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오래, 많은 상영관에 걸리진 못했지만 잠시나마 극장에 내걸렸던 애니메이션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신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아니 애니메이션 제작에 왠 국가가 개입? 이라는 반응, 나 역시 처음에 그게 참 의아했고, 또 나 안에 잠재하고 있는 '국가'에 대한 거부감 또한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한 기관이 이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뒷받침이 되고,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기뻐할 것도 없지만. 난 지금도 국가는 지나치게 각각의 국민들의 생활에, 또 문화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지나치게'라는 단어도 빼자. 그냥 국가는 국민 사생활이나 문화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타인을 해하지 않는 한.

  <별별이야기>는 차별에 대한 유쾌한 풍자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차별에 관한 문제들을 이 안에 수록된 6개의 애니메이션은 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재밌게 그려내준다. 이 애니메이션은 2005년 전주 국제 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 2005년 밴쿠버 영화제 용호상 부문 초청, 2005년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고 한다. 글쎄 애니메이션에 무슨 영화제가 유명한지 어떤 상이 최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 애니가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는 말은 확실한 듯 하다.

    이 안에 너, 나,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별별이야기>는 차별의 문제를 다룬다. 장애인 차별, 성차별, 외모지상주의, 왕따, 대학입시, 외국인 차별 등 흔히 우리가 주변에서 적어도 한번씩은 겪어나 봤을 법한 일들이다. 아직 관용의 사회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일단 우리 사회에는 관용을 이야기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있고, 차별을 고쳐나가려는 노력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차별이 존재하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겪는 일이 아니라 하여 무관심하게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차별의 나의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것이 바로 문제점. <별별이야기>는 이야기한다. 여기에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들어있음을.

 첫번째 애니. <낮잠>은 유진희 감독 작품, 작업방식은 2D. 뭔지 잘 몰랐지만 애니를 보고 나니 이해된다. 2D가 뭔지. TV동화 행복한 세상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방식으로, 손으로 그린 만화에 연속성을 부여하는 방식. 간결하지만 깔끔하고 선이 이쁘다.

  <낮잠>은 장애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다. 발이 없고, 두 다리의 길이가 짝짝이인, 게다가 한손은 손이 없고, 다른  한손은 셋째, 넷째 손가락이 없다. 수영장에서의 따가운 눈초리,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는 서러움, 교통수단이용의 불편함 등 장애인이 겪는 일상의 차별에 대한 문제를 바로 라는 귀여운 여자아이의 꿈 속을 통해 그려낸다. "달콤한 낮잠 속에서 펼쳐지는 불편한 꿈"



* 자신의 뿔가지 잘라버린 염소와 어린 새끼양. 양과 다른 모습을 한 젖소, 닭, 오리, 돼지 등 한무더기가 농장에 온 뒤로 염소는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두번째 애니. <동물농장>은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양들이 사는 농장에 단 한마리 염소가 있다. 염소는 양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번번히 매맞아 돌아온다. 혼자 밥먹고, 혼자 놀고, 혼자 자며 염소는 외로움을 겪는다. 양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해야 하는 신세. 왕따다. 나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왕따를 시키는 경우,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다. 머리가 덜 떨어졌다고 해서, 너무 이쁘다고 해서, 잘난척한다고 해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왕따를 당한다. 물론 왕따당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왕따는 너와 너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풍토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세번째 애니. <그 여자네 집>. 결혼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 남편은 씻고 밥먹고 설거지도 안하고 옷도 안걸어놓고 직장에 나가고 들어와서는 아기와 아내에겐 관심없고 또 밥먹고 양말 아무데나 벗어던지고 신문보다 말고 쇼파에 누워 티비보고 한다. 아주 흔한 모습이다. 아내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애보고 직장다니고 정신이 없다. 열받은 아내, 어느날 쇼파에서 남편이 자고 있는 사이 진공청소기로 집안의 모든 것을 다 싹쓸어버린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똑같이 직장에 다니지만 아내는 집안일까지 도맡아한다. <그 여자네 집>은 흔히 맞벌이 부부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차별을 보여준다.

  네번째 애니. <육다골대녀> 한자로 풀이하면, 고기 육, 많은 다, 뼈 골, 큰 대, 여자 녀. 즉 살이 많이 찐 체구있는 여자를 말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노래한다. 대대로 물려받은 못생긴 모양새. 죄다 집적되어 나한테 떨어졌다. 철사같은 곱슬머리, 큰 머리통, 엄청난 덩치, 돼지같은 살덩이, 짧은 목, 짧은 키, 게다가 성질도 더럽다. 이런 여성이 이 사회에 발붙일 곳은...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소개팅을 나가도, 회사 면접을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외모지상주의가 되어버린 이 시대, 여자들은 다이어트하고 요가하고 몸매가꾸며, 남자들도 운동해 너도나도 몸짱만들고 심지어 이제 성형도 한다. 못된 건 용서해도 못 생긴건 용서못한다는 풍조. 문제있다. 이 애니는 바로 그런 풍조를 꼬집는다.

  다섯번째 애니. <자전거 여행> 장애인 차별을 이야기한다. 아무도 타지 않은 자전거 한대가 산길을 달리고, 골목길을 달린다. 자전거는 길을 움직을 때마다 기억을 더듬는다. 연인이 행복한 모습은 사라지고, 공장에서 혼나고 있는 메하르가 보인다. 네팔노동자. 몇달 째 임금이 체불되었고 일만 죽어라 했다. 사장은 도망갔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불법체류감시간이 들어온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가끔 가다 외국인 연인을 본다. 얼굴 하얀 유럽이나 미국의 연인이 아닌, 필리핀인지 말레이시아인지 네팔인지 어딘지 모를 외모를 한 젊은 두 연인. 그들도 우리의 다르지 않다. 동남아 출신의 노동자라고 하여 과거 미국인들이 원주민 다루듯 때리고 짓밟고 사기쳐도 되는 것 아니다. 그들도 사람이고, 슬픔과 기쁨을 느끼고, 사랑하고, 행복을 원한다.



* 아직 대학에 가지 못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지 못한 수많은 고딩들, 그들의 자화상이다.

  여섯번째 애니. <사람이 되어라>. 유명한 만화가 박재동씨의 작품이다. 각기 다른 동물얼굴을 하고 있는 고딩들. 학교에서, 집에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심지어 급훈이 '대학가서 사람되라'다. 대학을 위해 오로지 공부하고 내달려야한다. 왜?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을 나와야 사람이 된단다. 대학 안나오면 지금 하고 있는 동물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사람의 얼굴을 갖추기 위해 우리는 대학에 가야한단다. 대학 못가면 사람도 아니란 말씀.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입시교육풍토를 꼬집는다. 무조건 대학가라고 닥달하는 부모님과 선생님. 오로지 목표는 좋.은. 대.학. 여기에 우리의 꿈과 희망, 목표는 없다. 일단 대학이다. 모든 교육이 대학입학을 향해 있는 지금의 현실을 풍자한다.

   여섯편의 애니메이션.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고, 각기 다른 제작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0분에서 15분가량의 짧은 애니메이션 안에 각 작품의 감독들은 압축적으로 주제를 풀어냈다. 때로는 감동을 주면서, 때로는 해학과 풍자로.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은 가장 절실하게 차별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고, 우리가 타인에게 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때로는 가해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피해자의 모습으로 우리는 각각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친구를, 우리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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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6 2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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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6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조너선 울프 지음, 김경수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1월
품절


"우리가 인생에서 인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한다면, 어떤 짐도 우리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만인의 이익을 위한 희생이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해 일할 때 사소하고 제한된 이기적인 기쁨 대신, 모든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행적은 조용하지만 영원히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유골 위에는 고결한 사람들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릴 것이다."
(<직업 선택에 관한 한 청년의 고찰>, 17살의 마르크스)-16쪽

많은 경우, 행위자들은 그들이 '타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또 만나지 않는 한, 자기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은 다른 행위자(동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신이 아닌, 외부 사물의 관점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 관여하고, 상호작용함으로써 신은 비로소 자기자신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30쪽

포이어바흐는 많이 다루어졌던 주제를 부활시키면서 인간이 왜 신을 닮았는가 하는 이유에 대해 신이 인간을 자신의 이미지대로 창조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인간의 이미지대로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P32)

포이어바흐는 우리 인간은 사유 속에서 인간을 무한한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어떤 힘을 스스로 지니고 있는데, 이를 통해 모든 완벽함을 체현하고 있는 어떤 존재를 우리 밖에 창조했다고 보았다.(P33)

마르크스는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가 종교를 고안해냈는데, 그 이유는 단지 그들의 지상에서의 삶이 너무 형편없고, 빈곤에 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악명 높은 주장,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란 말의 맥락이다.(P35)

본질적으로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포이어바흐가 퇴락에 대한 깊은 불안의 징후를 전해주고는 있지만, 불안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교를 고안해낸 것은 단순히 불행한 실수가 아니라, 지상에서의 삶이 보여주고 있는 빈곤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32-37쪽

마르크스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와 의식에 따라 고정 틀을 벗어나 의식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생산을 할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 존재가 생산할 수 있는 물건들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런 유적 본질의 측면을 향유할 수 있다. 그곳에서 인간은 생산 행위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기보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생산할 뿐이다. 이때 그것은 향유가 아니라 고문이다. -55쪽

시민사회와 국가를 구별한다. 국가는 시민의 영역이다. 정치적으로 해방된 국가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시민들로, 법 앞에서 평등하고, 풍부한 권리 목록의 자랑스러운 소유자들이며, 서로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한 국가 구성원이요, 동료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수준에서 보면 - 일상적인 경제 활동의 수준 - 사물들은 매우 다르게 보인다. 우리들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필요한 만큼 경쟁하고 착취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이들의 성공을 질투하면서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에 집착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각자 이중생활을 한다. 즉, 평등한 공중 시민과 원자적인 사적 개인으로 말이다. -65-66쪽

"철학자들은 세계를 오직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문제는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묘비명이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75쪽

"코뮤니즘 사회에서는 누구도 배타적인 활동 영역을 가지지 않으며, 사람들마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라면 어디에서도 학문과 기예를 배울 수 있고, 또 사회는 생산 일반을 조절한다. 이를 통해 나는 오늘 이 일을 하고 내일에는 다른 일을 하며, 또한 내가 사냥꾼이나 어부 혹은 목동이나 비평가가 따로 될 필요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질을 하며, 밤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뒤에는 비평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독일 이데올로기> 中)-133쪽

마르크스의 종교 분석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인류는 신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였다. 둘째, 그 신은 현실 세계에서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안을 얻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셋째, 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일상생활에서의 소외이다. 넷째, 오직 코뮤니즘 사회만이 이런 소외를 극복하고, 종교를 초월할 수 있다. (P144)

종교의 모든 측면들을 하나의 위안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당연히, 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대답들에는 다음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현대의 어떤 사회들은 물리적 재화는 풍요롭지만, 아직 계급이 나뉘어 있으며, 그 때문에 소외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위안을 필요로 한다. 둘째, 계급 사회에서 종교의 존재는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천국에 대한 생각에 미혹되어 노동자들은 지상의 지옥에 대해서는 저항을 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 이론과 직결된다. (P145)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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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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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잘 모르지만, 영화에 관심이 있는 나는, 우리나라에 좋아하는 몇몇 감독들이 있다. 그 중 딱 두명만 뽑으면 박찬욱과 허진호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철학과를 나왔다는 것이고, 내가 이 둘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철학과를 나와서는 아니다. 두 사람을 먼저 좋아했고, 나중에 뒷조사를 하다보니 철학과 출신이더라. 좋아하는 다른 감독도 더 있다. 하지만 말이 많아지면 어수선해지기만 하니 그들은 나중에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음 이야기하기로 하자. 오늘의 주인공은 박찬욱이니.

  난 영화를 좋아하지만 하지도 않는 영화를 굳이 찾아다니며 보는 편은 아니다. 부천영화제, 부산영화제 한번도 안갔고, 소위 말하는 예술영화들이 개봉할 땐 그 소식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홍보물이 내 시선에 들어올 때 비로소 한번 볼까, 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영화를 좋아한다 라고 말할 때는 적어도 좋아하는 감독이 있고, 좋아하는 영화장르가 있고, 남들 안보는 예술영화들도 발벗고 찾아다니며 볼 수 있는 정도의 열성이 있어야 영화를 좋아하는거라고. 개봉 때마다 몇몇 영화들 골라서 보러 다니는 건 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데이트하기 위해 영화를 선택한 거라고. 하지만 난 말한다. 아니 영화적 장치에 대해 논하고, 예술 영화 찾아다니고, 특정한 배우나 감독에 대해 시시콜콜 알아야 하고, 그 감독들이 논하는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영화를 좋아하는거야? 아니다. 그냥 영화보는걸 좋아하면 영화를 좋아하는 거다. 나름 나는 좋아하는 감독도 있고, 좋아하는 배우도 있으며, 좋아하는 장르도 있다. 그것이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딴지 걸지마시라.

   <공동경비구역 JSA> 이전의 박찬욱의 영화는 모른다. 많은 이들이 박찬욱을 알고 있을 땐 이미 저 영화를 통해서였을 터. 나 또한 그 '대중'을 구성하고 있는 한 명의 영화팬이다. 이 영화 때도 박찬욱을 제일 좋아하는 영화 감독 리스트에 올리지는 않았다. 이후 그가 <복수는 나의 것>을 내놓았을 때 난 그를 욕했다. 이런 잔인한 영화같으니라고. 잔인하다고 욕먹을 필요는 없지만 난 이 영화가 너무나 불쾌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난 그에게 열광했다. 이전에 아마 내가 써놨던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영화감상문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흠. 생각난김에 찾아봤더니 없다. 이런.

  그가 복수 3부작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 난 또 열광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첫번째는 잔인했고 불쾌감을 느꼈지만 이내 그것은 쾌감이 되었고, 두번째 또한 그 잔인함에 한표를 던졌지만 역시나 열광을, 세번째는 생각만큼 잔인하진 않았지만 또다시 열광을 보냈다. 그의 머리 속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의 몽타주>라는 책이 지난해 말 나왔다. '몽타주'는 컷과 컷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영화 장르의 핵심적 특성을 드러내는 용어이다. <박찬욱의 몽타주>에서는 그가 지금껏 써온 칼럼, 에세이, 셀프인터뷰, 제작일지, 그의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모아모아 짜깁기했다. 사실 기대한 만큼의 책은 아니었다. 나는 짜깁기 책보다는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다시 쓴 그만의 영화이야기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지나친 기대였던 것일까. 이 책은 모두 짜깁기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는 자신이 쓴 이런저런 글들을 모아모아 만든 짜깁기 책이다.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 그의 글을 보고 싶었으나 그런 글을 기대한 것은 아니므로.

  그는 영화감독 이전에 평론가로 활약했다고 한다. 이 역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이 책에도 그의 평론이 조금  실려있다. 책의 뒤쪽에 그가 말하는, 그가 좋아하는 B영화에 대한 평론들. 하지만 그건 읽어도 도통 그 영화들을 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어 넘어갔고. 그냥 그의 쿨한, 솔직하게 써재낀 칼럼과 에세이가 좋았다. 글발이 있는 사람은 아닌 듯 하다. 아니면 글발이 있지만 귀찮아서 막 쓴 듯이 보이는 그 글들. 처음엔 좀 불쾌했다. 그의 영화를 접할 때도 불쾌했지만 그것이 쾌감으로 변질되었듯, 그의 글을 통해서도 난 불쾌감으로 시작해 쾌감으로 끝났다. 그것은 어쩌면 그에 대한 나의 호의적 감정이 만들어낸 쾌감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칼럼이나 인터뷰 글들은 뭐랄까 너무 가볍다. 진지함이 묻어있지 않다. 물론 모든 칼럼이나 에세이가 진지할 필요도 없고, 그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고까지 밝혔으므로 그는 무죄. 그걸 기대한 나는 유죄. 마치 우리가 어느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자기소개 형식으로 100문 100답을 쓰는 듯한 귀차니즘과 억지성의 압박심리가 느껴졌고, 아마도 뜨기 전의 그는 밥벌이의 수단으로, 혹은 알려지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썼기에 그와 같은 느낌이 오는지도 모르겠다.   <몽타주>를 통해 박찬욱을 알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조금이나마 내가 좋아하는 그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동시에 나온, 하지만 조금 더 비싼, <박찬욱의 오마주> 도 곧 사보지 않을까 하는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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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6-02-04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꼭 장르와 감독, 영화의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해 시시콜콜히 알고 있어야 매니아인가요. 영화 나올때마다 불법다운로드 받지 않고 꼭 개봉관에 가서 보시는 아프락사스님같은 분이 진짜 매니아죠.^^

마늘빵 2006-02-04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감사합니다. 어제도 영화 하나 보고 왔어요. 이따 글 올려야지. 요즘 개봉한 것 중에 보고픈게 꽤 있는데 흠 다 보긴 힘들거 같구 골라서 몇 개 더 보려구요. 전 불법다운로드는 안해봤어요. 어캐하는지도 몰라요. ㅋㅋ
 
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품절


이데올로기적 편향성 면이나 계몽적 태도에서 절제를 했다는 점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큰 미덕이 아닌가 합니다.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족주의를, 특히 한국인의 과도한 민족주의 성향을 몹시 두려워하는 쪽입니다. 그래서 <아나키스트> 각본에서도 의열단원들이 독립운동의 차원을 넘어 무산자 혁명을 추구하는 무리임을 강조해던 것이고요. 그렇다고 본능적으로 우러나는 민족 감정까지 억눌러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통일의 당위성을 강변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분단 상황을 몹시 불편한 것이라는 사실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통일을 논하기에 앞서 전쟁의 회피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싶군요. 잘 못 느껴서들 그렇지, 한반도는 언제라도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거든요.

('나를 죽이다' 中)-163쪽

각자의 개성을 평가한다면?
이영애는 관찰자 역할에 잘 어울리는 크고 아름다운 눈을, 이병헌은 대한민국의 가장 건강하고 평범한 젊은이를 연기하는 데 적합한 건치를 가졌죠. 송강호의 매력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캐릭터임을 단박에 드러내 줄 수 있는 짝짝이 눈에 있구요. 김태우의 그 커다란 귀는 유약하고 섬세한 성격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고, 신하균의 송아지 같은 눈망울에는 선량함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건 내게 있어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었죠.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中)-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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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6-01-2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어요. 워낙에 밀린 책들이 많아서리..^^
 
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의 감옥> 리뷰를 쓰려고 컴퓨터를 오늘 세번째 켜고 있다. 켤 때 마다, 쓸 때 마다 이놈의 노트북이 벅벅 예고도 없이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미치고 환장하지만, 이제 이런 것도 적응 됐다. 그냥 응 꺼졌구나 그래 그래. 다시 켜면 되지. 괜찮아. 자식. 많이 열받았나보네. 근데 오늘 너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열받고 그러니 속으로 그렇게 달래며, 다시 전원을 켜고 또 켜고 그런다. 날리면 어떠니. 아까 그 글이 그대로 나오진 않겠지만 뭐 내가 언제 대단한 글이나 썼니. 그냥 허접하게 다시 쓰면 되지. 이번 또 꺼지면 가만 안둔다아아.

  환타지. 환타지. 환타지. <자유의 감옥>은 환타지 소설이다. 그러나 중고딩들이 교실에서 몰래 몰래 훔쳐보는 그런 환타지가 아니라 약간은 고급스런 환타지라고나 할까. 뭐가 고급이고 뭐가 저급인지 따지는게 참 우습긴 하지만 말야.

  내가 지금껏 읽은 환타지 소설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전부였다. 흠. 문제있나? 너무 편식했나. 편식이라고 할만큼 다른 분야의 책들을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니니, 이것 찍접 저것 찍접 했달 밖에. 드라마 삼순이가 지난해 시상식을 화려하게 휩쓸어버리고, 약 한달이 못지났다. 삼순이 때문에 뜬 책이 바로 <모모>라는 환타지 소설인데, 이 책이 아마 <자유의 감옥>의 저자와 같다고 하지? 미하엘 엔데. 1995년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출판사들은 그의 사망 10주기를 기념하여 작품 복간에 들어갔다. '독일 문학의 마지막 낭만주의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미하엘 엔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모모>를 보기 전에 <자유의 감옥>을 접해 순서가 뒤바뀐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읽었으니 어쩌랴. 아마도 <모모>가 더 재밌고 쉬운 모양인데, <자유의 감옥>은 너무나 어렵고 좀 지루하고, 결과적으로 재미 없었다. 미안하게도.

  <자유의 감옥>안에는 여덟개의 각기 다른 작품들이 숨어있다. '긴 여행의 목표'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찮아' '미스라임의 동굴'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자유의 감옥' '길잡이의 전설' 이렇게 여덟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았고,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내는 반면, 나를 포함한 일부 몇몇 사람들은 재미없어, 지루해 라는 반응으로 일관. 아니 도대체 머리 속에서 어디에 이상이 있길래 많은 이들의 감상과 나의 감상이 다른 거지? 흠. 내가 아직 환타지 입문자이기 때문인가. 나도 인정한다. 미하엘 엔데의 그 순수함과 기발한 상상력, 끊임없이 뽑아져나오는 아이디어. 좋아 인정해. 그런데 재미는 없어. 이야기가 너무 어려워. 혹자는 철학적인 환타지라고도 하는데. 음 맞다. 철학적이다. 그가 이 짧은 환타지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바가 분명히 있고 그것은 비판이기도 하며 교훈이기도 하다.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 그런 의도들을 숨겨놓았다는 점에서 분명 가볍게 볼 수 없고, 철학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냐고. 난 재미가 없다고.

  굳이 재밌는 작품을 골라보라면 '긴 여행의 목표' 와 '교외의 집'이 괜찮았다. '긴 여행의 목표'에 등장하는 순식간에 갑부가 되어버린 부도덕한 싸가지 없는 녀석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궁금증을 가지며 읽었고, '교외의 집'에서는 공간을 차지 하지 않는 집이란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괜찮았다. 어려워서 후딱 읽고 끝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말 후딱 읽어버렸지만, 전 국민이 본 그의 또다른 작품 <모모>는 좀 더 기대를 해봐야것다. 나에게 재미를 선사해줘. 보니깐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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