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세계사 - 5000년 인류 역사의 핵심을 36장의 지도로 읽는다
크리스토퍼 라셀레스 지음, 박홍경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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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년 인류 역사의 핵심을 36장의 지도로 읽는다'는 카피에 반해서 고른 책.

 

과연 이 기나긴 세계사의 흐름을 지도 몇 장으로 어떻게 읽어내겠다는 것인지 굉장히 궁금했고 또 기대도 많이 했다.

 

최근 내가 주로 읽어온 역사책들은 스토리텔링에 신경을 쓴,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방식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압축 세계사]는 이런 스토리텔링에 기울일 노력을 과감히 덜고 속도감 있으면서도 정확하게 이해가 되는 설명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즉, 이 책은 드라마타입이 아니라 교과서타입이란 뜻이다.

 

  저자는 인상깊은 이야기로 책의 서문을 연다.

  " 문득 어릴 적에 역사를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려 버렸던 기억이 난다. 엉터리로 배운 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짜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탓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어디에서 사건이 발생하는지 지리적 정보가 도통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도 절망적이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대패했다는데, 대체 워털루는 어디에 있는 거지? "

 

저자의 마지막 의문과 비슷한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비슷한 예로 최근에 내게 벌어진 일은, 최근에 친구들과 영화 [곡성]을 보러 갔을 때 일어났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내용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이슈로 (누구도 의도치 않은) 토론을 해야 했다.

친구1 - 근데 곡성이 어디에 있는 마을이야?

친구2 - 곡성이 실제 지명이었어?

친구3 - 어, 거기 전남 어딘가 그래.

친구4 - 전남? 아닌데. 충남 아닌가?

 

학창시절, 역사 수업 직후 나의 머릿속 상황이 딱 이 모양이었다. 국사도 국사지만 세계사는 특히 더했다. 헤이그니 베스트팔렌이니 하는 지명들을 참 많이도 들었고 이런저런 날짜들이 저자의 푸념처럼 '홍수처럼' 쏟아졌다. 인류가 걸어온 5천 년의 시간은 세계사 시간에 외워야했던 날짜의 수만큼 다사다난하고 고단했던 것 같다.

 

서문부터 독자와 폭풍공감으로 포석을 잘 깐 저자는 이후 인류의 기원부터 출발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도착하기까지의 세계사를 매끄럽게 전달한다. 위에서, 이 책은 드라마타입이 아니라 교과서타입이라고 쓴 것처럼, 쓸데없는 감상이나 소소한 내용 설명에 기력을 뺏기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이 새로운 통찰력이나 신선한 정보를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 밝히고 본문을 시작한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을 독자들로 하여금 감 잡게 하는 그런 책이라고. 지명과 인명, 사건과 시대가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뒹구는 나의 머릿속을 어느 정도 정리해주는 책이라는 뜻이다.

 

독자가 세계사의 흐름을 잘 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저자의 도움 덕분에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세계사 흐름이 뭐 그리 대단한 재미를 주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머릿속에 당최 어디 붙어 있는지 알지는 못하는데 꽤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역사적 장소가 있다거나, 사건은 잘 알고 있는데 누가, 왜 그런 사건을 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역사가 있다거나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책이다. 책을 읽어나가면 먼지처럼 부유하던 내 머릿속 역사 퍼즐들을 하나씩 꿰어서 큰 그림을 맞추는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당시의 지도를 곁들여 설명을 풀어가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지도에 현재 국경과 당시의 상황을 동시에 표기한 것도 센스가 넘친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가 세계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최고의 세계사 입문서'라는 출판사의 설명에 지지 한 표. 세계사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기초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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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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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성들의 지위 혹은 여성이 받는 사회적 대우가 높아졌다는 게 아니다. 글자 그대로 여성 시각의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최근 한국 포털사이트에서 자주 보게 되는 성논쟁이 난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 하나의 긍정적 방증, 이만큼 여성들이 자기주장을 할 수 있게 된 시대가 되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걸 그나마 위로라고 삼는 것이 씁쓸하긴 하다.)

어릴 시절 명절마다 엄마를 비롯한 여성들만 부엌에서 복닥거리며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하루 종일 음식 준비를 하는 것이 이상했다. 남동생과 같이 놀다가도 나만 할머니께 불려 들어가 꼬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들과 이하 남성인 사촌들에게 어떤 불만을 표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엄마에게 칭얼대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왜 동생(남자아이)은 이거 안 하고 나만 해?’ ‘다 배워두면 좋은 거야.’ 여자는 이런 거 할 줄 알아야 하는 거라는 대답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올해 초, 우리집 구정 제사 때는 온 가족이 명절음식 준비를 함께 했다. 단편적이지만 이것이 지난 이십년에 걸친 우리 가족(부모님과 나와 동생)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명료한 증거가 아닌가 싶다.

 

지난 이십년 동안 분명 한국 사회는 변했다. 아마 그 이전 이십년 아니 백 년 동안에도 한국은 계속 변해왔을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변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아직, 변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이제까지 변화되어 온 것보다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 이 점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나쁜 페미니스트]를 아주 재미있게 읽게 될 것이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는 자신은 엄격한 페미니스트의 기준(솔직히 이건 대체 누가 정하는지 모르겠다.)에서 어긋나지만 그래도 아예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는 것보다 조금 덜 엄격한 페미니스트 즉 나쁜 페미니스트라도 되는 편이 낫다고 썼다.

하지만 페미니스트의 자격 여부를 핑크를 싫어하고 출산과 육아를 혐오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답다는 기준과 제도가 얼마나 폭력적이었으면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말이 안 통하고 예민한 여자들에게 어울릴 법한 단어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사회적인 이슈, 대중 문화(음악과 영화, 방송 프로그램 전반)를 두루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솔직하면서도 예리하다.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보는 시선에 기반한 수많은 팝가사들, 강간과 학대를 오직 남성 위주의 흥밋거리로만 전락시키는 영화와 드라마들. 그러나 그런 대중문화를 저자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이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나 역시 저자와 같으니까. 여성을 무가치하게 소비하는 한국영화들에 열광하기도 하고 맨정신으로는 욕이 나올 가사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한다. 저자와 나의 동질감에서 시작된 유대. 그 위에서 우리는 굵직한 사회적인 이슈들(테러사건, 인종차별, 낙태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선으로 교감한다. 40대 미국 여성과 30대 한국 여성은 분명 피부색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과 현재의 환경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데도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끈끈한 공감대가 생긴다. 여성문제는 그만큼 세계 전반에서 아직도 해결해야 할 게 많은 숙제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 도서라고 부르고는 싶지 않다. 이 책은 성차별을 비롯한 인종차별, 동성애차별 등 저자가 체험한 혹은 목도한 수많은 차별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페미니즘과 인종차별 혹은 동성애는 엄연히 다른 논제다. 저자는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여성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차별에 대해 논하고 있을 뿐.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페미니즘 도서라기보다는, 저자가 페미니스트인 책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저자가 머리글에서 쓴 대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진심이 이 책의 분류가 되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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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뇌 사용법 - 공부와 업무를 정복하는 슈퍼 뇌의 비밀
마크 티글러 지음, 김경섭.최인식 옮김 / 김영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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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중에서 제일 짧은 시간동안 다 읽어낸 책이다. 동시에 제일 잘 이해한 책이고 제일 도전정신을 준 책이자 제일 유용하게 사용할 지식을 전해준 책이다.

일단 책 사이즈, 무게, 레이아웃이 아주 가독성이 좋은데 심지어 문장 구성도 딱 내 타입이라,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혔다.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든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은 시종일관 책의 목적을 성실하게 달성해 나간다는 점이다. 단 한페이지도 엇나가지 않는다. 책 전체가 공부/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독서/학습/암기 방법을 아주 충실하게 전달한다.

 

어느 정도냐면,

책 목차를 한 번 훑고 본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페이지부터 이런 내용이 있다.

 

< 이 책을 1/4의 시간으로 더 잘 독해하는 방법 >

책의 차례를 읽습니다.

책을 훑어봅니다. 책에 굵은 글자체로 된 제목과 단어, 그림과 도표에 유의합니다.

이 책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정합니다.

이 책의 내용을 얼마만큼 알고 싶은지 결정합니다. 뇌 효율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책에서 소개된 모든 기법을 활용해보고 싶습니까?

반드시 바른 자세로 책을 읽습니다. 독서대나 노트북 거치대를 사용해서 책을 편한 각도로 펼쳐봅니다 책은 눈에서 약 40cm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읽을 때 한 번에 60분 이상 읽지 않습니다. 한 번 읽을 때마다 짧은 휴식을 취하고 쉬는 동안 방금 읽은 내용을 요약합니다.

읽을 때 항상 옆에 형광펜을 준비해놓습니다. 명사 위주로 밑줄을 긋습니다. 페이지 여백에 메모도 해둡니다.

각 장을 읽고 나면, 읽은 부분을 다시 가볍게 훑습니다 밑줄 그은 단어 위주로 읽습니다.

각 장을 읽은 다음 요약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마인드맵 형식으로 요약을 하면 좋습니다.

읽은 다음 날, 사흘 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요약한 내용을 복습합니다.

활용할 팁과 기법을 간단히 기록합니다.

그 팁과 기법을 사용해봅니다.

-15(도입부)

 

나는 정말, 이 첫 페이지부터 완전 빠져버렸다.

이렇게 목적을 정확히 밝히며 독자를 안내하는 실용서, 그러면서도 독자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이나 내용구성 면에서 최적의 형태를 갖추면서 안내하는 실용서는 정말 오랜만이다.

 

보통 나는 실용서를 읽는 동안에는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어떻게든 실용서에서 읽은 것들을 뇌에 담아두려고 고집을 부리면서 읽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책 자체와 독서 시간을 즐기는 게 아니라 외려 잔뜩 스트레스만 만들어서 떠안은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이 책은 정말 정말 친절하고 매너있는 안내서다.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요점은 반드시 머리에 떠오르게 만든다.

뇌의 작동 원리와 속독, 마인드맵핑, 기억술, 생산성 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구조.

뇌의 작동 원리를 가볍게 다룬 첫 꼭지는 아주 짧게 지나가고 속독부터 이 책의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된다. 이때 기술과 기법 등 방법론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먼저 속독하는 뇌, 마인드맵핑의 작동 원리, 기억술의 작동 원리 등 각 기술과 기법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러고 나서 차근차근 기본기, 주의해야 할 점, 여러 기법과 응용 등에 대해 알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업무나 학습에 꼭 적용해봐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내 머릿속에 스쳐간 적용점들은 고스란히 다이어리와 업무 노트로 옮겨 적었다.

 

이 책이 무슨 총명탕 같은 그런 보약이라도 되는 듯이 너무 칭찬만 한 것 같아 조금 조심스러운데.

분명 [기적의 뇌 사용법[은 무슨 아인슈타인으로 만들어준다거나 뇌가 갑자기 수퍼파워가 된다거나 그런 책은 아니다. ( ''이든 뭐든 그런 게 있을리 만무....)

사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마인드맵이라든지 기억술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전혀 생소한 분야도 내용도 아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듯 하다. 다만 이 책은 머릿속에 막연히 떠다니던 것들을 정리가 되게 만들어준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내용이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읽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도 아니니 한번쯤 읽고 여기서 얻은 팁들을 독서, 암기, 학습 등에 적용해본다면 그리고 꾸준히 연습하고 개선해나간다면 확실히 이전보다 능률적인 인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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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가 좋아 -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김향미.양학용 지음 / 별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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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 전이다. 라오스여행 에세이 <시속 4km의 행복>을 읽었던 때가.

느리고 소박한 라오스 여행기를 전해주었던 여행자 김향미 양학용 부부는 5년 만에 라오스를 다시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책을 냈다.

 

5년 전 그들이 라오스 여행에세이를 출간했던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 여행자들에게 라오스는 낯설어서 신선한 곳이 더이상은 아니게 되었고 여행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라오스는 방송(꽃보다 청춘)으로 이미 익숙해진(적어도 신선함은 없어진) 여행지가 되었자.

그럼에도 여행자 부부는 다시 찾은 라오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라오스가 좋아]

 

[라오스가 좋아]를 읽기 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시속 4km의 행복] 서평을 찾아 읽었다. 그때 저 여행자들과 나는 어떤 감각을 공유했었는지, 그것은 아직도 변함 없는지, 여행자들이 이번에 다녀온 라오스 여행기는 무엇이 달라졌을지를 생각하면서.

당시에 나는 라오스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70년대 정도를 떠올렸던 것 같다.

아직 사람들이 순박하고 인정있고, 아직은 사람이 시간과 돈보다 중요한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듯.

그래서 라오스 여행기는 어떤 경험과 감상을 더하고 오는 곳이 아니라 덜어내고 오는 곳이라고 적었다.

 

같은 사람들의 두 번째 여행기를 보는 것은 아주 색다른 재미가 있다.

나도 모르게, 같은 곳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무엇이 변화되었고 무엇을 간직해왔나를 찾게 된다.

더불어 그들이 전해주는 감상에 공명하는 나는 무엇이 변화되었고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첫 책을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다가 요즘, 이 부부의 책을 다시 보면서 느낀 것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런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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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라오스에 사는 한국 이민자에게 탁밧 때문에 라오 사람들이 그토록 착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것 같다고 내 느낌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꼭 그렇지가 않았다.

여행자의 눈에 착하게 보이는 것과는 달리 함께 생활하는 입장에서는 좀 멍청하고 게으르고 답답하다는 것이다. 여행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는 의미다. 맞는 말 같다. 여행자의 시각과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주민의 시공간이 현실이라면, 여행자의 시공간은 꿈일 수도 있다. 누군가 말했듯이 내가 타고 있는 배를 제외하고 모든 바다에 떠 있는 배는 낭만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실을 너무 잘 아는 이는 여행을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딜 가든 또 하나의 현실이 있는 한 여행은 그저 소비 행위일 뿐일 테니까.

1983. 순수한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 -----------------------------------------

 

여행지에 대해 어떤 것도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이 본대로 들은대로 느낀대로 쓰고 그것이 설령, 여행자로서는 접하고 싶지 않은 민낯이라고 해도 솔직담백하게 다 털어놓는다.

그래서 이 부부의 라오스 여행기를 읽는 것은 아주 진실하고 편안한 경험이 된다.

또 이런 점 때문에 이 부부가 라오스 여행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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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 진짜 여행에 대한 인문학의 생각
정지우 지음 / 우연의바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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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배가 고프다. 그러면 아침을 먹어야 한다.

출근하고 난 후 정신없이 일하다 허기를 느끼기 시작할 즈음,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열한시가 살짝 넘은 시간이다. 그러면 점심을 먹어야 한다.

퇴근시간까지는 삼사십분 정도가 남았는데 출출해서 견딜 수가 없어 초코바를 까먹는다. 서둘러 작업하던 건들을 마무리 하고 가방을 들고 퇴근을 하면서 메뉴를 검색한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배꼽시계가 사람의 하루를 움직인다면 사람의 한 해를 움직이는 이런 시계도 있는 것 같다. 여행시계....

 

참 희안하지.

바람이 간질간질해지는 3월만 되면 평소 관심도 없던 꽃이 보고 싶어지고 5월이 되면 주말마다 그렇게 어디 근교라도 쏘다녀볼까 발이 근질근질하다.

이러다 7월부터는 대놓고 휴가철이라 여행지 검색을 하게 되지. 그러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땡... 이 아니라 사시사철 때마다 여행도 좀 가줘야 되는게 요즘 사람인가보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는 나에게, 어디 한국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여행이라도 다녀와서 에세이를 내보라고 했다. 여행 에세이가 잘 팔린다나.

근데 그건 못하겠다 싶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서 느끼는 것이라곤 항상 '... 좋다... ... 좋네... 오오오오 완전 좋구나..' 정도니까.

더구나 밥상 위에 여행에세이가 종류별로 얼마나 많은데 여기에 내 그릇 얹을 자리가 있으려고.

 

그런 비슷비슷한 여행에세이들 사이에서 어떤 책 한 권이 송곳처럼 뾰족 튀어나왔다.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라며.

진짜 여행에 대한 생각, 여행지가 아닌 여행관을 쓴 이야기.

다양한 인문학 서적과 글을 써온 정지우 작가는 이번엔 여행을 화두로 삼았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감상을 얻고 싶어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를 읽기로 했다면 목표를 바꾸기를 권한다.

이 책은 여행지의 무엇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렸다거나 지나간 세월을 돌이켰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왜 여행을 가는지? 여행에서 ''라는 개인이 실제로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왜 여행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되는지?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에 대해 집중한 책이다.

 

예전에 어느 세미나에서 이런 조언을 들었다. '여행에세이를 쓸 거면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에세이로 쓰라'.

그때는 저 말이 알쏭달쏭했다.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

정지우 작가의 차분한 문장들을 따라가, 나는 이제 아주 조금이나마 저 의문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앞자리 동료는 벌써 바다 건너 어딘가로 떠날 예정이라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휴가를 즐기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의지만 불태우지 말고 여행관에도 불을 지피고 떠나라고 모른 척, 이 책 한 권을 자리에 놓아주어야 겠다.

몸만 떠난 여행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생각까지도 '여행'에 충실하게 떠났다가 완벽히 돌아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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