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2 열린책들 세계문학 279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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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재독에도 작은 아씨들은 항상 새롭다. 네 자매가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마치 부인이 보내는 미소가 입가에 머물러 있다. 존과 메그의 쌍둥이의 양육은 온 가족이 함께 한다. 지금은 이러한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 사람이 필요하다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현명한 마치 부인을 어머니로 둔 메그는 그녀의 지혜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존과의 예기치 못한 갈등도 마치 부인의 조언으로 슬기롭게 극복한다.


우리는 이제 어렸을 때처럼 장난을 치던 친구가

될 수는 없지만 가족이 될 거고,

평생 서로 사랑하고 도울 거야. 그렇지. 로리?

작은 아씨들2 P356


한때 자신의 전부라 생각하고 결코 변치 않은 사랑이라 생각했던 조를 다시 만난 로이는 자신이 현재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불꽃처럼 격렬히 사랑했던 연인도 돌아서면 북극의 얼음보다 더 차가워진다. 고백은 했으나 시작도 못한 사랑에 힘들어하던 로이는 에이미를 다시 만나고 진정한 사랑을 알아간다. 이제 조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것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베스를 떠나보내고 슬픔에 빠져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치가의 사람들과 로런스가의 사람들, 베스를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베스에 대한 따스한 기억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베스가 떠나 슬퍼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어느 날들 중 하루의 늘 상 일어나는 일처럼 지나갔다. 친정 엄마가 떠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순간순간 그리움이 밀려오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곁에 있는 남편과 두 아이가 든든히 붙잡아 준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일 것이다.


메그는 쌍둥이 두 아이와 존과 함께 자신의 비둘기집을 안락하게 가꾸어 나갈 것이며, 베스는 아픔이 없는 곳에서 언젠가 만날 가족을 기다리고 있으며, 에이미는 마술에 대한 꿈을 놓치않고 노력하며, 조는 처음 원했던 허공의 성채와는 다른지만 자신만의 작은 성을 가꾸게 되었다. 네 자매의 삶은 늘 함께인 듯 하나 각자가 원하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드라마 영화 등으로 제작되어 끊임없이 다양한 이야기로 변해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가족의 다정함과 누군가 의지할 이가 필요하다면 조용히 책장을 넘겨보면 좋은 듯하다. 모닥불이 따스하게 피어오르는 거실에 포근한 의자에 앉아 피아노 연주를 듣다 보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모든 일들이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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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사일러스
조셉 셰리던 르 파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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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소설은 처음으로 접했다. 평소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자주 읽는데 다른 느낌이었다.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8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조금 압도되었다. 하지만 첫 장을 시작하고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엉클 사일러스라는 제목과 달리 주인공은 미스 모드이다. 모드가 사일러스 삼촌이 있는 바트럼-호프로 가며 일어나는 일들이 중심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명령을 따르는 모드는 처음에는 삼촌을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다. 하지만 사일러스 삼촌과 더들리에 의해 목숨을 위협을 받는다.


우리는 거칠지만 로맨틱한 젊은 녀석이 어리석은

고통에 빠져 하는 이야기에 너무 가혹하게 대해서는 안 된단다.

엉클 사일러스 P594


더들리가 모드에게 청혼을?! 사일러스 삼촌과 더들리가 공모한 것일까? 더들리는 진짜 모드에게 반한 것인지 사촌의 재산이 탐이 나는 것인지. 탐욕은 항상 사람의 이성을 상실하게 한다. 더들리가 조금이라도 이상적인 인물이었다면 갱생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강요된 감정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공포에 빠지게도 한다.


무서움 많고 소심하던 모드가 차크씨의 유골을 찾아 탐험을 감행한다. 그 탐험 끝에 찾은 것에 숨이 훅 멈췄다. 도대체 왜 또 나타난 것인지! 마담 드 루지에르! 프랑스에 있어야 하는 그녀가 왜 다시 바트럼-호프의 비밀스러운 방에서 유령처럼 나타난 것인가?! 사일러스 삼촌이 살인하였다 의심받는 차크씨의 죽음의 비밀은 풀 수 있을까? 밀실의 비밀이 궁금하다.

엉클 사일러스는 공포 스릴러 소설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뜻과 자신을 가둔 거대한 저택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는 모드의 여정 그 안에는 19세기 여성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모드의 탈출에는 레이디 놀리스와 밀리, 메그의 도움이 있었다. 그들의 협력과 도움을 통해 여성들이 가진 힘을 이야기한다.


셰리던 르 파누는 아일랜드의 고딕, 미스터리, 호러 소설가이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소설과 초자연적 장르 분야의 가장 중요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비평가들로부터 생생한 인물 구현, 대가다운 내러티브 기법 구사, 디테일이 살아있는 무대, 공포를 자아내는 불길한 전조의 전개. 개연성 있는 초자연적인 요소의 활용 등을 칭송받았다. 또한 초기 고딕과 대별되는 특징으로 인물의 예리한 심리 묘사를 들 수 있다. 그가 '최초의 심리 스릴러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대표작인 「엉클 사일러스」와 「카밀라」 「 교회 묘지 옆에 있는 집」은 닫힌 방 미스터리로 평가받는다.


미스터리나 공포물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이라면 만족도는 100프로 이상일 것이다. 추리물이나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아도 팽팽한 긴강감 넘치는 서스펜스를 느끼고 싶다면 꼭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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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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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명절에는 경주에서 친정식구들이 모였다. 코로나 이전에도 몇 년을 명절에 모이지 못해 엄마가 계신 곳을 들렀다 가까운 곳에서 1박을 하기로 하여 경주 보문 단지 안에 펜션을 잡았다. 기차로 내려가며 읽으려 몇 권의 책을 가져갔다. 책 소개를 읽으니 기차역과 기차에 대한 이야기라 가방에 넣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책을 펼쳤다.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합실의 밤 풍경은 생경했다. 어린 시절부터 기차를 꽤 많이 탔지만 긴 연착을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문명의 세계로부터 아득히 떨어진

이 작은 마을들에서 삶이란 기다림과 포기, 신발 깊숙한 곳의

축축한 온기일 따름이니까. 눈보라에 휩싸인

이 기차역은 그저 이 나라 역사의 축소판이며,

뿌리 깊은 그 본성의 축소판이다.

어느 삶의 음악 P16-17


나는 대합실의 사람들이 통제되어 자신의 권리조차 찾지 못하고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하여 자신들의 삶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신문지를 깔고 누운 노인, 아이를 달래는 젊은 여자의 나지막한 목소리, 젊은 군인들과 매춘부의 흥정하는 소리 등이 뒤섞인 한 밤의 대합실의 정경에 애써 눈을 돌리던 나에게 들려온 피아노 소리. 그 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기차역 끝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그리고 우연히 그 노인과 기차에서 동행하게 된다. 노인이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기찻길과 같이 굽이 굽어 한 곡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듯하다.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들 중 글로 읽는 것뿐이라도 전해지는 전쟁의 참혹함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감시되던 암울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처절했다. 죽은 이들 사이를 다니면 새로운 신분을 찾기 위해 죽은 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눈앞에서 목격한 죽음을 바라보며, 직접 총을 들고 살아있는 타인을 향해 총을 쏘는 자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이름도 잃어버린 이를 살아가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다음 순간 음악이 터져 나왔다.

그 기세에 이제까지의 의심과 부조리와

소음이 송두리째 실려 갔다.

어느 삶의 음악 P118-119


기대했던 사랑이 산산 조각나고 남은 것이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었을까? 피아노를 연주하는 알렉세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신의 가짜 신분이 들킬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주를 한 것일까? 그 모든 두려움과 공포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피아노가 가진 의미가 대단한 것일까? 어떤 음악은 한 개인에게 삶이 이 되기도 한다. 알렉세이는 자신의 꿈이었으나 이루지 못했던 피아노 연주회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러시아에서 태어났어나 프랑스로 망명한 안드레이 마킨은 자신의 작품 모두를 프랑스어로 쓴다. 그의 「프랑스 유언」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많다. 화자의 삶을 이중 분열적 대상인 동시에 배척의 대상인 프랑스라는 유산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어나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 자신을 나타내기도 한다. 「프랑스 유언」은 역사상 최초로 콩쿠르상, 콩쿠르데 리센상, 메디치상을 모두 수상하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는다. 2001년 발표한 「어느 삶의 음악」은 RTL-Lire 상을 수상하였다.


삶이 고단하여 공감과 위로가 받고 싶다면 기찻길위에서 열리는 연주회로의 초대에 응해 음악을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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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습관 - 글쓰기가 어려운 너에게
이시카와 유키 지음, 이현욱 옮김 / 뜨인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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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나 연초에 다이어리와 스케줄러를 구입한다. 처음 한동안은 의욕적으로 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점점 뜸해지다 어느 순간 쓰지 않고 책꽂이 한쪽에 방치가 되기 일쑤이다. 가계부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쓰는 습관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이번에는 제대로 습관을 들여서 꾸준히 기록을 해보자 의욕이 넘쳤다. 그리고 책장 넘기며 조금 당혹스러웠다.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던 내용들도 보였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차이를 깨달았다.


글쓰기 고민 자가 진단표는 흥미로웠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분명 습관이 제대로 몸에 베이지 않아 2장부터 읽어야 한다 생각했는데 질문을 따라 답의 화살표 대로 짚어가니 3장 '소재'를 얻자에 도착했다. 글쓰기 습관은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처음 의욕적으로 다이어리를 쓰다보면 매일매일이 비슷한 일상의 되풀이에 글을 쓸 소재가 부족하긴 했다. 책을 차근차근 모두 읽고 나면 책장 한구석에 잊혀져 있던 다이어라를 꺼내야겠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매일은 아니라도 꾸준히 쓰려 노력해야겠다.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좀처럼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한테는

'일단 시작하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쓰는 습관 P89


몇 개월 전부터 독서카페에서 서평단 활동을 하고 있다. 보고 싶은 책들을 신청해서 책을 받고 나면 이 책은 요걸 끝내고 시작하고 저 책은 저걸 끝내고 시작하고 이런저런 계획들을 세우지만 제대로 되지가 않는다. 그러다 서평 마감시간을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책을 받으면 일단 시작부터 하는 것이 좋을듯하다. 저자가 이야기한 또 다른 방법인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적용하면 언제 시작하던 상관없을 듯하다. 시간에 쫓기듯 서평을 쓴 글들을 나중에 읽어보면 부족한 부분들이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제대로 쓰이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저자가 이야기한 여러 습관들 중 필요한 습관들은 따로 메모하여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어야겠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보다 끝을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의 80점이 누군가에게는 100점이 될 수 있다.

쓰는 습관 P46


책을 읽고 바로 서평을 쓰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 제목이나 첫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마냥 멍하니 있다 나중에 써야지 하고 컴퓨터 앞에서 물러난다. 원하는 완벽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일단 시작하기'도 못하는 것이다. 제목을 정하지 못하면 책 제목만 쓰도 되고 책 내용이나 떠오르는 아무 문장이 시작을 하면 되는 것을 어렵게 고민한다. 그리고 다 작성하면 몇 번이나 맞춤법 검사를 하고 다시 읽기를 몇 번이나 하며 문법이나 다른 오류가 있는지 끊임없이 체크한다. 서평 하나를 끝내는 데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어차피 내가 쓴 글이니까 뭘 어떻게 하든 자유입니다. 작가가 "끝!" 하고 펜을 내려놓으면 끝입니다.」라는 저자의 글이 여유를 갖게 한다.

사람들 성향이나 생활패턴 등은 각양각색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제시한 많은 습관의 방법들을 모두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가장 필요하다 생각하는 습관들부터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쓰는 습관에 익숙해질 것이다. 작가 지망생이든 블로그 운영자들 일반인이든 꾸준히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한다. 단 이 책은 글을 잘 쓰는 방법 등은 없다. 그러한 것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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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만 봐도 닳는 것
임강유 지음 / 읽고싶은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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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정을 찾았다. 몇 년 만에 간 할머니 산소에 도착 후차에서 내려 본 풍경에 미소가 지어졌다. 표지와 너무나 닳은 풍경에 핸드폰을 꺼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용돈으로 받은 돈을 몇 번이나 꼬깃꼬깃 접어 시집오실 때부터 가지고 계시던 자그마한 비단 지갑에 넣어두셨다가 나에게만 살짝 꺼내 주셨다. 어릴 때 타지에 자주 일을 하러 가시는 아버지와 가끔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시면 할머니가 오셔서 보살펴 주셨다. 그때 끓여주셨던 된장찌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가 않는다.


오랜만에 든 시집 제목을 가만히 읊조려보며 바라만 봐도 닳을 정도로 그리움과 애달픔이 드는 것들이 있는지 떠올려보았다. 엄마의 미소, 할머니의 된장찌개, 아빠의 손, 남편의 어깨, 큰아들의 작업화 등이 스쳐 지나갔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엄마, 점점 잊혀가는 그리움의 맛, 손마디가 굵어진 손가락, 밤마다 아픈 어깨에 뒤척이며 잠을 청하는 옆자리, 졸업도 하기 전부터 쉼 없이 일하는 작업화. 이제는 볼 수 없어서 그리워서, 볼 수 있지만 너무 애달파서 마음이 닳아간다.


달빛, 벗 삼아


세월의 유수는 짐작기도 어려워

흐르는 강물과도 같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향을 잃은

돛단배 위에 머문답니다.


누군가 내게 물었습니다.

"왜 노를 젓지 않습니까?"


제 대답은 바람을 노 삼아

삶을 여행하는 중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다 해가 지고

오후 여섯시가 일곱 시를 만나는 시점

하늘이 보랗게 물들었습니다.


저의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점점 세월의 유수를 따라 흐릅니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일부.

오늘 밤은 제게는 전부가 된 일부겠지요.


잔잔한 호숫가 위에 떠있는 돛단배에서

달빛을 벗 삼는 그림자가 되어서 말입니다.


바라만 봐도 닳는 것 P38-39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세상살이를 겪으며 쌓여가는 경험이 더해진 감정은 이리저리 부딪치며 닳아서 깎여간다. 조금은 지친 마음에 문득 찾아온 시집 한 권이 단비 같다. 최근 소설이나 에세이의 긴 호흡의 책들 위주로 읽었다. 그러한 책들은 생각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러다 가끔은 따라가기 벅차 숨이 찰 때도 있다. 쉼표 같은 시 한 구절이 여유로움을 가져다준다.


현대 시문학 다카시 문학상을 수상한 「바라만 봐도 닳는 것」은 할머니에 대한 시이다. '금지옥엽 바라만 봐도 닳는 날 키우느라 닳아버린 우리 할머니의 허리.'에서 느껴지는 할머니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문득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초등 2-3학년 때쯤이었을까.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주머니를 뒤적이시더니 봉지 두 개를 내미셨다. 그러나 더운 여름 날씨에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 막대만 봉지 안에 남아 있었다. 손주들 먹이려 귀한 아이스케키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오시는 동안 녹아내리는지도 모르셨던 것이다. 잊혀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그리운 모습들이 알음알음 깨어난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겠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들에 잊힌 그리운 추억을 꺼내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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