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 학교는 민주시민을 키우는 곳이다
김대용 / 살림터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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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학계에서 이루어낸다 성과를 교과서에 담으면 된다. 그러나 현시점은 대안을 제시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대안을 제시한다 해도 도덕과에서 그것을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도덕과가 국가주의적 이념에서 벗어나겠다고 여러 차례 주장하였지만 여전히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6쪽

제7차 도덕과 교육과정에 의거해 도덕 교과서를 집필했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정도서 편찬위원회는 도덕과가 국가주의적 관점과 무관하다고 강변하였지만 연구한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주의적 관점은 개인, 가족, 이웃, 사회, 국가는 물론 동서양 윤리 사상에 이르기까지 교과서가 강조하는 모든 윤리의 저류에 흐르고 있었다. -22쪽

분석한 결과 (도덕) 교과서는 적어도 네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첫 번째는 개인보다는 타인, 민족, 국가를 위한 삶을 강요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전통 도덕으로 현대 사회의 도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은 모두 학식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은 보다 ‘도덕적’이라는 네 번째 관점으로 연결된다. 이 네 가지 관점들을 검토해보면 도덕 교과서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도덕 교과서 자체가 ‘병’인 것이다. -27쪽

도덕 교과서가 여전히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가장 큰 원인은 개인의 삶보다 타인, 특히 민족과 국가를 위한 희생적인 삶을 강요하는 데에 있다. -28쪽

태극기와 국기에 대한 맹세는 도덕과 외의 다른 교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왜 도덕 교과서에 태극기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실렸는지는 알 수 없다. (중략) 교과서에 실린 국기에 대한 맹세는 첫째, 개인의 권리에 대한 언급 없이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의미를 국가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둘째,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하는 대상으로 민족을 상정한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9쪽

실제로 교과서는 해방 이후 국가가 국민에게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자행한 폭력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국가를 절대적인 존재로 보면 개인이 국가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국가에 일방적으로 예속될 수밖에 없다. 교과서는 국민으로서의 도리와 의무만을 강조할 뿐이다.-35쪽

(도덕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36쪽

교과서는 개인이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 행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말하면서도 사회 또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악에 저항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39쪽

(단군 신화와 관련하여)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근본 내지 본질로 승화시키려면 사실과는 다르게 거기에 온갖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덧붙일 수밖에 없게 된다. -74쪽

유,불,도 사상을 중심으로 전통 윤리를 설명하는 교과서의 내용은 크게 달라져야 한다. 근대 이후 유,불,도 사상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약화되었으며, 현재 우리 생활 양식과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77쪽

교과서에는 계승해야 할 전통적인 가치는 있지만 탈피해야 할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79쪽

교과서는 계승 발전시켜야 할 긍정적 요소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게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전통 윤리는 좋다고 강요할 뿐이다. 때문에 교과서에서 제시한 전통 윤리가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덕목과 규범적 내용들을 현대적 의미에서 재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자세를 갖도록 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84쪽

"윤리와 사상"은 개인주의가 모든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품성을 갖고 있다는 것과 개인적 권리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근대 서구의 평등사상이 가능하였다고 그 가치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오늘날 개인주의는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을 소아로 만들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자기를 상실한 현대인이 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아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아를 지향하는 동양의 공동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전통 윤리"와 큰 차이는 없다.
-89쪽

대다수 전국 초중등학교 도덕 교사들이 도덕과 교육에서 한국인으로서의 특수 윤리보다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보편 윤리를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23-124쪽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도덕 형태를 추구하는 것은 대재난"(푸코)
-211쪽

유교의 전통에서는 ‘위민’ 혹은 ‘민본’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위민 혹은 민본과 민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민은 정치의 주체인 반면 위민정치에서는 민은 정치의 객체에 불과하다. 위민정치는 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배층의 도덕성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위민정치에서 도덕성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권력층의 비리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비교적 잘 갖추어진 현대 사회에서도 부정부패는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16쪽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도덕 형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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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류동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9월
판매중지


엄밀하게 말해 시장에서 매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노동력이고 그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력과 노동은 구분하여 써야 하는 개념이다. 친숙한 비유를 들자면 수문이 닫힌 댐에 저장된 물이 노동력이라면, 수문이 열렸을 때 흘러나오는 물이 노동인 셈이다.
-11쪽

근대성이라는 말에는 ‘기술의 근대성’ 뿐 아니라 ‘해방의 근대성’이라는 구성 요소도 포함된다. 흔히 한국 사회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중요한 목표, 가치를 말하고는 한다. 산업화는 과학기술의 진보, 생산력의 발전, 근대적 계약 등 바로 기술의 근대성을 의미한다. 민주화는 보편적 인간 권리의 신장, 인간에 대한 갖은 억압의 철폐 등을 담고 있는 해방의 근대성을 가리킨다. -20쪽

공장이나 회사의 규격화한 노동에 적응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학교 교육으로써 길러지리라고 기대되는 미덕이다. 바로 노동자를 훈육하는 것, 즉 길들이는 것이다. 징병제가 실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군대가 이러한 능력을 극단적인 형태로 양성하는 공간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속된 말로 ‘까라면 까’.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능을 조직의 윗선에 맡겨버린 채 자신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이른바 ‘구상과 실행의 분리’는 그렇게 이루어진다.-20쪽

영화 ‘레 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 장면에서 민중들은 침묵하며 ‘반란자들’이 사살당하는 것을 숨죽인 채 지켜본다. 그것은 그 민중들이 겁에 질려 그렇게 행동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사후적으로는 ‘동의’로 해석된다. 왕을 교수대로 보내는 피의 시민 혁명을 일으켰던 바로 그 프랑스에서 루이 나폴레옹은 무산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권력을 잡았다. 그러고는 곧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히틀러 또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대중 독재’라는 이론이 주장하듯이, 사악한 권력도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중의 동의라는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대중이 어리석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소수의 지식인이나 헌신적 열정을 가진 혁명가들이 대중을 ‘의식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그렇지 못하다는 것 또한 역사 속에서 되풀이된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결국 시스템으로서 성립한 권력, 그 기초에는 사람들이 ‘몸에 붙이고 있는’ 신념의 체계가 놓여 있는 것이다. -24쪽

"이 학교를 나오면 100퍼센트 삼성반도체에 취업이 되고 본봉 5천만 원에 보너스 2천만 원. 1년에 7천만 원 번다고 자기랑 사귀자는데 맞는 말인가요?"(여자 대학생)
"반도체 회사에 취업하면 백혈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데 그 학과에 가도 될까요?"(3학년 여자 중학생)
-27쪽

노동자가 파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이지 노동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노동은 노동력이라는 그릇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같다. 그런데 그 물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항아리’처럼 어느 정도는 제한 없이 길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준적인 내구 연한이 10년인 기계는 10년가량 사용하고 나면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노동력은 (물론 사람도 수명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하루 여덟 시간 ‘사용’할 것을 열 시간 ‘사용’한다고 해서 금세 닳아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노동력’이라는 용어와 ‘노동’이라는 용어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굳이 마르크스 경제학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만약 ‘노동’을 ‘사용’한다는 말을 쓰게 되면 도대체 노동자가 판매한 것이 무엇인지가 모호해진다. 내가 한 달 동안 직장에서 일하고 월급을 받는 것은 내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팔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한 달 동안 일한 대가인가? 전근대사회의 노예라면 모호할 게 하나도 없다. 노예는 언제 어디서건 노예주의 처분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말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53쪽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류가 얻어낸 과학기술의 대부분은 애초에 두 가지 목적과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전쟁. 누군가를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한 목적. 다른 하나는 노동 통제. 누군가를 효율적으로 일 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78쪽

감정 노동의 강도는 사회의 문화적 요인과도 관련이 있다. 남녀차별적인 문화, 여성을 외모나 성적 매력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한 문화, 반드시 여성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을 평등한 관계로서가 아니라 인종 같은 요인에 의해 차별하는 문화에서는 감정 노동이 더욱 심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106쪽

모든 노동자는 소비자이지만 모든 소비자가 노동자인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는 잊힌다. 노동자가 소비자라는 정체성으로 행동할 때 노동과 자본의 갈등은 노동과 노동의 갈등으로 옮겨진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하나의 인물이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자기분열되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자기분열은 계급 의식과 계급 지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바와 삶의 물질적 조건 사이의 괴리로 나타난다.
-119쪽

새로 부임한 경영자가 말한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겠습니다." 종업원 머릿속에서 이 말은 이렇게 바뀐다. ‘우리 중에 누군가를 자르겠다는 말이구나.’ 경영자의 말에서 지극히 중립적인 어감을 갖는 ‘구조’라는 명사는 ‘노동자’와 같은 말이고, ‘조정’이라는 동사적 의미를 담은 명사는 ‘해고’와 같은 말이다.
-133쪽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당연히 이 세상 그 무엇도 비효율적이기보다는 효율적인 상태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경영의 효율성 제고’라는 말은 압도적으로 임금 삭감, 사실상의 근무시간 연장 등을 가리킨다. 오너 2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저지르는 갖가지 편법과 불법 같은 ‘비효율적’인 행위는 경영 효율성 제고의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133쪽

노동자 정체성과 소비자 정체성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할 때 문제가 생긴다. 이 충돌은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노동자로서 나는 열악한 작업 조건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고통받는 대형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 ‘마트 안 가기 운동’을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가 연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 혼자 연대를 시도한다면 불합리한 구조는 바꾸지 못한 채 소비자로서의 합리적 소비와 효용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적 차원에서 연대를 포기하는 것이 이득이다. 다른 노동자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결국 플리트우드가 지적했듯이 이런 ‘나’들의 태도와 행동이 모여 집합적으로는 다른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과 해로운 작업 조건을 유발하게 된다. -137쪽

모두가 CEO가 되기만을 꿈꾸지만 현실은 노동자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소비자라는 정체성이 종종 압도한다. 자영업자의 문제는 개인 사업자, 프리랜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다. 이러한 점은 물리학적 원자들의 세계처럼 노동이 실종되고 사람이 사라진,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경제학에 의해 이론적으로 합리화되는 동시에 현실적인 경향으로서 강화되고 있다.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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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984년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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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이 기계는 귀에 대고 속삭이는 지극히 낮은 소리를 제외하고는 윈스턴이 내는 모든 소리를 다 포착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금속판의 감시 범위 안에 들어 있는 한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이고 들린다. 물론 언제, 어느 순간에 감시를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상경찰이 각 개인을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조직적으로 감시하는지는 오로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원할 때는 언제든지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입 밖에 내는 모든 소리가 포착되고, 캄캄할 때를 제외하고는 동작 하나하나까지도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살아야 했고, 실제 그렇게 살다 보니 감시받는 일은 이제 본능적인 습관이 되어 버렸다. -8쪽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9쪽

그것은 항상 밤에 일어났다. 사상범 체포는 어김없이 밤에만 행해졌다. 갑자기 흔들어 잠을 깨우고, 거센 손이 어깨를 흔들고, 불빛을 눈에 갖다 대고, 험악한 얼굴들이 침대를 빙 둘러싸기도 한다. 대부분 재판도 없고 체포에 대한 보고도 없다. 사람들은 그저 밤에 사라질 뿐이었다. 이름도 등록부에서 빠져 버리고 그에 대한 모든 기록이 삭제된다. 그런 사람이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은 부인되고 잊힌다. 그는 사라져 멸종된다. 이런 경우를 두고 ‘증발했다’고 말한다.
-25쪽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이 말하는 거짓말을 믿는다면-모든 기록들이 똑같이 되어 있다면-그렇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로 흘러 들어가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가 당의 슬로건이다. 그러나 과거는 그 본질이 바뀔 수 있음에도 결코 바뀐 적이 없다. 지금 진실한 것은 영원히 진실한 것이 된다. 이것은 극히 간단한 것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지배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현실 통제’라 불렀고 신어로는 이중 사고이다. -42쪽

날마다 그리고 거의 매 순간마다 과거는 현재가 되어 버린다. 이런 식으로 당이 발표한 모든 예언은 문서상으로 옳다고 증명되고, 그때 필요하지 않은 뉴스 항목이나 의견 표출은 기록상으로 절대 남겨지지 않는다. 모든 역사는 필요할 때마다 깨끗이 지웠다가 다시 쓰는 양피지와 같은 것이다. 일단 이런 작업이 행해지고 나면 거기에 허위가 개입되어 있다고 증명할 길은 전혀 없는 것이다. -47쪽

사임의 말
신어의 목적이 사고의 영역을 좁히는 것이라는 걸 몰라? 결국 우리는 그걸 표현할 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상죄가 글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필요한 개념은 정확히 정의되는 단 ‘하나’의 단어로 표시되고 다른 보조적인 의미는 다 제거되어 잊히게 될 거야. 이미 제11판에서 그 정도까진 해놓았지. 그러나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진행될 거야. 해를 거듭할수록 단어는 자꾸 줄어들고 의식의 범위도 좁아지게 될 테지. 물론 지금도 사상죄를 범할 이유나 구실은 없어. 그것은 단지 자기 훈련과 현실 통제의 문제지. 그러나 결국 그것마저도 필요 없어질 거야. 신어가 다 완성되면 동시에 혁명도 완수되는 거지. 신어가 영사고 영사가 신어야.-60쪽

전쟁 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이 아닌 인간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중들을 너무 편안하게, 결국에는 너무 유식하게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물질들을 산산조각 대거나 하늘로 날려 버리거나 바다 깊숙이 가라앉혀 버리는 것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무기들이 실제로 파괴되지 않을 때에도 무기 제조는 소비될 수 있는 어떤 것도 만들지 않고 노동력을 소비하는 편리한 방법이 되고 있다.
-217쪽

옛날 전쟁의 기준에 따라 판단해 본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협잡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전쟁은 뿔이 상대를 공격할 없는 각도로 난 반추 동물들의 싸움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쟁이 비현실적이기는 해도 무의미하지는 않다. 전쟁은 소비할 수 있는 제품의 잉여분까지 싹 쓸어버리고 계층 사회가 필요로 하는 특수한 정신적 분위기를 보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오늘날의 전쟁은 순전히 국내적인 문제이다. 과거에는 공동의 선을 인식하고 전쟁의 파괴성을 제한하기는 했지만 모든 국가의 지배 계급은 서로 전쟁을 일삼았고 승자는 항상 패자를 약탈했다. 오늘날에는 서로 간의 전쟁은 하지 않는다. 전쟁은 각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국민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며, 전쟁의 목적은 상대 국토를 정복하거나 자신의 영토가 정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이란 용어는 오도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전쟁은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225-226쪽

진실로 영원한 평화는 영원한 전쟁과 같다. 비록 당원들 대부분이 단지 희미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 말은 ‘전쟁은 평화’라는 당 슬로건의 속뜻이다. -226쪽

많은 신어들과 마찬가지로 이 단어(흑백)는 상호 상반되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반대편에 적용될 때, 이 단어는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원에게 적용될 때는 당이 요구하면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기꺼이 말하는 충성심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검은 것이 흰 것이라고 믿고, 더욱이 검은 것이 흰 것이라고 더욱 분명히 알고 있어 전에 반대로 믿었던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과거의 지속적인 개조가 필요한데, 그것은 나머지 모두를 포함하는, 신어로 이중 사고라고 하는 사고 체계에 의해 가능하다. -239쪽

이중 사고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개의 서로 모순된 개념을 동시에 지니며 두 개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당의 지식층은 그들의 기억을 어느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속임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이 중 사고의 훈련으로 현실은 침해받지 않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이 과정은 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확하게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과정은 무의식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날조를 한다는 느낌이 들어 죄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241쪽

노동으로 딱딱해지고 거칠어진 육체와, 임신으로 괴물처럼 불어났다가 출산을 시작으로 시들어 홍당무처럼 쭈글쭈글해진 쉰 살 여인네의 몸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은 전에 결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름다웠고 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강암처럼 단단하고 맵시 없는 몸매와 톱밥처럼 거친 붉은 피부도 처녀 시절엔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장미 열매가 못 생겼지만 아름다움 장미꽃에서 나온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왜 열매가 꽃보다 더 못하단 말인가? -247쪽

이 세상의 어떤 이유에서라도 자신의 고통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통에 대해 바랄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그 고통이 멈추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육체적 고통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이다. 고통 앞에서는 영웅이 없다. 그는 움직일 수 없는 왼팔을 움켜쥐고 마룻바닥에서 몸을 비틀며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뇌까렸다. 고통 앞에선 영웅이 절대 없다고.-270쪽

언젠가 그들은 그를 총살할 결정을 내릴 것이다.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몇 초 전에 추측할 수는 있다. 이런 일은 항상 복도를 걸어갈 때 머리 뒤에서 일어난다. 10초면 충분할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내면세계는 뒤집힐 것이다. 그러고는 갑자기 한마디 말도 없이, 꼼짝 않고, 얼굴에 난 주름살 하나 움직이지 않고 순식간에 가면이 벗겨지고 꽝하며 그의 수많은 증오심이 폭발할 것이다. 증오심은 포효하는 거대한 불길처럼 그의 마음을 휩쓸 것이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탕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너무 늦게, 혹은 너무 빨리 날아올 것이다. 그의 머리는 산산조각 부서졌지만 폭발된 증오심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이단적인 사상은 영원히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벌받지 않고 회개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의 완벽함에 하나의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는 것, 이것이 자유이다.-318-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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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낭만 미래 - 미래는 현재보다 더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지식과 책임 총서
고종석 지음 / 곰 / 2013년 9월
품절


제가 개인주의자를 자칭할 때 그것은 이기주의자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개인주의자는 타인의 개인주의도 용납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이익을 정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해치는 데 반대합니다. 그러니까 개인주의자는 공산주의에도 파시즘에도 강력히 반대합니다.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에 반대한다는 거지요. 더 과감히 얘기하면 개인주의자는 공동체의 추상적 이해관계보다는 개인의 구체적 이해관계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 개인들의 권리 가운데 자유를 특히 으뜸으로 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자는 자연스럽게 자유주의자가 됩니다.
-31쪽

제가 자유주의자라는 딱지를 받아들일 때, 그 자유주의자는 자유만큼은 아닐지라도 평등 역시 중시합니다. 왜냐하면 자유가 특권이 돼서는 안 되니까요. 자유의 평등한, 설령 거기까지는 안 되더라도 평등에 가까운 분배, 이것이 자유주의자가 생각하는 이상입니다. 그러니까 제 자유주의를 자유평등주의, 또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라고 말해도 되겠네요.
-32쪽

(영어 공용화와 관련하여) 최선의 언어 정책은 무정책이라는 게 제 신념입니다. 그냥 놔두면 되는 거예요.
-36쪽

지금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자유주의의 과잉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결핍입니다. -39쪽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대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올리버 웬델 홈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정식화한 사람)-42쪽

"단두대는 인간의 위엄과 문명과 진보를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훼손한다. 단두대가 놓일 때마다 우리는 모욕을 받게 된다. 우리가 이 범죄의 주동자가 되는 것이다."(빅토르 위고)-91쪽

"제 깊은 내면 속 신념은 교회의 신념과 일치합니다. 그것은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인도주의 단체 모두의 신념과도 동일합니다. 저는 제 양심을 걸고 사형제에 반대합니다. 저는 지금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 후보로서 국민 여러분께 지지를 호소하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동의하며, 스스로 믿는 것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동조하고, 제 믿음이 가닿으며, 인간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저는 사형제에 찬성하지 않습니다."(1981년 사회당 후보 프랑수아 미테랑)
-93쪽

징병제가 있는데도 국적 이탈자가 없는 나라는 물론 좋은 나라겠죠. 그렇지만 더 좋은 나라는 제 뜻에 반해 군인이 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아닐까요?
-143쪽

우리가 군대에서 배우는 것의 핵심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그것이 국방이라는 맥락을 떠나면 보편타당한 선인지는 확실치 않죠. 사실은 악이지요. 그렇다면 그 악을 실천하지 않겠다는 사람의 의지를 존중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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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판매중지


왜 우리는 이처럼 비참한 상태를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노동으로 생산한 거의 모든 것들을 인간들이 다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여기서 몰아냅시다. 그러면 배고픔과 과로의 근원이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인간은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들은 젖도 만들지 못하고 알도 낳지 못합니다. 그들은 몸이 너무 약해 쟁기도 못 끌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 달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동물의 왕입니다. 그들은 동물들을 부려먹고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 동물들에게 돌려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몽땅 자기들이 차지합니다. (메이저)-14쪽

동지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삶의 모든 불행이 인간의 폭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아닙니까? 인간들을 몰아냅시다. 그러면 우리 노동의 산물은 몽땅 우리 것이 됩니다. 하룻밤 사이에 우리는 부유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지요. 밤낮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인간들을 멸망시키는 길밖에 없습니다. 동지 여러분,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입니다. (중략)
그리고 동지들, 여러분의 결심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인간과 동물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느니, 한쪽의 번영이 다른 한쪽의 번영이라고 말할 때 절대로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생물체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동물들은 일치단결해서 완벽한 동료애를 발휘해 투쟁하도록 합시다. 인간들은 모두 적입니다. 그리고 모든 동물들은 동지입니다. (메이저)-16쪽

(전략)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고, 네 다리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친구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싸울 때 그들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또한 명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인간을 정복할 때에도 그들의 악습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어떤 동물도 집에서 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습관은 모두 나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동물이든 서로를 탄압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약하든 강하든, 현명하든 우둔하든 우리는 모두 형제들입니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 (메이저)-17쪽

7계명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나 적이다.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누구나 친구다.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모든 동물을 평등하다. -28쪽

(전략) "우리 돼지들이 의무를 다 하지 못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알고 있습니까? 존스가 다시 옵니다! 그렇습니다. 틀림없습니다. 동지 여러분." 스퀼러는 꼬리를 흔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거의 호소하듯이 외쳤다. "확실히 여러분 가운데 존스가 돌오기를 바라는 자는 아무도 없겠지요?"-36쪽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108쪽

작가란 어느 누구보다도 단호하게, 또 필요하다면 더 격렬하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이란 그것이 가치를 지닌 한, 언제나 한쪽으로 비켜서서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으로서, 그 일들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기만당하지 않으려는, 보다 분별 있는 자아의 소산물이다.(에세이: 작가와 리바이어던)
-123쪽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관계가 없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작품 해설)-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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