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구판절판


"누가 우리한테 사랑을 보여주면 우리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의 존재에 주목하고,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우리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고, 약점이 있어도 관대하게 받아주고, 요구가 있으면 들어주기 때문이다."-16쪽

"이 세상에서 힘들게 노력을 하고 부산을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탐욕과 야망을 품고, 부를 추구하고, 권력과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생활필수품을 얻으려는 것인가? 그것이라면 노동자의 최저 임금으로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 삶의 위대한 목적이라고 하는 이른바 삶의 조건의 개선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애덤스미스 <도덕감정론>)

다른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8쪽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 눈길을 피하거나 직업을 밝혔을 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21쪽

"질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커다란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근접 상태다. 일반 병사는 상사나 상병에게 느끼는 것과 비교하면 장군에게는 질투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뛰어난 작가 역시 평범한 삼류작가보다는 자신에게 좀 더 접근한 작가들로부터 질투를 더 받는다. 불균형이 심하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며, 그 결과 우리에게서 먼 것과 우리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거나 그런 비교의 결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데이비드 흄 <인성론>)-59쪽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실패가 없으면 수모도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 자존심은 전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되도록 또 무슨 일을 하도록 스스로를 밀어붙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실제 성취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제임스)-71쪽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쇼펜하우어)-165쪽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쇼펜하우어)-168쪽

"나의 실패를 다른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가혹하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일에서 실패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실패의 물질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세상이 실패를 바라보는 냉정한 태도, 실패한 사람을 '패배자'로 지목하는 집요한 경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패배자'라는 말은 졌다는 의미와 더불어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냉혹한 말이다."-202쪽

"보헤미아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다."
(랜섬 <런던의 보헤미아>)-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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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반양장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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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들이 격찬을 하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명저라고 손꼽히는, 피천득의 <인연>. 이걸 왜 이제서야 읽었나 싶은 생각도 있지만 내가 이걸 왜 봤을까 하는 후회 내지는 실망감 또한 없지 않다. 조개 속에 진주 알을 품고 있는 하이얀 표지. 티비 드라마나 영화,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봤다. 너무 흔하게 등장하고, 흔하게 소개되는 책이라 마치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지만, 난 안읽었음을 다시금 깨닫고 구입해봤다. 사실 개인적인 관심이라기보다 선물용으로 어떨까 싶어서 먼저 내가 읽어보고 괜찮으면 선물하려고 했던 건데 별로였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칭찬을 해대는건지. 우리나라 수필의 교과서네 어쩌네 하는데 글쎄 문장력 때문인가.

 소설보다 난 이런 수필류를 더 좋아하는데 <인연>은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 수필은 아니다. 옛날분께서 일기처럼 쓰신 글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모두 지극히 '개인용'이다. 물론 글이 나쁘지는 않다. 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깊이있게 쓰여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나 하나의 상품으로 되어 독자들의 손에 들어온 텍스트가 독자에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전달해주지 못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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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10-2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안읽었는데... 제 생각엔 말이죠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때라면 그래도 좀 와닿지 않을까요?
-제가 원래 피씨어요. 피민. 그래서 피천득을 옹호하는 건 아니어요-

BRINY 2005-10-29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코의 연두색 우산은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사춘기의 '특별한 기억' 아닐까요? 왜 몇년전에 아사코의 모델을 찾아 TV방송이 미국까지 날아갔었잖아요.

마늘빵 2005-10-30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 ^^ 흠 어쩜 제가 지하철 오가면서 읽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어요. 진득하니 책상에 불켜놓고 읽은게 아니라. 흠.
브라이니님/ ^^ 아 전 처음 듣는 야기라서요. 그런 일도 있었군요. 다들 피천득의 수필을 좋아하시나봐요. 난 왜 이렇지? ㅡㅡa ㅋ

빛뜨란 2005-12-2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을 읽은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모두들 좋다고 하죠.
그래서 덩달아 저도 사람들의 평을 좇아 남이 물어보면 좋다고 말하면서도 뭔가 답답했어요. 아프락사스님의 평을 보니 뭔지 모르겠지만 머릿속을 뭔가가 치고들어오는 느낌..?ㅋㅋ
 
두 글자의 철학 - 혼합의 시대를 즐기는 인간의 조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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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석.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우리나라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요 몇년 사이에 관심을 갖게 된 대표적인 철학자로 김용석과 탁석산을 들 수 있는데, 탁석산 선생님의 경우에는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미니 문고판 책으로 단번에 스타 철학자로 우뚝 선 반면, 김용석씨(선생님이란 칭호는 나에게 오프라인을 통해 가르침을 준 분이기에 사용했고, '씨'는 오로지 책을 통해서만 안 분이기에 구별해 사용했다)의 경우에는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실제로 대중들에게 알려져있기로도 대중에게 다가서는 탁석산 선생님의 접근 방식과 김용석 씨의 접근 방식은 엄연히 다르다. 두 분 모두 강단철학이 아닌 대중적인 철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탁석산 선생님의 경우에는 무게있는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반면, 김용석 씨의 경우에는 가벼운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철학자 김용석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지금은 절판된 <서양과 동양이 만나 127일간 이메일을 주고 받다>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에서 그는 서양철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승환 교수는 중국철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 대화가 대담집의 형식을 빌어 나온 것이었다. 일방적인 강의보다 대담 형식의 책은 같은 주제를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의 시각을 엿볼 수 있어 더 폭넓은 사고를 장려한다. 이 책을 통해 김용석씨의 사유가 마음에 와 닿았고, 이후 그의 저서를 곁눈질 하고 있었으나 <일상의 발견> 이외에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그리고 세번째 그와 만난 것이 바로 이 책, <두 글자의 철학>이다. 책이 소개되면 그 책의 내용과 불문하고 바로 구입해버리는 작가가 나에게는 몇 있다. 김용석씨가 그렇고, 앞서 언급한 탁석산 선생님이 그렇고, 스위스의 젊은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그렇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저서가 최근 번역되자마자 바로 '질러버렸다'.

  <두 글자의 철학>은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들을 주제로 삼아 저자의 생각을 풀어내는 철학에세이이다. 저자는 크게 1부 인간의 조건, 2부 감정의 발견, 3부 관계의 현실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의 범주안에 두 글자로 된 작은 제목들을 품고 있다. 생명, 자유, 유혹, 고통, 희망, 행운, 안전, 낭만, 향수, 시기, 질투, 모욕, 복수, 후회, 행복, 순수, 관계, 이해, 비판, 존경, 책임, 용기, 겸허, 체념 등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주제를 다룬다고 하여 결코 글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주제 하나를 다루더라도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평상시에 가지고 있던 깊이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쓰여졌고, 우리가 뻔히 다 아는 주제이고 여기서 더 무엇이 나올까 싶은 주제들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 자신이 생각한 것 등을 바탕으로 폭넓고 깊이있는 시각을 전달해준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좋다.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소재를 다루지만 거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을 물어 들어가 사색의 향연을 펼쳐준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흠뻑 젖은채 즐긴다.

  책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명언이 나오지만, 그는 명언에 의존하지 않는다. 명언은 단지 그의 글을 보조해줄 뿐이고, 정말 알짜배기는 그만의 순수한 사유이다. '용기'와 '소신' 에서 보여준 그의 이런 사유들은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이 자기 생각을 만들어갈 때 중요한 것은 결론 이상으로 과정이다. 더구나 어떠한 입장에 대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지속적인 반성과 성찰을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위험하다. 진짜 소신을 중요시하는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과 믿어오던 것을 수정할 줄 안다. 소신을 내세우고 지키며 굽히지 않는 것 이상으로 소신을 관리할 줄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성실한 관찰, 치밀한 사고, 다른 사람과의 지속적인 대화, 포용적인 세계관 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실수와 오류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소신은 강자앞에서 지키는 것이지 약자 앞에서 내세우며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신이 그야말로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약자의 소신에 문을 열줄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소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신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부각되도록 하며, 그것이 지켜지도록 배려한다. 이것이 소신있는 사람의 겸허함이다."

"모든 일에 총명하게 대처하고 매사에 정의롭게 행동하며, 용기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의 에너지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의 자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이때 필요한 것이 겸허의 자세이다. 즉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쓰던 에너지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로 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에너지 사용을 적절히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겸허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겸허는 자신의 능력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무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능력대로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허는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다른 사람 앞에서 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인 관계의 덕목이지만, 각 개인의 차원에서는 결국 자기 조절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자아 찾기의 덕목인 것이다."

  이로써 나는 책을 통해 그와 세번째 만남을 경험했고, 그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을 조만간 탐독하겠노라 다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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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3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관심도 그렇지만...지은이에 대한 관심까지 만드는 리뷰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마늘빵 2005-10-3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지은이 이야기를 더 많이 한거 같아요. 쓰고보니. ^^ 좋은 책입니다. 읽기도 쉽고.

Common 2006-02-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아프락사스님 리뷰 보고 이 책 샀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두 글자의 철학 - 혼합의 시대를 즐기는 인간의 조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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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식과 실천의 괴리는 우리의 삶을 부식하는 바이러스다. 실천없는 윤리 의식은 삶을 비극적으로 만들고, 윤리 의식 없는 행동은 삶을 희극적으로 만든다."-15쪽

"우리는 생명의 정의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에밀리 디킨슨)-23쪽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의 손실이다. 나는 인간사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묻지 말라.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린다."(존 던)-45쪽

"생명체는 스스로 살려고 애쓰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살아있는 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초월하려는 내적인 경향을 갖는데, 언급했듯이 한스 요나스는 이것을 자유라고 파악한다. 즉 생명을 움직이는 동인과 원리가 자유라는 것이다. 가장 원시적인 수준의 아메바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가 지닌 존재양태이자 생명의 원리가 자유라는 것이다."-49쪽

"모든 사람은 죽으면서 뭔가를 잃는다. 다만 노예와 자유인은 잃는 것이 다를 뿐이다. 자유인은 죽음으로써 삶의 쾌락을 잃지만, 노예는 죽음과 함께 삶의 고통을 잃는다."(영화 <스팔타커스>의 대사)-52쪽

"그대는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한 것이다. 그대는 행복한가. 그렇다 해도 나는 그대가 자유로운지 아닌지 모르겠다."
자유로우면 행복은 따라온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해서 반드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유를 지향해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논리적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다. 자유의 일차적 정의는 분명하지만, 행복의 일차적 정의는 뭐라고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57쪽

"유혹의 본질은 상호 욕망의 실현에 있다. 유혹한다는 것은 상대의 욕망을 건드리는 것이다. 동시에 유혹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과정은 곧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 향유'의 유혹 행위가 성립하는 것이다." -67쪽

"모든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유혹자가 있다. 행복이란 바로 그를 만나는 것이다."(키에르케고르)

인간관계가 점점 더 계산적으로 되어가는 시대에, 유혹이 정복하고 차지하는 기술과 전략이 아니라, 생명의 기운을 유지하고 즐겁게 살기 위한 근본 조건이자 삶의 지혜라는 인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보는 것이 유혹의 원초적 의미를 되살리는 길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혹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되고, 유혹 당하기는 단순하게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유혹을 받아주는' 지혜를 발휘하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행위가 된다. 결국 유혹은 즐거운 인간관계 맺기의 한 방식이 되는 것이다.-68쪽

"삶의 고통들이 번갈아 찾아오기 때문에 인생이 그래도 참고 살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헵벨)-75쪽

"고통받는 자는 구원을 갈구한다. 언젠가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것을 희망한다. 고통은 역설적으로 희망의 동기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없을 수 없는 세상에서도 삶은 지속되는지 모른다.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고통을 줄이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지도 모른다." -76쪽

"고통은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없이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아니 적어도 그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괴로워한다."(카사노바)-76쪽

"모욕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상대를 사회에서 배제시켜 모멸감의 정도를 상승시키고 결국 모욕을 완성하는 것이다. 당한 사람이 심하게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배제의 효과' 때문이다. 또한 배제된다는 것은 결국 모욕에 반박할 기회조차 순식간에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욕을 가한 사람은 '사회'안에 있고, 모욕을 당한 사람은 그 밖에 있기 때문이다."-155쪽

"면박은 둘이 마주 대면해서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마음에 준비도 안되어 있는 상대를 불현듯 꾸짖거나, 심한 말로 상대의 말을 막아버리는 일종의 기습 공격의 성격을 띤다. 면박 받은 상대는 금방 무안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순간적으로 공격을 받아 위축되지만 속으로는 받은 상처 때문에 분을 삭이지 못한다."-158쪽

"웃음은 무엇보다도 교정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모욕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웃음은 그 웃음의 대상에게 고통스러운 느낌을 불러일으켜야한다."(베르그송)

"바로 이런 이유로 사회는 사회 구성원 각자에게 교정을 하라는 위협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창피함에 대한 예측이 떠나지 않도록 한다. 웃음의 기능이란 틀림없이 이와 같은 것이다. 그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언제나 약간의 모욕이 되는 웃음은 실제로 일종의 사회적인 골탕 먹이기인 것이다." (베르그송)-160쪽

"용서는 우리가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용서는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준다."(달라이 라마)-172쪽

"복수심은 인간에게 기꺼이 주어진 것이라서, 사람들은 복수의 기회를 갖기 위해 모욕당하기를 바라기조차 한다. 그것은 철천지원수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그와 평소에 무관한 사람이거나, 심술이 가득 밴 농을 주고 받을 때는 심지어 절친한 친구에게조차 그런 묘한 감정을 갖는 것이다."(레오파르디)-173쪽

"그(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사랑하는 남녀는 그 순간 자신들의 의지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자연의 의지 또는 '세계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남녀의 사랑이라는 현상도 세계의 의지가 표상된 것일 뿐이다."-221쪽

"인간이 자기 생각을 만들어갈 때 중요한 것은 결론 이상으로 과정이다. 더구나 어떠한 입장에 대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지속적인 반성과 성찰을 전제로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위험하다. 진짜 소신을 중요시하는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과 믿어오던 것을 수정할 줄 안다. 소신을 내세우고 지키며 굽히지 않는 것 이상으로 소신을 관리할 줄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성실한 관찰, 치밀한 사고, 다른 사람과의 지속적인 대화, 포용적인 세계관 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실수와 오류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소신은 강자앞에서 지키는 것이지 약자 앞에서 내세우며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신이 그야말로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약자의 소신에 문을 열줄 알아야 한다. 진정으로 소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신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부각되도록 하며, 그것이 지켜지도록 배려한다. 이것이 소신있는 사람의 겸허함이다." -264쪽

"모든 일에 총명하게 대처하고 매사에 정의롭게 행동하며, 용기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의 에너지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의 자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이때 필요한 것이 겸허의 자세이다. 즉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쓰던 에너지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로 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에너지 사용을 적절히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겸허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겸허는 자신의 능력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무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능력대로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허는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다른 사람 앞에서 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인 관계의 덕목이지만, 각 개인의 차원에서는 결국 자기 조절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자아 찾기의 덕목인 것이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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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10-27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마늘빵 2005-10-28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금방 아시네요? 221쪽의 문구 말씀하시는거죠?

코마개 2005-10-2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나요? 저자를 좋아하는데 넘 어려우면 지겨워서 못볼테니 난이도가어느정도인지..

마늘빵 2005-10-2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 그냥 철학에세이라고 보시면 될듯. 저도 김용석씨 좋아해요. 일상에 밀착한 철학을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

이리스 2005-10-28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술집도 있어요. ^^;; 그 주인도 참.. ㅎㅎ

마늘빵 2005-10-28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별로 장사 안될거 같은데 술집 이름 치고는 참... ㅋ 어디에 있나요? 막걸리집??

이리스 2005-10-2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대입구역 부근에 있어요. 흐흐.. 지금도 만일 있다면요.
막걸리집이던가? 여하튼 복합적인 술집이었던듯.
 
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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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까미 하루끼. 대단히 유명한 작가이고, 나도 그의 유명세에 힘입어 몇몇 작품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작가길래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을 하는거야?! 라는 궁금증으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읽은 작품이 <상실의 시대> 와 <해변의 카프카>. 두 작품 모두 괜찮은 느낌을 주었고, 하루끼는 뭐 대단하게 끌리는 작가는 아니지만 참 글을 재미나게 쓴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 2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데뷔 25주년 기념 작품을 내놓았단다. 굳이 사서 읽고픈 마음은 없었고, 아는 넘이 <어둠의 저편>을 읽고 있길래 빌려보았다.


<상실의 시대>와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괜찮은 느낌으로 당연히 이번 작품에도 기대를 하게 되었지만 결과는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뿐. 전작에서 볼 수 있는 긴박감이나 독자를 빨아들이는 힘은 찾아볼 수 없고, 지루한 스토리 진행과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 전개가 지속된다.


 "독자는 작가의 손에서 떠난 작품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되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해본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 이미 그의 것이 아니게 된다 라는 한 철학자의 해석학적 입장도 있듯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텍스트는 그 텍스트를 읽고 있는 각각의 독자들의 시각에서 다시 태어난다. 각각의 독자들은 각자 자신이 받은 다양한 감명을 토대로 작품을 쓴 작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또다른 작품이 세상에 내던져질 때 전작에 대한 기대를 품고 망설임없이 돈을 투자한다. 하루끼의 유명세는 분명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고, 그의 수많은 독자들은 전작에서 그가 뿜어낸 향기를 다시 찾아오게 된다. 나 역시 그 수많은 독자 중의 한명이었고, 내가 읽은 그의 작품에서 나는분명 다른 이들과 또다른 감명을 받았겠지만, 어쨌든 공통된 사실은 "내가 감명받았다" 는 것. 하지만 작가는 나를 배신했다. 엄밀히 그것을 '배신'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배신이었다.

 

 댄스를 하던 가수가 장르를 바꿔 록을 할 수도 있는 거고, 정통락을 추구하던 록밴드가 하이브리드 핌프락을 추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취향은 바뀔 수 있고, 같은 것을 추구하더라도 표현방식이 늘상 같은 수는 없다. 젊어서의 하루끼는 이미 지금의 늙은 하루끼가 아니요, 그의 초기작들에서 보여지는 그런 냄새들이 지금에 와서 드러나지 않는다 하여 그를 탓할 수는 없을터. 되려 변화하지 않는 작가가 더 이상할 터이다. 변화는 늘상 일어날 수 있고, 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하루끼의 <어둠의 저편>이 기존작들과 차이를 보인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비난할 것은 못되지만 나는 '개인적인' 실망감을 가졌음을 표하고 싶을 뿐이다. 나 뿐 아니라 그의 기존의 많은 팬들이 그런 배신감을 적잖히 느끼고 있고, 그것은 그들 독자에게 각각의 배신감을 안겨준 것이지만, 그는 이번 작품으로 또다른 새로운 독자와 조우할지도 모르는 사실.

 

  하지만 난 또 그의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전과 같은 기대를 품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실망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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