11 11:07   좋아요 2 | URL
만년필 자주 안쓰면 막힙니다...자꾸 써야 잘 흘러요....안쓸때는 잉크 다 빼내고 물로 씻어서 말려야 됩니다.

AgalmA 2016-10-11 12:25   좋아요 2 | URL
만년필은 관리가 까다롭더군요.
필기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불편함과 비싼 비용을 들여서 살 이유를 못 느껴서 관리해서 쓰는 좋은 만년필은 써보지 못했습니다.
선물로도 주고 큰 맘 먹고 살 정도로 만년필로 쓰면 더 좋은 글이 나오는지 저로선 미지수.... 급하게 뭘 쓰려 할 땐 펜이 없는 게 더 문제(그 많은 펜이 다 어디로 간 건가 싶게)! 요즘 스마트폰 나와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바로 기록, 녹음되니 효자!
 

스킨에서도 나는 아웃사이더 취향. 이번 2017년 어린 왕자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플레인은 없고 위클리와 데일리만 출시되었다. 그래서 지름신을 조금 수월하게 잠재울 수 있을지도. 현재 알라딘은 몰스킨 2017년 어린 왕자 시리즈를 갖추고 있지 않아 더 참을 만하다;; 이보시오, Agalma 씨, 지금 가지고 있는 다이어리 처리나 잘 하시오! (못 들은 척한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어른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해 《어린 왕자》를 썼다고 생텍쥐페리가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했을 때처럼 내 어린 왕자 다이어리 탐심도 여기 어른 친구들이 이해해 주리라 생각한다. 우리 속엔 늘 어린이가 있지 않은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 같은 마음이군요, 라고 말하면 나는 좀 슬플 것이다. 보아 뱀이 삼킨 코끼리 심정이 될 지도.

알라딘 달력으로 매년 잘 지내왔는데, Francis Bacon 달력 유혹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무 좋아서 출퇴근할 때도 이 달력을 들고 다닐 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웃기군! 다이어리가 아니라 벽걸이 달력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들은 적 있지만 내가 그러리라고는.... 탁상용 캘린더를 들고 다니는 친구를 이길 수 있다!

˝나는 공포보다 고함을 그리기를 원했습니다˝ ㅡ 프란시스 베이컨

˝베이컨에 따르면 베이컨에게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몇몇의 머리들이고, 한두 개의 공중 삼면화이며 남자의 넓은 등 하나이다. 하나의 사과와 한두 개의 꽃병 이상의 전쟁이다˝
들뢰즈 《감각의 논리》

Rothko 달력은 하고 많은 그림 중에 왜 다 저런 색감만... 맘에 들지 않아 다행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것을 적는 변명.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도 모르게(incognitio) 지나가도록 하지 말 것. 메모장에 노트를 할 때는 관청들이 외국인 등록부를 기록할 때처럼 엄격하게 할 것.˝
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작가의 기술에 대한 13개의 테제 中

엄격하게 쓰진 못했지만 모르게 지나가도록 두진 않았다. 오늘 하루 모르게 지나간 23000개 중 하날 잡은 건 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가 무수한 별똥별 중에 하날 잡아(생텍쥐페리는 철새들의 도움일 거라고 추측) 지구로 오는 동안 만난 각각의 인연들처럼. 결국엔 여우도, 장미도 아니었다는 데 이 이야기는 더 큰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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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스케치북 2016-10-09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맘에 들지 않아 다행이란 말씀, 이해됩니다. ㅎㅎ

AgalmA 2016-10-09 08:34   좋아요 1 | URL
Tate 갤러리 소장 위주로 꾸민 건가, 거기 전시 그림 위주로 꾸민 건가 저혼자 오만 상상을ㅎ; 소품 만드는 센스는 Moma쪽이 더 나은 듯^^
한국 미술관 가면 고흐나 모네 엽서 팔기 바쁜데 이런 노력 좀 해줬으면 싶어요. 좋은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데 참....
제 방엔 일년 째 오지호 <남향집>(1939)이 걸려 있는데 이런 작품들로 캘린더 만들면 히트 칠 텐데...안탑.

yureka01 2016-10-09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트가 참 이쁘네요^^.어린 왕자가 늘 이야기해줄 것만 같은 기분 ㅎㅎㅎㅎ

AgalmA 2016-10-09 08:29   좋아요 1 | URL
제가 글을 써야 하는데, 다이어리가 얘기를 들려 주길 기다리는 형국이 될 지도요ㅎㅎ;;

2016-10-09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9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9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9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9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9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6-10-09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나누기도 잘 하고 전투 의식도 강한 것인가요? 전투도 못 하고 몇 수레의 책과 함께 지나간 청춘을 애도하며 새롭게 전의를 다집니다. ~~

AgalmA 2016-10-09 20:47   좋아요 1 | URL
돈키호테가 마지막에 종교에 귀의하며 이제껏 다 헛짓이었다 말할 때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던지...소설일 뿐이었는데도 말이죠!
그 전의가 후회없이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풍차와의 싸움은 나자신에게 의미있음 되는 거 아닙니까. 풍차를 꾸며 사기 판매할 것도 아니고ㅎㅎ;;

북다이제스터 2016-10-0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리에 기록해야 할 것이 많으신가 봐요. ^^

AgalmA 2016-10-09 20:50   좋아요 1 | URL
이것도 습관이죠. 예전엔 다이어리가 늘 부족했는데 요즘은 인터넷에 상당히 많이 남기다 보니 이전만 못해요. 다이어리 속에서 생각하던 습관을 다시 회복해야 할 지도요.

북다이제스터 2016-10-09 21:26   좋아요 1 | URL
항상 기록은 좋은 거 같습니다. 많은 기록은 제 경우에 생활이 단순하지 않다는 반증이구요. ^^
Agalma 님도 새로운 일주 잘 보내세요. ^^

벤투의스케치북 2016-10-09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젊어서 책을 많이 읽은 분이 늙어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성경 외에 다 무의미하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 분에게 저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 기억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그녀에서 영원까지 문학동네 시인선 85
박정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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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더스 베를린 천사의 시》(1987) & Nick Cave & the Bad Seeds  "From Her to Eternity(그녀에서 영원까지)"



평생 자신을 사로잡는 것들을 반복하고 반복하는 것, 천사도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우린 삶에도 영원에도 묶인다. 먹고 자고 질투하며 자식을 낳는 우리 모습을 神에게 투영하기도 하면서. 오늘도  "말갈이나 숙신의 언어로 비가 내리고" (<그때 나는 여리고성에 있었다>) 셀 수 없는 비처럼 언어처럼 "여진(眞), 여진(眞)", "아무르, 아무르" 를 가만히 입안에서 굴린다.

 

 

이 시집의 첫 시는 <무르>이다. 정대 시인의 시를 꾸준히 읽어온 사람에겐 익숙한 단어,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언제나까지나 반복할 단어. Amour, 사랑. 이 시에는 짐 자무시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도 스며 있다. 그들이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영원성과 제약을 동시에 가진다는 점에서 이 사랑의 속성은 같다. 모두 사라져도 사랑은 살아남아 존재(사람이 아니라도)의 사랑을 키울 것이다. 뱀파이어도, 천사도 벗어날 수 없어라.

 

 

"상처 입은 것들의 면은 모두 한 채의 절"(<금각사>)이라고 했다. 같은 시에서 "상처 입은 것들의 면은 모두 금각사"라는 말도 했다. 상처로 반짝이는 것이라면, 사람과 별과 부러진 칼의 차이는 없다. 비유는 때론 야멸차지. 반짝이기 때문에 가끔 서로 마주하지만 말은 건네지 않는 사이. 어두워서 마주하고 차가워서 마주하고 어떤 이유로도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사이와 사이. 이유가 없는데도 따지면 이유가 있는 사이. 양자역학과 우주의 끝을 말하지 않아도 이유는 아주 쉽게 만들어지고는 한다.

"인류를 구원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시인이란 존재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에 나는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나는 "해 있기 때문에"를 되풀이해서 읽는다. 속해 있기 때문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은 인류에 속해 있는가. 인류의 기원이기에 구원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인가. 인과를 따질 때 나는 화가 나기보다 슬프지만 냉정해지려고 한다. 
한참 생각 중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게 무엇을 더 해 주면 좋겠니.   
아니오, 아니오. 
결코영영은 모두에게 아픈 말이다.   
우리는 다른데 이토록 속해 있다.   
뜨거운 차가 1도 정도 더 식고 밤이 더 깊어지고 비가 더 적셨다.   
자네, 너무 멀리 나간 거 아닌가. 시인은 말한다.   
'내면의 깊이를 획득한 말의 싱싱함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어쩌면 이런 것.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는 함께 잠들 수 있지만 아침이면 에메랄드는 에메랄드로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깨어나야 한다"는 애정 공산주의의 수칙에 공감하면서도 거기에서 더 나아가 콜로이드 소노르Colloides sonores, 즉 교착적 음향의 사랑을 꿈꾸는 나는 어쩌면 애정 라이프니츠주의자에 가깝다 // 타자(他者)에 대한 영원한 동경 때문에 나는 삶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 고독과 분별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의기양양(계속 걷기 위한 삼중주>)

"전직 천사"라 천진하게 자신을 소개하며, 세계를 배회하던 시의 날개를 접고 시인은 말한다.
"삶이란 스스로 꿈꾸는 한 편의 시이다. 전직 천사는 날개 달린 발로 온 세계를 떠돌며 단 한 편의 시를 쓴다. 허공을 살다 영원으로 사라진다. 영원이라서 가능한 밤과 낮이 여기에 있다. 그럼 이만 총총"

이 순간 시를 쓰고 있는 사람, 시가 필요 없는 사람에게 '적 상상력'이란 쓸모없는 말. 그것은 설명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니피앙이자 시니피에. 그 조차 아직 반짝이고 있긴 한 걸까. 몇몇의 귀를 위해 말하려는 노력.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내일 구름은 몇 개나 뜰까. 확실한 건 내가 알 수 없는 만큼 존재하고 사라질 거라는 거.
 
 

짐 자무쉬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4)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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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의스케치북 2016-10-07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아름다워 불을 지른 이야기에서 이성복 시인의 아볼리 비블로 디나니떼 소노르까지.. 또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에 이르기까지 생각거리를 뭉터기로 던져주는 글이네요. 알 수 없는 Agalma님!

AgalmA 2016-10-08 00:38   좋아요 2 | URL
벤투님은 반짝이는 걸 많이 가지고 계시네요^^ 오늘도 비를 뿌리며 생각구름이 뭉게뭉게 흘러 갑니다...
알 수 없다니 정상! :)

북다이제스터 2016-10-07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시니피에 보다 시니피앙에 의미가 더 크다고 느낍니다. 다의적인 것이 더 좋습니다. ^^

AgalmA 2016-10-08 00:40   좋아요 0 | URL
저도 시니피앙쪽에 더 비중을 두는 편... 오죽하면 제 서재 프로필이 ˝아마도 남는 건 기호˝겠습니까. :)

벤투의스케치북 2016-10-08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제 공부가 많이 부족한 탓이지요...

AgalmA 2016-10-08 07:14   좋아요 1 | URL
知에 대한 욕심(긍정의 뜻)이 많으신 것이지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별자리처럼 풍성히 엮어 가시길 기원드립니다/
그리고... 그 문제라면 저도 당연히 부족합니다! 아니, 제가 더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10-08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글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기원 감사드립니다. 네 맞습니다. 풍성하게 엮어 가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

AgalmA 2016-10-08 20:59   좋아요 1 | URL
벤투님 글에 제가 배우는 만큼 저도 도움이 된다면 기쁜 일입니다. 주말 좋은 기운 충전되셔서 또 많은 반짝이는 걸 발견하시길^^ 그걸 늘 나눠주고 싶어하는 분이시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겠죠~

물고기자리 2016-10-08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유독 머리형 사람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생각의 속도와 비례하는 글의 속도랄까,

저 같은 가슴형 인간은 누가 머릿속을 헝클어주면(자극해주면) 저 혼자 가슴이 뜨거워지며 이런저런 영감을 받고 아, 좋다.. 여기서도 생각해봐야지, 저기서도 생각해봐야지 이러거든요 ㅎ

타인에게 영향을 주려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이런 성향 때문일 듯싶어요. 장황하고 설명적인 글보단 자신과의 대화, 또는 누군가의 대화, 다 하지 않은 고백(아니, 할 수 없는) 그래서 여백이 읽히는 독백이 좋은 이유겠죠..

사람은 다양하지만 한 사람이 다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어요. 자신의 평생을 사로잡는 그것을 누군가는 묘사하고, 연주하거나 조각하고, 채색하고 연출하며 우리는 서로의 퍼즐 조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로에게 뾰족한 각들도 그렇게 제자리를 찾아 들어갈 순 없을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어요. 그러려면 찌르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다름을 들어볼 수 있어야겠죠.

하지만 그건 이상일뿐이고, 우린 여전히 서로를 찌르고 다치며, 그 상처 속에 좌절하며 그러다 가끔 귀한 생각을 얻겠죠 ㅎ

찌르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창을 띄우면 읽을 수 있는 글이 있어 행복한 오전이었어요..

행복하라는 자계서를 읽고선 별 감흥이 없지만 스스로 생각하려는 글엔 늘 감흥을 받거든요.

(이미 이해하고 계시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생각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라서요 ㅎ

AgalmA 2016-10-08 22:39   좋아요 2 | URL
비온 뒤 해처럼 반짝~ 나타나신 물고기자리님^^ 물고기자리님이 계신 비밀의 정원으로 원정대라도 보낼까 했는데 그러자니 금반지 모으기 등 자금 사정으로...ㅎㅎ... 이런 농담, 장난이 하고 싶었다고요^~^!

저도 머리형 사람들의 롤러코스터식 글 재밌어하긴 하는데, 논리만 있고 가슴이 없으면 글읽기에 흥미가 떨어지더라는....사람은 역시 어느 정도 신비주의로 가려져야....ㅎ; 지금 아갈마닥에선 물고기자리님 주가 폭등!!!

글의 딜레마. 롤랑 바르트가 사진으로 `푼크툼`을 말하기도 했지만, 글도 근본적으로 우리를, 대상을 찌르고 예리한 흔적을 남기는 구조라 늘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속에서 말씀처럼 귀한 생각을 얻기도 하죠. 얻는 것과 잃는 것도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라 생각합니다. 데리다가 말한 `에크뤼티르`도 스쳐가고.

물고기자리님의 인상적인 말씀, ˝사람은 다양하지만 한 사람이 다양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행복은 생각할 수 있는 상태˝를 제 식으로 연결하면, 한 사람이 다양할 필요는 없지만 다양한 생각은 필요하다로 모아봐도 되겠지요^^?

그러나 물고기자리님이 생각하는 행복 속에 계신다는 그 말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러네요...
문득 어떤 시가 생각나서... 산속 물에 제 모습을 비쳐보는 반수신에 대해서...



반수신半獸身의 독백



어느 날, 내 몸이 나의 우상偶像임을 보았다. 비가 낙엽에 오거나 산새의 노래를 듣거나 마음은 육체의 노예로서 시달렸다. 아름다운 거짓의 방에서 나는 눈바람을 피하고 살지만 밥상을 대할 때마다 참회하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생을 두려워 않는다. 언제나 일월성신日月星辰과 함께 괴로워 않는다. 추호라도 나를 속박하면, 나는 신을 버린다.
순간이라도 나를 시인하면, 나는 부처님을 버린다. 몸과 정신은 둘 아닌 것, 비단과 쇠는 다르다지만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인 것, 언제나 여기에 있다.
시침이 늙어가는 벽에 광선光線을 긋는다. 산과山果는 밤에도 나뭇가지마다 찬란하다. 돌은 선율로 이루어진다.


사람 탈을 쓴 반수신은 산속 물에 제 모습을 비쳐 보며, 간혹 피 묻은 입술을 축인다.


김구용 [뇌염](2001, 솔)



물고기자리 2016-10-08 23:33   좋아요 2 | URL
네,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더 집요하게 탐구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생 그렇게 집중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ㅎ

무언가를 뚫어져라 봐왔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책이고, 그에 대한 목격담을 나누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대화인 것 같아요.

작가들도 저마다 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듯, 나와 다른 걸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엔 귀를 기울이게 돼요. A 님의 글도 제겐 그렇거든요, 뭔가 지향하는 건 비슷한데 표현은 좀 다르죠. 그래서 영감을 받을 때가 많아요 ㅎ(제게 없는 게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ㅎㅎ)

맞아요, 그 행복은 조금 슬픈 뉘앙스에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완벽한 절망의 상태는 아니지만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계속 생각하며 버티는 거니까, 옮겨주신 시가 단단한 듯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처럼요.. 왜 좋은진 모르겠지만 그냥 좋아서 몇 번을 읽었어요 ㅎ

갑자기 추워진 느낌이에요. 오늘은 바람소리도 유난하네요. A 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제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시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으로 행복하셨음 해요^^

AgalmA 2016-10-09 00:10   좋아요 2 | URL
말들의 혼례가 끝나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도, 우리는 정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이성복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글을 읽는 건, 생각을 하는 건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면서 알게 될 `찰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겠죠. 그 앎은 `찰나`라 우리는 곧 잊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지만 쓰는 순간 변하고 간신히 잡은 것도 곧 망각의 세계로 갑니다. `의미`는 봉인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모리스 블랑쇼는 끝없이 추적해 나갔죠. 그리고 바타유, 벤야민 저는 그들의 추적이 너무도 감동스러웠습니다. 정확히 콕 집어 말할 수 없어 더 그렇습니다.
물고기자리님이 생각으로 밀고 나아가는 흐름도 그들과 닮아 애정합니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촛불이 흔들리는 유난한 밤입니다. 길고 길겠죠. 지속적으로 행복하란 말씀에 지속적으로 생각하라!란 주문도 같이 실려 있는 것 같아 조금 무서운데요ㅎ... 바람따라 계속 나타나주세요. 친구님.

물고기자리 2016-10-09 00:06   좋아요 1 | URL
아, 진짜 제가 말하고 싶은 걸 이렇게 인용까지 해서 콕 집어 말해주면.. 좋다고요 ㅎ

그 말도 맞고, 그 말도 맞아요^^

AgalmA 2016-10-10 18:48   좋아요 1 | URL
책읽다가 또 발견해서 추가)

뱃사람들은 바람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 배의 돛을 바람에 맡겼다
-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속 `철의 시대`에서...

물고기자리님이 댓글 속에서만 요정처럼 반짝이고 계셔서 저도 댓글로 찾아다님ㅎ
날이 상당히 차갑네요. 책 속 따뜻한 난로 속에 잘 계시려나....

물고기자리 2016-10-10 19:57   좋아요 1 | URL
A 님이야말로 요정이네요 ㅎ

찾아다니며 책 읽어주는 요정이요^^
(제가 이런 호사를 다 누립니다! ㅎ)


안 그래도 요즘은 리뷰를 읽는 걸로 독서를 연명하는 중이거든요;;

좋아하는 노트랑 펜이랑 꺼내놓고 원 없이 읽고 싶어요!^^ 오늘은 한 페이지도 못 읽었는데 A 님 덕분에 귀한 문장을 또 얻었습니다 ㅎ

2016-10-08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0-08 21:34   좋아요 0 | URL
님 리뷰 고퀄로 쓰시면서 제게 그런 말씀하시니 쑥쓰^^a 시 리뷰는 특히 더 어려운 거 같아요. 분석적이 되고 싶지 않은 제 태도도 있지만 시의 충만함을 훼손하고 싶지 않은 아끼는 맘도 늘 가지고 있어서 모호하게 말하는 감이 좀 있죠... 책을 통해 얻은 걸 작가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 우리가 쓰는 리뷰엔 늘 그런 노력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말 여유롭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6-10-08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눠주고 싶어하는 분이라는 말씀은 틀리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나눠준다는 명분으로 저도 모르게 (자랑할 것도 없지만) 과시하고 드러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바쁘신 듯 하네요.

AgalmA 2016-10-08 21:37   좋아요 1 | URL
몸도 마음도 잘 챙겨야 글도 잘 소화할 수 있을텐데 갈수록 참 힘드네요. 건강 잘 챙기시길, 벤투님.

벤투의스케치북 2016-10-08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가 많이 힘드네요. 목요일 점심 대접받은 알탕(처음 먹어본) 이후 속이 많이 불편하고 그제 어제 계속 서울행을 했더니 오늘은 계속 어지럽네요. 의사에게 complaint하듯 했네요.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런 점을 글쓰기 선생님은 고통 총량의 법칙 또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 표현하더군요. 건강 챙기시기를... 저도 저에게 다짐하듯 하는 말입니다. ^^
 

리스토텔레스 시학에는 비극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다.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을 다루면서, 덕과 정의에 탁월하지 않으나 악덕과 비행 때문이 아닌 과실 때문에 불행을 당하는 인물(ex 오이디푸스)이 주인공인 이야기여야 한다. 인물은 훌륭한 인물이어야지 열등한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내가 처음 시학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비극 요건은 인물에 대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파토스(무대 위에서의 죽음, 고통, 부상 등과 같이 파괴 또는 고통을 초래하는 행동)’를 요건으로 말하고 있지만 파토스적 인물은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파토스적 인물은 자아 분열적인 인물, ‘개인주의적 파토스에 대한 것이다.

 

나는 어떤 흐름을 생각했다. 문학이 우리 내부의 들끓음에 점점 다가오는 어떤 기록들에 대해서.

고골 광인일기(1835) - 도스토예프스키 분신(1846) - 카프카 변신(1915) - 루쉰 광인일기(1918) - 나보코프 절망(1934년부터 연재, 1936년 단행본 출간) - 카뮈 이방인(1942)

여기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1866년 연재, 1867년 단행본 출간)을 추가해야 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많은 것들도.

 

확실히 연결되는 작품은 고골 광인일기, 도스토예프스키 분신, 나보코프절망이다. 주인공들이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지위와 삶을 철저히 잃는다는 점에서 세 작품은 연결되지만 비극이라고 보기에 그들은 훌륭한 지위도 인품도 아니다. 소설들을 비극적이게 관통하는 건 '파토스적 인물'이다. 나보코프는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그러했듯(<작가란 무엇인가 2> 인터뷰 참조) 도스토예프스키를 이류 작가라 비하했다. 하지만 깊이 영향을 받았다는 게 독자로서 내 평가다. 절망에서 자신을 뛰어난 작가로 여기는 게르만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열병으로 인한 발작적 정신이상과 자존감 상실로 인한 일탈 행동 분야의 전문가라고 말하는 조롱은 나보코프의 발화도 섞여 있다. 재밌게도  “19세기 러시아 고전 문학이 휴머니즘의 파토스에 입각해 확립한 전통을 반격하고자 한 나보코프 작품 속 개인주의적 파토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카프카 변신, 카뮈 이방인》을 왜 가져왔는가. 보코프 절망을 다 읽고 나니 개인주의적 파토스로는 앞선 시기의 카프카 변신도 연결되어야 할 거 같고 (느닷없이 나타난 분신 때문에 자아 분열적이 되는 과정과 느닷없이 벌레로 변한 변신 때문에 자아 분열적이 되는 과정의 유사성), ‘참회를 거부하는 살인자의 고백록으로 보자면 카뮈 이방인도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절망의 대강의 스토리는 이렇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망명한 게르만은 사업이 파산 지경에 이르자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펠릭스를 자신으로 위장해 보험 사기를 칠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착각이었을 뿐 증거까지 남기는 어설픈 실수를 한다 게르만은 완벽한 작가도 살인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쓴 이 살인의 고백은 절망이란 제목이 되었다. 작가 기질을 뽐내는 광란의 독백 양식은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또 닮았다. 분신들은 내 안에 선과 악이 끊임없이 오가는 걸 폭로하는 자아상이자 타인과의 대화보다 더욱 독백으로 빠져들게 하는 대상이다.

절망영문판 서문에서 나보코프는 사르트르("작가도 주인공도 전쟁과 망명의 희생양이다") 등의 비평에 코웃음을 치며 의미심장한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군가 나의 게르만의 모습에서 실존주의의 아버지를 본다면, 그건 흥미로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폭로하면서도 세계와 대결하는 한 개인의 고백이자 독백. 나보코프 절망의 끝을 덮으며, 나는 카뮈 이방인의 끝을 떠올렸다.

 

 

*

아마도 이 모든 건 거짓 존재, 사악한 꿈이다. 그리고 나는 프라하 근교의 어느 풀밭에서 잠을 깰 것이다. 적어도 나를 이토록 빨리 궁지로 몰아넣은 건 좋다.

다시 커튼을 걷었다. 서서 바라들 본다. 그들은 수백, 수천, 수백만. 그러나 완전한 침묵. 들리는 건 숨소리뿐. 창을 열고 짤막한 연설을 한번 해볼까……

 

나보코프 절망》 

 

 

   

 

*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준 것처럼,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와 나는 닮아 마침내는 형제 같음을 느끼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기 위해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카뮈 이방인

 

 

 

 

나는 고백도 독백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이다. 이 미완성의 생각들만 나를 닮은 채 여기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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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분신의 진화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절망》
    from 공음미문 2016-12-22 07:13 
    나보코프 《절망》은 도스토예프스키 《분신》에서 좀 더 진화(한 자아상을 보여준다. 두 소설에서 주인공이 분신 때문에 파멸을 맞는 결과는 같지만 당연히 과정은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 《분신》의 주인공인 골랴드낀은 사회 속 노예의 삶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해 몰락을 맞았다면, 나보코프 《절망》의 주인공인 게르만은 자신이 노예의 삶을 살지 않는 영리한 주체라는 자기도취에 빠져 몰락을 맞는다. 더 풀어서 말하면, 골랴드낀은 자신과 닮은 분신의 음모에 당해 정신
  2. 여전히 가면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 도스토예프스키 《분신》
    from 공음미문 2016-12-22 07:13 
    도스토예프스키 《분신》의 주인공인 9등 문관 야꼬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듯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거짓 흥정을 하며 쇼핑을 즐기고 교양과 품위에 대해 신경을 쓰는 속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주변인들이 자신을 파멸시키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 환자이기도 한데, 초대받지도 않는 상급 관리자의 만찬에 나타나 망신을 당한 뒤 피해망상은 더욱 커진다. 무도회에서 쫓겨나 거리를 배회하던 골랴드낀
 
 
AgalmA 2016-10-06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리뷰도 페이퍼도 제대로.....

2016-10-06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6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06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남주나 여주는 원래 파토스적 인간이어야만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소설이 넘 재미 없을거 같습니다. ^^ 아참, 인간도 파토스적인 것이 현실이라 소설이 리얼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ㅎㅎ

AgalmA 2016-10-06 20:15   좋아요 0 | URL
그래서 드라마가 막장으로.....;;;;

2016-10-06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7 0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07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고기자리 2016-10-08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제목이 눈에 들어오네요^^

지금 파묵의 신간을 읽고 있는데 나보코프의 아름다운 문장엔 가혹한 면이 내재되어 있지만 삶이 정확히 이렇다는 것을 써내는 놀라운 작가라는 내용을 읽으며 급관심을 갖는 중이에요 ㅎ

AgalmA 2016-10-08 23:38   좋아요 2 | URL
나보코프의 글에 대한 파묵의 평 저도 동감합니다. 오만한 지성들의 특징이기도 하달까ㅎㅎ;;
나보코프 새 신간 <재능>(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손 본 소설이라 더욱 관심...)을 읽고 파서 나보코프 예전 책들을 찾아 읽고 있는데, 어쩌다보니 전작탐독이 되어가는 듯ㅎ;;
<롤리타>의 험버트와 <절망>의 게르만이 다른 듯 닮아 다른 소설의 주인공은 또 어떤 모습일까 추적하고 싶은 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나보코프는 글 쓰는 사람들에게 더 매혹적이죠. 수많은 텍스트들과 정보를 교묘하게 배치하는 연금술사이기도 하니까요. 물고기자리님이 충분히 흥미를 가질 만한 문제적 작가^^
 


평점 :
미출간


˝우리가 너무도 오래 전에 진짜 실제 세계를, 오직 옷 입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떠났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아무 힘도 못 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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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0-06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르주 바타유 <눈이야기>는 1928년 소설이다. 내가 읽었던 책은 이재형 씨가 번역했다. 이번엔 어떻게 번역될까.
2016. 10. 1 재출간 축하기념으로 인용~

cyrus 2016-10-06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판본 가지고 있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수도원장 C>와 <에두아르다 부인>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