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10
에른스트 캇시러 지음, 오향미 옮김 / 책세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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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던 책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원인의 1차적 책임은 내게 있을 터이다. 나의 내공이 부족한 탓이다. 알아듣지도 못할 책이 나올리는 없을테니까. 그러나 2차적으로는 참 어렵게 쓴다. 책을. 이 사람. 캇시러.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라는 책은 책세상 출판사의 고전의 세계' 문고판 시리즈 10번째 작품이다. '문화철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출한 철학자 에른스트 캇시러의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이라는 논문과 <문화 철학의 자연주의적 논거와 인본주의적 논거>라는 논문을 묶어 낸 책인데, 두 논문 다 저자가 말하려는 바에 대해서 그 내용은 물론이고 주제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는게 이 책을 읽은 내 감상이다.

어쩌면 반복해서 문장 하나하나 꿰뚫어가며 느리게 그러나 끈질기게 파고든다면 '이해'에 도달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인내심이 그 정도까지 허락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나의 호기심 때문이었고, 수업의 일부로서 다뤄져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요청이 있었다면 좀더 세심하게 주의깊게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지금 호기심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자세히 볼만한 인내심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서 무슨 소린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더 읽지는 않겠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모를까.

에른스트 캇시러는 서양철학사에서는 '최근'을 살다간 사람이기 때문에 '서양철학사'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두꺼운 책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얼마전 하늘나라로 떠난 자크 데리다와 먼저 떠난 미셸푸코가 '서양철학사'에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캇시러는 사실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요청으로 처음엔 법학을 공부했지만, 이후에 여러가지 찍쩝거리다가 철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음을 알고 이후로는 철학을 파고든다. 그는 신칸트주의자라고 불리우는 헤르만 코엔이라는 철학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며, 이후에 논문제출시에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심사가 지연되자 딜타이의 추천으로 무사히 심사를 통과하게 되기도 했다. 그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을 모두 겪었으며, 2차대전이 끝나기 얼마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전쟁통 속에서 느낀바를 토대로 <자유와 형식>이라는 책을 집필했다고 하며, 독일이 나치정권에 넘어간 뒤에는 그곳을 떠나 영국, 스웨덴, 미국 등에서 연구를 하고 강의를 했다고 한다.

캇시러는 우리에게 알려지길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논문으로보다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흔히 캇시러 철학의 입문서로 일컬어지며 캇시러 자신이 스스로 쉽게 쓴 저서이기에 캇시러를 이해하는데 있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난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인문학의 구조 내에서 상징형식 개념 외>라는 책을 통해 본 캇시러는 같은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문고판으로 나온 딜타이의 <체험, 표현, 이해>라는 책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캇시러가 딜타이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모른다. 그의 생애에 있어 내가 알기로는 캇시러의 학위논문 통과에 딜타이가 약간 힘을 실어줬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사소한(?) 사실을 알기 전에 두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둘다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것인데, 이상한 것은 그 '이해하기 힘듦'이 칸트나 헤겔을 읽을 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면서 캇시러와 딜타이만은 동일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난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기회에 된다면 다음에 또 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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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중의 최악! 이보다 더 못한 영화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여고생 시집가기>는 절대로 볼만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관객을 우롱하고 모욕했다. 유치한 영화려니 하는 생각쯤은 예고편을 보거나 그렇지 않은 관객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 유치의 정도가 그래도 <그놈은 멋있었다> 나 <어린신부>, <동갑내기 과외하기> 정도에서 그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유치' 그 자체를 달리고 있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오덕환 감독은 <기적>이라는 단편영화를 제외하고는 이 영화가 그의 감독으로서의 첫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영화는 망할 듯 하다. 작품성이 없으면 상업성이라도 있든가, 상업성이 없으면 작품성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둘의 극단도,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도 위치하지 않음으로써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을 듯 하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 오히려 의문이다. 분명히 망할 것을 알았을텐데 왜 내놓았을까. 이 영화는 비디오로 볼만한 가치도 느낄 수 없다. 영화를 본 내 돈이 너무나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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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가이즈> 개봉될 때부터 별로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상업성면에서나 작품성면에서나 성과를 거두리라 기대조차 접었던 영화였다. 대개 이런 코믹영화들은 그냥 심심풀이 땅콩용으로 나오는 '그저 볼거리'인 영화인지라 그렇다.

 아무리 영화계 대부 박중훈이 나오고, 차태현과 한은정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는 '그저그런 코믹영화'라는 평 이상을 받기는 힘들다. 원래 시나리오 자체가 그러니까.

 시나리오는 박헌수 감독이 직접 맡았다. 그는 이전에도  <주노명 베이커리>, <진짜 사나이>, <구미호> 등의 코믹영화들을 많이 다루었고 역시 최근의 영화도 <투가이즈>와 같은 코믹영화였다. 그가 감독을 하지 않고 각본만 쓴 <화산고>나 <싱글즈> 같은 경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관객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화격에는 속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감독으로 나선 영화는 모조리 큰 실패를 낳았다. 그래도 감독으로서의 욕심때문인지 계속해서 도전은 하고 있지만 이런 코믹영화들로는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안되는 영화에 계속 시도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다지 별로 기대할 것 없고, 볼만한 것도 없는 영화다. 평이 너무 가혹한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다. 박중훈과 차태현, 한은정 정도까지 나왔다면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젊은 관객들의 눈길을 받을만한데도 철저하게 소외당했다. 그냥 너무 우울하거나 슬퍼서 웃고 싶다면 봐도 괜찮은 영화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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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헐크>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략적인 줄거리를 예상할 수 있다. '헐크'라는 소재가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헐크'의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신선하게 각색해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영화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영화 <와호장룡>으로 유명한 이안 감독의 이 작품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트로이>를 통해 먼저 접하게 된 에릭 바나를 2003년에 개봉한 영화 <헐크>를 통해 다시 보는 느낌이 새롭다. 만약 <헐크>를 먼저 봤다면 난 <트로이>를 보면서 <헐크>의 에릭바나를 연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를 본 뒤 '헥토르'라는 인물을 통해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헐크'라는 진부한 소재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었느냐 하는 것도 영화를 보는 관점을 형성하지만, 에릭바나를 보는 것 또한 또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었다.

 13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게 영화의 기승전결을 잘 이끌어낸 듯 하고, 영화를 통해 새로 관심갖게 된 여배우 제니퍼 코넬리를 알게 되어 기쁘다. ^^; 조사 결과 70년생으로 미국태생이며, <헐크>이전에는 <뷰티풀 마인드>와 <레퀴엠>, <폴락>, <웨이킹 더 데드>, <다크시티>, <악의 꽃> 등에 출연했지만 불행히도 내가 본 영화는 <폴락> 하나뿐. 기억을 떠올려보니 앵무새 폴락의 본래 주인이 나중에 어른이 된 후가 그녀였던 것 같다.

 영화감상의 말미에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영화를 보면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연 잘못된 과학의 희생자로 태어난 헐크를 어떻게 대해야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과거의 여자친구이자 동료 과학자인 베티는 그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대하지만, 그의 아버지이자 잘못된 실험의 주인공인 데이비드와 연구자 글렌은 그를 하나의 실험대상물로 볼 뿐이다. 또 그를 대하는 태도를 넘어서 그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끔 '위험한 존재'로 변한다면 그를 죽여도 되는가? 하는 문제도 함께 제기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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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뚱한 브리짓 존스가 돌아왔다. 드디어 솔로로 처량하게 지내던 브리짓 존스가 완벽남 마크를 애인으로 두고 생의 봄날을 맛본다. 언제까지나 꿈속의 이야기로만 존재할 것만 같았던 그런 완벽한 남자와 사랑을 나누며 밤을 보내고, 아침에 눈을 떠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마크를 쳐다보는 그녀는 못생기고 뚱뚱하고 엉뚱하고 바보같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극적 긴장감을 주지도 기교를 부리지도 않지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역시나 초절정 바람둥이로 나온 휴그랜트는 영화 <노팅힐>에서의 서점에서 일하는 순박남의 이미지는 어디간데 없이 치마두른 여성에 환장한 남자로 나오고 또다시 브리짓존스를 꼬신다. 근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도대체 저 뚱뚱하고 못생긴 뒤뚱뒤뚱거리는 여자를 왜 좋아하는 것일까?

 이에 반해 마크는 너무나도 완벽하다. 여자들의 상상속에서나 존재할 것만 같은 그런 남자. 얼짱, 몸짱, 마음짱, 돈짱, 명예짱! 사고뭉치 브리짓 존스를 언제나 이해해주고 싸운 뒤에도 먼저 다가와 화해를 구하고, 헤어져있는 동안에도 그녀를 위해 그녀 모르게 일을 처리한다. 이런 남자가 현실에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영화가 끝난 뒤의 여자들의 머리 속에 듣는 생각이 아닐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그녀들의 머리 속의 완벽남을 실컷 즐길 수 있을터.

 특별히 뭘 기대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사랑과 열정>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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