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의 마블 유니버스 죽이기 시공그래픽노블
컬런 번 지음, 달리보 탈라직 그림 / 시공사(만화)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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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고 잔혹하다. 결말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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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노스 라이징 시공그래픽노블
제이슨 아론 지음, 이규원 옮김, 사이먼 비앙키 그림 / 시공사(만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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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함;; 궁금해서 읽고 잠들었는데 좋지 않은 꿈을 꾸었다. 그래도 타노스에게 그런 과거가... 싶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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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학부 시절 '촘스키가 도대체 어떤 사람, 뭔 얘기 하는 사람이야?' 싶어 샀다고 한다.

  원제는 "Chomsky - A Beginner's Guide(by Michael Dean)"로, "30분에 읽는"은 국내 출판사에서 그야말로 책을 팔기 위해 붙인 관형구이다. 다른 분들께서 쓰신 것처럼 30분에 읽을 내용은 아닌 것 같고, 책 정리 중에 제목에 혹하여 집어 들게 할 정도로 성공적이기는 하였다(전에 1권 톨킨 책에 관한 리뷰를 남겼는데, 아쉽게도 "30분에 읽는" 시리즈는 모두 절판되었다). 뒤에 흡사한 책(들)이 또 나왔다(그나저나 책 정리 진척이 너무 더뎌 걱정이다. 미세먼지로, 책 먼지로 아기를 집 안팎에서 고생시키는 것 같다).





  911 테러에 이은 이라크 전쟁,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반전-대안세계화 운동 등의 고갱잇말로 요약되는 국제 정세와 맞물려, 노엄 촘스키는 2000년대에 특히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름이었다(뭔가 있어 보이는, 혹은 왠지 촘촘한 논증을 했을 것만 같은 이름빨도 있었다고 여긴다. 촘스키는 벨라루스의 성姓이라 한다). 2005년에는 Prospect와 Foreign Policy가 실시한 'Top 100 Public Intellectuals' 투표에서 2만여 표 중 5천여 표를 얻어 움베르토 에코를 따돌리고 최고의 대중 지성으로 꼽히기도 하였다(물론 영미 시사지들이 실시한 것이라, 주로 영어권 네티즌들이 투표에 참여하였다는 한계는 있다). 알라딘 페이퍼들에는 주로 10위까지만 소개되어 있는데, 당시의 20위까지는 다음 표를 참조하고(http://foreignpolicy.com/2005/10/15/prospectfp-top-100-public-intellectuals-results/), 100위까지를 모두 보려면 다음 페이지를 참조하면 되겠다(21위가 프란시스 후쿠야마, 22위가 장 보들리야르, 23위가 슬라보예 지젝이다. 아무래도 'Public Intellectuals'-현실참여적 지식인이기도 하겠으나, 그 때문에 대중적 지식인이기도 할 것이다-를 뽑은 것이다 보니, 100위까지 익숙한 이름들이 이어진다. https://web.archive.org/web/20090930143349/http://www.prospectmagazine.co.uk/prospect-100-intellectuals/).


Top 20
1Noam Chomsky
2Umberto Eco
3Richard Dawkins
4Václav Havel
5Christopher Hitchens
6Paul Krugman
7Jürgen Habermas
8Amartya Sen
9Jared Diamond
10Salman Rushdie
11Naomi Klein
12Shirin Ebadi
13Hernando de Soto
14Bjørn Lomborg
15Abdolkarim Soroush
16Thomas Friedman
17Pope Benedict XVI
18Eric Hobsbawm
19Paul Wolfowitz
20Camille Paglia
  2008년부터도 매년 유사한 조사가 있었는데, 순위를 매기기 전의 명단 발표에 대해 2005년 5위에 올랐던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2008. 5. 24. 'Public Intellectuals'라는 용어의 사용과 남용에 대해 "How to be a Public Intellectual"이라는 글을 Prospect에 기고하고(https://web.archive.org/web/20090930183523/http://www.prospectmagazine.co.uk/2008/05/howtobeapublicintellectual/), 순위까지 집계한 2008. 6. 23. 발표에서 터키 종교 지도자인 Fethullah Gülen이 깜짝(?) 1위에 오르고(https://archive.is/20170518160601/https://www.theguardian.com/uk/2008/jun/23/2), Ehsan Masood가 2008. 7. 26. 이런 뜬금포에 대한 해명성 글 "A Modern Ottoman"을 기고하는 등의 혼란(?)이 있었다(https://web.archive.org/web/20090930183753/http://www.prospectmagazine.co.uk/2008/07/amodernottoman/).


  히친스의 지적 때문이었는지 "The FP Top 100 Global Thinkers"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2009년에는, 1위에 벤 버냉키, 2위에 버락 오바마가 올라 그래도 좀 납득할 수 있는, 다소나마 정리된 모습(?)이 나타났고(https://archive.is/20150427000730/http://foreignpolicy.com/2009/11/25/the-fp-top-100-global-thinkers-7/#selection-8641.3-8641.18), 2010년에는 1위에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올랐다(그 다음이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과 로버트 죌릭이고, 이들에 이어 5바마가 뽑혔다. https://archive.is/20160313014024/http://foreignpolicy.com/2010/11/23/the-fp-top-100-global-thinkers-5/). 


  점차 정치적 운동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해져서 2011년에는 '아랍의 봄' 혁명이 조명되었고(https://www.scribd.com/document/118455058/The-100-Global-Thinkers), 2012년에는 아웅산 수치(Shame on you!)와 대통령이었던 떼인 세인(Thein Sein)이(https://archive.is/20130125015009/http://www.foreignpolicy.com/2012globalthinkers), 2013년에는 분야를 나누었으되 에드워드 스노든이 가장 앞자리에 소개되었다(http://2013-global-thinkers.foreignpolicy.com/). 2014년부터는 굳이 순위를 표기하지 않고, agitators, decision-makers, challengers, naturals, innovators, advocates, chroniclers, healers, artists, and moguls 등 10(9)개 분야로 나누어 발표하게 된다(2015년부터 naturals와 agitators를 stewards로 통합, https://en.wikipedia.org/wiki/FP_Top_100_Global_Thinkers#cite_ref-16).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국내에서는 촘스키의 정치 평론가적 면모만 과하게 부각되고[편견일 수 있겠으나, 학부 시절에 그의 책들을 읽어본 감상으로는, 그것이 미국 학자가 미국을 열심히 비판했다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엄청나게 크거나, 획기적 내지는 남다른 비판 활동이었는지 솔직히 의문스럽다(그래도 그래서 존재 의의를 부정할 수 없기도 하다ㅠ)], '촘스키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그의 언어학 분야 성과는 비전문가들에게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었다. 조금 지난 데이터이긴 하나, 촘스키가 근무하였던 MIT의 1992년 집계에 따르면, 촘스키는 1980년부터 1992년 사이 기간 'Arts and Humanities Citation Index'(https://en.wikipedia.org/wiki/Arts_and_Humanities_Citation_Indexhttp://mjl.clarivate.com/cgi-bin/jrnlst/jloptions.cgi?PC=H)를 기준으로 역대 인물 중 마르크스, 레닌, 셰익스피어, 아리스토텔레스, 성경, 플라톤, 프로이트에 이어 8번째로 많이 인용된 인물이다(그 뒤를 헤겔과 키케로가 따르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촘스키가 그 정도로까지;; 이것도 뜬금포 같은데;;). MIT Tech Talk, Vol. 36, No. 27 (1992) http://news.mit.edu/1992/citation-0415 (어쨌건 촘스키가 워낙에 수퍼스타이다 보니 이런 글들이 쏟아지는 것이겠지만, 촘스키의 언어학과 정치적 입장의 연관을 다룬 노르웨이어 기사들이 있다. http://www.salongen.no/?p=2177http://www.salongen.no/?p=2180)


  다만, 『변형생성문법의 이론』(이승환, 이혜숙 공역, 범한서적, 1966)으로 번역된 적이 있으나 절판되었던 그의 첫 저서, 『Syntactic Structures』(1957)가 최근 다시 번역되기도 하였고(옛 번역이 낫다고 한다ㅠ), 각 분야의 다른 대표적인 학자들과 비교할 때 그래도 본업도 꾸준히 소개되는 편의, 이만하면 복 받은 축에 속하는 학자인 것도 같다. 『생성문법론』(이승환, 임영재 공역, 범한서적, 1975)으로 번역되었다가 역시 절판된, 『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1957)도 다시 나와야 할 것이다. 위 책들을 옮기신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승환 교수님께서는 2004년 별세하셨다.



(미셸 푸코와의 대담은 유튜브에서 전체 영상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Y93gHVynaY 책 표지 사진 등으로 많이 접한 푸코의 손버릇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스키너와 촘스키의 논쟁을 다룬 책이 나와 있다. 행동주의 비판의 포문을 연 촘스키의 『Verbal Behavior』에 대한 1959년 서평은 다음 링크[Language, Vol. 35, No. 1 (1959) https://www.jstor.org/stable/411334?seq=1#page_scan_tab_contents]에서 볼 수 있다. 1971년 『Beyond Freedom and Dignity』에 대한 서평에서는, 스키너의 행동주의적 세계(박스)가 "잘 운영되는 포로수용소(a well-run concentration camp)"라고 까지 했다[The New York Review of Books (1971. 12. 30.) http://www.nybooks.com/articles/1971/12/30/the-case-against-bf-skinner/]. 이들의 논쟁에 대해 스티븐 핑커는 "촘스키는 행동주의 학파에 최초의,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수세기 동안 잊혀져 있던(말도 안 된다고 여겨졌던) 타고난 정신구조에 관한 이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He gave the first, fatal shot to the school of behaviourism, and made theories of innate mental structure respectable after centuries of their being unthinkable)."라고 평했다. Maya Jaggi, "Conscience of a Nation", The Guardian (2001. 1. 20.)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01/jan/20/society.politics (관련하여, 스티븐 핑커의 책들을 좀 더 열거해 보았다)




  아무튼 촘스키의 정치 저작은 꾸준히, 활발히 번역되고 있다. 많이... 정말 많이도 나왔다... 이를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많이 인용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정복은 계속된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숙명의 트라이앵글』과 같은 대표작들은 다시 나왔는데, 과거에 비해 책들이 조금 더 가지런히(?) 나오고 있다.




  그 밖에...






덧) 촘스키의 젊은 시절 영상 몇 개...


  "Vietnam and the Intellectuals" (Firing Line), debate between William F. Buckley (1969. 4. 3.) https://www.youtube.com/watch?v=9DvmLMUfGss (다음 링크에서 스크립트를 볼 수 있다 https://buckley-chomsky.weebly.com/)


  Daniel Ellsberg와 펜타곤 페이퍼에 관하여(1971년) https://www.youtube.com/watch?v=WE50tCvldTY (콧대가 ㅎㄷㄷ 잘 생김 뿜뿜)



덧2) 언뜻 우디 앨런을 닮았다고는 생각했는데, 미세스 다웃파이어 설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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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은 "정당화된 참인 믿음(justified true belief)"라는 JTB 전통을, '효율성'에 대한 요구로 대치하여, 지식을 "유용한 정보"로 규정하자는 실천적 제안. 일종의 공리주의로, 이 지점에서 인식론과 윤리학이 만날 수 있다고 본다(그리고 아래 내용까지 포함하여, 개인적으로는 현대 인식론의 '범죄학'으로의 응용을 고민하고 있다).

  지은이는 반드시 참이 아니더라도 효율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그리하여 정당화되는) 정보들, 즉 JTB에 대한 반례(?)로, ① 노하우(명제 형태가 아니라, 명령문의 형태를 띤다), ② 표준(default) 추론(일종의 확률적 판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③ 탐색(heuristic) 추론[이렇게 옮길 것이면, 차라리 번역을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어땠을까. 책에서는 특정 영역에서 최소한의 연구로 올바른 대답을 재빨리 얻어내는 전문가들의 지식, 내지는 전문적으로 개발된 현명한 지름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탐색 절약적 추론'이라고 옮기는 것이 정확하지 않았을까. 지은이는 표준 추론과 탐색 추론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나, 탐색 추론은 표준 추론에 비하여 사건(? 사례였을까?)에 의해 입증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을 든다.

  선진지식기술(Advanced Knowledge Technology, AKT) 프로젝트의 '지식경영의 여섯 가지 도전'과(다만, http://www.aktors.org는 현재 다른 페이지로 바뀐 듯하다?) 지은이가 여기에 덧붙인 고전적인 인식론적 문제들은 갈무리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누운 글꼴로 표시한 부분이 지은이가 덧붙인 문제틀).


1. 획득 : 지식에 관한 첫 번째 문제는 지식을 언제, 어떻게 획득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지식의 획득을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현존하지 않으며 연구 프로그램에 의해 발겨되어야만 하는 지식(가령 에이즈 치료법)이다. 둘째, 현존하지만 조직이 소유하지 않은 지식이다. 셋째, 조직이 소유하지만 잘못된 형태로 소유한 지식(가령 앞에서 예로 든 X 유형 부품에 대한 스미스의 지식은 불편하게도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어서, 그에게 지식을 획득하여 웹페이지로 옮기기로 한 결정이 내려졌다)이다. 여기서 경영 차원에서의 결정은 지식 획득의 어려움(적절한 코드가 존재하는가?). 획득의 비용, 그리고 예상되는 이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서로 다른 유형의 지식들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2. 모형화 : 일단 지식을 획득하고 나면 그것을 유용한 방식으로 저장해야 한다. 획득되는 지식은 기록하기 쉬워야 하고, 마찬가지로 읽기 쉽게 표현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유형의 지식들은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표현되는가? 표현을 어느 정도로 바꾸어야 지식이 변하는가?


3. 검색 : 조직이 대규모의 지식을 보관할 때는 사용하기 편리하게, 빨리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이 말은 내용물을 빨리, 믿을 수 있게,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보관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지식이 다른 물건 더미에서 사라진다면 마치 <레이더스-잃어버린 성궤>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결약의 성궤"처럼, 차라리 잊어버리는 게 낫다. 연결된 지식 조각들은 어떻게 해야 가장 잘 조직화되는가? 지식 조각들은 어떻게 서로서로 연관되는가?


4. 재사용 : 어떤 지식이 회사에 있다면, 그 지식이 필요한 사람은 그것을 얻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지식을 비싸게 (또는 로열 돌턴처럼 부적절하게) 다시 획득해야 하는 둘러 가는 길을 밟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가지고 있지 않은 지식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지식 조각들은 어떻게 서로서로 연관되는가?


5. 공표 : 지식이 필요한 사람은 제 시간에 지식을 얻는 게 중요하다. 너무 이르면 정보가 과잉된다. 너무 늦으면... 어쨌든 너무 늦게 된다. 그리고 또 올바른 형식으로 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 기술에 관한 정보의 작은 한 부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초보자를 위한 전체적인 설명, 혹은 그 이론에서 아주 섬세하고 세련된 부분은 필요하지 않다. 지식이 시각화되는 방식이 변하면 지식도 변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6. 유지 : 지식의 보존 방법을 개발한 다음에는 지식을 잘 관리하고 갱신해야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서로 다른 종류의 문제들을 수반한다. 곧 지식이 올바른지, 그리고 지식이 올바르게 표현됐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또한 관련된 영역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지식을 갱신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되거나 낡은 지식은 "잊어버려야" 하며, 아울러 조직의 요구가 변함에 따라 형식을 바꿔야 한다. 심지어 외부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다면 지식을 상품화하고 팔기까지 해야 한다. 세계에 관한 설명이 올바른지 어떻게 아는가? 문장이 명제를 올바르게 표현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진술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는 무엇이며, 진술을 제거한 결과가 어떤지를 어떻게 추적해 볼 수 있는가? 서로 다른 지식의 유형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Peter Lyman and Hal R. Varian, "How Much Information? 2003" http://groups.ischool.berkeley.edu/archive/how-much-info-2003/execsum.htm


  그리고 20만 번 이상 인용된 Tim Berners-Lee, James Hendler, Ora Lassila, "The Semantic Web", Scientific American (2001. 5.) https://www-sop.inria.fr/acacia/cours/essi2006/Scientific%20American_%20Feature%20Article_%20The%20Semantic%20Web_%20May%202001.pdf


  위의 책 말고도 아이콘북스 시리즈에 주옥같은 책들이 많은데, 아쉽게도 모두 절판되었다. 모두 24권이다.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에 관하여 리뷰를 쓴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SilentPaul/9003945

  


  이제이북스에서 나왔으나, 또한 안타깝게도 절판된 시리즈가 사이코 북스 시리즈(21권)이다.



  인식론 책들을 정리해 본다. 외국서는 너무 많아 우선 국내서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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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이 갖는 권위의 토대로서 '정의'라는 것의 모호성과 신비한 기원에 관하여... 폭력

  멋진 책, 좋은 번역.


  자연법주의가 현존하는 모든 법을 그 목적들의 비판 속에서만 평가할 수 있다면, 법실증주의는 모든 생성되는 법을 그 수단들의 비판 속에서만 평가할 수 있다. 정의가 목적들의 척도라면, 적법성은 수단들의 척도다. 하지만 이런 대립과 무관하게 두 학파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근본 독단에서 일치하고 있다. 곧 정당한(gerechte) 목적은 정당화된(berechtige) 수단을 통해 성취될 수 있고, 정당화된 수단은 정당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법주의는 목적들의 정당성을 통해(durch die Gerechtigkeit der Zwecke) 수단들을 '정당화'하려(rechtifertigen) 하고, 법실증주의는 수단들의 정당화(Berechtigung)를 통해 목적들의 정당성(Gerechtigkeit)을 '보증'(garantieren)하려 한다. 두 전통은 동일한 독단적 전제의 원을 돌고 있는 셈이다. 그 공통적인 독단적 전제가 거짓이라면, 한편의 정당화된 수단들과 다른 편의 정당한 목적들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갈등이 존재한다면, 그 이율배반은 해결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법실증주의는 목적들의 무조건성에 대해 맹목적이며, 자연법주의는 수단들의 조건성에 대해 맹목적이다.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정당화 사이의) 순환이 포기되고 목적들의 정당성만이 아니라 수단들의 정당화를 위한 상호 독립적인 척도들이 확립되기 전에는 여기에서 통찰력이 전혀 획득될 수 없다.


- 데리다의 78쪽과 벤야민의 141쪽을 종합


  『글쓰기와 차이』는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하시니 읽을 때 주의.



(77쪽까지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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