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남자,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성’을 강요 당하는 일이 불쾌하고 불편한 것처럼,
남자들도 남성성을 강요 당하는 일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서문에서 
"존경받는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남자에 대한 이미지는 
19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심하게 훼손을 당했다. 
그 뒤로 남자의 이미지는 결국 자기 욕심을 위해 가족들 위에 군림하는 
가부장적인 맹수의 이미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 뜨끔했다.
어릴 때부터 대가족의 장남으로 특별 대우를 받아온 ’오빠’(남자)와 대립각을 세우고 
자라서인지 유난히 남자들에게 매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시인해야겠다.
남자 답지 못한 남자를 "찌질남"이라 통칭하며,
여자에게는 꼼꼼하다고 하면서 남자에게는 쪼잖하다고 하는 
불평등한 기준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남자에게 남자 답기(!)를 강요하는 것도 
또다른 차별, 또다른 폭력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차별 대우만큼이나 특별 대우와 과도한 기대도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남자, 그들의 이야기>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 모음’, 
즉 말 그대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남자의 내면에 대해 다룬 글이라고 해서 심리학적인 책은 아니다.
여기 모인 글들은 남자에 ’관한’ 글이라기보다,
대부분 ’남자로서의 경험’, 즉 남자의 자기 고백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특별히 "남자의 내면에 대해 다룬 최고의 글들"을 모은 것이라고 스스로 소개하는데,
남자의 내면에 대해 다룬 최고의 글이라는 평가는 
남자들이 자기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여자들은 자신의 문제나 감정을 말의 수단, 즉 대화나 고백을 통해 밖으로 표출함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남자들은 문제가 있을수록 자신의 내면이라는 동굴 속으로 깊이 잠적해버린다는
측면에서 남자의 내면 고백(!)이 의미를 갖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이런 식으로 단순화시켜 접근하는 것이 좀 편협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남자들을 짓누르고 있는 불편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남자들이 가장 먼저 깨뜨려야 하는 고정관념은 
바로 "남자는 감정을 안에다 담아 두어야 한다"는 잘못된 신화이다. 

남자의 고정관념 깨뜨리기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 즉 분노, 두려움, 수치심, 상실의 고통 등과
남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감정, 즉 어린아이로부터 받는 신뢰, 여성과의 협력,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매일 포기하지 않고 끈질지게 살아가는 인내와 같은 용기 등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과 대면하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고백하는 작업이 첫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남성의 해방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남성의 해방은 남성이 스스로 마음을 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주 조금만이라도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
이것이 남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독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남자들이 인간으로서 마음을 여는 데 필요한 문제들을 다룬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진정한 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돌파구를 찾은 사람들의 기쁨, 
지독한 고통을 겪은 남자들의 부르짖음, 
남자들의 항변을 다룬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17).

<남자, 그들의 이야기>는 서양의 문화 배경을 가진 남성들의 이야기여서 
한국적 정서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다.
남자들이 읽으면 자신이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은밀한 내면의 고백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고
(그 간접적인 고백이 치유적인 기능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글도 있다),
남자로 살아가는 지혜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여자들이 읽는다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뭐지?라는 물음이 생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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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를 오른 얼큰이 샘터어린이문고 14
이하늘 글 그림 / 샘터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특별한 책을 만나다!

<에베레스트를 오른 얼큰이>가 특별한 책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이(그리고 청소년)들이 직접 지은 동화(시도 있고, 카툰도 있다)이기 때문이다.
13명의 어린이(그리고 청소년)들이 13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창작해냈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직접 그렸는데, 수준이 상당하다!

어린아이다운 순수함과 때 묻지 않은 고운 심성이 이야기 안에 그대로 묻어난다.
어린이(그리고 청소년)들이 직접 말하는 꿈과 희망,
그리고 어린이(그리고 청소년)들이 세상을 향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감동 그 자체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맑고 투명한 이야기를 창작해낸 
작가들이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내 친구의 아들은 지적장애 판단을 받았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엄마인 내 친구는 참 많이 울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내 친구는 사랑하는 아들이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그 장애로 인해 천사보다 더 맑은 영혼을 가졌다고 자랑한다.
세상엔 눈에 보이는 장애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
여기 <에베레스트를 오른 얼큰이>의 13명의 작가 어린이(그리고 청소년)들은
보이는 장애를 가졌는지 모르지만, 마음과 정신은 그 누구보다 깨끗하고 강인하다.

이하늘 친구의 작품 <에베레스트를 오른 얼큰이>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용기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꿈과
친구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얼큰이'의 친구는 '발큰이'와 '귀작은이'이고,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은 '푸른마을'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인정하며 사는 행복한 마을!
등장인물 설정과 배경 설정, 그리고 스토리가 아주 탁월한 작품이다.

박성은 친구의 <모로롱, 보리, 블랙, 코코의 호랑이 체험기>는 
고양이들이 호랑이를 동경하며 호랑이가 될 수 있는 훈련을 받지만,
고양이들은 정작 호랑이가 되면 고양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고양이로 사는 것도 만족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겉보기에 멋져 보였던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로서 긍지를 가지고 살기로 다짐한다.
항상 남의 것만 동경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김소연 친구의 <애애애앵! 재활원에 불이 났어요>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침착하게 행동하며,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서로는 보살피고 살리려는 희생정신이 잘 그려져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 표현이 잘 묘사되어 있다.
게다가, 화재가 발생했을 때의 행동요령이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설명되며,
아주 교훈적이며 유익한 동화이다.

양하은 친구의 <엄마가 사라졌다!>는
시각 장애를 가진 누나와 동생이 밤중에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아나서는
한밤의 소동을 다루고 있다.
엄마는 한밤중에 어디로 사라진걸까?
도깨비도 등장하고, 마지막 반전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양하은 친구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인데,
이야기 안에 직접 만든 점토가 등장하는데, 점토가 정말 예술이다!

박영지 친구의 <마법의 피아노>는 판타지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영어학원에 등록시켜 주시며 영어를 하라고 하는 엄마와
피아노를 치고 싶은 준휘!
꿈을 좇는 준휘의 의지와, 준휘와 엄마가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준휘와 엄마가 실제로 등장하는 아주 재밌는 환상적인 동화이다.

고재현 친구의 <동물학교 특수반>은 
조금씩 몸에 장애를 가진 동물학교의 특수반 친구들이 힘을 합쳐 
악당 이리를 물리치고 학교의 영웅이 되는 이야기이다.
동물학교 특수반 친구들이 자신감을 회복해가는 과정과
악당 이리를 물리치는 과정이 이솝우화보다 더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승영 친구의 <축구 시합>은 동시이다!
재밌는 입체적 그림과 함께 축구 시합이라는 주제로 쓰여진 시이다.
실제 축구 시합을 보는 듯 생생한 현장감이 돋보이고,
축구 시합에서 골을 넣을 때의 기쁨과 환희가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어린이의 마음을 잘 표현한 행복한 동시는 읽는 사람 마음도 행복하게 해준다!

강형옥 친구의 <용감한 남매>는 읽으면서 감동을 많이 받은 동화이다.
누나 진경이는 중도 시각 장애를 가졌고, 동생 진영이는 뇌성 마비 장애를 가졌다.
그렇지만 진경이 가족은 밝고 씩씩하고 행복하다!
진경이와 진영이는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소중한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이 잘못을 했지만 동생보다 더 야단을 많이 받는 누나의 심정이 잘 그려져 있고,
남매의 깊은 사랑과 우애가 감동적으로 잘 그려진 이야기는
작가 강형옥 친구의 실제 이야기이다!

손동연 친구의 <동생이 태어났어요>는 동생이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누나의 시각에서 쓰여진 동화이다.
내용이 아주 사실적이고, 그림도 멋진 짧지만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엄마의 마음을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누나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손동연 친구는 발달장애 2급인 친구인데,
이런 손동연 친구가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놀랍다!

강창묵 작가(대학생이라서!)의 <친구 따라 가출한 병아리>는
그림도, 이야기도 전문 작가의 작품 같다.
위기에 처한 친구 병아리와 도움을 주었던 친구의 배신,
그리고 절박한 상황에서 위기를 벗어나는 재치가 빛난다.
소재도 멋지고, 주인공 병아리가 위기를 벗어나는 재치도 정말 탁월하며,
그중에서도 그림이 정말 너무 멋지다!

이명선 친구의 <어느 청각 장애인의 하루>는
만화로 그려졌는데, 유머 감각이 정말 탁월하고, 만화 실력도 엄청나게 수준급이다!
청각 장애인이 겪는 고충과 청각 장애인의 특징이 정말 재밌게 잘 묘사되어 있어서,
우리가 소리를 못 듣는 친구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야기의 교훈은 '통밥을 찍지 말자'이다! 

최별 친구의 <부스락 부스락 종이마을>은 어느 가난한 화가가
좋은 종이를 구하기 위해 부스락 부스락 종이마을에 가면서 펼쳐지는 모험기이다.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처럼 정말 예쁘고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종이마을이라 나뭇잎도 '바스락'이 아니라 '부스락' 소리가 난다!
종이마을에 댐이 터져 엄청난 물이 쏟아지면서 마을을 덮친다!
종이마을 사람들과 화가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읽어보시라.

유강현 친구의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는 
그림과 스토리와 메시지는 어른을 위한 동화의 수준이다!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에서 소음에 시달리는 소설가 '나론'은
"쓸데없는 소리 없애기 백만시민 서명 운동"의 마지막 서명자가 된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사람의 말소리만 없어지지 않고 모든 소리가 사라져버린다.
소음 때문에 괴로웠지만 정작 소리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불행해지기 시작한다.
소리 없애기 백만시민 운동을 펼친 '악당 존'으로부터 다시 소리를 찾기 위해
용감하게 맞서는 나론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13명의 친구들의 작품을 하나씩 모두 소개한 것은
각각의 작품을 쓴 어린이(청소년) 작가들 한분 한분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이다.
여기 이야기를 직접 쓰고 그림을 그린 친구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꿈쟁이 친구들이다. 
<에베레스트를 오른 얼큰이>를 읽고 13명의 작가들의 팬이 되었다.
모두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응원하며 이 소중한 책을 꼭 간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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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목소리 - 그림이 들려주는 슬프고 에로틱한 이야기
사이드 지음, 이동준 옮김 / 아트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그림을 소재로 한 또다른 문학작품, 사이드의 글은 그대로 시가 되고 수필이 된다.

가끔 명화라고 하는데 어째서 이 그림이 명화인지 납득하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림이 말하다>를 읽으면서 어떤 명화들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림이 말하다>는 저자가 첫머리에 인용한 장 뤽 고다르의 명언처럼,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에게 목소리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상상하며 읽었다.

<그림이 말하다>의 저자 사이 사이드(Said)의 소개가 독특하다.
사이드는 ’시인’, ’인권운동가’라고 한다.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이거나,
미술사나 미술이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미술 평론가가 아닐까 짐작했는데,
시인이라고 한다.
시인이라는 힌트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의 글은 제목도, 내용도 상당히 시적이다.
그래서 어떤 내용들은 그림보다 난해하게 읽히기도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나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그림과 글을 연결시키며
어떤 그림 이야기는 몇 번씩 반복해서 읽기도 했다.
(파울 클레의 <육교의 혁명>,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복잡한 예감> 등이 특히 더 어려웠다.)

<그림이 말하다>는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그림이 말하다’,
2부는 ’화가가 말하다’이다.
1부 ’그림이 말하다’는 그림 자체의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면,
2부 ’화가가 말하다’는 화가 입장에서 화가의 입을 빌려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낸다.
글과 글 사이에 ’화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과 화가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해주어 그림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그러나 <그림이 말하다>는 그림을 해석하는 책이 아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책은 이렇게 소개한다.
"미술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연상되는 주관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작품 속 인물이나 풍경, 또는 색채들이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앞표지 날개에서)

그렇다.
저자는 화가에 대한 정보, 시대 배경이나 화법 등 미술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즉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그것을 주관적으로 다시 해석해낸다.
그러므로 사이드의 글은 그림의 해석과 감상에서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한 문학작품이 된다.
"사이드의 글은 미술과 문학이 새로운 지평에서 만남으로써 탄생한 
새로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그 모자 때문에 우리가 더 쓸쓸해 보여"라는 제목으로 재탄생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대화를 통해 다른 인물의 동작이 의미하는 바,
출입문이 보이지 않는 카페, 카페 안의 밝은 조명, 그리고 텅빈 거리가 의미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들려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그의 상상력은
실제 대본을 읽고 있는 느낌을 준다.

때로는 시 같고, 때로는 난해나 연극 같고, 때로는 역사적 서술 같은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화가와 그림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색체의 의미를 배울 수 있어 유익하다.
또 화가에 대한 정보나 색감에 관한 이론은 어디서나 배울 수 있지만,
다양한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하며, 
그림에 담긴 에피소드나 그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시대적인 배경을 
"이야기체"로 설명해주는 것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다.

어쩌면 나만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데,
저자 사이드가 시인이자 인권운동가라는 점에서
저자가 고른 작품에는 대체로 암울한 사회적 배경을 가졌거나,
인권과 관련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등장인물과 그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대상이 많다.
창녀, 매독에 걸리지 않으려고 오줌 싸는 군인, 쇠고랑에 매인 두 마리 원숭이,
떠돌이 유대인, 빛이 없는 도시, 저항하는 풍경 등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저자 사이드가 작품을 고른 기준은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고
그림의 목소리와 화가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본다면 
저자의 의도에 더 가까이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그림의 목소리>는 단지 그림에 관한 지식과 감상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그림을 매개로 저자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덧입혀져 있다고 생각한다.

신선하고 재밌게 읽으며, 그림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 하나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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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재발견 - 세계사를 뒤흔든
김도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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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파괴를 통한 재건, 싸워서 지켜지는 평화, 죽음으로 지켜야 하는 생명!


’전쟁’은 무조건 나쁜 것, 악한 것,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라는 1차원적인 사고로 충만했던 내가, 전쟁에 대한 약간의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만화 때문이다. 주인공 중의 하나로 전쟁과 파멸의 신 ’에일레스’가 등장하는데 잘 생긴 얼굴에 긴 머리카락을 나부끼는 폼새가 여간 멋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 전쟁의 신에게 빠져 들었던 이유는, 파괴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전쟁의 신 에일레스가 운명의 상대인 한 여인을 향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다는 설정 때문이었다.

전쟁의 신과 사랑. 전쟁과 평화가 한 몸인 것처럼, 전쟁과 사랑도 한 몸이라는 생각을 이때부터 했던 것 같다. 성경에서 "사랑(아가페)의 하나님"으로 정의되는 하나님도 구약성경에 보면 전쟁의 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자신의 백성을 대신하여 싸우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신학적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전쟁을 ’여호와(야웨)의 전쟁’이라 명명한다. 사랑의 하나님과 전쟁의 신 하나님,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니인가? 그래서 나는 ’여호와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 전쟁에 대해 좀 더 다차원적인 시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매릴린 옐롬이 쓴 <아내(순종 혹은 반항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이 땅의 ’아내 역사’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 오는 예기치 못한 기회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여성의 고용, 특히 기혼 여성의 고용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촉매제였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혼 여성 노동자보다 기혼 여성 노동자 수가 더 많아진 것이 이 때인데, 남성들이 군대로 차출되어 공석이 된 자리를 채우고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인력으로 기혼 여성이 동원된 것이다. 대공황 때는 일하는 아내가 ’남자의 직업을 뺏는다’는 이유로 공공연한 비난의 대상었지만, 전쟁 때에는 노동력 부족으로 일하는 아내가 칭송되었다. 이후로도 전쟁은 여성의 고용 형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는데, 전쟁 전에는 미혼의 젊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독점했으나, 전후에는 태반이 기혼자와 중년 여성 차지였다. 이밖에도 이혼율, 육아, 가사노동, 자아정체감 등 전쟁이 여성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고도 다양하다.

내가 <세계사를 뒤흔든 전쟁의 재발견>에서 기대한 것도 이런 종류의 새로운 시각이었다. 이 책을 쓴 김도균은 전쟁사 중에서도 유럽 근대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국내 몇 안 되는 군사 전문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다양한 활동으로 군사와 전쟁 정보를 대중과 교감하고 있다는 작가의 전쟁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전쟁 이야기이다. 책의 내용으로 볼 때, 그의 이야기는 "전쟁의 재발견"이라기보다 "전쟁, 그 숨겨진 뒷이야기"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가 들려주는 전쟁사의 초점은 스스로 밝히듯이 "전쟁 영웅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은 그것을 통해 이름 없이 스러져간 무수한 ’장삼이사’들이 미래 시대에게 남긴 유산 같은 것이다"라는 말 속에 있다. "우리가 아는 거시적인 역사에서 벗어나 당대를 산, 당대 전쟁의 이면에서 전쟁과 씨줄 날줄로 엮인 평범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들려줌으로써 전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한 부분임을 보여주려 했다"(들어가는 말 중에서).

또 하나 전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변화를 후대에 남겼다. 정체,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를 통틀어 지나간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는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전쟁을 구성하는 요소라 할 수 있는 군대, 무기, 전투, 군가의 재발견을 통해 전쟁 일상이 세계사의 큰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폈다."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파트는 1장 "세계사를 뒤흔든 천재적 조직술"(군대의 재발견)이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군대, 전쟁에조차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없신 여겼던 흑인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조직된 미국 최초의 흑인 부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본과의 전쟁을 통해 애국심을 증명해야 했던 일본계 2세로 편성된 미군의 442연대, 그리고 절대 살아돌아와서는 안 되는 사형수들로 구성된 소련의 죄수 부대(형벌 대대) 등. 약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참 쓸쓸한 일이다.

2장 "인류의 문명을 비약시킨 천재적 기술"(무기의 재발견), 3장 "극한의 상황에서 꽃피운 천재적 리더십"(전투의 재발견), 4장 "인간을 극한으로 몰고 간 천재적 심리술"(군가의 재발견)도 술술 재밌게 읽을 수 있다(전쟁 이야기를 재밌게 읽는다는 것이 왠지 좀 걸리기는 하지만).

싸우다 보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목적과 명분과 가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무기와 군가의 발전을, 발전으로 보아야 하는지 광기로 보아야 하는지 심히 고민스럽다. 전쟁은 모순과 이중성의 모체인가? 파괴와 재건, 싸워서 지켜지는 평화, 죽음으로 지켜야 하는 생명! 우수한 두뇌와 막대한 자금과 건장한 청춘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면 더 잘 죽일까,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완전하게 파괴할까를 위해 전력한다는 것도 슬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맞서 싸워야 하는 세력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그 진실을 모두가 알기 전에는 진정한 전쟁도, 진정한 승자도 없다고 생각한다.

2장 무기의 재발견에서 읽은 "잔혹한 무기의 등장"이라는 소제목을 가진 에피소드가 마음에 깊은 잔상을 남긴다. "1915년 4월 22일, 독일군이 대치하던 프랑스군에 역사상 처음으로 독가스를 살포했다. 노란 안개가 프랑스군 진지에 도달한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파인애플과 후추를 섞은 것 같은 냄새를 맡은 프랑스 군인들이 곧 폐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공포를 이기지 못한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참호 밖으로 뛰어나와 무작정 후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노란 안개는 연막탄이 아니라 염소였다"(114-115).

이 잔혹한 무기는 전쟁용 독가스 개발을 주도한 천재 과학자 프리츠 하버의 작품이다. 그런데 역시 유능한 화학자인 부인 클라라 하버는 독가스를 만드는 남편의 행동에 큰 고통을 받으며, 독가스 개발에서 손을 뗄 것을 여러 차례 부탁한다. 그러나 끝내 하버는 아내의 부탁을 저버리고, 1915년 5월 2일 남편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클라라는 권총 자살을 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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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120).

장영희 교수님을 잊으려면 평생이면 될까요?

"리브도, 윤이도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진짜 수퍼맨'이 되기 위해서, 
내 가족들, 내 학생들, 그리고 내 독자들의 '잘 싸워 주리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했던 용감한 싸움을 계속한다"(147).


교수님, 이 글을 읽는 지금은 
"다시 일어나 걷겠다던 수퍼맨 크리스토퍼 리브도, 
장애인 관련 법률을 공부해서 장애인들을 돕겠다고 했던 교수님의 친구 윤이도, 
그리고 "용감한 싸움을 계속했던" 교수님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올해는 잊어버리는 데 일생이 걸릴 분들이 유난히 우리 곁을 많이 떠나고 계셔
온 국민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충분히 열심히 그리고 용감하게 싸우셨습니다.
교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희망과 기적을 기억하겠습니다.
교수님이 아버지에게 했던 그 인사를, 저도 교수님께 하고 싶습니다.

"내일 뵈어요, 교수님."(49-53)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장영희 교수님의 일기장 같기도 하고,
제자에게 보내주는 고운 편지 같기도 하다.
장영희 교수님의 글은 쓸데 없이 어려운 용어도 없고,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비범한 단어도 없다.
그래서 글을 읽으며 주눅들 일도 없고, 머리를 싸매야 하는 일도 없다.
교수님의 이야기는 일상적인 대화체이다.
누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고, 누가 읽어도 행복할 수 있고, 
누가 읽어도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바로 그런 글이다.

마감일을 넘긴 논문을 끝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폭발 직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교수님의 첫 이야기에서 나는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2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논문을 완성했는데,
그것을 도둑 맞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며칠을 넋이 나간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워지낸 교수님은
다시 일어나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에 다시 논문을 끝냈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라고 내게 말해주시는 것 같다.
"괜찮아"(129-132).

내가 장영희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미국 장애인들의 귀감이 된 동양에서 온 어느 장애인 여교수의 투쟁'(26-30)이라는
바로 그 사건을 통해서이다.
아파트 건물에 하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7층 꼭대기에 살며 3주일간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교수님은
부동산 회사에 다른 아파트로 옮겨 달라고 건의를 했고,
이를 거절한 부동산 회사와 싸움을 해서 이긴 일로 매스컴이 떠들썩 했기 때문이다.
나는 굉장히 투쟁적이고 여전사 같은 날카롭고 냉정한 모습의 교수님을 상상했으나,
내가 처음 본 교수님의 화사한 웃음은 천진한 어린아이의 얼굴, 그것이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 겨우 겨우 마무리를 하는 일이 다반사고,
약속 시간에 늦는 일은 이미 정평이 나있고,
무위의 재능,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만은 넘치게 가졌다는 장영희 교수님,
그 소탈하고 느슨한 마음과 삶의 이야기가 
우리 마음에 희망의 흔적이 되고, 사랑의 흔적이 되고, 기적의 흔적을 남긴다.

"그날 밤 문득 잠을 깼다. (...)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에 천장의 흐릿한  얼룩이 보였다.
비가 샌 자국인가보다.
그런데 문득 그 얼룩이 미치도록 정겨웠다"(234).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내가 미치도록 버리고 싶은 일상을 미치도록 정겨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살아가라고,
그렇게 힘차게 외치는 장영희 교수님,
교수님은 내게 너무도 "좋은"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일생 동안 추억할 수 있는 책 한 권, 우리에게 남겨주어 감사합니다.
"내일 뵈어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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