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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을 막장 안방 드라마로 만들다니... 얼마나 재밌었을까.

강제 소환하지 않으면 탄핵소추의결서도 최 씨가 먼저 받아 볼 것 같은 2016년 10월 25일을 기억하고자 이 글을 남긴다.

개헌 타령 그렇게 하더니.... 국회 거치지 않고 국민투표로 탄핵심판이 가능한 개헌이 필요하다!

 

 

대통령 탄핵심판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 그 외의 자는 국회 재적의원 1/3 이상의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 탄핵소추로 시작된다. 이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탄핵소추의결서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면, 헌법재판소에서는 다시 의결서를 피청구인(탄핵소추 대상자)에게 보낸다. 이때부터 탄핵심판 결정이 있을 때까지 피청구인은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흥분하며 JTBC를 보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문자가 왔다.

오늘 출근해서 작업해 줄 수 있느냐고.

무슨 소리야! 나 퇴근한 지 3시간 밖에 안 지났다고! 

그는 "내일"을 "오늘"로 오타를 낸 것이다. 탄핵이고 뭐고 그는 관심도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온 하루를 다 쏟는 것도 벅차다.

 

 

올해도 역시나 심란한 10월.

내 머릿속에 광풍으로 떠돌고 있는 단어 "혁명", " 전쟁"을 대신 치러줄 좋은 책이 없을까 책장을 둘러봤다.

드디어 읽을 때가 왔구나.

 

 

 

 

 

 

 

지난해 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정치적으로는 더더욱 어려웠던 그때, 나는 우연히 이런 문장을 떠올렸다. <우리 삶이 시작될 수 있었던 지구의 발달이 유일무이한 진화적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도롱뇽과의 전쟁》은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ㅡ 카렐 차페크

 

 

 

란츠 카프카, 란 쿤데라, 렐 차페크.... 이 세 사람만으로도 체코는 위대하다! 그러나 2016년 11월의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불쾌하고 불쌍하고 그렇겠지... 거기 나도 있겠지. 붉은 책을 들고 다니리라!

 

 

그리고 도서관에서 문자, 띵똥~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또 자신에게도 분노하고 불쾌하고 불쌍해 하리라.... 왜 하필 책의 국민이 되어서는. 이봐, 겪어봤잖아. 세상에 더 좋은 게 그리 많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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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0-25 22:40   좋아요 0 | URL
이건 나라가 아니라 카지노 도박장입니다.

2016-10-26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0-26 00:17   좋아요 0 | URL
청와대 게시판 가봤더니 국정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님 힘내십시오 어쩌고 하는 글이 가득한 거 보고 혈압이 뻗치더군요. 어떻게 이토록 눈멀고 귀멀어서 말까지 헛소리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개인사로서는 불쌍한 점도 있지만 국가를 그런 당치도 않은 측은지심으로 맡기느냐 말입니다. 자기 집 살림 남 맘대로 하라면 넘길 건가 아니잖아요.
박근혜 워딩은 하나같이 엉망인데 그것도 간파를 못하는 국민 40%....한국 실질문맹률 낮은 거 이 예만 봐도 확실하죠...당하는 지도 모르고 있겠죠. 어휴...

2016-10-26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26 0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좋은 책도 있었네요. ^^
근간 읽고싶은 소설이 전혀 없었는데, 이 책은 땡깁니다. ㅎ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

AgalmA 2016-10-26 07:26   좋아요 1 | URL
굿모닝요^^ <도롱뇽과의 전쟁>은 내용도 흥미진진이지만 책 자체가 아트웍입니다. 카렐 차페크 형 요세프 차페크도 유명한 화가이기도 한데(제 보기엔 별로 였으나ㅎ;;...사회주의 시절에 갇힌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예술가 집안^^

2016-10-27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8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11-04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 <도룡뇽과의 전쟁> 도 읽어보고 싶네요... Agalma님 덕택에 보관함에 쌓인 책이 더 들어나겠습니다ㅠㅋ

AgalmA 2016-11-04 11:0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 고양이라디오님 글보기 무서워요ㅎ...책굴비 엮어놓고 군침 흘리게 하잖음
 
아, 쉽게 쓰여진 시

 

 

 

 

 

 

 

 

 

 

 

 

 

 

조약돌


 
 

조약돌은 정의하기에 쉬운 사물이 아니다.
단순한 묘사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우선 조약돌이 바위와 자갈 사이의 돌의 형태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이미 돌에 대해서 증명되어야 하는 하나의 개념을 의미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노아의 홍수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나를 비판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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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바위덩이들은 엄청나게 큰 하나의 선조로부터 분열되어 나왔다. 전설적인 이 몸체에 대해 한가지밖에 말할 수 없다. 저 세상을 벗어나면 허황한 얘기라는 것이다.
최후의 끈적끈적한 솟구침 사이에 무정형으로 퍼져 있는 그것을 이성이 잡는다. 이성은 세상만한 크기의 영웅의 세례식을 위해 잠을 깨고 죽음의 침상의 무시무시한 반죽통을 발견한다.
여기서 독자는 너무 빨리 지나치지 말아야 하고, 두껍고 음울한 표현 대신에 그 표현들을 조금이라도 투명하게 해주고 그 표현들로 완전히 흐려지지 않을 수 있는 진리의 위대함과 영광을 찬미해야 한다.
이처럼, 이미 광채를 잃고 차가운 위성 위에 지금은 태양이 빛난다. 그를 향해서 타오르던 어떤 위성도 더 이상 속이지 않는다. 모든 영광과 모든 삶, 보게 해주고, 살게 해주는 객관적 외양의 모든 원천이 태양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로부터 나와서 그의 주변을 맴돌던 영웅들은 스스로 빛을 잃었다. 그들이 그 근원 자체를 위하여 그 영광을 마다하는 진리가 관중과 또 죽어버렸거나 죽어 가는 대상들을 유지하도록, 그들은 진리 주위를 맴돌고, 관객의 역할을 하기를 계속한다.
그런 희생, 이전에 그토록 영광스럽고 뜨겁던 자연 밖으로의 생명의 축출이 드라마틱한 내적 전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우리의 소박하고도 멋진 거주지 지구의 회색 빛 혼돈의 기원이 있다.
이처럼, 이불 밑에서 요동치며 잠자는 육체와 같은 비틀림과 기복의 기간이 지난 후에 엄청난 구속의 힘에 의한 것처럼 자신의 의식에 굴복당한 우리의 영웅은 점점 더 드물어지는 내적 폭발로 점점 더 무거워지고 차거워지는 껍질을 부술 뿐이다.
죽어버린 영웅과 혼돈스런 지구가 오늘날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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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하는 능력과 더불어 하나의 온전한 개체로 다시 만들어지는 능력을 영원히 잃어버린 이 몸으로부터, 냉각의 느린 재앙 이래로 역사는 영속적인 붕괴의 역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때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위대함은 죽어버렸고, 생명은 위대함과는 전연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내 수많은 자원으로.
그런 것이 오늘날 지구의 겉모양이다. 세계만한 크기의 존재의 조각난 시체는 그보다 더 작고 더 덧없는 수없이 많은 존재들의 생명에 장식으로 쓰일 뿐이다. 그 무리들은 곳에 따라 너무 밀집해 있어서 자신들의 유일한 지주 역할을 해온 성스런 뼈대를 완전히 가린다. 그때부터 돌의 밀도를 본따는 데 성공하여 그 시체들에게 바위에 조금도 의지하지 않고 식물성 토양이라는 것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을 복제하게 하는 것은 그 시체의 무한함이다.
게다가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것만큼이나 오래 된 기원의 액체적 요소들은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결합하여 그것을 덮고, 스치고, 계속적인 타격으로 그것의 침식을 활성화한다.
그래서 나는 산재하고 있고, 세상에 의해 천대받는 돌이 우리 눈에 보여주는 몇몇 형태들을 묘사하겠다.
 
*
 
종교적으로나 다른 이유들로 거기에 뿌리를 내려 움켜쥐고 있는 식물들 아래로 거의 보이지 않는 포석들은 가장 큰 조각들로서 지구의 골격을 구성한다.
거기가 진정 사원들이다. 땅 위에 아무렇게나 올라간 건축물들이 아니라 세상에 그전에 진짜로 존재했고 옛날 영웅의 무심한 잔해들인 것이다.
이 신비로운 덩어리들을 뒤덮고 있는 숲의 어두움과 향기 사이에서 위대한 것들을 상상하는 인간은 정신으로만 그 아래에 그들의 연속성을 짐작한다.
같은 자리의 조금 더 작은 많은 덩이들이 그의 관심을 끈다. 그 신의 더러워진 손가락으로 반죽된 여러 다른 크기의 돌조각들은 시간에 의해 숲 속에 흩뿌려져 있고.
그들의 까마득한 선조의 폭발 이래로, 그리고 기력 없이 쇠잔한 하늘로 쏘아 올려진 이래로 바위들은 침묵했다.
더 이상 면도하지 않는 사람처럼 싹이 돋아 올라 침범당하고 부서지고 파헤쳐지나 움직이는 흙이 그 자리를 메워주어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게 된 그들 중 어느 하나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형상들과 그들의 육체에는 금이 간다. 경륜의 주름살 속에 순진함이 찾아와 깃들인다. 장미가 그들의 무릎 위에 와서 앉고 그들에게 순진한 독설을 가한다. 그래도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전에는 엄청난 우박이 그들의 숲을 간벌해 주었고, 혼미와 체념 속에 그들의 지속은 영원하다.
그들은 주변에 수많은 꽃의 세대들, 그들의 살색보다 조금 더 생기 있는 살색을 띠고 있고, 그들의 회색만큼이나 창백하고 시든 장미색의 꽃의 세대들이 생겨났다가 스러져 가는 것을 보고 웃는다. 그들은 (말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는 입상들처럼) 이 색깔들이 지는 해의 하늘빛, 한결 더 눈부신 한 화재를 기념하여 매일 밤 시도되는 빛에서 그 색조를 빌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굉장한 격변의 순간에 공중에 격렬하게 내던져진 그들은 놀라운 경악으로 마감되는 한 시간의 멋진 자유를 맛보았다. 거기서부터 머지 않은 곳에, 그들의 지친 여인들의 거품 이는 노력의 가장자리에서 거인 관객의 바위투성이 무릎을 한 바다는 자신이 간직한 덩어리를 몸에 꼭 껴안고 팔 속에서 떼어내고, 껴안고, 흔들어주고, 애지중지하고, 거듭하고, 짓이기고, 쓰다듬고, 윤을 내거나, 사탕처럼 입 안 한구석에 밀어두었다가, 입에서 꺼내어, 나지막한 경사의 다정스런 가장자리에 자신의 손에 닿는 거리에 이미 많은 무리 가운데 내려놓는다. 이는 이내 그곳에서 그것을 다시 취해 한층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정열적으로 다루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바람이 분다. 바람은 모래를 날려보낸다. 그리고 만일 우리를 사로잡는 대상의 최후의 가장 미세한 형태인 이 입자들 중의 하나가 우리들의 눈 속에 실제로 들어가게 된다면, 돌은 자신만의 특별한 눈부시게 하는 방법을 통해 벌하고 우리들의 명상을 끝나게 한다.
오랜 명상이 거기에 쌓은 지식들이 몇몇 원칙들을 이미 그에게 제공하지 않았다면 자연은 기억의 내부로 탐구해가는 순간이 올 때 우리의 눈을 감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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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외양에서 자양분을 얻어 개념을 찾아내고 싶어하는 정신에게 자연은 돌에 관해서는, 아마도 너무 간단히, 마치 하나의 동력에 의해 움직이긴 하나 매우 불규칙한 속도로 도는 바퀴들로 이루어지는 원리를 가진 시계처럼 보인다. 
식물, 동물, 기체, 액체는 죽어가고 되살아나면서 조금 빠르게 또는 덜 빠르게 돌아간다. 돌의 큰 바퀴는 우리에게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고, 비록 이론적으로라도 우리는 그것의 오랜 풍화의 단계의 한 부분만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돌을 인간의 눈에 지속과 무감동의 상징으로 삼는 일반적 의견과는 반대로, 돌이 실제 자연 속에서는 스스로를 다시 형성해 나가지 않고, 끊임없이 죽어가는 유일한 사물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계속적으로 생명을 받아들이는 존재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상당히 짧은 기탁 기간 동안 돌이 자신이 깃들이고 있는 장식의 파괴할 수 없는 단단함을 부러워한다고 믿게 할 때라도 실제로 그 돌은 이 장식의 계속되는 풍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그에게 드라마틱해 보이는 행동의 통일성이 있다. 돌은 스스로 영원히 부활할 수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의 지주가 어느 날 없어질 수 있다고 혼돈스레 생각한다. 살아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폐허로 변할 것만을 생각하는 장식 속에서 그 생명은 부활만을 생각하며 염려하고 불안해한다.
돌 자체가 때로 불안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조약돌, 자갈, 모래, 먼지의 돌의 마지막 상태 때에, 돌은 용기의 역할, 생명이 있는 사물들의 지주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근원적 덩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돌은 구르고, 나르고, 지면에 자신의 자리를 요구하고, 일생 동안 절망의 광란이 그를 흩었다가 다시 모으는 넓은 언덕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간다.
모두 돌의 진화의 어느 상태를 표현하는 그 모든 형태들이 동시에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매우 중요한 원칙으로 지적한다. 여기에는 세대들도 없고, 멸종된 것들도 없다. 사원들, 반신(半神)들, 경이들, 맘모스들, 영웅들, 선조들이 매일 그들의 손자들과 이웃한다. 인간은 자기 정원에서 이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개념은 없고 모든 것이 존재한다. 또는 차라리 천국에서처럼 모든 개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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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좀더 주의깊게 돌의 특이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를 검사하기를 원한다면, 그 형태의 완전성과 내가 쥘 수 있고 내 손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약돌을 선택하게 한다.
또한 조약돌은 바로 개체의 시대, 개인의 시대, 즉 말의 시대가 시작하는 시기의 돌이다.
그가 직접 유래하는 바위층과 비교했을 때, 조약돌은 이미 조각난 돌이며, 거의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로 갈고 닦인 돌이다. 한결 작은 자갈과 비교했을 때, 조약돌은 인간이 그것을 실용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견되는 장소에 의해, 야생적인 돌이며, 적어도 길이 든 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실용적인 질서 속에서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채 남아 있는 며칠 동안이라도, 이 이점을 살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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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수많은 물결 중의 하나에 의해 운반된 조약돌, 그 후 물결들은 빈 화물을 부리는 소리만 내고 있는데, 조약돌은 그의 과거의 형태 더미와 미래의 형태 더미 위에 쉬고 있다.
풀이 난 땅이 그의 오랜 선조들을 아직 덮고 있는 장소에서 머지않은 곳에, 그의 바로 위 부모들의 사랑의 행위가 벌어지는 바위덩이 아래에 그는 같은 것들의 낱알로 형성되어 있는 땅, 토목장이 물결이 그를 찾고 그를 잃어버리는 곳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바다가 일상적으로 쫓아보내는 이 장소들은 공인 받기에 가장 부적합한 장소들이다. 그 인구들은 그 지역만 알고 있는 가운데 그 곳에 산다. 각자는 그 곳에서 잊혀졌다고 여긴다. 왜냐면 그는 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자기를 고려해주기에는 너무 맹목적인 힘들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 무리가 쉬는 곳 어디에서나, 그들은 실제로 모든 바닥을 덮고 있으며, 그들의 등은 발을 딛기에 그리고 정신을 딛기에 불편한 바닥을 형성한다.
새도 없다. 그들 사이로 풀잎이 삐죽 나온다. 도마뱀들이 그들을 헤집고 다니고, 함부로 돌아다닌다. 메뚜기들은 팔짝팔짝 뛰면서 조약돌들을 재기보다는 서로들을 재어본다. 인간들은 때로 그들 중의 하나를 멀찌감치 집어던진다.
그러나 마지막 조금 남은 이 대상들은, 마른 풀들, 해초들, 낡은 병 뚜껑들, 인간의 생필품의 온갖 쓰레기들로 인해 손상된 고독의 한복판에서 무질서하게 버려진 채, 대기의 엄청난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꼼짝 않고 있으면서, 맹목적으로 숨을 헐떡이며 모든 이성을 저버리고 모든 것을 쫓아가는 이 힘들의 광경에 말없이 참관하고 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지역 어느 곳엔가에 남아 있다. 나무를 뿌리채 뽑아내고 건물을 파괴할 만큼 힘센 바랍도 조약돌을 옮길 수는 없다. 그러나 바람이 주변의 먼지를 날려보내기 때문에, 때로는 태풍의 손길이 수세기 전부터 모래의 두텁고 한시적인 층 아래의 어느 한 자리로부터 우연히 그 돌들 중의 하나를 파내기도 한다.
그러나 반면에 미끌미끌하게 하고, 자신이 완전히 감쌀 수 있는 모든 것에 액체의 성격을 전파하는 물은 때때로 조약돌들을 유혹하고 끌어당긴다. 왜냐하면 조약돌은 무정형의 돌의 괴물 위에 가해진 무정형의 이 괴물의 노력으로 그가 태어났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체는 아직도 액체가 수차례 발라져야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조약돌은 본래 영원히 물에는 유순하다.
밤에 비해 낮이 밋밋하듯이 땅에서는 밋밋한 조약돌을 파도가 다시 뒤덮는 순간, 물은 그를 반짝이게 한다. 그리고 물이 내부에 작용할 수 없지만, 그리고 매우 섬세하고 밀집된 돌덩이를 가까스로 침투할 뿐이지만, 액체의 매우 활발하나 가냘플 접착성은 돌의 표면에 눈에 띄는 변화를 야기한다. 물이 돌을 다시 윤을 내고, 그들의 이전의 사랑으로 입은 상처들에 붕대를 감아주는 것 같다. 그래서 잠시 조약돌의 외면은 그 내면과 닮는다--조약돌은 그 육체 위에 젊음의 눈을 가진다.
그렇지만 완전에 이른 그의 형태는 두 가지 환경을 견딘다. 그 형태는 바다의 무질서 속에서는 태연자약하다. 그러나 물에서 나올 때는 좀더 작아져서, 그러나 흠 없이 나온다. 그리고 또한 크게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돌의 크기는 양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에서 나온 조약돌은 이내 마른다. 그에게 가해졌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액체의 흔적은 그 표면에 남을 수 없다. 조약돌은 아무런 수고 없이 그 흔적을 날려버린다.
마침내 매일매일 조금씩 적어지나 늘 자신의 형태에 대해 자신만만하고, 맹목적이고, 단단하고, 메마른 내면의 조약돌의 성격은 그래서 뒤섞이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물로 자신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또한 굴복하여 모래가 되었을 때에도 물은 먼지에 파고들 듯 모래에 파고들지는 않는다. 모래 위에 다른 것들이 새겨놓는 흔적들을 지우는데 머무는 액체의 흔적을 제외하고 모든 흔적들을 간직하면서, 모래는 모래를 가지고 진흙을 만들 수 없어 그 깊이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온 바다가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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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기호들의 사라짐에 대한 이 생각은 너무 말에 의존하는 문체의 결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만 시작으로 조약돌을 선택해서 너무 행복할 뿐.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미소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나, 나의 비평가들이 "돌에 대한 묘사를 쓰려고 시도해놓고, 그는 스스로를 옭매고 말았다"고 말할 때 그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ㅡ프랑시스 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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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죠. 신전을 만드는 재료가 아닌 돌로 인해 만들어진 저 詩의 신전은 무어라 말해야 좋을까요.
프랑시스 퐁주가 제시한 돌을 보고 돌 하나가 구성하는 우주를 생각하며 아득했습니다.
프란시스 퐁주는 다른 시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결코 사고를 제시해서는 안되고 대상을 제시하여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사고조차도 대상의 모습을 띠도록 해야 한다.
시는 특별히 인간을 위해 만들어져 놓인, 인간에게 제시되는 즐김의 대상이다. 이러한 의도를 시인은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김민정 시인과 프랑시스 퐁주가 말하는 돌, 그 방식은 돌 만큼 많은 다양성에 해당될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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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꿈꾸지만 불멸할 수 없다는 걸 아는 형태와 상태...

시인들이 말하는 돌보다 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해야 내 말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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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6-10-25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약돌 하나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다시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다니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

AgalmA 2016-10-25 15:29   좋아요 1 | URL
네. 퐁주 사물시들은 거의 단편소설 분량이죠^^; 충격에 충격을 주는 시들 가득해요. ˝물˝시도 엄청 좋아하는데 이웃에게 스트레스를 줄까봐 안 옮기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6-10-25 1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제가 몹쓸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고로,
전에 언젠가 조약돌 애기를 했을때,
이 프랑시스 퐁주 소개해 주셨던 거 기억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전 왜 퐁듀가 연상되는 것인지~--;

저의 `좋아요`는 프랑시스 퐁쥬를 향한 것이 아니라,
님의 이 페이퍼를 향한 것입니다.
거의 실시간인걸요, 이렇게 빠른 먼댓글이라니, `쫌` 멋진거 아녜요?
마음 같아서 백만개의 하트를 `뿅뿅~=3` 날리고 싶지만,
푼수는 이쯤에서 물러갑니다요~^^

AgalmA 2016-10-25 16:47   좋아요 1 | URL
퐁듀ㅎ 그 말 하시니 저는 듀퐁이..ㅎ;;
양철나무꾼님 뜸하게 나타나셔서 언제 대화 나눌지 몰라 제가 얼마나 급하게 먼댓글 썼는지 아세요ㅎ 그래서 생각 정리도 못하고 급하게 올려서 제 생각이 저 모양으로 뚝 끊김ㅋ;;
날 쌀쌀한데 건강 조심하시고 곧, 또^^/

cyrus 2016-10-25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솔출판사, 청하출판사에 나온 시집들은 헌책방에 만나기 어려운 레어본입니다. 퐁쥬의 시가 어렵다고 해도 저 두 권의 시집을 만나면 살 겁니다. ^^

AgalmA 2016-10-25 19:04   좋아요 2 | URL
시에 워낙 관심이 많아서 저는 실시간 겟~해서 샀죠^^ 솔 출판사와 청하에서 나온 국내 시인, 세계 시인선은 정말 다 명작들이죠. 헌책방에서 발견하시면 무조건 사셔야 합니다!

ICE-9 2016-10-25 2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아, 반갑네요. 저도 청하에서 나온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 시집 가지고 있는데. 고향집 책장 한켠에서 지금도 조용히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있을텐데, 참으로 오랜만에 사진을 통해 보니 반가워서 이렇게 댓글 남기네요.
글도 잘 읽었습니다^^

AgalmA 2016-10-25 23:45   좋아요 1 | URL
어, 저도 반갑네요. 헤르메스님^^ 지금 보면 세계문제시인선집이라니 그 타이틀에 웃음이 나기도ㅎ;;...니체도 그렇고 청하에서 좋은 책 많이 나와서 많이들 가지고 계시죠. 실비아 플라스도 청하 시집으로 만나게 됐을 때 정말 좋았죠.
퐁주 시는 직접 타이핑해서 많이 가지고 있는데 길어서 정말 애먹었어요ㅎ; 하지만 이렇게 같이 추억 나누게 되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6-11-30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라하는 책세상의 책들이 보인다는! ^^

AgalmA 2016-12-01 16:58   좋아요 1 | URL
예전엔 책세상 책 많이 봤는데, 요즘은 그때 퀄리티의 책들이 잘 안 나오는 듯해요?

[그장소] 2016-12-01 17:12   좋아요 1 | URL
아.. 신간 소식을 Agalma님 통해 보니, 작년엔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기억이 모락모락,
그래도 가져온 책은 얼마 안되었지만 .. 여기 책은 종이가 넘 맘에 들어요 . 손에 착 감기는 맛이있어서.. ^^
 

 

의 시에선 붉음이 나비처럼 영혼처럼 떠돈다.
<雄鷄(웅계:수탉) 下> 첫 시구처럼 모든 사랑하는 것의 피를 갈구하는 시인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그에겐 입맞춤도 ˝피묻은 입마춤˝(<五午의 언덕에서>)이어야 했다.
Black String의 앨범 제목 《Mask Dance》 처용 가면을 쓰고 잡귀를 쫓는 내용의 처용무(處容舞)에서 왔다. 앨범 커버도 붉은 처용 가면을 형상화 한 것일 텐데 붉은 맨드라미 같기도 하여라.


*처용의 이야기가 가진 기괴하면서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음악을 통해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사운드적으로도 앰프와 이펙터들을 국악기와 결합하여 강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국악 장단인 칠채를 바탕으로 완성한 Seven Beats, 진도 씻김굿 초가망석 중에 등장하는 신노래를 새롭게 재해석한 Song From Heaven, 문묘제례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듯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실험적으로 표현한 Strangeness Moon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국 음악이 나아갈 또 다른 길을 제시한다.(앨범 소개 글 발췌)


 

 

 《Mask Dance》에서 "Song From Heaven"이 나는 가장 좋았다.

 

가면을 쓰고 추는 춤 속에서 영(靈)과 씨름하며 노래하는 듯한 미당 시를 읽으며 Black String을 들으니 설움 굿판이었다.

`아무 病도 없으면...슬픈일좀 슬픈일좀, 있어야겠다`(<봄>)니..... 슬픈 정조 없이 사람이라 할 수 없어 그러셨겠다. 올더스 헉슬리는 비극이 가장 고양된 형식은 아니라고 말하며, 비극과 희극의 완전한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으로 희곡을 그리고 그것을 계승하는 소설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그러나 가장 고양된 형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벽에 내 이마를 쿵 찍어 보았다. 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설움 하나 떨어져 나갈까 해서. 설움만큼 많은 바보짓이지. 설움은 벙어리 같은 것을. 어떤 이름도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듣는 것인가. 그래서 읽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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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10-2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이/청년들은 실험정신 혹은 도전정신이 없다면 반쯤 죽은 것이죠. 우리 한국 음악계에선 실험정신/도전정신을 목격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요. 있다고 하더라도 1회성 ‘이벤트’나 단기 ‘프로젝트’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한데, 일단은 Black String의 실험/도전정신에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밴드/그룹의 공연을 보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음향학적 혹은 악기학(?)적 고려가 거의 없거나 매우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음악을 하자면, 악기 연주 능력, 작사작곡편곡 능력, 가창력, 해석력 등등의 기본은 있어야겠죠. 여기까지는 한국인 음악가들 자신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이런 기본적 능력을 제대로 펼치는 데 필수불가결한 음악학적/음향학적/악기학적 기반에 대해선 한국 음악가들의 탐구의 시선이 전혀/거의 가닿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 영역은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죠. 우리 한국인들이 음주가무 주색잡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소질을 보입니다만, 그래서 음악 분야에서만큼은 성과를 보이고 있고 미래를 기대케 합니다만, 그 음악적 역량을 더욱 더 증폭시키고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필수불가결한 음악학/음향학/악기학적 연구 역량, 즉 전반적인 음악과학의 연구 역량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 전통 악기인 거문고/가야금, 징, 북, 장구, 꽹과리, 아쟁, 해금 등등은 서양 악기들, 특히 전기 기타와는 그 음향학적 주파수 특성이 매우 다른데요. 그래서 그 전통 악기들에서 나오는 소리를 제대로 처리해줄 (전용) 마이크, 녹음기, 믹서기, 스피커, 등등을 특수 설계하고 제작하고 운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선 사물놀이 음악이 본격적으로 녹음되고 음반/음원으로 나오기 시작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도 거의 해결된 게 없어 보입니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도 한국 음악가들이나 음악학자/음향학자/악기학자들한테는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악 음반이나 음원, 저 위 Black String의 공연처럼 국악기와 서양 악기를 섞어 연주하는 실험적 ‘퓨전 음악’ 따위를 들어보면 전통 국악기들의 그 고유한 음과 맛이 제대로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솔까 기존 음향 기기/장비들은 모두 서양인들이 혹은 일본인들이 설계하고 서양인 귀와 서양인 악기에 맞게 설계/제작되고 조율된 것들이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그냥 그대로 들여와 아무런 맞춤/조율 과정 없이 쓰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우리 한국 음악엔 결정적인 약점인 동시에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이랄 수 있습니다. 국악의 확산과 발전에 결정적인 걸림돌입니다. 해서 한국 전통 국악기에 대한 음악학/음향학/악기학적 속성을 과학적으로 낱낱이 파악하고 체계적/이론적으로 정립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과학의 영역이죠. 우리 한국인들한테 절대적으로 약한 분야입니다.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음주가무나 주색잡기, 권력놀음 투입하는 한국인들로선 귀찮기도 하고 재미없는 분야인 것이죠. 그러나 이런 기본적 문제 해결 없이 한국 음악의 발전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험정신, 도전정신을 뒷받침해주려면 반드시 과학적 기반 기술이 동반해야 할 것입니다.

AgalmA 2016-10-25 03:48   좋아요 3 | URL
qualia님의 한국문화 염려는 잘 알겠습니다. 한국 음반 산업이 주로 엔터테이먼트식으로 돌아가니 제반적인 투자가 많이 부족하죠. 거기도 경제 시스템으로 돌아가니까. 구조적 문제가 크죠. 뮤지션들이나 음악에 종사하는 분들의 전적인 잘못이라 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빚내서 장비와 완벽한 음향시스템 갖춰서 음악하라고 할 순 없잖아요? Black String 경우는 해외 유명 재즈레이블에서 먼저 러브콜을 해 와서 앨범 5장 내는 걸로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 ˝잠비나이˝도 실험적이면서 뛰어난 기량으로 주로 해외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국악에 대한 여러 모색은 민족음악연구소 같은 데에서도 노력하고 있죠.

우리가 즐기는 대부분의 음악은 서양이 토대죠. 일전에도 이 비슷한 논의를 한 거 같은데 이런 교육 제도 속에서는 재능 개발도 어려울 뿐더러 창의적인 활동도 어렵죠. 본고장으로 가 공부하려면 왠만한 투자론 어려운데 개인들의 노력만 바라야 되는 상황이죠.

한국에서 1년에 공연 가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문화에 대한 한국 사람들 전체의 무관심이 문제입니다.
서양은 부르주아와 경제력으로 그런 문화를 꾸준히 키울 수 있었죠. 그런 풍토가 이어져서 문화 전반이 풍부해진 거고요. 먹고 살기 더 힘들어진 지금 시대에선 한국의 문화 산업은 더 어려운 지경이 되어 버렸어요. 예전 싸이- 강남스타일 반짝 인기에 많은 사람들이 대리만족했지만, 그건 참 우연이었죠. 투자나 관심은 안 주면서 뭘 내놓기만 바라니 딱한 노릇 아닙니까?

국가적인 문화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이번 부산영화제만 해도 작년 다이빙벨 상영 문제로 정부가 간섭했던 게 해외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줘서 올해 해외작품 상영이 반이나 줄었다고 하죠. 한국에서는 늘 이런 식인데 과학 기술 있다고 뜻있고 자유로운 창작이 되겠습니까. 청와대가 블랙리스트 만들어서 예술진흥기금 혜택도 악의적으로 안 주는 나라! 멀쩡한 인공위성도 헐값에 팔아 누구 주머니에 간 건지 알 수 없게 된 꼴통짓에, 복지 사업, 우주 개발 산업에 써야 될 돈도 강바닥에 퍼부은 나라 아녔나요?

이런 속에서도 창작에 애쓰는 창작인들에게 관심 가져주는 것밖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AgalmA 2016-10-25 0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네루다에 대해 ˝스탈린을 찬양했던 그의 시를 잊을 수만 있다면˝ 이라고 말했듯이, 서정주에 대해서도 김춘수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럴 것이다

2016-10-25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5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5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도질당한 제목들

 

 

 

 

 

 

 

 

 

 

 

 

 

 

 

 

프란츠는 갑자기 이 대장정이 끝에 다다랐다는 인상을 받았다. 침묵의 구경꾼들은 유럽으로 좁아들었고, 대장정이 완수되는 공간은 지구 한복판에 있는 조그만 연단에 불과하게 되었다. 한때 연단 밑에 몰려들던 군중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면한 터였고, 대장정은 관중이 없는 고독 속에서 계속되었던 것이다. 프란츠는 생각했다. 그렇다, 세상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대장정은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신경질적이고 과민한 어떤 것으로 변해 버렸다. 어제는 미국의 베트남 점령에 반대하며, 오늘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에 반대하며, 어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오늘은 팔레스타인을 위해서, 어제는 쿠바를 위해, 내일은 쿠바를 반대하며, 항상 미국에 대항하며, 매번 학살에 반대하며, 또한 매번 다른 학살을 지지하면서 유럽은 행진을 계속했다. 하나의 사건도 빠뜨리지 않고 리듬을 따라가기 위해 그 발걸음은 더욱더 빨라졌고, 그래서 대장정은 빠른 발걸음으로 행진하는 바쁜 사람들의 행렬이 되었다. 마침내 무대는 더욱더 좁아져서 어느 날 면적 없는 한 점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중략)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 외에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보다 좋은 다른 뭔가가 그들에게 남아 있을까?

프란츠의 생각이 옳다. 프라하에서 정치범의 사면을 위한 서명 캠페인을 벌였던 기자에 대해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 사람은 이 캠페인이 정치범을 돕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목표는 정치범의 석방이 아니라 아직도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가 했던 것도 구경거리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없었다. 그에게는 행동과 구경거리 사이에서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그에게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구경거리를 제공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인간이 구경거리를 제공할 수밖에 없게 선고된 상황이 있게 마련이다. 침묵하는 권력(강 건너의 침묵하는 권력, 벽 속에 숨겨진 조용한 도청장치로 변신한 경찰)에 대항하는 그의 전투란 군대를 공격하는 연극단원의 전투인 것이다.

프란츠의 눈에 소르본 대학의 친구가 주먹을 치켜들고 강 건너의 침묵을 위협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통역관은 세 번째로 메가폰에 대고 소리쳤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역시 침묵뿐이었고, 그것이 갑자기 프란츠의 고뇌를 광적인 분노로 바꾸어버렸다. 그는 태국과 캄보디다 사이의 다리로부터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다리로 뛰어가 하늘을 향해 끔찍한 욕설을 퍼붓고는 요란한 총성 속에서 죽고 싶다는 엄청난 욕망에 사로잡혔다.

프란츠의 이러한 돌연한 욕망은 우리에게 뭔가를 기억나게 한다. 그렇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극단들이 서로 가까워져 거의 닿을 지경이 되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천사와 파리, 신과 똥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이 없게 되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하여 고압이 흐르는 철조망에 달려가 매달린, 스탈린의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대장정의 영광이 행진하는 사람들의 코믹한 허영심으로 축소되고, 유럽 역사의 장대한 소란이 무한한 침묵 속으로 실종되어 역사와 침묵 간에 더 이상 아무런 차이점도 없게 되는 것을 프란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대장정이 똥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천칭에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올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전혀 증명할 수 없다. 천칭의 한쪽 접시에는 똥이 있었고, 스탈린의 아들은 몸뚱이 전부를 다른 접시 위에 올려놓았지만 천칭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총을 맞고 죽는 대신 프란츠는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렬로 서서 버스로 돌아갔다.

 

 

 

 

*

ㅇ님의 '구경거리'에 대한 단상에 먼댓글로 쓴 글이었는데 비공개 처리하셔서 이 글도 이상한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

이 글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구경거리'로 시작해 구경거리로 끝나게 되는 글의 운명을 잠시 생각했다.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들을 따져 보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이 책 제목은 언제나 진리처럼 느껴진다.

ㅇ님을 짐작한 투사가 아니라 내 얘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책장에 꽂고 나는 다른 책으로 돌아간다. 디아나의 저주로 사슴으로 변한 악타이온이 자신의 사냥개에게 물어뜯기며 동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던 일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길을 잃었다. 그것은 죄가 아니라 이유였다. 디아나의 목욕을 보게 된 건 그의 뜻이 아니라 뜻밖의 사건과의 조우였다. 이 일화는 원인과 결과가 정합적인 게 아닌 걸 알려준다.

우리의 곤란은 이 혼란 상태 때문이지 않을까. 모두가 잃음의 상태를 앓고 있다. 진정한 사실은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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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6-10-23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잠든 사이에 이런 일이.... 제 불찰로 Agalma님의 글이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됐었네요ㅠㅠ 어제 자기 전에 다시 읽어보니 이상한 문장이 너무 많아 아침에 수정하려고 비공개로 해놓은 것인데... 죄송합니다ㅠㅠ 지금은 수정해서 다시 공개해놓았어요^^;;

제가 조만간 꼭 읽고 말겠다고 벼르고 있는 작가 1순위가 쿤데라예요. 여태 한 권도 읽어보지 못해서.. 책은 계속 사서 꽂혀 있는데, 자꾸 읽는 책 수가 늘어서 12월 전에 읽지는 못할 것 같아요ㅠㅠ 그래도 언제나 마음 속엔 1순위로 남아있습니다 ㅎㅎ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은 읽고 난 뒤에 꼭 리뷰를 쓰는 걸로...^^

AgalmA 2016-10-23 12:12   좋아요 1 | URL
저도 자고 일어나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ㅎ;;
그랬군요. 글을 다 쓰고 올렸는데, 아무님 글이 없...(@@)>...무슨 사정이 있어 비공개 처리를 한 것일 텐데 제가 괜히 이런 댓글을 남긴 바람에 아무님 입장도 이상하게 되어 버려서 저도 미안했어요^^;; 위에 원인과 결과와 혼란 얘기했다시피 상황이란 게 참 그래요... 아무님이 미안하실 일은 아닌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그렇듯이 아무님도 밀란 쿤데라 읽으시면 쏙 빠지실 거라 장담ㅎ~
 

1. 태 금지과연 생명 존중을 위해서였을까.

    

 

한국에서는 1953년 낙태죄가 형법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아이 아버지는 문제에서 빠지고 의사와 부녀만 처벌을 받는데, 의사에 대한 처벌이 더 무거운 건 뭘 뜻할까. 아이를 낳고 안 낳고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가지겠다는 권력 의지가 엿보인다. 또한 변덕도 심하다. 1966년 가족계획 사업을 추진하며 낙태를 조장했고, 2007년에는 몇몇 낙태 사유를 삭제하기도 했다. 2009년엔 낙태 근절 운동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지금은 급격한 저출산 현상으로 국가 위기에 봉착하니 보건복지부가 낙태금지법을 본격 들고 나왔다. 비도덕적 의료 행위 근절이란 간판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부의 속셈이 너무 환하게 보인다.

 

 

관련 기사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2794

 

 

 

위 기사에서 안치용 교수는 낙태죄 폐지가 어렵다면 사정(射精)금지 입법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난센스 같은 말이기도 하지만 남녀평등과 인권에 대한 일침이다.

이 사안은 향후 대권 주자들의 공약 쟁점이 될 것이다. 여성 표를 얻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위키백과를 보면 낙태에 대한 국가별 입장을 볼 수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82%99%ED%83%9C%EB%B2%95

 

 

임산부 요청 시 낙태가 합법인 나라에 북한이 있다는 데 놀랐다. 식량 지급의 문제도 있을 테지만 국가 경쟁력으로 따지자면 인구는 많을수록 좋을 텐데? 낙태가 합법인 나라를 보면 생식권을 개인에게 준 것에서 그 나라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 북한 인권 결의안 문제로 또 시끄럽던데 그 저의(底意) 모르는 바 아니고, 낙태 문제를 놓고 보면 제 얼굴이나 잘 바라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의 항목을 봤다. ‘성폭행, 근친상간, 임신부의 생명, 신체적·정신적 건강, 태아의 결함 이유 외엔 불법. 사회적 여건 불문하고 경제력이 없어도 무조건 낳으란 소리다. 이 입장은 폴란드도 같았지만, 종교의 힘이 강한데도 최근 폴란드는 낙태금지법을 전면 폐기했다.

 

 

관련 기사 : http://www.huffingtonpost.kr/2016/10/14/story_n_12484722.html

   

 

 

세계적인 경제 침체에 유효 수요층으로 여성이 타깃이 되었고, 국가는 경제 체제에 여성을 대거 진출시켰다. 낙태금지법으로 여성에게 아이도 많이 낳아야 한다는 요구까지 하고 있는 이 세계는 가증스럽다. 한국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 다시 경제 시스템에 들어갈 때 열악한 비정규직과 임금차별 밖에 돌려줄 게 없다. 군 가산제처럼 출산 가산제가 있지도 않을뿐더러 눈칫밥을 감수해야 한다. 딴 주제이지만 요즘 모병제가 다시 이슈화되고 있는데 현실성을 따지기보다 현실화되도록 따져야 한다. 남성과 여성, 기혼과 비혼 경계 없이 차별받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려면 이러한 모색이 많이 나와야 한다.

 

 

 

돌아와, 낙태 문제에서 생명은 소중하다를 대전제로 놓기보다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생명의 처지와 의무도 동등한 무게로 살펴봤으면 좋겠다.

 

    

 

억압적인 삶의 양식 속에 괴로워하는 인간 군상은 Pina Bausch(피나 바우쉬) 무용극이 주로 보여주는 특징인데, Cafe Müller》(1978)에서도 극적으로 보여준다

 

 

 

 

2. 속 살해와 보통 살해에 부과되는 형은 차별인가 아닌가

 

얼마 전 [그것은 알기 싫다]일본의 형법을 바꾼 존속살해 사건”(https://soundcloud.com/xsfm/196b)을 다루었다. 를 도덕적 잣대로 두고 보통 살해보다 존속 살해에 지나치게 높은 형을 부과하는 부조리함을 비판했다. 친아버지에게 수년간 성폭력을 당해 딸을 다섯이나 낳은 여성이 결국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에서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존속살해라는 이유만으로 형이 높은 것에 위헌성이 제기되어 1973년 일본은 존속 살해 형법을 위헌으로 폐지했다. 참고로 1975년엔 프랑스가 낙태를 합법화했다.(목수정《파리의 생활좌파들》 참고)

 

그렇다면 한국은존속 살해는 죄의 본질보다 신분 관계를 중요하게 따진다. 이혼하면 남인데도 배우자의 직계 존속을 살해할 경우도 존속 살해에 해당된다. 원래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었지만 1995년 개정으로 사형, 무기, 7년 이상 징역으로 기준을 바꿨다. 1973년 이전의 일본의 존속 살해 형법 수준이다. 돈이 얽힌 패륜이라 불릴 만한 사건도 있지만많은 존속 살해가 가족의 성폭력과 학대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일 때보다 자식이 부모를 죽일 때 형량과 비난이 더 과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한국의 존속 살해 형법은 공통의 법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하는 도덕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에서 존속살해"를 검토해 보시길.

https://namu.wiki/w/%EC%A1%B4%EC%86%8D%EC%82%B4%ED%95%B4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봉건적 인식을 짚어 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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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10-22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걸 입법이라고 하는 정책아이디어들이 한심스러워요. 결국 비정규직 파견근무 저임금이 저출산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건데 엉뚱하게 낙태금지법이라뇨... 정말 분노게이지 상승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일본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여 저임금 파견근무 비정규직, 받아들여 일본도 노령인구의 급증과 저출산으로 난리인데, 일본은 후쿠이란 책 읽어보면 90년대에 한 기자가 저출산 문제가 될 거라고 정책자들에게 그렇게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옆나라에서 지금 그 꼴을 보는데도 비정규직 저임금 고수하는 거 보세요. 왜 우리는 유럽의 정책은 공무원들의 외유로 끝나는 것인지... 국회나 정책자들은 뭐하고 있는지 한심하고 일본지자체는 가임기 여성을 잡아두려고 무척이나 애쓴다고 하더군요. 낙태금지가 정말 대안인지 애 낳고 보육원에 버리면 그 아이들의 인생은 국가책임 아닌가 싶어요.

[그장소] 2016-10-22 12:42   좋아요 2 | URL
부러 그러는 거예요 ..애들 보육원에 들어가면 그 애들 해외 수출 할거거든요. 우리나란 . 그러고도 남지 싶네요 .( 이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 내가 인간인가..싶다는!!)

AgalmA 2016-10-22 21:18   좋아요 2 | URL
앞은 내다보지 않고 발등의 불만 끄려고 해서죠. 최근 파업 이유이기도 한 `성과연봉제`처럼 세세한 분류와 안배없이 실적과 성과만 내놓길 바라는 실책들이죠. 조그만 구멍가게 운영도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대책없이 사람들 집 사게 부추겨 가계부채를 어마어마하게 늘려 놓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만약 다음 정권도 그쪽으로 간다면 이 폭탄 어찌 처리하려고 저러나 싶었죠. 이것도 당장만 생각했으니 돌아오거나 말거나 였겠지만.
여기저기 세수 쥐어짜듯이 아이도 그렇게 내놓아라식이니.... 뒷감당도 제대로 못하면서.
보조금 받으려고 입양받아 아이를 학대하는 사건도 많았고
보육원에 들어간 아이들 미성년 지나면 500만원 보조금 줘서 쫓아내잖습니까. 그러다보니 나쁜 쪽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국가 가치관과 정책이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정부 바뀔 때마다 이리 흔들리죠...

우끼 2016-10-22 22:12   좋아요 2 | URL
맞아요 ㅠㅠ 애를 낳고 살만한 환경이 안되니 저출산인건데 그걸 낙태금지로 막으려 하다니... 애들을 국가가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ㅠㅠ 진짜 어디서부터썩은나라인지 ㅠㅠ 대기업 사람들은 자신이 잘먹는게 착취때문이라는걸 알아야 해요..정경유착도 심하고.. 신분제 사회가 아닌데 신분제 사회인양 ㅠㅠ

2016-10-22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2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6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10-22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러니 십대 아이들이 애를 버릴수밖에 없 습니다. 저도 이번에 아이를 가지면서 낙태가 불법이란걸 첨알았네요.

AgalmA 2016-10-23 12:14   좋아요 2 | URL
낙태와 관련해 미혼모와 입양 문제도 골치 아프더군요.
입양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꿔 아이를 더 유기하게 만들었죠. 입양 보낼 때는 친모 관계 다 삭제처리하면서 굳이 여성에게 불이익이 될 가족관계를 호적에 남게 하는 이 요상한 관료 시스템은 참.....
몇 년 전엔 친모가 없으면 아이를 호적에 올릴 수 없어 친부가 어려움을 겪는 일도 크게 이슈화 되었죠.
이런 기본적인 것들만 신경 써도 많은 사람들이 안정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경제 활동을! 해 줄텐데 큰 돈 주는 재벌 신경쓰느라 어디 눈에 보이겠습니까.

아무 2016-10-23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숫자놀음이죠. 통계로 사기치는 거나 진배없습니다. 군에서 이등병 자살률이 높으니까 이등병 다는 기간을 줄이는 것 같은 주먹구구식으로 보여요. 이럴 때 보면 정말 생각을 1차원적으로만 하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바우만의 책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우리 주위로 눈을 돌리면 그와 반대로 출산율의 지속적인 저하, 그리고 그것이 갖고 오게 될 결과, 즉 인구의 고령화가 우리를 안달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숫자의 ‘우리’가 미래에도 있을까? (…) ‘인구 과잉’에 맞선 전쟁의 이처럼 불유쾌한 다른 일면—단지 ‘우리의 생활 방식’을 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 적은 수가 아니라 더 많은 수의 ‘그들’을 수입해야 한다는 냉엄한 전망—이 부유한 자들의 땅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

낙태금지라는 발상에서 제게 보이는 건 정부가 국민을 바라보는 방식이에요. 하나의 숫자, 또는 세수로만 보는 거죠. 몇 달 전 `개돼지`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던 일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사실 그동안 하나씩 발표해온 조치들을 보면 그런 관점이 쭈욱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을 바라보는데 ˝차별 없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항상 회의에 빠지지만... 아직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거라 믿고 싶네요.

AgalmA 2016-10-23 12:16   좋아요 2 | URL
아무님이 옮겨주신 부분 보니 바우만이 세계의 깊은 문제점으로 ˝아웃소싱˝을 거론한 게 생각나네요.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만한 게 없죠. 한국에서도 이것 때문에 골치잖아요. 끝없는 외주화로 꼬리자르기. 노예 제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죠.
차별 없는 경제 시스템은 다다르고 싶은 이상일지도 모르죠. 최근 유럽의 복지 국가들도 지반이 흔들리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한국처럼 이렇게 시작부터 먹통인 채로 계속 갈 순 없어요. 증기 기관차 시대도 아니고 이렇게 개돼지 키우는 식으로 가게 놔둘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