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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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자의 고유한 특징으로 남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것과 자신을 위하여 운명이 지은 것을 사랑하고 반기고, 자신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신성을 더럽히거나 무수한 상념들로 어지럽히지 않고, 신에게 순종하고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고 정의에 어긋나는 짓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그 신성을 편안하게 간직하는 것뿐이다. 그는 자신이 소박하고 겸손하고 유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모두들 믿어주지 않아도 그들 중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으며 삶의 목표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순결하게, 조용하게, 떠날 각오를 하고, 자신의 운명과 사이좋게 지내며 삶의 목표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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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 찬 가난
Lothar Hardick ofm 지음, 성글라라 익산 수도원 옮김 / 프란치스코출판사(프란치스꼬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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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부당한 일을 하지 말라! 그러나 다른 이가 네게 부당하게 대하면 너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아 받음으로써 네 죄가 사해지기를 구하라. 왜냐하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변명이나 대꾸함 없이 단 한 번 부당한 취급받는 것이 백 명의 불쌍한 이를 배불리 먹여주는 자선보다 낫고, 대낮에 도깨비에 홀릴 정도로 오랫동안 단식하는 것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자신을 멸시하고 육신에 단식과 철야 기도, 편태(鞭笞-회초리)의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도 이웃에게서 단 한 번이라도 부당하게 취급받기를 싫어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모욕과 수치는 우리 안에 숨어있는 교만을 들추어내고 우리를 단련시키는 용광로와도 같다."

-『복자 에디지오 금언집』에서 재인용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답시고 저는, 오늘도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업을 짓고 있네요.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고, 무엇보다 평화로우시길 빕니다. Pax et Bo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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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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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다룬 작가 김훈의 최근작으로(그래도 벌써 2011년), 술술 잘 읽힌다. 그래서 슬프고 안타깝다. 작자 스스로가 자신 없어 했던 것처럼 철저한 고증을 거친 역사서가 아니긴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등의 오류가 발견된다.

한국에서, '구교'인 천주교가 절명의 순간마다 본도로 돌아가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역사를 통해 볼 때 그 출발이 외부로부터의 이식이 아니라 이를 대안적 가르침으로 여긴 이수광, 허균, 이익, 안정복, 정약전 3형제와 같은 실학자들에 의한 자생적 연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인간평등사상과 결합해 가렴주구에 신음하던 조선 후기 민중들에게 전승되는 과정에서 전통적 위계질서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혹독한 박해와 수난을 이겨내야 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남터에서 막걸리 한 사발 하고 싶다.


"천사는 하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천사의 찬양보다 그 이상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이 인생의 최후의 항로에서 하느님이 어떤 말로도 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일을 꾸며서, 인생의 안락을 빼앗기 위해 더 이상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모든 일을 행한다고 해도, 그럼에도 하느님은 사랑이며, 사랑하는 까닭에 그런 일을 행한다고 하는 신앙을 견고히 붙드는 인간이다. 그와 같은 인간은 마침내 천사가 된다. 그래서 하늘 나라에서 그가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도제 시기 또는 수련 시기는 항상 가장 고달픈 때인 것이다."

- 키에르케고어의 마지막 일기 중에서


"연대성은 진정한 도덕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연대성은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이나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가깝든 멀든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빚을 지고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한다."

- 「간추린 사회교리」 제19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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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키에르케고어
한국키에르케고어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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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논문을 모아놓은 이런 책은 참 좋다.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조감한 여러 논문들이 모자이크 조각처럼 짜맞춰지면서 한 사상가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김하자 교수님의 「키에르케고어의 생의 세 단계와 비연속성의 교육」이 참 좋았고, 소크라테스를 아이러니스트로 묘사하는 키에르케고어의 학위 논문을 다룬 이민호, 「'아이러니 개념'에 나타난 소크라테스」도 새로웠다(원전 자체의 독창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특히 감명 깊었던 것은 초대 학회장을 역임한 표재명 교수님의 「한국에서의 키에르케고어 수용사」였다. 이런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도 했거니와(키에르케고어가 상대적으로 생소한 덴마크 출신의 철학자였기에 전체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라는 창을 통해 본 한국 근현대사가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시인 윤동주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영향을 다룬 꼭지도 흥미로웠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셨던 선배 연구자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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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 범우고전선 7
키에르 케고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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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는 처음 읽어봤는데... 일단 보류.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죽음 그 자체도 생명으로의 이행을 뜻한다. 그러는 한에 있어서 지상의 어떤 육체적인 병도, 비록 그것이 죽음에 이를 정도라 하더라도 절망에 대해 일컬어지는 만큼의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물론 병의 최후이긴 하나 죽음이 결코 종국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이 가장 엄밀한 의미로 밝혀져야 한다면, 죽음은 종국적인 것이고 종국적인 것이 죽음인 경우가 아니면 안 된다. 따라서 절망이라는 병이야말로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은 다른 의미에 있어서 더욱 명확히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이 병으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 보통 사람이 죽는다는 의미에 있어서 - 바꿔 말하면 이 병은 육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절망의 괴로움은 도리어 죽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절망은 모든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증상과 비슷하다. 그는 누워서 죽음과 싸우고 있으면서도 죽을 수 없다. 죽도록 앓고 있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최후의 희망인 죽음마저 없어진 절망을 뜻한다. 죽음이 최대의 위험이라면 인간은 삶을 원한다. 그러나 더욱 두려운 위험을 알게 될 때 인간은 죽음을 원한다. 죽음이 희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위험이 크게 된 경우의 절망이란, 한 번 죽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 최후의 의미에 있어서,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자기의 내부에 있는 이 병은 영원히 죽는 것이고, 죽어야 하는데도 죽지 않는 것이며, 죽는다는 괴로움에 충만된 모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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