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감정여행 - 자기소통상담가 윤정의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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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우울, 수치심과 연민. 때로 분노, 의심, 슬픔, 동정 등....

 

사람의 감정이란 참 다양하다. 하지만 이 수많은 감정의 가지들이 평등한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긍정적인 감정은 언제나 좋은 것, 환대를 받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숨기고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 나쁜 것으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의 많은 순간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기쁨, 재미, 즐거움, 감동, 뿌듯함.. 그렇지만 감정의 수많은 가지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감정은 흐름이지 섬이 아니다. 기대가 불안을 불러오기도 하고 즐거움이 분노의 서막이 되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나도 몰랐던 짜증이라든지, 나의 의지에 반하는 우울함이 올라와 나를 뒤덮을 때면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 자체에 지치고 그런 감정들을 내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러나 정말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불안과 우울함이, 여기서 파생되는 수치심과 연민과 분노와 슬픔이 인생에 없어야만 행복한 것일까.

자기소통상담가 윤정이 정리한 상담 사례들을 읽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답을 얻는다.

 

[45일 감정여행]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내 안에 사는 나를 만나는 과정을 정리한 사례집이다.

저자는 불안과 우울을 감정의 핵으로 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불러온 관계의 어려움 (때로는 관계의 어려움이 불러오는 감정들)을 내밀하게 살펴본다.

 

각 사례가 시작될 때마다 상담을 받는 사람들의 이력(성별, 나이, 직업, 가정환경 등등)을 먼저 제시하고 각각이 일상 속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1인칭 시점에서 풀어가는 흐름이 흥미롭다. 이런 흐름 덕에 이 책에 실린 서로 다른 사례들을 읽으며 각각에서 나와 비슷한 점을 쉽게 찾게 된다. 때문에 단순히 타인의 심리상담과 극복 사례들을 살펴보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에 자리한 여러 감정과 그 변화, 흐름들까지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나이도 직업도 환경도 다들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의 유일한 교집합은 솔직함이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찌할 줄 모른다. 숨기거나 포장하거나 왜곡하거나 그대로 드러내어 자기는 물론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저자의 상담형식 중에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내담자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힌 사람과 내담자가 상처를 준 사람이 같음을 발견하고 그 대상에게 들려줄 고백서를 쓰게 하는 점이다. 무엇이 아팠는지, 그래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털어놓는 진솔한 자기 고백서의 결말은 애틋하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모습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대상을 껴안음으로써 내 안에서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나 자신도 함께 껴안는 총체적인 화해. 이 책에는 이 화해의 시작과 과정이 잘 담겨있다.

 

소금을 뿌린 수박은 더 달다.

부정적인 감정들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것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가고 통제를 벗어나게 되면 삶이 어렵겠지만.

오늘 내가 느낀 고통스런 감정들의 근원은 무엇인지 직시하기 위해서라도 부정 감정들은 필요하다.

사람이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의 갈래들은 어쩌면 사람의 관계가 더 아름답고 견고해지기 위한 장치일지 모른다. 어둠이 있을 때 빛이 더 밝아지고 겨울 뒤에 봄이 더 따듯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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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전쟁 - 사람을 움직이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51가지 말의 기술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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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로 하루아침에 왕대접을 받거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비단 요즘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이 말로 흥하거나 망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아마 거의 없겠지. 하지만 sns가 세상의 중심이 된 요즘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의 권력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단순히 인스타그램이나 페북에 올라가는 짧은 말 한 두마디가 널리 퍼지게 되어서라는 의미는 아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미디어와 sns를 통해 순식간에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며 이때 지지는 곧 권력이 된다.

 

입담의 제왕이라거나 논객이라거나 뭐 이런 류의 수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늘 의문이었다. 대체 뭘 두고 그 사람이 말을 잘한다고 하는가? 듣기에 유려한 단어들로,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로 막힘없이 말을 하면 그게 언변이 좋은 게 되나? 내 얘기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사람 혹은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사람(여러가지 의미로)이나 소위 큰 소리 치는 사람이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건 싸움의 기술이지 말의 기술은 아닌 듯 하다. 싸움이라면 밀어붙이고 우기고 들이대면 끝날 일. 그러나 말은 그런 게 아니다. 말은 나에게서 나갔더라도 그걸 받아주는 상대가 있어야 말이고 상대에게서 나에게로 왔을 때 나의 반응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는 것도 말이다. 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말을 잘 한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몇 년 동안 내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몇 주 전에 [스피치에센스]라는 연설대회 우승자들의 사례 분석집을 읽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말의 전쟁]은 이런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던 내가 꽤 오랫동안 공들여 읽은 책이다. 다른 인문학서적이나 실용서적류에 비해 꼼꼼하게, 글 속의 저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쉼없이 질문하여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책 프롤로그에 나오는 이 구절 덕택이다.

 

논쟁 과정에서 다양한 반론이 제시될 수 있다. 반론에 의해 자신의 근거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참인 것과 좋은 것이 설득력을 얻는다면, 부끄럽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나는 열을 올리며 토론하다가 상대편이 약해서 승리할 때의 쾌감보다도, 상대편의 올바른 이론 앞에 내가 굴복했을 때의 나 자신에 대해 얻는 승리감에 훨씬 더 큰 자존심을 갖는다라고 한다.

 

몽테뉴에 의하면, 논쟁 과정에서 자기 견해의 약점이나 오류를 드러내는 공격이라면 아무리 약해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된다. 더 설득력이 있고 증명에 합당한 말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웃는 얼굴로 반론을 맞이한 것도 토론을 통해 결국은 올바름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론을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다.

     15쪽 프롤로그

 

누군가와 토론을 하다 상대가 나의 논리적 약점을 찌르면 나는 감정적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토론은 이내 싸움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올바름이 승리'하도록 이끄는 것이 토론이고 그래서 나를 굴복시킬 정도로 힘이 있는 상대의 반론은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 이건 내가 그동안 말에 대해 가졌던 여러 의문들에 실마리를 주었다.

 

토론의 기술, 연설의 기술 이 두 가지로 크게 양분된 이 책은 단순히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말의 목적, 상황 그리고 결과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정리했다. 동서고금의 사례들을 각 상황별로 적절하게 끌어와 이해를 높였다. [말의 전쟁]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유명한 토론이나 연설들의 장점을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분석을 싣고 그와 함께 연설 전문을 꼭지별 부록으로 넣었다는 점이다. 특히 연역/귀납 화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연역토론을 귀납화법으로 치환해 이해를 높인 부분(111) 에서는 저자가 얼마나 세심하게 고민해서 이 책의 원고를 준비했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저자가 토론의 기술에서 제시한 논거들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연설의 기술에서 챕터를 너무 세분화한 것 아닌가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다. 아쉬운 부분들이지만 그렇다고 책 전체의 설득력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이런 의문(논리성에 대한 고민)이 들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일방적으로 읽고 마는 책이 아닌 저자와 독자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유기적인 책이라는 방증 아닌가.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금 드는 생각은, '말이란 참 좋다'.

 

세상에는 험한 말, 악한 말, 기분 나쁜 말, 슬픈 말... 참 다양한 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참 좋은 것이다.

 

몽테뉴가 그랬듯, 소크라테스가 그랬듯 그리고 [말의 전쟁]의 저자가 그리 썼듯이 우리는 말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나고 주고 받고 교감하고 마침내 올바름이라는 궁극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말의 전쟁]처럼 토론이나 화법에 대한 책들이 몇 권 출간되었는데 대부분 '싸움'이라는 행위가 연상되는 제목들이 많아 좀 아쉽다. 지지 않는 말이라든지, 이기는 00 이라든지...

 

토론()이 가진 가장 아름답고 긍적적인 측면 즉, 올바름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본질에 어울리는 더 멋진 제목들이 나올 수 있을텐데.

 

이를 테면 말의 승리 같은... , 그런 거 말이다.

 

근데, 그러면 책이 안 팔려서 안되는 건가?;;;;;

 

몽테뉴에 의하면, 논쟁 과정에서 자기 견해의 약점이나 오류를 드러내는 공격이라면 아무리 약해도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게 된다. 더 설득력이 있고 증명에 합당한 말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항상 웃는 얼굴로 반론을 맞이한 것도 토론을 통해 결국은 올바름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반론을 새로운 영광의 재료로 맞이했다.

15쪽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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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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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잠시만 빌려야겠다.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 당신을 결정한다.

선택은 지구라는 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생명체 중 사람만이 가진 특권이다. 아니, 숙제 어쩌면 짐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에게 선택은 일상이다. 삶의 모습과 형태는 각자 너무나 다르겠지만 모두가 매일 수없이 많은 선택의 계단을 오른다. 다만, 선택지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오늘 내가 빨간 옷을 입을까 파란 옷을 입을까 정도의 선택을 하는 동안 이 별 반대편의 누군가는 빨간 옷과 파란 옷 중 누구를 먼저 죽일까라는 선택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테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였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 테러를 계획했고 실행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테러에 희생당해 목숨을 잃거나 가족을 잃었다. 이 테러를 일으킨 사람들, 테러리스트와 그 조직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와 사람들에게 증오와 공포를 심는 데에 성공했다. 나아가 테러리스트들의 종교와 인종에 대한 혹독한 편견 역시 깊은 뿌리를 내렸다.

 

911테러가 일어나고 십여 년이 지난 후,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그가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을 전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작은 책 한 권에서 그는 증오, 공포, 편견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던 시간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지난 시절에 대한 회고나 고백은 아니다. 그는 테러도, 종교도, 국가도 아닌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람이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무엇이 아버지를 테러리즘으로 이끌었는지 이해하느라 인생을 보냈으며, 아버지의 피가 내 혈관 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희망과 교훈을 전하기 위해서다. 광신의 불속에서 자랐으되 비폭력을 받아들인 젊은이의 초상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스스로 대단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저마다의 화두가 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화두는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증오를 훈련받았어도 관용을 선택할 수 있다. 공감을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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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보낸 어린 시절과 아버지가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서술하는 걸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버지는 상처 받은 여인을 여왕으로 만들었던 남자였고 아이들에게는 아낌없이 품을 내줬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몇 번의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으면서 아버지는 이제껏 그가 걸어온 궤도와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선택해 나아간다. 평범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증인으로서 저자는 이 시기의 아픔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제 열세 살이 되었고,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도 자존감에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그칠 기미가 없었고, 늘 복통을 알았으며, 내 또래 여자애들이 칼로 자해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밤마다 침실 벽에 머리를 찧었다. 죽으면 얼마나 편안하고 평화로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끔찍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버지는 나 말고 테러를 선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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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선택, 그 시작과 끔찍한 결과까지 목격한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폭행과 편견과 외면으로 양육 받은 아이는 뜻밖에도 비폭력과 화해의 길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혈통적 공범이라는 괴로움, 성장기 내내 시달려야 했던 불안과 고통 속에서 그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내렸고 그의 선택이 옳음을 알려주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사람이란 선택을 거듭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하지만 이 선택의 순간에 때로 편견이란 것이 눈앞을 흐리게 한다. ‘편견의 저주는 내가 죽이고 괴롭히려는 저이도 사람임을 잊게 하고 화해와 평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잊게 한다. 그렇게 테러리스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미니 롤러코스터를 탔던 그 반짝반짝하던 어린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결단코 두둔하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은 명백히 살인이고 수치였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나는 테러리스트인 아버지도 사람임을 말하고 싶었던 저자의 뜻을 이해한다. 테러를 자행하는 모든 이들은 사람이고 그들을 비난하는 편도 사람이고 그들에 희생된 모두 역시 사람이다, 공감은 증오보다 힘이 세다. 모두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더 이상 편견의 덫에 희생되어 스스로 테러리스트가 되는 사람도, 그들에게 희생되는 사람도 없을텐데.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을 비롯하여 편견과 증오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모두에게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전하는 마지막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누군가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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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정리의 힘 - 세계의 엘리트가 매일 10분씩 실천하는 감정회복습관
구제 고지 지음, 동소현 옮김 / 다산3.0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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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조절장애 사회라는 말이 새삼 피부로 와닿는다. 방금 전에도 나는 포털 메인에서 누군가 홧김에 사람을 살해했다는 뉴스를 읽고 왔다. 이틀 전에도 비슷한 뉴스를 읽었고 지난 주에도 화풀이 대상으로 한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아마 지난 달에도 홧김에 저지른 강력범죄들에 대한 보도를 자주 접했던 걸로 기억한다.

분노를 못이겨 저지른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를 물끄러미 보시던 아빠는 혼잣말로 탄식하셨다. '우리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아마 이런 탄식을 한 사람이 우리 아버지 한 분만은 아니겠지. 아마 올해 말에는 2016년을 정리하는 키워드 10개 중 하나로 반드시 '분노사회' 내지는 '분노조절장애' 라는 말이 들어가야 맞을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의 분노기질을 감지한 여러 학자 혹은 전문가들은 '분노사회'에 대한 우려를 표해왔다. 그래서인지 서점가에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책도 많다.

감정 연습, 감정 코칭, 감정 수업 등등등

 

생각해보면 감정이란 아주 본능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코가 간지러우면 재채기를 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것은 기쁘다고, 슬픈 것은 슬프다고 그리고 화가 나는 것은 화가 난다고, 감정은 의도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을 우리는 연습해야 하고 코칭 받아야 하고 수업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모든 원흉은 스트레스다. 우리는 어쩌면 감정보다 스트레스를 더 익숙하게 느낄만큼 폭발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티비와 인터넷의 서라운드 속에서 어디를 보아도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남다르게 누리는 권력이 그리고 그들의 자유롭고(방탕하고) 블링블링한(천박한) 삶이 무슨 대단한 것인양 전시된다. 무한 소통의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떠오른 SNS'있어빌리티'들의 잔치판이 되었다. 회사니 학교니 사는 것은 날마다 더 팍팍해지니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오히려 정신건강을 의심해봐야 할 상황이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서, 내가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인문학 교육의 부재였다. 무슨 무슨 철학, 사상 이런 걸 배우고 싶었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기회 없이 나의 성장기는 지나가버렸다. 이런 허탈한 청소년기는 아마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 경험 아닌가?

우리들이 팔다리가 자라는 동안, 단 한 학기동안만이라도 저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스스로가 답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그래서 존재의 근원에서 시작하여 희노애락이라는 자신의 감정에까지 관찰과 사유를 확대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오늘과 같은 분노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는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분노하며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에 즐거워하는가?

나의 기쁨을 막는 것, 나의 분노를 해소하는 것, 나의 슬픔을 달래는 것, 나의 즐거움을 멈추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건,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 거야~ 라는 꿈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되는 이슈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감정 정리의 힘]을 읽으면서 내가 다짐한 것은 저 위에 적은 질문에 대한 자세다.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분노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내가 어떤 자세로 답할 것인지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자세'가 답의 질을 결정할 뿐 아니라 답을 내린 이후의 나의 행동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

어떤 답을 내리든지 감정에 대해서는 항상 솔직해야 하고 유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감정 정리의 힘]의 저자는 '감정회복습관'을 들여야 보다 효율적이고 충실한 삶을 살수 있다고, 스트레스를 덜어내고 보다 집중력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감정회복습관'이라는 걸 이 책에서 처음 접한 나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처음에는 감정을 정리한 후 찾아온 일곱 가지 변화라고 책에 소개한 내용이 (홍보에 활용하고 있는 내용인듯한데) 너무 뻔하고 상투적이라 별로 믿음이 안 갔다. 그런데 왠걸 기대하지 않았는데 본문 내용이 아주 재미있었다.

세계의 수많은 엘리트들이 감정회복습관을 실천하고 있다는 홍보 문구에 혹한 건 아니다. 남에게 좋다고 꼭 나에게까지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엘리트들이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이런 것들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확실히 감정적으로 부담을 덜고 일과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번 주에 읽었던 임세원 박사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와 책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분노와 자책 혹은 원망 등 감정의 잔여물을 품에 안고 살지 않도록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굉장히 유익한 조언들이 많은데, 그 중에 '실패'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분노조절장애도 결국 '실패'를 직면한 인간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패배감, 아쉬움, 부끄러움, 괴로움 등등을 다스리지 못해서 생기는 것 아닌가.

 

> 실패 경험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학력과 경력이었지만, 본인은 원치 않은 대학에 진학하고 원치 않은 회사에 취직했으며 그리고 또다시 원치 않은 회사로 이직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체념해서 에이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현실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일하는 사람처럼 보였지요.

그건 m씨가 인생의 고비마다 겪은 좌절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쓰라린 체험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면 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데 실패는 늘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감정회복습관이 있는 사람은 실패하더라도 바로 다시 일어서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실패야말로 감정회복근육을 단련할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패 경험에 관해서는 세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실패로 인한 충격으로 생각이 정지되면 안 됩니다. 실패는 강렬한 부정적 체험이기 때문에 다 내 탓이다라며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고,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패 이후의 초기에는 생각이 정지하거나 죄책감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성실한 노력형 인간일수록 뭔가 나쁜 일이 생기면 책임감을 느끼고 후회를 곱씹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실패까지도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며 점점 부정적인 연쇄 반응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셋째, 실패가 거듭되면 다음에 또 실패할까 봐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행동 회피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새로운 일을 거절하고 새로운 체험이나 만남의 기회까지도 멀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행동 회피라는 나쁜 습관에 물들면 자신만의 껍질 안에 갇혀 본인만 느낄 수 있는 심리적인 세이프 존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합니다. 자기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없게 됩니다.

자기 성장을 할 수 없다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장을 위해 우리는 실패했을 때 재빨리 감정회복습관을 이용해야 합니다. 감정회복습관이 있는 사람은 도중에 실패해도 곧바로 적절하게 대처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본문 171

    

실패는 누구에게나 쓰라린 체험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면 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데 실패는 늘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감정회복습관이 있는 사람은 실패하더라도 바로 다시 일어서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실패야말로 감정회복근육을 단련할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패 경험에 관해서는 세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실패로 인한 충격으로 생각이 정지되면 안 됩니다. 실패는 강렬한 부정적 체험이기 때문에 ‘다 내 탓이다’라며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고,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패 이후의 초기에는 생각이 정지하거나 죄책감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성실한 노력형 인간일수록 뭔가 나쁜 일이 생기면 책임감을 느끼고 후회를 곱씹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실패까지도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며 점점 ‘부정적인 연쇄 반응’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셋째, 실패가 거듭되면 다음에 또 실패할까 봐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행동 회피’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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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지음 / 알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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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진심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으려는 사람 중에 진짜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은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의 눈길조차 단번에 사로 잡는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 정말 그렇거든.

어제 누군가에게 내가 들었던 말이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무심코 흘리는 말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20년간 우울증을 치료해 온 정신과 의사도 나름대로 실력이 좋은 의사라고 했다. 타인의 병든 마음을 치료해온 그, 수많은 정신과 이론과 임상실험 결과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을 그에게 어느 날 맨정신으로 감당키 어려운 통증이 찾아왔다. 그가 배우고 익혔던 그리고 환자들과 학회 앞에서 입으로 전했을 수많은 이론과 실험 결과들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타인의 수많은 사례들이 더이상 사례가 아닌 그의 삶이 되었을 때, 그는 분노하기도 했고 절망하기도 했고 오열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의 환자들이 그러했듯이.

 

심리학 책이라고, 그렇게만 이야기하기엔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진심이 너무 무겁다.

흔들리는 그가 걸어온 생과 사의 경계를, 그가 겪은 이승과 지옥의 사이를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의사의 말에 어떻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걸 그냥 책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 병은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앗아가 버렸다. 나는 어느때부터인가 웃음을 잃었고, 활기를 잃었으며, 무엇보다 '희망'을 잃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어김없이 지독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렇게 3년여간 끝 모를 고통을 겪으며, 나는 내가 마음의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 갖고 있던 내 생각들 중 어떤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떤 것은 단지 나의 소망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마음이 아픈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들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절망에 빠지고 보니 그것이 내 온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

7-8쪽 들어가는 글 중에서....

 

'나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타인은 누구도 없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고통에만 공감할 뿐이다. 타인의 목숨이 끊어지는 고통보다 내 손톱이 빠지는 고통에 더 민감한 게 인간 아닌가.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의사가 털어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간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전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처방들...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 이토록 겸손하게 이야기하며 서문을 연 저자이기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본문 중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마다 더없는 진정성이 실려 있다.

 

한때 나도 겪었던, 정말 지독히도 건조하고 황량했던 그 어두운 터널에서 어떻게 기어나올수 있는지에 대해 감히 말하건데 방법은 없다. 그 터널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갔지만, 거기는 약도 없고 지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냥 견뎌야 한다. 더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해 지금 잡고 있는 것들을 더 꽉 붙들고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계속 계속 실마리를 쥐고 있다보면 어느새 그 실마리의 끝에, 터널의 바깥에 서게 된다.

 

이 책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처방 역시 비슷하다. '가느다란 희망의 근거'를 놓지 말라고. 그러면 행복의 실마리를 쥐게 될 수 있다고.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혹은 그런 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어쩌면 의사로서 털어놓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는 그의 경험들을 책으로 썼다.

어느 날 벼락처럼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그 고통이 심해져서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때.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러다가 조금씩 희망의 근거를 찾아 행복의 실마리를 손에 쥐게 된 그는 마침내 '오늘 이 순간을 살아내는 삶'에 이른 과정을 담담하게 전한다. 그가 자기 스스로에게 적용한 심리학적인 접근과 시도들은 실제로 우을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는 섣부른 위로도 공감도 하지 않는 대신, 때로는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때로는 냉철한 의사로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의 말에 진심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마음으로 읽히는 이유는 경험담을 솔직하게 전하면서도 저자 스스로 막연한 희망과 현실을 뒤로한 이상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에서, 현재의 일상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누구도 인생을 마음대로 살 수 없다. 모든 것을 선택하고 모든 것을 누리는, 모든 것이 마냥 행복하기만한 사람은 없다. 살다보면 우린 어쩌면 날마다, 내가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암초들에 부딪혀 아프고 상하고 지친다. 그럴 때.... 상한 마음을 그대로 두지 말자. 저자의 조언대로 그 어둠에 순순히 지지 말자.

( 이 책에 쓴 저자의 말 중에 추천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은데)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길 것 같다.

 

-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단지 내 인생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단지 내 인생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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