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을 팝니다 - 지구의 미래를 경험한 작은 섬 나우루
칼 N. 맥대니얼 외 지음, 이섬민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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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나우루를 "남태평양에서 가장 부유한 섬"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작디작은 조그만 섬나라가 어떻게 이런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부유한 삶을 누리게 되었을까.  '태평양의 발가벗겨진 섬나라' 나우루는 한동안 외부인의 출입이 없던 곳이었다. 태평양의 한가운데 위치한 이 나라는 지구본을 뒤적여봐도 찾기 힘들 듯 하다. 그만큼 작고 외딴 곳에 위치한 이 섬나라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배를 타고 외부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또 그들이 이 작은 섬나라에서 천연자원을 발견하면서, 나우루 주민들의 삶은 크게 변화했다.

  인광석. 우라늄이 들어있는 원석으로 석유와 석탄같이 우리가 에너지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석의 한 형태다. 그저 처음에는 외부인들도 이것을 흔히 볼 수 있는 한갓 돌 정도로 취급했다. 하지만 또다른 호기심 많은 외부인의 눈에 띄게 되면서 이것은 인광석으로 밝혀졌고, 이때부터 자원쟁탈전이 시작된다. 인광석은 이미 협정(?)을 맺은 외부업체의 손에 들어갔고, 그들은 나우루 섬에 있는 수많은 인광석으로 돈방석에 오르게 되었다. 주민들에게 미안했던 그들은 협정내용에는 없었지만 그들에게도 소정의 사례금을 지급했고, 나우루 주민들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온갖 물질들을 향유하게 되었다. 소세지, 햄, 콜라, 햄버거 등 먹거리를 넘어서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비롯하여 그들은 최신식 무기까지도 소지하고 있었다.

  어느날 결혼식에서 젊은 추장 하나가 살해당하면서 이 섬나라는 무차별적인 총기테러의 공포로 휩싸였다.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고, 물질적 쾌락은 결코 정신적 안정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차라리 외부인의 출입이 없었다면, 이 섬나라에 인광석이란 물질이 없었다면, 그들은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섬나라 주민들은 외부의 유혹에 약했고, 쉽게 물들어갔다.  나우루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설명대로 "남태평양에서 가장 부유한 섬"일지는 모르지만, "남태평양에서 가장 행복한 섬"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우루의 변화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인광석 채굴로 온 국토가 발가벗겨져 환경의 피해도 극심했다. 산림은 파괴되었고, 다양한 생물 종들은 점차 사라져갔다. 나우루는 하나의 지구다. 저자는 나우루를 지구의 표본으로 삼아 작은 지구 안에서 인간에 의해 이렇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결국 사람들에게서 행복과 안락은 떠나가고, 환경은 파괴되고, 생물은 멸종되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집, 쇼핑몰, 학교, 공장들을 세우기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고, 삶을 좀더 쉽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자원을 캐는 과정에서 자연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 후유증은 이제야 발견되고 있다.

  나우루 섬 주민들은 외부인이 그곳에 발을 들여놓으며 결과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일하지 않아도 돈이 생기고, 돈으로 새로운 물건들을 사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맛있는 햄과 소시지를 마음대로 먹는다. 그들은 섬에서 인광석을 내주는 댓가로 그것들을 챙겼고 후유증은 생각지 못했다. 작은 섬나라에 아무리 인광석이 많다 한들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다. 이미 국토의 대부분의 인광석이 채굴되었다. 이는 그들의 물질적 풍요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고갈은 인광석 발견 당시부터 예상된 것이었지만, 그것이 나우루 주민의 생존과 결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인구는 열 배로 늘어났고 섬 안에서 물의 수요는 공급을 훨씬 넘어선다. 담수화 시설로 부족분을 채우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해 인광석 운반선을 통해 물을 수입했다. 가까운 미래에 인광석 고갈은 그들의 물질적 풍요를 그치게 할 것이고, 그와 더불어 변화한 환경의 문제로 그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진 않았다. 그는 나우루 라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나라의 사례를 통해 지구 전체의 이야기를 하고팠던 것이다. 200년간에 걸친 그곳에서의 삶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는 가까운 미래에 지구 전체에 닥칠 위험을 암시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문제, 환경 파괴, 자원 고갈 등 모든 것들이 인간의 생존과 결부되어있다. 물질적으로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남태평양의 나우루 주민은 지구상의 나우루 주민으로 확산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십년간 그곳을 들락날락 하며 관찰하고 경험했다. 그리고 그간의 변화를 이 책에 담아냈다.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우리는 이 책을 읽을 때 나우루를 지구로, 나우루 주민을 자신으로 대치하여 읽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현실이므로.

  낙원을 팝니다. 나우루는 한때 낙원이었다. 하지만 기계와 물질에, 개발에, 낙원을 넘김으로써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낙원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팔아 넘긴 것이다. 우리는 낙원을 팔지 않을 수 있다. 분명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자의에 의해서, 의지에 의해서, 낙원을 팔아넘기지 않을 수 있다. 선택의 순간이 남아있다는 현실은 고맙다. 가능성은 남아있다. 잠시 머뭇거리며 고민하는 사이 선택의 순간은 지나간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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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7-05-1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경파괴... 이제 우리도 체험하고 있네요.. 이상기온현상과 국지적 폭우...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경제논리에 밀리고 있죠...슬프게도.

마늘빵 2007-05-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나우루 주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곧 그들에게 닥칠 위험이 조금 뒤늦게 지구 전체에 닥친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도넛공주 2007-05-1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야겠습니다. 당장 주문해야겠습니다. '오래된 미래'와 함께 생각해야할 책이네요..

마늘빵 2007-05-1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넛공주님 / <오래된 미래>도 저도 보려고요. 이 책은 사실 많이 읽힌 책은 아니고, 또 많이 읽힐 만큼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안들어요. 뭐랄까 내용 서술이 매끄럽거나 즐겁지 않고 명확하게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수십년동안 보고 듣고 관찰해온 것들을 토대로 체험담 형식으로 담아냈어요. 물론 뒷부분의 지구전체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들은 나우루와 지구를 연결시키는 저자의 시각이지만. 이런 점들 참고하고 보세요. :)
 
낙원을 팝니다 - 지구의 미래를 경험한 작은 섬 나우루
칼 N. 맥대니얼 외 지음, 이섬민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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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루인들은 섬의 생물 다양성 상실이 자신들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아직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지만, 부의 원천인 인광석은 곧 고갈된다. 고갈은 인광석 발견 당시부터 분명히 예상된 것이기는 하지만, 인광석 자체는 나우루에서 인간이 생존하는 문제와 직접 관련성을 가진 적이 없었다. 이와 달리 물은 중요한 문제다. 가까운 과거에 우물, 연못, 비 등으로 얻어지는 나우루의 담수는 가뭄이 들 때마다 공급에 제약이 따랐다. 지금은 인구가 열 배로 증가했기 때문에 물이 항상 부족하다. 담수화 시설로 부족분을 메우고는 있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광석 운반선을 이용해 물을 수입했다. 인광석 고갈이 경제 상황 변화를 초래할 것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대수층 고갈과 채광은 나우루를 훨씬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들 것이다. -82쪽

1800년도 이전의 나우루인들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사는 현대인들은 생명의 거미줄을 이루는 가닥들이며, 이들은 무수한 다른 가닥들이 이루는 조직에 엮여있다. 이러한 생명의 조직체, 즉 생물권은 지구를 우리가 살 만한 편안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다.인간이 정상적으로 생존하려면 이 조직체가 제공해 주는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현실을 인식하기 위해 간단한 사고의 실험을 시도해보자. 자신이 오지에 혼자 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제 자신이 생존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목록을 만들어보자.

먼저, 산소가 없다면 곧바로 죽게 된다. 생물 과정을 원천으로 하여 생성되는 산소는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 중략 ...

외부의 열도 인간의 생활에 필요하며, 이것이 없다면 열대 지방에서도 얼어죽게 된다. 열을 보존하려면, 태양의 빛 에너지를 통과시키고 그 중의 일부를 열의 형태로 붙잡아둘 대기가 필요하다. ... 중략 ...
에너지원도 그에 못지 않게 인간의 생존에 중요하다. 에너지원 없이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고, 산소나 열과 마찬가지로 이는 각 생물 특유의 과정에서 얻어진다. 식물은 태양에너지 일부를 변환하여 인간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탄수화물이나 대사 작용을 통해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 있는 지방 따위의 화합물로 저장한다. ... 중략 ... -146-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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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 스케치 1 -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풀빛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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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한국철학을 보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가 과거의 철학을 보는 이유는 그 시대로 돌아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고유 사상들을 보고 그 안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와 힘을 얻기 위해서다. 지금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며 한국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다."

  시선은 아직 살지 않은 미래에 맞추어져있되, 그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고 살펴봐야한다. 역사는 영원히 반복된다, 고 말했던 투키디데스의 발언 때문이 아니라, 역사가 반복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과거를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과거를 지녔든 과거는 오늘을 만드는 근원이 되었고, 과거를 통해 만들어진 오늘은 미래를 만드는 근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철학계에서는 푸코와 데리다, 라깡, 하버마스, 롤스, 매킨타이어 등을 논한다. 여기 이름 올리지 못한 수많은 프랑스와 독일과 미국과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모든 사회적 논쟁과 철학을 논함에 있어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유행하는 서양의 철학을 배우며 오늘의 한국을 논해야 하는가. 그들의 시각이 오늘의 한국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을 배척할 필요도 없지만 추종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시각은 단지 과거의 서양철학에 비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하나의 또다른 시각으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서양의 새로운 시각들을 공부하고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한편,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준 과거의 한국인들의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새로운 시각 못지 않게 케케묵은 과거의 시각 역시도 오늘날의 한국을 바라보고 진단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배척해선 안되고, 그 어떤 것도 추종해선 안된다. 모든 가능성을 열려있고, 수많은 시각으로 하나의 사물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 길은 그 안에서 보인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 대표 김교빈은 "한국 사람이 한국 철학을 배우는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우리철학을 배우는 목적은 한국 철학의 본모습을 알고,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새롭게 재구성해서 현실에서 생명을 얻는 철학으로 되살려 내려는 데 있다. 따라서 이처럼 한국 철학 사상을 주체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국 사람 뿐이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 철학을 발전시키려고 한국 철학을 배우지는 않는다. 그들이 한국 철학을 배우는 이유는 한국 철학을 통해 한국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며, 나아가서는 한국 철학에서 배운 것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좀 더 풍부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외국 철학을 배우는 것은 우리의 사유를 좀 더 풍부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이지, 그들의 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시각으로서 존재하면 그만이다.

  이 책은 10년 전의 <이야기 한국 철학>의 개정판이다. 한국철학서적들은 지금에와 대중을 상대로 한 인문서적들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출간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서 외면받았던것 뿐이고, 책읽는 문화가 좀 더 조성된,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대중적인 인문서적에 관심을 쏟고 있는 오늘날 이 책들은 헌 외투를 벗어던지고 새옷을 입고 그들에게 새 것인양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한국 철학>은 김교빈, 권인호, 이종란, 이홍경, 이현구, 이철승, 김형찬, 박정심 총 여덟명이 함께 작업한 책으로, 당시 30-40대였던 그들은 이제 40-50대가 되었다.

  저자 대표 김교빈은 서문을 통해 여러 필진이 썼기에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지만, 수많은 독자의 한 명으로서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각각의 장과 장의 연결은 부드러웠으며, 필진의 개성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서술 방식의 차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무감각한건지 아니면 개정판을 내며 잘 다듬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몇 권 살펴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철학 서적 중에서 가장 쉽게 자연스럽게 풀어낸 책이 아닌가 싶다. 큰 기대하지 않고 접했지만 의외의 좋은 책을 만나 기쁘다. '1부 원시시대와 고대의 철학 이야기'에서부터 2권의 끝인 '10부 개화사상과 애국계몽사상'에 이르까지 책은 시간순으로 과거부터 근대까지 올라오며 철학사상뿐 아니라 그 시기에 그와 같은 철학이 탄생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까지도 자세히 설명해줘 매우 친절하다. 한국철학을 알기 위해서뿐 아니라 한국 역사를 알기 위해서 이 책을 보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될 듯 하다. 역사적 큰 맥락은 철학과 함께 움직인다.
 
  잘 짜여진 편집과 구성, 한국철학사 도표와 본문의 사진과 그림들까지 적재적소에 필요한 곳에 들어가 중간중간 시각적인 즐거움도 선사해주었다. 편안하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매우 잘 만들어진 한국철학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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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을 배척할 필요도 없지만 추종할 필요도 없다."
옳은 말씀. 하하


logos678 2007-05-1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서 한국철학을 전공한 저보다도 한국철학 관련 서적을 더 많이 읽으시네요. 요즘 가끔 퇴계의 성학십도 꺼내 보고 있는데, 중학교에서 도덕 가르치면서 전공서적에서 손을 놓았더니 요즘엔 내가 예전에 이런 걸 어떻게 읽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리에 안 들어오더라구요.

마늘빵 2007-05-1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 네. 모든 것이 현실을 보기 위한 도구일 뿐이죠. 서양의 것도 중국의 것도 과거 우리의 것도.
로고스님 / 엇, 한국철학을 전공하셨나요? 저는 한국철학에 거의 무지합니다. 1차서적으로 본 건 이덕무의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밖에 없습니다. 고루 읽는건 불편부당한 시각을 키우기 위함이지요. 그래도 철학전공인데, 알지는 못해도 읽기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읽었다고 다 아는건 아닙니다. 읽었다는건 그저 관련된 다른 책을 다시 읽을 때 아 어디서 들어봤다, 아 그랬었지, 하고 머리 속에서 맞장구 치는 정도겠지요.

logos678 2007-05-13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대학 땐 90% 이상이 원전강독이었어요.(학부로 변하기 이전이니까 지금은 좀 바뀌었겠죠?) 그래서 오히려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덴 부족한 게 많죠. 님 리뷰 읽고 자극받아서 다시 전공서적을 꺼내 읽어볼까 생각 중이랍니다. 언제 한 번 친정에 다녀와야겠네요. 책 가지러...

마늘빵 2007-05-1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학부되기 전에 입학했어요. 제가 입학하고 다음 년에 학부로 바뀌더군요. 그게 참 안좋은데. 고지식한 원전강독이 나중엔 더 남더라고요. 대략적인 얼개짜기는 혼자서 되지만 원전을 보는건 혼자서는 안되거든요. 로고스님 나이는 짐작이 안가요. ^^
 
한 권으로 읽는 한국철학 - 인물들과 함께 떠나는 한국철학 시간여행
황광욱 외 지음 / 동녘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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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철학. 국내 대학의 학부 철학과의 커리큘럼은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아직은 독일과 영미철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우리나라에 서양철학이 상륙했을 때, 그것은 일본으로부터 건너왔고, 일본의 서양철학은 독일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커리큘럼 또한 독일 철학이 주를 이루었고, 칸트와 헤겔이 그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철학의 흐름이 영미로 건너왔고, 이에 관한 과목들이 개설되며 독일철학에 편중된 비중은 줄어들게 되었다.

  동양철학에 관해 말해볼까. 동양고대철학사, 동양근현대철학사 와 같은 개론 과목들을 제외하면 동양철학 과목은 아마 서양철학 과목에 비해 적을 것이다. 이것도 역시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주역연구, 장자 강의, 노자 강의, 유학철학 등등의 과목들이 언뜻 떠오르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철학 과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개론으로 한국철학사 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지만 철학사를 다룸에 있어서 한국철학은 소외되어있다. 기껏 성균관대 유학철학과에서, 혹은 동양철학과에서, 정식으로 다룰 뿐이다. 마치 중국철학과 유행하는 서양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래도 한국에서 철학하는 자로서 한번쯤 알고 가자라는 식의 곁다리 역할 정도를 할 뿐이다.

  oo철학과 같이 '철학' 앞에 나라이름을 붙여 철학을 칭할 수 있는 국가는 몇 없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중국, 인도 정도가 다이고,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한국이란 나라는 물론 그것이 대부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철학의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나름 독창적인 철학사고를 했다고 보여지는, '철학사'를 이야기했을 때 꽤 큼지막한 건들이 있는 그 몇 안되는 철학하는 국가에 포함된다. 한국인들을 '지금 여기'에 놓이게 한 근원은, 철학이다.

  지구 전체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세계화에 참여해있고, 이러한 세계화는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기 이전에 세계인으로서의 소양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 '나'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고 세계인이 되는 것은 '나'를 버리고 '남'에게 흡수되는 것 밖에 될 수 없"으며, 고로 '지금 이곳의 나'에 대한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근본은 철학이 될 것이다. 한국철학은 현재 유행을 타고 있는 서양의 어떤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나'를 알고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 길거리에 널려 있는 한번쯤 발로 건드리고 가야하는 돌이 아니라, 강을 건너기 위해 반드시 밟고 넘어가야만 하는 돌이다.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제일 밑바닥에 깔아야 하는 돌이다.

  여기 이 책에 열 여덟 명의 한국철학자들이 놓여있다. 최치원, 정몽주, 송시열, 최제우, 최익현, 원효, 지눌, 서경덕, 이황, 이이, 조광조 등등 대개는 우리가 한번씩 접해본, 최소한 이름은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황과 이이가 천원권과 오천원권에 괜히 얼굴을 들이민 것은 아닐게다. 그만큼 한국이란 나라가 오늘에 이르는데 막중한 역할을 했고, 그것이 비록 정치적이거나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할지라도, 한국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일 터이다. 그 둘을 비롯하여 오늘날의 한국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던 열여덟 개의 돌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p.s.
 
1999년 '한국철학, 화두로 읽는다'라는 제목으로 나온 바 있는 이 책은, 2007년 '한 권으로 읽는 한국철학'이란 제목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제목이 바뀌고 좀더 보완 집필 되었다. 기존의 책은 안에 들어있는 한국철학의 거장들을 시대순으로 구성했었고, 이번에는 인물들을 세 개의 주제로 나누어 구성했다는 차이가 있고, 기존의 열 다섯명에서 세 명을 추가해 열 여덟명으로 바꾸었다는 정도의 변화가 있다.  이전의 책을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저자들은 이전 책이 팔리지 못했던 이유가 제목과 내용구성에 있었다고 판단한 듯 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바뀐 순서와 제목보다 그때가 더 나았겠다 싶다. '한국철학, 화두로 읽는다' 보다는 '한권으로 읽는 한국철학'이 더 대중적인 제목이고 눈에 띄기는 하지만 내용을 살펴봤을 때 그에 더 적절한 제목은 이전의 것이었다. 내용구성 또한 별 의미 없는 세 개의 주제로 나누어 쪼깨느니 시간순서대로 구성하거나 아니면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었던 철학자들끼리 묶어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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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앞에 나라이름을 붙여 철학을 칭할 수 있는 국가는 몇 없다."
한국에 고유의 철학이 없다하더라도 부끄러울 것은 없을 것입니다.
상기 언설처럼 세계제국중 고유의 철학을 내세울 만한 국가가 손 꼽을 정도이므로.

다만 근세에 단기간에 '합리성'을 앞세워 유입된 서양철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로서, 과연 한국인으로서 나자신의 철학적, 사상적 아이덴티티는?
현대 한국인의 화두일 것입니다.
현대 한국 젊은이들에게서 그 징한 마르크스와 대머리 푸코와 데리다와
민주와 평등과 인권과 노동과 생태보전과 더불어 삼과 신영복과 리영희를
제외하고 나면 멀쩡한 고대 한국인이 남을 듯 합니다. 하하
그러므로..
제가 뒤늦게 유학공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프락사스님
유학이 비록 서양철학과 마찬가지로 한국 고유의 철학은 아니지만
근1000년간 한국인의 의식과 생활속에 녹아든, 체화된 철학이니 만큼
유학을 모르고서 한국철학을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로그인 2007-05-1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의 '한국철학'에 대한 젊은이 답지 않은 관심에.. 추천 한방!!
하하

마늘빵 2007-05-1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현대 한국의 철학을 말하라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어느 하나의 국가에 있어서 철학이라는 것은 해당 공동체를 살아가는 구성원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이어야하는데,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없을 듯 합니다.

얼마전 한국의 지식인이라 일컫는 이들을 대상으로 현대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조사해봤는데 푸코와 마르크스, 리영희, 강준만 등이 많이 나왔더랬죠.

글쎄요. 오늘날의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 근원을 과거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선은 다릅니다) 철학자 탁석산에 의하면, 한국의 정체성이란 것은 오늘날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누리고 좋아하는 그것인데, 오늘날 한국철학의 정체성 역시 지금의 한국이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푸코와 데리다와 마르크스를 논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이론을 가지고 새롭게 한국사회에 적용해 정착한 이들이 있을 것이고, 새롭게 변형된 형태로 존재할테니까요.

물론 과거부터 계속 영향을 끼쳐왔던 유학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시대를 건너오며 영향을 끼친 새로운 인물들까지도 연구에 포함해야 할테지요.

yamoo 2010-03-1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지나가다가 몇 자 적습니다..푸코와 마르크스..특히 프랑스 철학을 보면 정말 현란한 개념의 잔치가 펼쳐집니다. 모르면 무식한 것 같고...한국에는 철학이 없는 것 같고..논리도 없는 것 같고...우리 철학은 너무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탁석산 님의 한국인의 정체성 주체성도 읽어 봤지만 그의 한국철학적 판단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얼마전에 원효의 저저들을 묶은 책을 봤는데, 넋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그 치밀한 논리와 현란한 불교의 개념들이 펼쳐지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 학계가 너무도 연구를 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 글 참 잘읽고 갑니다~^^

마늘빵 2010-03-12 17:52   좋아요 0 | URL
저 역시 탁석산의 한국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읽었지만, 매우 흥미로웠고, 호감이 생겼음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정체성에 대한 재정의에는 동의합니다. ^^ 푸코와 데리다, 라깡, 들뢰즈 등등 현재 철학자들이 쓰는 어휘는 매우 현란하죠. 푸코는 그마나 좀 접해본 축이고, 데리다, 라깡, 들뢰즈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한국에는 철학이 없다기보다는, 한국 철학을 너무 협소한 범위 안에서만 찾기 때문에 없어 보이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철학자 김상봉 선생님을 한국의 현대 철학자로 뽑습니다. <서로주체성의 이념>이 선생님의 기본 철학 뼈대입니다. 그분은 또 함석헌을 한국의 철학자로 바라보고 계시죠. 한국 철학의 빈곤은 한국의 철학 전공자라는 분들이 대개 서양의 학문을 번역하고 전파하는 데 몰두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kokoball 2022-08-2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똑똑하신 분들이 많네요;; 오우... 글 잘 읽고 갑니다! :)
 
동양철학 에세이 - 개정증보판 동녘선서 70
김교빈.이현구 지음 / 동녘 / 2006년 2월
구판절판


공자의 인은 사람다움을 구현하는 과정입니다. 공자는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예절을 갖추어야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음악을 잘 연주해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을 낮추어 개 같다, 돼지 같다 하는 표현을 씁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아무리 겉이 번드르르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며,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훌륭한 글을 쓴다고 해도 기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제 시대, 훌륭한 글을 쓴 사람들이 한편으로 정신대나 학도병에 지원하라고 열심히 외치고 다녔던 일이 있습니다. 그렇제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라면, 남에게 권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임이 분명하고 사람다운 행동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일이 나의 임무이며, 죽은 뒤에나 그만 둘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공자편) -51-52쪽

공자의 자공의 대화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경제를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세 가지 중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국방을 포기하겠다"
"둘 가운데 다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경제를 포기하겠다.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아예 사회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논어> '안연'편)-58쪽

도는 길입니다. 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니면 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이 길을 넓히지, 길이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길 아닌 곳으로 가면 가시 덩굴이나 진흙탕에 빠져 고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길로 가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요즈음은 인도보다 차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사람이 갈 길에 차들이 점점 쳐들어와 인도가 차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 중략 ...

차는 사람이 몰고 가는 것이므로 차도도 결국 인도입니다. 공자는 어진 사람이면 차를 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바람이 치는 날, 막 뒤집힐 듯한 우산을 요리조리 가누면서 인도로 걸어가는 사람과 자가용 뒷자리에 편안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도로 가는 사람을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그러나 공자는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걸어가는 사람에게 흙탕물을 튀기지 않도록 주의하는 정도의 배려만 있다면 이런 불평등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길을 넓히는 데 반대하지 않으며, 때로는 새 길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장자는 공자의 말이 그럴듯 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속임수라고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차도로 가도 좋고 길을 넓힐 수도 있다는 공자의 말은, '사람다운 사람'의 이름을 빌린 인간들이 길을 넓힌단든 명목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옹호해주고, 가난한 백성이 부역과 전쟁에 동원되어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서 죽고 마는 상황을 합리화한다고 장자는 생각하였습니다. 공자가 군대(군사력, 식량(경제력), 백성들의 신뢰(권력의 정당성) 가운데 정치가가 끝내 잃어서는 안되는 것은 백성들의 신뢰라고 한 것을 생각해보면, 장자의 비난이 지나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장자는 '부국강병'을 외치는 법가나 '도덕 정치'를 외치는 유가나, 춥고 배고픈 백성들의 눈으로 보면 그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자편) -119-120쪽

아름다움과 추함이 구분되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추한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또 좋아함과 싫어함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선택하고, 싫은 것을 버리게 합니다. 이러한 분별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좋은 것을 차지하고 싫은 것을 벗어나려 경쟁하고 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연관되어 있고 세계가 하나임을 아는 사람을 지극한 사람, 달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없습니다.

(장자편)-136쪽

장자는 사람들이 미인 대회를 열어 고르고 고른 미인이라도 물고기가 보고는 물속으로 숨고, 새들에게 다가가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이 보고는 결사적으로 도망칠 것이니, 미인 대회에서 뽑은 미인은 진정한 미의 기준에 맞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편견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판단 차이를 비유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장자는 세상에서 소외된, 세상의 기준에서 비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온전한 덕과 인간미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장자의 주장은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나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며, 싫어하고 미워하고 싸우던 사람들이 서로를 포용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장자편) -137쪽

순자는 인간의 화와 복은 오직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자의 생각은 인간의 지위와 실천을 극대화한 인물 정신의 완성이었습니다.
하늘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순자의 눈에 보인 인간의 참모습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존재였을 뿐입니다. 이것이 순자의 성악설입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판도라의 상자인 셈입니다. 그러나 순자의 판도라 상자 속에는 악한 본성을 이겨 나갈 숭고한 인간의 의지가 남아있었습니다. 순자의 철학이 인문 정신의 극치를 보였음에도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본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순자는 마치 프로메테우스처럼 뒷날 많은 학자들에게 두고두고 비판받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순자편)-180쪽

"아주 옛날에는 임금도 없고 신하도 없었다. 사람들은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먹었으며,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었다.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로웠고, 편안하며 만족했다. 경쟁이 없고 영리를 바라지 않았으며, 명예도 없고 치욕도 없었다.
만물이 서로 화합하여 자연의 도에 드렁가므로 역병이 유행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고, 마음이 착해서 욕심이 없었다. 입에 먹을 것을 물고 즐기면서 배를 두드리고 놀았다. 그들의 말은 화려하지 않았고, 그들의 행동에는 꾸밈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어떻게 무거운 세금을 매겨 백성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엄한 형벌을 받아 굴에 갇힐 수 있었겠는가? "
(갈홍, <포박자> '힐포'편 : 포경언의 말)

-278-279쪽

"임금과 신하의 신분이 생기면 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본래 수달이 많아지면 물고기가 놀라고, 매가 많아지면 작은 새가 근심하는 법이다. 부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인민은 고통스러우며, 위에 바치는 것이 많아지면 아랫사람은 가난해진다."
(갈홍, <포박자> '힐포'편 : 포경언의 말)-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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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교빈의 동양철학 에세이는 "제목에 낚여" 아이들 교육용으로 한권 산적이있지요.
곧바로 쓰레기통..
한국의 고등학생용 교양목록 리스트에서 이 책이 사라지기를 희망합니다.
아프락사스님.

마늘빵 2007-05-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랑은 생각이 좀 다르시네요. 저는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하여 볼 수 있는 괜찮은 책이라 생각했는데요. 내용이 가독성이 높지는 않고, 문장이 조금 딱딱하기는 하지만, 다른 동양철학 대중서에서 보이지 않는 농가 등의 다른 부류도 넣었다는 점에서도 괜찮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