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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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사랑의 아픔을 겪은 남자 혹은 여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철저하게 배신을 때린 - 뭐 그게 나쁘다는건 아니고 - 이 소설은 책 내용에 있어서도 또 한번의 배신을 때린다. 야구방망이로 세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이 느낌(니가 야구방망이로 맞아봤어?). 작가 우타노 쇼고는 아주 계획적으로 독자를 속이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여자의 살갗은 촉촉히 젖어있다. 절정에 다다르면서 그녀의 몸은 열기를 띠며 끈끈한 땀을 내보냈다. 지금은 그 몸이 식으면서 내 몸의 열기를 빼앗아 간다. 고동 소리가 들린다. 귀로 듣는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살갗에서 살갗으로 전해지는 그 소리에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울림에 마음이 편해진다. 어머니의 태내에 있었을 때는 하루하루가 매일 이런 느낌이었으리라."

  제 1장 만남의 한 대목이지만 이 소설은 매우 진하게 시작한다. 한 남자와 여자가 섹스를 하고 남자는 여자의 살갗을 어루만지며 생각한다. 느낀다. 아주 제대로 침대위의 두 남녀를 묘사하고 남자의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생각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은 500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소설의 이후 내용에 기대를 품게 만든다. 잔뜩 들뜨게 해놓고 실망시키기만 해봐라.

 1장을 읽고 당연히 연애소설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은 이내 곧 여지없이 무너진다. 남녀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 아니 물론 남녀간의 이야기도 있지만 - 사립탐정 수사물이다 완전. 그렇다고 나쁘다는건 아니고. 잠깐 탐정사무소에 나갔었다고 친구(?)의 사건에 깊숙히 참여해 아예 조사를 하고 다니다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상황까지 맞이하고. 대단한 열정을 가진 친구다. 결국 그는 당연하게도 사건을 마무리짓지만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었다. 사건을 뒤집어 헤치고 해결하는 그 스릴넘치는 과정은 맛배기였다. 진짜배기는 절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다. 이미 읽은 독자가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안돼 너는 절대 속지마, 명심해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라고 미리 경고해준다고 해도 절대로 작가의 트릭을 빠져나갈 수 없다. 정말 의외의 곳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나니. 고정관념을 팍 깨버리는 소설이었다.

  적어도 추리소설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괴도 루팡, 셜록 홈즈, 아가스 크리스티와 같은 유명 추리소설에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예상할 수 없는 함정.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기에, 또 그가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치밀한 구성을 만들어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책 마지막 장을 덮고서, 어이 없이 속아버린 나 자신에 대해 허탈한 웃음을 한방. 허허.

  <트릭에 속지 않는 법>
  1.모든 등장인물들은 괜히 설정된 것이 아니고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2.사건해결의 스릴을 즐겨라. 하지만 거기에만 빠져서는 안된다. 그럼 속는다.  
  3. 고정관념을 깨라. 당신이 가진 모든 고정관념을 없애라. 
  4. 하지만 당신은 100% 속을 것이다. 내 장담한다. 위의 세 가지 경고를 미리 줬음에도 당신은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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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6-0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등장인물에 속고. 고정관념에 속고..스릴 그 속에만 빠졌다가 또 속고..

마늘빵 2006-06-0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계속 다 속았어요. 저도. -_-;;
참 치밀한 녀석이에요. 이 작가.

물만두 2006-06-0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그래서 재미있잖아요^^

마늘빵 2006-06-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 많이 속아서 재밌어요. 추리소설은 그 재미죠. 트릭에 속아넘어가는 재미. 아 너무 철저했어요. 의심조차할 수 없는.

moonnight 2006-06-0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어요. ^^

전호인 2006-06-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넘 서정적이라서 찾아왔는 데.......님의 실망하시는 글을 보니.......저는 제목에 속은 건가여. ㅎㅎㅎ
"벚꽃지는 계절에........"

마늘빵 2006-06-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잇님/ 재밌죠?! ^^ 저도요.
전호인님/ 엇 실망이 아니고, 속아넘어간 것에 대한 넋놓음인데요. ^^
 
자살 살림지식총서 222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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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하나. 스칸디나비아에 거주하는 햄스터같이 생긴 쥐 레밍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을 한다.
하나. 세계적으로(국내포함) 유명한 사람들 중 자살한 이들이 많다.
-배우 이은주, 음악인 커트코베인, 배우 장국영, 철학자 들뢰즈, 가수 김광석, 서지원 등등 
하나.  누구나 한번쯤 자살 충동을 느낀 적 있다. 정말?
하나. 2002년도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죽은 사람들은 총 8,631명으로 사망자 100명당 4명이라고 한다.


  많은 목숨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지만, 또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등의 분야에서 자살에 대해 여러각도에서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고 미리 방지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자살자는 존재한다. 왜, 어떤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일까. 수 억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를 만나 어렵게 수정되고, 열 달을 기다려 어렵게 세상의 빛을 보지만 그 소중한 목숨을 포기하는건 한 순간이다. 쉽다고는 말 못한다. 어렵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무섭다.

  자살은 죽음의 한 종류이다. 죽음을 말함에 있어 자살을 말하지 않는 것은, 일부의 죽음만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자살은 쉽게 말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남에 대해서 말할 수 없듯 죽음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태어남과 죽음은 모든 인간이 한번씩만 경험하는 것이고, 태어나기 전 그리고 죽은 후 우리는 그 경험을 풀어놓을 수 없다. 쉴러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한번, 죽음도 한번, 태어남도 한번, 소멸도 한번뿐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기에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고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색과 고찰은 인간의 '이성'의 영역으로 죽음을 들여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망설인다. 죽음을 고찰하는 것에 대해서.

  이 책은 죽음, 그 중에서도 자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어떤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의식하지 않고 지내던 죽음에 대해, 자살에 대해 의식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뿐이다. 가까이에서 벌어지지만 무심코 지나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 자살에 대한 해석

  예로부터 자살은 금기의 영역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후기까지 자살은 신성에 대한 모독이며, 인간에 대한 범죄이며 자기자신에 대한 살인이므로 죄악으로 여겨졌으며, 18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자살'이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자살을 희생으로 간주하여 하나의 병리적 현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도, 자살을 선택의 문제로 보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에 있어서 자살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철학자와 정치가에 한해서였다. 황제에게서 총애를 잃어버린, 신임을 받지 못하는 정치가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도리를 다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이마신 것은 방법적 차원에서 스스로 마신 것이니 자살이지만, 국가에 의해 강제로 명령된 경우이니 순수한 자살로 보기 어렵다.

  19세기의 자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된다. 하나는 프로이드가 대표적인 경우로, 자살을 광기나 우울증, 신경쇠약, 자아분열과 같은 의학적, 심리학적 병리현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뒤르켐의 경우로,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며,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발생하는 집합적 증후로 간주하는 경우이다. 순수하게 개인에게 국한된 현상이냐 아니면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냐, 이렇게 두 가지 해석이 존재했다. 나는 그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라고 말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시대에 따라, 개인의 환경에 따라, 자살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쳐서 자살한 경우야 프로이드식의 해설에 더 적합하겠지만, 청백리로 알려졌던 인물이 한 순간의 작은 죄악으로 자살을 택하는 경우 이는 프로이드보다는 뒤르켐의 해석을 따라야하지 않을까.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사망자 100명당 4명의 자살자는 대개 사회적 차원에서의 자살이 아닐까. 돈이 없고, 백도 없고, 살기 막막하고, 에라 모르겠다 세상아 같이 죽자, 자식 내던지고, 아내 살해하고, 나는 불태우고. 뒤르켐은 자살의 진짜 원인은 개인이 사회에 통합되는 정도와 그가 정신적으로 수행하는 적응하려는 행동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보다 시골에서, 카톨릭보다 신교사회에서, 전통적 가족구조에서보다 이혼율이 높은 가족구조에서 자살율은 높게 나타난다.

  - 자살은 권리인가, 불가피한 선택인가

   자살에 관해서 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다. 위암 말기환자이고 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죽음에 점점 다가가고 있고, 죽음이 결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너무나 고통스럽다. 고통을 견디며 죽어가는 것 보다 좀더 인간적으로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 허락해달라. 안락사의 문제이다.

  안락사에 관한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의 목숨은 하느님이 주신거다. 어떻게 감히 인간인 너 따위가 죽음을 선택하려 드느냐는 기독교식의 논리에서 내가 나의 생사를 선택하겠다는데 남이 왜 참견이냐고 말하는 죽음의 권리를 내세우는 사람까지. 그 중간에는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의견들이 놓여있다. 안락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순수하게 개인의 영역에 던져주지 못하는 것은, 안락사와 관련되어 사회적 범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며, 허가했을 때 사람들이 더 쉽게 어려운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가하지 않자니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조차 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보아도 자살에 대해서 모두 의견이 가지각색이었다.

  "자살이란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빚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그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에, 그리고 만일 이것이 의도적이고 자유롭게 영속적으로 행해진다면 오직 신에게만 속하는 권한을 사취하는 신에 대한 범죄이므로 자살은 치명적인 죄악으로 간주해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방법이 죽음 말고는 다른 것이 없을 때 이 세계를 떠날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오직 철학자에게만 속하는 지고의 존엄이다" (세네카)

  "만일 자살이 허용된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만일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살 또한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것이 바로 윤리의 본질에 관한 문제다. 자살은 말하자면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살을 알아보려고 시도하는 것은 수증기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수은 증기를 만져보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그런데 자살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비트겐슈타인)

  형제가 셋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을 보았던 비트겐슈타인조차도 자살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게 답변하고 있다. 자살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는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끝없는 논쟁의 영역에 놓여있다. 어릴적 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실행에 옮겨본 적은 없다.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내가 자살을 하려고 한 이유는 내가 너무나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를 억압하는 부모님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죽으면 부모님이 슬퍼하겠지, 하는 생각에 자살을 생각해봤으나 단지 '생각'의 차원이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쉽게 비난한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면서. 그 사람이 왜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 이해해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 혹은 그녀를 비난한다. 아직까지 자살은 죄악이라는 의식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살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적어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존중해줄 필요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키에르케고어의 말은 되새겨 볼만하지 않을까.

  "각자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곳에서 (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그를 위해 걱정해 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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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0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도 있었네요. 재미있겠네 ...
살림 지식 총서 중에는 꽤 알찬 책들이 제법 있더라구요. :-)

마늘빵 2006-06-0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살림지식총서 제가 책 주문할 때 가격 맞춰 주문하려고 종종 집어넣어요. 괜찮은 책 많아요. <르 몽드> 좋았고, <자살>도 좋고요.

가넷 2006-06-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에서 몇권은 30% 할인 하더군요..-_-;;;(이 책말구요. 흠.)30%할인 하는 책 몇권은 교보에서... 지를려고 하는 중이여요..ㅎㅎ 르 몽드랑, 뉴에이지, 커피이야기 2004년도에 나온 몇권은 30%하던...^^ 흠.;

마늘빵 2006-06-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이 싼 값에 더 할인해요? ^^ ㅎㅎ
전 그냥 다른 책 주문할 때 끼워서 하나씩 천천히 볼래요.

비로그인 2006-06-0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미셸 푸코가 자살했어요? 들뢰즈가 자살하고 푸코는 에이즈로 죽지 않았나요?

마늘빵 2006-06-0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자꾸때리다님/ 들뢰즈랑 푸코 착각한거 맞습니다. 얼른 고쳐야겠다.
 
영화음악 : 불멸의 사운드트랙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64
박신영 지음 / 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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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가 3,300원, 분량 100페이지도 안되는 이 책에 애초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살림지식총서를 관심주제에 따라 골라가며 접해본 나로서는 이 책은 약간 실망이다. 책으로 내기 위해 쓰여진 글이라기보다는 개인 블로그나 영화 사이트에 연재하던 글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다. 물론 그 역시 모아지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책을 낼 수 있으나, 이 책을 구입할 때 애초 기대한 바는 '영화음악'에 대한 좀더 넓고 깊이있는 '무엇'이었다. 영화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개인이 오랜 세월 영화를 접하고 또 영화 속 음악을 접하고 느껴온 바를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서술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음악은 글쓴이의 말마따나 이제 더 이상 영화 못지 않게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하나의 영역이다. 하지만 영화 음악이란 것은 영화가 없이는, 영화의 존재를 아래에 깔지 않고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영역이다. 영화를, 영화 속의 장면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영화음악의 존재의미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영화를 빛내주는 영화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했고, 고등학교 시절 OST가 original sound track 의 약자인 것도 모르고, 음반점에서 OST 주세요, 했던 나의 무지함은 이제 없다. 그때 그 얼굴 빨개지고 땀 뻘뻘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영화음악은 아마도 영화 <접속>부터 붐이 일지 않았나 싶다. 저자도 책 어딘가에서 그런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다. 접속OST는 당시 엄청나게 팔렸으며, 이후 <쉬리>에서의 'when I dream' 역시 영화만큼이나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근 10년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영화음악은 참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고, 영화음악의 한 가운데서 주목받고 있는 자는 '이병우'와 '조성우'를 들 수 있을 터. 나 역시 이 두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너무 많은 영화음악 제작에 참여해 그간 형식의 다양성은 많이 늘어났지만, 작곡가의 다양성은 오히려 퇴보하지 않았나 싶다. 원래 기타리스트 였던 이병우씨는 순수하게 기타리스트로서보다는 영화음악가로, 조성우씨 역시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봄날은 간다>의 영화감독 허진호와는 친구사이이다 - 홀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어쩌면 취미로 시작해 성공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자금이 뒤따라준다면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드는 영화음악음반을 죄다 구입해 감상하고 싶지만 현실로 눈을 돌렸을 때 누추한 나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저 후일의 꿈으로 미뤄둔다. 글쓴이의 영화와 영화음악에 대한 개인적 감상과 해설로 인해, 이미 봤던 영화이지만 다시 보고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시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땐 영화음악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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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6-0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멜리에의 영화음악이 생각나요. 그녀가 물수제비를 뜨던 순간에 들리던 음악은 정말 슬프면서도 경쾌한, 봄같았어요. 러브 액츄얼리도 좋았지요. 가끔은, 내가 서있는 이곳에 BGM이 흐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어요.

마늘빵 2006-06-0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쥬드님 감성적이세요. 아멜리에는 전 아직 못봤어요. 러브 액츄얼리는 정말 좋았죠. 음악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하지만 제가 영화를 좋게 본 것은 배경에 흐르는 음악이 영화를 돋보이게 했다는 증거겠죠. 다시 보고 싶군요. 전에 디비디 사놓은것두 있는데.
 
영화음악 : 불멸의 사운드트랙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64
박신영 지음 / 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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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언더 스코어링'은 고전 영화음악에서 흔히 사용되던 기법으로 '미키 마우징'이라 불리기도 한다.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음악이 그 장면을 추적하는 스코어링 방법이다. 발레와 서커스에서 이미 하나의 스타일로 굳어졌으며 영상과 일치하는 매력으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보다 증폭시키는 효과를 이끌어낸다.

'언더 스코어링'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뜻을 갖고 있는 '오버 스코어링'은 스코어가 영화 속의 다른 음향에 비해 좀더 과장된 소리로 들리게 하는 방법이다. 영화 속의 효과음은 거의 제거된 채 처음부터 끝까지 스코어만 들리는 기법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에 있어 탁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영화의 흐름을 깨는 역효과도 일으킬 수 있어 작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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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살림지식총서 222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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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번, 죽음도 한번, 태어남도 한번, 소멸도 한번뿐이다." (쉴러)-8쪽

어떤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고찰한다는 것은 이성의 질서에 따라서 고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부분적으로는 오히려 열정과 병리학의 질서를 따른다. 이것이 자살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자살에 대한 이성적인 논증들을 알고는 있지만 그 논증들이 자살자의 고통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자살자의 고통을 전해주는 말은 이성적인 논증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을 진실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나의 과학적 논증이 적어도 과학이라고 자처하려면 현상에 의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자살에 관한 논증들은 이 둘 사이를 영원한 평생선처럼 오락가락하는 것이다.-9쪽

인간은 오직 침묵 속에서만 자신을 가장 잘 제어할 수 있을 뿐이다. 그 경우가 아니라면 그는, 말하자면 끊임없는 장광설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가 될 뿐으로서 오히려 자기가 아닌 타인으로서 자신을 유포하는 셈이다.(디누아르, <침묵의 미덕>)-13쪽

인생이란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오래 끌어가지 않으면 안 되늰 것과 같은 그런 애착이 가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대의 본질이 원래 어떻게 만들어져 있든 간에 남과 마찬가지로 그대 역시 죽지 않을 수 없으며, 품행이 나쁘고 신을 모독하는 일을 해온 사람도 마찬가지로 죽어간다. 그러므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온갖 선물 중에서 적절한 시기에 죽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을, 각자는 무엇보다도 자기의 영혼의 약으로서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더구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선물은 자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리니우스, <박물지> 제28권 제 1장)

신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만능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신은 설사 스스로 자살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이 가능하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자 최상의 선물이다.(플리니우스, <박물지> 제2권 제7장)-18-19쪽

"자살은 설사 그 사람 자신에 있어서는 부정한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국가에 대해서는 하나의 부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15장)-25쪽

자살이란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빚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그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에, 그리고 만일 이것이 의도적이고 자유롭게 영속적으로 행해진다면 오직 신에게만 속하는 권한을 사취하는 신에 대한 범죄이므로 자살은 치명적인 죄악으로 간주해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33쪽

소크라테스는 자살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도덕적으로 나쁜 것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이것이 철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철학자에게 죽음은 평정을 가지고 맞이해야 할 단순한 불행이 아닌, 자기 존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일반인에 대해서는 원하는 때에 죽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철학자에게는 인정하고 있다. -62쪽

극기주의는 그것이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과 그 영역의 경계 밖에 잇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확고하게 붙잡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다시말한다면 자살 행위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합리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기만 하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 자유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65쪽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방법이 죽음 말고는 다른 것이 없을 때 이 세계를 떠날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오직 철학자에게만 속하는 지고의 존엄이다. (세네카)-66쪽

그런데 모두가 자살을 개인적 의지의 승리로 간주하고는 있지만, 그 의지도 그 승리가 쟁취되는 순간에는 그 지지의 근거를 잃고 만다. 만일 시체가 다시 되살아난다면 그 승리가 결정적인 것만큼이나 순간적이라는 것을 알 것이지만 이제 그 승리를 연장시키고 그 기억을 보존하고 그 결과를 전개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남아 있는 전 인류의 몫이 된단 말인가? 자살을 어떠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의지의 부정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그 반대로 생에 대한 보다 밀도 깊은 긍정의 징표로 간주한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한 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죽음의 의지가 존중되어야 한다면 이것 또한 이기적인 쾌락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이 의지의 실현 사이의 장애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삶에서 의지를 실현시킬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그 의지라는 현상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는 자살 이라는 형태로서 그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의지를 보존하기 위해서 고통을 거부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68-69쪽

만일 자살이 허용된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만일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살 또한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것이 바로 윤리의 본질에 관한 문제다. 자살은 말하자면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살을 알아보려고 시도하는 것은 수증기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수은 증기를 만져보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그런데 자살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비트겐슈타인)-71-72쪽

"각자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곳에서 (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그를 위해 걱정해 주는 것뿐이다."(키에르케고어)-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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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6-0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던가요?

마늘빵 2006-06-0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요? 네! 요 책 읽고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보면 딱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나아가 4만원에 육박하는 <죽음 앞의 인간>도 볼 수 있다면 더 좋을듯. 자살에 대해 짧은 시간 안에 축약적으로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가넷 2006-06-0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것 말고도 살림지식총서중 몇권 골라잡아서 지를까 생각중인데.. . 질러야 할까봐요. 정말 저렴한 가격에 질은 어떨지 궁금했었는데... 그리 나쁜 평들은 없는것 같으니까...음.;

마늘빵 2006-06-0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살림지식총서 괜찮은 거 많아요. 예전에 봤던 <르몽드>도 좋았고. 이번에 새로 산 <영화음악>도 아직 안봤는데 괜찮을거 같아요. 싸고 좋아요. 책 중에 제일 싸지 않을까 생각.

비로그인 2006-06-0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밑줄긋기 74쪽 때문에, 키에르케고르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이지요.

마늘빵 2006-06-0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