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먹는 심리학 : 인간관계 편 써먹는 심리학 1
포포 프로덕션.하라다 레이지 지음, 최종호 옮김, 박기환 감수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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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 살수록 느끼는 데, 살면서 제일 어려운 건 역시 '관계' 아닐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평생 관계 속에서 지내는 존재이다보니 그 관계를 맺고 운영해 가는게 특별히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도 종종 심각한 고민이 들 정도로 관계가 어려울 때가 있다. 나만 그런가....

 

 나 스스로의 내면에서 나와 또다른 내가 충돌하는 것을 해결하는 것도 참 어려운 문제이긴 한데, 나와 타인이 충돌하는 걸 조율하는 것도 역시 어렵다. 그래서 심리학 책을 두루두루 찾아보기 시작하던 차, 이 책이 걸렸다. [써먹는 심리학]. 보기만 하고, 읽기만 하지 말고 써먹으라는 심리학. 까다롭고 성질급한 상사에게, 도통 속을 알수 없는 능구렁이 동료에게, 천상천하 유아독존 후배에게 써먹으라는 [써먹는 심리학]. 과연 써먹을 만한 심리학이 얼마나 들어있을까?

 



 

 

 

 심리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나 자신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함께 가야 한다는 거였다. 내가 나만 이해하고 있으면 모든 게 내 중심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라, 상대의 마음은, 지금 저 사람의 생각은 어떤걸까 하는 점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관계가 참 어렵다. 나와 상대를 모두 잘 알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어찌보면 '삶은 전쟁'이라는 치열한 문구는 정말 모든 인간사를 관통하는 진리인듯하다. 나를 알고 상대까지 알고 임해야만하는 전쟁 같은게 우리들의 관계니까.

 

 



 

 

 글로만 풀면 어려울수도 있을 그 알쏭오묘한 심리학. 그래서 이 책은 귀엽고 재미있는 만화를 곁들였다. 코알라, 도마뱀, 부끄럼쥐, 캥거루의 캐릭터들은 각자의 특성과 기질을 보여주며 '이런 타입의 사람은 이러하니까~'라고 자연스런 이해를 도와준다. 그래서 크게 어렵거나 대단히 전문적이거나 하는 깊은 심리학 이야기는 들어 있지 않다. 다만, '이 까칠한 부장은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이 눈치없는 거래처 직원의 속내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들때 적용시켜볼만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 볼 만도 하다. 내가 소심하고 조용한 부끄럼쥐인지 아니면 천상천하 유아독존 격의 캥거루타입인지 알아보면서 [써먹는 심리학]이 알려주는 쏠쏠한 생활 심리학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원만한 '관계'에 대한 해법이 보일 법도 하다.



 

 

 

 참참... 그런데 그렇다고 이 책이 무슨 엄청난 심리학 명약이라던가 절대 특효법은 아니다. 어렵고 곤란한 일이 생길 때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들의 의견을 참고하듯이, 이 책 역시 그저 참고가 될 뿐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책 말미에서 저자들도 그랬지만, 심리학은 성공이나 관계, 교제에 대한 특효약이 아니다. 나와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길러줄 뿐이다. 써먹는 심리학의 제목에 '써먹는'이 들어간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듯.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지 않으면 별 쓸모가 없을 테니까.

 

'춤을 글로 배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관계'를 글로 배웠다는 말은 우스운 소리는 아닐거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의 해법을 각종 서적에서 찾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배움이 글에서 시작했다해도 결국 완성하는 건 진정 생활에 쓰여졌을 때 즉, 내 행동으로 구현되었을 때이겠지. 대단하거나 심각한 심리학 지식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써먹는 심리학]이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생활에 바로 적용시켜 볼 수 있는 쉽고 쏠쏠한 심리학. 나와 타입이 너무나 달라서 혹은 유난히 까칠하고 독해서 어려웠던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이라면 알록달록하고 장수도 적어 더욱 가볍고 부담없는 [써먹는 심리학]을 휘리릭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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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서양고전 - 고전속에서 삶의 길을 찾다
김욱동 지음 / 작은씨앗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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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중학교 체육선생님이 제일 자주 하셨던 말이었다. 아마 학창시절을 지나며 저 문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거다. 정치 사회면 기사에서 자주 보는 '악어의 눈물'이라는 표현은 또 어떤가?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꼭 한번씩 언급하는 '시간은 돈'이라는 말 역시 못 들어보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다.


그렇게 익숙하고 친숙한 표현들, 이미 우리의 생각 속에 편안하게 자리잡은 이 표현들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옛날부터 구전으로 전해내려온 것들일까?


한국외대 통번역학과 김욱동 교수가 쓴 [5분 서양 고전]은 위와 같은 관용적 표현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본래의 의미는 어떠했는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책이다. 이미 제목에서 나와 있듯 서양의 고전과 역사에서 유래한 표현들을 다루면서 그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동양의 사상과 고사성어들을 곁들여 풀기도 한다. 또한 현대인들은 이러한 표현들에서 무엇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인지까지 접근한다.





우리는 천년만년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삶을 제대로 파악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p62 _ 만물은 유전한다 중에서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지구촌의 주민으로서 우리 것 못지않게 남의 것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 '쾌도난마'라는 고사성어는 알고 있으면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서양의 관용어 앞에서는 쩔쩔 매는 게 우리" 라고 진단했다. 이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서양 고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동양 고전] 등의 책을 펴내면서 고전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보여준 김욱동 교수는 그래서 [5분 서양 고전]을 펴냈다고 한다. 우리의 것과 남의 것 모두 잘 안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것'을 더욱 폭넓고 깊게 알게 해줄 것이라는 저자의 신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43가지의 관용구에 대한 설명들은 단순히 그 표현의 시류를 찾아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표현이 등장했을 때의 시대 상황, 그 표현을 사용했던 대표적인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와 그 표현들이 낳은 또다른 역사적 사건들 등 고전으로부터 흘러온 경구를 중심으로 한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다룬다. 서양 인문 (문학,역사,철학)의 가지들이 넓고 잔잔하게 달려있어 고전 그 자체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인문 상식을 위해 탄생한 책같은 느낌이다.




[5분 서양 고전]을 읽다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들의 본래 얼굴을 알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 만든 관용구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뿌리가 엄청나게 깊은 서양의 관용구였다거나 어떤 표현들은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의미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소박한 재미를 준다. [5분 서양 고전] 이라는 제목처럼 한 편 한 편 읽어 나가는 시간도 길지 않아서 서양사 혹은 서양 고전들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매 꼭지의 마지막 마다 자리한 영문은 굳이 넣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들이 영문 표현에 친숙해지도록 도와주기 위한 용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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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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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곱번째 내가 죽던 날'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만다가 일곱 번째로 죽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책의 마지막을 덮었다. 분명 뭔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죽음처럼 단호하게 끝나버린 책의 마지막 장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일곱 번을 반복해서 죽음을 맞는 사만다의 마지막에 대해서, 그녀가 그녀의 죽음을 걸고 구해낸 것들에 대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거기서 끝이라는 것에 대해서.

 

 

 



초록색 눈의 발랄한 여고생 사만다는 아주 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 또래 여자아이들은 그녀를 선망하거나 질투했고 또래 남자아이들은 그녀를 좋아했다. 학교는 언제나 우습고 재미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었고 화목하고 다정한 부모님과 명랑하고 귀여운 여동생이 있는 집은 따분했지만 평화로웠다. 찌질한 아이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에 사는 그녀는 늦은 금요일 밤 파티를 다녀오다 난데없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차가 뒤집어지고 온갖 소음과 연기와 고통의 아수라장 한가운데에서 어느 순간, 그녀는 다시 눈을 뜬다. 일어나라고 채근하는 여동생의 손길, 익숙한 풍경과 햇살, 똑같은 금요일 아침. 금요일 밤 12시를 지나 죽었던 그녀는 새로운 금요일 아침에 다시 눈을 뜬다. 그렇게 7번의 금요일을 살게 되는 사만다. 그건 운 좋은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는 저주였고, 운 나쁘게 사고를 당한 그녀에게는 기회였다. 그간의 삶을 책임지라는 저주이자 기회. 그 7번의 금요일을 살면서 사만다는 속삭인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늘 궁금했다. 정말 죽음의 그 순간이 되면 모든 사물이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고 눈 앞에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까?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리는 그런 순간이 올까? 사이코같이 기분 나쁜 느낌을 주던 여자애에게 술을 뿌리고, 술에 잔뜩 취한 남자친구를 내버려두고 파티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사만다 역시 죽음이 그렇게 가까우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잘나가는 여고생의 일상이란 언제나 가볍고 웃기고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니까. 우월감과 자만, 때론 경박하고 다소 거칠게 흘러가던 사만다의 일상은 그녀가 죽음을 맞은 후 거듭 살게 되는 6번의 금요일 동안 180도로 바뀌게 된다.

 

 



또 다시 시작되는 금요일(더 자세히는 금요일 밤의 예정된 죽음) 때문에 사만다는 처음엔 엄청난 혼란과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파티에 가지않고 교통사고를 피해도 예정된 끝은 어김없이 그녀를 또 다른 금요일 아침으로 데려다 놓았고, 그녀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예정된 끝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과격하게 굴며 방황한다. 그녀 자신의 죽음을 돌릴 방법을 구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죽음을 인정했을 때에야 그녀 자신이 아닌, 그녀가 살던 세상과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린지와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인 동시에 서로를 싫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안나 카툴로 같은 싸구려 창녀와 수학 수업 한 번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슴 깊은 곳에서는 안나와 똑같은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그럴지 모르지.

점심시간 한 번만 잘 못 보내면 혼자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신세가 될지도,

누군가에 관해 진실을 안다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고개를 숙이고 누구와 부딪치지 않기만을 바라며 서로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299

 



사람을 완전히 잘못 판단하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생각하며 나는 몸을 떨었다.

사람의 아주 작은 일부만 보고 그걸 전체라고 착각하는 것, 원인을 보고 그게 결과라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

p 403

 

 



사만다는 하나뿐인 귀여운 여동생에게 가장 아끼는 목걸이를 주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장소에 동생을 데리고 간다. 그간 다소 서먹했던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아빠가 엄마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풍경을 돌아보면서 보길 잘했다며 기뻐한다. 찌질하다고 생각했던 남자애는 알고 보니 진심으로 멋진 훈남이었고 우습게 여겼던 학교 선생님들과 동급생 여자아이들은 저마다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와 사정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음을, 잘나가는 자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모습임을 사만다는 보게 된다. 친구들의 진심, 약하고 상처받은 그래서 더 소중하고 예쁜 그들의 진짜 얼굴을 보고 나서야 사만다는 깨닫는다. 이 저주이자 기회인 금요일을 어떻게 살아야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금요일이 끝나게 되는지.

 

 

 





사만다가 사는 7번의 금요일은 어느 날은 일탈, 어느 날은 추억 만들기, 또 어느 날은 새 친구 사귀기처럼 일상적으로 흐른다. 만약 사만다가 7번을 거듭해서 금요일을 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읽는다면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의 이야기 같다. 이 일상성이 사만다의 결심과 만나 뭉글뭉글 슬픔과 애틋함으로 끓어오르는 것은 마지막, 7번째 날이다. 칸트와 마지막 키스를 하고,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줄리엣의 뒤에서 몸을 던지는 사만다를 위해 흘리는 눈물은 그래서 막상 책을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쉽게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눈물은 불시에 찾아온다. 책을 덮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울리는 알람 소리와 익숙한 방의 풍경, 천장에 비치는 햇살과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엄마의 기척을 느낄 때 나는 갑자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죽음은 고통과 소음의 아우성이라고 이야기했지만 7번의 반복 끝에 죽음은 온기와 빛이 가득한 것이라고 이야기한 사만다가 생각나서.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로 나누어진 세상이라고 시니컬하게 얘기했었지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잘 몰랐던 것 뿐'이라며 먼저 손을 내밀었던 사만다의 절박함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생과 사의 기묘한 간극에서 사랑과 이해, 희생과 배려를 배우고 웃으며 떠난 그녀가 나를 눈물나게 했다.

 

 



오늘이 전부라고 혹은 나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사만다를 만나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조잘조잘 소녀의 감성으로 세상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형체가 사라져도 여전히 남아있는 어떤 소중한 것들에 대해 꼭 알려주고 싶어했던 사만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고 싶다. 사만다는 확실한 죽음을 예정해 놓고서야 그 모든 것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확실한 끝을 보지 않고서도 그녀가 보았던 것을 함께 볼 수 있으니까. 저주이자 기회였던 사만다의 7번의 죽음은 우리에겐 그녀가 전하는 축복이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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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조현경 지음 / 예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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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멋진 남자, 신분 상승, 그리고 부귀영화...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했을까하는 의문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복은 벼락 맞듯이 터지는 로또가 아니라는 것을 깨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여자들은 신데렐라의 길이 과연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나 이제는 신데렐라의 행복이 아닌 신데렐라의 성공에 의문을 던져야 하는 때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신데렐라는 과연 성공한 여성일까. 그림같이 잘생긴 남자와 사회최상위계급, 평생 써도 다 못쓸 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성공(成功)은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라는 뜻이란다.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이루는 게 성공이라는 얘긴데 그렇다면 신데렐라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계모와 언니들에 대한 복수? 즐겁고 편하게 먹고 사는 것?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정과 주변의 선망? 글쎄, 내가 신데렐라하고 별로 친하진 않지만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과 그녀의 성정을 가늠해 볼 때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다정하고 살가운 아버지와 먹던 조촐한 저녁식사, 또래들처럼 평범한 학창시절의 추억, 화려하고 사치스럽지는 않아도 포근하고 아늑하게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집과 가족. 소박하고 담백한 행복이야말로 그녀가 진정 바라던 것이지 않을까.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가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가 없는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왕자의 곁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 축하주로 마시는 샴페인도 어떤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일상이 되어버린 샴페인에서도 과연 그 상큼함과 짜릿함이 여전할까?

 샴페인이 아니면 참을 수 없고, 샴페인의 즐거움은 이미 잃어버린 상태… 그건 결코 행복이 아닐 것이다.        

p274 작가의 말 중에서

 

 

  특별함의 대명사인 샴페인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무지막지하게 특별한 생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오해하는 것이 이것 아닌가. 부귀영화와 권력이 곧 성공이라는 것. 물론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사회적인 권력을 갖게 되는 게 삶의 목적이라면 그걸 이루었을 때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라면 그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행복해야 한다. <샴페인>의 주인공들 역시 돈과 명예,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기를 갈망하며 인생의 노곤한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그러나 그 정점에 선 순간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일상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 불안과 혼란은 그들이 여자이기에 더욱 위태롭고 치명적이다.

 

 



“굳이 구서진 남편 자리는 중요한 게 아니었거든. 그 대신 로열그룹 사위 자리는 중요했던거야!”

“그게 왜 그렇게 나쁜데? 세상 남자들한테 다 물어봐.

당신은 똑똑하고 매력적이었고 더구나 배경도 화려했어.

당신을 타겟으로 삼은 게 왜 문제가 되는 건데?

안 덤비는 놈들이 멍청하고 후진 거지, 내가 왜 이렇게 나쁜 놈이 돼야 해?”

서진의 가슴에 물기가 번져나간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척했어.”

“사랑했어.”

“아니, 당신은 내 배경을 사랑했잖아.”

“당신의 배경까지가 다 당신이라는 사람이야.”

“나는 내가 가진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원했어요.”

p 191_이별



 

 

작가 조현경은 여자의 눈으로 여자의 약점과 맹점을 가차 없이 그려냈다. <샴페인>의 3 주인공, 서진과 희경, 혜리를 통해 우리들, 여자가 딸로서 아내로서 어떻게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 영악함과 우둔함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여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고민과 인생의 고비들, 그때마다 여자들이 성공을 위해 혹은 성공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를 그린 <샴페인>은 마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달려간다. 그리고 자주 뜨끔하게 찔러온다. 3명의 주인공 속에 내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면 나의 속물스런 속내를 들켜버린 것처럼 입술을 깨물게 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저자가 제자들에게 잔소리를 해대고 있다며 작가 소개를 했는데 그 잔소리는 제자들에게만 향하지 않는 것 같다. 저자는, 스포트라이트를 여자들의 '성공'이 아닌 성공한 '여자'에 맞추고는 여자임을 자각하며 그리고 망각하며 사는 모든 여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성공을 향해가는 혹은 성공한 당신, 행복한가?



 

 





 

그동안 살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타인의 시선이었다.

가장 원하는 것은 행복인데도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자신의 행복을 팽개친 것이다.

 그 아이러니를 깨닫는 순간, 홀연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p247 _ 살인자



 

 

<샴페인>에는, 드라마 기획과 제작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저자의 연륜이 대사마다 장면마다 묵직하게 실려 있다. <샴페인>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성공을 위한 분투기가 얄팍하지 않은 이유도 저자가 직접 부딪혔을 그 녹록치 않은 현장들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고 거칠게 살아야 하는 '성공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왠만한 여성 자기계발서보다 현실적이고 실체적이다. 다른 자기계발서에서 느끼지 못했던 공감이 주인공들의 대사에 절절하게 실린다.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보인다는 그녀들의 마지막 이야기도 그래서 진부한 듯 새롭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게 '성공'인데도 우리들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오해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시선을 갈구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 '행복'에 닿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다.

 



어쩌면 <샴페인>의 뒷이야기, 그러니까 세 여자의 이후의 인생은 줄곧 '그들은 내내 돈 한 푼 없이 지지리 궁상으로 고생하며 살다 늙어 병들게 되었다'고 쓰여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수필 <행복하게 사는 법>에서 박완서가 이야기했던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넉넉했던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구절을 떠올려보면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서 늙고 병들었을 때조차도 함께 있어줄 동반자가 있다면, 내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진짜 성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의 끝에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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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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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집을 나서려고 문을 여는데 문 앞에 남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처음보는 너는 누구냐 '싶었는데다 문을 세게 열어젖혔으면 다치기라도 했을터라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종이로 포장된 소포 하나를 들이밀었다.

'택배요.'

 소포가 자주 오긴 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집으로 올 택배가 없었는데. 어디서 보낸 거지?

내가 더듬더듬 소포를 건네받자마자 그는 곧장 몸을 돌려 계단 밖으로 사라졌다.  보낸이 주소가 낯설어 나는 잠시 소포를 든채로 현관에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더라. 머리에서는 영 기억이 나지 않는데 손으로 만져지는 느낌이 책이다. 책이라니. 누가 보냈건 어차피 나한테 온건데 내 책이다. 이미 손톱은 망설임없이 날을 세우고는 종이 포장지를 푹 찔러 포장지를 벗겨내고 있었다.

     

      [환상도서관]

      - 미치도록 가지고 싶은, 죽도록 없애고 싶은 책, 책, 책.....

 

 뭐야, 이 지극히 책벌레스러운 제목은. 표지마저도 별로다. 이런 고루한 색은 90년대 이후로는 아예 쓰질 말아야되는데 왜 출판사들은 그걸 모르는 걸까. 나도 모르게 콧방귀를 흥, 뀌다가 시계를 보고는 황급히 문 밖으로 달려나왔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도서관이 일찍 문을 닫는다. 아까 그대로 나갔으면 지금쯤 거의 도서관에 가까워졌을텐데 뭐야. 예약해두었던 책을 한달만에 빌릴 수 있게 된 날이라 더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지.

 

 마침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는 순간과 내가 정류장으로 정신없이 뛰어내려간 순간이 맞아떨어졌다. 가까스로 버스를 탄 나는 숨을 고르며 빈자리에 앉았다. 이십분즈음만 가면 도서관이니 다행이 늦지는 않겠다. 마음이 조금 느긋해지니 엉겁결해 그대로 손에 쥐고 나온 [환상도서관]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버스타고 가는 동안 네가 내 이동도서관이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작가 소개나 역자의 말 등은 읽지 않고 건너 뛰었다. 대체 이 오타쿠스러운 제목 속에 무슨 이야기를 넣어 놓은 건지 그게 더 궁금했다. 목차만 대충 훑고 바로 이야기 첫페이지부터 읽어나갔다.

 

 '이메일은 완벽하지 않다.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서는 아마 우리가 원치 않는 메시지를......'

 





 

 

 누군가 부저를 눌렀다. 안내방송이 '**도서관입니다'라고 하는 걸 간신히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 아저씨의 욕지기 비슷한 불평을 들으면서 허둥지둥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책 속에 얼굴을 묻었다. 주춤주춤 걷다보니 도서관이었다. 주말인데다 닫을 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사람이 없나보다. 백지처럼 고요한 도서관 건물로 들어가 아무데나 앉은 나는, 활자가 넘실대는 [환상도서관]의 페이지를 계속 넘겼다.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니었는데도 페이지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1/3만, 반까지만, 아니 이 다음 꼭지까지만...... 뭐 어차피 거의 다 읽었는데 그냥 다 읽자.

 

  '철컥'

 

 흠칫하고 고개를 들었다. 건너편의 까만색 대리석 벽이 입을 약간 벌린 내 얼빠진 표정을 따라하는게 보였다. 도서관 내부의 불은 다 꺼지고 실내에 남은 건 푸르스름한 비상구 표시등과 바깥의 가로등이 비추는 어르슴한 빛 뿐이었다. 정적.......... 이상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맞다, 내가 예약했던 책. 잠깐만, 도서관이 지금 문을 닫은거지? 나가는 문도 다 잠긴건가? 어떡해, 나 어떻게 나가지? 당황한 나는 귀를 긁적이며 엉거주춤 짐을 챙기고 일어났다. 아, 진짜 이 이상한 책때문에 오늘 저녁 일진이 이상하네.  나는 가방을 들쳐매다 손에 들고 있던 [환상도서관]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바닥으로 몸을 눕힌 [환상도서관]이 작은 몸을 활짝 젖히고 그 넘실대는 활자로 가득한 속지를 내보였다. 휘리릭.... 바람도 없는데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래 맞아, 아까 거기까지 읽었지.

 

 선채로 [환상도서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잠시 인터미션을 가졌던 머릿속의 무대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나는 어깨에 맸던 가방을 다시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그냥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차피 몇 페이지 안남았는데, 뭐. 이것만 다 읽고. 거의 다 끝나가니까.... 나는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뒷표지에 가까워 질수록 계속.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니었는데도 페이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이것만 다 읽으면 끝날 것 같은데....... 거의 다 읽어가는 것 같은데......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세르비아의 소설가 조란 지브코비치는 이 책 <환상도서관> (영제; The library)로 2003년 세계환상문학대상을 받았다. '세르비아'라는 정치적 한계 때문에 세계의 주목이 조금 늦긴 했지만, 조란 지브코비치는 16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중견 작가이며 유럽권과 영미권에 걸쳐 다양한 문학상을 석권한 대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새로운 보르헤스라는 찬사를 들으며 라틴문학의 대표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그의 글은 신기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씁쓸하다.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독일군에게 잡혀가는 처절한 상황을 아들에게 코미디로 인식하게끔 연출했던 아버지의 몸짓을 보는것처럼 재미와 함께 어딘가 간절하고 서글픈 데가 있다.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엮인 6개의 단편이 모여있는 <환상도서관>은 조란 지브코비치의 노련하고 기발한 매력이 흠뻑 느껴지는 작품이다. 지적이고 기발한, 유쾌하고 명석한 작가의 글은 이렇게도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멋진 책이다. 무엇보다 '책'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과 애증에 대해 여러가지 시선으로 그려내 읽는 내내 공감과 동경을 멈출 수가 없다. 이 공감과 동경은 책 속의 주인공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고 작가를 향한 것이기도 한데, 나는 단연코 확신한다. 당신도 책벌레라고? <환상도서관>을 읽게 된다면 나와 같은 공감과 동경 혹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책에서 발견할 것이다.

 




 

 

 

 가상 도서관, 집안 도서관, 야간 도서관, 지옥 도서관, 초소형 도서관, 위대한 도서관...... 모든 이야기마다 '책'을 사랑하는 열렬한 독자가 가지고 있는 그리고 '책'을 쓰는 곤핍한 작가가 가지고 있는 로망들이 그득그득 실려있다. 죄인들이 영원토록 책을 읽어야 한다는 지옥도서관은 나에겐 차라리 천국같고 매번 책장을 열때마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초소형 도서관은 작가라면 모두 한번쯤 꿈에서 찾아 헤매었을 법한 엄청난 아이템이다. 세상에, 조란 지브코비치는 나에게 이야기만 책에 담은 게 아니라 그를 움직이게 하는 영감과 동기도 함께 책 속에 넣어둔 모양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달궈진 손가락이 제멋대로 키보드를 움직이니까. 그래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혹시 당신도 책벌레인가? 주말에 읽을 책이 없으면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도서관 사서가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도서관 애용자인가? 엄청난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좀비처럼 소재를 갈구하며 이 책 저 책을 뒤지는 빈곤한 작가인가? 어느 쪽이든 당신이 책벌레라면 이미 환상도서관에 당신의 자리가 있다. 넘실대는 활자에 몸을 싣고 환상도서관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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