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다른 영화를 볼껄. 괜시리 막 시작하는 이 영화를 봤다가 기왕 본김에 끝까지 다 보고 다른 영화를 볼 기회를 놓쳐버렸다. 보던 <황산벌>이나 볼껄.

 왜 그랬을까. 난 영화 <툼레이더>를 <디아블로>로 착각했다. 사실 둘다 게임이름이니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말야. 그래서 영화가 시작하고나서 한참 진행되기까지 난 화면속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찾고 있었다. 이상하다. 왜 안나오지. 쩝. 이미 깨우쳤을 땐 영화가 많이 진행된 다음이었다. 이런 둔한 놈.

 <툼레이더>는 게임을 영화화한 작품이고 졸리 덕분인지 모르지만 꽤 상업적인 성공도 거뒀지만, <디아블로>는 게임이름이긴 하지만 게임을 영화화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냥 스페인어로 '악마'를 의미하는 단어 '디아블로'를 사용한 것 뿐이었다.





 * 위에선 게임 디아블로의 표지. 밑에건 영화 디아블로의 포스터.


 주연은 반 디젤이라고 하는 근육질 맨. 에도 나왔다고 하는데 난 그 영화 안봐서 모른다. 약간은 고릴라 비슷하게 생겼으면서 우리나라 MC몽을 떠올리는 얼굴상을 가진 반 디젤은 영화속에서 마약전담반 형사다. 마약 거물을 7년간 쫓아 붙잡은 뒤 감옥에 넣었는데, 이런 누군가가 나의 아내를 살해했다. 그 역시 총에 맞았지만 오랜 시간 지난 뒤에 깨어났다 그 때는 이미 아내의 장례식이 다 끝난 뒤.

 분노에 찬 그는 15살때부터 사랑했던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 복수를 하려하지만 그가 범인이라 생각했던 그 마약거물상 루체로는 범인이 아니란다. 스스로가. 그러면서 그가 말하길.

 "혼돈의 시대에는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는 악마인 디아블로 이니 너도 괴물이 되어 그를 쫓아야 한다"(정확한 대사 아님)

 반 디젤(영화속 션)은 마약거래상 맨 밑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디아블로를 찾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찾아냈지만 그는 그가 잡아들였던 루체로 였다. 이런.

 영화는 매우 싱겁다. 그다지 볼만한 액션도 없고, 심리전도 없으며, 추리할만한 요소도 없고, 스릴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그냥 밋밋한 맹탕에 반 디젤이라는 근육질 사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찍은 영화일 뿐이었다. 속았다. 어이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다 싶어 유명한 영화인가 생각되어 봤는데 아닌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 포스터조차도 찾기 힘들다. 얼마나 실패했으면.

 보는 내내 덥고 짜증나고 답답했던 인내심을 요했던 액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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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21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리플 X는 재밌었는데......ㅡ.ㅡ;;;

마늘빵 2005-07-2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 제가 그런류의 영화들을 별로 안좋아한답니다. 사실 저도 보진 않았어요. ^^

마늘빵 2005-07-2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엑스맨이 아니구 트리플엑스군요. 흠... 제목을 착각한거 같아요.
 



 

 

  전쟁영화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영화 정말 감동이다. 화면에서 눈을 못떼게 만든다. 얼핏 보면 지금까지의 다른 전쟁영화들, 그중에서도 특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다를바 없는 전쟁씬을 보여주는데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미국의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그런 억지 전쟁영화와는 딴판이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 2차 세계대전. 1942년경 독일군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고 집중 포격을 퍼붓는다. 스탈린이라는 이름이 붙은 스탈린그라드를 빼앗음으로써 심리적인 타격을 주려는 셈. 하지만 이에 대한 소련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에너미 엣 더 게이트>는 제 2 차 세계대전의 이와 같은 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적 지식에 거의 아는 바 없는 나로서는 영화의 배경이 된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지식의 짧음을 느끼는 순간.

 독일군의 도심지 공격에 대응해 소련에서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게 되는데 독일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기 위해 소련군에서는 저격수를 내세우게 된다. 저격수들로 하여금 몰래 독일군에게 접근해 장교들을 조용히 없애버리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저격수가 바실리 자이체프다. 바실리 자이체프는 실존하는 인물로 180여일간 계속 되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전투에서 242명의 독일군 장군과 장교를 저격으로 사살했다고 한다. 그는 불과 몇년전인 2000년에 사망했다고 하며 죽을 때까지도, 아니 죽은 이후까지도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 영화속 왼쪽이 다닐로프, 오른쪽이 바실리.



* 실존인물 바실리

 

* 소련 박물관에 진열되어있는 바실리의 총

 

이 영화는 실존했던 바실리 자이제프라는 소련의 유명한 저격수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으니 그가 바로 독일군의 최고 저격수 코니그 소령(실존 인물의 이름은 하인즈 토왈트 인데 영화에서 왜 바실리의 이름은 실명으로 하고 독일군의 저격수 하인즈의 이름은 코니그로 했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이다. 실제 어떠했는지는 모르나 영화상으로 봤을 때 바실리보다는 코니그 소령이 저격수로서 좀더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다. 단지 바실리가 코니그를 사살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바실리나 코니그나 소련과 독일에서 내노라하는 저격수들이었고, 소련의 경우엔 바실리를 실제보다 과대포장해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 신문기사를 통해 - 그의 생사여부는 소련군 전체의 사기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었다. 영화 중간 바실리가 코니그를 저격하기 위해 숨었다가 조는 사이 코니그가 먼저 채비를 하고, 비록 저격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독일군에 의해 신분증을 빼앗겨 죽은 것으로 소문이 났을 때 소련군 지휘부의 그 침울함은 이를 증명해준다.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이 두 저격수간의 대결이기도 하지만, 전쟁영화 속에 숨어있는 또다른 이야기.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다.

 삼각관계의 주인공들은 바실리와 그의 애인 타냐, 그리고 바실리에 관한 기사를 써서 바실리를 한순간에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준 정훈장교 다닐로프다. 전쟁 통 속의 어느 한 가정집에서 마주치게 된 세 사람. 두 남자는 한 여인에게 시선을 빼앗겼고, 한 여인은 그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함께 부대끼며 전쟁을 치루면서 이들은 친해졌고, 바실리와 타냐는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다닐로프는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다닐로프는 바실리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줬지만 바실리를 시기하며 어떻게든 타냐와 떼어놓고 싶어한다. 나중에는 바실리가 사회주의 혁명정신을 잃어버리고 복무태도가 변했다는 기사를 작성하게 한다. 그러나 결국 다닐로프는 본성의 선함 때문인지 본인의 잘못을 알고 바실리와 코니그의 마지막 대결에서 스스로 희생해 코니그의 위치를 노출시키는데 기여한다. 아 이 불쌍한 사람아. 사랑에 상처받고 자기 목숨까지 희생해가며 사랑하는 사람의 연인을 도와주다니.

 그냥 무작정 전쟁영화가 아니라 저격수들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일반 전쟁영화와 다른 또다른 긴장감을 조성하고, 대개의 전쟁영화가 로맨스를 양념버무림으로 취급하는데 비해 이 영화는 로맨스 또한 주된 또하나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영화 속의 삼각관계가 실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실리와 타냐의 사랑은 실제 이야기라고 하니 더욱 가슴이 찡하다. 오랫만에 본 괜찮은 전쟁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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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7-2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군요. 얼마 전 티비에서 해줄 때 봤는데... 그럭저럭 좋았어요. 저도...

마늘빵 2005-07-2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티비서 해줄때 봤는데. 케이블 티비요. 공중파에서도 했나요? 근데 실물 바실리는 못생겼는데 영화 속 바실리는 넘 멋있어요. ㅋㅋ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 시리즈라고 할만큼 한꺼번에 이자의 책이 번역되거나 새롭게 개정, 출판되었고, 출판사의 의도대로 나는 이 자의 책을 나오는 즉시 다 구입해버렸다. 처음 읽었던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에서부터 <키스하기 전에 하는 말들>을 거쳐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까지, 그리고 방금 다 읽어버린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벌써 이 자의 책만 네 권을 읽었다. 나머지 한권인 <여행의 기술>만이 남아있다. 당신의 무엇이 나를 이리도 당신에게 끌리도록 하는 것인가. 보통씨여.

 '어떻게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라는 본 제목을 달고 있는 보통씨의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으로 탈바꿈했다. 보통씨의 이전의 다른 작품들이 그랬듯이 출판사가 표지며, 제목이며, 편집이며 할 것 없이 아주 제대로 신경썼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보통씨의 책은 사람들에게는 흔히 알려져 있는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삶을 배경으로 하여 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풀어내준다. 마르셀 프루스트. 사실 우리는 이 자의 이름은 알지만 이 자의 책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프루스트는 중학교 시절 무슨 게임을 하다가 처음 접한 것 같고, 이후로도 프루스트라는 이름은 우리네 정규교육과정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얼핏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가 쓴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은 구경도 못해봤다. 보통씨의 이 책을 통해서 프루스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11권짜리 책의 1편을 구입했다.

 알랭 드 보통에 대한 이력이야 더 말하지 않아도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명세에 못이겨 이력정도는 살펴봤을 터이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보통이 이 책을 쓴 다음에 영국의 BBC방송국에서는 이 책을 토대로 하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나야 그 영화를 안봤으니 모를 일이고.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크게 9가지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둘째, 자신을 위한 독서법, 셋째, 여유있게 사는 법, 넷째,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다섯째, 감정을 표현하는 법, 여섯째 좋은 친구가 되는 법, 일곱째, 일상에 눈을 뜨는 법, 여덟째, 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아홉째, 책을 치워버리는 법. 이렇게 9가지.

 이 모든 것들은 프루스트라는 작가의 생애를 통해서 배울 수가 있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 알랭 드 보통은 세네카, 몽테뉴, 소크라테스, 니체 등의 유명한 철학자들을 등장시키며 우리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언급해줬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듯 하다. 단지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이 여러 철학자들을 조금씩 살펴보며 그들의 삶에 대해 언급했다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서는 보통이 작정하고 '프루스트'만을 집중공략하여 파고들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프루스트는 살아있는 동안 변변찮은 직업 하나 가진 것이 없었고, 단 한번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도서관 사서였다고 한다. 정확히는 사서는 아니고 보조직인데 일주일에 4번정도만 나가서 간단한 일만 하면 되는 이 쉬운 일조차도 프루스트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농땡이를 피우며 일하는 동료에게 말을 시킴으로써 일을 방해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고, 당시 이례적으로 휴가를 1년씩(?) 신청을 하여 놀고 먹으려 했던 거 같은데, 도서관에서도 오히려 그가 일함으로써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이를 허용했다고 한다.

 젊었을 적엔 사교계의 잘나가는 인사로 놀고먹고 늙어서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계기가 된 것이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는 어릴적부터 나이먹어서까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고 하며 - 뭐 이게 문제 될 건 없다. 나도 엄마라고 부르고 있고, 확실히 나이 먹은 철학자 김용옥 또한 그 나이에도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이들었건 나이들지 않았건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 엄마의 말이라면 거절할 수 없었다고도 한다. 요즘 말로 치면 심한 마마보이였던 거 같은데. 그에게서 엄마의 죽음이란 어떠했을지 짐직이 간다. 엄마의 죽음 이후 그는 방에 들어가 나오질 않고 그곳에서 글을 쓰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고된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이다.

 이런 프루스트의 삶을 통해서 보통은 그의 삶과 생각, 그가 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건져낼 수 있는가를 언급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프루스트의 서신과 메모들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우리는 그를 통해 삶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프루스트는 독서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자가 자신에게서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을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된다."(p34-35)

 "저자에게는 '종결'이라 불릴 수 있지만, 독자에게는 '자극'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책들의 위대하고 놀라운 성격 중의 하나다. 우리는 저자가 떠나버린 곳에서 자신의 지혜가 시작된다고 매우 강하게 느끼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에게 소망을 부여하는 것 밖에 없는데도 그가 우리에게 답을 주기를 원한다. ...... 이것이 독서의 가치이자 그것의 부적절성이다. 그것을 학문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p245)

 프루스트는 책을 통해서, 우리가 독서를 통해서 단지 책을 읽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과 연관을 지어 삶을 성찰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은 저자에게는 '종결'이지만 독자에게는 '자극'이라는 말은 저자가 던져놓고 가버린 결과물을 통해 각각의 독자가 자신의 삶과 대화를 해야한다는 메세지다. 이는 독서에 대한 나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또, 프루스트는 연애 혹은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를 잃을까봐 두려워할 때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잊어버린다. 그녀가 자기 것이라  확신 할 때 우리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즉시 그녀보다 그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p234)

 이와 같은 그의 발언은 사랑에 빠졌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만한 사실이다.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녀를 나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남자는 온갖 노력을 하게 되고, 그녀와 내가 연인이 되기까지 나의 머리속에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잊혀진다. 그리고 그녀가 나의 여자가 되었을 때, 우리가 연인이 되었을 때, 남자는 안심하게 되고, 긴장을 풀게 되며, 눈에서 사라졌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자친구 있을 땐 연락도 안하더니...." 라는 주위 사람의 말이나 "친구가 중요해? 여자가 중요해?"라고 몰아붙이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친구의 말은 이를 입증해준다.

 이것은 새로운 방식의 대화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그는 한 명의 잘 알려진 인물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언급한다. 대개 우리는 그 인물의 책을 통해서 독자 스스로가 배울 만한 것들을 뽑아내는데, 알랭 드 보통은 독자가 해야할 그 역할마저도 해내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보통을 미워하기도(?) 한다. 그래 너만 잘났냐?! 라는 식으로. 나도 생각할 줄 안다고. 작가와 독자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는 보통씨의 사유는 독자가 해야할 역할을 빼앗아 버리기는 하지만, 독자는 또 다른 측면에서 그의 역할을 찾기 마련이다. 보통씨의 사유를 통해 떠나는 또다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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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1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여행의 기술도 어여 읽으셔요~ 전 개인적으로 어떻게 프루스트가 당신의 삶을 바꾸는가. 라는 제목이 좋아요. 그리고 이 판형 네모라서 책 보기 불편해서 싫어요. 아프락사스님의 리뷰 좋네요. 크~

마늘빵 2005-07-16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여행의 기술> 들고 나왔어요~ ^^ 프루스트 저 책은 약간 조금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거 같아요. 제가 제대로 못읽어서 그런지. 그래서 별 하나 뺐어요. 지금까지 보통씨 책에 다 별 다섯개 줬는데

부리 2005-07-1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얼마전에 샀거든요. 읽어볼 요량으로 리뷰는 앞부분밖에 안읽었어요. 근데 리뷰 참 잘쓰시네요. 나중에 저도 읽고나서 댓글 남길께요. 일단 추천

2005-07-21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5-07-2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예전에 <불가사리>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었는데 난 이게 후속편까지 있는줄은 몰랐다.  우연히 접하게 된 <불가사리2>를 통해서 <불가사리3>와 <불가사리4>까지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도대체 이것들이 언제 개봉했던게야? 아님 비디오로만 나왔나? 마지막 작품이 2004년인가로 되어있는데. 하긴 그때는 내가 군에 있던 시절이다. 개봉되었어도 몰랐겠지. 또 개봉되었더라도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다. 솔.직.히. 재미는 있지만 극장용 영화는 아니라는 말은, 이런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라면 끓여놓고 배부르게 먹고 쇼파에 모로 누워서 껄렁껄렁한 모양새로 봐야 제맛이라는 말이다. <불가사리>나 <불가사리2>나 난 모두 이런 모양새로 봤다.

 <불가사리>라는 영화는 괴 생물체에 대항해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 투지에 넘치는 인간, 지능적인 인간의 모습들을 한데 모아 보여준다. 이는 <불가사리>라는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성질들은 물론 아니다. <에일리언> 시리즈나 기타 등등 괴물에 대항해서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영화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단지 <불가사리>가 그들 영화와 다른 점은 배경이 인적없는 황량한 사막이라는 점이다. 사막이거나 혹은 마냥 벌판이거나. 어쨌든 고립된 공간이다.

 드넓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고립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괴 생물체와 인간의 투쟁. <불가사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괴물의 모습이 <불가사리2>에서는 새롭게 등장하는데 귀엽기까지 하다. 예전에 봤던 땅속을 헤치고 다니는 거대한 몸집의 지렁이같은 생물체가 <불가사리2>에서 변태를 하고 자웅동체로 자가번식을 하는 등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띤다. 이는 괴물이 변하지 않고서는 영화가 시리즈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기본적인 괴물영화의 규칙을 깨지 않는다.

 예전의 괴물은 진동소리로 위치를 파악해 사람을 공격했지만, 이번 괴물은 열을 감지함으로써 사람을 공격한다. 열이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 자동차 엔진이든 변전소든 사람이든 할 것 없이 - 공격하고 부순다. 당연히 인간 역시 이를 알아채고서 온몸에 소화기를 뿌려가며 몸을 차갑게 만들어 적진 속으로 과감히 침투하기도 하고, 철판문으로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살금살금 도망가기도 한다.

 지능이 있는 괴물과 지능이 있는 사람의 싸움. 물론 결과는 뻔히 알다시피 인간의 승리로 항상 귀결된다. 어쩌면 괴물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양한 볼거리 말고도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이다" 라는 우리네 진리(?)를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 등장하는 불가사리라는 놈도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공룡보다도 더 오래된 시기에 존재했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이라고 하며, 선캄브리아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놈이라고 하니깐. 굳이 지구상의 생물체임을 강조하는 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체 임을 강조하는 것도, 인간을 능가하는 동물은 없다 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전작보다 질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스토리도 전작과 다를 바 없고, 단지 다른 것은 괴물의 모양새뿐. 그다지 흥미진진하지도 않고 긴장감을 조성하지도 않으며 괴물이 무섭거나 놀랍지도 않다는 사실은 그닥 보여줄 것이 없는 괴물영화에서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수 있다.

 <불가사리3>와 <불가사리4>는 좀 나을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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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5-07-1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보고..전 북한영화생각했어요. 쇠를 먹고 자란다는 괴수영화 불가사리요. 그런데 설명하시는 것 보니..다른 영화인듯 하네요. 하하..

마늘빵 2005-07-16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아 그 영화 저도 얼핏 들어본거 같습니다. 이 영화는 다른 겁니다. ㅋㅋㅋ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구판절판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된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자가 자신에게서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을 어떤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이 진실하다는 것이 입증된다."(프루스트)-35-36쪽

"작가란 위대한 예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물들에 열정을 가지는 사람이다."(프루스트의 말을 보통이 옮김)-60쪽

"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는 아마 프루스트주의적 슬로건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 빨리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이점은, 그러는 도중에 세상이 더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프루스트의 말을 보통이 옮김)-63쪽

"결국 진정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 말이 주는 이익을 처음 취할 사람은 다름 아닌 그것을 생각해낸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단지 한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생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아닐까?"-67쪽

"행복은 몸에 좋다. 그러나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고뇌다"(프루스트)
"고뇌는 우리의 정신으로 하여금 우리가 행복했다면 회피했을 일종의 체조와 같은 것을 하게 한다. 사실, 우리의 정신적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선시된다면 그것이 갖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만족보다는 불행이, 그리고 플라톤이나 스피노자를 읽는 것보다는 고통스러운 연애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으리라는 것이다."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천재보다는, 우리가 욕구하고 우리를 앓게 하는 여성이 훨씬 더 심오하고 생생하게 우리에게서 온갖 종류의 감정을 끌어낸다."-94-95쪽

"상투어의 문제는 잘못된 관념을 담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훌륭한 관념들을 피상적으로 조합해 낸다는 데 있다. 해는 해질녘에 불타고 달ㅇ른 어스레한 빛을 내지만, 우리가 해나 달과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이 주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첫번째 말이라기보다는 최종적인 말이라고 결국 믿게 되고 말 것이다. 상투어들은, 한편으로는 단지 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주기 때문에 해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는가는, 어떤 수준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처음에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123-124쪽

"다른 사람들처럼 말하고 싶은 유혹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하는 말이 권위 있는 것처럼, 지적인 것처럼, 세속적인 것처럼, 적절히 감사를 표사하는 것처럼, 또는 깊은 감동을 받은 것처럼 들리게 보장하는, 전해 내려오는 관습적 표현들이 있다."-125쪽

"죽는 자는 말이 없다"(조르주 비제)-127쪽

"우리는 속되게는 '척한다' '지루하다' '재미있다'고 부를 수 있는 것들과 더불어 약간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친절한 태도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들끼리 '프루스트하다'라는 동사를 만들었다."(페르낭 그레그)-168쪽

"독서에서 친교는 갑자기 그 본래적인 순수성을 회복한다. 책에는 거짓 상냥함이란 없다. 우리가 이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실로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프루스트)

"인생에서는, 초대를 거절하면 소중한 우정이 앞으로 잘못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는 친구의 정당하지 않지만 회피할 수 없는 예민한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위선적인 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책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솔직해 질 수 있는가? 독서할 때는 적어도 우리가 원할 때만 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고, 지루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으며, 필요할 때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다."-173쪽

"불만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는 불만을 초래한 사람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 결과 전형적으로 초래되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들이 아마도 우리가 그러한 견해를 재고하도록 촉구하는 듯하다."-177쪽

"모든 것에 올바른 가치를 부여하라고 권했을 터이다. 이는 좋은 삶이란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부당하게 무시하고 헛되이 다른 것을 갈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을 의미했다."-190쪽

"어떤 순간에는 삶이 매우 아름답게 보이는데도 삶이 사소한 것처럼 생각되는 까닭은, 삶의 흔적 그 자체가 아니라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은 매우 다른 이미지들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리는데 있다. - 때문에 우리는 삶을 멸시하는 것이다."-195쪽

"그녀를 잃을까봐 두려워할 때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잊어버린다. 그녀가 자기 것이라 확신 할 때 우리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즉시 그녀보다 그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프루스트)

-234쪽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대가가 느꼈던 것을 자신 속에 다시 그려 보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 살사 우리를 돕는 것이 다른 작가의 생각일지라도,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이다. 따라서 학자로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연구하는 작가들이 그들의 책 속에 우리 자신의 관심사를 충분히 담고 있다고, 그리고 번역이나 주석같이 그것들을 이해하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동시에 우리 자신의 정신적으로 중요한 부분을 이해하고 계발할 수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보통이 러스킨의 말을 옮김)-244쪽

"저자에게는 '종결'이라 불릴 수 있지만, 독자에게는 '자극'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책들의 위대하고 놀라운 성격 중의 하나다. 우리는 저자가 떠나버린 곳에서 자신의 지혜가 시작된다고 매우 강하게 느끼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에게 소망을 부여하는 것 밖에 없는데도 그가 우리에게 답을 주기를 원한다. ...... 이것이 독서의 가치이자 그것의 부적절성이다. 그것을 학문분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자극'에 불과한 것에 너무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프루스트)-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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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1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 방 꾸욱~

마늘빵 2005-08-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