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다케나카 치하루 지음, 노재명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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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전쟁'이란, 인명을 해치는 수위의 사회 갈등 전반을 지칭한다. 그러니까 저자의 관점으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전쟁 뿐만 아니라 폭동, 테러, 무장세력이나 정부에 의한 숙청과 탄압까지도 폭넓은 범주에서 모두 전쟁인 것. 책에 따르면, 세계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와 위험하고 가난한 사회로 나뉘며, 대개 전쟁은 후자의 사회를 끼고 일어난다. 전쟁의 배후에는 반드시 군대, 경찰, 반정부 무장조직, 국제테러조직, 마피아조직 등의 폭력전문집단이 존재하며, 특히 가난한 사회의 폭력집단이 활용하는 폭력의 도구(무기, 자금, 정보, 네트워크)는 주로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가 생산하고 수출한 것에 의존한다. 전쟁은 이런 식으로 양 사회 간에 자본과 자원이 순환하는 하나의 거대한 장(場)으로서 기능한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의 대표격은 미국이다. 이 책은 전쟁이라고 하는 장(場)에서 미국이 보여주는 패턴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1)미국은 자신의 '적'을 봉쇄하기 위해 자신을 대신하여 전쟁을 벌일 국가나 무장세력을 지원한다. (2)미국의 군사원조를 받은 국가의 군대나 무장조직이 성장한다. 이들이 벌이는 전쟁이나 내전이 장기간 지속된다. 많은 무기가 유입되자 현지사회는 폭력화된다. (3)'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미국은 동맹국에 대한 지원을 멈추고 손을 뗀다. 때로는 지원을 멈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어제의 동맹국을 오늘의 새로운 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토사구팽식 외교정책의 대상으로 이슬람 세력이 많이 이용된다. 이슬람 무장단체가 미국에 테러하는 게 이런 까닭. (4)미국이 지원을 멈추고 나면 분쟁지역은 내전 상태로 방치되어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가 된다.  

한편, 이 책에서는 현대세계의 폭력이 주로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를 끼고 일어난다는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의 주민들은 국제적 규모의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을 마치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재앙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는 그들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방어체계를 강화하고, 때로는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 선제공격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를 개조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마저 품게 된다고.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행태들이 현대세계의 폭력을 극복하려는 인류의 자세 치고는 대단히 이기적인 면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안전하고 풍요로운 세계'란 본디 자기 안의 '위험하고 더러운 요소'를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 전가함으로써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저자는 국제사회의 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에 국제기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1)무력충돌을 막고 (2)치안과 정치 제도를 정비하며 (3)점진적으로 군축을 감행하고 (4)사회기반을 재건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위험하고 가난한 세계' 내부에 만연한 '폭력의 문화'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폭력을 만들어 내는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외부 세력의 개입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지구 저편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오늘 내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하루를 보낸 데 대한 필연적인 반대급부일 수 있다는 것, 국제사회의 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폭력에 찌든 사회구조의 내부적인 변혁이 궁극의 과제일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 시민운동이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해서 간과하게 되는 명제들을 절실하게 곱씹어보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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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비틀스 살림지식총서 255
고영탁 지음 / 살림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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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후반 영국의 소도시 리버풀에서는 십대 청소년들의 밴드활동이 성행했는데, 비틀즈 역시 여기서 탄생한다. 초반에 산전수전을 겪긴 하지만 결국 히트곡 제조기가 되어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누리게 된 비틀즈. 그러나 이들도 나이를 먹고 에고가 성숙해감에 따라 저마다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멤버들마다 예술적 지향이 제각각이 된 것. 폴 매카트니의 음악 취향은 감상적이고 대중적인 반면, 존 레넌은 점점 거칠고 전위적인 음악을 추구하게 된다. 한편, 조지 해리슨은 인도 문화에 심취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음악적 기량에 있어 멤버들에게 늘 무시당하던 링고 스타는 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봉착하고 반항하기 시작한다. 비틀즈는 결국, 머리 넷 달린 괴물이 되어 해체가 불가피한 상황에 이른다. 그룹 해체 후 멤버들은 저마다 추구하는 음악의 길을 걷게 되지만, 비틀즈는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만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는다, 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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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09-05-2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링고스타가 녹음해 놓은 드러밍이 도저히 못들을 지경이라 폴이 밤늦게 녹음실에서 다시 연주해서 음반내고 뭐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근데 비틀즈 해체의 주된 원인은 역시 폴과 존의 불화때문 아닌가요? 제가 링고였다면, 어떻게건 해체는 막아보려고 난리를 쳤을 것 같은데 말이죠..(링고옹을 너무 무시하는 발언인진 모르겠습니다만ㅋㅎ)

수양 2012-10-05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의 불화도 불화였지만 다른 멤버들 각각의 상황도 이 불화를 봉합할 만한 처지가 못되었던 듯해요. 링고스타는 해체를 막아볼려고 난리라도 쳤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그는 자기가 다른 비틀즈 멤버들한테 묻혀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착각한게 아닌지 싶어요...
 
이중톈 미학강의
이중텐 지음, 곽수경 옮김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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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절하고 자상한 미학입문서. 미학의 기본 개념과 전반적인 범주를 폭넓게 조명하고 있다. 서론부인 1~2장까지는 지나치게 친절해서 장황하기까지 한 설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3장 칸트미학 이후부터는 오히려 그 친절함에 한없이 감사하게 된다.     

2. 내가 지난번에 시끄럽게 정리해놨던 크로체의 인간의 정신활동을 이 책 4장에서는 아래처럼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직관-인식활동-특수사물에 대한 인식-예술과 심미-미추
논리-인식활동-일반사물에 대한 인식-과학과 철학-참과 거짓
공리-실천활동-특수목적에 대한 추구-경제학-이해
도덕-실천적활동-일반목적에 대한 추구-윤리학-선악

3. 크로체에게 있어 '직관은 곧 표현'이다. 표현되지 못한 직관은 있을 수도 없다. 생각은 하는데 구현하지 못했다는 것은 졸렬한 변명일 뿐이다. (물론, 이에 대해 크로체는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조차도 이미 하나의 내재적 표현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크로체에게는 표현 형식에 있어서의 연마나 훈련은 인식활동을 정상적으로 수행해 나가기 위해 당연히 이미 기본적으로 마스터 되어있어야 할 전제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직관이 100% 표현으로 승화되어, 직관이 표현이고 표현이 직관인 그런 경지는 선천적으로 표현력을 타고난 천재가 아니고서야... 예술가는 그야말로 천재라는 얘기인가.   

4. 4장에 나오는 몇가지 심미 이론들: 립스의 감정이입론(의인화나 연상과는 다른 의미임. 주체가 정감을 대상에게 이입함으로써 물아가 체험하는 동일한 심리과정. 천인합일과 정경합일의 경지), 벌로프의 심리적 거리설(주체와 대상 사이에 적당한 심리적 거리가 유지되고 있을 때만 대상이 주체에 대해 비로소 미적일 수 있음), 동일구조론(외물의 구조와 외물로부터 느끼는 정감은 동일구조다. 일종의 미메시스 같은 게 아닐까?)

5. 7장 예술의 원론적인 의미에 대한 언급 일부 요약: (종교나 과학이 '형식 있는 의미'인데 반해) 예술은 '의미 있는 형식'이다. 예술에서의 의미란 '정감'을 말한다. 즉, 예술은 정감을 대상화한 형식이다. 예술은 형식을 통해 정감을 전달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동정과 공명을 체험하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기능이다. 정감의 공명, 즉 동정감, 이것은 곧 칸트가 말한 공통감(=공리를 초월하고 개념이 아니면서 목적을 갖지 않는 주관적 보편성)과 마찬가지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인류에게는 왜 이런 보편적 느낌이 존재하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확증이기 때문이다. 정감은 인간의 확증이다. 정감을 체험하는 가운데 우리는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다. "정감이란 인간과 인간 간의 상호 확증의 심리 체험이다. 정감이 상호 확증인 이상 그것은 본질적으로 반드시 동정감이어야 하며 반드시 이론적, 논리적으로 각 개인의 정감이 모두 같기를 요구한다." 예술은 결국, 정감을 통해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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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마이크로 코스모스
베르너 지퍼.크리스티안 베버 지음, 전은경 옮김, 손영숙 감수 / 들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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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론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를 규정할 수 없다. 종교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자아라는 것은 무너지기 쉬운 허상의 개념일 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인류가 지금껏 자기 탐구에 천착해온 결과로서 일구어낸 철학과 문학과 예술의 업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인류의 모든 성취 가운데서도 특히 문학이나 예술과 같은 분야의 경우에는 에고이즘이야말로 창조의 중요한 원천이 되어왔지 않나.

2 깨달음의 상태라는 것은 진화된 인류에게서 나타나는 높은 수준의 인식능력일까, 아니면 그저 뇌파 이상이나 간질발작증세의 일종일까. 둘 중 하나이건 혹은 둘 다이건 간에ㅡ 유사 이래로 동서양의 수많은 현인들이 이러한 경지를 체험해왔고, 그것을 종교적으로든(우파니샤드, 불교, 禪사상) 철학적으로든(니체, 융, 하이데거 등) 끊임없이 표현해왔다는 것은 몹시 흥미로운 사실이다. 동양종교에서 궁극의 경지로 통하는 직관적 영성 체험이란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일까. 마약에 탐닉했던 예술가들이 도취상태에서 경험한 환각과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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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비틀즈
헌터 데이비스 지음, 이형주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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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와 주위 인물들이 모두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그들의 인터뷰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씌여진 (게다가 출판하기 전에 인터뷰이의 검열까지 다 거친) 책이다보니 약간은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공인 전기라기보다는 인터뷰집에 가까운책이지만, 저자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벽에 붙은 파리의 심정으로 최대한 비틀즈를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 비틀즈의 모든 것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인터뷰어의 정성이 느껴지는 책인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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