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
홍춘욱 지음 / 원더박스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학과 출신으로 벌써 수년 째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이코노미스트

 

그가 책을 냈다.

 

이코노미스트를 만든 책과 질문들 그리고 경제에 대한 이야기들을 엮어 출간한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읽어도 항상 경제란만은 자동을 스킵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경제 공부'라는 단어는 지적 사치다.

 

왜 사치냐......소화할 깜냥이 안되지만 그래도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늘 욕심은 나지만 생각만큼 잘 안되는 그것에 나에게는 경제 공부랄까.

 

그래서 저런 단어들이 등장하는 책 제목이나 띠지만 보면 평소 잠잠하던 허영이 막 발동한다.

 

그래 이번에야 말로!!

 

 

 

하지만 이 책은 '경제 공부'에 오롯이 집중하는 책은 아니다.

 

실은 제목을 왜 저렇게 뽑았는지 출판사에 문의하고 싶다. 나와 같이 '경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허영이 있는 독자들을 낚을 심산이었던 것인가?

 

 

 

이 책은 경제 공부에 집중하기보다는, 경제를 좀 아는 분이 읽어온 책들에 대한 내용을 곁들였다. (코스 요리에 이것저것 나오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목차만 봐도 책의 흐름이 훤히 드러난다.

 

역사학도를 경제학자로 이끈 질문과 답 -> 이코노미스트와 함께하는 경제 공부 -> 세상 보는 눈을 밝히는 책들

 

처음 꼭지에서 경제학자의 자서전으로 시작한 이 책의 마지막 꼭지는 서평책으로 끝난다.

 

 

 

책 내용이 나쁘지는 않다.

 

역사학도를 경제학자로 이끈 질문과 답 부분에서는 실제로 내가 궁금하던 이야기들이 있었고 특히 두번째 꼭지에서는 '경제 지식 파노라마'라는 부제와 어울리는 다양한 단계의 경제지식들을 열심히 설명해준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다 제목 탓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Q&A a Day for Moms : 꿈이 있는 엄마의 5년 이야기 Q&A a Day
포터 스타일 지음, 정지현 옮김 / 심야책방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는 엄마로만 살지 않는다는 걸, 나는 참 늦게 알았다.

엄마도 나와 같은 여자고 엄마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게 있고 엄마도 엄마가 아닌 다른 이름이 있다는 걸,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마음으로 깨우쳤다.

 

요즘 엄마들은 우리 어머니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엄마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살고 싶어도 기회가 적었다.

기회가 적으니 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으리라.

그래도 요즘은 엄마가 엄마 아닌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조금 많이 열려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책이 나온 걸 보면 이런 느낌은 더욱 확실해지지.

 

Q&A for moms

이 책은 일기와 다이어리를 섞어 놓은 듯하다.

1년 365일을 기록할 수 있도록 수첩으로 엮었는데 특이한 점은, 한 해만 쓰는 다이어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20_ 이라는 숫자 뒤에 차곡차곡 5년을 써 나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예를들면, 매년 4월 26일마다 같은 질문 '작년 이맘때와 비교할 때 나는 무엇이 얼마나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게 했다.

매일 매일 질문이 바뀐다. 이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하면, 앞으로 5년간은 매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면서 하루를 시작 혹은 마감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

날마다 채워나가는 짧은 기록을 통해 조금씩 자라는 삶,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삶, 결실이 있는 삶을 위한 지혜를 얻고자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긴 글보다 짧은 글 쓰기가 더 쉽다고 생각하는데 내 경우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짧은 글은 긴 글보다 더 어렵다.

내 머릿속에 복잡하게 오고가는 생각들 혹은 뒤엉켜 있는 감상들을 몇 글자만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넉넉한 페이지를 주고 채우라고 할 때보다 짧은 글을 써야 할 때, 더 많이 고민하고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언뜻 펼쳐봤는데도, 질문들이 참 좋다.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 엄마의 위치에 충실한 질문들도 있지만 엄마를 벗어나, 여자로 혹은 한 인간으로 살면서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질문들을 실었다.

 

미혼인 내가 보기에도 눈에 쏙 들어오는 질문들이 있으니, 굳이 엄마가 아니더라도 이런 수첩을 써보고 싶은 분들은 참고해볼만 하다.

무엇보다 책이 너무 예쁘다. Q&A for 시리즈 중에 제일 예쁘게 생겼다. 생긴 게 마음에 드니까 자꾸 더 손에 쥐어보고 펴보게 된다.

  인간이여... 시각의 노예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로또부터 진화까지, 우연한 일들의 법칙
데이비드 핸드 지음, 전대호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이 실은 우연이 아니라는 걸 다양한 법칙을 들어 설명해준 책이다.

 

20년 전에 잃어버린 결혼반지가 올해 가을에서 캔 당근뿌리에 걸려 있다든가

 

아버지가 종아리를 삔 그 시각, 아들도 똑같이 종아리를 삔다든가

 

집에 딸이 넷이 있는데 딸들이 태어난 해만 각각 다르고 생일은 모두 똑같이 85일이라든가

 

뭐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은, 원래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일 벌어진 게 아니라

 

여러가지 확률과 확률이 맞아 떨어져서 생긴, 법칙의 세계 안에서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생겨야만 (희소하 가능성도 어쨌든 가능성이므로) 하는 일들이 나타난 것 뿐이다.

 

책의 저자는 어떻게 이런 일들이 나타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그를 증명하는 법칙을 들어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형질의 세계에는 수많은 선택과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했던 일들이 나타나게 되는 일들은 어쩌면 인내와 여러가지 확률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다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선택의 법칙은 만일 당신이 사후에 선택한다면 확률을 마음대로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는 화살을 쏜 다음에 표적을 그리는 것이다. 이 예에서 선택의 효과는 명확히 드러난다. 사후 선택은 모든 화살을 표적에 명중한 화살로 만든다. 그러나 선택 과정은 대개 드러나지 않고 진행된다. 내가 이번 시험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음번 시험에서 점수가 떨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학생들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한데, 나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278' 나오며 ' 중에서

 

사실 이 책은 조금 읽기 어려웠다. 단어는 다 아는 단어인데 좀처럼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원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읽는데 이렇게 힘이 드는 책은 오랜만이라, 애먹었네.

 

하필 저 구절이 또 책의 맨 뒷부분에 있어서 더 아쉬웠다. (앞에 저거와 비슷한 내용들이 있는데 읽는 내가 대충 지나쳤던가.....)

 

이번 시험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란 동시에 다음 시험에서 점수가 떨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학생들이 될수도 있구나 (왜 그럴수도 있구나, 라고 달았냐면 이게 확신이 되기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너무 많으므로). 가능성에도 이런 전혀 다른 방향이 있다.

 

가능성이라는 동전의 앞뒷면을 동시에 본 느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소유를 읽다 - 법정 스님으로부터
고수유 지음 / 씽크스마트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책 욕심이 별로 없다. 책은 내 서재에 꽂혀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두루 지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이 아니면 굳이 가지고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 서재에는 나한테만큼은 꼭 필요한 책들이 조금 있다. 거기에는 삽화가 아주 아름다워서 종종 들여다보고 눈을 즐겁게 해주는 책도 있고 매년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열어봐야 하는 동화도 있다. 나와 주파수를 잘 맞춰주는 아니, 내가 주파수를 맞추기에 아깝지 않은 그런 책들 중에 법정스님의 책들이 몇 권 있다. 언젠가, 다른 이에게 줘야겠다 싶어 정리하기 전에 잠시 열어보았다가 그렇게 앉은 채로 한 권을 다 읽어버렸던 적이 있은 뒤로, 나는 법정스님의 책을 내 책장에서 치워버리는 일을 다시는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 읽어도 이 책은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구나, 확인한 이후로 말이다.

 

법정스님의 생애와 그가 남긴 이야기들은 아직까지도 어떤 깨끗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어깨를 때리는 죽비처럼, 이것은 마땅히 맞아야 할 이야기구나 싶게 만드는 그런 기운이 있다. 물론 삶을 조망하는 건전한 가치관과 세계관, 이해와 박애와 포용의 정신 뭐 이런 모습들에서도 배울 점을 많이 보지만 나는 그보다 진정한 ()’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표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법정스님의 삶에 놀란다. 개인주의의 탈을 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생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나, 내 밥그릇, 내 가족 등 내 것을 초월한 법정스님이 참 멋있다.

 

인간이란 자궁 밖으로 나와 호흡을 얻어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부터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관계의 굴레에 묶인다. (사실 자궁 안에서부터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관계 아래 속박당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사람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존재와의 관계. 누군가는 인간이란 이 관계 속에서 진짜 가 되고자 나아가는 존재라고도 했다. 그러나 진짜 나가 되려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나를 초월해야만 한다. 이 단계가 참 알쏭달쏭하고 때로 버겁고 가끔 무섭다.

 

종교의 진수를 체험하려면 종교 그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믿음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모든 믿음을 넘어서 있는 것.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원천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는 말씀은 누구나 명심해둘 가르침이다. 자주적인 인간이 되어야지, 종교의 노예가 되어서는 진정한 종교인도 사람도 되기 어렵다.

184쪽 법정스님이 남긴 말 중에서

성직자로서, 본인이 귀의해 있는 종교와 종단을 초월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믿음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믿음을 넘어서 있는 것.’이라는 말에서 나는 소유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소유를 넘어설 수 있다는, 나라는 존재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나를 초월할 수 있다는,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읽는다. 입으로만 저렇게 살았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저런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구도자였기 때문에 나는 2016년 오늘도 법정스님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여본다.

 

[무소유를 읽다]는 지은이(고수유)가 법정스님의 생애와 그가 남긴 가르침들을 모아 정리하고 각 주제에 대한 해설(단상)을 곁들인 책이다. 법정스님의 말 뿐만 아니라 그를 되새기며 존재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또다른 구도자의 성찰까지 곁들여 있다. 이게 좋은 사람도 있겠고, 별로 좋지 않다는 사람도 있겠으니 일단 관심이 생긴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내용은 복잡하지 않고 분량도 많지 않다.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꿈결 같은 봄날의 한 때, 눈은 꽃에 두고 발은 진흙탕 위에 둔채 구도(求道)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스님은 극락에 가도록 복 빌어주고 시주나 거둬들이는 기생충으로, 절간은 관광 수입이나 노리는 호텔로, 불교인은 역사의식을 상실한 허약자로 돼버렸다. 이처럼 한국 불교가 변질된 것은 사회의 안녕보다 교단의 안녕을 희구해온 사이비 불교 성직자 때문이다.

81쪽 법정스님이 남긴 말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굉장히 재미있다!

 

앞표지가 주는 음산한 느낌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손에 들고 소녀의 얼굴 생김이 어떤지 알아보려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녀가 움직일 것 같다.

책 뒤표지에 '상상을 초월하는 사이코 미스터리'라고 소개했는데 이 책에 아주 어울리는 표현이다.

 

3월과 다르게, 부쩍 따듯해진 햇빛을 받고 내 집 앞 공원에는 봄꽃이 만개했다. 공기마저 '지금은 화사한 봄'이라고, 미스터리소설에 몰입이 될만한 계절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오후에 나는 이 책을 폈다. 약속 때문에 시내로 나가기 전에 잠시 짬이 나서 책 앞 부분만 조금 읽어보자고, 시작은 그랬다. 그런데 두 시간 후에 나는 약속에 늦었고 지하철 안에서 지인에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고 나서도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빨리 결말을 보고 싶어서. 이삼일 동안 천천히 읽자고 생각했던 이 책을, 나는 책이 도착한 그 날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이 나를 끌어당긴 가장 강력한 힘은 '일상성'이었다. 주인공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일상. 그 부분에서 주인공이 겪는 혼란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된다. 나도 내 옆집에, 윗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른다. 어쩌다 계단에서 마주치면 친절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긴 하지만 그뿐이다. 더 멀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가가지도 않는다. 어느 날, 윗층에서 걸어 내려오는 낯선 남자와 계단에서 마주 섰다. '이 건물에는 여성 혹은 노년의 부부만 사는 줄 알았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나도 모르게,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공포, 위협 이런 것들이 속에서 올라왔다. 화들짝 놀란 나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그는 계단을 내려갔고 나는 나중에 엄마에게 '위층에 살던 부부가 이사가고 어제 누가 새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안심했다. ~ 그랬어?

 

그런데 여기, 바로 이 심리가 참 기묘하다. 나는 왜? 안심을 했는가?

 

저자는 이 미묘한 간극을 파고 든다. '누가 새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이 위층에 젊은 남자가 이사를 왔다는 내용이 될 수는 없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 어디에도, 위층에 내 또래의 젊은 남자가 이사왔다는 정보는 없다. 그런데도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새로 이사를 들어온 사람 = 내가 어제 계단에서 마주친 낯선 남자 라고 연상해버렸다. 그 남자가 위층에 새로 이사를 들어온 남자라는 어떤 정황도 증거도 없는 상태였는데? 이런 잘못된 연상이 그저 이웃간 사소한 오해나 나만 아는 헤프닝으로 끝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성급한 연상 혹은 인식의 오류가 미끼가 되어 나는 사건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크리피]가 잘 쓴, 좋은 소설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이 때문이다. 범죄심리학 교수인 주인공의 눈으로 사건을 따라가면서 저자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연상과 인식의 오류를 보여준다. 가끔 인사를 나누는, 세련된 인상의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웃 사람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고 누군가는 범인이다. 이 책이 집중하는 것은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는 사이코의 심리다. 참혹한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대부분 평범한 인상의 사람이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부녀자를 납치하여 살해하는 인물은 얼굴에 흉터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험상궂고 덩치 좋은 남성이 아니라 넘어진 어린아이를 일으켜 주는 친절한 이웃일 수 있다고. 사람은 즉각적이고 시각적인 자극과 관계에 따라 판단하는 존재다. [크리피]는 이러한 사람의 심리적인 특성을 탁월하게 악용하는 살인마를 등장시키는데 내 주위에도 이런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력이 위에 적은 '일상성'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몰입감을 더해주는 것은 주인공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여러 사례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범죄자들의 심리에 나름대로 정통해 있는 인물임에도 정작 사건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자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는 선택들을 하게 된다. 스스로가 형편없이 대처했다고 자책할 정도로. 그런데 그런 미숙한 대처들이 오히려 평범한 사람인 '(독자)'와 동일시되어 주인공의 혼란은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된다. 더불어 주인공의 시점에서 사건을 따라가게 되다보니 주인공의 전문성을 십분 살려 사람들의 심리를 읽게 되는데, 심리를 잘 보여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사건이 진행되는 흐름이 아주 꿀잼이다.

 

만약 이 책이 미국이나 유럽에 출간되었다면 독자와 공감대 형성이 어려울수도 있겠다, 생각도 든다.

[크리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동양권 특히 한국이나 일본처럼 가족의 문제에 공권력이 개입하기 어려운 문화적 특성을 띠는 사회의 일면을 아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이외에도 가족간 단절이라든가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매스컴 등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다양하게 제기하려고 애를 쓴다.

 

아쉬운 건 결말이다.

결말의 쫀득한 긴장감이 실망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재미는 결말까지 충분하다.

정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결말이 나는데, 이 방향 자체가 아쉽다. 내가 가진 윤리관으로는 조금 동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서, 결말부를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 이런 물음들이 떠올랐고 책을 덮고 나서는 '에이... 그래도....' 이런 찜찜한 기분이 남는다.

하지만, 만약 너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라고 누가 나에게 물어온다면.....

나 역시 저자가 쓴 결말과 크게 다른 선택과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국 범죄심리학의 전문가라고 떠들지만 어차피 탁상공론일 뿐, 실제로는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는 매스컴이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171쪽 3장 가면

나도 모르게 사진 찍힌 상황을 적당히 바꾸었다. 실제로는 대학 근처의 술집이 아니라 호텔 안의 엘리베이터였다. 더구나 학생들과 같이 있었던 게 아니라 린코와 단둘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백하다. 이럴 때는 솔직히 말해서 오해를 사기보다 적당히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나으리라.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26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