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중용 동양고전백선 3
주희 / 일신서적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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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

   막현호은이며 막현호미니 고로 군자는 신기독야니라.


   숨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작고 미미한 것보다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고 조심한다.

   -『중용장구』제1장 제3절


2) 사서를 다 읽었다. 2006년 봄, 어쨌든 난 연락을 전부 끊은 채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고, 불면과 악몽으로 쇠약해져 갔다. 다음해에 있었던 시험까지 남김없이 방전되어버린 나는 끝없이 추락하는 자존감에 대한 자위책으로, 자괴감과 죄책감에 대한 자학충동으로 어처구니없게도 『논어』를 집어 들었다. 불합격 발표가 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경전 구절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가 자리잡아갔다. 이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시험들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아침에 읽은 경전들이 『논어』, 『맹자』, 『채근담』, 『명심보감』, 『한비자』, 『법구경』, 『대학』과 같은 책들이다. 오늘(2011. 7. 15.) 『중용』부분을 마저 읽어 일단 사서부터 채운 셈이다. 그리고 『장자』나 『바가바드 기타』 등을 읽다 말았다.


3) 사서를 읽는 순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주희의 권고를 참고할 만하다. “우선 『대학』을 읽어 규모를 정하고 『논어』를 읽어 근본을 세운 뒤에 『맹자』를 읽어 발월(發越=이상주의적 교양)을 본 다음 『중용』을 읽어 古人의 미묘한 데를 구하여야 한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주자와 같은 대학자가 이토록 준엄하게 타이른 것이겠지만, 어쨌든 『대학』을 읽고 나서 유교라는 과목의 학원 요약집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 건 사실이었다. 주자는 『대학』을 학문의 테두리이고, 규모이고, 강령과도 같은 책이라 여겨 중요시했다는데,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입문서로 삼기엔 손색이 없다. 주자가 주해한 『대학』을 따라가노라면 무슨 스타 강사의 학원강의를 듣는 듯하다. 반면, 『중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평해 놓았다. “『중용』은 성인의 학문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인 학설로서 후세의 학문하는 사람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자학이 제시하는 이러한 순서에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중용』은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아 마지막에 읽는 편이 좋은 것 같다.


4) 시중에는 다양한 번역본이 나와 있다. 좋은 고전 번역본을 고르기 위해 나는 교수신문의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기획을 많이 참고한다. 여기에 소개된 것들은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투표로 선정한 번역들이다. 출판사들이 기획 번역을 할 때에는 기존에 출간된 번역본들, 그중에서도 호평을 받는 판본들은 대체로 참고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출판사에서 가장 최근에 번역한 책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나는 주로 헌책방에서 책을 사는데, 출판사들이 그렇게 새 번역을 위해 참고했다가 되판 다른 출판사의 책들을 많이 사보았다. 방론이 길어졌는데, 교수신문은 『논어』의 경우 이을호(박영사)와 성백효(전통문화연구회)의 번역을, 『맹자』는 성백효(전통문화연구회), 양백준․우재호(중문출판사), 차주환(명문당)의 번역을, 『대학』과 『중용』은 김학주(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박완식(여강출판사)의 번역을 좋은 번역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들은 정확한 번역이나 꼼꼼한 주해를 평가의 한 기준으로 삼아 선정한 번역본들이고, 특히 동양 고전의 경우에는 현대적인 감각에 맞춰 보다 읽기 좋게 번역한 다른 판본을 골라도 무방할 것 같다. 내가 읽은 판본은 『논어』(김학주 역주, 서울대학교출판부), 『맹자』(우재호 옮김, 을유문화사), 『대학․중용』(김영수 역해, 일신서적출판사)이다. 특별히 이 책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헌책방에 있었기 때문에 산 것이다. 모두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 읽은 김영수 해설의 일신서적 『대학․중용』의 경우는 풍부한 주해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책을 쓰려면 도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자는 무엇이든 둘로 나누고, 양명은 무엇이고 하나로 합친다는 말이 있는데, 부분부분 주자학과 양명학을 비교해 설명한 내용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중용』의 경우 여강출판사에서 나온 박완식의 번역도 용케 헌책방에서 구했으나 분량이 부담되어 읽는 것을 미뤘다. (+) 근래에 나온 김원중(글항아리)의 『논어』도 기대가 된다.


5) 다른 경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따금 폐부를 찌르는 구절을 만날 때마다 낯이 뜨거워져서 혼났다. 성현들은 우매한 후세의 고민과 마음자리를 어찌 이리도 훤히 내다보아 이러한 도를 미리 세워두셨단 말인가. 관계와 감정, 도리를 모조리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용해시키고 얼버무리는 서구 기독교에 비해 유교는 적어도 그 측면에 관하여는 보다 정치하고 농밀한 궁구를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중용』 제16장에 나오는 주자의 귀신론이 어렵지만 신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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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지식 2023-02-25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아침에 문득 주희의 책에 대한 영역본을 찾아보다가,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일신서적공사의 동양고전 책들은, 일본의 동양문화대계(?)하는 70년대 위대한 번역 시리즈를 완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 최고 권위자들이 쓴 책이기 때문에 수준이 상당할 것이구요.
저도 <도덕경> 편을 읽었습니다.
한국의 베른 저작권법 가입 이전에 번역되어 당시 관행상 판권을 밝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더 나인 - 미국을 움직이는 아홉 법신(法神)의 이야기
제프리 투빈 지음, 강건우 옮김, 안경환 감수 / 라이프맵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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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을 살리지 못한 번역과 교열이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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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술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민병덕 옮김 / 범우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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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신의 독서생활을 점검해볼 수 있는 책.

우리는 끈기를 갖고 좋은 책들을 적극적으로 읽어나감으로써, 저자와의 지적 격차를 줄이고, 반론을 변증법적으로 해소하며, 그렇게 채워진 의식의 공백만큼 뚜벅뚜벅 성장한다.

저자의 제언처럼 화두를 더 끈질기게 붙드는 '신토피칼 독서-같은 주제에 대해 다종의 책을 섭렵하는 책읽기'를 의식적으로 추진해 진짜 공부를 쌓아나가자!

덧) 역자가 생략하였다는 3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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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 흠흠신서로 읽은 다산의 정의론
김호 지음 / 책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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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을 잘 처리하는 것과 소송 없는 사회[無訟]를 만드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재판은 천하의 저울과 같다. 죄수를 미워해 죽일 길을 찾아도 형평(衡平, 저울)이 아니며, 죄수를 위해 살릴 길만을 찾아도 형평이 아니다. 그럼에도 죄수가 살 길을 찾고 죽을 길을 찾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진실로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으므로, 살려놓고서 죽일 바를 찾더라도 오히려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형사 사건을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죄수를 위해 살릴 방도[好生之德]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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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을 넘어서
김홍섭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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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은 누구에게나 대견한 것이다. 간지奸智를 부리다가 제 꾀에 걸려 넘어진 자에게도 밉다고만 볼 수 없는 일면이 있겠거든,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압도 유린당한 패배자들 앞에, 

'좋은 법관'이기 전에 또는, 그와 동시에 '친절하고 성실한 인간'이어야겠다고 나는 때때로 생각하여보는 것이다."

- 김홍섭, 「한 법관의 심정」, 『무상을 넘어서』 중에서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은 국가주의입니다. 인류보다 자기 국민을 더 생각하는 국가주의는 모두가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잊고 있는 고로 惡입니다.

기본 인권은 법의 위에 있고 인류의 공동 운명은 민족의 그것보다 크다고 보는 것은 나의 법관으로서의 기본 신조이다. 인권에 관한 法上의 諸規則은 지역에 따라 시기에조차 관계될 수 없다 한 데서 나는 내 平常의 심정을 굽힐 수가 없다."

- 김홍섭, 1960. 11. 13.자 일기 중에서


가난은 타인과 다른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그 나름대로 있게 하는 존재양식이다. 거기에는 권력과 지배, 욕망의 충족을 구하는 본능을 끊어내는 극기가 요구된다.

가난이 철저할수록 개인은 더욱 진실에 가까워져 다른 사물들과의 교류가 쉬워지며 그들과의 차이점이나 구별점을 존중하고 경외하게 되는 혜안을 갖게 된다. "執을 버리고 着을 끊을 때", 즉, 자신을 모으지 않을 때 비로소 만물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 위 권동순의 글과 김홍섭, 1958. 8. 27.자 일기, 1960. 3. 6.자 일기 등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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