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야방 : 권력의 기록 1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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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방영되었던 중국드라마 '보보경심'의 인기는 아직 식지 않은 것 같다. 드라마 덕후들에게는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소문난 작품이기도 하고 워낙 웰메이드 작품이기도 한데다, 방영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 '달의연인 보보경심:'가 주목을 받으면서 그 원작으로 다시 한 번 더 화제가 되는 느낌이다. 미드나 영드만 보던 드라마 덕후인 내가 중드의 매력을 눈을 뜨게 만든 결정적 작품이라, 그냥 나의 애정의 콩깍지가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일수도 있다.

    

 

보보경심 이후 다시 한 번 중국드라마에 대한 나의 애정을 대폭발 시킬 것만 같은, 운명의 데스티니처럼 다가오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이 작품 되시겠다. [랑야방]. 중국 50개 도시 시청률 1, 중화TV 방영 후 개국 이래 최고 시청률을 갱신한 이 드라마는 국내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도 이미 호평이 자자하다. 드라마의 어마어마한 인기를 방증하듯 게임으로도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 대단한 작품의 원작 소설이 내 손에 들어왔다. 어떻게 안 읽을 수가?

 

드라마가 초 히트를 치기 전에 이미 이 소설 [랑야방]은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중국의 웹사이트에서의 연재로 시작된 이 소설은 온라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책으로 출간되었고 이 책이 드라마 제작으로 까지 이어진 것. 더구나 소설을 쓴 저자 하이옌은 드라마 각본까지 맡았다고 하기에 소설을 읽기 전부터 나는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좋은 소설을, 잘 쓴 작품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어서.

 

[랑야방]의 부제는 '권력의 기록'이다. 주인공 매장소는 베일 속에 자신을 감추고 복수에 나선 기인이다. 무예를 하지 못하는 데다 병약하기까지한 인물이나 '그를 얻는 자, 천하를 얻을 것이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뛰어난 재사다. 이 작품은 치밀한 복수극이라는 굵은 줄기를 세심한 인물 표현과 탄탄한 플롯으로 흡인력 있게 전개해 나간다.

 

사건의 흐름 자체가 흥미진진해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인물들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다. 각 인물의 동기와 선택, 그들의 말들이 굉장히 설득력 있다. 단순히 복수극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을 거다. 어릴 때 읽었던 무협소설이나 무협드라마의 느낌이 나면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서라면 반드시 벌어지기 마련인 세상사를 잘 그려낸 작가의 통찰이 대단하다.

 

"소 형은 제가 가장 동경하던 강호인이에요.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매장소는 쓸쓸하게 웃으며 탁자 위의 콩알 같은 등불을 바라보았다.

"틀렸네. 세상에는 본래 자유로운 사람이란 없어. 감정이 있고 욕망이 있는 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네."

448

 

드라마는 작년에 54부작으로 완결되었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 랑야방은 아직 완결 전이다. 3권이 완결이라고 하는데 2권까지 출간되었다고. 드라마와 소설을 둘 다 접한 지인은 소설이 훨씬 인물이 많고 다채롭다는 평을 전했다. 완결판 출간을 기다리며 2권으로 달려가야겠다. 아마 완결판을 기다리다 못 견뎌 드라마를 먼저 정주행할지도 모르겠네.



"소 형은 제가 가장 동경하던 강호인이에요.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매장소는 쓸쓸하게 웃으며 탁자 위의 콩알 같은 등불을 바라보았다.

"틀렸네. 세상에는 본래 자유로운 사람이란 없어. 감정이 있고 욕망이 있는 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네."

책 4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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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자존감을 부탁해 - 온전히 나답게 살기 위한 자존감 연습
슈테파니 슈탈 지음, 김시형 옮김 / 갈매나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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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누가 나한테 그랬다. 너는 참 자기확신이 강한 것 같아. 그 말이 나더러 참 고집 세고 자기 방어가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는 걸 나는 한참, 아주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물론 저 말을 나에게 한 그이의 뉘앙스는 전혀 비난하거나 기분나쁜 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저 말 안에 숨은 의미를 굉장히 가볍게 넘겼다. 자기확신? 내가 그렇게 뭔가 확신에 차서 움직이는 타입으로 보이나? 이렇게 껍데기로만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나는 뭔가를 좀 착각하고 있었다. 자기확신과 고집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나는 단순히 고집스러운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걸 알아채는 데에 나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걸 알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게 되었다. 누가 나에게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류의 발언을 하면 겉으로는 웃어도 한번쯤은 돌아본다. 고집을 부렸는지, 진짜로 확신을 한 건지. 그러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내가 분석한 속뜻인 '너는 고집 세고 자기 방어가 강한 사람이야'라고 말도 나쁜 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도 그럴 수도 있고 앞으로는 안 그러거나 여전히 그럴 수도 있는, 그건 그냥 성향의 하나일 뿐이니까.

 

한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성격이 바뀌는 횟수는 얼마나 될까? 예전에는 어릴 때의 성격 고대로 일생을 살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를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10살 때의 나와 15살의 나는 내가 봐도 성격이 참 다르다. 10살에는 다소 소극적이고 예민하고 조용한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15살의 나는 책상 위를 뛰어 다니며 쉬는 시간에 고성과 발광의 표본이 되기에 주저함이 없는 아이였다. 20살에는 많이 새침했었고 이기적이었고 25살에는 많이 우울하고 신경질적이었다. 몇 번이나 성질이 바뀌는 동안, 그대로 유지되는 그 무엇은 분명히 있었다. 어떤 신경분석학자는 그 무엇이 바로 본래의 나, 진짜 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진짜 나를 진짜로 발견하고 대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이 일평생, 자신이 누구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고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거나, 이 고민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으면 나는 쉽게 나약해진다. 그래서 내가 나를 막대하거나 싫어하거나 부정하거나, 이런 일들이 생기기 십상이다. 걷잡을수 없이 신경질적이 되고 공격적이 되는 내 성격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나는 참 이상했다. 나는 어릴 때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지? 진심으로 다행스럽게도, 그러다 나는 답을 찾았다. 내가 나를 아껴주지 않으니까, 내가 나를 원망하고 내가 나를 힐난하고 내가 나를 막대하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심리학, 자존감을 부탁해]는 내가 고민했던 내용들, 그리고 발견했던 나름대로의 답안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이다. 이런 류의 심리학 서적들이 꽤 되지만, 이 책은 그 여러 책 중에서도 발군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다치는 나를 인식하고 내 안을 돌아보며 원인을 찾고 자존감을 뭉치고 다져가며 치유하고 마침내 사람들 사이에서도 편안히 지내는 법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으로 책이 끝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꼭지였다. 자존감은 무작정 자기를 사랑해주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다. 무분별한 자기애는 오히려 자존감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불안과 의심도 마찬가지. 자기 스스로에 대해 늘 (긍정적인) 의심을 하고 자기불안을 가지고 산다고 해서 자존감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이런 과정이 없으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집이 자존감인양 고집을 빠락빠락 세우게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진짜 자존감을 위해 '책임'을 질 것을 놓치지 않고 조언한다. 삶의 현실 뿐 아니라 미래, 인생 설계에까지 건강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 책 [심리학, 자존감을 부탁해]. 자존감이라는 문제의 세 글자를 고민하는 분들이 읽어볼만한 기분 좋은 책이다.

 

 

 

심리적으로 더 건강하고 윤리적으로 더 지속 가능한 것은 이 두려움을 책임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 전에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다.

나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지려면 가장 먼저 삶을 스스로 제어하며,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우연에 인생을 내맡기지 않아야 한다. 책임이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고 삶을 가꾼다는 뜻이다. 혹시 무언가에 좌초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좌충우돌 임시변통으로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내 행동에 책임을 지려면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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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미래를 훔치는가 - 글로벌 보안 전문가가 최초로 밝힌 미래 범죄 보고서
마크 굿맨 지음, 박세연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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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였나, 프랑스에서 보낸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신시아라는 사람이 보낸 이메일에는 첨부파일 하나가 달려 있었다.

모르는 이메일 주소, 모르는 발신인. 별 중요한 것도 없는 이메일 내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 이메일이 왜 나한테 왔나? 혹시 지금(당시 내가) 진행 중인 건에 연결된 사람인가? 혹시 스팸인가 싶어서 첨부파일로 온 프로그램을 구글에 검색해봤다. 근데 별 위험한 내용은 안 나오더라고. 경계가 풀리자 순전한 호기심으로 나는 첨부파일을 클릭했다. 그리고 즉시 노트북에는 쓰나미가 일었다. 순식간에 노트북에 있던 모든 엑셀, pdf, jpg, 메모장 따위들에 암호가 걸렸다. , 이런 미친 뭐 이런 멍청한 일이, 대체 이게 뭐.. 아 놔...... 욕이 절로 나왔는데 성질을 부리는 것 보다 일단 일을 수습하는 게 급했다. 나는 서둘러 친구에게 눈물 어린 sos를 쳤다. 야 나 어떡해. 이거 수습 안 되겠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습은 못했다. 파일들은 포로가 되었고 파일 해방을 볼모로 범인들은 돈을 요구했다. 그것도 72시간 이내에 돈을 보내지 않으면 뭐 어쩌고 저쩌고. 돈이라고? 차라리 노트북이 운명하셔서 하드를 날린 걸로 친다. 길에서 똥 밟고 옆걸음치다 모르는 사람에게 뺨 맞고 도망가다 미친개한테 물린 셈으로 하고 말지, 괘씸해서라도 돈은 안 준다. 다행스럽게도 이 놈들이 쓴 프로그램은 한글파일은 건들지 못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수많은 원고들과 문서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두번 다시 어떤 일이 있어도 모르는 사람한테서 온 이메일은 클릭도 하지 않고 지워버린다.

내가 이 일을 당하고 나서 3주 정도 뒤에 포털에 뉴스 기사들이 올랐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에 암호를 걸어서 포로를 삼고 돈을 요구하는 신종 스팸메일이 유행하니 조심하라고. 이야, 나 얼리어답터였네. 뭐 이런 자랑스럽지도 않고 멍청하기만 한 일에 가장 발빠른 체험자가 되다니. 가문의 망신이지.

 

아직도 문득 떠올리면 혈압이 퐉 솟아오르게 하는 이 사건은 나에게 굉장히 큰 가르침을 주었다. 보이스피싱이니 스팸메일이니 이런 거에 당하는 사람들 중에 절대 ''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근데 그게 아니라는 것. 나 역시도 아무 생각없이 이것저것 클릭하고 넙죽 이것저것 다운 받다보면 내 소중한 파일들을 볼모로 잡히는 일을 면치 못한다는 것. 누구라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고 나는 그저 파일 몇 개로 끝났지만 어쩌다 패가망신 하는 수도 있고 더 심각하게는 신체의 안전을 위협받는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

실로 위험한 시대구나, 싶었다.

그래서 [누가 우리의 미래를 훔치는가]를 읽으면서 저자가 경고하는 모든 일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책 분량이 꽤 많지만 따분하다기 보다, 이런 무게 있는 책을 완성한 저자의 노력이 느껴져 공들여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무작정 기술의 발전을 폄훼하고 경계하지 않는 저자는 다만 필연적인 기술 진보에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가장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제일 마지막 특별 부록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이버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 순간부터라도 당장 실행해야 하는 팁들을 정리한 내용인데,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실천에 옮겼다.

혹시라도 사이버 범죄에 위협을 느끼지만 뭐부터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싶은 분들은, 이 책의 제일 뒤에 실린 이 내용부터 읽고 실천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나서 다소 안전해진 환경 속에서 첫 장부터 정독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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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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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 화가의 일생을 추적해보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미술 관련 책에서 줏어 읽은 이야기들이 불현듯 미술관에서 생각날 때 그랬다. 책에서 해설해주었던 그림을 지하철 광고판 앞에서 마주쳤을 때 그랬다. , 색 그리고 작품에 지문처럼 새겨진 분위기. 어줍잖은 눈으로 그걸 읽어내면서 어떤 생을 살았기에 이런 걸 그렸을까 가늠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가봤다. 화가의 일생을 읽고 그들의 인생론을 읽고 그리고 나서 그들의 그림을 보게 됐다.

그림만 보고서는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화가의 일생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풀리게 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 최고의 명화 이야기꾼이라고 소개된 저자 나카노 교코의 신간[내 생애 마지막 그림]은 이전에 읽었던 여러 미술서적과는 조금 달랐다. 그림을 해설해주는 미술서적들이 대부분 이용하는 스타일을 따르지 않아서일까. 구성도 흥미롭고 내용도 재미있다.

 

저자는 작품이 아니라 화가를 주인공으로 두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화가 개인만이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니다. 저자는 화가와 시대, 화가와 그림과의 관계를 면밀히 살펴 설명한다. 그래서 이 책이 되게 재밌다. 화가의 일생을 지배했던 주요 테마들에 따라 세 가지로 구성했다. 화가와 신, 화가와 왕, 화가와 민중. 종교화를 그렸던 화가의 일생을 살피고 궁중화가로 명성을 누렸던 화가의 일생도 살펴보고 민중과 함께했던 화가의 일생도 살펴본다. 저자가 설명을 잘해서인지 아니면 본래 화가의 일생이라는 것이 그토록 흥미로운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책은 참 재미있다. 그 화가는 이렇게 살았대더라, 이것만 있었으면 다소 따분했을텐데 이 책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저자는 화가의 인생을 읽어 그의 작품을 세밀하게 읽어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그래서 나는 '고야'의 전혀 새로운 얼굴을 보았다. 라파엘로의 단정한 그림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게 됐고 보티첼리의 말년을 이해하게 되었다.

미술서적의 경우에 인쇄가 특히 중요한데, 이 책은 인쇄도 괜찮다. 오랜만에 보는 <비너스의 탄생>이 너무너무 정말 감탄이 나오게 아름다워서 나는 책에 실린 그 작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기도 했다. 작품이 워낙 아름답기도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기에 책의 인쇄상태도 훌륭한 덕분이다.

 

최근에 미술전 관람이 뜸했다. 보통 여름이면 유명작가들의 대대적인 기획전을 하기 마련인데 지금 어떤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으려나?

기분 좋은 미술서적을 읽고 나니 오랜만에 미술작품을 보러가고 싶어졌다. 그림에는 항상 문외한이지만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을 읽었을 때처럼, 그림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고 기분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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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 - 먹고 마시고 걷는 36일간의 자유
오노 미유키 지음, 이혜령 옮김 / 오브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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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순례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일생에 한 번은 거기를 꼭 가보리라고 굳은 다짐을 들려주던 친구도 있었다. 아쉽게도 그 친구는 결혼과 함께 아이를 낳아 지금은 초등학생을 키우는, 또 다른 의미의 순례 중이다.

 

너무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기에 솔직히 나에게는 되려 호기심도 반감된 여행지였다. 더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은 거기 말고도 너무나 많다. 하다못해 제주도만 해도 순례자들을 기다리는 길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나는 왜 굳이 '카미노'여야 하는가, 이게 궁금했다.

다른 나라가 아닌 스페인에, 왜 꼭 그 길이어야 하는가.

 

내 또래의 여성인 저자는 마치 나 같이 까다로운 독자를 만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이 응답했다. 인생의 어느 때라도 괜찮고 나이가 얼마든 괜찮다고. 결혼을 앞두고 있든 배우자와 사별을 했든, 사업에 실패했든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며 보이지않는 압박에 시달리는 중이든. 어느 때든 다 좋다고. 그러니 가방은 내 몸무게의 1/10로 꾸리고 가방이 몸에 꼭 붙도록 끈을 날렵하게 줄이고, 먼 옛날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어보라고 한다. 그 길은 내 인생에서 얻어야 할 것을 고민하는 길이 아니라 무엇을 버려야 할지, 버려도 버려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최후의 남겨진 그것은 무엇인지를 사색하는 길이기 때문에.

 

한국인 인류학자, 김양주 선생님은 가장 감명을 받은 장소는 어디였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되돌아온 답이 바로 스페인의 순례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였다.

인생과 여행에서 짐을 꾸리는 방법은 같습니다. 필요 없는 짐을 점점 버리고 나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남은 것만이 그 사람 자신인 것입니다. 걷는 것, 그 길을 걷는 것은 어떻게 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을 알기 위한 과정입니다.”

나이도, 자란 환경도 제각기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많은 순례자들이 함께 잠을 자고 한솥밥을 먹으며 성지를 목표로 걸어간다. 그들의 말을 듣는다는 건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인생관을 그대로 접하는 일이었다.

그들의 말이, 편견과 상식에 묶여 있던 굳어 있던 내 머리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때로는 날카로운 칼처럼 꽂히는 말에 몸이 깎여서, 숨겨왔던 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쓸데없는 외피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남겨진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여행은 버리기 위한여행인 것이다.

7

 

[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의 저자는 일본인 여성이다. 도시에서 한창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그녀는 갑자기 앓게 된 공황장애를 계기로 스페인의 순례길로 떠났다. 지금까지 총 3번의 순례를 했다는 그녀. 가장 최근에 36일동안 800km를 걸은 기록을 책으로 담아냈다. 그리곤 책의 첫머리, 스페인으로 떠나게 된 계기를 설명하기도 전부터 그녀는 그 여행은 '버리기 위한' 여행이었다고 강조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어쩌면 도피로 보일 수 있다. 갑자기 마주친 인생의 복병을 피해 꼬리를 감추고 후다닥 도망가 버린 여행. 복병이 사람이든 일이든 병이든, 어쨌건 그 자리에서 감당이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떠났다면 그건 도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 포기할 수도 있지.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데도 무대포로 부딪혀서 내 쪽이 박살나버릴 것 같다면 도망가는 게 나은 거 아닌가? 36계 줄행랑도 전술이다. 도망쳐도 괜찮아.

    

중요한 건 항상 '나 자신'이다. 이기적으로 굴자는 뜻은 아니다. 나조차 나를 학대하고 함부로 취급한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스스로를 아끼면서 내가 먼저 나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나는 그게 올바른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결국 타인도 존중하게 되는 마음. [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는 이런 이야기들을 여행의 언어, 순례의 단어들로 풀어낸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도미토리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이 걷게 되는 순례의 길 카미노. 거기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발견의 공기 같은 것들이 있나봐.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는 사람(예를 들자면 이 책의 지은이)조차도 마음을 열고 영혼에 바람을 불어넣게 되는 그런 곳인가보다. 그래서 누군가와 나눈 이야기를 혼자서 곱씹고 다시 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800km를 완파하게 되는 곳일까.

 

버리기 위한 여행은 거기 아니라도 되잖아, 라고 반문하는 독자를 위해 저자는 카미노 여행의 장점과 특징을 따로 구성했다. 음식이 싸고 맛있다든가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숙박이나 짐꾸리기 등 실용적인 내용까지 꼼꼼하게 잘 구성했다. 이 책의 구성은 마치 카미노 순례를 3번이나 다녀온 저자의 짐가방 같다. 꼭 있어야 할 것만 담고 그것도 아주 잘 정리해서 넣었다. 쓸데 없는 것, 정신 없는 것이 없는 책이다.

카미노 여행을 준비한다면, 이 한 권만 가지고도 괜찮을만큼 여행 정보에 충실하면서도 순례길에서의 성찰도 놓치지 않은 야무진 책.



"자신의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란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란다. 미유키, 자신을 겨울 장미가 아닌 한여름의 해바라기처럼 대해주렴."

책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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