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는 불행한가 -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대한민국 교육을 말하다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교육 3부작 시리즈 1
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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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거창고 십계명을 보고, 이 학교는 어떤 곳일까, 누가 설립자이고 교장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풀무학교나 간디학교 등 몇몇 특별한 학교의 이름을 들어봤지만, 십계명을 접하기 전까지는 이 학교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십계명은 대개 이 사회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는 정반대의 것을 담고 있었다. 월급이 적은 쪽, 원하는 곳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쪽, 승진 기회가 없는 쪽, 장래성이 없는 쪽, 단두대가 기다리는 쪽으로 가라. 마지막 대목에선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책은, 지금은 퇴임한 이 학교의 전성은 전 교장이 썼다.  

  전성은 교장은 "국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인재양성교육'에는 반대"하며, "학교나 국가는 본질적으로 '학생이라는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시험으로 학생들을 등급화시키는 것을 반대하고, 학생들이 돈이나 명예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반대한다. "사회의 상식에 순응하여 그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성공하는 개인을 만들어 내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는 국가는 국가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를 '학교'를 통해 길러내려 하지 말고, 학교가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 곳곳에는 거창고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그는 오랜 세월 이 학교 재단과 함께 하면서 고난을 겪었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일정 수의 학생들을 걸러내어 삼청교육대에 보내라는 지시를 거부하였고, 이 때문에 교장과 이사장이 교육청에 수차례 불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권력과 마주하고도 이사장과 교장, 교감은 꿋꿋하게 학교의 이념과 교육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하였으며, 이를 극복하였다. 어느 때는 교장이 교육감의 직권으로 해고되기도 했지만, '직권 남용'이라며 법원에 호소하여 이긴 바도 있다. 전성은 교장은 이와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버무려 학교 교육, 나아가 교육을 말한다. 

  전체적으로, '왜 학교는 불행한가'라는 제목에서 비롯된 독자의 기대감과는 조금 어긋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저자의 글쓰기는 조금은 빈곤해 보이고 논리는 거칠다. 큰 제목보다는 부제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대한민국 교육을 말하다'라는 제목이 글의 내용과 부합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며 자신과 동료 교사들이 지켜낸 교육 철학을 회상하며 젊은 교사들 또는 교육 관계자들을 앞에 놓고 연설하는 것 같지만, 주입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과 그 이유에 대해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학교 또는 교육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더라도 현실에 대한 비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현실의 어떠어떠한 모습들을 대놓고 비판하기보다는 자신의 철학을 주로 이야기하면서 독자가 그와 반대되는 현실의 모습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책을 구입하고 읽기 전까지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내용과 구성이지만, 이 책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생각하게 되었고, 이해하였다.  

  이 학교는 어떻게 하면 재단 적립금을 늘릴까, 드러나지 않고 돈을 빼돌릴 수 있을까, 장사를 잘 할 수 있을까, 명문대에 학생들을 많이 보낼 수 있을까, 학생들을 말 잘 듣게 만들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는 다수의 사립학교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사립학교이다. 거창고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이 학교가 다른 사립학교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무엇일까 싶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학교 행사들과 안내 공지글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직업선택의 십계, 교육 목표, 학교 생활의 기숙사 부문을 보면 다른 교육 철학을 가지고 운영됨을 눈치챌 수 있다.

  참교육을 하는 학교도 교사도 보기 힘든 시대다. 이 학교는 1953년부터 숱한 어려움을 겪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 책 어딘가에서는 이 학교를 거쳐간 교사가 천 명을 넘는다 했다. 현재 이 학교의 교직원 36명. 이전에도 아무리 많아도 그 이상을 넘기진 않았을 것이다. 교사가 자주 바뀌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그만큼 외부의 압력, 학교 운영 자금 조달 등 면에서 어려움이 많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교사 개인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것이고, 압력 없이 소신을 가지고 자유롭게 가르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학교의 역대 교장들과 현 교장, 이사진의 교육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이 책은 참교육을 걸어온 자신들의 길을 보여줌으로써 교육이, 학교가 가야 할 바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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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28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한참을 만지막대고 있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제목은 무척 끌리는데, 목차랑 내용 설명을 보니 조금 달라보여서요.
그런데 아프님의 리뷰가 딱 제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날 되셔여~

마늘빵 2011-05-28 20:11   좋아요 0 | URL
네, 잠시 망설이셨다면 그 느낌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거 감안하고 읽으면 괜찮습니다. ^^

망상증 환자 2011-08-0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교만과 편견 차라리 아집과 폭력 그 당시 정서로서도 편협한 사고와 자만으로 가득찬 인물이었다 책의 내용으로 보더라도 긍정적이기 보다는 자신의 자랑이니 타인의 비하적인 표현들이 많다 그는 먼저 자신의 폭력에 대해 그리고 좌절한 아이들에 대해 참회부터 하는게 도리일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훌륭하다 그리고 세상은 썩었다 그는 죽어서야 머리를 숙일 어른이다 또 말할 것이다 그는 늘 정치적인 인물이다 이제 남의 학교 정치 사회 문화 등에비판보다는 스스로 인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마늘빵 2011-07-26 11:04   좋아요 0 | URL
제 글에 달 댓글이 아니라, 저자에게 이야기하셔야 할 듯합니다.
 
왜 학교는 불행한가 -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대한민국 교육을 말하다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교육 3부작 시리즈 1
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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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제3계명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제4계명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제5계명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제6계명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제7계명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제8계명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제9계명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제10계명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0쪽

공자나 부처, 예수와 소크라테스 같은 분들이 제자들을 모아 가르친 사립 교육은 국립 교육에 대한 저항으로, 역사가 나아갈 방향, 즉 진리를 찾는 순례로써 시작되었다. 그분들 교육의 특징은 통치 계급을 위해 필요한 인재의 양성이 아니었다. 어지러운 세상을 평안케 하는 길, 곧 진리 탐구가 교육의 목적이었다. 사립학교는 그 기원과 성격을 볼 때, 그분들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존재 이유가 없다.
-39쪽

잘난 사람은 못난 사람보다 더 많은 돈과 힘이라는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데올로기를 보편화하고 상식화한다. 그리고 잘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엄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 작업이 바로 시험을 통해 아이들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이라고 믿는다.
-60쪽

학교는 사회의 상식에 순응하여 그 사회의 기준에 맞춰 성공하는 개인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 국가는 사회의 상식에 맞서 학교가 그러한 곳이 되도록 돕는 일을 해야 한다.
-100쪽

어떤 일이 있어도 교사직으로 받는 월급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교사라는 직을 월급 이외의 수입을 올리는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교육 활동의 대가로, 월급 이외의 돈을 받으면 그 돈은 독약이다. 많든 적든 이유 없는 돈을 받는 순간 인간은 돈의 노예가 된다. 돈의 노예가 되면 양심이 힘을 잃는다.
양심은 내 속에서 나를 지켜보면서 내가 가야 하는 길과 가서는 안 되는 길을 가르쳐주는 내적 힘이며, 참 나다. 그 힘이 있기에 내가 남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남과 하나가 되는 것을 참사랑이라 한다. 양심이 힘을 잃으면 참사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참사랑을 하지 못하는 교사는 제대로 된 교사가 아니다.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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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우주 - 세기의 책벌레들이 펼치는 책과 책이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
움베르토 에코.장필리프 드 토낙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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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을 특정한 단어로 칭하기엔 너무나 활동 반경이 넓고 깊다. 그의 이름을 불러야 그가 가 간섭하고 있는 모든 활동들을 포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움베르트 에코. 이미 수년 전에 <논문 잘 쓰는 방법>, <장미의 이름>으로 확 빨려들었지만, 이후에 접한 다른 작품들에서는 전과 같이 지적 자극을 받거나 작품을 보고 놀라진 않았다. <장미의 이름>의 경우, 그 책을 해설하여 각주를 단 책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소설이지만 소설이라기엔 마냥 편히 읽을 수는 없는. 이후의 저작들에선 그런 강렬함이 없었다. 

  꾸준히 에코의 저작을 담당하여 출간하고 있는 열린책들에서 이번에 <책의 우주>가 나왔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꽤 많이 팔리고 있다. 책이 팔린다면 그건 순전히 이 책의 내용 중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에코 때문일 것. 움베르트 에코와 함께 대담을 나눈 이는, 국내에선 잘 모르겠지만, 그의 이력을 봤을 때 프랑스에선 꽤 인지도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장클로드 카리에르. 프랑스 출생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다. 그리고 둘의 만남을 주선하여 사회를 본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 장필리프 드 토낙.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이 책의 내용을 구성했다.  

  제목에 '책'이라는 단어를 넣었으니 이 책이 과거와 지금, 미래의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확히는 '책'이라 지칭되지만 다른 물적 형태를 띤 것들에 대해서 말한다. 에코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위협하는 지금, 만일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음악의 저장고 예를 드는데, 예전에 테잎에 음악을 담아 들었다가 테잎이 늘어지고, 찢어지는 등 훼손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후에 씨디가 나와서 마치 늘어지는 등 훼손됨 없이 음악을 처음 담았던 그대로 들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지금은 씨디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식하는 즈음에 이르렀다는 것.  

  '책의 우주'라는 제목은 무척 추상적이다.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하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종이책과 전자책만을 이야기하기에는 이 책은 너무 두껍고, 그 외에 다른 이야기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잡스러운 수다가 많이 들어가 있다. 한 장에서 한 가지 이야기만 파고들기보다는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주제와 범위를 정하지 않고 대담자 마음대로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읽고나도 뭘 읽었는지 알 수 없게 한다. 흐릿하다. 에코의 기존 저작들 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과 같은 수다집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내게 그의 수다 스타일은 별로 맞지 않는 듯하다. 다 읽었지만 남는 게 별로 없었다.    

  덧)

  이 책의 중간을 넘어섰을 즈음에 나오는 카리에르의 말이다. "(아스완 댐 건설 위원회에) 철학자도, 이집트학 전문가도 없었던 것입니다. 미셀 세르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기자는 세르가 놀라는 걸 보고 오히려 놀라는 거예요. 그는 물었습니다. "이런 위원회에 철학자가 무슨 필요가 있나요? 미셀 세르는 이렇게 대답했죠. "여기에 이집트학 전문가가 빠졌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겠소?" 

  몇 년 전 철학자 탁석산에게서 들은 것 같다. 그도 비슷한 지적을 했었는데 철학과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무언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 항상 철학자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철학자는 해당 자리에서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그만의 역할이 있다는 것. 세르의 마지막 되물음에서 철학자의 역할이 별거 아니네,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세르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세르는 '철학자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 단 이때의 '철학자'는 단순히 철학을 전공하고 공부한 '철학 전공자' 또는 '철학 교수'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의 '철학자'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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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moon 2011-05-20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부분의 마지막 세 문장이 와닿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아프님:)
언젠가 신문에서도 읽은 적 있습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에 관해서.
한 번 사서 읽을까 했지만, 수다집이라니 약간 망설여지네요.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다는-_-;

마늘빵 2011-05-20 22:30   좋아요 0 | URL
문님 오랫만이에요. ^^ 워낙 요새 전자책의 등장과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이 쏠리다보니 저도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서 사봤는데 그에 관한 부분은 별로 없었어요. 에코는 수다만으로도 많이 팔리죠.

마녀고양이 2011-05-20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어떤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받은 인상이 맞았군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읽다 포기한 적이 있었는데
저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고 구매하지(읽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거든요.. 홍홍.

마늘빵 2011-05-20 22:31   좋아요 0 | URL
^^ 스타일의 문제인거 같아요. 이런 대담이 맞으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 제게는 아니었습니다.

2011-05-22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3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친 등록금의 나라 - 반값 등록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지금+여기 1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지음 / 개마고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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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여진이 '반값 등록금'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반값 등록금. 이것은 2006년 선거 때 한나라당에서 이주호 의원이 먼저 내세운 정책이었다. 그러나, 진보적 주장을 해왔던 정당과 단체들이 '좋은 정책을 내놓았다'고 호응해주니 이 반응이 부담스러웠던 건지, 그들은 이 공약은 "등록금을 반으로 깎는 게 아니라 부담을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란 해명을 내놓았다. 주장은 괜찮았는데 이를 실현할 방안이 없자 슬그머니 말을 바꾼 것이다. 선심성 공약을 내세워 인기 좀 끌어보려다가 정작 인기가 있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어떻게 할 건데, 물으니 실은 그게 아니고, 말을 흐리면서 빠지는 수법이다.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가는 시대. 전쟁 이후부터 7,8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이야기다. 대학은 많고 학생수는 줄어들어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입시철이 되면 인 서울의 대학들과 지역 국립 대학들이 아니고서는 교수까지 몸소 학생들을 모시러 고등학교에 영업하러 오는 풍경이 벌어진다. 대학이 많은 탓이다. 누구나 대학 갈 수 있지만 여전히 대학에 가지 않는, 아니 못 가는 사람들도 있다. 성적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 왜 가고자 하는가? 한 때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입시생이라면 누구나 대학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가야 할 타당한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굳이 가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주변에 떠밀려 입학하여 공부한 뒤에는 갈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지금, 대학은 초등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하고, 중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듯 자연스럽게, 고등학생이 그곳에 진학해야 하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지만 대학에 가야 할지를 묻는 학생이나 부모는 거의 없다. 대학은 이미 '국민 교육'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왜 그런가? 이 사회가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업무도, 일단 대학 졸업장을 필요로 한다. 마치, 기업에서 영어를 전혀 사용할 일이 없음에도 영어 성적과 영어 실력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업무는 따로 정해져 있고, 소수지만, 기업의 꼴을 갖춘 회사들은 모두 영어 성적을 요구한다. 국민 교육의 영역으로 들어갔으나 국가의 지원은 없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개인이 알아서 등록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진 것 없는 다수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까마득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비싸면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른 상황들이 연출된다. 돈이 있는 집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만 해서 자신의 스펙을 쌓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해 마련했다고 하는 등록금 대비 얼마 안 되는 성적 장학금을 가져간다. 왜냐면 다른 걱정 안 하고 공부만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없는 집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할 때에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씩 하면서 돈을 벌어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이들이 일과 공부 두 가지 영역을 다 잡기는 힘들 것이다. 당연히 성적 장학금은 이들의 것이 아니다. 어쩌다 그들이 일과 장학금 둘 다 잡았다고 하더라도, 학점과 관계 없이 취직을 위해 스펙을 쌓는 데까지 기울일 여력은 없다.  

  등록금이 비싸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지만, 정작 등록금을 내야 하는 다수의 학생들은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지 않는다. 등록금을 본인이 아닌 부모님이 내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 체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사회 문제에 그다지 관심 있는 이들이 없어서일 수도, 집이 좀 살아서 그 정도 내는 데 크게 부담이 안 될 수도 있고, 문제는 느끼지만 등록금 투쟁하기 위해 싸우는 시간이 아까워서 차라리 그 시간에 내 스펙 쌓고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타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소수의 학생들 중에서도 자신이 직접 거리로 발벗고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불행히도 등록금을 내야 하는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가세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여러 근거를 들면서 고등록금을 옹호하는 주장을 펼친다. 그렇게 받지 않으면 대학이 유지가 안 된다, 건물을 지어야 한다, 다 학생들에게 투자하는 돈이다 등등 내세우지만, 이것은 대개 열어보면 근거가 아니라 핑계나 변명일 뿐이다. 캠퍼스를 짓겠다며 땅을 사놓고 놀리면서 땅값 올리기에 바쁜 재단도 있고, 등록금으로 주식놀이 하다가 날려먹은 재단도 있다. 이렇게 손실이라도 입게 되면 대학은 여태 모은 금액을 다시 맞추고자 등록금을 더 올려서 빈 구멍을 메우려 든다. 이는 회계 처리가 불분명하여 학교 법인의 재산이 아닌 설립자 개인의 재산으로 편입되는 경우도 부지기수. 교과부와 정부는 이걸 알지만 모른 척 한다.    

  이 책에는 등록금과 관련한 대학 주체와 보수 정치인들의 주장이 나와 있다. 그리고, 그들이 고등록금을 유지해야 한다고, 또는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 하나씩하나씩 구체적이고 깔끔하게 반박해낸다. 더 이상 재반론이 있을 수 없도록. 대중들이 가장 혹하는 그들의 주장은, 등록금을 내리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 이 책을 읽고난 뒤에는 교육의 질은 등록금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교육의 질은 등록금이 폭등하는 동안에도 열심히 떨어졌다. 교수 1인당 학생수, 한 강의실에 200명씩이나 들어가 강사나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고 집중도 되지 않는 교양 수업들, 낡고 닳은 기자재 등 말도 못한다.

  반값 등록금은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공부하고픈 이들이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험한 일을 하다 목숨을 잃고, 때로는 자살로 내몰리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누구에게도.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반값 등록금이 어떻게, 왜 반값 등록금이 됐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단순히 교육을 받는 이의 입장에서 액수가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닌, 교육은 공공재이고 따라서 국가와 사회가 이를 부담하는 것이 옳다는 의식, 나아가 내가 싼 값에 교육을 받으니 이런 여건을 마련해준 사회에 뭔가 기여를 해야겠다는 의식을 갖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학생들은 그동안 대학을 공동체 삶을 학습하고 체험함으로써 건강한 시민의식을 일깨우는 공간이 아닌 개인의 출세 수단으로 여겨왔다. 국가가 교육을 책임져주지 않고 개인에게 맡기는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등록금 문제가 무상교육으로써 해결된다면 학생들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할 것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이들의 책임의식이 크게 고양되는 것이야말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소득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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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1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뉴스에서,
등록금 투쟁으로 여학생들이 삭발하는 것을 보니
같은 여자로서 짜안했습니다. ㅠ

당연히 사학재단 배불리는 등록금은 낮춰져야 합니다.
공부하고픈 사람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대학이라는 문제에 다다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모든 국민이 대학에 가는 나라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이 맞을까
모든 국민이 특히 일류 대학을 가서, 그것으로 모자라 스펙을 만들려고 혈안이 된
이 나라가 제정신인 나라일까 하고 말입니다. 결국 교육도 교육이지만
일자리와 임금 격차의 문제로 되돌아 오게 되어버립니다, 저는.

좋은 리뷰입니다, 즐거운 날되세요, 아프님~

마늘빵 2011-05-18 17:47   좋아요 0 | URL
매년 그같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정작 등록금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냥 자연스러운 일들로 치부하겠죠. 모두 대학에 갈 필요도 없죠, 사실. 대학 수를 확 줄이고, 교수의 학생 1인당 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면서, 입시단과학원 같이 수백명씩 한 강의실에 집어넣는 수업을 없애야 해요. 무상급식 실현했듯 이것도 실현하면 좋겠습니다.

saint236 2011-05-1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이 책 읽고 같은 생각을. 교육은 공공재인데 마치 사유재로 여기는 듯 합니다.

마늘빵 2011-05-18 17:47   좋아요 0 | URL
공공재 맞습니다. 설립자와 총장들은 자기 재산인줄 알아요. 그래서 정부가 통폐합하려고 하면 돈 달라고 하고.

루쉰P 2011-06-1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달의 당선작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들어와서 읽고 갑니다. ^^ 리뷰의 논리의 정연함이 참으로 좋네요. 저도 등록금 문제에 대해 생각은 많이 하지만 그것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하다 보니 방관자와 같은 심정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치만 리뷰를 읽으며 결국은 언제가 나 역시 저 문제로 똑같은 고통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니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32살이라서 나중에 아이들을 키우면 분명 다시 만날 문제라고 여겨져서요. ^^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마늘빵 2011-06-11 23:46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다른 분 서재에서 자주 본 닉네임이에요. 반값 등록금 시위가 고조되고 있는데 이 책도 같이 많이 팔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연회 때 공동 저자 중 한 분이 책이 별로 안 나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모르겠어요. 당장 내가 겪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겪을 일이 없는 문제라 해도 잘못된 것이라면 당연히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봐요. 굳이 내 일이 아니어도요. 반드시 쟁취했으면 합니다.
 
미친 등록금의 나라 - 반값 등록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지금+여기 1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지음 / 개마고원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고등록금을 옹호하는 주장과 그에 대한 구체적이고 타당한 반박을 충실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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