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 최근 나의 독서습관을 사로잡고 있는 이 사람.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 에 이어 접하게 된 보통씨의 세번째 이야기. 본래 이 책은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2002년에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별로 팔리지 않았나보다. 왜일까. 일단 제목이 좀 거시기 하네. 누군지 모르는 드 보통의 이름이 걸려있고 이것이 수식하는 단어가 '삶의 철학산책' 이 딱딱한 제목에 누가 현혹되겠으며 어느 누구의 눈길을 끌 수 있겠는가? 좋은 책이다만 일단 독자의 눈길을 끌어야 팔리고 읽힐 것이 아닌가. 아마도 이번에 새로 편집되어 출간된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이런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야 좀 팔리지 않는가. 좀 팔리는 정도가 아니지. 이 정도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이 책을 학교를 오가는 길에 들고 다니며 간간히 읽었는데, 학교에 도착해 책상위에 올려놓으면 옆에 있던 선생님이 그러신다.

"선생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슬픔이죠. 이건 다른 책이에요."

이 선생님과 같은 질문을 내게 던진 사람이 몇 있다. 모두들 한결같이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 - 젊은 베르테르는 슬프다라는 - 과는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기에 놀란 눈을 하고 자신의 기억과 지식을 의심하며 내게 확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에 대한 의문은 누구에게나 신선하다.

 나는 사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지 않았다. 이 책의 제목때문에 관심이 가기는 하다만 언제쯤 그 책이 내 손에 들어올지는 모르겠다. 단지 괴테와 그의 친구의 경험담이 묻어있는 슬픈 사랑이야기라는 정도 밖에는 모른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라는 몽테뉴의 문구로 시작하는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라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6가지 위안을 주려고 한다. 소크라테스를 통해서는 그가 아테네에서 외톨이- 심하게 말하면 왕따 - 였음을 일러주며 인기 없어도 괜찮다 라고 위안을 주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런 놈도 있었다 라고 위안을 주고, 세네카의 좌절의 철학, 체념의 철학을 전파해주며 좌절의 위안을, 세네카와 비슷한 의미에서 몽테뉴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또다른 위안을, 쇼펜하우어의 사랑이야기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상심한 마음에 위안을, 니체의 삶을 통해 곤경에 대한 위안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을 다 보고 나면 그런 위안을 받을 수 있는거야? 라고 순진한 질문을 누군가 던진다면 꼭 그렇진 않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꼭 그런진 않아 라는 말 속에 담긴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사실 이 책을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장담은 절대로 절대로 못한다. 여기에 담긴 각종 위안들이 모두 독자에게 먹힌다면 독자는 어쩜 비극적 현실에 처해있는 자신의 상황을 자기합리화 시키며 현실에 안주하려 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여기에 나온 위안들이 독자에게 먹히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각각의 철학자들의 삶의 이야기와 그들이 한 말들 하나하나 되새기며 자신의 삶을 음미하고 반추해보는 정도의 효과를 얻었다면 보통씨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한 것은 아닌가 싶다. 철학에세이의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을 대상으로 사유하게 하는데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철학에세이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철학입문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철학에 이제 막 들어선 이들, 관심갖기 시작한 이들이, 딱딱하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어려운 철학책을 접하기에 앞서 철학자들의 삶을 먼저 접하게 된다면 흥미를 유발 할 수 있지 않을까.  보통씨가 안내해주는대로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각각의 철학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와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족이지만, 나는 이 책에 담겨있는 몇몇 철학자들의 말 중에서 이 대목이 참 마음에 와닿았고 뜨끔했다.

 "몽테뉴는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지적욕구를 갈구하는 이들 중 한 사람인데, 특히나 남들이 잘 읽지 않는 인문사회과학 서적 혹은 고전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흔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분야. 솔직히 나는 타인에게 내가 지적인 존재로 비춰졌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름대로 지적으로 보이려고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독서를 하는 것이다. 몽테뉴의 위와 같은 문구는 나를 뜨.끔. 하게 만들었다. 전혀 지적이지 않은 내가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지적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나의 허영심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의 그러한 허영심이 어느 정도 타인에게 먹혀 들어갔단 말씀. 지금 고백하지만 난 전혀 지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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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7-07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명성이 자자해 서점에서 첫장만 들춰 읽어봤는데, 꽤 괜찮더라구요...보관함에 넣기는 했는데 언제쯤이나 ^^;;

하이드 2005-07-07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요. 사세요 사세요~ ^^
키스 앤 텔은 그나마 읽어본 중 별로였던 것 같아요.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의 연장선이긴 한데, 그나물에 그 밥이란 느낌이더라구요.

마늘빵 2005-07-07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드리머님 / 알라딘에 보통씨 팬들이 꽤 많더라구요. 저도 알라딘 마을에서 소개받고 합류했습니다. ^^

하이드님 / 저 님 추천으로 보통씨 책 전부 다 샀어요. 지금 집에 모셔두고 있답니다. ^^ 이제 또 다른 작품을 봐야죠.
 

 나와 취향이 비슷한 한 샘이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길래 나 또한 그와 비슷한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가 재밌을거라 믿고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혼자서. 혼자 영화 봤다.

 날이 더워 조금만 걸어도 등이 다 젖어버리는 바깥과는 달리 영화관 내부는 매우 추웠다. 아이 추워. 더워서 속을 시원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콜라를 사들고 갔지만 이놈의 차가운 콜라가 나의 내부를, 밖에서는 에어콘의 차가운 공기가 나를 떨게 만들었다.

 씬씨티. 영어로 Sin CIty. 이게 뭘 의미하는거야? 그냥 도시 이름인거야? 별 다른 의미가 있는거야? 아마도 제목에는 별 의미가 없는 듯 하다.

 미국의 80년대를 주름잡았던(?)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정말 만화를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 했다. 대개 칼라판으로 출판되지 않는 만화와도 같이 영화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를 강조한 무채색 일색이었고, 간혹 빨간색과 노란색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역시 주된 색채는 흰색에서 검정색까지의 무채색이었다.

 이미 다른 영화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말이 필요 없는 배우 브루스 윌리스와 예전에 <21그램>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처음 접한 얼굴, 베네치오 델 토로가 주연이다. 그밖에도 제시카 알바라는 여인네와 미키 루크라는 남정네도 주연 명단에 오르고 있지만 그들이 누군지는 잘 모른다.

 주인공들의 이름과 배우를 짝지어 보면,
 
 *제시카 알바 - 낸시, 어린소녀에서 8년 뒤 부쩍 자란 아가씨
 *미키 루크 - 마브, 괴력의 사나이, 불멸의 사나이, 거대한 체구.
 *베네치오 델 토로 - 잭, 재밌는건 이 사람 <21그램>에서도 잭이었는데 여기서도 잭이다. 망나니(?) 경관.
 *브루스 윌리스 - 하티건, 퇴직을 앞둔 정의의 형사나리.

  영화는 전체적으로 병렬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몇개의 시나리오가 돌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결말을 맞이한다.

 퇴직을 앞둔 정의의 형사나리는 어린꼬마아가씨 낸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괴력의 사나이 마브는 등치에 맞지 않게 자신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고 죽은 창녀의 복수를 위해 거리로 나선다. 사진작가 드와이트는 창녀를 괴롭히는 이들-아까 그 망나니 경관 잭과 그 일당를 비롯한 몇몇 놈들 - 징벌하기 위해 창녀대표 게일과 함께 거대권력에 맞선다.

 각각의 이야기는 아무런 연관관계 없이 알아서 진행되고, 이야기는 역시 예상했던대로 정의의 승리로 끝이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줄거리가 아니다. 줄거리만 따지자면 사실 다른 액션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이 영화의 매력은 만화가 영화로 변환되면서, 만화적 색채를 살리고자 한 흑백의 대비, 잔인하고 피튀기는, 아무런 마음의 동요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살인행위에 있다. 어쩜 그리도 살인을 자연스럽게 행동에 옮길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필요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내 앞을 가로막는자에겐 마땅한 응징이 따를 뿐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 그것이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삶의 철학이다.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나눠주는 것인데, 정의의 문제는 사람들이 적게 가지려하기보다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정의(dike)가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이 때의 정의는 분쟁해결의 수단이고, 현대정의론에서의 절차적 정의를 의미한다.

 그 이전의 정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당한 만큼 돌려주는 '복수'의 개념이 정의를 의미했다.

 영화 <씬시티>에 있어서 마브의 정의는 아마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사랑해주었던 창녀의 죽음. 이에 대한 복수. 그런데 다른 이들의 정의는 또 마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하티건은 정말 순수하게 "정의의 이름으로 얏!" 이라고 외치는 세일러문의 나의 이익이나 손해와는 상관이 없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정의라고 볼 수 있을 듯 하고, 드와이트의 정의는 직접적으로 나와 상관은 없지만 약자의 편에 섬으로써 힘을 실어주는 정의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이들은 각자 정의의 개념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고 자신의 머리속에 박힌 정의관대로 삶을 살아간다. 나의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끼면서까지.

 정의는 일종의 명예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정의관대로 나의 삶을 진행시킴으로써 나는 일종의 명예를 얻는다. 그것이 나의 이익과 손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정말 나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견상 그렇게 보일뿐이지 나는 이를 통해 명예를 얻는다. arete. 덕. 탁월함. 명예. 그들은 각자의 명예를 위해, 우리의 명예를 위해 싸우고 투쟁하며 승리를 쟁취한다.

 사족
 내 평생 영화를 보다 이런 영화는 처음이다. 정말 만화책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 하다. 마치 움직이는 만화와 같다고 할까. 스크린 속에 모습을 드러낸 저들도 꼭 배우가 아닌것만 같다. 손으로 그린 만화를 빠르게 돌려놓음으로써 캐릭터의 동작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정말 탁월한 솜씨다.

 영화의 잔인함은 뻘건피가 아닌 하얀피라는 점으로 우리의 눈으로 영상이 들어오기 전에 한 차례 걸러진다. 마치 <에일리언>에서 외계생명체가 흘리는 끈적끈적한 피와도 같은. 그래서 그 잔인함이 한층 꺾여 다가온다. 흑백영화가 아닌 올 칼라 영화였다면 아마도 몇차례 눈을 돌리거나 인상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래저래  새로운 방식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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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7-0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성실한 감상을 올리다니 대단해요^^

마늘빵 2005-07-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읽어보면 별 내용은 없어요. ^^ 귀찮아서... ㅋ
 


 

 

 

 

 

 충격적인 잔인한 장면들이 난무하는 영화.
 절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영화.
 마지막의 반전이 뒷통수 때리는 영화.

 대략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소감을 말하라면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장면부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해나 설명이 전혀 없이 - 하긴 그게 있으면 공포감이 떨어지긴 하지 - 난데 없이 침입한 살인마. 손에 면도날을 쥐고 벨을 누른다. 띵.똥.
 
 문 열러 나간 아저씨. 살인마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피 엄청 튀긴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목이 달아난 뒤의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 소나기. 쩝. 눈쌀 찌푸리게 된다.

 다음 살해자. 아줌마. 아줌마 된통 당하고 나서 아직 숨이 붙어있는 채로 전화기를 집어들다 면도날에 목이 잘린다. 쩝. 역시나 하얀 장농에 뿌려지는 빨간 피. 흰색과 빨간색의 색채대비.

 다음 살해자. 아저씨와 아줌마의 꼬마아들. 이 꼬마 냅다 집을 뛰쳐나가 달리지만 살인마 천천히 쫓아가 총으로 쏴 죽인다.

 남아있는 것은 딸과 딸의 친구. 딸의 친구는 일찌감치 눈치채고 이미 숨었다. 딸은 자고 있다가 발각되어 손과 발에 쇠줄로 묶이고 입에도 재갈이 물려진다. 비명은 소용 없다. 이미 집엔 아무도 없는걸.

 살인마는 딸 알렉스만은 죽이지 않고 차에 데리고 어디론가 간다. 아직 살인마에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딸의 친구, 마리아는 알렉스를 구하려다 차안에 같이 갇혀버리고. 주유소에서 급유를 하는 동안 도망치지만, 도움을 요청했던 주유소 점원도 살인마에게 도끼로 살해당했다. 차를 몰고 어디론가 질주하는 살인마와 알렉스를 구하기 위해 쫓아가는 마리아.

 영화의 줄거리는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인다. 잔인한 이름모를, 말도 없는 살인마는 도끼질하고 칼질하고 총쏘고 하며 원인모를 살인을 저지르고, 마리아는 친구 알렉스를 구하기 위해 살인마를 쫓을 뿐.

 하지만 영화는 이게 다가 아니다. 살인마와 존재를 들켜버린 마리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결국 마리아는 살인마를 죽이게 되지만, 영화 참 이상하다. 살인마가 죽은 뒤에 마리아는 당연히 알렉스를 구해주는데, 풀려난 알렉스는 정신이 이상해진걸까? 마리아를 죽이려든다. 결국 마리아는 알렉스의 손에 죽게되고. 이 어쩌 황당한 결말?

 영화를 다 본 뒤에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다. 별로 흥행한거 같지도 않은 영화이기에 누군가가 남겨놓은 영화의 비밀풀이 같은 것도 없다. 하지만 대략 짐작으로 애초부터 살인마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살인은 마리아의 단독소행으로 추정된다. 정신착란? 정신발작? 을 이르킨 마리아가 친구네 가족들을 참혹하게 죽여버리고 사랑하는 알렉스를 어디론가 끌고갔던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는 없어" 라고 이야기하는 마리아. 어긋난 사랑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인가? 겁에 질린 알렉스는 마지못해 "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라고 외친다.

 프랑스 영화가 미국식 공포영화를 따라가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갑자기 떠오른 의문. 그런데 프랑스식 공포영화는 어떤걸까? 생각해보니 본 적이 없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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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5-07-0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너무 잔인하거 아녜요 , +_+ ㄲ ㅑ
저는 저런 영화 보고 있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던데..

마늘빵 2005-07-0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잔인해요. 저 웬만한 잔인한 영화 다 그냥 보는데 이건 자꾸 눈쌀 찌푸리게 되더군요. 님두 알라딘 하루 종일 하시네요? ㅋㅋ 공부 하세욧!!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구판절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몽테뉴)-1쪽

"타인과 대화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호감을 사는 일이다."-16쪽

"낯선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는 돈 많은 손님을 맞는 호텔 수위처럼 노예 같은 ㅌ ㅐ도를 취하는데, 이는 호의를 얻으려는 무분별한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16쪽

"정확한 진술이란 이성적으로 결코 모순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진술은 그릇됨이 증명될 수 없어야 진실이 될 수 있다. 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믿고, 그들이 제 아무리 저명한 인물이라 해도 그릇된 점이 증명되는 진술이라면 그것은 거짓임에 틀림없고, 그러면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40쪽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냐 아니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당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70쪽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에피쿠로스)-93쪽

"무엇인가를 먹거나 마시기 전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왜냐하면 친구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에피쿠로스)-93쪽

"우리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켜봐줄 누군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다른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94쪽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택한다."(에피쿠로스)-96쪽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그것을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동, 문제의 악화, 준비없이 당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96쪽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에피쿠로스)-98쪽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 않은 쾌락을 제공한다."(에피쿠로스)-101쪽

"삶의 본연의 목적이라는 잣대로 측량하면, 빈곤은 커다란 부고 무한한 부는 커다란 빈곤이다."(에피쿠로스)-113쪽

"동물은 자신의 목을 매고 있는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지만 그것은 오히려 밧줄을 더 단단히 조이는 결과가 된다. ...... 순응하지 않고 마구 몸부림친다고 해서 묶여 있는 동물의 고통이 덜해지도록 적당히 느슨하게 만든 멍에는 이 세상에는 절대로 없다.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굴복하며 참는 것이다."(세네카)-118쪽

"가벼운 슬픔은 말이 많고 큰 슬픔은 말이 없다"(세네카)-120쪽

"가능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미래에 대한 낙관에는 위험스런 순진함이 들어있다.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사고는 어떤 것이든, 그게 제아무리 드물고 시간적으로 멀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것에 대비해 우리 자신을 준비해야 하는, 일어남직한 일들이다."-144쪽

"불공평은 정의의 규율들이 침해당했다는 느낌을 말하는데, 그 규율들이 약속하는 것은, 만약 명예로운 행위를 하면 보상을 받을 것이고 나쁜 짓을 하면 마땅히 그에 따르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원칙이다."(세네카)-148쪽

"근심이란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심리적 동요를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경우 당사자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최선의 결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과 최악의 결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교차하게 된다."(세네카)-151쪽

"위안은 근심을 치유하는 대책 중에서 가장 잔인한 형태다. 장밋빛 예언들은 근심에 빠진 사람으로 하여금 최악의 결과를 무방비 상태로 맞게 할 뿐 아니라, 고의는 아닐지라도 그런 위안의 말에는 최악의 결과가 닥칠 경우 매우 비참할 수도 있다는 암시까지 담겨 있다."-152쪽

"철학자들은 돈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누구도 지혜로운 자는 가난해야 한다고 운명짓지 않았다."(세네카)-155쪽

"바깥의 모든 것들이 미친 짓거리여도 좋으리. 집안에 불안의 요소만 없다면."(세네카)-167쪽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숙명에 굴복하며 참는 것이다."(세네카)-172쪽

"인간에게 어떤 사건들을 바꿀 만큼 힘이 없을지는 몰라도 그 사건들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주어진다"-178쪽

"은퇴 이후로 독서가 나를 위로한다. 독서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으름의 짓누름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언제라도 지루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고통이 엄습할 때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그 날카로운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침울한 생각으로부터 해방되려면 그냥 책에 기대기만 하면 된다."(몽테뉴)-186쪽

"우리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거나 어리석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보다 넉넉하고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이 한갓 멍청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몽테뉴)-193쪽

"책을 통해서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을 올바르게 활용하여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책을 읽다가 어려운 문장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부분을 곰곰 생각하느라 손톱을 물어뜯는 일은 절대로 없다. 한두번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다 안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만약 어떤 책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면 나는 다른 책을 집어든다"(몽테뉴)-247쪽

"난해함이란, 말하자면 학식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학문의 공허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법을 걸어 불러내는, 그리고 인간이 어리석음에 대한 보상으로 손에 쥐기를 갈구하는 한 닢의 동전과 같다"(몽테뉴)-249쪽

"나는 간혹 나 스스로 잘 정리할 수 없는 것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 말하는데, 그 이유는 언어 구사력이 허약하기도 하고 가끔은 나의 지력이 허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종류의 글을, 특히 지금도 살아있는 사람에 의해 씌어진 최근의 글을 공격하는 성급한 비평의 무모함을 저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위대한 명성 아래로 나의 허약함을 숨겨야 한다."(몽테뉴)-258쪽

"이 세상에 태어난 데 따른 벌을 치르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세네카)-259쪽

"몽테뉴는 학자들이 고전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쏟는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을 지적인 존재로 비치고 싶은 허영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262쪽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책들에 대해 쓴 책이 많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책들을 서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다. 모든 책들은 부족한 면을 가진 저자들에 대한 해설로 가득 채워져 있다."(몽테뉴)-264쪽

"있지도 않은 모습을 받아들이려는 것보다는, 사람들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냥 두는 것이 더 낫다"(샹포르)-275쪽

"결혼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혐오스런 존재가 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쇼펜하우어)-278쪽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그 두 사람이 결합할 경우 신체구조가 매우 나빠 그 자체로 조화가 일그러진 불행한 존재를 낳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선언하는 것이다."(쇼펜하우어)-309쪽

"사랑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 때, 사랑의 본래 계획에는 행복이란 절대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312쪽

"가장 분별 있는 인간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으려고 애쓴다"(아리스토텔레스)-328쪽

"쾌락과 불쾌감은 서로 단단하게 묶여 있기 때문에 한 가지를 가능한 한 많이 누리려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다른 한 가지도 그만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불쾌감을 가급적 적게 맛보면서 고통 없는 시절을 짧게 누리든지 아니면 이제까지 좀처럼 맛보기 힘들었던, 형언하기 어려운 쾌락과 환희를 누리고 그 대가로 불쾌감을 한껏 맛보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만약 전자의 길을 결정하고 인간적인 고통의 정도를 줄이거나 낮추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또한 그 고통이 줄 수 있는 환희에 대한 기대치도 줄이고 낮춰야 한다."(니체)-3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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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1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것두 한 방~

마늘빵 2005-08-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함다 ^^
 

 

 

 

 

  감기인지 몸살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몸이 뻐근하고 머리도 지끈지끈하여 토요일 투잡스인 나는 오전에 원잡만 끝내고 집으로 바로 향했다. 배는 고픈데 배를 채울 만한건 집에 없네. 쟁반짜장을 하나 시켰는데, 다 먹고 나니깐 내가 너무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난 꼭 그런다니깐. 다 먹고 배터진대.

도저히 그냥은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먹자마자 쇼파에 누워서 티비를 켰다. 이 얼마만에 보는 티비더냐. 참 티비 안본지도 굉장히 오래됐다. 요새 영화도 못봤는데. 공중파에서는 별로 재밌게 없는거 같고, 케이블로 돌려보니 영화 몇 편이 상영중이다.

오늘 나의 선택을 받은 영화는 바로 이것.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머라 해석해야하지? 국가의 적? 갑자기 <공공의 적>이 떠오르는군.

다시 영화에 집중하자.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이 주인공이다 싶더니 윌 스미스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모르겠다. 난 연예인이나 배우들 이름은 아주 유명한 사람들 빼고는 잘 모른다. 윌 스미스라는 것도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알았다. 볼 때는 모른다니깐. 부르스 윌리스나 졸리, 탐 크루즈 같은 아주 유명한 배우들 얼굴만 기억하지.

 영화 속 티비에서 공화당의 한 의원이 국가안보를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를 보고 흥분하는 로버트 딘의 아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별 생각 없이 내뱉는 로버트 딘. 하지만 정작 나중에 국가안보국으로부터 위협당하는 것은 로버트 딘이다.

오랫만에 만난 대학 동창 다니엘. 하지만 다니엘은 란제리 숍에서 딘을 만난 뒤 쇼핑백에 뭔가를 살짝 집어넣고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그리고는 사망. 이 때문에 국가안보국으로부터 각종 위협을 받는 딘. 신용카드도 정지되고, 과거에 사귀었던 레이첼이라는 여자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아내에게 배달되고, 아내를 팔팔 뛰고, 노동변호사인 딘은 신뢰를 잃어 회사에서는 짤리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과거에 안보국에서 일했던 브릴을 통해 도움을 받아내 결국 진실규명을 하게 되지만, 그간 그가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국가로부터의 철저한 감시와 통제, 처벌, 음모.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 휴대폰, 컴퓨터 인터넷망 등 모든 것이 국가의 감시를 받는 사회. 영화 속에서 브릴이 잠깐 언급했듯 누군가와 통화 중에 '대통령' '폭탄' 등의 낱말이 들리면 바로 도청을 받게 된다는 사실. 섬뜻하다. 당해보지 않으면 처음 딘이 아내를 향해 뭐 그런걸 가지고 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보이겠지만, 실제로 당해보면 국가의 감시와 통제라는 것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점을 모르고 살아가겠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조지오웰의 <1984년>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감시카메라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확연히 드러나는 사회. 모든 것이 국가의 통제 아래 있고, 모든 것은 조작된다. 오웰은 1984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예상하고 책을 썼고, 그 시점은 대략 약간 늦춰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감시 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강남구청에서는 강남지역 일대에 CCTV를 설치해서 동네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고, 한 차례 이 CCTV로 인해 범인검거에 도움을 얻자, 인권침해라는 등의 반발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지금 강남에는 CCTV가 모든 이들을 감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다른 구청에서 그럼 강남의 범죄자들을 다른 구역으로 내모는 것 아니냐! 며 따지자, 돈 많은 강남구청 왈 "그럼 니네 구역에 CCTV 설치하는 비용을 대주겠다" 라고 말했다지.

 참 별거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참 별거 맞다. 모든 시민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일찌감치 주민등록증 이라는 것을 통해 지문날인하고 국가의 감시체제에 들어간 우리는 그 말고도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는 다양한 국가의 감시를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단지 정말 인식하지만 못할 뿐.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사건에 연루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걸 단지 음모론이라고 생각지는 마시길. 한 때 주민등록증에 지문날인 반대 운동을 벌이자 - 주민등록증을 없애자는 주장이었나 - 나도 그들의 생각에 공감은 했지만 결국 주민등록증 없이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생각해본 결과, 잔말 없이 구청에 가서 지문을 찍은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의식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존재자.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국가안보라는 이름 하에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이 얼마나 침해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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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7-0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은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 저는 어쨌든 아프락사스님이 재밌다고 하시는건 재밌다고 봐요. ㅋㅋㅋ 저도 이 영화 한번 봐야겠네요.

마늘빵 2005-07-03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몸은 한결 낫습니다. 오늘은 바깥 나들이를 좀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