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갑에서 한 갑 반,
개비 수로 말하면 20 개비에서 30 개비 정도의 담배를 피웠다.
물론 이 흡연 양은 매우 평온하고 지극히 표준적인 상황에서 계측된 양이다.
즉 다툼, 녹화, 편집, 촬영, 객기, 음주, 분노, 파탄, 까칠, 기쁨 등과 같은
비표준적 상황에서는 정확한 흡연 양을 측정할 수 없다는 뜻.
각설하고 내 몸은 하루에 최소 스무 개비의 담배가 공급하는
니코틴의 양에 맞춰져 있는 셈이다.
이 최소 공급량에 미치지 못하면 나는 패닉 상태에 빠져
“텍사스 소떼”(sic!!)처럼 몰려오는 우울감과 맞서야 했다.
단순한 황폐함, 우울감 뿐 아니라
목마름, 두통과 같은 물리적 고통에도 시달리기도 했다.
담배를 사기 위해 왕복 10km를 걸었던 밤도 있었다.
마치 막장까지 간 약쟁이의 고백 같지만 사실이다.
담배를 줄였다. 하루 12 개비로.
내가 타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니코틴 양.
처음 담배를 줄이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대꾸도 안했다.
내 조연출은 아..예 하며 픽 웃더니 바쁘다고 가버렸다.
사람들의 냉담과 냉소 속에서 시작된
나의 고독한 ’절연 투쟁’이 두달 넘어가고 있다.
이유는 없다. 그냥 줄이고 싶었다.
나는 승리할 것이다.
아내는 매일 전하는 나의 승전보에 여전히 대꾸도 없고
막돼먹은 조연출놈은 여전히 바쁘다고만 하지만
나는 승리할 것이다.
하루 12 개비.
세상에 하루 반갑의 담배로 살 수 있다니.
아이고 아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