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7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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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 전집

게오르크 뷔히너 지음 ㅣ 박종대 옮김 ㅣ 열린책들 펴냄


게오르크 뷔히너가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그의 어떤 작품들을 더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미완성작 보이체크의 결말을 어떻게 그렸을지 다른 작품들을 대입해 상상해 보려 해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의 생각을 도저히 유추해 낼 수 없었다. 단 4편의 글로 독일 문학사의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당시 '이상적인 인물들만' 원하고 다듬어진 문체만을 주를 이루던 독일문단에 결함이 있는 쾌락주의자 당통, 광인인 렌츠, 4계급의 보이체크등을 주인공으로 하였다. 또한 패쇄적인 닫힌 결말이 아닌 열린 결말의 개방적 형식의 글을 쓴다. 뷔히너가 살아있을때 출간된 단 한편인 당통의 죽음은 등장인물의 비속어와 작품의 구성이 엉성한 작품이라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이 후 자신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문학상이 생겨났으며 하인리히 뷜, 엘리아스 카네티, 귄터 그라스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은 뷔히너 문학상의 수상 소감에서 모두 자신들의 작품이 뷔히너의 영향을 받았다 말했다.


그의 작품들은 많은 천재들이 그러하듯 그가 살아있을 때는 빛을 보지 못했다. 작가로서의 재능은 물론 의학에도 그의 천재성은 발휘된다. 만약 그가 더 오랜 시간 의학 분야를 연구했다면 어떤 일들이 생겨났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안타까움이 들었다.


당통의 죽음과 헤센 지방의 전령은 그 당시 독일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그가 얼마나 독일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가슴에 품은 그는 독일 사회의 봉건체제에 대한 혁명의 필요성과 혁명이 가야 할 방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당통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생각 본다. 당시에도 검열이 심하여 일부 삭제되어 출간 되어야 할 정도로 정부의 감시가 심한 때에 정면으로 혁명에 대한 글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삭제되어 출간된 작품이지만 <냉소적 적나라함과 감동적 진실이 돋보이는 피투성이 토르소>라는 평이 붙었다. 헤센 지방의 전령 또한 민중들에게 혁명의 필요성을 간절히 호소하기 위한 글이다. 만약 그가 자신의 조국인 독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글들을 썼을까? 그의 짝사랑은 추방이라는 결과로 돌아와 도망자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자유의 집을 지어라.

뷔히너 전집 P321


뷔히너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자유 』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나 억압된 사회로 인해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펼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답답하였으리라.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그가 조금만 늦은 시대를 살았다면 우리는 변화한 역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에 대한 서평은 이미 앞의 서평들에 있어 적지 않았다. 단 4편뿐이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도 작품이 추구하는 의식은 많의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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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7 : 헤라클레스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7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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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7

메네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글 야니스 스테파니데스 그림 ㅣ 파랑새 펴냄


여러 버전의 그리스 로마신화 중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왜 파랑새 출판사 버전을 선택했을까 궁금했다. 책을 열고 저자 소개를 읽으니 이해가 되었다. 한 분야를 25년 동안 연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긴 시간 깊이 있게 연구한 신화를 뇌과학에 근거하여 12가지 키워드를 정하여 각 키워드를 신화 속 주인공들과 매치하였다.

12키워드증 7번째인 『성장』의 주인공은 「헤라클레스」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헤라클레스이지만 그가 겪은 12가지 고난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여 자주 읽었지만 책장을 덮으면 순식간에 휘발되어 기억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파랑새 출판사 버전은 그림과 함께 글이 있어 기억에 오래 남았다. 고난이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면 사람은 한 단계 성장한다. 12가지의 고난을 극복한 헤라클레스는 얼마나 성장하였을까?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답도 있는 법이다."

헤라클레스는 혼자 중얼거리며

그 답을 찾기 위해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스·로마 신화 P134-135


헤라클레스는 힘이 세어 힘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냈을 것 같지만 여섯 번째 과업을 해결할 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깊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열한 번째 과업을 해낼 때에 약속을 어긴 교활한 아틀라스에게 다시 하늘을 떠받치게 돌려줄 때도 지혜를 발휘했다. 그는 에우리스테우스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 해결할 수 없는 과업들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신들의 약속과 자신에게 지워진 운명 때문이기에 묵묵히 수행하였다.

12가지의 과업 중 열 번째 게리오네우스의 소 떼를 데리고 오는 과업이 기억에 남았다. 그리스에서 가장 먼 곳인 에리테이아섬에서 소떼를 데리고 돌아와야 하기에 다른 과업들 보다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다. 게리오네우스를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산적들이 소떼를 훔쳐 가는 일이 생긴다. 산적들을 죽이고 다시 길을 나서지만 죽은 산적들의 형제인 리그리아 왕과 리기스 군대를 만난다. 여타 다른 싸움들 보다 최악의 상황을 맞은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아버지 제우스시여!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도움을 단 한 번도 청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만은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나를 도와 적을 물리쳐 주소서!'라고 외치며 도움을 청한다. 이에 제우스는 돌 소나기를 내려 도와준다. 가끔 삶을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며 매달리곤 한다. 헤라클레스처럼 응답을 받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처한 상황을 토로할 곳이 있다면 조금은 마음의 무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왜 전설과도 같아 비현실적인 이야기 길고 긴 시간 이어져 오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었다. 12가지 키워드 중 8개의 키워드가 열렸다. 남아 있는 키워드들은 어떤 것일까? 읽지 못한 다른 책들을 찾아 읽으며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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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열린책들 세계문학 246
케이트 쇼팽 지음, 한애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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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케이트 쇼팽 지음 ㅣ 한애경 옮김 ㅣ열린책들 펴냄


사람을 「내것」 이라 하며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타인의 몸과 영혼이 자신의 것인 양 그의 삶을 마음대로 흔든다. 때로는 가장 사랑하는 이들도 남편이라는 아내라는 자식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손에 리모컨을 쥔 듯 조정한다. 21세기인 지금은 그러한 의식이 많이 희석되어 사라졌지만 애드가 살아가던 시대에는 사회적으로 보편된 관념이었다. 아내이자 한 여성이 그와 같은 깊이 뿌리내린 관념들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내면과 주변 세계와의 관계를 깨달아가며 당당히 독립된 개인으로 「각성」해 가는 과정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그 시대에 용인되기 힘든 허용범위를 넘기지는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로베르는 몰랐다.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각성 P243


한 장의 편지로 인하여 이른 결말은 조금 허탈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어 19세기의 애드나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었서일까? 그럼에도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애드나를 안아주고 싶다. 이제 독립의 첫걸음을 내디디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으나 이루지 못한다. 과거든 현재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독립을 하는 것을 쉽지 않다. 독립은 경제적 독립과 함께 정신적 독립도 이루어져야 한다. 애드나가 로베르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홀로 당당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면 각성의 마지막 단계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읽은 책들과 읽을 책들에 「이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를 따라가다 보면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사람들은 타인은 이해하고 배려하려 노력하지만 정작 자신은 소모품처럼 아무렇게나 소비한다. 소모품은 사용하다 보면 닳아 없어지나 비워지기에 다시 채워야 한다.


애드나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자신을 더 사랑해 주라고...


케이트 쇼팽 스스로는 페미니즘을 표방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각성」과 「한 시간 이야기」 등 대표작에서 남성 중심의 억압된 미국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을 드러내며 여성주의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쇼팽은 기 드 모파상의 열렬한 팬으로 그의 문체에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취향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모파상의 기법과 스타일을 초월한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단어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쇼팽의 작품을 우연히 여자로 태어난 한 개인이 일상적인 감상이라고 인식했지만. 제인 르 마퀀드는 쇼팽의 글을 새로운 페미니즘의 탄생이라 보았다. 마퀸드는 「쇼팽은 타자인, 여성에게 개인적인 정체성, 자아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가부장제를 훼손한다. 그녀의 작품은 이러한 여성의 깨달음을 기록한 것이다. 그녀의 삶의 '공식적인' 모습은 주변의 남자들에 의해 구축돼지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이야기 속 여성을 통해 재평가 받고 전복된다.'라고 평했다. 쇼팽은 여성의 힘을 믿었으며 그 믿음을 자신만의 문학적 창작 능력을 활용하여 표현했다. 이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소설을 통해 표현한 자신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 현실을 과장하는 허구적 표현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성적 욕망과 일탈을 그리며 결혼 제도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거센 반발을 받으면 출판이 금지되어 절판이 된다. 이후 그녀는 왕성하던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04년 뇌출혈로 사망한다. 쇼팽 사후 60여 년 후 페미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조명 받으며 재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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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4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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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식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ㅣ 연진희 옮김 ㅣ 민음사 펴냄


「아버지와 자식」의 작품 배경을 이해하려면 나폴레옹의 러시아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파리까지 진격해 나폴레옹에게 승리한 러시아의 귀족 출신 장교들은 서유럽의 정치와 문화, 문명 등을 접하고 그동안 폭압적이고 무질서하고 독단적인 전제정치의 지배를 받아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러시아를 변화시키려 하였으나 실패한 후 전제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무기력해진다.


1840년대 나폴레옹 전쟁과 혁명 등 격변의 러시아를 격은 20대 청년들이 시간이 흘러 아버지 세대가 된다. 그들이 니콜라이와 파벨이다. 서유럽의 자유주의 이념에 빠진 니콜라이는 푸시킨의 시를 읽고 첼로를 켜고 농노들을 해방시킨다. 파벨은 전형적이 귀족 장교의 모습으로 동생인 니콜라이의 집에 머물면서도 도시 귀족의 모습을 버리지 않는다. 니콜라이의 아들 아르카지가 그의 친구 바자로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바자로프는 과학과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니힐리스트로 사회 변화에 기여하지 않는 예술도 거부하며 니콜라이와 파벨과 첨예한 갈등을 빚는다. 다른 시대를 살아온 가치관들이 부딪치며 파벨과 바자로프는 날선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부모와 지식의 세대갈등은 지금 현재도 진행형이다. 「라떼는」을 말하며 너희는 아무것도 몰라라는 자세를 고수하는 세대와 매분 매초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평행선을 달리는 두 세대가 이해하는 순간은 없는 것일까? 왜 시간이 흘러 자신이 경멸하며 거부했던 아버지 세대가 되어서야 예전 부모가 했던 말들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일까? 평행선을 달리는 두 세대를 이어주는 것은 서로 간의 「이해」이다. 하지만 자신의 말만을 하는 두 세대에게 '서로 이해하세요'로 설득할 수 있었다면 세대갈등의 문제는 오래전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책을 마치고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바자로프였다. 출간 당시에도 보수주의, 급진주의, 슬라브주의, 서구주의 등 모두 진영으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으며 논쟁의 중심에 선다. 보수주의는 젊은 혁명가가 분명한 바자로프를 너무 이상적인 인물로 그렸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급진주의는 바자로프의 무절제하고 무례한 면들로 자신들을 회화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수많은 아류 작품들이 나온다. 체르니셉스키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설을 발표하면 투르게네프에게 반박했다. 이 소설을 통해 혁명가의 롤 모델을 제시한다. 도스토옙스키도 「아버지와 자식」을 겨냥해 「악령」을 발표한다. 이렇듯 수많은 아류 작품들이 계속 나온 것은 그 당시의 러시아에 던진 문제의식이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이반 투르게네프는 도스토엡스키나 톨스토이에 가려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시사적이고 의식이 있는 작품들로 예리한 심리 묘사 등으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정밀하게 계산된 과장된 억제, 균형, 예술적 가치에 대한 고려 등으로 동시대 가장 유명한 대가들의 작품들 뚜렷이 구분되어 진다.


투르게네프는 「아버지와 자식」을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세상을 떠난 벨린스키에게 헌정했다. 문학은 삶과 문학의 통일성을 주장하며 진리와 탐구를 문학의 주요 과제 꼽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진실을 증언하는 것이라며 벨린스키가 제기한 작가의 사회적 책임을 잊은 적이 없었다.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지금도 억압된 현실과 저항하는 민중이 있는 곳에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로 느끼게 만드는 보편성이 있다. 과거인 아버지 세대와 지금 세대인 자식의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 해설을 찾아보고 배경을 이해하고 작품에 담긴 의도와 생각 등을 알아가다 보면 생각의 깊이가 확장되는 것 같다. 고전문학은 각주 해설이 없다며 맥락을 알기가 어렵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성취감이나 만족감과 함께 작가가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독자마다 찾은 해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그 해답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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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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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ㅣ 민음사 엮음


일본에서의 콜센터 근무라는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띄어 서평단 신청을 하였다. 예전에 신랑과 온 오프라인 매장을 몇 년 운영하며 상담업무를 한 적이 있어 더 관심이 갔다. 전화나 게시판의 고객 응대는 1차 먼저 하는데 7-8년의 기간 중 유독 기억이 남은 고객이 있는데 제품을 받은 분은 집에 있는 아내분이셨는데 설치를 하다 에러가 나니 회사에 있는 남편분에게 전화를 하셨다. 아내분의 전화를 받은 남편분은 제품 게시판에 심한 글을 올리시고 전화 통화에서도 안 좋은 말을 하셨다. 몇 번의 통화로 아내분께서 설치 과정 중 잘못 이해하신 부분이 있어 안내해 드리고 남편분께 사과를 받고 게시글은 삭제한 적이 있다. 설치 과정 중 어려운 부분은 제품 안내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설치 중 오류는 종종 있는 일이긴 하나 이런 경우는 처음 겪은 일이라 당황을 했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콜센터에 전화를 해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늦어지는 배송, 다른 주소지의 배송 등 문제가 생길 때 콜센터에 전화를 한다. 혹은 궁금한 내용들이 있을 때도 전화를 한다. 콜센터에 전화를 한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서로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마주 본다.


「마주 본다」는 서로의 얼굴을 본다는 것이다. 폭언을 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상대방이 눈앞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상대에게 무례하게 말을 하고 화를 낸다고 하여 처한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상담사와 뒤에 대기 중인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게 하는 일이다.


"이치고이치에 같은 거구먼. "찾아보니, 한자로 일기일회(一期一會),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을 뜻하는 사자성어였다.

콜센터의 말 P114


많은 주제 키워드 중 기억에 남아 책의 끝장을 덮고도 여운이 계속된 단어였다. 콜센터는 한번 만났던 고객을 다시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만남이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는 모르는 것이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인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만남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친정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는 말이 있었다. '네가 한 행동이나 말이 모두 너에게만 돌아온다면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된다. 하지만 그 행동과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되돌아갈 수도 있다.'라며 언제나 행동과 말에 신중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무심코 타인에게 상처 입히는 행동이나 말들이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 신랑, 아이들에게 되돌아온다는 상상을 하면 몸서리 쳐진다. 그럼에도 가끔은 연결이 늦은 콜센터나 곧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짜증이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릴랙스」를 속으로 되뇌는 연습을 해 볼까 한다.


하루에 몇 번을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말할까 궁금증이 문득 들었다. 「감사합니다」는 자주 하는 것 같지만 「죄송합니다」는 많이 하지 않으며 「사과드립니다」는 더욱 하지 않는 표현이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보다 사과드립니다는 좀 더 정중하고 묵직한 느낌이 든다. 가끔은 자신의 실수가 아닐 때도 사과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콜센터에서는 더욱 그러한 경우가 많다. 작가는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아도 '이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다.'라고 판단될 때 진심을 담지 않아도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새로운 사과의 이유를 발견하였다 한다. 본인의 실수가 아닌 경우에도 사과를 하여야 할 때가 있다. 늘「진심 어린 사과」라는 말을 강조하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라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더해 이 책이 평범한 말 속에 원석 같은 마음을 숨긴 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콜센터의 말 P14


책을 시작하는 작가의 프롤로그 글 중 마지막 문장을 보고 글을 읽어가며 곳곳에 숨어있는 작은 위로를 찾아가며 읽은 동안 알게 모르게 상처받았던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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