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0년 9월
절판


내가 볼 때에 진짜 문제는 ‘비판’에 대한 인식에 있는 것 같다. (중략) 전체를 싸잡아 하는 비판은 아무리 독하게 해대도 ‘건전한 비판’인 데 비해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지목해 실명으로 비판하는 건 ‘인신 공격’이라는 거다. -12쪽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그러니까 피부에 와닿는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을, 너무 거시적이어서 현실적인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수 있는 몽롱한 사안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는 그러한 태도 말이다.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비평 문화의 폐해를 매우 심각한 어조로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이 발생하면 그것을 외면하고 침묵해버리는 이러한 ‘선택적 이중사고’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건강한 비판과 논쟁의 문화는 형성되기 어렵다."(이명원)-12쪽

"우리 시대의 비판은 일종의 의식으로 전락한 걸까? 늘 사회 각계를 향해선 온갖 비판을 일삼는 지식인이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선 성실하게 반론을 할 생각은 않고 서로 얼굴 빤히 아는 같은 동업자끼리 그럴 수 있느냐며 비판을 한 사람의 ‘인간성’ 문제를 들먹이며 욕하는 건 학계 주변에서 얼마든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도대체 비판은 왜 하는지 묻고 싶다. (중략) 왜 정치인들은 마음껏 비판하면서도 동업자 비판은 안 된다는 걸까? 혹 동업자 비판에 대한 비난은 ‘비판=쇼’라고 하는 원칙을 훼손한 것에 대한 반발은 아닐까? 다 끼리끼리 뜯어먹고 사는 이 세상에서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는 항변이 아니겠느냐 이 말이다."(강준만, <인물과 사상>15권, ‘한국 지식인은 왜 심약하고 비굴한가? : 학계의 패거리주의와 ‘침묵의 카르텔’’)-13쪽

임지현은 내가 "마녀재판을 주관"했다고 그러시는데, 나로선 그런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가 근무하는 한양대에 대거 침투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임지현의 수업을 거부한다고 난리를 피웠을리도 없을 테고, 또 내가 누구를 비판하면 그 사람이 화형대에 설 만큼 내 힘이 강한 것도 아닌데도, 그런 말씀을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임지현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한국 최대의 비대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의 지원 사격까지 받고 계신 분이 나에 대해 ‘마녀재판’ 운운하시니 언어 사용을 이렇게까지 함부로 하셔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87쪽

임지현이 나에 대해 느낀 분노는 인간 강준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실명비판’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즉, 임지현은 ‘실명비판=마녀사냥’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89쪽

나도 조심하겠지만, 우리 제발 감정이 격화되어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려는 식의 싸움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90쪽

이진우식 글쓰기가 공격적 글쓰기에 비해 더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추상화의 수위가 한두 단계 더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감대의 ‘깊이’를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넓이’는 이진우식 글쓰기가 더 유리하지만, ‘깊이’는 공격적 글쓰기가 더 유리하다는 겁니다. 저는 ‘넓이’보다는 ‘깊이’가 더 필요하다고 보지만, 두 가지 종류의 글쓰기가 평화공존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진우식 글쓰기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비판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적 글쓰기에 대한 이의 제기를 하셨습니다. -97쪽

"조선일보를 얘기하려면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기생하면서 사는 중산층 얘기를 해. 그게 뭐냐면, 전두환이 사람 때려죽이고 정권 잡은 다음에 중산층한테 국물을 조금 떨어뜨려줬단 말이야. 그래서 강남에 형성된 중산층들이 원죄의식이 있단 말이야. ‘아이, 전두환 이거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아이 몰라, 술 한잔 먹자, 돈 몇푼 생겼는데….’ 그러는 거지. 그래서 자신들의 원죄의식을 달래줄 이데올로기가 필요해. 그럴 때 거대한 체계를 던져주면 덥석 문다고. 천민자본주의에서 형성된 중산층들이 그걸 자기의 이데올로기로 가져간 거야. 조선일보도 그 이데올로그를 자처할 때 이득이 생긴다는 걸 알아. 안다고. 둘이 붙어먹으면서 수지가 맞은 거야. 근데 재밌는 게 조선일보는 또 좌파 쪽을 팔아요."(황석영, ‘김규항, 김어준의 쾌도난담’(한겨레21 2000년 1월 6일)-104쪽

내가 출판 담당 기자래도 강준만의 책은 안 다뤄줄 것이다. 죽어라 하고 언론을 두들겨 패는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강준만은 책을 너무 많이 낸다. 게다가 도무지 낯짝을 구경할 수 없는데다 인터뷰하자고 팩스를 몇 번 보내도 가부 연락조차 아예 해주질 않는다. 이런 싸가지 없는 저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신문들이 내 책을 거의 다뤄주지 않아도 억울해 하지도 않거니와 불만도 없다. 내 불만은 지극히 공적인 것이다. -117쪽

나는 번역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한국 신문들이 외국 유명 지식인들이 낸 책의 번역판에 베푸는 특혜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118쪽

저는 지식인의 저널리즘 행위 또는 대중매체 이용 행태와 그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도 건드리고 국문학자도 건드리고 경제학자도 건드리고 정치학자도 건드리고 소설가도 건드려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일망정 그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생산해내는 현실참여적 글과 말에 대해서는 평가할 자격과 능력이 저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그런 믿음이 타당하며 그런 믿음에 근거한 저의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32쪽

위대한 철학자가 노상 방뇨를 했을 때 그걸 비판하는 건 위대한 철학의 이해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며 오히려 위대한 철학자이기 때문에 더욱 호된 비판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133쪽

나의 이기주의를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그 어떤 독설로 공격하더라도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일 것이다. 나의 무식을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진 않는데…"라는 말만 내뱉는 걸로 만족하련다. 대학 교수로서 누릴 건 다 누리면서 ‘아웃사이더’로 행세하는 나의 위선을 공격하라. 나는 그걸 두말없이 인정하겠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재벌 총수들의 모임에도 아웃사이더는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만 내뱉는 걸로 만족하련다. (중략)
그러나 나는 누가 나를 ‘지식인 혐오증’ 환자로 모는 것엔 결코 그 어떤 도량도 보여줄 수 없다. 내가 전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건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 딱지는 내가 하는 모든 사회참여적 활동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런 비판에 임하여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보여줘야 할 도량이란 게 과연 무엇이란 말이냐?-156-157쪽

나는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의 미덕과 공적인 논쟁에서의 미덕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며,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57쪽

운동이라는 게 뭔가? 나는 그게 ‘사람 장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사람 장사’를 전혀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적을 많이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걸까? ‘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몫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몫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내 주장의 일부분에나마 공감하는 사람이 내 생각을 더 발전시키고 널리 퍼뜨린다면 그걸로 내 소임은 이루어지는 것일 뿐, 내가 중심이 되어 외적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란 건 없다. 그게 바로 나의 한계이자 나의 몫이란 거다. -168쪽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부는 아닐망정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많은 사람들이, 실명비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걸까? 물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는 정당한 비판마저도 ‘흠잡는 일’이라고 비하해서 부를 만큼 무얼 따지고 하는 일에 익숙지 않거니와 그걸 좀 상스럽게 보는 그런 문화를 갖고 있다.
-323쪽

한국인이 즐겨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너만 깨끗하냐?"이다. 이는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의 의식 깊숙이 박혀 있는 것으로서, 나도 깨끗하고 싶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건데 왜 너만 잘났다고 모든 걸 까발려댐으로써 나를 불편하게 만드느냐 ‘이유 있는’ 항변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전국 차원’에선 내부 고발자에 대해 ‘용감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전국 차원’이란 건 그 내부 고발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대중매체들이 보여주는 당위의 차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민심은 그러한 당위와 거리가 멀다. 총체적 부패구조에 한 발을 담근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도 편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부 고발자가 소속돼 있는 조직에선 그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324쪽

나는 한국 국민이 부정부패 척결을 바란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부정부패는 척결되어도 좋지만 나의 부정부패는 ‘사람 있는 인정’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이중성이 한국인 다수의 머리에 콱 박혀 있다. -325쪽

한국인들이 진정 부정부패 척결을 원한다면, 내부 고발자를 ‘배신자’로 몰거나 ‘무슨 딴 이유가 있겠지’라며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중략) 한국인은 입으로는 부정부패 척결을 바란다고 말하면서도 내부 고발자에 대해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영원히 부정부패와 같이 뒹굴며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326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qualia 2009-10-1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옥 같은 말씀들의 인용이네요.
정말 이성적/논리적/비판적으로 “따지는” 글들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아름다운 글귀, 감사합니다.

마늘빵 2009-10-18 14:42   좋아요 0 | URL
밑줄치고 싶은 부분은 더 많았는데 고르고 골라서 올렸습니다. 요새 강준만의 옛 글들을 읽으려고 절판된 책까지 주문하네요. 중고샾에는 아직 몇 권이 남아있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09-10-1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정부패 문제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언급한 내용은 정곡을 찌릅니다.아무래도 자기 조직 내부의 문제가 되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마늘빵 2009-10-18 20:51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머리가 한번더 껍질을 벗는 듯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강준만의 글은 지금보다 그때것이 더 생생하고 살아있습니다. 주제는 옛것일지 몰라도 메세지는 현재진행형이에요.

글샘 2009-10-1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실명 비판을 하지 말고,
주어도 쓰지 말고,
곱게 말하자고 하잖습니까. ㅎㅎㅎ 쌀이 많이 남아 도니깐, 빨리 떡 돌리고 싶다고...

마늘빵 2009-10-18 20:52   좋아요 0 | URL
쌀 이야기는 뭔지 잘... 이해가...
 
생태페다고지 - 탈토건 시대를 여는 생태교육 생태경제학 시리즈 2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9월
절판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아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아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에 손을 씻어라.
화장실 물을 꼭 내려라.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64쪽

조경은 자연의 형상을 따라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시설물인데, 그렇다고 해서 조경물이 그 자체로 생태계인 것은 아니다. 그중에 어떤 것들은 생태계에 피해를 덜 줄 수 있고, 어떤 것들은 아주 많이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연은 조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 엄청난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판단에는 감수성이 먼저 개입한다. 대체로 개발독재 시대의 사람들은 조경과 생태를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88쪽

고등학생들 아니면 십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나중에’ 라는 말은 많은 교사들에게는 적어도 그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아주 좋은 임시방편이며, 이는 학부형에게도 마찬가지다. 하긴 지금의 고등학생이 생태에 대해 약간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자신의 앎을 행동으로 옮길 수도 없을 것이고, 또 그들에게 그렇게 앞장서라고 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교육적으로 옳다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159쪽

농업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경제의 세계와 자연생태계 사이에 있는 입구이자 출구이며, 두 가지 모순되는 우주가 화해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농업은 공간으로 음식으로 그리고 정신으로 우리의 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하게 만들어주는 문인 셈이다. 그러므로 ‘핸드폰 팔아서 쌀 사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경제의 생태적 전환이 영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185쪽

"혼자서 외치면 뻥이지만, 우리가 같이 외치면 길이 된다."-202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큐리 2009-10-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우석훈 신간을 벌써 다 섭렵하셨나는 말씀이잖아요...흐~

마늘빵 2009-10-14 11:11   좋아요 0 | URL
으흐흣. 연달아 다 읽었어요. 공저로 해서 한 권 더 나왔던데요?

turk182s 2009-10-14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주내내 신간 3권다 읽었네요,,우박사는 볼수록 청소년,대학초년생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많은듯해요.청소년은미래다..뭐이런것같은데, 변태우파들이 점령한 한국사회에서 그래도 비젼은 10대한테있다..이런뜻인데, 근데 글발이 한국이 일말의 희망은 있지만 망해가는 속도가 너무빠르다 그래서 짜증난다. 뭐 이런 결론같습니다.

마늘빵 2009-10-15 00:03   좋아요 0 | URL
빠르시네요. ^^ 네 저도 읽으면서 그런 것 많이 느꼈습니다. 10대에 대한 애정. 많이 기대를 하고, 희망을 갖고 있는데 부응해줄지는...
 
생태요괴전 -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 생태경제학 시리즈 1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9월
절판


드라큘라는 자본가들, 그들과 결탁한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에 관한 이야기다. 좀비는 피지배층, 즉 노동자이자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위험,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88-89쪽

기술 중심주의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과 결합되면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렇게 기술과 자본이 결합된 몇 개의 기업은, 좀비 수준이라고밖에 말하기 어려운 강력한 소비 지지자들을 갖게 된다. 좋은 물건을 싸게 소비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믿음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퍼진 것이다. -94쪽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지금 죽거나 길들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원래 야생에서 살았던 개나 고양이는 길드는 편을 선택했고, 야생에서 살던 벼와 밀도 녹말 함유량을 늘리면서 인간에게 길드는 편을 선택했다. 이렇게 길들기를 거부한 대부분의 생물종들은 인간의 활동범위가 확장되면서 조금씩 멸종해가는 중이다.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들이 더는 인간에게 고분고분 당하지 않겠다는 현상을 나는 ‘생태요괴’라고 불렀다.-155쪽

(‘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이야기’를 언급하며) 이 메시지는 모든 사회적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게 하는, 나름대로 독특한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자신을 괴롭혀야 행복해진다는 ‘사회적 마조히즘’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174-175쪽

나는 지금의 십대가 개발요괴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패닉이라도 피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요괴들의 충실한 동맹자들은 살아야 할 날이 길지 않지만, 십대들은 살아가야 할 날이 더 길기에 ‘생태적 자산’에 대한 이해관계가 더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또 전략적으로 보면, 개발요괴들은 상대적으로 이미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기에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십대들과 대부분의 이십대들은 아직 잃을 것이 없으므로 선택의 범위가 넓다. 물론 물리적, 경제적 힘은 개발요괴들이 이미 장악한 상태지만, 상상력, 예술, 농업의 영역은 온전히 십대들에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227쪽

본능이 지시하는 과시적 소비의 욕구를 이기고 좁게 살려면 생각을 아주 많이 해야 한다. 한마디로 ‘넓게 생각하기’가 가능해야 좁게 살 수 있다. 넓게 생각하기란 어떤 것인가? 각자의 삶의 영역에 따라 다를 것이다. ‘좁게 살기’도 해석의 여지가 많다. 적게 먹는다고 라면을 주식으로 먹거나 햄버거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은 ‘싸게 살기’이지, ‘좁게 살기’는 아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독서와 문화, 경험이 ‘넓게 생각하기’의 도구들임을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247-248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09-10-1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빨리 읽으시네요. 책 나온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늘빵 2009-10-13 12:17   좋아요 0 | URL
흐흐. 금방 읽히더라고요. 컨셉은 재밌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어요.

이리스 2009-10-1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쟁이 ㅋㅋ

마늘빵 2009-10-14 10:40   좋아요 0 | URL
이번에 나온 세 권 연달아 다 읽었다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장바구니담기


대부분 20대 특히 대학생들은 아직까지 ‘침묵하는 다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서로 눈치만 보면서 미루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답답하지만, 가장 답답한 것은 아마 본인들일 것이다. 구조 앞에서 개인은 늘 나약하다. 그러므로, 구조에는 구조로 맞서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고 오래된 해법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20대에게는 그들이 움직이거나 기댈 구조가 없다. -26쪽

흔히 케인스의 경제 체계를 ‘수정 자본주의’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보여 주기 위해 사회주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원래 자본주의에는 없던 많은 복지와 후생 장치들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복지와 후생 장치들의 탄생 배경은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복지 제도,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틈만 나면 해체하려고 하는 의료보험제도만 해도 박정희 때 만들어져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확대 실시되었다. 한국 우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이런 복지 제도들은 실은 대부분 군사 정권이 민중들에게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만든 것이다. (계속)-46-47쪽

신자유주의라는 이 특별한 시장 근본주의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90년대 초․중반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로서는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내부의 약자들에겐 잔인한 경제 시스템이다. 그들이 탈출구로 생각할까 봐 두려워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미 무너져, 국가로서는 굳이 그들에게 뭘 더 해 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집회, 시위 등 내부 약자들의 저항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46-47쪽

마지막 5분 요약, 암기 그리고 그걸 통한 평가가 바로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이 친구들은 몸 자체가 신자유주의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행복은 신자유주의 안에 있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길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며, 답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오픈 퀘스천’ 앞에서 끝없이 외로워진다. 그러므로 이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자식들이 아닌가. -55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리스 2009-10-1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군때문에 고민좀 해봐야겠어. 우석훈 책을 읽어볼까.. 쿨럭~

마늘빵 2009-10-14 10:41   좋아요 0 | URL
일단 <88만원세대>를 시작으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읽으라능. 땡스투는 나한테 하라눙.

무해한모리군 2009-10-15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은 생태~ 시리즈는 어때요? 그걸 읽기엔 우린 넘 늙은거 아닐까? ㅎㅎㅎ

마늘빵 2009-10-15 19:06   좋아요 0 | URL
왜이랫 아마투어가티. 우린 아직 젊다오. 30대초중반도 결코 우석훈이 말하는 젊은이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아. 우석훈이 걱정하는 것들을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오.
 
편집에 정답은 없다 - 출판편집자를 위한 철학에세이 출판기획 시리즈 3
변정수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9년 9월
장바구니담기


‘에디터십’과 ‘편집 경력’은 (아주 상관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무관하다. -21쪽

편집자는 근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구체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편집자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편집자들 자신이 더 잘 안다. 하지만 ‘편집’이란 무엇인가, 또는 편집자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를 물었을 때, 그 답은 편집자가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그 수많은 일들 하나하나로 결코 환원되지 않으며 심지어 그 모든 일의 총합과 등치되지도 않는다. 요컨대 편집은 ‘추상적인’ 일이다.-24-25쪽

편집자는 판단하는 사람이며, 의미를 나르는 기호를 가공하는 사람이며,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는 사람이다. -41쪽

쉼표 하나, 토씨 하나를 넣고 빼는 일에도 주어진 ‘정답’은 없다. 그저 편집자의 ‘판단’이 있을 뿐이다. -47쪽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에 대한 편집자의 판단이 필요하다. 즉 ‘텍스트와의 싸움’이 좀더 완성도 있는 의미의 구조물을 위해 어느 기호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이라면, ‘시간과의 싸움’이란 책이라는 의미의 구조물을 이루는 기호 하나하나가 얼마만큼의 상대적 중요도를 가지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48-49쪽

대가를 받고 제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신’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55쪽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 도달하는 일반적인 정신능력, 즉 ‘추상능력’의 발현으로 얻어진다. 추상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의 그물을 더 촘촘하게 짜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숲을 보는 통찰이 깊어지기를 원한다면 우선 자신의 추상능력을 점검해야 하고, 또한 그것이 더 잘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80-81쪽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겨도 그만인 것들에서도 분명한 관계를 인식해내는 능력이란, 세상만사의 크고작은 관계들이 얽히고설킨 그물에 스스로를 던져놓을 수 있는 용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82쪽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란 애당초 세계상이 명료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혹 제 나름의 뚜렷한 세계상을 확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협소하고 관념적인 나머지 구체적인 판단의 계기에서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적어도 전체를 보는 통찰을 편집자의 업무능력으로서 평가하는 사람과 전혀 다른 모습의 세계상을 가진 사람이다. -83쪽

하나의 의미를 다른 의미있는 경험과 연관시켜 자신의 경험체계로 조직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93쪽

가공능력이란 의미를 다루는 능력이지 기호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다. 물론 의미를 표현하는 것은 기호이므로, 의미를 다루는 능력이 훌륭한 사람이란 당연히 기호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지만, 의미를 다루는 능력이 없이 기호를 잘 다룬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의미가 사상되면 그것은 더 이상 기호가 아니기 때문이다.-130쪽

텍스트의 의미를 책의 존재로 인해 매개될 사회적 콘텍스트 속에서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공’은 없다. -146쪽

텍스트를 장악하지 못하고 텍스트에 치여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전제부터 환기하자. 텍스트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앞서 ‘무엇을’이 ‘어떻게’에 선행한다고 말했지만, ‘어떻게’를 위해 선행하는 것은 단지 ‘무엇을’뿐이 아니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누구에게’ ‘왜’ 전달하는가에 대한 통찰이 텍스트 이해를 지배해야만 편집자는 텍스트의 의미를 장악할 수 있다. -158쪽

텍스트를 장악하지 못하는 편집자란, 텍스트와 관계 맺기에 실패한 것이며, ‘왜냐고 생각하기’를 소홀히 한 것이며, 텍스트에서 아무런 ‘상처’를 받지 못한 것이고 따라서 자신의 삶 속에서 텍스트의 전체적인 맥락을 통찰해내지 못하고 놓친 것이다. -174쪽

편집자에게는 비평가의 ‘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눈’을 외화해낼 비평가의 ‘언어’가 필요하다. -215쪽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체화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으며, 자신을 진지한 대화의 상대방으로 삼아 스스로조차 선뜻 납득되지 않는 자신의 낯선 모습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연장선에서 다른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에 나설 수 있다. -218쪽

자존감도 자의식도 없는 편집자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게다가 우리는 어떻든 자신의 노동으로 만들어낸 가치에 대한 대가를 받아 먹고살아야 하며, 그것을 정당하게 인정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존재감의 발현은 필연적이다. 그것을 부인한다면 편집도 없고 책도 없으며, 나아가 편집자의 노동은 마치 가사 노동처럼 사회적으로 비가시화될 것이고 직업으로서의 편집자도 없을 것이다. -238쪽

‘자신의 삶에 대한 긴장’이 구체적이지 못한 사람에게서, 언감생심 ‘텍스트에 대한 긴장’을 기대한다는 것이 차라리 어리석은 일이다. -254쪽

‘텍스트 장악력’을 기대한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머릿속에 주워담고 있는가 따위보다는 그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보아야 한다.-254-255쪽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이] 2009-10-1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과 깊이 연관된 책이네요^^ 저랑은 그닥ㅎ

마늘빵 2009-10-10 10: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 분께 수업도 들은 적이 있고. 눈빛이 강렬하시죠. 귀로 듣던 이야기를 눈으로 읽게 됐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10-1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편집자를 위한 철학에세이 라는 책이 있다닛!!

마늘빵 2009-10-12 09:25   좋아요 0 | URL
나온지 며칠 안됐어요. ^^ 포스 강한 분이시죠.

네꼬 2009-10-1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와. 아프님 훌륭한 편집자 다 된 것 같아! (응?)

마늘빵 2009-10-12 09:26   좋아요 0 | URL
응? 에이 냐옹 씨가 그런 말 하면 부끄부끄.

이리스 2009-10-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책이. 아프군을 위한 책이로구나~ ^^;

마늘빵 2009-10-14 10:39   좋아요 0 | URL
응응. 편집 기술이 아닌 편집 마인드 교육책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