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질맨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디 톡스> 라는 영화. '디톡스 건강법'은 몸 밖에서 들어왔거나 몸 안에서 만들어진 유독 물질의 독성을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디톡스는 실질적인 물질로서의 독성성분이 아니라 마음의 독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베스타 스탤론이 분한 FBI 요원 맬로이. 그는 경찰에서 FBI로 승진했다. 어느날 경찰만 골라잡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 사건을 맡게 되고, 지지부진 세월만 흐른 채 성과는 하나도 없다. 단서 조차 남기지 않는 이 잔혹한 살인범. 나의 경찰시절 동료를 죽였다. 그리고는 이혼 한 뒤 만난 애인 메리마저도 드릴로 눈을 후비고, 살해한 뒤 천장에 매달아놨다. 당연히 눈이 뒤집힌 맬로이. 그를 쫓으려 하지만 그는 절대 볼 수 없다.

  "나는 너를 볼 수 있지만, 너는 나를 보지 못한다" 라는 문구를 남겨놓는 살인범. 분명 가까이에 있던 놈인데 누군지는 알 수 없다. 애인을 잃어버리고 자살결심을 하고 손을 그었지만 용케 살아남았다. 보다못한 그의 친구 형사반장 헨드릭스는 그를 디톡스 센터로 보낸다.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서 돌아오라고. 전직 경찰이 지은 디톡스 센터는 과거 군 작전 시설이었고, 군 교도소였으며, 지금은 형사, 경찰들을 받아 치료를 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약 10명 정도. 그외에 센터 소장과 주방장, 정신치료의사, 그녀의 보조 간호사가 전부.



  그런데 어느날 이상하게 자살사고가 잇따라 일어난다. 허리띠와 신발끈까지 압수하고 각자 방에 감금하지만 자살은 또 일어났다. 어찌된 일인지 이상하다. 자살이 아니었던 것이다. 타살이다. 살인이다. 맬로이의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은 과거의 경찰살인사건. 그때의 범행 수법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범인이 센터에 경찰을 가장한 채 들어와있는 것이다. 누군지는 알 수 없다. 밀폐된 공간 속에 서로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이러한 영화적 설정은 식상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경계해야 하는 현실.



  과거 자신의 여자를 잃어버렸던 맬로이. 이곳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번에는 그녀를 잃지 않으려 한다. 거센 폭풍우와 눈보라 속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들어왔던 경찰관들이 하나둘 죽어나가고 범인은 좁혀졌다. 여자를 잃을 수 있는 상황. 그는 범인과 혈투를 벌이고 결국 승리한다. 예고된 승리였지만.

   뻔한 스토리에 뻔한 결말. 식상한 줄거리. 단순 오락용.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때우고자 하는 분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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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8-10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탤론 나오는 영화가 다 그렇죠 뭐. ^^; 저지 드레드였나? 하튼 TV에서 그거 본 이후로 스탤론 나오는 건 안 봐요. ㅎㅎ

마늘빵 2005-08-10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쵸. 스탤론을 비롯한 미국의 근육질맨들이 나오는 영화가 다 그렇죠. 근데 <저지 드레드>는 의미있는 영화였어요. 나름대로. 정의관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panda78 2005-08-1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무리가 .... ㅠ_ㅠ 흙. 그 끝장면의 후까시에 질려버렸어요.
정의관은..다른 영화보고 생각하면 안될까요? ^ㅂ^;

마늘빵 2005-08-10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마다 찬사가 쏟아지는 통에 본래 보려던  생각이 전혀 없던 <웰컴투 동막골>을 안볼 수가 없었다. 집에서 맨날 밥먹고 쇼파에 누워서 케이블 티비를 여기저기 돌리다보면 중간에 광고가 나오는데, <웰컴투 동막골>에 나오는 정재영과 신하균이 영화 광고를 하고, 이어서 '웰컴투 OCN'이라는 케이블 채널 광고가 등장한다. 아주 지겹게 접했다.

  오늘 영화 볼 계획은 없었는데 오후 4시경 내 핸폰을 반짝이는 문자메세지.

 "오빠 머해요?"

 "왜 심심하구나?"

 "아뇨 오빠 심심할까봐"

 "영화보까?"

 "네... 그럼 다른 밴드 사람들한테도 알려주세요"

 "흠..그래" (전체문자 돌린다)

 "아무도 안된대. 야근하고, 약속있고, 늦게 퇴근하고"

 그래서 둘이서 봤다. 대학 신입생과 대학원 신입생 둘이서. 풉.

 대개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주연배우나 시나리오 줄거리, 아니면 감독, 그도 아니면 영화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보고 결정하는데 <웰컴투 동막골>은 무엇하나 이 영화를 선택해야한다 라고 내 머리 속에 심어주는 강력한 요인이 없었다. 감독도 초보고, 시나리오도 별로 땡기지 않고, 주연배우는 그래 좋다. 근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화 예고편을 봐도 그닥 재밌을거 같지 않고, 포스터를 보아하니 뭐 그냥 그렇다. 제목도 이게 뭐냐.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지니 아 그제서야 땡긴 것이다. 보자. 그래. 어떤 영화길래 이런 찬사들이 쏟아지는지.



* 동막골 입구. 마을사람들의 선함을 나타내기라도 한듯 선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인형(?)들.

  '1950년대 지금은 전쟁중'이라는 문구와도 같이 이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때는 6.25 전쟁 당시 어느 산골동네. 북한군과 남한군이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 긴장을 놓치는 순간 전멸한다. 미국과 연합군이 남한을 도와 북한을 쭉쭉 밀고 올라가고 있다. 남한 병사 둘이 탈영을 했고 숲에서 만났다. 전투기 조종사 스미스가 추락하고 어느 산동네에 들어간다. 북한 병사들이 중도에 남한 병사의 습격을 받아 세 사람만 살아남는다. 이들은 모두 전쟁이 터진지도 모르는 산골동네 동막골에서 만난다.

 

  마을 주민들을 가운데 놓고 대치하고 있는 양쪽 진영. 북한군에겐 총알이 없는 총뿐. 남한군은 숫적으로 열세인 상황. 어느 누구 하나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오고, 비가 오고, 햇살이 비춘다. 동네 사람들은 각기 일을 나가고, 세수를 하러 가고, 똥싸러 가고, 평상엔 아무도 없다. 뭐하는거니. 웬 이쁘장하게 생긴 미친년이 북한병사 한놈이 손에 쥐고 있던 수류탄 고리를 땡기고. 헉. 어쩔 줄 몰라하는 5명. 고리 챙겨 달아난 미친년은 좋다고 뛴다. 수류탄은 떨어졌으나 터지지 않았다. 그리고 버렸으나 곳간이 터졌다.



* 미친년 여일. 그녀는 미쳤지만 맑고 순수했다.

  이제 곳간을 채우기 위해 연합해서 호미며 가래며 들고 일나가는 5명의 병사들. 처음엔 서로 공격할까봐 밤잠도 못자더니 나중엔 서로 농담따먹기 하고 형형 하고 부르며 친하게 지낸다. 미군 대위 스미스도 이 마을의 삶에 만족을 느낀다. 허나 지금은 전쟁중. 스미스를 찾으러 온 남쪽 병사들. 빨갱이를 색출하려고 마을주민을 위협한다. 아씨. 격전이 벌어지고 미친년이 죽었다. 그녀를 좋아라했던 북한군 병사. 슬픔에 사로잡히고. 곧 있을 폭격을 막기 위해 나서는 5명의 전사. 그들은 용감했다. 작전은 성공했고, 5명은 모두 전사했다.

    참 가슴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눈물 질질 짤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두운 영화관에서 남모르게 눈물 한방울 뚝 흘릴 정도의 감동. 줄거리만으로 보면 별로 볼 것 없는 진부한 소재이지만,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가슴을 울렸다. 어쩜 이렇게 순박하고 순진하고 깨끗하고 착하고 맑고 투명한 사람들이 있을까. 동막골 사람들은 1950년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이 땅에 잠시나마 평화를 안겨주었다. 서로에게 총뿌리를 겨누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남북한 병사들.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이들에게 웃음을 안겨준 것은 동막골 사람들의 순수함이었다. 자신이 희생되면서까지 서로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이 전해져 남북한 병사들의 화해를 이루었고, 동막골을 겨냥한 폭탄투하를 막기 위해 5명의 병사들은 연합군이 되어 전투기를 막았다. 살기 위해 수많은 동족을 죽이고 견뎌왔던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마을을 살렸다. 더불어 사는 삶은 적군과 아군의 구별을 사라지게 만들어줬고, 스스로를 희생하게 만들었다.

  남한과 북한은 왜 싸우고 있는가? 남한 병사 둘이 동막골에 이르고, 동막골 사람들에게 전쟁이 터졌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렇게 물었다. 왜놈이요? 떼놈이요? 여기에 대고 우리끼리 싸우고 있다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지 망설이는 신하균. 웃음이 나왔다. 동네 사람들의 순박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같은 나라 안에서 같은 동족끼리 싸우고 있는 이 상황이 웃겼다. 저들에겐 그런건 없었다. 무엇을 위해 전쟁을 했던가? 이데올로기? 땅따먹기? 다 쓰잘데기 없는 명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롭고 조화로운 더불어 사는 삶인 것을. 전쟁 통 속의 평화지대 동막골은 그걸 우리에게 알려줬다.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남북한 병사들의 마음 속에 '더불어 사는 삶'을 알려주었다.

  이 영화는 6.25 전쟁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전쟁의 무의미함을 깨닫게 해줌과 동시에 함께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100%의 감동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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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8-1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볼 마음이 없었어요? 당연히 봐야 할 영홥니다. ^^
전, 진작부터 보려고 날짜를 꼽고 있었는데...

마늘빵 2005-08-10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 별로 댕기는 요인이 없어서요. 그러나 오랫만에 감동 먹은 영화였습니다. ^^

연우주 2005-08-10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일 봐요. ^^ 혼자서...^^

마늘빵 2005-08-10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쓸쓸하게 혼자서 보세요. 친구 하나 불러내서 같이 보세요.

연우주 2005-08-1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조로 봤어요. 일단 제가 혼자 영화보는 거 싫어라 안 하구요. 평일 조조에 시간이 될만한 친구도 없어요. ^^

마늘빵 2005-08-1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보고 오셨군요. 일찍 일어나시네요. 아 요새 자꾸만 늦게 일어나구 폐인생활이 몸에 뵈서 큰일 입니다. 에혀.
 

 

 

 

 

  제 2의 <죽은 시인의 사회>라 불리는, <엠퍼러스 클럽>. 이번으로써 두번째 이 영화를 본 것인데, 가끔씩 봐줄 필요가 있는 영화다. 적어도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는 나로서는.

  세인트 베네딕트 고등학교의 역사선생인 훈데르트 선생. 그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과 같은 재치와 악동(?) 기질은 없지만, 점잖은 품행과 도덕적인 인격으로 학생들의 모범이 되는 이상적인 교사상이다.



  로마의 성립과 멸망을 다루고 있는 교실. 아주 개구지다 못해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세드윅 벨이라는 학생이 칠판 앞에 나와있다. 훈데르트 선생은 그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작성하던 도표를 마저 작성하라고 해보고, 못하니깐 로마의 왕 40명을 읊어보라고 하고, 또 여기에 장난으로 맞받아치자, 그에게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명언을 던지며 자존심을 꺾어버린다. 아 문구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내용은 이런거였는데. 지식이 없는 자에게는 지식을 전수해주고, 뭐가 없는 자에게는 뭐를 해주면 되지만, 인격적으로 안된 자에게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라는 식의 내용. 한번의 일격. 그리고 이어지는 확인사살. 훈데르트 선생은 벨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에게 로마의 40대 왕을 연대순으로 읊게 만든다. 20명쯤 외웠을까. 여기서 그만. 그것으로도 벨을 향한 확인사살을 충분했다.





* 왼쪽에서 두번째가 벨, 맨오른쪽이 벨 때문에 대회에 나가지 못한 마틴.

  벨은 상원의원의 아들로, 매우 명민하고, 똑똑하지만 그 좋은 머리로 잔꾀를 부리는 바람에 온갖 말썽을 다 불러오는 학생이다. 타고난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그를 잘 따르며, 그가 한가지 행동을 선동하고 나서면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그를 따라 하게 된다. 그러니 학교에서 문제가 될 밖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학교 물을 다 흐리게 하는 셈이다.

  하지만 훈데르트 선생의 고민은 그가 다른 학생들까지도 물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매우 똑똑한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딴 짓으로 그 잔머리를 쓰는 것이 안타까운데 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시킬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그에게 자신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건네주며, 그 책으로 공부를 해보라고 격려한다. 그리고는 조금씩 변화되는 벨의 모습.

  이 학교에는 줄리어스 시저 대회라는 것이 있는데, 시험성적에 따라 1등부터 3등까지가 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그 중 주관식 문제를 순서대로 맞춰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그 해의 줄리어스 시저가 되는 대회다. 벨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은 이 대회에 목을 매고 매 시험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한다. 마지막 시험. 훈데르트 선생은 벨에게 A- 를 주었다. 그리고 순위표를 보니, 벨이 4위로 대회에는 출전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훈데르트는 그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과 애정으로 그에게 A+ 를 주고, 3위에 있는 마틴을 끌어내린다. 대회날. 학부모들과 교사,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대결이 펼쳐지고, 선생은 벨의 컨닝행위를 눈치챈다. 교장에겐 말했으나 그대로 진행하라는 지시. 할 수 없이 그는 벨의 차례에 어려운 문제를 낸다. 벨은 떨어지고 다른 친구가 대회 우승했다. 대회가 끝난 뒤 대면한 두 사람. 벨은 결과를 위해서는 과정은 중요치 않다는 주의자. 선생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주의.

  훗날. 20년쯤 지난 뒤, 벨은 거대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리조트로 친구들과 선생을 초대 재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이때에도 그는 대학원생을 고용해 이어폰으로 정답을 받아내고 선생은 또 눈치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가 알지 못하는 문제를 내서 대회 우승을 막는다. 화장실에서 대면한 두 사람. 20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주고 받는데, 화장실 대변칸에서 나온 벨의 아들이 이 대화를 들었다. 당황한 벨.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기질을 가지고 상원의원에 도전한다.

 

  이 영화  한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1. 교실에서 벌어진 학생의 장난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영화에서 훈데르트 선생은 벨이 머리는 좋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지식으로 망신을 주는 방법을 택했고, 먹혀들었다. 이 장면을 볼 때 떠오른 생각은, 학생들 마다의 각각의 특성을 기억하고 있다가 거기에 맞게 일대일로 대응해야한다는 것이다. 사실 말은 쉬운데 이게 굉장히 힘들다. 교단에 서본지 얼마 안되는 나는 영화 속과 같은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나와 말장난을 치려고 할 때를 경험했는데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같이 놀아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내 맘은 이 상황을 빨리 수습하고 수업을 해야하는데 였다. 앞으로 교실에서 참 다양한 유형의 학생들을 접하게 될텐데 매트릭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머리좋고 공부 안하는 학생은 지식으로 망신을 주고,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안하고 인격적으로 문제도 있는 아이는 어떻게 다루고 하는 방식들을 세워야겠다.

2.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것인가?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 어떻게 흥미를 유발 할 수 있을까? 또 관심은 있는데 노력해도 별로 발전하지 않는 학생을 어떻게 이끌어줄 것인가? 사실 이 문제 많이 느끼고 있고, 고민도 하는데, 방법은 찾지 못했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데 내가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 대해 자질의 회의감을 가진적도 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참 미안하다. 영화 속에서는 다행히 벨을 제외하고는 다른 학생들은 알아서 각자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특별히 문제가 되거나 흥미를 이끌어줘야 할 만한 학생은 없었다. 물론 영화가 벨과 훈데르트 선생 두 사람을 촛점으로 삼았기 때문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3.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은 어찌할 것인가?

  세드윅 벨은 교실에서도, 20년이 지나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도, 인격적 결함을 보여줬다. 성공한 대기업의 사장이고,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줄리어스 시저 재대결에서조차도 컨닝을 했다. 그리고 20년뒤 그를 찾은 선생님에게 또다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인격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훈데르트 선생은 그에게 공부에 대한 열기를 불어넣어줬고, 결국 편법을 쓰면서까지 줄리어스 시저 대회에 올라갈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이었다면 훈데르트 선생처럼 개인적인 욕심을 부려 신경써줬을테지만,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학생인 경우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공부에 대한 흥미나 열정이 필요한게 아니라 인간됨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훈데르트는 공부를 통해서 그가 좀 변하길 바랬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교육관은 그렇다. 인격적으로 안된 놈은 공부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학생일 때에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학생이 그대로 사회로 나아갔을 경우에 문제는 커진다. 머리 똑똑하지만 잔머리쓰고 인격적으로 안된 놈은 밖에 나가서 분명 큰 일을 저지른다. 그가 비록 겉으로 성공한 사업가나 의사, 변호사, 판사 등과 같은 사회지도층에 위치해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내면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인간이 사회지도층에 위치해있을 때 우리사회는 더욱 암울하다. 조금 공부를 못했지만 인격적으로 된 놈이 그를 바라보면서 느낄 자존심의 상처 혹은 상실감은 어떨것이며, 또 그런 놈이 지도자로 있는 사회가 돌아가는 논리는 어떻겠는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미성년자를 벗어나기 전에 수정불가능한 존재로 인식되는 학생이라면 난 그가 사회지도층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오히려 막겠다. 방해하겠다. 중도에 그를 변화시키지 못한 부모와 선생과 사회의 잘못도 있지만.

 

 두번째 같은 영화를 봤지만 내게 주어진 상황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다. 지난번엔 교사의 입장에서 보기보다는 그냥 감동적인 휴먼드라마 정도로만 봤고, 이번에는 교사의 입장에서 교사-학생의 관계에 중점을 두어 봤다. 같은 영화도 어느 시기에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를 다음에 또 볼 생각이 있다.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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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8-0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것인가' - 정말 현실적 문제입니다. 억지로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마늘빵 2005-08-0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항상 고민입니다. 저는 말빨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는 놈이라, 그런거 영 소질이 없거든요. 어린 학생들일수록 그런게 중요한데... 영 젬병입니다.

이리스 2005-08-1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영화 꼭 봐야겠습니다. ^^;

마늘빵 2005-08-1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이거 정말 재밌습니다. 감동도 있고. 근데 배신도 있죠. 저 학생이 다 커서까지도 끝까지 샘을 배신하는 바람에, 샘의 얼굴에 표정이... ㅠ_ㅠ
 
희망의 이유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3년 11월
구판절판


"우리는 언어를 가지고 우리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다른 생명체는 할 수 없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고도로 발전된 지성을 가졌다는 것은, 확실히 인간 종 -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지 안믿는지와는 상관없이 - 의 생각 없는 행동에 의해 그 존재의 지속이 위협받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우리에게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134쪽

"문화적 종분화는 분명히 세계 평화의 장벽이다. 우리가 '지구촌'보다 더 작은 집단을 중요시하는 한, 편견과 무지를 계속해서 키워나가게 될 것이다. 조그마한 집단의 부분이 되는 것은 아무런 해악도 없다. 실제로 수렵 채집 집단적 성향으로 인해 작은 집단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또한 완전히 믿을 수 있고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내부의 친구 집단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해준다. 위험은 오직 우리 집단과 달리 생각하는 다른 어떤 집단 사이에 날카로운 선을 긋고, 도랑을 파고, 지뢰밭을 만듦으로써 생긴다."-176쪽

"어떤 면에서 인간의 공격적 행위는 실로 독특하다. 침팬지들도 희생자에게 주는 고통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깨닫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인간적인 의미의 잔인성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오직 인간들만이 자기가 가하는 고통을 알면서도 혹은 심지어 알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물에게 의도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준다. 따라서 나는 오직 우리 인간만이 악마가 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177쪽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278쪽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순히 기도만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 자신을 투신할 것이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도 주변 생명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슈바이처)-311쪽

"모든 개인은 중요하다. 모든 개인은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 모든 개인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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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8-0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게 읽은 책인데...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늘 이렇다니까요~
아프락사스님께서.. 밑줄 그은 부분을 따라...
기억을 좀 더듬다 갑니다. 제가 저 책을 읽을 당시... 복순이라는 강아지녀석에게 폭 빠져 있었기 때문에 더 절절했었지요~

2005-08-09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5-08-0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저도 읽은 책 무슨내용인지 말해보라면 나중엔 모릅니다. ㅋㅋ 붕어인가봐요. 그래서 이런걸 남겨두죠. 나중에 기억해보려고.

이리스 2005-08-22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붕어... 붕어... 부웅어어어어.... (충격!)
여러분, 아프락사스님은 붕어래요~ 붕어래요~
ㅋㅋ

마늘빵 2005-08-2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두님 / ㅡㅡ^ 뻐끔뻐끔
 

 

 

 

 

  얘도 포스터가 유치하네? 99년 포스터인데 무슨 007시리즈를 떠올린다. 불과 6년전의 영화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건가? 요즘 포스터들은 다 멋있는데. 우리나라 영화만 봐도 영화가 대박터지기 시작하면서 신경을 써서 그런건지 포스터가 다 이쁘다. 한번은 어느 영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 나비효과였나? - 외국영화를 우리나라에서 홍보를 하는데 포스터를 새로 제작했나보더라. 그런데 이 포스터가 맘에 든다고 외국에서 다시 사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두 유명 도둑의 이야기. 늙었지만 분위기 있는 남자 숀코너리와 이쁘고 날씬한 여자 도둑 캐서린 제타 존스. 얼마전에 캐서린 제타 존스가 나왔던 <마스크 오브 조로>를 보고서 그녀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했었는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금방 또 보게 될 줄이야. 금방 개봉한 것도 아니고 한참 전의 것을. 요새 케이블에서 뭐 그런 시리즈 하나? 캐서린 제타 존스 다시 보기. 뭐 이런거. 참 아까 지나가는 자막을 보니깐 삼순이 때문에 유행을 타서 그런가본데, 영화속의 '삼순이'찾기 기획을 하나보더라. 지금껏 개봉되었던 영화들 중에서 삼순이스러운(?) 여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들만 따로 모아서 방영하는 거다. 이렇게 시리즈물로 묶어서 보면 또다른 재미가 있을텐데. 뭐 그렇다고 티비 앞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만을 골라서 훔쳐내는 두 도둑놈년들. 서로 각자 딴 맘으로 접근하게 되지만, 두 남녀가 만났으니 - 비록 남자가 늙기는 했지만 - 어찌 러브스토리가 없을 수 있더냐. 본래 계획은 마음 속에 숨겨두고 둘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빠지게 된다. 함께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작업을 성공해내고, 또다시 국제은행에서 80억달러를 인출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원래 '앤트랩먼트'라는 제목의 뜻은, 함정에 빠지게 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래 두 남녀가 서로를 함정에 빠지게 하려던 것을 일컫는 말. 나중엔 두 남녀가 짜고 다른 놈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함께 떠나버리지만.

  이 영화를 보는 재미 하나는 고가의 예술품을 털기 위해 삼엄한 경비와 보안시스템을 헤쳐나가는 이들의 묘기를 보는 것. 영화 처음부분에 캐서린 제타 존스가 몸에 짝 달라붙는 옷을 입고 숀 코너리의 지시에 따라 적외선(?) 망을 부드럽게 피해가는 장면. 뚱뚱한 여자는 도둑질도 못하냐? 라는 소리도 나올 법 하다. 크크. 묘기와 더불어 그녀의 S곡선을 감상하는 재미도. (퍽)

  영화를 보는 두번째 재미. 숀 코너리다. 그는 정말 하는 영화마다 어쩜 그렇게 다 멋있는 역할만 따내는건지. 내가 나중에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지나 늙어 쭈글쭈글 할아버지가 되면 숀 코너리같이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쩜 저렇게 멋있게 늙을 수 있는거야. 그러기 위해선 여기저기 돈 투자를 많이 해야겠지만... 뭐 숀 코너리는 지방흡입이나 아니면 하다못해 보톡스 수술도 안해봤겠어? <파인딩 포레스트>에서의 늙고 분위기 있는 은둔형 작가, <더 록>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메이슨, <카멜롯의 전설> 이나 <의적 로민 후드>와 같은 영화에서의 중후하고 정의로운 사내 등등 이 사람은 내내 멋쟁이만 도맡는다. 관객들이 배우에 대해 갖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영화를 통해 만들어지듯이 그의 실제 모습과는 달리 내가 그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숀 코너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난 그렇담 숀 코너리의 환상을 쫓아 늙고 싶다우.

  오래전에 봤던 영화였지만 다시 봐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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