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웨어 - 생각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리처드 니스벳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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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싫은 소리를 한 번 했다.

 

내 업무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는데, '자기 업무가 아직 정리가 안 되었고 내 업무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기 업무를 정리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은 자료를 줄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 답변은 한번에 받은 게 아니고, 3번에 걸친 자료 요청 끝에 받은 답이었다. 그리고는 파일 두 개를 보내왔다. 내가 필요한 자료의 한 10%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의 자료였다.

 

다소 빡친 나는 '자료를 따로 정리해달라는 게 아니라 너네 쪽에서 업무 진행을 하면서 쓰는 자료를 주면 내가 그걸 참고해서 내가 해야 하는 업무를 진행하면 되니 그냥 그걸 넘겨주면 된다. 만약 문의가 있다면 너에게 혹은 네 팀원들에게 문의를 하면 되고, 네가 너무 바쁘면 문의를 받아줄 다른 사람을 나와 연결해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나의 요청에 대해 그 동료는 자기들 팀이 전체적으로 다들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자기도 답변할 시간이 없을뿐더러 물론 팀원들도 내 문의에 답변할 시간이 없다. 팀원 보호 차원에서 내 문의를 받아줄 사람을 연결해줄 수 없다. 어차피 나중에 자료가 정리되니 그때를 기다려 달라. 이렇게 답했다.

 

매우 빡친 나는 그럼 내가 보고 따로 문의를 하지 않을 정도로 이해가능한 수준의 자료는 언제 전달해줄 수 있느냐? 물었더니 약 두 달 뒤라고 했다.

 

결국 빡이 치다 못해 폭발한 나는 메신저로 긴 항의문을 보냈다. 너의 업무 행태는 나에게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너는 네 업무 진행과 네 팀원을 보호하고자 한다고 하지만 지금 너의 행태는 나의 업무를 방해하고 나의 팀원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다. 그토록 바쁘시다니 너의 바쁨을 존중하여 이후로 너에게 자료요청 하지 않겠다. 짜이찌엔.

 

내가 폭발한 뇌세포를 추스를 사이도 없이 멘탈이 갈갈이 찢기는 사건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이 후로 이 동료는 내 메시지 자체를 읽지를 않는 것이다. 전달사항을 아무리 보내도 확인하지 않았다. 안 읽은 메시지가 차곡 차곡 숫자로 쌓여가던 어느 날, 내가 찾아가서 물었다. 왜 메시지 확인 안 합니까?

그는 말했다. 확인 다 했고 다 읽었다. 자기가 답변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이 준비되면 답하려고 미확인으로 놔두었다고 한다. 메시지 답장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미확인으로 놔두었다고 한다.

 

그 답변을 듣고나서 알았다.

..... 이이는 나와 생각의 조직, 의식의 흐름 자체가 아예 다른 이로구나.

그리고 그를 가까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로부터 저런 대답을 듣기 전까지 내가 보낸 미확인 메시지들이 달군 프라이팬처럼 얼마나 내 마음을 지글지글 볶았는데, 저 답을 듣고 나니 나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 답장해야 하는 걸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일주일이 다 되도록 미확인 메시지로 놔두셨군요! 이런 사려깊은 사람을 보았나.

 

보통 메시지가 오면 당장은 대답할 수 없더라도 일단, '확인하고 알려주겠다'고 답하는 게 예의라고 알고 있던 내가 병신이었나 보구나.

정말 핫한... 여러가지 의미에서 뜨거웠던 몇 주를 보내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생각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라는 의문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 내가 지금!! 저 심각한 의문에 빠져 있어! 그러니 나에게 답을 달라!

 

사람은 모든 수를 알 수 없다. 내 앞에는 언제나 여러가지의 수가 있다. 상수가 있고 변수가 있고 허수가 있다. 문제는 이 모든 수를 다 읽기엔, 사람은 너무 감정적이고 편협하다.

상수인 줄 알았던 요소가 어느 날 어떤 감정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다시 보니 허수였던 적도 있고, 변수라고 생각했던 요소가 그를 둘러싼 상황을 전체적으로 다시 파악하고 나니 상수였구나, 싶은 적도 있다.

 

저자가 본문에 쓴 것처럼 상관관계, 인과관계 등등을 정확하게 측정하기란 정말 대단히 어렵다. 그 대단한 셜록도 추리를 틀리잖아.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자료가 충분해도 추측이 잘못되기 쉽고 이때 추측을 주도하는 당사자의 감정상태에 따라서 결과도 너무나 큰 편차가 나타난다.

저자는 이런 '사고'의 오류를 파고들었다.

이 책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상황과 감정, 경험과 편견 등에 발목을 잡혀 잘못 판단하게 되는 일들을 두고, 그런 때에 보다 정확한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논리적 사고를 자세히 풀어낸 책 같기도 하고 합리적 판단에 대해 안내하는 책 같기도 하다. 유익하고 어떤 부분은 엄청 재미있는데 문제는 조금 읽기가 어렵다.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책은 아닌데 좀 어렵다.

 

책이 어려워서 집중하고 읽어야 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책의 안내에 따라 내가 보지 못하고 읽지 못한 여러가지 상황과 정보들이 있을 수 있다는 이성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인지 어쨌건 이 책을 읽으면서 불쾌했던 감정을 많이 누그러졌다. 주의할 점이라면, 누그러졌다는 것이지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서 나에게 여전히 그 동료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생각 체계를 가진 존재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 진짜.... 사는 건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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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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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라는 단어가 잘못 쓰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순간들이 있다. SNS의 세계를 마주할 때 특히 그렇다.

내가 제일 잘나가. 너보다 내가 더 행복해. 누구보다 내가 젤 멋져.

비교하고 자랑하고 깔아 뭉개고, 이런 것들은 서로 통하자는 단어의 목적을 애초에 부정하는 것 아닌가.

대중가사에서 너무 쉽게 쓰이는 이런 언어들에서 가시를 본다. 타인을 찔러 결국 나를 더 괴롭게 만드는 가시들.

이런 언어들이 난무하는 격투기장을 구경하는 관객의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다. 고뇌하는 햄릿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이 그렇지 않나. 어느 사이에, 햄릿이 내가 되고 내가 햄릿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격투기장을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사이에, 내가 격투기장 한가운에데서 글로브를 끼고 서 있게 되고 마니까.

 

제일, 너보다, 누구보다...... 이런 상대적인 표현은 저런 데에 쓰이는 말이 아닐 것이다. 저 자리보다 더 나은 자리가 있을 것이다.

저 자리에서 저 단어들은 상대를 낮은 자리로 끌어내리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끌어내려지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버리고 마는 아이러니 때문에, 얼마나 많은 현대인들이 고민에 빠지는가. 남보다 잘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남들 사는 만큼만 살자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거기엔 언제나 비교 대상이 있다. 타자는 절대로 자아가 될 수 없는데, 자아를 주인공으로 세워야 할 나만의 무대에 타자가 올라선다. 자아를 주인공으로 삼지 못한 사람의 무대에 비교 대상으로 타자를 세우는 순간, 주인공이 뒤바뀌고 무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심연>은 그런 혼돈 속의 사람들에게 혼자 만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보라고 한다.

단절하고, 관철하고, 침묵을 발견하고 더 깊은 동굴 속에서 있어보라고 한다.

때로 그 공간은 누에 고치의 안쪽 처럼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불확실하지만 그런 혼돈은 다음 세상으로 나가는 현관이라고, 그럴 때 심연이라는 깊은 못으로 들어가 자신을 발견해내야 한다고 한다.

 

단편적인 영감을 제공하는, 좋은 느낌의 구절들이 있다. 각 주제별 도입페이지 마다 마하트마 간디나 키르케고르 등이 남긴 명언들이 아주 유익하다.

자기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해보라는 여러가지 가이드도 좋긴 하지만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막연하게 읽힐 수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스스로 고찰해서 찾아보라는 저자의 의도가 있을수도 있겠다.

 

다만, 종교학자의 에세이여서 그런가. 경서나 원시 역사 등등에 대해 ' ~~ 그랬을 것이다.' 라거나 '~~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등의 자기만의 해석(문자 그대로 해석, 논거가 없다) 으로 글을 풀어 나간 부분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과학적 미지와 영적 신비의 구분은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과학적 미지의 영역을 '미지'라는 이유로 '영적 신비'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이 사라지는 상태로 진입하는 단계를 ‘관조’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를 그리스어로 테오리아, 즉 인간의 최선이라고 했다. 이 테오리아로부터 이론을 뜻하는 영어 단어 THEORY가 파생했다. 이론이란 고착된 편견이나 굳어진 도그마가 아니다.
95쪽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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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 - 평범한 인생을 귀하게 만든 한식 대가의 마음 수업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심영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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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심 선생님이 책을 내셨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겪어온 과정을 적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조물조물 무쳐냈다.

범상한 밥 한 그릇이 고귀한 인생 한 그릇이 되기까지의 여정이다.

 

예전에 김치견문록이라는 책을 읽고는 한동안 김치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끙끙 앓았다.

김치의 세계는 정말 넓고도 깊었다.

배추도 무도 그냥 밭에서 나는 듬직한 풀떼기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자연이였고 우주였고 삼라만상의 섭리였고 후에는 인생이 되기까지 하는 생명체였다. 식재료가 야물어가는 과정, 산지에서 캐어져서 다듬어지는 과정, 그 재료들을 혼합하여 맛깔나게 요리하는 과정. 그 어느 하나 흥미롭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 요리 자체가 한국인의 정서요 한국인의 얼이라고 짚어낸 부분이었다. 김치는 한국인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요리라는 게 아니라, 한국인의 혼에서 혼으로 이어온 한국만의 정서가 뿌리깊게 담겨 있는 요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국요리였다.

심영순 선생의 책에서 나는 그때 느꼈던 '한국인의 맛'을 보다 명확하게 발견했다. 심 선생은 '한국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맛'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맛, 그 요리와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국요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문화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어머니는 우리 것도 아니고 남의 것도 아닌 음식을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나는 네가 한국 음식을 제대로 배웠으면 했다. 여기는 그만 다녀라라고 말씀하셨지요. 결국 어머니는 다음 달 학원 등록비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이 말씀은 70년 나의 요리 인생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요리는 언어나 관습과 마찬가지로 그 나라 사람들의 정체성이라 말할 수 있지요. 요리 문화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고작 먹는 것 가지고 뭘 그렇게 생각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나물을 즐겨 먹고 국물을 좋아하고 김치 없이 밥을 못 먹고 된장, 간장, 젓갈 등의 발효 양념을 먹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기질, DNA와 다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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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든 사람이든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반 세기에 걸친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의 정체성이 완전히 파괴되어 아직도 다리를 절듯 반쪽자리 생을 살고 있는 나라다. 온전치 못한 정체성 때문에 많은 비극과 사건들로 시끄러운 나라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가슴이 저렸는지도 모른다.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창씨개명까지 해야했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 아래에서 대한민국의 복잡한 근현대를 오롯이 걸어온 어머니와 딸(심영순 선생의 어머니와 심 선생)의 이야기가 어떻게든 정체성 한 조각을 지켜내고자 고군분투한 우리나라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요리 그 자체를 경외하고 요리에 혼을 담아 마침내는 그 정성으로 사람의 구석구석 반듯하고 바른 혼을 불어넣는 모녀가 보여주는 인생의 자세가 너무나 희귀해진 우리 사회가 애닳아서였기도 하다.

[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은 꼼꼼히 읽을수록 유익하고 재미있다. 계란장조림을 맛있게 하려면 생계란을 장아찌로 담궜다가 먹을 때 익혀내면 탄력이 있고 좋다 등의 요리팁은 물론이고 정성스러운 요리가 사람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대한 생생한 증언도 담겨있다. 요리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도, 아름다운 인생의 자세를 배우고 싶은 사람도, 한국요리의 특징과 정체성을 알고 싶은 사람도 모두 재미있게 읽고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될 책이다.

 

 

요리를 해준다는 것은 함께 있어준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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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 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법
로버트 라이시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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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그런 고급 문구류를 평생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만년필이 생겼다.

이 녀석은 생긴 모습대로, 사용하기가 영 만만한 게 아니었다. 잉크 없이 속이 비어있는 채로 선물 받았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안에 잉크가 있는 줄 알고 한참 헤맸다. 아무리 가볍게 톡톡 두드려봐도 잉크가 나올 기미가 안 보여서 고장난 줄 알았지. 속을 열어보고 안에 잉크가 없다는 걸 알고 난 이후에도 한참 해맸다. 어떻게 잉크를 넣는지를 몰라서 말이다. 내가 우격다짐으로 잘못 다루면 혹시라도 망가질까봐 제대로 손도 못대고 이걸 어떻게 하는 거지,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포기했다. 결국 내가 이 만년필로 글자를 쓰게 된 건, 만년필 유저인 친한 동료가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준 덕분이다.

 

그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세팅완료된 만년필을 건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의 필기 습관에 따라 촉 끝이 조금씩 마모된다. 그래서 사용자의 개성을 그대로 담은 고유의 필기구가 된다. 그게 만년필의 매력이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었던 나는 만년필을 쓰면서 자본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가 딱, 만년필 같아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촉끝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본주의는 덫이 될수도, 동력이 될수도 있으니까.

 

자본주의 자체가 세상을 망가뜨렸다고 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에는 분명 명암이 있지만, 그건 사람이 만든 모든 일이 그렇다. 어쨌든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에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돈이 윤리를 이기는 사회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돈 자체의 악함 때문이 아니라, 돈보다 윤리를 우선하는 사람 때문이다.

 

만년필 촉끝이 마구 마구 망가져서 종이를 찢어 일을 망칠 지경이 되었다면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구하라]는 시스템의 몰락을 두 손 놓고 구경하지는 말라는 경고와 조언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속속들이 파고든 저자는 특히, 한국 저자들에게 미국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한다.

자본주의가 자본가들, 기업과 상위1%의 소수 마음에도 흘러가도록 두지 말라고 말한다. 결국 그 길은 모두를 망치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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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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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운 사이는 본래 아주 사소한 이유로 부서진다.

 

가족이란 세상 어느 누구도 어떤 단체도 줄 수 없는 소속감과 안도감,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오해와 어긋남을 시작으로 관계가 부서지는 위험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상실과 불안과 상처는 대부분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먼저 시작된다. 인간이 최초로 관계를 학습하는 공간이기에 가족이란 때로 그 자체가 가혹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부에는 너무나 많은 상처들이 곪아 있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1977, 미국 오하이오 주의 작은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제임스와 메릴린의 첫째 네스는 하버드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둘째 리디아는 요란한 사춘기도 없이 명랑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사람들의 시선 밖에 머무는 막내 한나 역시 아무 고민이 없는 어린 아이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그런 고요 속에, 평범했던 어느 아침에 둘째 리디아가 사라졌다. 연락도 되지 않고 행적도 묘연해진 둘째 딸을 찾는 동안 부모는 리디아가 창틀에 앉아 전화로 수다를 떨던 아이들에게 리디아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리디아를 낯설어 했다. 그 아이들은 리디아의 친구가 아니라고. 부모가 가장 아끼던 자녀인 리디아가 사라지자 가족의 모든 것이 통째로 멈추었다. 아빠는 출근을 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 가족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서도 그들은 그릇을 내려다보며 리디아의 소식을 기다리다 흩어지곤 했다. 그렇게 그들이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리디아는 결국 주검으로 발견되고 그때부터 제임스, 메릴린, 네스, 한나 그리고 리디아가 이 가정 안에서 각자 보고 듣고 말했던 모든 일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리디아는 왜 죽었나?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가 주목한 건 이 물음이었다. 사고였을까? 아니면 고의적인 살해? 그것도 아니면 자살?

그러나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차근차근 따라가다보면 물음이 바뀐다.

이 가정은 치유받을 수 있을까?

20세기 중반의 미국은 노골적인 차별이 당연한 시대였다. 여성은 기술수업이 아닌 가정수업을 들어야했고 아시안은 하버드 교수 임용에서 제외되는 시대가 그 시대였다. 하필 그런 시대에 여성인 메릴린과 중국인 제임스라는, 온 생애 내내 차별에 저항해야 했던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고 가정을 꾸리게 된 건 비극이었나. 두 사람이 그들이 이겨 내야만 하는 차별의 무게 앞에서 도망쳐 서로 다른 길로 갔다면 이 모든 상처들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뛰어난 물리학도였던 메릴린이 갑작스런 임신과 출산으로 꿈을 이루지 못한 탓에 평생동안 트라우마를 겪는 일과 리디아에게 강압적으로 훈육하게 되는 일도 없고, 부모가 리디아를 편애한다고 느낀 네스와 한나가 소외감과 박탈감으로 쓰라린 유년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라는 가정은 너무나 바보같은 것이라고 평소 늘 생각해왔지만, 리디아가 살아 있을 적의 시간들을 돌이켜 되새기는 이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부질없는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그랬다면.'

 

작가는 제임스와 메릴린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개개인이 간직한 상처들을 촘촘하게 전개한다. 독자는 이 가족이 겪은 30년의 시간을 따라가 각자가 어떤 관계에서 어떻게,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관찰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도, 안쓰럽지 않은 사람도 없다. 모든 비극은 누구도 일부러 만들지 않았지만 누구도 책임이 없지 않다. 죽은 리디아 본인 조차도.

 

정말 이 가정에..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 치유의 길은 없나, 싶을 즈음에 작가는 고맙게도 각자의 상처에 빨간 약을 발라준다. 메릴린이 한나를 껴안고 제임스는 가정으로 돌아오고 잭과 네스는, 아마도 화해를 할 것이다. 상처에 바르는 빨간 약은 약 색깔 때문에 얼핏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낫고 있는 것이다. 요란한 빨간 약은, 고요한 내부의 상처에 비할 수 없이 소중하다.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가족들은 저마다 격앙되고 흥분해서 요란한 일들을 저지르지만 그건 그들의 내면에 깊이 가라앉은 오래된 상처들이 치유되는 과정인 것 같다.

 

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이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말할 수가 없어서 였다.

말로 할 수 없어서, 말로 하지 않아도 말없이 알아주던 것들이었다.

가족이니까 할 수 있는 일들. 가족이기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았지만, 알아주는 일.

 

오늘 나의 가족들은 그리고 나 자신은, 가족들 서로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혹시 내가, 누군가 말하지 않는 일들을 하나도 듣지 못하고 무심히 흘려 보내지 않았을까.

 

 

 

어젯밤에 네가 자러 간 뒤에 점검해봤거든. 23번이 틀렸던데, ?”

메릴린이 말했다.

5년 전에는, 1년 전에는, 심지어 6개월 전만 해도 리디아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하면 오빠의 눈에서 연민을 봤다. 나도 알아. 나도 알아. 단 한 번의 깜빡임으로도 리디아의 시정을 알아차렸고 위로해줬다. 하지만 그때 오빠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푹 빠져 있었다. 꽉 쥔 리디아의 손가락도 갑자기 붉어진 리디아의 눈가도 오빠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미래를 꿈꾸느라 리디아가 말하지 않는 일들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네스는 리디아의 마음속 소리를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가 사라졌다가 돌아온 뒤부터 리디아는 친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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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는 여전히 잭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고 리디아는 이제 완전히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나에게 그 순간은 번뜩이는 번갯불처럼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해줬다. 오랫동안 갈망해온 탓에 한나는 그런 일은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굶은 강아지가 음식 냄새를 맡으면 갑자기 콧구멍을 실룩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한나는 잘못 알 수가 없었다. 한나는 그 즉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사랑, 한쪽에서는 계속 상대를 향해 날리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없는 깊은 흠모. 돌려받지 못해도 상관없이 어쨌든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는 조심스럽고 조용한 사랑. 한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사랑이어서 놀랍지도 않았다. 한나의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밖으로 뻗어나와 숄처럼 잭을 감쌌지만, 잭은 눈치 채지 못했다. 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 멀리 호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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