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워라밸 - 일과 삶의 적정 온도를 찾는 법
안성민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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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을 실천해보자


이 책은 워라밸에 대한 설명과 적용 방법에 관한 책이다. 2017년 키워드 중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가 있었다면 2018년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염려를 하거나 응원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염려하는 쪽의 의견은 청년의 시대에 자신들이 그러했듯이 회사에 충성하고 열심히 돈을 벌고 모으면서 가족과 경제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하고 그 후 풍요로운 노후를 준비 하라고 이야기 한다. 한편 응원하는 쪽의 목소리는 자신들이 회사에 충성을 하였지만 명예퇴직을 비롯한 각종 어려움에 처해있고 현재 청년들의 고용불안을 이해 하기에 균형 있게 삶의 질을 높이면서 살아가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양쪽 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청년들 중 대기업에 입사하기란 상위 10%안에 들어가야 하는 바늘 구멍이고 공무원과 공기업을 비롯한 안정적인 직장에 경쟁률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관문을 통과해서 들어간 청년들은 과연 만족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무슨 대답이 돌아오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청년들 중 꽤 많은 수가 기업 문화를 견디지 못해서 퇴사를 결심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나약하다고 말을 하지만 청년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이 그 동안 수고하고 노력한 대가에 비해 너무나 참혹한 현실을 경험하였기에 과감히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미래를 포기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담 이러한 질문이 든다. 과연 일하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일하는가? 현재 근로 기준법으로는 주당 40시간 주 5일을 기준으로 하루 8시간을 근무하게 명시 되어 있다. 즉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정시 퇴근을 하는 회사는 극소수에 해당한다. 직장인들의 영원한 로망이 ‘칼퇴’라는 자조적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하다.


칼퇴라는 말은 영어는 물론 라틴어, 중국어 등 그 어떤 언어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퇴근이라는 단어 자체가 군더더기 없이 너무나도 명확한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대기업과 공장을 비롯해서 수요일을 가족이 있는 날? 야근 없는 날? 칼퇴 없는 날? 로 지정해서 일부러 정시 퇴근을 시켜주는 모습은 유럽인들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일 것이다. 


유교문화와 군대문화가 섞여 있는 한국에서는 상명하복을 바탕으로 상사가 출근하기 전에 출근을 해야 하고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퇴근하기 어려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6시 퇴근이지만 7시에 퇴근하면서도 눈치를 보면서 죄 지은 사람처럼 회사 밖을 나서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워라밸을 지키자는 것은 직장과 가정 중에 뭐가 더 소중한지 하나만 고르란 이야기가 아니다. 일과 삶, 둘 다 원만하게 유지해야 한다. 두 항목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OECD 노동시간 2위(2124시간)를 기록 중이다. 1위는 멕시코이다. OECD 평균 노동시간이 1770시간이니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삶의 질은 업무시간에 반비례해 점점 낮아지고 있다. 2017년 세계행복지수에서 조사국가 155개국 중 56위를 차지 했다. GDP를 비롯한 각종 경제 지표에서는 상위에 랭크가 되지만 행복지수를 비롯한 국민들 개개인의 삶을 나타내는 지표는 아직도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은 평균 휴가 일수 적기로 세계 1위이고 아동과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 최하위이다. 또한 공부시간은 단연 1위이다. 그리고 일 평균 수면 시간은 OECD 조사 대상 19개국 2016년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이고 OECD평균 8시간 22분에 비하면 턱없이 잠을 적게 자고 있는 실정이다. 질 좋은 잠은 신체의 통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면 우울감과 짜증, 무력감 등과 같은 부정적인 심리적 상태가 지속되며 불안정해지고,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신체 반응을 일으킨다.


학창시절에 장래희망 칸에 00회사의 부장, 00기업의 과장이라고 적고 바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정처 없이 회사와 집을 떠돌며 기계처럼 사는 모습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 꿈꿨던 장래희망이 희미해졌다 할지라도,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잘 살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삶 전체를 흔들어선 안 된다.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꼰대가 되는 것은 개인의 자존감과도 높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일부러 타인에게 강압적이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이고, 혹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타인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짐작으로 타인, 특히 그 중에서도 약자나 어린 사람에게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24시간 중 생활시간(기본적인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ex) 수면, 식사, 배설)을 제외한 가용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생활시간은 일주일(169시간)에 약 97시간, 일주일에 71시간의 가용시간이 생긴다. 가용시간 중 최소 40시간(근로기준 법상)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30시간이 남지만 이 시간은 출퇴근, 회식 등으로 제하고 나면 보통 20시간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지속하는 수 많은 이들은 절대적인 가용시간 부족으로 인해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없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워라밸을 지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 한다. 월요일 날 발표할 자료가 있지만 금요일 날 야근 후 회식을 하자는 부장의 말을 거절 할 수 없다. 발표는 발표이고 당장 회식을 해야만 인사에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주말에 회사에서 열리는 각종 모임에 불참을 하면 불상사를 당하기 쉽기에 자신의 휴식을 반납하는 것을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회사에 충성하는 모습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미루는 습관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시급한 일로 인해 중요한 일들이 점점 우선 순위에서 멀어지면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예스맨’은 워라밸의 가장 큰 적이다. 회사에서 늘 긍정적이고 활발한 사람은 결국은 너무나 과도한 일을 떠 맡고 그로 인해 지치게 될 수 밖에 없다. 즉, 적절한 거절과 회복탄력성을 갖춰야 한다. 예스맨은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대방에게 거절을 하는 것을 미리 연습을 하거나 자신만의 규칙 정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거절을 하지 않았을 경우 일을 통해 생겨나는 시간을 비용으로 전환하거나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 활용하는 것도 좋다. 상사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못 해요’가 아니라 ‘안 해요’라고 답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는 선에서 거절을 할 수 있다. 


디지털 디톡스(Detox)을 실행해야 한다. 현대인의 디지털 중독을 해소하고 올바른 전자기기 활용을 돕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 운동’ 이다. 디지털기기의 편리성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지 점검을 하고 강제적으로나마 디지털 기기를 멀리 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여 균형을 잡아야 한다.


뇌에게 휴식을 줘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첫 째, 가사 없는 음악 듣기, 둘 째, 만만한 독서하기가 있다. 뇌는 쉬지 않고 일을 하기에 이러한 방법으로 적절한 휴식을 줘야 한다. 또한 일을 할 때를 비롯해 몰입을 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땐 첫 째, 기술과 도전의 조합이 전제되어야 한다.

둘 째, 정신적 에너지를 관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몰입을 할 수 있다. 


행동유도성(Affordance)이란 어떤 형태나 이미지, 혹은 속성이 특정한 행위를 유도하는 힘 또는 성질을 말한다. 어떤 물건과 사람 사이에서 특정한 경험, 또는 관계에 따라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연계성을 의미한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몸의 움직임만 바꾸면 되는 게 아니라 뇌의 반응까지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습관을 바꿀 때 몸의 피로보다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크게 다가온다.


한국 기업에서 볼 수 있는 4가지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이 워라밸을 망치는 주요 원인인 것을 기억하고 자신이 이 법칙에 해당하는지 살펴 보는 것도 중요하다.

①파레토 법칙(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

②파킨슨 법칙(일이나 조직의 규모는 필요에 의해서 또는 고차원적인 분석과 조직적 합의를 거쳐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이유’로 증가하는 성향)

③피터 법칙(조직에서 모든 직원은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

④딜버트의 법칙(무능력하고 회사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직원이 도리어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직원보다 조직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 책에서 몇 번이나 반복 강조 되었던 것은 일을 잘 그리고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남들이 인정하는 수준이 되었을 때 워라밸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이 하는 목적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이고 돈을 벌기 위함이기에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기에 저자는 지속적으로 일을 충분히 잘 하고 나서 그 이외의 시간을 확보하고 사람들에게 도움과 요청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제는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그렇기에 더욱더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직장을 등한시 여길 수 없지만 직장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을 요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럴 때 현명하지만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워라밸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망가져 있거나 워라밸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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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길
최준영 지음 / 푸른영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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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걸어가자


이 책은 저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들을 묶은 것이다. ‘동사의 삶’에서 삶의 근본을 이야기 했다면 이 책은 더욱더 영역을 확장한 느낌이지만 크게 어렵게 구성 된 책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인문학 강의를 하지만 대학을 마치지도 학위도 없기에 전문분야는 삶, ‘사는 이야기’이라고 하며 전공은 가난이고 소외이며, 좌절과 절망에 몸서리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얘기하기에 저자를 가르쳐 실천인문학이라고 불리는 듯 하다. 그렇기에 이 글들은 하나하나가 어려운 용어나 난해한 구절도 되어 있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읽고 크게 감동하고 많이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구성 되어 있다.


저자는 뚜벅뚜벅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낀 감정들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풀어서 쓰고 있다. 명색이 베스트셀러인 최영미 시인이 생활보조금 받는다는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작가로만 살아가는 것이 척박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저자는 작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몰랐던 부분을 지적함과 동시에 자신의 민낯을 과감히 보여준다. 작가들의 평균 연봉 214만원이다. 월이 아닌 연봉이 214만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저자는 본인이 10년동안 6권의 책을 출판하면서 인세수입을 다 합쳐도 1500만원~2000만원사이 임을 밝힌다. 즉, 작가가 책을 팔아서만 생활이 불가능 하다. 그렇기에 수 많은 작가들은 글 쓰는 일인 본업을 유지 하기 위해 부업을 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강의와 강사가 있다.


저자는 연 200여 회 강의를 하지만 실제로는 큰 돈을 벌지 못한다. 왜냐하면 예산 없다 하면 강사비를 반납하고 강좌 중단해야 한다 하면 강사비 없이 강의 하고 예산 없어 교재(책) 못 산다 하면 빚내서 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출판계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고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여건이지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따라 말 없이 걷는 소처럼 저자는 묵묵히 현실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후배나 제자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강사비에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도움은커녕 지지발언 한마디 하지 않는 교수가 밖에 나가서는 진보인사로 불리며 ‘노동’을 부르짖는 경우에 대해선 일갈을 가한다.


2017년 10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장애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집단으로 무릎을 꿇은 사건과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을 비교한다. 과연 누가 무릎을 꿇게 했고 이러한 행위를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의 공감과 위로가 심금을 울린다.


각종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그 사건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양극단으로 갈려서 서로 물고 뜯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럴 때 저자는 더 폭 넓은 관점으로 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 대표적으로 서민 교수 사건이 있다. 진보적인 인사라고 평가 받던 서민 교수는 문빠가 미쳤다라는 글을 통해 진보진영에게 큰 충격을 줌과 동시에 이전에 있던 일까지 꺼내서 호된 공격을 받았다. 저자는 누구나 흠결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흠결은 하나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이전에 썼던 글과 말을 통해 그 사람의 현재를 매도하는 행위는 그만 둬야 한다고 한다. 이낙연 총리가 전남지사를 역임하고 현재 국무총리를 지내고 있지만 예전에 전두환을 찬양했던 사실에 대한 언급을 같이 했다. 


이 밖에 세월호 사건, 부산여중생 폭행사건, 4차 산업 혁명, 촛불 집회 등에 대해 일반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보는 글들을 있어서 흥미롭고 다채로웠다. 그리고 자신도 페이스북에 글을 매일 쓰는 입장이지만 누군가에서 지지를 받고 관심을 받고 싶은 이들에게 페이스북으로 소통 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결국 먼저 찾아가서 관심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저자의 글들에는 송곳 같거나 혹은 가슴을 크게 울리게 하는 문장들이 상당수 있다. 수 많은 책들이 인용이 되지만 거기에 살을 보태거나 경험이 더해지니 울림이 클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몇몇 말들이 기억에 남는다.


‘죽음이란 모퉁이를 돌아 갑자기 들이닥치는 기차 같은 것’, ‘삶이란 무지를 해쳐나가는 끝없는 배움의 과정이고 실수를 되풀이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마음 공부, 인간 공부를 해야 한다.’ ‘견디다’는 바깥에서 온 것에 대한 인내를 뜻하는 말, ‘참다’는 안에서 생겨난 것에 대한 인내를 뜻하는 말’, ‘진정한 배려는 무조건적인 칭찬이 아니라 ‘인정’과 ‘지지’, ‘고통은 피하지 말고 마주할 것, 맹목적인 긍정은 경계할 것, 진정한 배려는 무조건적인 칭찬이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 ‘마당은 담론의 장’, ‘행운과 불행은 한 몸이다.’ 


이러한 문장들은 각각의 글들에서 따온 것들인데 이 것만 읽어도 저자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2017년 성인 중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40%를 넘었다. 즉, 사람들은 점점 책을 멀리하고 다른 매체에 관심을 쏟고 있는 이 때에 저자는 본인도 다독을 하지만 최악의 독자란 책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읽은 척, 아는 체 하기에 바쁜 사람이라 하면서 하나의 정보를 알기 위해 다양하고 폭넓게 읽는 것, 그게 바로 최선의 독서임을 밝힌다. 


이 책에 나온 수 많은 책들의 인용문을 보고 있자면 저자의 독서의 끝이 궁금해진다. 저자는 어느 날 농부의 글을 읽다가 생텍쥐페리와 신영복의 글까지 이어진다. 이것을 통해 생각이 깊어지면 서로 닮기 마련이라는 진리를 깨닫는다. 곧, 깊은 생각은 한곳에 모이는 것이다. 자연과 대지의 생명력, 인간의 사랑이 깊어지면 그것은 종내 하나로 연결된다. 농부도 결국은 위대한 작가와 같은 반열의 생각을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인생이라는 숲을 제대로 가꾸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첫 번째는 기본 생활을 위한 일 혹은 직업이라는 나무

두 번째는 생활을 위한 일 외에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투자로서의 나무

세 번째는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네트워크라는 나무


더 많이 움켜주려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더 풍족함을 누리려고 발버둥 쳐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이 때에 저자의 삶과 글은 우리에게 그것만이 진정한 답, 삶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비록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수 많은 이들과 책을 읽고 같이 교감하고 공유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인위적이거나 도시적인 냄새가 아닌 시골의 정겨운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듯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철 없는 아들을 자처하는 저자의 새로운 글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 책은 잠시 숨을 고르고 타인의 삶에 귀를 기울여서 큰 힘을 얻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마지막으로 최준영의 내 인생의 책 5권

①헤르만 헤세 <데미안>

②조영래 <전태일 평전>

③김진숙 <소금꽃 나무>

④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⑤존 윌리엄스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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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과학자를 위한 반도체 이야기 어린 과학자를 위한 시리즈 3
박열음 지음, 홍성지 그림 / 봄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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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 대해 알아보자


이 책은 반도체에 역사와 활용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반도체(semiconductor, 半導體)라는 건 도체와 부도체가 반씩 섞여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의 활용은 현재 너무나 많은 곳에 사용되고 있다. 단순히 컴퓨터, 스마트폰만 떠올리기 쉽지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의 모든 가전 제품을 포함한 교통 카드를 비롯한 LED, 온도계, 자동차 에어백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반도체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 책에 나와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초등학생이 이해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구성 되어 있지만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기에 각각 단어의 해설을 포함하여서 읽는데 무리가 없이 구성되어 있다. 특히 어른들도 명확한 개념이 잡혀있지 않은 용어들도 상당 부분 포함 되어 있다. 그렇기에 전문적인 용어들을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같이 설명할 수도 있고 아이 혼자서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진공, 전기, 도체, 부도체, 전자, 자유전자, 규소(실리콘), 트랜지스터, 전파, 교류 전기, 불순물 반도체, 단결정, 웨이퍼, 플라즈마, 디지털 신호, 논리 회로, 빛의 삼원색(붉은 빛, 초록 빛, 파란 빛), 수은, 지동설, 관성의 법칙, 가속도, 가이거 계수기, 전자기파, 태양풍, 지구의 자기장, 사물 인터넷, 빛의 굴절, 양자 역학, 중첩, 단백질, 생체 반도체, 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등 다양한 전문 용어가 책에 등장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니악’ 이 최초의 컴퓨터라고 인식 되었지만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를 만든 사람들이 특허 소성을 통해 최초의 컴퓨터로 인정 받게 된다. 최초의 컴퓨터는 진공관을 이용해서 사용했는데 진공관은 사용하기 불편했기에 시간이 지나자 훨씬 쓰기 편하고 성능이 좋은 대체품이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반도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점점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어 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단순하다.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으면 된다. 하지만 트랜지스터를 무작정 많이 넣으면 진공관 컴퓨터처럼 크기가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트랜지스터도 작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하면서 직접 회로를 계발 하게 되었고 회로의 성능은 점점 좋아지고 빨라지게 되었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반도체 몇 종류를 딱 붙여 놓으면 신기하게 전기가 흐른다. 트랜지스터도 이런 원리로 만들어졌다. 반도체로 빛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걸 LED라고 한다.


반도체 구분하는 법은 반도체는 규소처럼 도체와 부도체의 사이에 있는 물질이고 트랜지스터는 반도체를 이용해 만든 발명품이고 반도체 칩(IC)은 트랜지스터를 개선해 만든 새로운 발명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부분에 사용되는 반도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이 책에서 예시를보여 준다. 일단 집에 있던 자동 문은 잠기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 반도체가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도 작동하지 않고 병원은 멈춰서 사람들은 응급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신호등은 대부분 LED로 만들어져 있어서 신호등도 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EMP(Electromagnetic Pulse effect)라는 핵폭발에 의하여 생기는 전자기 충격파가 가장 무서운 무기로 대두된 현실을 보여준다. 마치 스타크레프트라는 게임에서 배슬이라는 비행체가 발생하는 무기와 흡사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반도체를 전부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간략하게 반도체를 이해하고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며 미래에는 어디까지 발전할지 알 수 있다. 책에서 언급한 대로 뇌에 반도체를 심게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인체의 어느 부위에 결합을 하는 날은 멀지 않아 보이는 듯 하다. 이제는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 반도체에 대해 알고 싶은 아이와 부모가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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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 - 의심 많은 사람을 위한 생애 첫 번째 사회학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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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특강


이 책은 사회학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다 자라면서 자신이 꿈꾸고 생각한 것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끼고 점차 타협을 하면서 살아간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특출 난 특별한 사람에 대해서 못 견디는 분위기가 더 심하기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살아가기를 강요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듯 하다.


이 책은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을 하는 책을 뿐 비난을 하는 책이 아니다. 일단 비판과 비난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비판(批判-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비난(非難-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이다.


사회, 역사, 사실, 단어, 수치 등을 통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고 통념적으로 사실이라고 믿어 왔던 수 많은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지적해준다. 이 책에서 나온 대표적인 예로 커피를 들었다. 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많이 유통되는 물자는 바로 커피이다. 커피의 역사를 이야기 하려면 아프리카 흑인 노예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그들을 향한 유럽인들의 무차별한 폭행과 갈취로 인해서 커피와 사탕 수수 산업은 번창 하였다. 이로 인해 수 많은 흑인들은 맞아 죽기도 하고 이동 중에 죽는 일이 다반사일 수 밖에 없다.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은 흑인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을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도 노예제도를 실행하고 있는 나라는 없지만 그들 나라 국민들 중 상당수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다. 흑인들은 게으르고 무식하기에 가난하게 살아가는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그렇게 조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과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여전히 결코 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생활하지 못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세계를 시끄럽게 하자 한 식당에서 ‘아프리카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서슴없이 붙였다.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인을 채용할 때 ‘백인’만 가능하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나라도 역시 한국이다. 또한 학원 관계자들에게 아이들이 흑인 교사를 무서워한다고 압박을 가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이다. 


한국에서 유명한 포적정과 석굴암을 가지고 일본의 식민 사관을 이야기 하는 부분은 흥미롭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하던 시절 자신들의 치적을 쌓고 한국을 무시하기 위해서 과장하고 축소하는 방법을 통해서 포석정을 마치 대단한 것으로 만들어 놓고 석굴암을 발견한 것을 가지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모든 것을 합리화한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순신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남다르다. 이러한 사랑은 단순히 이순신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이라는점 때문이 아님을 지적한다. 이순신 장군을 이용한 박정희식 ‘프로파간다’ 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박정희는 군사 쿠테타를 통한 정권을 잡고 헌법을 유린하면서 독재를 감행 하였지만 그때마다 이순신 장군을 볼모로 잡고 합리화를 한다. 현재 나라가 어렵다->역경을 헤쳐 나가야 한다->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마치 독재가 없었으면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다 는 논리다. 이 논리는 일본의 식민 사관과 닮았다. 식민 지배를 하지 않았다면 너희 조선은 발전하지 못했다 라는 논리와 닮아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몇 년전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정된 문창극 지명자의 발언이 떠올랐다. 한 교회 집회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를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는 망언을 통해 결국은 국무총리에 낙마했는데 이것은 비단 개인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사회가 한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때문이다.


2000년대 방영되었고 큰 인기를 끌었던 ‘뉴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이 있었다. 그 전에는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시트콤도 있었다. 이 시트콤은 불과 20년도 전에 방영되었지만 지금도 큰 사랑을 받고 많은 이들이 회자하고 재방송을 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때에는 불편한 것이 없었는데 다시 보면 불편한 장면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남녀가 한 방에 같이 앉아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오토바이를 운전하면서 헬멧이나, 안전벨트를 하지 않는 모습, 술을 많이 마시고 주사를 부리고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모습은 지금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모습이다.


20년전 담배와 지금의 담배는 똑같이 몸에 유해 하다.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의 변화가 있는 것뿐이다. 현실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흡연자들의 숫자도 감소 하고 있다. 비슷한 예로 간통죄를 들 수 있다. 2015년 간통죄는 폐지 되었다. 국가가 개인의 성생활을 간섭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하지만 2001년 1(위헌):8(합헌) 2008년 5:4 2015년 7:2 으로 불과 14년만에 전 국민의 인식의 수준이 바뀐 것이다. 의식이 흐름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의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보수와 진보라는 타이틀을 굳이 갖다 붙이지 않아도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는 같은 공간에 살지만 다른 문화를 접하고 자랄 수 밖에 없다.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서로를 미개하거나 무례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인에게 마법의 단어들이 있는데 그 중 첫째는 애국이고 둘째는 북한이다. 노인들 중에는 ‘빨치산’이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빨치산은 불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나온 말로 ‘레지스탕스’ ‘정규군이 아닌 유격대’ 정도의 뜻을 지닌 만국 공영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이 단어가 6.25전쟁 당시 지리산이나 태백산맥에서 북으로 후퇴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활동한 ‘당시의 북한 군인들’을 지칭하는 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65세이상 고령자 고용률 남성이 40%, 여성이 20% OECD 회원국 평균 남성 17%, 여성이 8%이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유효 은퇴 연령’이 한국 남성은 71세(멕시코 72세)로 OECD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의 은퇴 연령은 69,9세(칠레 70.4세)로 OECD 2위이다. 노인 빈곤율(66~75세)는 42%로 압도적 1위, 7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60%에 달한다. OECD평균 12~13% 정도이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 10만명당 64명 OECD 1위이다. OECD평균 20명이라고 하니 가히 압도적으로 많다.


경제를 종교로 여기면서 ‘성장’이라는 단어는 신성불가침 영역이 되어 버렸고 ‘분배’라는 말만 나오면 ‘사회주의’를 연결 시켜 북한을 끄집어 내기에 토론과 대화는 불가능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기업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제대로 노동자들에게 분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경제를 강조하다 보니 경제가 발전은 했는데, 발전의 혜택은 일부만 누리고 있는 셈이다.


경제지상주의가 가져온 최악의 결과는 세월호 사건이다. 규정을 지키지 않고 화물을 과적했다. 최대 적재량이 1077톤인데 실제 2141톤을 적재했고 자동차는 88대가 최대치인데 실제 124대를 실었다. 수명이 다 된 중고 선박을 구입하여 객실을 증축해서 600명이었던 승선 규모를 900명으로 늘렸다. 배에 탔던 15명의 직원 중 비정규직은 9명에 달했다. 이러한 참사를 통해 국민들의 분노가 정부와 여당에 불리한 형국이 형성되자 보수 언론은 마법의 단어를 꺼내 든다. 사람들의 세월호로 인한 애도로 내수가 얼어 붙어 경기 침체가 되면 한국 경제가 좌초될 수 있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도 마법의 단어인 경제를 사용하면서 국회 연설을 통해 세월호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위기를 강조했다.


우리는 온갖 매스컴에서 나온 통계의 수치를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신뢰성 있고 공정하게 조사를 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는 통계의 함정이 숨어 있다. 2014년 여성 공무원은 전체의 49%에 달한다. 이 수치만 보면 여성이 공무원의 절반을 차지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안을 들여다 보면 1~3급 고위직 여성 공무원 비율은 4.5%, 10대 그룹에서 여성이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이 0.07%, 공기업인 경우 0.002%에 불과 하다. 즉, 유리천장이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이 과거보다 증가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실질적인 ‘남녀평등’ 으로는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저자는 말미에 이 모든 것을 느끼고 변화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독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대안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자체가 상식적으로 변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정치가 사회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고 시민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살 수 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비판적 시민이 많아야 가능하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와 더불어 끊임없는 요구와 목소리만이 우리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우리 후대에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회학에 관심이 있거나 현실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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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세계기독교고전 27
앤드류 머리 지음, 원광연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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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왕, 예수를 본 받자


이 책은 겸손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실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겸손(謙遜/謙巽)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겸손이라는 단어는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겸손이라는 좋은 뜻은 현재 착한 척, 혹은 호구 라는 이미지로 변질 되어 버린 듯 하다. 하지만 겸손을 실천하는 이들은 주변사람들을 감탄시키고 감동 시킨다. 


기독교인과 교회가 세상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사라지자 교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30~40년전만 해도 잘 곳이 없는 사람, 먹을 것이 없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이 쉽게 들어갈 수 있던 곳이 교회였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줬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사랑으로 받아줬던 교회에서 결국은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잡혔지만 신부님은 자신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밝힌다. 이를 계기로 주인공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소설과 같은 영화와 같은 이야기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이름도 없이 눈물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무수한 성직자들이 존재하지만 몇몇 대형 교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면면을 보고 있자면 그들에게는 겸손이라는 단어 자체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자신의 아들에게 부당한 방법을 총 동원해서 물려주고 또한 더 낮은 자리로 가서 많은 이들을 섬기라고 직분이 있지만 그 직분을 위해서 매관매직을 하는 모습은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전통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책의 중심 구설은 빌립보서 2장 5절~8절 말씀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특히 8절에 나온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겸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맹목적으로 참고 견디고 버티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이 책에서는 겸손이라는 개념부터 어떻게 적용해야 하며 왜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겸손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며 사람이 담당해야 할 첫째가는 의무이자 최고의 덕이다. 겸손은 모든 덕의 뿌리가 된다. 이러한 겸손을 상실한 상태를 교만이라고 한다. 교만은 모든 죄와 악의 뿌리이자 자기를 높이고 지옥의 문, 지옥의 저주이다.


성경에는 다양한 은혜가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시는 전적은 선물이다. 대표적인 은혜가 바로 구원이다. 하지만 겸손은 여러 가지 은혜나 덕성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의 뿌리다. 왜냐하면 오직 겸손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를 갖게 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시도록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겸손이란 우리가 하나님께 가져다 드리거나 혹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식이다. 그런 의식은 하나님이 과연 만유시라는 것을 바라볼 때에 생겨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유가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의식 가운데서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마치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엄마가 요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칼질을 해서 도와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영화롭게 해 드리며 영원토록 그분으로 인해 즐거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자 삶의 태도이다. 하지만 신앙 생활을 오래 하고 자발적이고 기쁨이었던 여러 가지 행위들이 어느덧 남과 비교하고 마치 우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율법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렸다면 그건 겸손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겸손이란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위치를 시인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합당한 지극히 높은 위치를 인정하며 그것을 그에게 돌려드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분을 계속 시인하면서 인식하면서 살아야만 겸손의 삶을 유지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첫째가는 최고의 증표가 바로 겸손이다. 이러한 겸손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을 소원해야 하고 겸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믿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겸손의 반대말로 이 책에 많이 나오는 단어는 바로 교만이다. 교만처럼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없고 그처럼 간교하여 우리의 눈에 감추어진 것이 없고 그것만큼 어렵고 위험한 것이 없다는 사실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속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교만 때문이다. 교만의 뿌리와 엄청난 힘은 우리의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된 하나님의 겸손이다. 그리스도의 삶의 뿌리를 소홀히 하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토록 연약하고 열매가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인간의 모든 명예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명예를 구하는 그런 겸손을 구해야 한다. 가장 낮은 자가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법이다. ‘마더 테레사’ 의 명언 중  ‘당신이 오늘 베푼 선행은 내일이면 사람들에게 잊혀질 것이다. 그래도 선행을 베풀어라’ 가 있다. 이 말은 지금 헬조선 이라는 자조 섞인 말로 꿈과 희망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한 번쯤 생각해볼 말인 듯 하다.


교회의 가장 귀한 자리는 가장 겸손한 자에게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겸손은 성령에 충만하여 우리가 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가 우리 속에서 사실 때에 비로소 능력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이다. 겸손이 없으면서도 진지하고도 적극적인 기독교 신앙의 모습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성직자를 비롯한 신앙인이라는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온갖 사회 활동을 통해 명망을 쌓고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신앙생활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속에 겸손의 모습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외형적인 가르침과 온갖 개인의 노력이 있다 해도 그것들이 교만을 정복하는 데에 혹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는 데에 얼마나 허약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겸손하게 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신적인 겸손으로 우리 속에 거하심으로써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생활의 모습을 보면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질투나 투기를 느끼지 않는다. 가장 낮은 자가 되고, 가장 낮은 자로 취급 당하기를 즐거워하며, 예수님처럼 아무리 미천하고 아무리 미약한 자들에게라도 그들의 종이 되고, 돕는 자가 되며, 위로자가 되기만을 구하는 그런 거룩한 겸손이 없기 때문에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짜 거룩의 중요한 특징은 겸손이 없다는 것이다. 겸손이란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신다는 것을 봄으로써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거룩한 사람은 동시에 가장 겸손한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보이는 겸손이야말로 우리 이웃들을 대하여 항상 겸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유일한 능력이다. 믿음과 겸손이 서로 뿌리가 같다.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참된 겸손도 있는 법이다. 자신에 대해 죽을 때에 비로소 겸손이 완전해지는 것이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겸손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봐야 한다. 겸손한 태도가 외부적인 것인지 자발적인 것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신앙인의 겸손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드림으로써 보여주신 것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겸손인 것이다. 낮은 척, 착한 척, 순결한 척 하는 모습이 아닌 죽기까지 순종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겸손의 본이 되신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겸손을 실천해야 하는 수 많은 신앙인들과 겸손의 본질적인 의미를 알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인 듯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올린 CCM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의 왕’이라는 찬양이다. 그 찬양의 가사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한 곡으로 요약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겸손의 왕 –천관웅-


왕 겸손의 왕

평범한 목수의 아들

주 종으로 오신

죄인을 섬긴 창조주


주의 손 거친 못이 찔렀고

주의 발 갈보리 오르셨네

모든 것 내어 주신 주님

우리의 발을 씻겼네

주가 싫어 거역한 우릴 위해 고통 당했네

무엇을 향한 사랑인지

무엇을 바란 희생인지

당신은 사랑에 눈 먼 주님


왕 겸손의 왕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신

주 종으로 오신

그 겸손 나 알기 원하네


주 허리 거절의 창이 찔렸고

주 음성 왜 날 버리셨나요


인간을 지은 하나님이 인간 손에 죽으셨네

주가 싫어 멸시한 우릴 위해 죽임 당했네

무엇을 위한 사랑인지 무엇을 바란 희생인지

당신은 사랑에 눈먼 주님





인상 깊은 구절들


『우리를 가장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가르쳐지지 않았습니다.』(22p) 

『하나께서 베푸시는 생명은 그저 단 한 번에 주시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강력한 능력의 끊임없는 역사를 통하여 매 순간마다 계속해서 주시는 것입니다.』(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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