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인터-리뷰 - SIRO ; 시로 읽는 마음, 그 기록과 응답
조대한.최가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파적 보편성>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고 각자의 주관에 따라 쓰는 서평도 이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같은 책을 읽어도 다양한 생각의 글들이 나오고 자기 나름의 책에 대해 편파인 감상을 적는다. 공정하지 못한 것과 모든 것에 두루 미친다는 두 가지 뜻이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그럼에도 묘하게 어울리며 납득이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 편의 시에 대하여 조대한 평론가와 최가은 평론가가 함께 이야기하고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형식이다. 이런 방법으로 시를 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는 단어 하나하나에 함축된 의미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함의된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는 것이다. 두 분이 만들었다는 블로그 <시로>를 찾는데 많이 헤매었다. 시로, SIRO와 평론가 두 분의 이름 등등으로 검색하여 겨우 찾았다. 책에 실리지 않은 작품 리뷰도 있어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화려한 뉴욕의 밤거리를 걷다가

검고 반짝이는 구두를 샀네.

미숙한 기관사는 정차와 달리기를 반복하고

탭댄스를 추듯 슬픔을 모르는 사람의 발을 살짝 밟기 위해

시, 인터-리뷰 P24


주민현 작가의 <브루클린, 맨해튼, 천국으로 가는 다리>의 인터뷰는 작가의 세계관(?)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친구가 맨해튼 다리 아래에서 찍어서 보내준 영상 하나에서 이러한 단어들이 나왔다는 게 존경스럽다. 시의 조금 앞 부분 중 <25층에서 오랜 욕실 전화에 시달린 사람이 기절하거나 승강기를 고치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해.>의 이들은 뉴스의 단신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진 이들이다. 금방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슬픔을 잊어가는 사람의 발을 밟아 일깨워주고 싶어 한다. <이 비극적인 도시의 "슬픔을 모르는 사람"의 무심한 "발을 살짝 밟기 위해서."라는 조재한 평론가의 마지막 문장에 짧은 순간 여러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파이프, 구두, 영화, 뉴욕, 맨해튼, 브루클린 다리, 공휴일의 텅 빈 월스트리트는 옛 뉴욕을 모습을 떠올리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단어들이 가진 「은유」들의 연결은 시에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 주민현 작가는 주연들보다 조연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궁금하다고 한다. 가끔 잠깐 등장하고 사라지는 엑스트라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취향이라 살짝 웃었다. <페이드아웃과 페이드인>이라는 단어는 시를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연결되게 하며 머릿속에서 재생되어지게 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맨허튼다리 아래 서 있는 느낌을 들게 하였다.


블라인드를 내린다.


베개를 움켜쥔다.


내 것이 아닌 건 이토록 부드러워

다른 꿈 다른 느낌으로 갈 수 있다고 믿은 적 있다.

시, 인터-리뷰 P121


김연덕 작가의 <웅크리기 껴안기>에 나오는 동전, 초콜릿, 음악, 새벽, 시트, 먼지, 블라인드, 베개 등은 너무나 익숙한 단어들이다. 따로이 있던 단어들이 시 안으로 들어가 연결이 되어지면 문장이 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단어 사이사이의 조사들이 평범한 글자와 어우러지며 읽는 이는 나름의 감정을 보게 된다. 침대에 누워 어스름히 밝아 오는 새벽 풍경이 떠오르게 하는 시이다. <시트에 이는 먼지가 시트와 빛으로 나뉘는 시간>이라는 문장도 좋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줄기와 침대 사이를 먼지들이 부유하며 떠다니는 공간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일 때가 많다. 간밤에 닫아 둔 내려진 블라인드, 부드러운 베개, 무거운 머리. 일어나고 싶지 않아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꿈으로 넘어가 더 꿈속에 있고 싶은 것일까?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아침 풍경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소설은 긴 문장으로 상황 등 여러 설명들이 정보를 전달해 준다. 하지만 시는 짧은 문장들 안에 은유와 함축 등을 담아 두기에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전문적인 평론가의 리뷰와 작가와의 인터뷰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이러한 시도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짧게 짧게 등장하였다. 그것만으로 궁금증을 일으키는 시들이나 책이 있어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게 했다.


시가 이상하게 어렵다고 생각되어지며 손이 가지 않을 때가 있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분들에겐 더없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감정이 우선입니다 - 삶을 바꾸는 사소하지만 강력한 습관
다마모토 쥰이치 지음, 민혜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의 행복한 감정을 1000억에 파시겠습니까? P8


책의 시작이 다소 충격적이다. 감정을 팔다니... 내 감정이 우선입니다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조금은 배려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책 소개를 읽고 흥미가 생겨 서평단 신청을 하였다. 코로나가 길어지며 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어들면서 우울증에 빠지는 이들이 늘었다. 자신의 감정도 컨트롤되지 않는 상황에서 TV에서는 코로나 감염자, 중증 환자와 사망자의 수치가 연일 방송되며 사회 전체에 깔린 암울한 감정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어떤 방법들을 이야기할지 궁금해진다.


저자인 다마모토 쥰이치는 전형적인 일본인으로 독일로 파견근무를 가게 된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문화가 있다. 그리고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어'라며 자신을 억누르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저자는 독일인들의 자유로운 업무 방식이나 휴가를 즐기는 등 여유로운 생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처음에는 그들의 모습에 반감을 가졌지만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면서 업무능력도 효율적인 모습에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기분은 내가 정한다. P22


기분이 좋으면 사람, 일, 돈, 정보, 운이 저절로 따라온다?! 저자가 독일에서 근무하며 얻은 깨달음이다. 그 후 그 무엇보다 자신의 기분을 최우선으로 두기로 마음먹는다. 평소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고 눈치가 없다. 그래서 대화 중에 다른 이들의 표정이나 말투, 목소리 등의 변화에 집중하면 기분을 살핀다. 말을 하고서도 혹시 실수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고 뒤늦게 아! 이럴 땐 이렇게 대답했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를 할 때가 많다. 다른 이들에 의해 감정이 끌려다니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축」을 언어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자기 축은 심지, 미션, 비젼 세 가지를 구체화하는 것이다. 「심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미션과 비전을 설정할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무엇을 하고 싶은지, 미래의 모습을 꿈꿀 수 있을까? 자신의 심지를 명확하게 알고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은 반복해서 연습해야 한다. 「미션」은 과거의 경험으로 인하여 생긴 삶에 대한 목적을 뜻한다. 초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해다면 괴롭힘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라는 것이 미션이 될 수도 있다. 미션을 꾸준히 실천하며 살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것이 「비젼」이다. 심지, 미션, 비젼을 확실히 언어화하면 「자신 축」이 확고해지며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게 되며 뜻대로 할 수 있다.


저자는 클라이언트에게 잠들기 전 <오늘 하루 중 몇 퍼센트나 기분 좋게 보냈는지> 돌아보라 한다. 그러면 클라이언트는 <아무리 기분이 좋은 날도 90퍼센트 정도>라고 대답한다. 100프로 기분이 좋은 완벽한 날을 보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위의 사진처럼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적어보고 현재 자기 기분을 정확히 파악한다. 그리고 좋은 기분 우선법 세 가지 기술로 감정을 분류한다.


이후 고통스럽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내기 위해 좋은 기분을 회복하는 5단계 스탭에 따라간다. 첫 번째 스탭의 <지금 기분이 어때?>라며 자신에게 물어보는 질문에서부터 기분이 업되는 것 같다. 둘째는 왜 기분이 나빠졌는지 원인을 생각해 보고 세 번째로 그 원인이 생긴 이유를 찾는다. 네 번째로 만약 이 기분으로 살다가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상상을 해보고 다섯째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관점을 바꾼다. 5단계의 스탭을 차례대로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나쁜 기분은 사라지게 된다.


책에는 이 밖에도 자신의 감정을 우선하며 자기 축을 찾아가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코로나가 국내에서 발생하기 한 달 전인 2019년 1월에 이사를 하였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였으나 원래 집순이라 집에만 있어 감정 변화는 별로 없었다 생각했다. 그러다 5월경 신랑이 지인이 돌보던 길냥이가 아기 고양이를 낳았는데 데려오자고 했다. 고양이는 조금 무서워했지만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 확 달라졌다. 있으나 마나 하던 가족단톡방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성인이 된 두 아들과도 대화가 늘었다. 그리고 가만히 돌이켜보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새로운 공간에서 감정적으로 위축되고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신랑 눈에는 그것이 보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자기 축을 찾아가는 과정은 쉬운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기 축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모른다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고 나빠진 감정을 회복하지 못해 우울증이 올 수 있고 건강도 나빠질 수 있다. 책에는 저자가 클라이언트들을 상담한 여러 사례들이 나와 이해가 쉬웠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금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기 전에 자기 축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군대 간 큰아들이나 이제 대학생인 작은아들에게 권하고 싶다. 다른 이의 눈치를 보고 휘둘리는 사람,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사람, 자신이 원하는 삶과 비젼의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연
요코제키 다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의문스러운 건, 과연 구라타 씨가 전화를 받은 게 우연이었냐 하는 점이에요.  P71


무사시다이라 시청에서 근무하던 구라타 유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남자는 얼마 전 이곳으로 이사 온 바바 히토미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개인정보 때문에 알려 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는 끈질기고 교묘하게 물어보며 유미에게 주소의 힌트를 얻게 된다. 며칠 후 주소를 알려 준 히토미가 살해당한다. 히토미는 지하 아이돌(인디 아이돌) 멤버로 활동 중이었다. 유미는 주소를 정확히 알려 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실수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자책한다. 그리고 시청에도 사실이 알려져 그만두게 된다. 시간이 흐른 후 히토미의 살인범은 잡힌다.


그리고 3년 후 아버지의 지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일하는 유미를 히토미의 팬이었던 호시야가 찾아온다. 그는 사건을 다시 검증해 달라 부탁한다. 이미 범인이 잡힌 사건을 왜 다시 검증하려는 것일까? 그런 유미에게 호시야는 <"정말로 우연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본다. 수납과에 근무는 총 스물두 명 중 점심시간에 근무하던 정직원은 3명, 범인의 전화를 받을 확률은 3/1이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었다?!


전부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깨달은 순간 호시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p97


호시야는 히토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히토미의 팬으로서 그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살인사건에 대해 알아갈수록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가 죽기 전 보낸 DM에 제대로 답해주지 못한 것이 가슴을 누른다. 자신 때문에 그녀가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건을 파헤친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해와, 3년 후등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호시야에 의해 사건이 하나하나 재구성된다.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 작은 조각들은 우연이었을까? 치밀히 계산되어진 계획이었을까?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는 말이 있다. 만약 겹쳐진 우연들이 누군가가 의도한 것이라면 그것도 필연이라 할 수 있을까?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범인은 정말 의외의 인물이었다. 읽는 동안 용의선상에 올렸던 몇 명이 있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가 범인이었지만 그가 범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드러난 마지막 진실은 정말 반전이었다.


히가시노 게이코의 극찬을 받으며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요쿄제키 다이의 데뷔 10주년 작품다웠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얽히며 일어난 과거의 일들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과연 이 악연에 관계된 이들 중 그 끝의 결과를 알 수 있는 이가 있었을까?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말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죄의 인과성>이다. 인과란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자신의 했던 일이 현재 상황에 영향을 미칠 때가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무언가 실수하거나 잘못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생각되는 순간 그 상황을 바로잡으려 노력했다면 다른 현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400여 페이지 가량 되는 첫 장을 열고 몇 시간을 꼼짝없이 앉아 완독을 하였다.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 마니아라면 어쩌면 조금 단조롭다 생각할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반전을 접하게 된다면 반드시 앞장을 다시 뒤적이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쿠시마 - 일본 원자력 발전의 수상한 역사와 후쿠시마 대재앙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안혜림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와 일본은 다른가?라는 궁금증에 책을 선택했다. 지진은 이제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는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자연재해로 일어난 재난일 텐데 저자는 왜 일본의 역사를 150여 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것일까 하는 의문들은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해가 되었으며 일본의 뿌리 깊은 권위적인 관료주의에 경악하였다.


일본의 전력 산업은 민간기업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 상황이 오게 되며 은행에서의 대출이 많아지며 불안을 느낀 은행들이 전력회사들에 전문 경영인들을 보내며 전기 엔지니어들은 자신이 창립한 회사 경영에서 점점 밀려난다. 새로운 경영인들은 재무관리에는 뛰어났지만 기술에서는 무지했다. 그리고 안전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하면 1920년대 후 놀라운 성장세를 보인다.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며 엄청난 피해를 본 일본의 국민들은 원자력에 대하여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언론계의 거물이었던 70세의 쇼리키 마쓰타로가 10여 년간 객관적인 좌파 신문 『요미우리신문』을 인수하여 원자력에 대한 여론을 조성해나가며 바뀌어가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닛폰티브이를 설립한다. 이후 미국의 원자력 위원을 초대한 것과 원자력 전시에 대한 홍보에 신문과 방송을 이용한다. 전시회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리게 된다. 원자력으로 인해 저렴한 전기등 여러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매력에 국민들의 여론은 점점 원자력을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그러한 경우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히라이는 이렇게 엄청난 일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동료들은 도호쿠전력 사장에게 12미터 벽이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쓰나미도 막아 낼 수 있다고 보고했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던 히라이는 14.8미터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중략 - 도코전력과 비교하면 감탄을 자아내는 접근법이었다.

P107


이런 구조가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면 당연하다. 전체적인 체계가 복잡하게 얽힌 스파게티처럼 난장판이었다. 정부는 나무만 보였고 숲은 볼 수 없었다. 관 하나하나까지 사소한 모든 것에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과 부서가 정해져 있었지만 발전소 전체의 안전을 관리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P134


쓰나미는 형식적으로 언급되었다. "지진"이라는 단어가 1,675회 사용되었지만 "쓰나미"는 참고문헌과 색인 일부에 겨우 25회 등장한다.

P173


고베대학교의 거침없는 지진학자 이시바시 가쓰히코는 1997년 10월 발행된 일본판 『사이언스』에 다시 무시무시한 예측을 내놓았다. 그는 14년 뒤 후쿠시마에서 발생할 사건들의 개요를 거의 완벽하게 정리했다.

P192


여기서 핵심은 모든 회사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규정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P227


1986년 4월 28일 소련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나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 일본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년 가까이 이 사고를 연구했다. 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는 기존의 인력 훈련과 사고 예방조치로 충분하다는 통상산업성의 1987년 8월 보고서의 내용을 반복하며 체르노빌과 일본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본의 원자로 기술 자체는 결함이 없다고 한다. 그 결과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1960년 1월 일본의 첫 원자력 발전소인 도카이 원자력 발전소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1971년 3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첫 상업영업을 시작할 때까지 무쓰, 도카이 원전 발전소, 쓰루가 발전소, 몬주 등에서 크고 작은 원전 사고들이 있었지만 모두 무시된다.


정부는 총괄 책임자를 두지 않고 민간 기업들에게 자율적인 규제로 모든 규정을 「권고사항」으로 처리하지만 기업들을 이를 무시한다. 기업들은 원자력 발전소들이 작동을 멈추면 자신들이 이익이 줄어들까 봐 위험을 알리는 목서리를 헛소리로 치부한다.


위의 모든 것을 무시하였지만 2007년 7월 16일 가리와 앞바다에서 규모 6.6의 강진이 일어나 도쿄전력의 가시와자카리와 발전소가 중지되었을 때는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지진의 위험성은 정부, 정당, 기업 등과 결탁한 NHK TV,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의 일본 주류 언론의 침묵으로 조용히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전 도쿄전력의 한 직원은 원자력 공학 콘퍼런스에서 "쓰나미 현상의 불확정으로 인해 여전히 쓰나미의 높이가 설계 높이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지만 도쿄전력의 경영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2011년 3월 9일 오전 10시 45분 일본 동쪽 해안에서 16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지진은 60센티미터의 거대한 쓰나미를 만들어낸다. 869년의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한지 정확히 1,142년이 흘렀다.

 P259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인 듯 보이나 분명한 인재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사고 수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예방할 수 있는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 사이 지진이 잦아지고 있으면 강도도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일본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원자력 발전소나 연구가 일본과 달리 정부 주도하에 있지만 불량 부품 조달 등의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일본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10여 년 전이다. 기억 속에서 잊혀가며 느슨해지기 딱 좋은 시기이기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원자력에 대한 전문 지식이 전혀 없어 어렵지는 않을까 하였으나 여러 원리나 구조에 대해 일반인들도 알기 쉬게 풀어쓰려 한 노력이 많아 거의 대부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이기에 한 번쯤은 읽어본다면 원자력에 대한 경고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샤 페이지터너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러시아의 스탈린과 독일의 나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폴란드의 히틀러의 침공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남기를 선택한 사람들. 죽음 앞에서도 떠나지 못한 각각의 이유들이 뒤엉켜 가슴 시리게 한다.


어린 시절 헤어졌던 소년 소녀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다. 그 둘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기억하고 생각했다. 무엇이 그는 그녀에게, 그녀는 그에게 이끌었을까? 크로크말나 가의 10번지가 아론과 쇼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였기에 그곳에 남기를 택했을까?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린 상태였고, 그것을 실행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이유는 나 자신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중략-

나 자신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에 질문을 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쇼샤 P240


전통적인 유대인 랍비의 표본 같은 아버지를 둔 아론은 작가가 된다.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는 듯 어기는 듯 아슬아슬한 그의 모습은 위기의 유대인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책 전체에 흐르는 아론의 심리를 가장 잘 나타낸 문장이 아닌가 한다. 어떤 일들에 대해 결정하기를 강요받을 때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은지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계속해서 질문한다. 아론은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


쇼샤는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만 가장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모든 이들의 비웃음을 받는 쇼샤를 선택한 것은 사랑이었을까? 다른 무엇이었을까? 아론의 선택을 받고 그와 함께 점점 변해가는 쇼샤의 모습은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성장해 가는 모습이 흐뭇하면서도 왠지 모를 씁쓸함을 안기게 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가진 순수하고 깨끗함은 사라지지 않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아론은 어느 순간 자신이 쇼샤를 선택한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그들이 받아 마땅한 벌을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쇼샤 P303


마지막 장을 덮고 책을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떠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 아이작 싱거는 왜 많은 등장인물들 중 하이믈을 살아남아 있게 했을까가 정말 궁금하다. 이 궁금증 때문에 다시 읽어야겠다. 책을 다 읽고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다시 읽어보면 된다.

마지막 페이지의 대화는 큰 재난으로 인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보았지만 점점 무감해져 가고 잊혀가고 있는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