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이런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정말 유쾌하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다. 이런 영화 원츄. 지금껏 내가 봤던 독일 영화 - 독일 영화 본 거 얼마 안되지만 - 중에서 최고로 손꼽을 수 있는, 뿐만 아니라 내가 봤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에서도 최고로 뽑을 수 있는 그런 영화였다. 정말 보길 잘 했다는 생각.

  저 우스꽝스러운 포스터는 영화를 보기 전보다 본 후에 더 웃음을 유발한다. 원작 Der Fischer und seine Frau. 물고기맨(낚시꾼?)과 그의 아내. 원작 제목보다 한국어 제목이 더 낫지 싶다. 원작 제목이었다면 아마도 보지 않았을 수도. 연인끼리 함께 가서 본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 지금 사귀고 있는 이 남자의 유통기한을 한번 살펴볼까. 어디에도 써있지 않지만 추측은 가능하잖아. 왜 이 영화에 이런 한국어 제목을 붙였는지는 이 역시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 끄덕끄덕하게 될 것이다.



* 이 여자.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고픈 마음, 더 넓고 더 좋은 집을 원하는 마음. 하지만 그녀도 그를 사랑한다고. 다 그를 위한 거라고. 우리와 가정을 위한 거라고. 트로피를 손에 쥐고 돌아왔지만 그녀의 눈은 젖어있다.



* 이 남자. 물고기와 뽀뽀까지 할 정도로 물고기를 사랑하는 이 남자. 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자 하는 그런 물질에 대한 열망은 없다.

  우연과 인연 그리고 운명. 인생은 우연히 찾아온 인연으로 좌우된다. 그것은 나의 운명적 사랑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일본을 여행하던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 이다와 물고기맨 오토와 그의 친구 레오. 이다와 오토는 순식간에 첫눈에 반해버리고 손잡고 키스도 하기전에 결혼식을 올리고는, 텐트에서 첫날밤을 보낸다. 아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이것이 바로 운명적 사랑이고나. 두 사람에겐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서로의 사랑 이외에는.

  카메라는 이제 독일 뮌헨으로 이동, 오토는 캠핑카를 끌고 다니며 왕진하러 다니고 동시에 캠핑카는 신혼방이 되어버렸다. 이다는 이곳에서 비단잉어 문양의 목도리를 짜 인정받고, 한창 일을 해야할 때, 성공의 기회가 다가왔을 때 덜컥 임신해버렸다. 일이냐 아이냐. 둘 다 잡기 위해서 결국 오토는 해마가 되어버렸다(영화를 봐야 이해할 수 있음). 결국 이다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호화로운 집에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누리지만, 이상하게도 오토는 불행하다. 게다가 이다에겐 오토의 친구 레오가 접근하고, 오토에겐 레오의 동료 요코가 접근한다. 아 어디로 갈 것인가. 까닥하면 두 사람은 헤어지게 생겼으니.

-  하나. 영화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성공을 향한 여자의 열정과 야망이라곤 가진 것 없는 남자. 언제까지 텐트에, 캠핑카에 만족하며 살거야. 이제 우리도 아이가 있다고. 좀더 세탁기가 필요해, 좀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 카펫과 호화로운 부엌이 필요해, 가정부가 필요해, 정원과 테라스가 필요해. 나는 디자이너로 성공할거야. 꼭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어 인정받고 말거야. 반면, 남자는, 제발 우리에겐 아무 것도 필요 없어, 서로의 사랑만 있으면 돼, 텐트도 캠핑카도 좋아, 맛있고 비싼 음식 못 먹으면 어때, 좋은 옷 못 입고, 좋은 차 못가지면 어때, 그런거 다 필요 없어, 난 당신만 있으면 돼. 서로가 바라보는 미래는 너무나 다르다. 성공을 향한 야망과 지금의 행복을 향한 간절함.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 할 순 없다. 단지 두 사람이 바라는 바가 다를 뿐. 그 누가 행복하지 않길 원하겠는가 여자도 행복하고 싶다, 그 누가 더 넓은 집을 원하지 않겠는가 남자도 원한다. 무엇이 우선인가의 문제다. 난 당신이 우선이야, 우리의 행복이 우선이야.

  용케도 두 사람은 위기의 순간을 잘 헤쳐나갔다.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사랑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사실 그렇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고 사랑은 변함 없는데 어떻게 문제가 생길까. 의아하다. 그러나 문제는 생긴다. 어떻게든. 그래서 안타깝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려하고, 그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려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문제는 생긴다. 아무리 사이 좋은 연인이라 할지라도 싸우지 않고는 함께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는 듯 하다. 싸운다는 것은 결국 사랑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 둘. 유혹을 이겨내라. 사랑해서 결혼했고 살아가면서 단 한번도 유혹의 순간이 오지 않을 수는 없을 터.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유혹의 순간은 있다. 유혹은 언제나 그렇지만 매우 달콤하고 쉽다. 그저 한번 뿐인걸. 한번 빠져든 것 뿐인걸 그게 뭐 대수야. 하지만 아니다. 한번의 유혹은 점점 더 쉽게 나를 유혹의 늪으로 끌고 간다. 한번, 두번, 세번, 숫자가 늘어날수록 나는 헤어나올 수 없다. 여자에게 남자가 접근했고 남자에게 여자가 접근했지만, 또 서로가 눈치채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더 쉬웠지만, 이겨냈다. 그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나에겐 그이 뿐인데,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난 그녀 없이는 못살아.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면 더 큰 사랑이 오리라. 한때 싸웠다고, 한때 틀어졌다고, 한때 소원했다고 상대의 사랑을 의심치말리라. 그녀도, 그도 나를 사랑하고 있나니.

   내 여자 혹은 내 남자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유통기한을 늘리는 법. 첫째,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할 것, 둘째, 상대를 외롭게 두지 말 것, 셋째,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 것, 넷째, 그 혹은 그녀의 사랑을 의심치 말 것. 다섯째, 그 혹은 그녀를 끔찍히 사랑할 것. 그렇담 당신의 여자, 당신의 남자의 유통기한은 '평.생.' 입니다. 펴엉생. 우연은 인연으로, 인연은 운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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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7-1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씨네큐브에서 봤는데. 아직 할거에요. ^^

이리스 2006-07-14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여성영화제에서 예전에 봤오. ^^
감독에 대해 좀 실망했고, 뭐랄까 자학하는데 몰두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

마늘빵 2006-07-1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참 재밌던데. 물고기 대화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게 재밌게 꾸몄고. 독일 영화 중에 젤 재밌었던 영화. <굿바이레닌>과 함께.

이리스 2006-07-15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니핑크에 워낙 열광했던지라.. 김빠지고 쉰 콜라 같았달까.. -_-;;

마늘빵 2006-07-15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파니핑크는 아직 못본지라. 음 그것두 보고 싶네 다들 극찬하니.
 

  "밤 9시 56분 이후에 불을 끄지마세요."
 
  정말 웃겼다. 동네 주민 붙잡고, 또는 아파트 현관문 딩동 누르고 나온 집주인에게 대뜸 저렇게 말을 하는 한 여자. 미친거 아니야, 라는 반응이 당연하다. 누군가 지금 당장 우리집 현관문을 딩동 누르고 밤 9시 56분 이후에 불을 끄지마세요, 라고 한다면, 당연히 미친여자로 간주할  수 밖에. 혹 얼굴이 이쁘면 몰라 =333 그러고 보니 고소영 정도면 이쁘지. 믿어줄까? 알았어요 불 안끌게요.

  강풀의 만화 <아파트>를 토대로 만든 공포영화다. 지금까지 어떤 공포영화도 만화를 원작으로 하진 않았다. 만화가 공포영화가 될 수 있다니. 강풀이라는 만화가는 들어봤지만, 워낙 만화를 안보는 인간이라 당연히 그런 만화가 있는줄은 몰랐다. 뒷조사 결과 "2003년부터 인터넷 미디어 다음에 연재하며 네티즌들에게 큰 반향을 얻은 바" 있다고 하니 그렇구나 고개 끄덕일 밖에. 어쨌든 만화가 공포영화로 둔갑한데 대해선 놀라울 따름. 원작 만화엔 주인공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한다. 그것도 약간은 어리버리한. 왠지 만화가 좀더 코믹하면서 재밌고 스릴있을 듯 하다.  

  영화에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여자를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 드는 의문. 별 고민 없이 생각해봤을 때, 공포영화에서 있어선 남자보다 여자가 좀더 무섭다. 긴장감을 준다. 그 여자가 느낄 공포, 혹은 이 여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닐거라는 의심. 귀신을 떠올렸을 때 남자보다 여자를 떠올리는 데에서 비롯된 캐스팅이 아닐까 생각. 어흥 보다는 으흐흐 가 낫지 않나.



* 고소영. 정말 오랫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췄다.

  그러나 고소영을 캐스팅한 것이 잘 한 짓인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의문. 영화 속 고소영의 캐릭터는 사실 밋밋했다. 원작 만화가 어땠고,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별다른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사실 고소영이 나온 영화는 대개 그랬다. 드라마에서 한번 반짝 뜨고는 이후 몇몇 작품들에 계속 출연해왔지만 연기력이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려고 한 것 같지도 않다. 나이는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섰을텐데 데뷔한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정체되어있는건 뭔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매너리즘?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밥벌어먹고 살 수 있어. 나 씨에프에 출연하면 된다고. 이런건가. 지나친 비판은 여기서 그만. 이 글 보면 울지도 모르잖아.

  영화는 그럭저럭 무난하다. 감독은 안병기. 그는 2000년 <가위>라는 영화로 데뷔하여, 2년 간격을 두고 <폰> <분신사바>를 내놨고, 올해 <아파트>를 내놓았다. 그의 작품이 이렇게 네개가 전부인데, 모두 공포영화다. 그는 자신을 공포영화 전문감독으로 밀고 나갈 생각인 듯 하다. 좋아 그런 자세. 그러다보면 정말 탁월한 작품 하나 나오겠지. 내가 특출난 재능이 있는 천재가 아니고서야 한 가지 분야로, 해서 좀더 나은 분야로 나를 밀고 나가는 것이 가능성있는 선택이다. 재능이 없으면 노력으로라도. 그렇다고 안병기 감독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는 나름 영화판에서 전략을 잘 짜고 있다는 생각. 
 
***



* 아 이런 분위기 원츄. 어두운 빨간 드레스에 뭔가 무게있어 보이는 저 화장발. 그리고 긴 생머리.
   신비주의 컨셉. 뭔가 있어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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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7-1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재밌나봐요?? 제껴놨었는데...

마늘빵 2006-07-1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다기보다는 음, 괜찮았어요. ^^

비로그인 2006-07-1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껏 고소영이 나온 영화들을 저는 전부 다 무척 재미없게 본지라 이 작품도 아무 생각없이 제꼈더랬습니다만....고소영과는 별개로 두번째 사진의 이미지 정말 한때 원츄했더랬습니다. 흐흐흐..
아참, 지인이 한반도 시사회를 어제 다녀와서는 `한국 영화가 십 년은 퇴보한 걸 보는 기분이다'라고 하더군요. 보지 않았지만 혹시 보실 생각이라면 조금은 말리고 싶습니다.

마늘빵 2006-07-1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반도 저도 그런 이야기 듣고 안 볼 생각입니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두번째 이미지 차림을 좋아하셨나요? 아 저런 차림 원츄입니다.

전호인 2006-07-1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터 그림이 넘 무섭다.
고소영에게 저런 면이........
아 ~~~ 과거에 구미호에도 나왔던가????(아리송?)

moonnight 2006-07-1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어요. 근데 지금은 고소영. 예전보다 더 예뻐졌네. 하며 신기해했던 기억만 나는군요. 흐흐 ^^;

미미달 2006-07-13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신 나올 때 사람들이 막 웃었다고 들었는데....

마늘빵 2006-07-1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 네 고소영 구미호에 나오지 않았었나요? 그런거 같은데...
문나잇님 / 나이답지 않게 이쁜건 사실이에요 인정. ^^
미미달 / 음, 난 맨위에 적은 저 멘트할 때가 웃기던데, 다운으로 본지라 뭐 딴 사람들이 어떤지는 모르겠구.

비연 2006-07-1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소영 나오는 영화는 안 본다는...연기가 넘 딸려서리...ㅠㅠ
 

 

 

 

 

 

 DVD <장미의 이름>은 잘 알다시피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은 엄연히 다르다. 영화는 소설을 따라가지 못한다. 따라가지 못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의 텍스트로서 완결된 소설 <장미의 이름>과 별도로 영화 <장미의 이름>은 꽤나 흥미진진한 추리/스릴러 영화다. 얼마전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가 영화화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영화 <장미의 이름>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주의할 점은 '흥미'다. 글자를 읽어가며 머리 속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야기와는 달리 영화는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모든 관객에게 똑같은 영상으로 부여해준다. 글자가 눈으로 들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처음부터 영상이 눈으로 들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확실히 다르다. 전자가 글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의 산물이라 한다면, 후자는 그저 관객의 받아들임에 불과하다. 책을 찾아 읽는 독자들은 충분히 책이 내게 안겨주는 그 무게감을 감수할 의지가 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편안하게 즐기길 원한다. 따라서 아무래도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흥미를 위주로 만들어나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추리 소설이었다면,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하고, 관객의 머리에 의문점을 안겨주고, 때로는 반전을 일으키기도 하고, 영화에서 빠지면 재미 없는 러브신 등 갖가지 양념을 집어넣고 버무려 맛있는 음식을 테이블에 제공해주어야 한다.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영화 <장미의 이름>은 소설 <장미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어떤 지적인 측면들이 많이 무시되었다. 중세 수도원의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윌리엄 수도사의 이야기나, 또 윌리엄 수도사와 원장의 논쟁, 윌리엄 수도사와 베르나르 귀의 논쟁 등등 관객이 들었을 때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역사와 철학에 관한 대화는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소설 <장미의 이름>에 있어서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 없다. 영화는 소설이 독자에게 안겨주는 지적 희열감을 제외한 대신 좀더 긴장감있고 구미당기는 장면들을 제공해준다. 소설이 영화화되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점이다.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통해 소설의 내용을 확인하는 방법과 영화를 먼저 보고 흥미를 갖고 소설을 접하는 방법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순 없다. 전자는 이미 충분히 소설이 안겨주는 무게감을 감당한 뒤에 가볍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반면, 후자는 어쩌면 영화를 통해 얻은 흥미를 가지고 무턱대고 소설을 접했다 좌절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소설 따로, 영화 따로 생각하는 방법도 있다. 소설은 완결한 하나의 텍스트로서 대하고, 영화 또한 또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서 대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굳이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는 소설, 하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따로따로 생각하고 각기 즐기는 방법이다.

   나는 소설을 봤고, 한참 뒤에 영화를 보고, 다시 소설에 흥미를 가져 두번 보게 된 경우이다. 앞의 세 가지 방법 중 첫째, 둘째 방법이 뒤섞인 경우라고 할까. 처음 내가 소설을 읽었을 때는 어려웠다. 그저 다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했다. 하지만 영화를 접하고, 다시 흥미를 가지고 접했을 때,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줄거리 파악이 된 이후 대한 텍스트는 좀더 쉽게 다가왔다. 줄거리를 뻔히 알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재미는 조금 떨어졌을지 모르나 워낙 쉽지 않은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을 즐기지 않고 '이해'하는데 있어선 이 방법이 좋았지 싶다. 이와 관련되어 나온 다른 책자들도 함께 봤던 터라 <장미의 이름>을 제대로 봤단 뿌듯함이 나를 메운다.



*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

1.  감독은 영화 출연진 캐스팅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섭외하려 애썼다고 한다. 그것은 감독이 재능있는 무명배우를 발탁하는 데 취미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워낙에 독특한 캐릭터였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정말 여러 나라의 배우들을 어렵게 섭외해 영화에 출연시켰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윌리엄 수도사의 역 숀 코너리 조차도 감독은 꺼려했다. 결코 그를 쓸 수 없다고. 007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없다고 했다 한다. 이는 감독 뿐 아니라 기획사 전체가 동의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숀 코너리의 이 역에 대한 애정이 감독과 기획사를 무너뜨렸다. 딱 한번만 만나서 봐달라, 잘 할 수 있다, 고 몸값 높은 유명한 배우가 감독에게 사정을 했다 한다. 그리고 첫만남에서 당장 낙점되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화판 출신들이 아니다. 연극계에서는 유명할지라도 영화계에는 낯선 그런 인물들이었다. 국적도 가지가지. 이탈리아, 독일, 호주, 미국, 프랑스 등등 다양한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인물들을 끌어모았고, 영화에서 그들의 원체 괴상한 외모와 말투는 별다른 특수효과나 분장 없이도 소화가능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물 그대로 이다. 그리고 소설 속의 캐릭터를 충실히 반영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2. 영화에는 섹스신이 하나 등장한다. 윌리엄 수도사를 따라다니는 젊은 청년 아드소가 야밤에 수도원의 한 곳간(?)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정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아드소는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다. 소설에는 이 장면의 묘사엔 크게 할애하고 있지 않지만, 정사를 나눈 이후의 아드소의 심정에 대해서는 매우 길고 장황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여자는 내게로 다가서면서 그때까지 가슴에 안고 있던 까만 보퉁이를 구석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조금 전에 하던 말을 되풀이했다. 도망쳐야 할지, 가까이 다가서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내 귀에 예리고 성벽을 허물어뜨리는 여호수아의 나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여자는, 마음은 원이로되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나에게 미소를 뿌리고는, 암염소 같이 주름잡힌 소리를 내면서 가슴 위에 둘러져 있던 치마끈을 풀었다. 치마가 휘장처럼 걷히면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 앞에 선 하와 같은 모습으로 여자가 내 앞에 우뚝 섰다.
<아름다워라 젖가슴이여. 부풀어올랐으되 지나치지 아니하고, 자제하였으되 위축되지 않았도다>
나는 우베르티노에게서 들었던 말을 라틴 어 원문으로 읊었다. 여자의 가슴이 흡사 백합 꽃밭에서 뛰는 두 마리 새끼 사슴 같았기 때문이었다. 배꼽은 영원히 비지 않을 술잔, 배는 백합꽃밭에 놓인 밀가루 자루 같았다." (장미의 이름 상권 P485)
 

 당시 캐스팅 됐던 아드소 역할엔 배우로서 처음 입문하는 16살 정도의 청년이라 할 수 없는 소년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낙점되었는데, 그는 섹스신을 무난하게 치뤄냈다. 감독이 말하길, 자신이 컷 했는데도 여배우(여배우는 20대초반의 연극배우라고 들었다)와 그가 너무나 빠져버린 나머지 한동안 계속 하던 짓(?)을 진행했다고 한다.

3. 영화 속에서 베르나르 귀를 맡은 배우는 오페라인지 뮤지컬인지 그쪽 계열에서 대단한 사람이라 했는데, 그는 촬영 시간에 항상 맞춰온 일이 없었다고 한다. 되려 숀 코너리가 그를 한참이나 기다려야했다니. 자신은 유명한 배우이니 미리 와서 기다리지 않겠노라, 항상 내가 오기 전엔 다른 배우들이 모두 준비를 마치고 있어야 한다, 라고 했다나. 감독은 다시는 그를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겠노라 말했다. 얼마나 심했으면 그랬을고.

4.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유럽의 여러 수도원들을 돌아다니며 장소를 물색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찾지 못하고, 새로 셋트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어마어마한 셋트에 비용이 얼마나 소요되었을지 상상도 안된다. 수도원을 하나 새로 지어야했으니. 또 그는 미술감독과 함께 수도원 내부의 장식이나 문양에도 당시 중세의 양식에 따르기 위해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했음을 고백했다. 결국 한가지 실수가 드러났는데,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알면서도 부러 그렇게했다는 그의 변명. 처음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가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원장과 대화하며 보여지는 수도원 내부의 벽에 있는 상이 당시의 양식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영화를 본 몇몇 사람들에 의해 문제제기 되었다고 한다. 나야 뭐 잘 모르니 그냥 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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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7-1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소년, 크리스찬 슬레이터잖수. 왼다리짓 잘하기로 유명한. ㅋㅋㅋ

마늘빵 2006-07-1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잘 멀라. 왼다리짓이란 뭘 말하는고. 이 영화 말고 또 나온데가 있남?

프레이야 2006-07-1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래전에 몇 번 봤던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소설에 못 미치는 건 정말 그렇죠. 그 방대한 지적 영역을 영화로 표현하기에는, 촛점이 다를 것 같아요. 아무튼 영화는 참 충격적이었어요.. 베르나르 귀 역의 배우가 그랬군요..

비연 2006-07-1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찬 슬레이터였군요! 근데 정말 원작만한 영화는 별로 없는 듯 해요...
 

* 지난 일요일에 공연을 마쳤기에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그가 다시 무대에 오를 날이 언제인지는 나도 알 수 없습니다.


   "내 사랑을 말하기엔 하룻밤은 너무 짧습니다."
   "오! 스무살 난 아내는 어쩌면 그렇게도 애절하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요?" 
  아내를 혼자 버려둔 채 이렇게 당신들 앞에 끌려와야 했던 오늘밤은
  정말이지 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악몽이 될 것입니다.
  아! 아내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신일의 진술> 

 

  대단한 공연이었다. 연극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모노드라마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좋았다. 참으로 좋았다.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종로, 대학로 길거리에 지나다니다 보면 공연 포스터 참으로 많이 붙어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좋은 공연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란 까막눈인 나는 모른다. 영화를 많이 보면서 영화에 대한 취향과 나름의 안목이 생겼지만, 연극을 본 것은 내 인생 스물 여덟 해에 있어 딱 네 번. 한번은 대학 2학년즈음이었나. 당시 수강했던 한 교과의 교수님께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오너라 했고, 처음 연극을 접했을 때, 더군다나 그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였다는 것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다. 첫 경험이 어떤가에 따라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연극의 첫경험은 매우 탁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연극은 영화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항상 돈에 쪼들려 살던 나는 언제나 영화를 택했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쉽게 선택할 수 있기에는 연극보다는 영화였다. 솔로 시절이 길었던 내가 더군다나 오봇하게 누군가와 함께 연극을 보러가기란 어려웠다. (연극은 연인끼리 봐야한다는 편견을 버려. 그래 맞다. -_- )

  내 생에 경험한 몇 안되는 연극은 모두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강신일의 진술>은 처음 내가 연극을 접했던 <고도를 기다리며>와는 또다른 색다른 감동을 선사해준다. 난 이렇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 좋다.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어떤 형태로 전해지든 간에 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은 언제나 환영이다. 하지만 생각거리를 던져준다고 하여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불친절하게 툭 던져놓고는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어떤 것은 친절하게 메세지를 전달해주려 노력한다. 또 어떤 것은 나름의 줄거리를 가지고 진행하지만, 중간중간 대뇌피질에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모두 좋다. <강신일의 진술>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봤기 때문에, 그저 이름과 제목과 포스만 알고 봤기에 더욱 좋았지 싶다. 함께 본 이가 내게 작품에 대한 아무런 언질도 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의도였다.

***

  연극은 매우 철학적이다. 또 매우 흥미롭다. 마치 소설을 한편을 읽은 것처럼. 또 스릴 넘친다. 찌릿한 지적 자극과 함께 짜릿한 섬뜩함을 느끼게도 해준다. 딱 내가 좋아하는 그런 작품이다. 적당히 지적이고, 적당히 흥미롭고, 적당히 짜릿한.

  환상과 실제. 철학에서 매우 흥미롭고 흔한 주제이면서 언제나 많은 생각거리를 선해주는 주제이다. 내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 사물을 인식하는가의 인식론적 문제. 많은 영화와 책에서 써먹히는 주제이면서 다루기 힘든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실제세계와 가상세계를 다루었고, 어떤 것이 실재하는 세계인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실재하는 세계와 상관없이, 우리는 어떤 세계를 실재세계라고 믿는다. 그리고 또 무엇을 원하는가, 를 다루었다.

  믿고 싶은 것과 믿어야 하는 것은 다르다. 믿고 싶은 것은 나의 희망이 가미된 환상이며, 믿어야 하는 것은 불행이 그곳에 있더라도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환상은 무엇이고 실제는 무엇인가. <강신일의 진술>에서 주인공이  '환상과 실제'라는 책을 썼다고 했을 때, 이미 난 눈치챘다. 내 마음 속에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머리 속에서 번개가 쳤다. 사랑하는 여인이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왔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와 전화통화를 했다고, 처음 그때를 떠올리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죽었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지도 않았다. 다정한 대화는 없었으며,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다. 믿고 싶었다 하지만 믿어야 했다. 인정해야 했다.

  어쩌면 환상 속에 살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더 나은 삶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매트릭스'에서 리얼세계로 나올 필요도 없고, 그것을 탐구한다는 것 자체도 무의미하다. 현실 속의 불행감보다 환상 속의 행복감이 낫다면, 깨지 않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좋은 방법일 터이다. 이건 아니야 어서 인정해 괴롭겠지만 눈을 떠, 라고 말리고 다그치고 윽박지르며 두들겨봐야 소용없다. 그 사람은 이미 행복한걸. 우리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 아니던가. 행복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행복하기 위해 큰 집을 사고,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하기 위해 책을 보지 않던가. 단지 모두에게 행복에 대한 관심과 관점이 다를 뿐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누구도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만일 나는 불행해지길 원해 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 또한 객관적인 불행의 조건을 통해 주관적인 행복을 획득하려는 것이다.  

  존재하는 실제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은 결국 삶을 살아가는 주체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환상 속에 살며 현실을 사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객관적인 도덕규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행복감과 상관없이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차원에서 어떤 제제를 가해야 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환상에 때로 가슴저리게 아프고, 욱신욱신 쿡쿡 통증이 오며, 공감하고픈 것이 나의 현실이다. 그의 행각(?)과 별도로 내가 그가 되어 그를 느끼고 싶었다. "오늘 밤 아내 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 그러고 싶었다. 세상에 없는 아내를 불러내고 싶었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이며, 환상과 실제의 이야기이며, 섬뜩 놀래키는 추리물이기도 한 이 연극을 연출하고 열연한 박광정씨와 강신일씨에게 박수를. 두 분 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

하나. 5년만에 무대에 다시 올린 이 연극을 종료 하루 앞두고 본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하나. <공공의 적>을 통해 강렬하게 다가왔던 그의 힘이 연극에서 또다른 더 큰 빛을 발했다.
하나. 박광정과 강신일을 다시 주목하게 된 작품이었다.
하나. 연극의 원작이 된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하나. 나중에 다시 무대에 올린다면 이 연극을 또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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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678 2006-07-16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일지의 소설 <진술>을 토대로 만든 연극인가 봐요. 5~6년쯤 전에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진술로만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구성이랍니다. 연극이 끝났다니 아쉽네요.

마늘빵 2006-07-1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소설을 바탕으로 했어요. 소설도 보고 싶어요.
 



  잘 모른다. 그를. 클림트라는 이름과 그의 몇몇 작품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음악엔 관심 있지만 - 그것도 장르가 한정 되어 있지만 - 그림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았다. 철학을 했어도 해석학, 분석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철학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미학을 들을 땐 거의 졸았다. 하긴 다른 수업에서도 졸았긴 마찬가지구나. 보통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림에 대한 관심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생초짜인 내가 미학에 관심을 갖기는 환경상 어려웠다. 이것은 내가 처음 악기를 배우고자 할 때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지 않고 드럼을 배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피아노나 기타는 원래 어릴 때부터 해서 좀 치는 녀석들이 많다. 그래서 20살 먹고 남들보다 빠르게 뛰어난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잘 선택하지 않는 악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드럼이 간택(?) 되었던 것이다. 나의 선택은 적중해서 밴드 결성시 가장 희귀한 파트가 드러머였고, 나는 안되는 실력에도 초반부터 괜찮은 밴드를 잡아 그 생활을 시작했었다.

  영화 <클림트>를 보기 위해 오는 관객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나와 같은 부류. 즉 클림트가 어떤 인물인가를 영화를 통해 알기 위해 오는 사람들, 그리고 또 하나는 평소 클림트와 그의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영화가 개봉되자 그것을 확인하고 어떤 식으로 삶을 그려냈는가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 그의 작품이 그려진 과정과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오는 부류도 넓은 범주의 후자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영화는 나와 같은 부류에게도, 후자의 부류에게도 만족감을 주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삶에 촛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그의 작품 활동에 촛점을 맞춘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있는 듯한 인상이다. 양자 모두를 잡으려 했던걸까, 아니면 양자 모두 초월하여 스치고 지나가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의 삶에 있어서, 작품에 있어서, 특정한 시기를 잘라내 그 평면을 비춤으로써 클림트란 인물을 관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삶도, 작품도 한 편의 짧은 영화로 보여주지 못하느니 더 낫겠다는 판단이었을지도.



   그가 미술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성향과 파를 조성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1862년에서 1918년까지를 살아간 그가 죽은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지금, 클림트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왜 지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어떤 시도나 그를 기념할 만한 뭔가를 찾지 못하겠다. 난 그저 누군가가 그의 그림이 좋다고 하여 보게 된 것이고,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 뭔가 조각조각 짜맞춘 듯 하면서 그것이 묘한 아름다움을 구성한다는 것 정도 밖에는 알지 못한다. 

  영화를 봄으로써 되려 그림에 대한 나의 무지와 그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차버렸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그림을 접했을 때의 그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순차적으로 뭔가를 보여주기 보다는 그의 삶의 중간중간을 잘라내어 하얀 도화지 위에 툭툭 던져놓고 멋대로 짜깁기 한 듯한 느낌이다. 영화를 봄으로써 그의 그림을 본 듯한 이 느낌. 그것으로 만족한다.

 * 함께 본 이의 덕분으로 영화 속의 또다른 인물 에곤 쉴레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녀' 가 아니었다면 클림트 말고는 등장인물들을 그저 엑스트라 쯤으로 여기고 봤을 터.



* 이 사람. 에곤 쉴레. 손가락 제스쳐가 참 인상적이었다. 얼핏 본 어느 책에서 그가 클림트를 존경하며 따르고 교류했다는 글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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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7-0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은데... 클림트 그림 마음에 드는데... 존 말코비치도 마음에 드는데... 끄응~

마늘빵 2006-07-0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나침반님 클림트 모르고 가면 그냥 막 던져주는 먹이 구경만 하고 그냥 오게 되는거 같아요. 제가 그랬어요. 따옴표까지 신경쓰실건 없는데. ㅎㅎㅎ 나침반님은 너무 눈치가 빠르셔.

프레이야 2006-07-0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림트 읽고 봐야겠어요..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