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미스 노마 -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밌게 살고 싶어!
팀, 라미 지음, 고상숙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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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미스 노마


이 책은 아흔 살의 미스 노마 할머니의 마지막 여행기를 담고 있다. 아흔 살, 노마 할머니는 남편을 떠나 보내고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죽음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암 투병 대신 여행을 선택한다. 이 책은 노마 할머니가 인생의 마지막 1년 동안 아들 내외와 함께 캠핑카를 타고 여행한 미국 일주 기록을 엮어 탄생했다.


결혼 이후 동네를 벗어난 적 없는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노마 할머니에게는 무모한 도전일 수 밖에 없는 이 여정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 것은 아마도 아흔 살이라는 고령과 더불어 암 치료를 거부 한 채 자연스럽고 당당한 죽음을 택한 것에 따른 찬사로 보인다.


1년 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 다니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평생 경험 해보지 못한 것을 누린 노마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부러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진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기고 블로그와 페이스북이라는 SNS에 올리고 아주 작은 매체에 기고를 한 것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지지를 하게 된다.


평생을 떠돌이처럼 살아온 노마 할머니의 아들인 팀은 길 위의 삶은 단순하고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그의 아내 라미는 단순함과 자유가 현대인의 삶에서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해독제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기에 둘은 계속 정처 없는 방랑자의 삶을 즐기면서 살아 간다. 그들은 가진 것이 적을수록 걱정거리도 적음을 삶으로 보여준다.


팀의 부모님 두 분 모두 제2차 세계 대전 중 군대에 자원했다. 아버지는 공군 행정병으로 어머니는 오빠를 따라 해군 예비군으로 입대했다. 전쟁이 끝난 후 랄프 삼촌의 소개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만났고 결혼은 했다. 하지만 두 분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 카톨릭 자선 단체에서 10년 동안 아동 양육 봉사 활동을 하신 끝에 나(팀)를 입양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은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했다. 그 아이는 내 여동생 스테이스 였다.


무척이나 쾌활하고 자기 주도적인 여동생 스테이스와는 6살이라는 나이 차로 인해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진 않았지만 돈독한 관계를 유지 하였고 그녀는 결국 특수 요원이라는 임무를 완수하고 훗날 대통령 경호 임무까지 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주인공인 노마 할머니는 전형적인 가정 주부였다. 그녀의 남편, 팀의 아버지는 지역 전기 회사에 다녔다. 사무직이었지만 교대 근무를 했고 주말에도 일을 했다.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아버지보다는 엄마와 더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이들은 견실한 중산층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마 할머니는 다리와 손마디가 점점 붓기 시작하자 며느리인라마의 제아으로 대마초 성분이 있는 크림을 구매하기로 한다. 예전의 엄마라면 대마초라는 단어에 질겁하겠지만 아내의 충분한 설명과 함께 좋은 성능으로 인해 엄마는 크림을 구매하였고 붓기가 빠지기 시작하고 관절염 때문에 아팠던 손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약국에서 언급 했던 것처럼 칸나비스 캡슬을 복용하자 일주일 만에 평소 복용하던 아편 성분의 진통제를 완전히 끊게 되었다. 또한 어지러움, 무기력증, 콧물도 함께 없어졌다. 그리고 하혈이 멈췄다.


팀은 자신에게 혹은 독자들에게 묻는 듯 하다. 아흔 살 노인에게 약을 먹음으로써 삶의 즐거움이 자라진다면 그 약은 진정 좋은 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약을 먹으면 하루 종일 졸음과 씨름해야 하고 진통제가 통증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채 부작용만 있다면?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겠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하나씩 자신들의 방식으로 고령의 암을 가진 엄마와 함께 여행을 지속한다.


노마 할머니는 다양한 곳을 방문 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후원했지만 직접 보지 못했던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곳, 1년에 단 하루 개방을 하는 곳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두 눈으로 목격을 한다. 또한 젊은 시절 가슴 한 켠에 숨겨 놨던 열기구 탑승도 우여 곡절 끝에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전쟁에 투입되지 않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임을 밝히지 않았지만 SNS로 알게 된 사람으로 인해 항공 모함에 탑승을 하게 된다.


일일 농구 주장을 맡기도 하고 호텔에서 특실을 배려해주고 91번째 생일 파티를 열어주기도 한다. 수족관에 가서 동물들을 만져 보기도 하고 요트를 타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행동들을 아프지 않았을 때, 건강 할 때, 남편이 살아 있었을 때,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노후를 맞이하는 이들은 극소수임을 알게 된다.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만 한국의 상황으로 대입해본다면 자식들을 위해서 최대한 아끼려는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또한 아흔이라는 고령, 동네를 크게 벗어나본 적이 없는 성격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노마의 남편, 노마의 딸이 자주 언급이 된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나누지 않고 하나임을 말하고자 하는 듯 하다. 또한 죽음은 두렵거나 무섭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고 삶의 일부이며 우리에게 짧은 헤어짐이라는 인상을 준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요즘 이러한 책이 주는 감동이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중년들에게 또한 노후를 맞이 해서 앞으로의 남은 생을 고민하고 있는 노년들에게 좋은 동기 부여가 될 듯 하다. 끝으로 이 책에서 마지막에 할머니와 여러 사진들을 배치 함으로써 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된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여행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지명이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마음, 심정 등을 최대한 서술함으로써 더 몰입도가 높아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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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
장은숙 지음, 김지연 그림 / 밥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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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단 둘?

이 책은 6살 외동인 리아가 동생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이다. 합계 출산율이 1.07정도이다. , 결혼하는 부부들 중 대다수가 1명만 자녀를 출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산부인과, 키즈카페는 물론 공원, 마트만 가도 애들이 넘쳐나기에 실질적으로 저출산을 체함하기는 어렵다.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저출산, 고령화, 인구 절벽 소식등을 쏟아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무관심 할 수 밖에 없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이 점점 힘이 들기에 애써 외면하고 있다. 많은 부부들은 결혼 전후 수 년안에 자녀를 갖는다. 그리고 상당수 많은 부부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둘째를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다.

기성 세대인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은 지금의 30~40대들에게 외동은 외롭다. 둘은 낳아야 된다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그 말은 허공에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선 지금의 부부들은 자녀가 외동이어도 외롭지 않다는 과학적 근거를 알고 있고 또한 여건이 허락되지 않기에 둘째, 셋째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동생을 원하는 주인공 리아가 부모로부터 동생이라는 큰 선물을 받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6살 리아는 혼자여서 심심하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라서 늘 바쁘기 때문이다. 친구와 재밌게 놀다가도 동생이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는 친구의 모습을 통해 동생을 갖기를 원한다.

리아는 부모님에게 동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부모는 인형으로 동생을 대신하라고 하지만 리아는 진짜동생을 갖고 싶어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엄마의 배는 점차 불러 오고 결국은 쌍둥이 동생을 갖게 된다.

이 단순하면서도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 몇번이나 울컥하게 된다. 50~60년대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가치관과 80~90년대 태어난 지금의 부모 세대의 가치관의 차이뿐만 아니라 현실적이 여러 어려움이 있기에 자녀를 둘 낳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조부모 세대는 현재의 부모들을 이해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후준비와 아이에게 들어가는 각종 비용에 대한 염려를 비롯해 고용불안과 저성장에 시달리는 현재 부모 세대들에게는 다자녀란 꿈만 같은 이야기일 것 이다. 이건 세대간의 전쟁이나 갈등 현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이렇게 몰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한 첫째 자녀가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훗날 어른이 되었을 경우 의지하기 위해서 동생을 낳아야 한다는 논리는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주인공인 리아가 동생을 간절히 원하는 나이가 되면 실제로 동생과 많은 나이차로 고생을 하게 되지만 자신의 주장이 점철 되었기에 사이가 좋게 지낼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960년대에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60년대에는 '적게 낳아 잘 기르면 부모 좋고 자식 좋다'

1970년대에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에는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1990년대에는 '선생님, 착한 일 하면 여자 짝꿍 시켜주나요?'

2000년대에는 '한 자녀보단 둘, 둘보단 셋이 더 행복합니다

가족 정책은 이렇게 변해왔다. , 시대에 맞춰서 인구와 자녀의 출생에 대해 민감 할 수 밖에 없다. 현재는 저출산이 10여년 전부터 화두에 오르자 200조가 넘는 돈을 출산 정책에 펼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애가 좋은 형제, 자매가 많은 것은 어찌 보면 큰 자산이고 복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자산과 복을 마음껏 누리는 사회가 속히 와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전국 방방 곡곡에 울려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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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위고 튼튼한 나무 27
베르트랑 상티니 지음, 박선주 옮김 / 씨드북(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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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을 통한 인간의 욕심을 보다.


이 책은 12살인 주인공 위고를 통해 진정한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책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소설가로 우연한 기회를 통해 큰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몽리아르 마을이라는 곳에 정착을 하게 되고 드 넓은 토지를 소유하게 된다. 아버지는 식물학자로써 집 주변에 식물들을 관찰하면서 여유롭게 살아 간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그곳에서 멸종되었다고 판단되었던 식물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위고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유전이 발견이 되면서 이웃과의 마찰이 시작되었다. 이웃들은 위고네 가족이 멸종식물을 빌미로 개발을 반대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 하는 방법으로 멸종식물의 발견을 통한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추진하던 중 누군가의 고의적인 훼손으로 멸종 식물은 사라지고 만다.


위고 부부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준비 한다. 그러던 중 위고는 잠결에 누군가의 침입으로 인해 물속에 빠져 익사를 하고 만다. 그리고 유령이 된다. 위고네 집 소유의 공동 묘지에는 다양한 유령들이 살고 있었다. 17살에 출산하다 사망한 유령, 7살에 호수에 빠져 사망 유령, 식물학자인 유령 등등 있었다.


위고는 유령은 우주의 귀신들 중에서 제일 착하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자신의 죽음을 부인했던 위고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살해 당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도플갱어가 된 것이다. 도플갱어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유령이다. 이 기형적인 유령은 육체와 영혼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영혼은 쉼을 갈망하지만 육체는 삶에 집착한다.


하지만 위고는 ‘야경증’ 이라는 병에 걸린 사실을 발각한다. 이 병은 백일몽과 결합된 몽유병의 하나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커 보일 수 있지만 보통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병원에서 돌아온 위고 부부는 이사를 가기로 결심을 하지만 위고는 자신이 꿈속에서 혹은 유령이 되었을 때 보았던 곳으로 간다. 그곳에 땅을 파자 해골이 나오고 멸종이 되었다고 생각되었던 씨앗들이 공중으로 날라가면서 책은 끝이 난다.


이 책을 보면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뜻으로,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그 환경이 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으로써 한국의 어머니들을 지극한 자식 사랑과 교육을 요약한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던 12살 위고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그것은 유전이라는 거대한 돈이라는 유혹이다. 이것은 이웃들과의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은 살해위협까지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 한다. 


자녀들에게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고 부모들은 이야기를 한다. 건강, 재능, 명예, 능력, 심성, 양심 등 많은 부분을 이야기 하지만 아이가 커 가면서 직업, 진로를 선택할 때 상당수 부모는 물질, 곧 돈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하는 기준을 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을 절대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점점 돈이 주는 매력이 모든 인간사의 가장 중심이 된 듯 하다. 장례식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을 옛 어른들은 교육이라고 여겼지만 현재는 아이들을 되도록 안 데리고 가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싶다.


가족, 친지들 장례식장에서 유산으로 인한 자녀들끼리 멱살잡이, 소송, 칼부림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 현실 이다. 또한 타인의 장례식장에서도 보험금을 비롯한 돈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남아 있는 사람, 산 사람은 살아야겠지만 죽은 자 앞에서 서슴없이 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본다면 과연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자라고 판단할지 아찔하기만 하다.


위고는 유령이 되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들의 대화, 행동, 동기들을 엿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이 이곳을 떠나는 것이 저들이 바라는 것임을 알고 이사를 가지 않기로 결심을 한다.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일 수 있다. 그깟 수 백년된 나무, 수천 년된 유물 보다 당장의 수억, 수십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보면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을 것이다. 땅속에 묻혀 있는 유전을 포기 한 채 멸종된 식물을 발견한 것이 이웃들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도 있다.


모든 것을 돈으로 측량 하려고 하는 세대 속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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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붙드시는 성도
김문훈 지음 / 두란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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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슨 그릇입니까?


이 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이들을 교인, 혹은 성도라고 부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성도'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속된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 일원으로 부름받은 자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시106:16; 벧전2:5). 그렇다면 단어의 뜻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 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을 걱정하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아이러니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의 천주교, 기독교, 불교를 비롯한 종교를 가진 이의 수는 나날이 줄어 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것을 비단 사회 현상이나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이유로만 설명을 한다면 과연 누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끼리 사기를 치고 뒷담화를 하고 패를 나누어 싸움박질을 하는 모습은 여느 교회에나 존재한다. 이러한 모습을 죄인들이 모인 곳이기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변명하기에는 그들이 말하고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모습과 너무나 상반되고 있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그릇의 크기를 키우고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화려한 색을 칠하고 온갖 보석을 넣은 채 살아가고 있어서 정작 하나님이 부어주시고자 하는 은혜나 사랑을 담을 공간은 없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 봐야 한다.


이 책은 성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관계, 성품, 신앙, 변화 라는 4가지 큰 틀에서 성도의 주요한 됨됨이를 말해준다.


성경에 기록되어 후대에까지 위대한 인물들 추앙받는 이들에 대해 성경은 그들의 과오나 범죄 사실을 숨기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사실 그대로 적고 있어서 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크나큰 도전과 위로가 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사실은 그들은 그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에 반하는 행동, 말을 했지만 이내 다시 돌아오고 순종하였다는 사실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성도들은 머리로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알고 있지만 실생활, 혹은 낮거나 죄의 자리에서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관계라고 하면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를 먼저 떠올리고 있다면 곰곰이 주변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식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부모가 옆집 아이에게 칭찬을 받는 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찬가지로 작게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더 나아가 직장과 사회에서 사람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채 배척당한 상태로 고립되어 쓸쓸이 살아가고 있다면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성도들의 입이 거칠어 나날이 지고 있다. 불과 몇십년 전 만해도 외식이라고 보일 지라도 형제, 자매, 교우님이라는 표현을 쓰고 욕설과 비방, 19금 농담은 전혀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예전 언어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종종 불쑥 튀어 나온다 할지라도 그런 이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청소년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 즉 신앙의 연륜이 있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집사님, 권사님 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전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비속어, 욕설, 음담패설이 난무한 현실이다. 더욱이 하나님을 닮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서로 나누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이야기 보다는 아파트의 시세, 자녀의 진학, 취업에 대한 이야기로 모임을 이끌고 있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위해 모이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점검 해봐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도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바울이 되었지만 옛 습관으로 인해 날마다 죽노라 고백하였고 예수님의 어머니를 평생 모시면서 살았던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고 끊임없이 외쳤고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불같은 성격으로 누구보다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했지만 제일 먼저 도망가고 부인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성도 개개인들의 삶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과오를 한번에 깨끗이 씻고 열렬히 주님을 따르지만 종종 옛 습관으로 인해 번뇌하는 성도도 존재 할 것이고모태신앙으로 한번도 어긋난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불같은 열정은 없이 잔잔하게 평생 신앙 생활 하는 성도도 있을 것이고 혹은 변화되었지만 자신의 기질은 미쳐 변하지 못해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감정으로 힘들어 하는 성도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문훈 목사님은 현재 포도원 교회 담임 목사로 재직중이며 2000년대 이후 장경동 목사와 함께 최고의 부흥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분의 메시지는 듣는이로 하여금 귀에 속속 박히며 힐링이 되는 예배가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였을까? 성도라는 이름이 십자가가 아닌 은혜의 통로이며 특권인 것을 알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물씬 풍겨 나온다.


헬조선이라는 오명 속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수 백만의 성도들에게 결코 혼자가 아니며 또한 개개인의 낮아짐과 변화로 인해 하나님과 동해하는 성도가 되길 바라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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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 해서 미안해
JOYO2 지음 / 가나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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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 책은 4명의 선생님들이 직접 경험한 학생들간의 관계 및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묶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부모님 보다 더 위대한 사람으로 보이고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꼰대 이거나 친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초년생 선생님과 아이들의 나이 차이는 적게는 5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이름 안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 단순히 어른이라는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을 뛰어넘는 지지하고 기대하고 절대적인 위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른이 되고 이제야 되돌려 보니 선생님들 역시 한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었을 텐데 학창시절에는 미처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인기가 많고 착한 선생님들에게는 무한한 칭송을, 인기가 적고 무서운 선생님들에게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통해 추억을 만들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한들 같은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학업에 열중하는 친구도 있고 때론 누군가는 개인 사정에 인해 학교에 등교 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친구도 있다.

굶어 죽는 아이는 거의 사라졌지만 집에서 부모나 형제로부터 육체적인 폭력, 언어 폭력, 정신 폭력을 당하는 아이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이가 학교에서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오히려 위축되어서 조용하고 말이 없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채 방치 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 문제가 뉴스에서 나올 때 마다 학교에 대한 공신력을 언급을 하게 된다. 선생님은 적게는 20명 많게는 40명정도로 한 반을 이루고 있는 아이들의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들을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그들에게 모든걸 맡기고 의지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을 읽으면서 현재 대한민국에 얼마나 아픈 아이들이 많이 숨어 있을까?라는 생각과 더불어 선생님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와 헌신이 있기에 학교라는 울타리가 귀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학창시절 어떠한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한 아이의 인생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듣는다. 초등학교 시절 폭언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연쇄 살인마가 되기도 하고 끝 모를 방황 속에서도 아이를 믿고 지지해준 덕분에 위인이 되기도 한다.

선생님과 첫 상담 시간 내내 울던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갑자기 가정이 기울어 진다. 그리고 아빠의 무능력한 생활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전교 꼴찌인 아이가 있다. 아주 밝고 유쾌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이 6살 때 이혼 후 오빠와 아빠와 셋이서 살면서 실질적 엄마 역할을 하였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쁜 아빠는 딸 아이의 진로 및 학교 문제에 무관심하기만 하다. 결국 딸이 원하던 특성화고도 진학을 시키지 않았다. 결국 그 아이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 한다. 우연한 계기로 다른 제자를 통해 미용실 보조로 일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 두 아이의 삶에 과연 희망이라는 단어가 존재 하는 것일까? 이 아이들의 잘못은 무엇일까? 단순히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이 죄라면 죄인 것일까? 책 처음 부분에 등장하는 이 두 아이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린다. 저들의 찬란해야 할 학창 시절의 삶을 누가 망칠 권한이 있는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일진이지만 자신 또한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해자로써 살아가는 아이는 피해자에 고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일진인 친구들과의 멀어지기로 결심을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방법이 없자 고민 끝에 전학, 아니 유학을 떠나기로 한다. 다행히 가해자인 학생도 피해자인 학생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화해를 하고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다.

학교 폭력 하면 떠오르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쉽지만 실제로는 방관자도 존재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극소수 이고 대다수가 방관자이다. 왕따를 당할까봐 가해자의 존재를 외면하고 피해자의 외침을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하고 부패한 학교안의 모습이 하루 속히 개선되지 않는다면 점점 학교는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 될 것 같다.

초년생 교사와 반 아이들의 야영, 그리고 아이들이 준비한 몰래카메라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한 이야기, 또한 장애를 가지고 호흡기 질환이 약한 아이가 제안한 음악회, 그 음악회에서 아이는 플루트 독주를 하고 이것을 계기로 연주자의 꿈을 꾼다는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한 몇몇 이야기들은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감동적인 것들이 있다. 또한 선생님들이 자신의 과오나 심정을 밝혀줌으로써 선생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이야기도 있다.

선생님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고 인격이라는 사실을 인지 한다면 아이들과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더 나아가 개개인간의 관계가 더 좋아 지리라 생각이 든다. 학교 교육이 점점 무너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즐겁고 올바른 길로 가는 법을 가르치는 이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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