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없이 회의하라 - 가족, 직장, 친구, 나 자신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5가지 T.A.B.L.E
김동완 지음 / 레드베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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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을 다닐 때 제일 어려운 건 팀과제 수행이었다.

팀원들끼리 역할분담이 된다거나 누군가가 총대를 단단히 매고 궂은 일을 해야 한다거나 (그게 내가 되어야 한다든가;;) 이런 점도 물론 해결하기 까다로운 문제였지만 내가 제일 부담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회의.

팀원들이 만나서 회의라는 걸 해야 하는데,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표현을 회의라고 붙였을 뿐이지 잡담이 되거나(서로 안부만 묻다 끝나는 경우) 서로 감정적으로 부딪혀 난장판이 되는 경험을 몇 번 하고나니 회의랍시고 팀원들과 마주 앉게 되는 일이 보통 부담스러워지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였다. 어김없이 팀 과제가 주어졌고 한 팀이 된 우리는 도서관 1층 쉼터에서 만났다. 팀이 구성된 이래 첫 회의였다. 그날 처음 본 사람도 있었고 얼굴만 아는 선배도 있었고, 팀에는 낯익은 사람과 낯선 사람이 뒤섞여 있었다. 이날의 회의에서 나는 ', 이런걸 회의라고 하는구나'라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이날 회의는 좌장 역할을 자처한 (일부러는 아니었고 어찌하다보니 그 선배가 그렇게 하게되었다) 선배가 팀원들을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곤 주제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에 대해 먼저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었다. 멍석이 깔리자 팀원들은 각자 자신들의 시각과 견해들을 내놓았다. 타인의 말을 중간에 치고 들어서는 팀원은 없었다. 상대의 의견에 감정적으로 맞서는 사람도 없었다. 너와 나의 이야기를 모두 꺼내놓고 누가 옳은지 다퉈보자가 아닌, 그 중에 제일 적확한 내용을 찾아보자는 합의가 이미 팀원들 개개인에게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상태가 본래 회의에 들어가는 구성원들이 갖춰야 할 기본인데, 나는 이걸 그날의 회의에서 처음 보았다. 회의는 본래 회의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방향으로 잘 진행되었고 신기하게도 팀원들의 의견들은 마치 탑을 쌓는 것처럼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서로 맞물리고 연결되어 결론까지 닿았다.

 

회의란 연약하고 섬세한 퍼즐을 맞추는 일이다. 그 바탕에 상대와 상대의 의견에 대한 존중을 갖추지 않으면 금방 부서지고 만다. 아니, 애초에 성립이 되질 않는다고 해야 하나.

 

회의가 시작되고 마칠 때까지, 구성원들은 말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표현을 하고 있다. 내가 당신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고, 당신에게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회의 중 소리로 도출되는 말 뿐만 아니라 모든 제스쳐까지도 회의를 구성한다. 그렇다보니 구성원들 전원이 회의에 적합한 마인드와 태도로 임하지 않으면 회의가 산으로 가는 건 매우 쉬운 일이다.

 

실제로 이런, 이름만 회의인 회의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지 않나.

 

[테이블 없이 회의 하라]의 저자는 한국 특유의 회의문화를 지적하고 그것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이다. 그는 그동안 그가 축적한 소통의 기술을 회의에 접목하여 어떻게 회의해야 생산적인 회의를 할 수 있을지 가이드를 정리해 책으로 냈다.

teach, admit, because, late, enemy 이 다섯가지 요소를 훌륭한 회의를 만들어가는 데에 주목해야 할 요소로 제시했다.

가르치려들지말고, 변명하지 말고, 늦지 말고, 적으로 삼지 않는 회의를 만들어가자는 차원에서 이니셜을 붙였는데 admit은 모르겠다. 억지로 넣은 듯 잘 붙지가 않는다. 나의 의견을 잘 피력하라는 의미는 좋지만 아무리 읽어도 전략적으로 붙인 차원이라고밖에 안 느껴져서 아쉽다.

 

부디 바란다. 정말 꼰대 없는, 지각자 없고 적의가 없는 그런 회의를 바란다.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건 자아성찰이지. 나부터가 그런 회의 구성원이 되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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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 - 거대한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1년간 북대서양을 표류한 두 남자 이야기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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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가 이런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시작했을까?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 건 객기라고 해야 할까, 오기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분명한 건 고무보트를 타고 상어를 잡으려고 덤빈 두 사람이 실제로 있었고 이건 그들이 만든 실제사건이다.

 

저자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와 그의 친구 후고 오스요르는 상어를 잡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는데, 그건 뭐 어떤 엄청난 동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 이야기가 대단한 것은 어쩌다 시작하게 된 이 호기로운 계획을 이 둘이 굉장히 진지하게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진지하면서도 철학적으로, 무엇보다 재미있게 기록했다는 점이 특히 최고.

 

모험가이자 역사학자, 사진작가, 저널리스트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해온 저자의 배경 덕분인지, 이 책은 마치 네셔널지오그래피에서 방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극한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상어를 잡는 이야기라고 해서 상어와 그 포획법에 대해서만 시야를 제한하지 않는다. 어쩌면 상어를 잡겠다는 목표는 단순한 멍석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저자가 폭넓은 이야기를 다이나믹하게 풀어놓기 위한. 저자는 바다와 그 속의 생물 그리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해수면 안팎에 써온 역사를 끌어오고 신화를 파헤치고 소설가들이 남긴 일러준다. 사회와 산업과 과학과 생물학 등등 상어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저자가 긁어모은 자료의 범위는 바다만큼이나 광활하다.

 

그래서 모든 기록들이 살아있다. 이 책은 지구 반대편에서 상당히 다른 삶의 모습일지라도, 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슈와 닿아있고 나의 관심사를 날렵하게 찔러온다.

나는 저자가 이끌어가는 이야기들을 미끼처럼 입에 물고 파닥파닥 좇아갈 뿐이다.

 

본래 나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았다. 흙과 나무처럼 나를 품어주지 못하는 공간으로 느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내쳐지는 느낌이 드는 곳이 바다였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수면 아래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아서 두렵기까지 한 곳이 바다였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바다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어느정도 허물수 밖에 없었다.

저자가 바다를 찬양해서도, 저자의 친구인 후고가 바다를 경외해서도 아니다.

이런 드라마와 경이가 존재하는 곳이 바다라면, 내쳐진듯한 고독과 고립감을 주는 곳이라도, 따듯한 흙과 나무가 없는 곳이라도 충분히 사랑할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안 건데, 이 책의 주인공 둘이 상어잡이에 나선 바다인 로포텐제도는 내셔널지오그리픽이 선정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하니.

저자의 광활하고도 서늘한 풍경묘사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구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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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깨뜨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 기술
애덤 갤린스키.모리스 슈바이처 지음, 박준형 옮김 / 토네이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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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는 Friend and Foe, 심지어 전면 상단에 '성공하려면 세상의 모든 적을 활용하라'는 카피를 내세웠다.

 

그래서 친구냐, 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양분하는 책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흑백논리에 사로잡힌 내용은 아니다.

 

친구 혹은 적. 이 부분에 대해서 친구가 될 것이냐 적이 될 것이냐의 가능성을 다양한 자료와 전략을 바탕으로 조율해보려는 책이라고 해야 어울리겠다.

 

 

 

(개인적으로 책 제목이나 홍보 카피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건 이제 너무 식상하고 고루하다고 느낀다.)

 

책은 아주 재미있는 부분부터 출발한다.

 

첫 챕터 '사람은 누구나 비교하며 살아간다'에서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습성인 '비교 본능'을 다룬다. 경영학, 심리학, 경제학 전문가인 두 지은이는 인간의 아주 못된 얼굴인 '샤덴프로이데'까지 거침없이 설명한다. 샤덴프로이데는 말하자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인간의 심보인데, 저자들은 저열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인간의 이런 모습에 대한 증거를 뇌과학에서까지 끌어와 제시한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는 거지. 두 저자가 과학과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연구 자료와 증거를 샅샅이 정리하여 인간의 심리적인 본능을 까뒤집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런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하면 상생하고 발전해갈 것인지 전략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매 챕터는 권력, 계급, 성차별, 호칭, 신뢰의 몰락 등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한 여러 갈등 및 (부정적) 경쟁 요소들이 어떻게 상생과 발전을 방해하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마무리에는 항상 이런 본성을 초월해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잡아갈 수 있는지 전략을 제시한다.

 

      

나에게는 초중반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권력은 언제 몰락하고 이 몰락을 방지하는 요소는 무엇인가를 설명한 '2. 왕 노릇은 영원하지 않다', 여성과 남성의 상생과 조화라는 포인트를 어떻게 잡아내야 할지 힌트를 주는 '4. 모두의 배를 띄우는 힘'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아무래도 지금 한국사회의 흐름에서 가장 핫한 이슈들을 다룬 챕터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보니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가를 다룬 '8. 부서진 조각 맞추기'도 무척 재미있었다.

 

 

 

친구냐, 적이냐. 그것은 흑과 백처럼 단호하게 분열되어 있는 것도, 처음부터 숙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를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겠지.

 

유동적이고 언제든 어떻게든 변화하며 어떤 힘이 가해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만들어진다는 점.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사회과학의 근본적인 개념은 바로 권력이다. 이는 물리학의 근본 개념이 에너지인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쥐고 있는 권력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한다.
권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곧바로 그 뜻을 이해한다. 권력은 특정한 사람이 타인에게 지니고 있는 통제력의 양이다. 희소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권력이 크면, 자원을 더 쉽게 통제하게 된다. 그래서 자원을 더 쉽게 제한하거나 소유하며 별다른 제재 없이 여기저기에 배분한다.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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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문제
J.A.홉슨 지음, 김정우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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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빈곤이라고 정의할 것인가.

우리 시대에 정확한 경제개념에는 저 질문에 대한 답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절을 앞두고 배추와 과일값 등 생활물가가 거침없이 오르고 있는 중이다.

배추 한 포기에 만 원이 넘는다고 기사까지 난 마당이니, 가정경제마다 깊은 주름이 패이는 것은 말해 입아플 정도.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만 올라가니 이거 살수가 없다'는 시민들의 원성이 수년간 이어져 왔지만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냉수처럼 시원한 해법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

이제까지 서민이라면 누구나 해온 이 고민을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가야 할 거라는 예상이 들어 막막할 뿐이다.

 

이단적인 경제사상으로 학계의 배척을 받았다는 J.A.홉슨의 [빈곤의 문제]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당면한 (비단 한국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지만) 이 암담한 현실을 미리 내다보기라도 한 것같은 책이다. 그가 생존했을 당시에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의 이론과 주장을 비판했고 비난했다고 하나 인간은 항상 '뭣이 중헌디'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아주아주 나중에나 발견하게 되는 존재들 아닌가. 홉슨의 주장을 비판했던 학자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그의 주장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나는 '가난'이 비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도 풍족하고 부유하게 살아온 적이 없는 나의 궤적을 돌아볼 때 나는 가난해서 비극을 겪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 것은 흉도 아니고 비극도 아니고 불편하기는 하지만 아예 살지 못할 정도의 그런 고됨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세상은 '가난'을 비극으로 만드는 데에 망설임이 없다.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그래서 무섭다.

실상을 잘 살펴보면 오늘날 먹을 것 입을 것이 진짜로 아무것도 없어서 궁핍한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이거다.

남들이 먹는 것을, 가진 차를, 입는 옷을 나는 못 먹고 못 가졌고 못 입기 때문이다.

'갖고 싶은 것과 가질 수 있는 것'사이의 편차가 너무너무 크다. 이것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의 빈곤이다.

우리의 세상은 '진짜 아무것도 없는 것''내가 갖고 싶은 게 없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사람들이 눈만 높아져서 그런 것이므로 욕심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부를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행하는 횡포를, 갑이 을을 착취하는 상황을 정당화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만원 짜리 점심을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천원짜리 점심을 먹으면서 빈곤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욕심이 많아서, 사치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5만원짜리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5천원짜리 찌개라도 먹고 싶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에게 '네 연봉에 적합한 소비를 하라'고 말하는 자본주의는 나쁜 자본주의다.

'풍요 속의 빈곤'은 사람들이 사치와 향락에 젖어서 생겨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밤낮없이 일하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수준의 소비만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니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빈곤의 문제] 역시 이런 고민과 시름에 대해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2016년대의 문제에 대해 백년 전의 경제학자가 해답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경제개념이 우리에게 필요한가, 빈곤과 빈곤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 그리고 빈곤을 부르는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도움이 된다.

다만 조금 심란한 것은, 우리가 빠진 이 궁핍한 시절에서 탈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매우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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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혁명 - 자긍심을 회복하는 순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최종희 옮김 / 국민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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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무엇이 사는가....

2016년 중반을 지나면서 내가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질문이다.

내 안에 누가 사는가.

정유정 작가님의 소설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 내내 저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람의 안에는 무엇이, 누가 살기에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치열하게 부정하고 파괴하고 증오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서로를 부정하는 감정만 있다면 괜찮은데 이 증오심은 동전의 다른 면 같아서 뒤집으면 거기에는 정반대의 한없는 애정과 자비와 포용이 있다. 대체 사람은 왜 이렇게 생겼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나 자신'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인간이며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이상을 품은 인간인가.

이런 질문을 아직도 하고 있다니, 너무 늦었다 싶다가도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런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같이 든다.

그러다가도 이 나이에 이러고 있는게 정상인가, 왜 나는 같은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다.

항상 정반대의 성질과 생각이 내 안에서 쉬지않고 충돌하고, 자기가 자기를 부인하고 내 손으로 나 자신을 찢어 발겨야 하는 그런 순간들이 날마다 이어진다.

이런 고민 속에 어느새 나 자신, 내 자아, 내 자신은 한없이 나락으로 추락한다. 나도 모르게 껍데기로 꽁꽁 나를 싸매고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우고 살다보면 우울함이라는 긴 터널의 출구가 점점 멀어져간다.

 

자존감이니 자긍심이니 이런 '자기애'를 연상시키는 단어와 개념들을 다룬 서적들이 홍수처럼 난무하는 걸 보면 나같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셀프혁명>을 이런 시기에 만나게 된 건 행운이다.

 

미국 여성 운동을 이끌어 온 저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건 아니었다. 순전히 우연에 의한 인연으로, 나와 이 책은 만났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너무나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평화로운 마음으로 읽었다.

 

저자 본인의 이야기, 대중이 기억하는 명사들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존재'와 자긍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자기계발서라고만 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다정한 책이다.

 

어린 시절 내가 취급받았던 그 모습 그대로 성인이 된 내가 나를 취급한다는 분석이나 자기 자신이 가치 있는 대접을 받는 영역에 자신을 가두고 그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석은 마치 나에 대한 내용 같아서 내내 마음에 남았다.

 

사실 자긍심이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셀프혁명]이라는 멋진 책 속에서 자긍심을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베풀 수 있는 (해줄 수 있는) 마음'이라고 정리했다.

 

나는 여기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내 손으로 해줄 수 있는 마음이라.....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만인과 만물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는 어느 현자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굳이 페미니즘 때문이 아니라도, 이 책은 분명 소중히 여기며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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