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유치한 포스터 좀 봐라. 얼마나 오래된 영화인지를 실감나게 해준다. 근데 뭐 그다지 오래라고 할 수 도 없는 1993년인데. 그때면 난 중딩? 음 오래는 오래군. 요즘 중딩을 가르치고 있으니.

  요즘 영화의 러닝타임이 대부분 2시간을 훌쩍 넘기는데 비해 이 당시에는 보통 한시간 반정도에서 두시간 사이의 영화들이 많았다. 뭐 통계를 낸건 아니고 내 경험상 그렇게 느껴진다는 야기. 97분. 약 한시간 반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줄거리를 더 긴 시간에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압축하여 장면장면마다 빠른 스토리전개를 보여준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뭔가 더 있어도 될 듯 하다 싶은 곳에서도 그냥 생략해서 뛰어넘고 있다. 예를 들어서, 극중 군보가 천보의 배신으로 함께 하던 사람들이 죽자 충격을 받고 바보가 되어있던 장면이 있었는데, 잘 싸우고선 집에 돌아와 바보가 된 장면으로 넘어오거나, 아니면 바보에서 갑자기 도를  깨닫고 태극권의 강자로 변신하는 모습 등은 중간과정이 너무나 생략되어있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중국의 역사 속의 정치적 상황이야, 이미 중고등학교 배운 뒤로 세월이 한참 흘러 기억도 나지 않을 뿐더러 역사에는 별로 관심도 없던 지라 삼국지를 읽으면서도 시대적 배경이 언제적인지도 모르고 보는 나다. 지금껏 삼국지를 다섯번인가 여섯번인가 본거 같은데. 그래도 시대적 배경을 모른다. 어쨌든 이 영화 속의 역사적 상황은 매우 혼란기였던 듯 하다. 관리들이 부패해서 민중의 삶을 통째로 빼앗으려 들고,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을 처벌할 영웅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시기. 이때 무술의 강자가 나타났는데군보와 천보. 둘은 한 스승밑에서 자라난 무술 강자들이다. 군보는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놈이고, 반면 천보는 무술은 뛰어나지만 심성이 비뚤어진 놈이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천보의 배신. 군보의 복수. 관군이 되어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천보와 그에 맞서는 군보. 역시 오랫만에 봐도 이연걸의 무공은 시선을 확사로잡는다. 예전에 무술영화들을 보다가 이건 당연히 카메라 등 여러기법을 이용해서 찍은거겠지 하고 그냥 봤던 나는, 어느날 이연걸이 실제로 그런 연기를 직접하는 것을 봤을 때 놀랐다. 아 이런. 저런게 실제로 가능하구나 하고. 한때 중국의 무협영화들이 인기를 끌었을 때 이연걸이 자주 우리나라 티비에도 등장하곤 했다. 잘생기고 젊고 무술도 잘하고. 지금은 나이를 꽤 먹었겠지만.

  오랫만에 본 태극권. 이 영화 때문에 갑자기 중학교 때 하루에 4-5개씩 보던 <의천도룡기>가 생각난다. 이게 25편짜린가 그랬는데. 난 이영화가 좋아서 나중에 게임으로 나왔을 때 정품 '의천도룡기'를 샀던 적이 있다. '동방불패'도. '동방불패' 오락은 정말 재밌었다. 롤플레잉 게임이었는데.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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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된 아버지 - 책가방문고 1 내인생의책 책가방 문고 33
토마스 앤스티 지음, 조기룡 옮김 / 내인생의책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동화 읽기 제 4탄. <아들이 된 아버지> 는 제목 그대로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의 몸이 자기 몸이 아닌 타인의 몸으로 바뀌는 이야기는 이미 영화에서도 써먹은 바 있는 소재다. <핫 칙>이라는 영화에서는 머리까지고 늙고 키도 작은 한 땅달보 좀도둑이 마법의 귀걸이로 인해 이쁘고 날씬하고 매력적인 한 여고생과 몸이 바뀌는 상황을 그려냈었다. 서로 극에서 극으로 몸뚱이가 바뀌어버린 두 남녀는 자신의 몸을 찾기 위해 찾는다. 하지만 이내 여고생의 몸으로 바뀐 좀도둑은 아쉬울게 없다는 걸 깨닫고 이쁘고 매력적인 몸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몸이 바뀐 여고생 입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들이 된 아버지>에서는 거꾸로다. 나이 어린 아들과 머리까지고 배나온 늙은 아버지와 몸이 바뀌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몸을 가지게 된 아들보다 아들의 몸을 가지게 된 아버지가 더 난리다. 상황인 즉 아들의 몸을 가진 아버지는 이제 기숙사 학교로 들어가 엄격한 통제 속에서 생활해야하는 것이다. 공부도 해야하고, 선생님께 혼나고 맞고. 반면 아버지의 몸을 가지게 된 아들은 회사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나가고 나가서도 직원들과 전쟁놀이나 하려고 하고, 집에서도 딸과 놀아주는 다정하고 착한 아빠가 되었다. 아버지의 몸을 가진 아들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없다. 하지만 아들의 몸을 가진 아버지는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동화 속에서 이런 상황설정을 한 것은,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맨날 공부만 하고, 선생님께 혼나고,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 어른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의 좋은 점, 나쁜 점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도록 하는데 있다고 봐야겠다. 하지만 동화 속에서는 어른이 되어서의 나쁜 점이 부각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이들은 이 동화를 읽고 오히려 어른이 더 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은 아이들보다는 아버지가 먼저 읽어야 할 책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 아니라 어른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이라는 말이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지 말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라는 의미로.

   아이와 어른이라는 두 가지 시각을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한 동화이다. 시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를 느낄 수 있고, 거기에서 뭔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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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5-08-06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핀치 러너 조서>인줄 알았다는. 동화는 아니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핀치 러너 조서> 한번 읽어보세요. 흑흑 감동.

마늘빵 2005-08-0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내용을 다룬 소설이 있나봐요? ^^ ㅋ 오엔 겐자부로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소설은 하나도 안봤어요.
 

 

 

 

 

  안토니오 반데라스, 안소니 홉킨스, 캐서린 제타 존스. 외국 영화배우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조차도 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 사람은 이미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고 볼 수 있다. 영화계의 큰 아버지뻘인 안소니 홉킨스는 그렇다치고,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는 사실 아카데미상 두개 부문과 골든 글로브상 2개 부문에 오른 이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물론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마스크 오브 조로>를 찍기 전에도 <에피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데르페라도> 등의 작품을 통해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그가 오늘날의 위치에 도달하게 한 주역은 아무래도 <마스크 오브 조로>로 봐야 할 듯 하다. 한편 캐서린 제타 존스 역시 <블루쥬스> <캐서린 제타 존스의 더 그레이> <타이타닉>(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이타닉이 아니다) 과 같이 TV드라마를 통해 데뷔는 했지만 그녀의 이름을 날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결국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는 이 작품을 통해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고 봐야한다.

  <마스크 오브 조로>는 또 하나의 영웅을 담은 영화이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의 영웅 영화들은 부지기수로 많고, 여기에 조로가 더 가세해봐야 별 티도 안나지만, 다 똑같은 구조의 영웅영화라고 할지라도 나름대로 그 안에 또다른 숨은 매력이 있기 마련. 조로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 같이 화려한 장비를 가지고 온갖 묘기를 부리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내게 주어진 것은 훌륭한 말 한필, 칼 한 자루, 그리고 눈만 가린 복면. 아 망또도 있다. 힘찬 말 달리는 소리와 함께 망또 휘날리며 등장한 조로. 아무 죄 없이 붙잡혀 죽어가는 선량한 백성들을 위해 귀족의 군대에 맞서 싸운다. 그리곤 떠나갈듯한 민중의 함성소리와 함께 숲으로 사라진다. 이 짜릿한 쾌감. 영웅영화에서라면 흔히 있는 구조다. 갑자기 등장해 불쌍하고 착한 사람들 구해주고 소리없이 사라진다. 배트맨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신과 같이 추앙받는 존재는 아니다. 분명 보통 사람이고, 단지 칼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고, 정의감에 넘칠 뿐.

  그는 당시 귀족 중의 한 명이었다. 데 라 베가 가문의 돈 디에고. 그에게는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딸 엘레나가 있다. 그러나 조로의 활약 이후 그의 정체를 알아버린 몬테로에 의해 습격당하고 체포된다. 체포과정에서 그의 아내는 총에 맞아 죽게 되고, 딸은 그의 적수 몬테로가 데려간다. 몬테로는 디에고의 아내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는 없었고, 그녀가 죽게 되고 디에고가 감옥에 갇히자, 디에고의 딸을 데려다가 자기가 키운다. 엘레나는 다 큰 숙녀가 되어서도 몬테로를 아버지로 알고 있는 것. 당연히 디에고는 20년간의 잠적생활 끝에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 알레한드로를 조로로 키운 뒤 엘라나를 찾으로 간다.

 
* 첫번째 조로. 안소니 홉킨스. 극 중 돈 디에고.



* 두번째 조로. 알레한드로. 한때 말 도둑이었으나 형의 죽음 이후 만난 디에고에 의해 조로로 탄생.



* 캐서린 제타 존스. 영화 속의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눈을 뗄 수가 없다. 극중 엘레나.


  사람들은 핍박받은 생활 속에서 영웅을 기다리고, 영웅은 난세에만 등장한다. 스페인의 멕시코 지배가 있었고, 조로는 멕시코인들을 지키기 위해 스페인 정부에 맞서 싸웠다. 영웅이 필요했고 첫번째 조로가 나타났던 것. 20년 뒤 몬테로, 행동대장 러브를 끼고 돌아왔다. 캘리포니아 왕국을 세우려는 야심을 가지고, 멕시코 민중들을 금광을 캐는데 동원한다. 핍박받는 민중을 위해 조로가 나타날 때가 됐는데 이미 이전의 조로는 늙었고, 새로운 조로 알레한드로가 등장한다. 두 조로는 힘을 합쳐 몬테로와 러브를 몰아내고 멕시코 민중을 구한다.

  내용만 따지면 사실 별거 없는 영화인데, 이 영화가 당시 온갖 영화제를 휩쓸었던 것은, 영화 속의 많은 볼거리와 흥미진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세 주연들의 연기도 대단했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칼놀림과 그 자태.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천도룡기>를 비롯한 중국의 무협영화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조로도 그것을 터득하고 있을 줄이야. ^^; 조로는 다수와 싸우더라도 절대 흥분하지 않는다. 조용히 고요하게 다가가 치고 빠진다. 디에고가 알레한드로를 가르치는 과정에서도 일개 도둑에 불과했던 알레한드로에게 부드러움 속의 강인한 검술을 가르친다. 첫번째 볼거리는 바로 이러한 검술에 있다.

  두번째는 사랑. 역시 영웅영화에는 사랑이 빠지면 안된다. 영웅들에게는 항상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디에고에게는 알레나의 어머니가 있었고, 알레한드로에게는 알레나가 있다. 알레한드로가 몬테로의 집에 귀족으로 분장, 잠입해 알레나와 설전을 버리는 장면, 이후 러브의 춤 파트너였던 그녀를 가로채 열정적인 스페인 춤을 추는 장면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역시 부드러운 춤 속의 강인함이 부각되는 장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었다면 키스로 연결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접어두고. ^^

  두 사람은 마굿간에서 한번 더 조우하게 되는데, 한 차례 진탕 땀을 빼며 싸우고 도주하는 조로를 마굿간에 기다린 것은 엘레나. 그녀는 조로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덤벼라. 도전이다. 두 사람은 이내 칼을 쥐고 서로를 겨냥하며 칼싸움을 하는데, 이건 칼싸움인건지 사랑싸움인건지, 싸울래면 제대로 싸워랏! 먼저 선제공격으로 조로의 망또를 벤 엘레나. 이젠 조로 차례다. 조로는 엘레나에게 제대로 복수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겉옷을 벗고. 조로는 엘레나의 원피스에 흠집을 냈다. 사사삭 몇번 하고 다니. 엘레나의 원피스 윗부분이 반으로 쪼개지며 양옆으로 흘러내린다. 헉! 노출. 근데 아쉽게도 엘레나의 검고 긴 머리칼이 중요부위(?)를 가려버렸다. 므흣.

  세번째. 영웅영화에 복수가 빠질 수는 없다. 대개 영웅들은 이전의 사적인 원한으로 인해 복수의 칼을 갈다가 더 큰 것을 위해 싸우다보니 어느새 영웅이 되어있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개인적 원한을 공동체 전체를 위한 원한으로 전환시킨 것. 디에고가 그의 아내를 죽이고,  딸을 빼앗아간 몬테로에게 원한이 있듯,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형을 죽인 러브에게 원한이 있었다. 영웅놀이 끝에 개인적 복수와 공동체의 정의는 함께 실현된다. 몬테로가 죽으니 디에고의 원한을 갚은 것이고, 러브가 죽으니 알레한드로의 원한을  갚은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핍박받은 멕시코 민중 전체의 정의의 실현이다. 더이상 좋은게 뭐 있나. 그와 더불어 명예도 얻었으니.

  싸움을 다 끝낸 조로 2세. 알레한드로는 죽어가는 조로 1세 돈 디에고의 바램대로 그의 딸 엘레나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 디에고가 요람에 놓인 그의 딸 엘레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던 그 장면이 그대로 반복된다.

 

 

 

 

* 2005년 <레전드 오브 조로>가 10월 즈음 개봉한다고 하는데, 역시 감독은 마틴 캠벨이고, 주연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로 <마스크 오브 조로>와 동일하다. 기대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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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5-08-0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아카데미나 골든 글로브 후보에 올랐지 수상은 못했는걸루 아는뎁쇼..글구 캐서린 제타 존스가 출연한 건 영화가 아니라 TV드라마인데...데스페라도,에비타 ㅎㅎㅎㅎ 아니면 말구요

마늘빵 2005-08-0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ㅡㅡa 수상은 못했나요? 잘못 알고 있나. 에... 그건 티비 드라마가 맞네요.

물만두 2005-08-0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에도 나왔을걸요^^;;;

마늘빵 2005-08-0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수정했어요. 제가 잘못 알았나봅니당. 므흣. 후보만 올랐군요. ㅡㅡa

하이드 2005-08-0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타존스의 벨마. 그리고 트래픽에서의 그녀.
 
킬러 고양이의 일기 난 책읽기가 좋아
앤 파인 글, 베로니크 데스 그림, 햇살과 나무꾼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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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좋다고. 그래. 내가 아기 새를 후려쳤어. 그렇다고 엘리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내가 거의 빠져죽을 정도로 펑펑 울면서 나를 숨도 못 쉬게 쥐어짤 수 있냐고?" -8쪽

"좋아 좋다고. 내가 토끼 사건을 설명할게. 하지만 먼저 말해 둘 게 있어. 그건 바로, 이 몸이 혼자서 그 좁디 좁은 고양이 문으로 토끼를 끌고 들어왔다는 사실이야! 아마 나 혼자 해냈으리라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걸. 사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 그 녀석을 고양이 문으로 끌어들이는 데만 자그마치 한 시간이 걸렸으니까. 와아. 무슨 토끼가 그렇게 뚱뚱하냐! 정말이지, 토끼가 아니라 꼭 돼지 같았다니까"-25쪽

"엘리네 엄마는 심퍼(토끼)를 그 양동이에 담가서 비눗물로 박박 씻었어. 물이 금세 시커메지더군. 엘리네 엄마 아빠는 그게 다 내 탓이라는 듯 나를 착 노려보고는, 더러운 물을 버리고 새 비눗물로 섬퍼를 씻었어"-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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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고양이의 일기 난 책읽기가 좋아
앤 파인 글, 베로니크 데스 그림, 햇살과 나무꾼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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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책 읽기 제 3탄. 이번 연구소 특강을 위해서 동화책은 열 권 넘게 봐야 할 거 같은데 흠흠 이걸 언제 다 본다? 그다지 길지 않은 탓에 금방금방 읽기는 하지만 난 내가 읽고 싶은 다른 책들도 산적해있단 말이야. 하지만 재미있다. 아이들 동화책을 읽는 재미란... 내가 어린아이가 된 듯 한 기분이다. (넌 원래 어려! 퍽)

 <킬러 고양이의 일기>에 나오는 고양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다. 쥐를 보고너, 새를 보거나, 병아리를 보거나 하면 어김없이 달려드는 천상 고양이. 이 고양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불평불만이다.

 어렸을 때 단독주택에 세들어 살던 우리집에는 병아리가 생겼었다. 엄마가 어디서 사오신 건데 라면 박스 같은 상자에 입도 안아프진 하루종일 삐약삐약 거리는 노오란 병아리들 때문에 집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래도 쬐그많고 이쁘장한 병아리를 보고 만지고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보송보송한 털하며 귀여운 주둥아리까지. 요놈들이 우리집에 온지 3일째 되는 날.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집밖에 계단에다 놨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놈들이 사라졌다. 라면박스는 이미 뚜껑이 열려버린채로. 바로 고양이짓이었던 것이다. 집 근처에는 도둑고양이가 많았다. 거넘들 중 하나가 우리 이쁜 병아리들을 잡아먹은 것이다. ㅠ_ㅠ 너무해. 하긴 집밖에서 삐약거리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고양이가 어디있을까. 그 뒤로 우리는 병아리를 키우지 않았다.

  <킬러 고양이의 일기>에서는 병아리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고양이는 집안에서 사람들이 기르던 새를 죽였고, 당연히 주인님 가족으로부터 원망을 들어야했다. "아휴 저 녀석이 또 일을 저질렀네" 하지만 고양이는 그게 뭐 잘못된 일이냐고 투덜투덜댄다. 고양이가 나중에 밖에서 죽어있는 쥐를 하나 물고 집안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또 그랬다. "얘야 니가 고양이인건 알겠는데 제발 그런 짓 좀 하지마라" 내가 죽였나 뭐? 내가 안죽였다고요. 난 그냥 밖에 죽어있는 쥐를 물어들어와야될거 같아서 그랬다고요.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입에 쥐를 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이 쥐를 죽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중에 옆집 토끼를 물어왔을 때 난리가 났다. 난 죽어있는 토끼를 물어온건데 내가 또 토끼를 죽였다는 것이다. 주인님은 어떻게이 사실을 숨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죽은 토끼를 목욕시켜서 몰래 한밤중에 옆집 토끼집에 놔두고 왔다. 쿨쿨 자고 있는 포즈로. 난 아무짓도 안했다고요.

  동화는 매우 짧다. 그러나 재미있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 살아가는 고양이의 애환.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고양이의 관점과 사람들의 관점을 비교해보며 읽는 것도 재밌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의 차이. 이 동화는 초등학교 3-4학년 쯤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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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8-0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하고 웃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