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연보라색으로 처리했습니다. 저 부분을 빼고 읽으시면 됩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지만 시사회를 통해 미리 봤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작품이지만 <킹콩>이나 <태풍>처럼 광고를 많이 하지 않아서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제목만 얼핏 들었을 뿐이었다. 영화는 기대를 하지 않고 봤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좋았으며, 그 내용은 나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가슴아팠던 첫 사랑의 추억을.

  10년전 한 남자는 영화감독 지망생이었고, 한 여자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둘은 가난했고 불안정했지만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다. 마치 결코 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사람, 배우 지망생인 여자, '손나'는 이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가 자신의 성공을 보장해주진 못한다는 생각 아래, 그를... 떠난다. 한 중년 미국인이 허리우드에 자신을 데려가 주겠노라 약속했고, 그녀는 그를 따라갔다. 하지만 미국인은 차를 타고 떠났고, '지엔'은 '손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손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지엔'의 친구이자 조감독(?)에게로 다시 떠났다. 이후 '손나'는 또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니웨'와의 만남을 시작한다.



* 영화의 주연인 세 남자. 왼쪽부터 차례로 지진희, 장학우, 금성무. 지진희는 천사로 나왔지만 별다른 역할은 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비중이 많이 약했다. 금성무는 정말 잘생겼다. 우리나라의 남자배우 중 장동건이 떠올랐지만 장동건의 강하고 거친 이미지와는 달리 금성무는 매우 여리고 여성스럽다.



* 극중 지엔과 손나. 버려진 사랑, 그리움, 재회, 다시 사랑.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모멸차게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떠났다. 비참하게 남겨진 남자는,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그녀가 받은 상처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도 남자는 여자를 잊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는 여자를 더욱 잊지못하고, 그리움은 미움으로 변한다. 그리고 복수로. 10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난 두 사람. 남자는 여자에게 가혹하게 복수를 한다. 사랑한다.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떠난다. 하지만 그녀의 눈물과 사랑을 확인 한 뒤 모멸차게 버린다. 그녀가 나를 버린 것 처럼.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와 내가 준 상처로 슬픔에 빠져있는 그녀를 어루만져준다. 두 사람은 사랑한다.

  <퍼햅스 러브>는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한 영화에 출연하게 된 여배우, 감독, 남배우 세 사람의 실제 이야기와 영화 시나리오와의 절묘한 일치에 그 매력이 있다. 시작은 허구였으되 끝은 현실이었다. 허구는 허구로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어 돌아왔고, 그 현실은 매우 아팠다.

  영화는 사랑의 시작과 끝의 기쁨, 슬픔, 배신, 복수, 상처, 다시 사랑 의 모든 것들을 다루고 있다. 그때는 참 순수했다. 서로 나이가 들어 만난 지금 우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 동안 무슨 일들이 서로에게 일어났을까. 지금 그녀는, 그는, 그때의 그녀와, 그와, 같을까?

  고백하건대 나의 22살의 첫사랑을 얼마전 만났다. 한달전쯤. 내가 22살, 그녀가 21살이었을 때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사랑했다. 일년전부터 알아왔던 그녀는 나와 같은 학교의 3년 선배와 사귀고 있었고, 나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인터넷상에서 만날 때마다 그녀와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가끔 문자도 보내며. 그렇게 일년이 지나가고 그녀는 선배와 헤어졌으며, 어느 가을 오랜 침묵을 깨고 내게 전화를 했고,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둘만의 첫 데이트였고, 3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내게 어느날 밤 전화를 통해 갑작스런 이별을 통보했다. "헤어지자"  난 울뿐 이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유는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 좋아하는데 사랑은 아닌거 같다. 하지만 사랑을 확인시켜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으니까. 만약 지금도 나의 여자친구가 그런 이유로 헤어짐을 통보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는 여전히 난 모르므로.

  일년 뒤 군대를 갔고,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 그녀가 연락을 해왔다. 만났다. 그날도 세차게 비가 내렸다.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던날도 세차가 비가왔었다. 다시 만난 그날도 비가 왔다. "다시 사귀자" "그건 아닌 거 같아"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그녀. 왜... 그렇게 다시 연락은 됐지만 또 끊겼다.

  작년에 제대했다. 그리고 난 여전히 계속해서 그녀를 찾았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녀의 이름이 싸이홈피에 나타나지 않자 -검색하면 6명이 뜨는데 그 모두 아니었다 - 그녀의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검색해봤고, 못찾았다. 그녀가 다니던 대학의 과홈페이지에도 들어가봤지만 그녀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쓰던 이메일로 메일도 보내봤지만 이미 계정이 바뀌었다. 더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한달 전 쯤. 연락이 왔다. 미니홈피의 쪽지를 통해. 잘 지내느냐고... 이렇게 가슴이 뛰었던 적이 없었다. 바로 답장을 보냈으나 그녀는 3일 후에나 확인을 했고,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만났다. 하지만 내겐 이미 다른 사람이 있었다. 그녀에겐 나 이후에 아무도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10년의 세월도 아니었고, 여자가 다른 남자를 쫓아 떠난 것도 아니었다. 내가 22살, 그녀가 21살이었고, 지금 나는 27살, 그녀는 26살.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많이 미안해했고, 나는 그녀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다시 만난 지금, 난 그녀에게 갈 수가 없다. 내겐 다른 사람이 있다. 그녀도 안다. 아마 지금도 우리의 인연은 맺어질 수 없나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매다 만났지만 아직 아닌가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지난 나의 기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의 작은 기억들까지도. 누군가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것은 내게도 적용이 되나보다. 난 지금까지의 다른 여자친구들 혹은 데이트라도 했던 다른 여자들과도 그녀와 지냈던 날들만큼이나 좋았던 적이 없었고, 그녀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그녀에게 받았던, 우리의 추억이 담겨있던 물건들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도 내 책상 밑 상자에는 그 물건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있다.

  사랑은 너무 어렵다. 그것은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슬픔과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슬픔과 상처는 오랜시간 동안 날 사로잡아 내 삶을 가두어놓았다. 하지만 또 사랑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지난 기억을 되새기며 나를 반성하고 성찰한다. 아마도 사랑. 이 영화는 사랑을 다루고 있고, 가슴 속 깊은 곳의 그 사랑을 끄집어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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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5-12-29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사연과 같이 봐서 그런지 이 영화 되게 보고 싶네요. 사랑은 어렵다는거. 저도 공감합니다. 진짜 어려워서 뭐가 뭔지를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부모 자식간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나 많이 확실한 어조로 얘기함은 그나마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이여서인지도 모르겠어요.

마늘빵 2005-12-29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영화 보시면 조금 지루할진 모르겠지만 그 지루함을 틈타고 머리 속으로 갖가지 생각들이 왔다갔다 하는걸 느끼실거에요. 개봉하면 한번 보세요. 사랑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사랑의 감정을 갖는다는 것도, 혼자의 사랑을 둘의 사랑으로 바꾼다는 것도, 사랑의 진행과정도, 사랑을 유지하는 것도, 이별을 준비하는 것도, 이별하는 것도, 그리워하는 것도 모두 어렵습니다. 너무나.

LAYLA 2005-12-2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 없는 건가요? 무서워서 읽지 못했어요 저도 금성무 좋아해요 ㅋㅋㅋ ^^

마늘빵 2005-12-2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포일러 조금 있는데. ^^ 제목 옆에 달아놔야겠어요.

깐따삐야 2005-12-29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요즘 마음 한 구석이 휑한 게 가슴 시린 멜로 영화 한 편 보고 싶었는데.
잘 보고 갑니다.
용기 있게! 더 예쁜 사랑 가꿔 나가시기 바래요!

마늘빵 2005-12-29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 네. 훔. 전 지금 제 사랑 - 저기 언급한 첫사랑 말구 - 에 대해선 모르겠어요. 어찌해야할지.

BRINY 2005-12-30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학우, 많이 늙어버렸네요!

마늘빵 2005-12-3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장학우가 누군지도 처음 알았어요. ^^ 배우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터라. 게다가 홍콩, 중국배우는 더더욱. 흠. 아침에 일찍 일어나셨네요?!

BRINY 2005-12-3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는 내일 방학합니다요.

마늘빵 2005-12-3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좀 늦으셨네요?! 마지막날 방학이라니. ^^ 하지만 개학도 그만큼 늦겠죠.
 

  제목 참 길다. 간단히 줄여말하기엔 뭔가 심심하고 그렇다고 길게 다 말하기엔 숨 넘어가고. 편의상 줄여서 말하겠다. <홍반장>은 사실 그다지 재미없다고 들었다. 본 사람들의 입에 따르면. 하지만 난 <결혼은 미친짓이다> 와 <싱글즈> 이후로 엄정화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사실 가수로서도 성공한 그녀이지만 - 지금은 왜 판 안내나 몰라 - 가수로서의 그녀보다는 배우로서의 그녀가 더 맘에 든다. 정말 다재다능한 그녀야. 다 뜯어고치고 무대에서 야한 동작 취해가며 후끈 달구는 그녀이지만 -하긴 뭐 스크린에서도 후끈 달구기는 마찬가지구나 - 난 그런 그녀가 좋다. 채연이나 이효리, 아이비, 미나 등의 여가수들이 음악보다 몸으로 승부하려는 전략을 쓰는 것을 비난하는 나이지만 엄정화에게만큼은 넓은 아량(?)을 베풀게 된다. 이런 불공평한 인간 같으니라고!! 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난 엄정화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으니깐. 아니 나이도 많고 자연산 미녀도 아닌 다 뜯어고친 미년데 그래도 좋다고? 그래 그래도 좋아. 이상형으로서 혹은 여자로서 좋다기보다는 인간으로서 그녀가 좋다. 니가 그녀를 만나봤어? 아니. 그래도.

  <싱글즈> 와 <결혼은 미친짓이다> 이후 배우로서의 그녀의 캐릭터는 쿨한 녀자로 자리매김한 듯 하다. 알거 다 알고 오히려 남자를 구워 삶아 먹으려는 그녀. 2005년 개봉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도 그러한 쿨한 매력이 발산되었고,  <홍반장>에서는 노출씬은 없었지만 그녀의 쿨함은 여기서도 충분히 발휘되었다고 본다. 그녀가 맡는 역할은 대부분 지적이고 전문직업을 가진 응큼 女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가 아닌 그냥 일반 티비 프로그램에서 비춰지는 그녀의 실제 성격이나 모습과도 잘 일치된다.



* 일당 오만원. 반나절 부어가며 치과자리 알아봐 줬으니깐 복비 내놔. 12500원. 왜냐면 일당 오만원인데, 반나절이면 이만오천원. 집주인 아줌마 반, 당신 반, 그러니깐 만 이천 오백원. 복비야 복비. 이렇게 싼 복비가 어딨어.



* 이 장면은 내가 못 본거 같은데... 어디있었지? 어쨌든 홍반장은 온갖 허드렛일 마다않고 일당만 주면 다 한다.

  큰 병원에 있다가 잘리고 모은 돈이 얼마 안돼 한적한 바닷가 시골마을에 치과를 차린 그녀. 도시에만 살다 시골에 왔으니 적응 안되시고, 그녀를 옆에서 도와주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홍반장. 이 마을 반장이다. 본명 홍두식. 어릴 때 부모님 두 분 다 여의고 마을에서 받아줘서 공동투자로 교육시키고 대학 졸업 후 3년간 이 마을 떴다가 다시 돌아온 뒤 마을 반장이 되었다. 그는 못하는 일이 없어, 중국집 배달, 페인트 칠, 인테리어 디자인, 지붕수리, 슈퍼마켓 캐쉬어, 정육점 알바 온갖 일을 다 한다. 정해진 직업 없이 일당 5만원에 무슨 일이든 하는 잡부(?).

  둘이 홍반장네 집에서 술 마시다 잠들어버리고, 아침에 몰래 나오려다 아침청소하는 동네주민들에게 발각되어, 둘이 잤다는 소문이 퍼져버렸다. 헉. 안잤는데?! 같이 자긴 했지. 그런데 아무일 없이 잤지. 하지만 사실과는 달리 동네엔 이미 둘이 잤다는 소문이 다 퍼져버렸고. 난감. 뻘쭘. 이를 어째. 이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 하지만 내가 누구? 윤혜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 나중엔 결국 홍반장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버리지만 말야.

  그렇게 특별한 사건이나 진한 감동은 없지만 쪼물쪼물한 여러 요절복통 사건들과 일상을 비추는 영상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엄정화를 보는 재미를 빼고나면 별로인 영화이지만, 난 엄정화를 보는 맛에 괜찮게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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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2-2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랑 입장이 같군용.. 내일도 하루쟁일 봐야지..

마늘빵 2005-12-2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핫. 라주미힌님도 주말이 비됴보는 날?? 전 오늘만 그랬구 내일은 연극보러가요.

하이드 2005-12-2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이 영화 보고 싶다.

미미달 2005-12-25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재미있게 본 영화예요. 김주혁의 캐릭터가 정말 잘 어울리는 듯

마늘빵 2005-12-2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다들 안자고 머하삼??? ㅋㅋ 시간이 늦었는데. 일찍 자야 클마스가 길어져요.

어릿광대 2005-12-25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아직 안 본 영화라는. 근데 홍반장의 반장은 형사 반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마늘빵 2005-12-2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우리나라에선 영화를 낼 때마다 온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감독이 있고, 영화를 낼 때마다 꾸사리 먹는 감독이 있다. 전자에는 박찬욱, 곽경택, 봉준호, 강제규 등이 뽑히고, 후자에는 김기덕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인 홍상수가 뽑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희한한 것은 국제 머머 영화제에서 상을 제일 많이 받는 감독이 누군고 하면 후자인 김기덕과 홍상수 감독이다. 물론 전자의 박찬욱 감독도 복수 3부작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서리. 국내와 국외에서 사랑을 받는 박찬욱은 이상할게 없다쳐도, 국내에선 욕먹고 국외에선 칭송받는 김기덕과 홍상수는 뭐니.

  그들이 왜 욕을 먹는가. 두 감독이 만드는 영화의 공통점은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지극히 남성중심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의 사랑의 대상이기보다 성적인 대상으로 자주 비춰진다. 그것은 실제 감독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이미 다 만들어져 감독의 손으로부터 떨어져 버린 작품에 대한 보는 이들의 새로운 해석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감독의 의도가 어떻고 이건 이렇게 해석해야되고 하는 식의 깊이있는 토론을 거치지 않은 채, 극장 좌석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충분히 불쾌감을 심어줄 수 있는, 심어줄 소지가 다분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럼 난 어떻게 보느냐? 나도 그렇게 본다. 두 감독의 영화에서는 모두 여자는 남자의 섹스의 대상으로 치부되며 너무나도 지극히 남자의 늑대적 본성만을 앞세운 장면들이 곳곳에서 드러나 불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또다른 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남자들의 머리 속 상상의 장을 장면으로 표출한 솔직한 영화로 해석할 수도 있다. 까발려 놓고 이야기해보자. 그런 상상(어떤거? 저 감독의 영화를 보면 알아) 한번쯤 안해본 남자들 있는가? 흠. 없을 수도 있지 머. 그런데 솔.직.히. 난 아니다. 내가 부도덕한 위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난 그런 상상 머리 속에서 해본 적 있고, 그게 한 두 번도 아니다. 지금 홍상수 감독을 변호하자는 건 아니고, 그렇게 영화를 달리 해석해서 볼 수도 있다 라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주고자 하는 것일 뿐.

 홍상수 감독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극장전> <생활의 발견> <오 수정> <강원도의 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 있는데 모두 다 알려진 영화들이고, 이 영화들이 그가 오버에서 내놓은 모든 영화다. 언더의 생활은 잘 모르겠고. 내놓은 모든 영화들이 상업적으로 대박을 터뜨린 그런 영화들은 하나같이 없지만 - 왜냐면 그것은 관객이 그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관객이 들지 않는 그의 영화는 대박이 날 수가 없다 - 잘 알려진 영화이다.

  그의 영화는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들을 가까이서 살펴봄으로써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는 매우 천천히 진행되고, 별다른 기승전결이 없다. 높낮이도 없어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흥분과 감동, 슬픔을 선사하지도 못하고, 밋밋하게 그저 일상을 뒤따라가며 찍어 보여줄 뿐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남자가 7년전의 각자의 첫 사랑을 떠올리며 찾아가고 이전을 떠올리며 어떻게 그녀와 섹스를 할까 속으로 궁리할 뿐. 카메라는 그 두 남자를 쫓아가며 찍을 뿐이다.



* 이 장면 이후 유지태의 손은 그녀의 치마로 들어간다. 그녀는 말한다. "하지 말랬잖아요!!!" 유지태는 말한다. "못들었어요..." 이어서 그녀는 말한다. "그냥 안고만 있었으면 같이 놀 수도 있었을텐데... " 바로 이런 대사들이 홍상수가 욕을 먹는 이유다. 영화의 말미에 유지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술자리에서 진실게임을 할 때, 한 여학생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섹스는 언제했고, 누구랑 했고, 느낌은 어땠어?"  그리고 여학생은 순순히 말한다.

"이틀전에 했고, 술마시다가 남자가 원하는 거 같아서 했고, 느낌은 그냥 그랬어요."

홍상수가 욕을 먹는 이유다.

 

  그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꿈과 현실의 관계에 관한 영화이며, 사랑의 환상에 대한 영화이다. 사랑이란 바닥날 수 없는 주제이며, 사랑을 하면서 가장 강한 욕구를 느끼고 모든 환상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라고. 그것이 사랑의 꿈과 현실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지, 사랑의 환상을 다루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쨌든 감독의 의도는 그러했다 라고 하니깐 그렇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 그것이 사랑의 환상인지, 섹스의 환상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개봉한지 얼마 안된 영화 <애인>의 노출 장면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성현아.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두 남자의 성적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랑의 대상으로(?!). 성현아는 이 영화로 해외 어느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의 연기는 나도 인정. 그녀는 영화 속에서 이런(어떤?) 역할을 자주 맡게 되는데 그 역할들이 그녀의 캐릭터와 썩 잘 어울린다. 이게 그녀를 욕하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말하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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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2-2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감독 영화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기가막히고, 헛웃음이 나오죠. 근데, 사람들이 욕도 하나요? ^^;
보고 나오면 소주 한잔 마셔줘야 할 것 같은

마늘빵 2005-12-25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은 별로 안좋아하던데요. 홍상수랑 김기덕. ^^ 그쵸. 홍상수 너무 사실적이고 때로는 그 사실을 너무 넘어서기까지(?) 하지 않나 싶어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많이 비난을 받죠.
 

   장장 두시간 오십분의 러닝타임. 콜린파렐, 안젤리나 졸리, 안소니 홉킨스 의 빵빵한 출연진. 하지만 영화는 개봉 당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입소문따라 그다지 화려하지도, 많은 것을 보여주지도, 감동을 주지도 못했다. 두 시간 오 십분이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외국 영화 배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알고 있는 콜린 파렐와 안젤리나 졸리, 안소니 홉킨스를 등장시키고도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싶은 영화다. 콜린 파렐은 사실 많이 알려진 배우는 아니지만 영화 <폰부스>와 <데어데블>로 나의 마음을 사로 잡은 배우다. 젊은 탐크루즈라고 여길만큼 외모에서 느껴지는 인간다움과 부드러움, 그렇게 튀는 배우는 아니지만 서서히 다가와 스크린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풍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알렉산더>의 주연을 고르고 있을 때, 그를 지목하고 그의 금발과 연기에 필받았다고 하는데 사실 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이전작에서 느껴지는 그만의 매력이 발산되지 못했다는 느낌만 받았다. 안젤리나 졸리 역시도 마찬가지. 아직 젊디 젊은 그녀를 콜린 파렐의 어머니 역할에 맡긴 그 설정 자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는데 졸리만의 매력은 알렉산더의 어머니 역할로는 부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 알렉산더 역의 콜린 파렐. 그의 금발과 수려한 외모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알렉산더의 카리스마를 확인하기에는 역부족.



* 아니 이게 누구? 섹시의 대명사 안젤리나 졸리가 아닌가? 그러나 그녀 역시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로는 부적합했다는 생각. 그녀는 머니머니해도 섹시로 승부를 봐야해. 여기선 그녀의 섹시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효리하테 장희빈 역할 시켜봐 어울려? 알렉산더 엄마를 장희빈에 비유하는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 알렉산더 대왕의 마지막 전쟁. 여긴 인도? 코끼리를 탄 부족과 알렉산더의 무적의 군대가 맞붙었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여기서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이 전쟁을 치루기 이전까지의 장장 7년에 걸린 대 장정. 병사들은 죽어나고 지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알렉산더를 원망하고 증오하지만 그의 부상으로, 그리고 그의 회복으로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이 전쟁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실제 역사속의 인물 알렉산더가 걸어왔던 길을 영화로 만든 것일 뿐.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한다는 의미 외에 이 영화를 통해 다른 무엇을 느끼기는 힘들 듯 하다. 엄청난 엑스트라와 물자를 동원해서 치룬 스케일 큰 전투 장면에서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영웅이야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사랑 조차도 이 영화에서는 별다른 감동을 선사해주지 못한다. 이래저래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역사속 인물 알렉산더의 다큐멘터리 역할을 해주는 것  밖에. 다큐멘터리 치고는 참 재밌고 실감나는 영화지만 스케일 큰 전쟁 영화로는 그다지 아니올시다 이다.   이와 비슷한 류의 영화들, <트로이>, <킹덤 오브 헤븐>, <킹 아더> 에 비해서 좀 떨어진다.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알렉산더의 대장정과 업적들. 그것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작업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없다.

하나. 알렉산더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토록 기나긴 세월 동안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을 담보로 한 채 타국을 정벌했던 것일까. 전쟁에 지친 병사들은 묻는다. 이 전쟁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더냐? 부와 명예다. 그렇다면 그 부와 명예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당신을 위한 것이냐? 한 왕국의 야망으로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다. 누구는 자식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누구는 인생의 노년기를 전쟁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뭘 위한 전쟁인가. 아무리 좋게 봐도 알렉산더의 야망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정벌을 설명하지는 못할 듯 싶다.

둘. 알렉산더는 정벌하는 곳 마다 그곳의 지배자를 존중해주고, 그들의 문화를 인정해주었다. 즉 이전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 타민족은 야만족이다 라는 생각을 뒤집었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기고도 야만족을 대우해주는 바람에 아군 진영으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했다. 알렉산더는 그것을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라 말했다. 그들은 분명 알렉산더가 지배하기 이전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았고, 그리스 식의 교육을 받았다. 이것을 해방이라 볼 수 있는가. 지금 미국이 타국을 침략하고 그네들의 문화를 그곳에 뿌리내리게 하는 문화적 식민 작업과 알렉산더의 그것이 다를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늘의 미국도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그들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억압받는 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지금의 이라크를 보면 알 수 있을 터. 알렉산더는 그리고 미국의 부시는, 타국의 이민족들을 '해방시킨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그네들도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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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1984년'과 매트릭스의 만남, 이퀼리브리엄

"매트릭스는 잊어라" 라는 문구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인 영화 포스터.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그 뜻을 알지 못하고는 쉽게 기억하기 힘든 저 제목 '이퀼리브리엄'은 홍보용으로는 부적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걸 우리말로 번역해서 '평온'이라고 하면 그건 그냥 원래 제목을 놔두느니만 못하다.

  사실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듯 하다. 지난주 주말에 티비에서 밤12시에 해줬다고 하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그 전에 비디오를 빌려다 봤다. 예전에 군대에서 휴가 나와 극장에서 본 영화이기도 하지만 본지 꽤 지났기에 다시 봤지만 내용은 생소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조지오웰의 <1984년>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1984년>을 영화로도 봤고, 책으로 본지라 그 줄거리와 충격이 머리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뭐 레포트나 논문을 쓰면 으레 나오는 현재 사회는 과거 사회에 비해 어떻게 변했고 어떤 병폐가 있다 라는 식의 서문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지만 그것을 소설화, 영화화 한 작품은 그 표현력이 매우 빼어났다. 원작이 <1984년>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흡사했다는 면에서. 



* 이 화려한 존 프레스턴의 총술. 이걸 영화 속에선 '건카타'라고 한다. 최단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총술. <매트릭스>이후 액션은 끝났다라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 속 액션은 또다른 놀라움을 선사해준다.



* 존 프레스턴의 건카타에 순식간에 쓰러지는 클레릭들.

  <이퀼리브리엄>은 '감정'이 없는 사회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 두 가지 영역을 모두 갖고 있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회는 '감정' 이 없다.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들 또한 이 사회에서는 없어진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비롯하여, 아름다움과 추함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 거울, 음악, 미술, 예술적 가치가 있는 모든 작품들과 물건들은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감정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감정을 없애기 위해 하루 세번씩 꼬박꼬박 프레지움이란 약을 주사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치 로보트와도 같이 딱딱한 메마른 사람들로 변한다. 감정이 없으니 당연지사. 하얗게 창백한 얼굴을 하고 아무런 감정 없는 딱딱한 말투는 가족 사이라고 해서 달라질건 없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칭해 '반군'이라 하고 이들은 주어진 약을 먹지 않고 몰래 버리거나 숨겨놓으며 '감정의 제거됨'을 거부한다. 또 이들을 잡는 이들이 있었으니 '클레릭'이었다. 이들은 군인, 경찰과 같은 존재들이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이 두 그룹들간의 싸움이다. 총사령관 하에 클레릭은 반군들을 색출하고 반군들은 이들에 대항하고... 극중 한 클레릭 존 프레스턴은 그의 파트너가 범죄현장에서 책을 하나 들고 증거물수집과에 넘기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의심하게 된다. 결국 그가 투약을 거부하고 책을 읽고 있는 현장을 목격 그를 사살한다. 그러나 그를 사살한 존 프레스턴이 결국 나중에는 자신이 죽인 동료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와 사랑에 빠졌던 여자를 대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동정, 안타까움, 분노 등등의 감정을 지니게 되면서 그는 반군에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존재하지도 않는 총사령관의 얼굴을 한 부총령관을 사살함으로써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람들에게 '감정'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조지오웰의 <1984년>은 이와 비슷하다. 감정을 느껴서는 안된다. 사랑에 빠져서도 안된다. 그러나 소설속의 주인공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결국 그녀와 사랑을 나누던 현장을 목격당해 끌려간다.

  '감정'이 없는 삶이란 과연 가능할까. 영화에서 존 프레스턴이 사랑한 반군 여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이란 당신에게 어떤 것인가?" 존 프레스턴은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그 조차도 자신이 사는 목적과 의미에 대해 의심을 한다.
 
  우리는 신문기사와 저녁뉴스에서 사회의 무질서와 혼돈의 현실상을 볼 때마다 '감정'을 절제하고 '이성'으로써 해결해라 라고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또 그것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또 그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감정이 없이 이성만으로 된 사회는 너무나 메마르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슬픔, 기쁨, 분노, 동정, 연인 등의 감정을 느끼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좋아함과 사랑 등의 긍정적인 감정도 있지만, 증오함과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존재한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 갈래로 나누었지만 엄격히 어느 하나가 긍정이고 부정이라고 단언하지는 못한다. 때에 따라서는 분노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 부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감정을 통해 살아가고 삶이란 곧 감정의 표출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감정이 제거된 사회의 단면을 지켜봄으로써 새삼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으로써 행동해라' 라고 한 절대진리의 명제처럼 보이는 문장이 왜 이렇게 거짓으로만 느껴지는건지.

다음은 에롤 파트리지(숀 빈)가 존 프레스턴에게 죽으면서 낭송한 시이다.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 William Yeats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하늘의 융단을 소망하며 - 윌리엄 예이츠

금빛 은빛 무늬 든
하늘의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과 어스름의
파란, 침침한,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밑에 깔아 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오로지 꿈뿐: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 드렸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p.s 중학생 아이들에게 이 영화의 의미에 대해 말해주기는 어려울 듯 하다. 이 영화를 보여주면 전반부의 지루한 장면들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후반부의 화려한 존 프레스턴의 총술에 주목하며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영화의 의미를 배제한 채 재밌는 영화로서 보여줌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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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2-20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이츠의 시가 죽입니다.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캬~
영화줄거리를 보니 '트래블러'란 최근에 나온 책도 생각나네요.

플라시보 2005-12-2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이 영화 비디오로 빌려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어제 가 보니까 동네 비디오 가게가 말도 없이 이사를 갔더라구요. 이제 어느 비디오 가게를 뚫어야 할지..쩝

마늘빵 2005-12-2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 ^^ 비됴에선 저렇게 해석하진 않았는데 어떻게 해석하건 캬~ 소리 하오죠. '트래블러'는 뭔가요. 그거 검색해봐야겠네요.

플라시보님 / 주변에 비됴가게 없어진데 많아요. 저희 집 근처에도 한군데 밖에 없다는. 훔. 세군덴가 있었는데 다 없어지고. 재밌습니다.

바람구두 2005-12-2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프락사스님!
그런데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을 단순히 "평온"이라고 보기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철학 용어로는 의지(意志)의 자유를 주장하는 비결정론(非決定論)으로서의 "균형설"을 의미하거든요. 백과사전에 나오는 말을 옮겨 보면 이 영화의 제목으로서 단순히 "평온"이 아니라 좀 더 철학적인 제목이란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상반(相反)하는 두 동기(動機)가 같은 힘과 가치에 의해 균형상태에 있을 때, 의지는 어떠한 외적 원인에 의해서도 제약·규제되지 않고 자유롭게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며 의지의 자유를 주장한다."... 어때요?

그런 점에서 저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이퀄리브리엄"은 서로 대조적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일종의 결정론이니까요. 그리고 존 프레스톤(John Preston)이란 이름은 종교개혁 당시 급진적 청교도 신학자의 이름이자,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이란 동방의 전설 기독교 왕의 이름하고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좀 더 생각해볼 일이긴 하지만...

마늘빵 2005-12-2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바람구두님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진 못했는데요. 그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서요. ^^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