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4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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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시집.
알베르투 카에이루는 내 인생 최고의 시인.
언제나 눈물겹고 미칠 듯이 좋다❗
언제까지나 사랑할 거야❗

📎
나는 한 번도 양을 쳐 본 적 없지만,
쳐 본 것이나 다름없다.
내 영혼은 목동과도 같아서,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고 다닌다
따라가고 또 바라보러.
인적 없는 자연의 모든 평온함이
내 곁에 다가와 앉는다.
하지만 나는 슬퍼진다
우리 상상 속 저녁노을처럼,
벌판 깊숙이 한기가 퍼질 때
그리고 창문으로 날아드는 나비처럼
밤이 오는 걸 느낄 때.

그러나 내 슬픔은 고요하다
그건 자연스럽고 지당하니까
그건 존재를 자각할 때
영혼에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두 손은 무심코 꽃을 딴다.

굽은 길 저 너머 들려오는 
목에 달린 방울 소리처럼,
내 생각들은 기뻐한다.
유일하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기쁘다는 걸 아는 것,
왜냐하면, 몰랐더라면,
기쁘고 슬픈 대신 
즐겁고 기뻤을 텐데.

생각한다는 건
바람이 세지고, 비가 더 내릴 것 같을 때
비 맞고 다니는 일처럼 번거로운 것.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그리고 이따금 상상 속에서,
내가 어린 양이 되기를 소망한다면,
(또는 양 떼 전체가 되어
언덕배기에 온통 흩어져
동시에 수많은 행복한 것들이 된다면)
그 이유는 단지 내가 쓰고 있는 그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후략)
ㅡ 「양 떼를 지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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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단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유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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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의 이 첫 시집은 많은 부분에서 기형도를 떠올리게 하는데 ‘아버지의 부재와 결코 화해되지 않는 거리 그리고 그 나이의 위치가 되어가는 자신에 대한 자각‘, ‘유년 시절 엄마‘, ‘도시 속 고독‘, ‘왜 나는 시를 쓸 수밖에 없는가‘ 등등... 뚜렷이 구별되는 차이는 유희경의 시는 ‘타자‘가 더 많이 들어온다는 점. 그래서 당신과 나 사이의 무한한 거리(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거리)를 읽는 그의 연애 시는 빼어나다. ˝불행한 서정시˝(권혁웅)란 명명은 적확하다. 조연정 해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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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오브 더 디스코 - 정규 2집 Aliens
술탄 오브 더 디스코 (Sultan Of The Disco) 노래 / 붕가붕가 레코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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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9번 트랙) 「미끄럼틀」(7번 트랙) 타고 「사라지는 꿈」(3번 트랙)이 되고 싶을 때 들으세요. 현실 속에서는 못 사라지지만 음악 속에서 잠시 잊을 수는 있지요. 미끄럼틀을 타고 잠시 잠깐 공중을 맛보고 다시 지상에 닿듯이.

˝나를 가지고 맘껏 놀아줘요˝(「미끄럼틀」) 가사는 직설적이지만 인상적인데, 김소월「진달래꽃」」˝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싯구 같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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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통찰 -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4
앨런 구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명현 감수,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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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양자중력이론과 우주론에서 정점의 이론인 고리양자중력이론과 끈이론에 대한 찬반양론, 급팽창이론이 주요 쟁점이다.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 중력의 일반상대성이론, 빅뱅우주론의 표준 모형 이 세 가지 요소가 하나로 모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관찰 자료와 사실상 맞아떨어˝지지만 이것도 지금 우리 인식의 패러다임이다. 단적으로 거시 세계를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과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의 완전히 상반된 모순을 우리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겐 이것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이론이 필요하다.

˝내 생각으로는, 먼저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통찰을 구축하는 것이며, 우리의 개념적 구조를 재조정하는 것이며,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험적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과학은 자료를 조합하는 일이나 자료의 조합을 체계화하는 방식과는 관련 없다. 과학은 우리의 사고방식, 세상에 대한 정신적 통찰과 관련 있다. 과학이란 사고방식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세상에 대한 이미지와 세상에 대한 통찰을 끝없이 바꾸어 조금 더 나은 새로운 통찰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scientifically proven)’라는 표현에는 모순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의 핵심은 우리가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고, 편견을 갖고 있다는 심오한 자각이다. 우리는 내면에 새겨진 편견을 갖고 있다. 우리가 실제를 이해하기 위해 갖고 있는 개념적 구조 안에는 무언가 부적절한 것, 더 나은 이해를 위해 새로이 고쳐야 할 무언가가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어느 때건 우리가 실제에 대해 유효한 통찰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찾아낸 최고의 것이니까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찾아낸 것 중 가장 믿을 만한 통찰이다. 이것은 대개의 경우 옳다.
하지만 이것을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통찰의 모든 요소는 언제든 수정 가능한 선험적 관념이다.˝

ㅡ카를로 로벨리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다」
이 책 제목은 카를로 글에서 온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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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3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04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간 - 우리는 왜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 하는가
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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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 책이 이럴 줄이야ㅜㅜ 이 주석의 퍼레이드를 제대로 따라가며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아감벤의 정치 담론에 비해 미학론이 난해한 것도 있지만 이런 철저히 문과적 글쓰기가 나는 점점 싫어지고 있다. 모호함을 모호함으로 설명하는 듯한. 백상현의 유령 담론이 더 흥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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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1-04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량이 얇은 아감벤의 책이었어요. 읽다가 뭔 말인지 이해되지 않아서 포기했어요.. ㅎㅎㅎ

AgalmA 2018-11-04 19:45   좋아요 0 | URL
<불과 글>이 아마 제일 적은 분량 책 아녔나 싶은데 저는 그 책 나쁘지 않았는데 이 책 호불호가 있는 듯요. 찾아보니 2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 책이 꽤 있네요. <내용없는 인간>, <목적없는 수단> 등등. 분량이 제일 적은 건 160페이지 조금 넘는 <빌라도와 예수>인 듯. 그 다음이 170페이지짜리 <도래하는 공동체>...
국내 인지도에 비해 아감벤 책이 이리 많이 번역된 건 좀 이례적인 거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큰 인기없다는 들뢰즈 책의 국내 호응과도 좀 다른.... 들뢰즈야 마니아층이 형성된 사연이 확연히 보이지만 아감벤은 어째서?
아무튼 인문학 책들이 플라톤 등등 끝없이 계보를 가져오며 철학의 고리만 강화하는 듯한 이런 글쓰기 이젠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각 분야 정보와 지식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우물파기식으로만 가는 거 적절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